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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 방랑적 일주경치 좋고 인심도 좋은데 길은 왜 이리 험한가

시코쿠 방랑적 일주 (上)

경치 좋고 인심도 좋은데 길은 왜 이리 험한가

한때 삼천리자전거와 쌍벽을 이룬 코렉스스포츠의 대표를 지낸 김태진 씨는 3년제인 ‘도쿄 사이클 디자인 전문학교’에서 프레임 빌딩과 미캐닉 과정을 배우고 있다. 3월초 봄방학을 맞아 자전거로 3주일에 걸쳐 시코쿠를 일주했다. 좌충우돌 그의 시코쿠 일주기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시코쿠 해안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백사장과 바위섬, 태평양의 청정 파도가 어우러지는 해변이 곳곳에 숨어 있다


기다리던 봄방학이다. 여기는 한국과 달리 봄방학이 2월 중순에 시작해 3월 말까지 45일간이나 된다. 일본에 온 첫해 여름에 후지산 정상에 올라 일출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은 그 후 다짐이 되고 그것은 다시 또 하나의 ‘꿈’으로 굳혀졌다. 바로 자전거로 ‘일본 열도 일주’였다.

먼저 큐슈는 그전에 왔던 경험이 있다. 작년 봄방학 때는 오키나와를 시작으로 여름방학때는 16일간 홋카이도를 혼자서 달려봤다. 이번 봄에는 시코쿠다. 지난겨울 한국에 갔을 때 자전거도 좀 더 가볍고 튼튼한 놈으로 가져왔다. 저번에 1박2일로 치바현에서 시험 여행을 해보니 어깨도 아프지 않고 페달링도 안정적이라 대만족이었다. 뒷 캐리어와 패니어, 클릿 신발도 챙겼다.
‘투어링 마플’ 이라는 바이커 전용 지도책도 구해서 큰 지도는 벽에 붙여 놓고 수시로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 시코쿠까지 갈 교통수단도 가장 편한 걸 찾았다. 사실 자전거를 옮기는 것이 큰 고민이었는데 도쿄에서 시코쿠까지 바로 가는 페리가 있단다. 18시간이나 걸리고 세월호의 기억도 남아 있지만 최선의 선택이다.


1일차
이동식 호텔 같은 페리

오후 4시반 출출한 배를 라면으로 채우고 집을 나선다. 어제까지 아무일 없던 하늘은 오늘따라 바빠졌다. 천둥 벼락을 업은 빗방울이 바람까지 탄다. 우의를 걸치고 숙소 앞에서 당당한 척 한 컷.
히비야를 지나 쯔키지 시장 앞을 지날 때는 강풍도 한몫 거들면서 자전거가 휘청거린다.
페리 터미널 안내판을 따라 한참을 따라가서 도착했더니 여기가 아니란다. 헐!!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구글지도는 동그라미만 그리고 있고 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묻고 물어 도착하니 벌써 6시반이다. 23km 오는데 2시간이나 걸린 셈이다. 그래도 7시반 출발이라 여유는 있다.


자전거를 타고 페리 속으로 진입해 자동차 주차공간 옆에 세우니 승무원이 와서 밧줄로 묶어준다. 역시 일본이구나! 선실에 들어서니 잘 정박된 배는 미동도 없고 호텔에 들어서는 기분이다. 2층 침대로 이루어진 2등실의 침구도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반기고 있다. 넓은 로비에는 각종 자판기가 폼 잡고 서있고 샤워실, 욕탕, 영화감상실, 게임실, 휴게실과 애완견 보관소까지 있다. 내일 아침 갑판에 오르면 확 트인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으려나….
첫날, 요란한 비로 콧노래를 부를 여유는 없었지만 비를 좋아하는 취향을 알아보시는 위의 분께 감사드리면서 출렁이는 밤배에 몸을 맡긴다. 쿠~~울 쿨^^

페리의 차량 적재칸에 자전거를 두니 흔들리지 않게 묶어준다
도쿄~도쿠시마 페리의 독립된 형태의 2층 침대칸
빗속에 숙소를 출발하며



2일차
시골 무인역에서 하룻밤

배의 게으른(?) 파도타기에 흔들침대의 아기처럼 새끈새끈 자고 눈을 떠보니 주변이 훤하다. 일출은 이미 틀린 것이다.
배의 움직임에 따라 자동적으로 물결이 이는 따스한 탕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보는 바다경치는 특별하다. 육지는 지척으로 보이고 시퍼런 바다의 흰 파도가 눈인양 겨울의 끝자락으로 보인다.
오후 1시30분에 도쿠시마(德島) 항에 도착한단다. 장장 18시간을 쉬지 않고 데려다준 페리가 고맙기만 하다.
너무나 편안한 잠자리와 각종 편의시설 그리고 자전거 운반 등 모든 게 기대 이상이라 흡족하다. 그러나 전날 빗속 라이딩으로 바지와 신발은 아직도 축축하다. 배안에서 짐을 정리해 그대로 자전거에 올라타서 자동차를 따라 나가면 바로 시코쿠다.


워싱턴 야자수가 줄지어 서서 반겨주는 도쿠시마시는 이국적인 풍경을 중앙에 흐르는 강물에 담고 파란 하늘에 비추고 있다. 아난(阿南) 시까지 시원한 4차선 도로인 55번 국도는 친절하게도 넓은 보행로까지 있는 평지여서 그야말로 자전거 가 스스로 앞서 나간다. 화창한 날씨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하지만 이내 도로는 좁아지고 오르막은 길고 내리막은 잠깐이다. 급기야는 25번 지방도에 들어서니 이정표는 사라지고 인적은 드물고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 여긴가 저긴가 겨우 방향을 잡아 헐레벌떡 촌락에 도착해보니 유키(由岐)라는 조그만 포구였다. 컴컴하지만 아직 초저녁인데도 그 흔한 까마귀조차 보이지 않는다.           
슬금슬금 돌다보니 왠지 할머니 혼자 하실 것 같은 허름한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예상은 약간 빗나갔지만 주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멀뚱 쳐다본다. 추천해주는 메뉴가 우동이란다. 우동에 밥을 "팍" 말아서 훌훌 털어 넣었다. 물론 보물 같은 단무지는 몇 조각으로 나누어 먹고…. 옆 좌석의 동네 청년들은 한 친구의 뻥이 가득한 방어 낚시 얘기에 입을 헤 벌리고 있다.


이 동네에는 마땅히 머무를 수 있는 숙소가 없단다. 아까 오면서 봐 두었던 유키역으로 갔다. 작년 홋카이도 여행 때의 경험상 이럴 때는 기차역이 가장 안전하다. 여기는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이고 시간표를 보니 10시가 막차다.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콘센트를 찾아 휴대폰을 충전하며 의자 2개를 정렬해 야전침대를 만들면 끝이다. 그러나 얇은 침낭은 울퉁불퉁한 통나무의 근육을 커버하기에는 너무나 나약했다. 그리고 낮에는 그렇게 부드럽던 바람이 이제는 마귀할멈처럼 쇠갈퀴로 온몸을 긁어대고 있다.
관리가 허술한 시골역의 알루미늄 섀시 문들은 태평양을 건너온 거친 바람에 밤새 울어대고 있다. 그래 나도 울고 싶다. 같이 울자꾸나… ㅠㅠ

“깨끗한 지구를 위해 페리를 타자!” 문구 아래 일본 전역의 주요 페리 구간이 표시되어 있다
시골 무인역에서 바람소리와 더불어 하룻밤을 보냈다
필자가 타고 온 대형 페리
시코쿠 동해안을 지나는 55번 국도. 길가에 자전거도로가 잘 나 있다
바다와 강을 끼고 있어 물이 풍부한 도쿠시마 시내 풍경
우동과 함께 간단히 떼운 저녁
드디어 도쿠시마에 상륙.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3일차
금숙이와 같이 와야 했는데…

6시 첫차가 오기 전에 주섬주섬 정리 중에 바지런한 할머니가 대합실로 들어선다. 대충 인사만 하고 빠져나와 곧바로 25번 지방도를 따라간다. 어촌은 새벽부터 바쁘다. 그물 챙기고 분리수거하고…. 큰소리로 “오하요 고자이마스!”하며 인사를 건넨다.
길은 호젓한 1차로로 접어들어 뱀처럼 산허리를 감고 휘젓는다. 등 뒤에 있던 햇님이 어느새 앞에서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노릇노릇한 산대숲을 뒤에서 묵묵히 떠받치고 있는 늘씬한 삼나무들 그리고 벌써 한 여름인양 손바닥을 쭈욱 편 고사리밭. 매일 맥주로 닦아주지 않아도 윤이 반들반들한 쪽동백과 시냇물은 졸졸 오케스트라로 분주한 가운데 오늘의 주인공은 행복의 페달링을 하고 있다. 이런 내 기분을 아는지 벌써 도쿄를 비롯한 각지역에서 ‘아름다운 길’이라고 팻말을 줄지어 세워놓았다.
이렇게 환상적인 코스는 같이 와야 되는데… 금숙이와 꼭 같이 와야 되는데… 땅을 친다. 열두번을….


사실 출발하기 전에 집사람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내 페이스에 지레 겁을 잡수셨고 혼자서 놀기 좋아하는 나를 배려해서 거절했는데…. 아무튼 다음엔 꼭 같이 하고 말거야!!!
만유인력 때문인지 때가 되서 그런지 동백꽃이 한 움큼 떨어져 있다. 그리고 지들끼리 모여서 약수물에서 목욕하고 있다. 이른바 유유상종이라.
  정말 혼자 달리기엔 아까운 10km 환상의 코스는 히와사(日和佐)에서 끝이 났으나 태평양 해안을 달리면서도 그 느낌은 계속되고 있다. 마침 부부암이 우뚝 솟아 있길래 속죄하는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하고 굵은 동아줄로 묶어 놓았다. 칭칭 또 칭칭!!
드디어 시코쿠의 동남단 무로토미사키(室戶岬)에 이르니 빗방울이 걸음을 재촉한다. 어제는 비록 잠자리는 불편했지만 103km의 시원한 라이딩과 함께 호젓했던 그 길이 아직도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아름다운 길’로 인정한다는 선정패가 도열해 있다
도중에 부부암을 만나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다음에는 금숙이와 와야지…
낙엽이 그대로 남은 호젓한 산길
시골 단선철도를 달리는 소박한 열차
동백꽃이 샘물에서 목욕하는 정갈한 모습

 


4일차
묘령의 스페인 여인

어제 늦은 오후부터 시작한 비는 지금까지도 내리고 있다. 그래서 비가 선물한 휴식을 온전히 즐기면서 여기 료칸에서 하룻밤 더 묵기로 했다. 하기사 가다가 중간에 비를 만나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
료칸 방이 너무 커서 썰렁한 느낌이지만 다다미에 폭신한 이부자리 덕분에 피로가 확 풀렸다. 그리고 내친김에 전문학교 1학년 마친 소감문을 완성했다. 완성 기념으로 부둣가의 일식집에 가서 태평양 곰치 정식을 먹고는 비에도 젖지 않는 바다를 본다. 근처에 있는 신쇼지(津照寺)라는 절에 들러니 천둥번개가 치는 비람에도 순례객의 모습이 보인다. 도쿄에는 절보다는 신사가 더 많은데 이곳 시코쿠는 진언종 88개 사찰을 둘러보는 ‘시코쿠 헨로(四國遍路)’라는 순례길이 있다. 도쿠시마의 료젠지(靈山寺)를 시작으로 시코쿠 전체의 88개 절을 돌아 다시 료젠지로 돌아오는데 약 1400km나 된다.


어저께 만났던 일본인 친구들도 도쿠시마 23개 사찰을 지나왔으며 약 60일 계획으로 왔다고 한다. 그런데 한 녀석이 내 자전거가 카본이라서 비쌀 것 같다고… 이놈은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듯.
아무튼 삿갓에 흰 도포차림에 나무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순례객이 심심찮게 보인다. 저이들에 비하면 자전거가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감사한다. 그리고 비록 길거리에서의 짧은 만남은 내내 미소를 머금게 한다.
혼자만의 여행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분명 사막의 오아시스만큼 반갑고 활력이 된다. 어제 아침 라이딩 중 정자가 보이길래 갔더니 여자 혼자 김밥을 먹고 있다. 금발에 벽안이라 금세 외국인임을 알 수 있었다. 작년 9월에 스페인에서 왔고 지금 교토에 살면서 일본어 학원에서 공부중이며 정치학을 전공하고 싶단다. 나이는 20살이고 미인이다. 이름은 ‘마르’라고 바다라는 뜻이란다. 무엇보다 비록 초보들이지만 일본어가 통해서 정말 좋았다. 게다가 이곳이 바로 ‘연인곶’이라니… 아서라, 니 꼬라지를 알라! 같이 찍은 사진을 보니 매끈한 대나무 옆에 울퉁불퉁 소나무 한그루가…. 청춘을 돌려 도!!
내일부터는 날씨가 좋아 일주일 내내 햇님도 볼 수 있고 기온도 올라간다니 두근거리는 내일이 얼른 왔으면…. 빨리 자면 후딱 오시려나!

곰치정식
료칸정식
료칸의 다다미방
시코쿠 순례길(오헨로) 순례자의 교통안전을 기원하는 포스터
시코쿠 순례길은 88개의 사찰을 도는 약 1400km의 여정이다

 

5일차
종이지도를 보는 까닭

우리나라는 ‘빨리빨리 공화국’이다.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우는 단어가 ‘빨리빨리’라고 한다. 물론 이 ‘빨리빨리’ 덕분에 고속성장을 이룰 수 있었고 내가 지금 이렇게 일본 여행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조건 빠른 것은 ‘좋은 것’이고 느린 것은 ‘이해불가’이고 느린 사람은 ‘맹구’ 취급을 당한다.
뭘 물어보던 후배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뭘 꺼내서 꼼지락꼼지락하더니 “에이! 선배님 그게 아닌데요. 뭘.” 그럼 진작에 네⃝⃝라는 놈한테 물어보지 나한테 물어보고 그래. 예전에 목소리가 커서 우기면 무조건 이기던 친구가 요즘은 한 구석에 콕하고 찌그러져 있다. 손가락 빠른 놈이 나타나고부터….


빨라서 편리해진 것도 분명 많지만 잃어버린 것도 없진 않을 터. 18번 노래도 화면을 봐야 끝까지 갈 수 있고 집사람 전화번호는 1번이고…. 그러나 ‘손안의 천하’를 어쩌다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배터리 방전된 로보트처럼 바로 ‘멈춤’이다. 그래서 나는 이 빠른 ‘검색의 시대’가 싫다. 여행을 갈 때도 종이지도를 보고 손가락으로 대충 거리를 재보고 숙소도 그날그날 근처에서 찾다보면 헤매기 일쑤다. 그래도 혼자만의 불편한 여행을 즐긴다. 이걸 잘 알고 따라 붙지 않은 우리 집사람은 역시 현명하고 배려심(?)이 깊다.
오늘 발견한 자전거전용도로도 구글지도에서라면 간단히 찾을 수 있겠지만 정말 뜻밖에 찾았기에 ‘감개무량’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처럼 요란한 안내판도 없어서 있는 것조차 알 수 없었는데 비록 20km 정도의 짧은 구간에 그것도 간간이 끊어져서 좀 헤매긴 했지만 시끄러운 네발괴물과 함께하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태평양 바라기의 푸르른 소나무숲. 일찍 꽃망울을 터뜨린 벚나무들 사이로 난 호젓한 길은 ‘사색의 통로’로 연결된다. 터널을 지나기도 하고 전망대에 올라 파란 바다를 보면서 밀감도 맛보고 길옆 오두막에서 15년간 종이공예에 빠진 할머니가 타준 커피도 한잔하고…. 저 높은 곳에서 솔개처럼 길이 훤히 보인다면 일순간은 좋겠지만 안 보여서 못 봐서 더 안타까운 애달픔 즉 ‘호기심’이라는 동기부여가 없다면 인생 살아가는데 뭔 재미가 있고 의미가 있을까.
자, 달리자. 달려가 보자! 저 언덕을 넘어가면 어떤 풍경이 보일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정말 기대되고 궁금하다! 해는 서산에 떨어지고 갈 길은 멀고 콧물은 자꾸 흘러도….

자전거도로 코스 안내도
자전거도로를 별도로 만든 전망대 진입로
우연히 만난 고치현 남부의 해안 자전거도로

 


6일차
올라도 올라도 오르막뿐

여유를 부리고 있다. 오늘은 해안선을 따라서 60km 정도만 달리면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호텔식당에서 쌀밥 아침을 먹고, 커피에 땅콩 두 알을 곁들인 여사원의 센스가 예뻐 귤을 하나 건넸더니 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 온다. 베풀면 바로 반응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이다. ‘메아리’ 문화?
오사카성을 빼닮은 고치성을 걸어서 천천히 둘러봤다. 유독 전쟁이 많았다는 일본은 지역마다 옛 성의 모습이 남아 있다. 시내로 들어서니 노선마다 색깔이 다른 노면전차들이 한가롭게 달리고 있다. 노면전차 하나에 도시의 풍경과 이미지가 달라 보인다. 한결 친근감 있고 사람들도 여유로워 보인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강을 따라 흐르다 보니 바다와 만난다. 여기서부터 해안선을 따라가는 14번 국도 쿠로시오(학생 때 들어본 듯) 라인이다.
방파제에서 세월을 낚고 있는 강태공의 망태도 들어보고, 강하구의 낯선 풍경은 일본식 장어잡이란다. 낚시 얘기에 솔깃해 그냥 여기서 여장을 풀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아무튼 USA(우사라는 지명)의 무지개 같은 구름다리를 건널 때만 해도 따스한 햇볕에 반짝이는 바다, 살랑거리는 바람… 그야말로 이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약간 돌아가긴 하지만 지도에서 해안선이라 택했는데 평탄하기 그지없는 해남 땅끝마을 길을 떠올렸지만 이건 강원도 골짜기다. 6%, 7%에서 9%의 오르막 경사. 올라가서 돌다보면 또 오르막. 헉헉. 정상까지 몇km인지 안내판도 없다. 그저 몇% 밖에. 6%라면 막걸리 도수와 같아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게 계속되면 정말 미치고 폴짝 뛴다. 서울~부산 간 깔딱고개 이화령과 소조령을 합쳐 놓았다.
이렇게 숨이 넘어갈듯 힘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양념갈비, 관세음보살, 그냥 어금니 꽉 물고… 아니다, 이때야 말로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다정한 친구와 걸으면서 얘기하듯이 그냥 편하게 느긋하게. 전망대에서 한컷 찍고 쌩쌩 내리막을 예상했는데 또 오르막이다. 작열하는 시코쿠의 뒤끝에 오열한다.


드디어 도착한 스사키(須崎)에서는 그냥 아무데나 눕고 싶다. 역 주변에 오토바이가 한 대 서더니 운전자가 헬멧을 벗는데 할머니다. 이왕이면 온천에서 자고 싶다고 도움을 청 했더니 닳고 닳은 목거리 폴더폰으로 전화를 한다. 잠시 뒤 다마스 같은 미니밴에서 머리가 하얀 영감님이 뒷문을 열고는 자전거를 실으란다.
영감님은 이곳 출신으로 75세에도 택시 운전을 하신단다. 물론 오늘은 휴일이고. 10여km 정도 가자 산 중턱에 온천이 있다. 고마워서 5000엔을 건네니 손사래를 친다. 과자나 과일도 없어서 표현할 건 돈밖에 없는데 안 받으시니 난 돈밖에 없는 거렁뱅이였다.
다다미에 폭신한 이불을 떠올리며 온천 프론트로 갔다. 아뿔싸, 방이 이미 다 차버렸단다. 한국에서 왔다, 자전거로 이 언덕을 넘어왔다 ‘불쌍 모드’를 해도 안 통한다. 그래도 온천은 하고 가야지. 노천탕 속에 있어도 복잡한 머리속은 씻겨지지 않는다. 건너편엔 흐드러진 동백이 보이고 벚꽃도 환히 웃고 있다. 걱정하지 말란다. 저 벚꽃이 바로 일찍 피기로 유명한 ‘유키와리사쿠라’란다. 눈을 헤집고 나온 벚꽃? 설중매하고 사촌인가?
다시 스사키역 주변으로 왔다. 일단 식당에 들어가서 생맥주 한잔과 야키니쿠정식을 시켰다. 마침 야키니쿠는 우리의 제육볶음과 비슷해서 밥 한 그릇을 더 시켜 그 국물에 싹싹 비벼서 뚝딱 해치웠다. 주인이 근처 여관을 알려준다.
그리고 지금은 넓은 침대에서 제일 고생한 허벅지를 두들기면서 꿈나라로 가고 있다.

고치성의 위용
온천까지 태워준 할아버지
고치시내를 달리는 노면전차
고치시 남쪽의 오사(宇佐) 대교
눈을 뚫고 가장 먼저 핀다는 ‘유키와리사쿠라’
일본식 제육볶음

 

7일차
대나무가 사군자인 이유, 소나무는 왜 탈락했나

오늘 시만토(四万十) 시로 가는 길도 역시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르막으로 신고한다. 어제는 그래도 간혹 내리막도 양념처럼 있었는데. 고개를 들기가 부담이다. 쳐다보면 아득하고 가물가물한 산속 오르막이다. 계곡이 깊어 터널을 나오면 바로 다리로 이어진다. 새로 생긴 자동차전용도로가 발가락 사이로 보인다. 영동고속도로의 제천구간이 생각난다. 일요일이라 바이커들이 꽁지를 물고 달린다. 작년 홋카이도에서의 장거리 바이커들은 여유 있게 손이라도 흔들어 주는, 진정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로맨티스트였는데 이곳은 그냥 속도를 내고 커브를 즐기는 노면티스트(?) 광란장이다.
드디어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짜릿하고 춥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한정 없이 추락하면 또 얼마나 센 놈이 기다릴지 걱정된다. 아니다. 그런 걱정은 그때 가서 하자. 카르페 디엠! 지금 신나면 되지!!
남쪽나라 시코쿠에는 대나무가 울창하다. 맹종죽 같은 굵은 왕대, 낚싯대 만들기 좋은 노란 산대, 곰방대용 조릿대 등. 대나무가 소위 말하는 ‘사군자’에 랭크된 이유는 사시사철 푸르름과 함께 텅 비운 마음으로 끊고 맺는 마디를 가져서가 아닐까!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인생 뭐 있어! 그냥 쭈~욱 가는 거지! 매듭은 무슨!" 하다가 망가진 인생 여럿 봐왔다. 어떤 마라톤 우승자는 ”저는 42.195km를 달린 게 아니고 5km씩 끊어서 열심히 달리다보니….”라고 했다. 우리가 달력을 만든 것도 일일점검, 월말결산, 연말총결산 등의 매듭을 잘 하기 위한 지혜가 아닐까!!
여행 일주일이다. 장기간의 여행인 만큼 역시 매듭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물론 볼 것, 느낄 것 수두룩한 여행에 신발끈만 묶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도 주일에 한번씩은 체크하기로 한다. 먼저 체력안배. 아직은 날씨가 쌀쌀하니 야영은 삼가고 언덕이 많은 것을 감안해 하루 100km 이내만 주행하며, 영양보충을 겸해 다양한 음식을 체험한다. 청결유지는  찬스가 생길 때 세탁한다. 그리고 중요한 자전거 점검과 주간 날씨정보도 확인하고.
둘째 여행목적 수행. 계획 일정과 결과를 비교한다. 인사하자, 웃자, 대화하자(작업용이 절대 아님^^). 자세히 보자,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보자. 느낀 것들을 정리하고 기록해보자.
마지막으로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자. 쓸데 없는 걱정, 그냥 집어온 팜플렛 등 이렇게 적어보니 24시간도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결국 PDCA, 계획하고 실행하고 체크해서 수정하는. 그래! 평소에는 그저 마음가는대로 해보자. 이런 건 일주일에 딱 한번만.
PS : 동장군의 칼추위에 맞서 늘 푸른 소나무는 왜 사군자에 선정되지 못했을까? 때론 늠름한 자세로, 때론 요염한(?) 자태의 소나무를 개인적으론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이 소나무는 혼자 너무 잘나서 탈이다. 소나무는 송진을 떨어뜨려 밑에 다른 나무가 자라지 못하게 한다. 이런 모습이 후학을 키우지 않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즉 덕이 없는 모습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소나무는 그늘이 생기면 잎이 노랗게 변하면서 서서히 죽어간다. 실제로 참나무는 소나무보다 성장속도가 훨씬 빨라 순식간에 소나무를 제압해버린다. 

머리에 제비 똥 떨어지는 것을 조심하라는 지나친(?)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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