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섬 풍경 속 하나의 점이 되어

혼자 다니는 단독행이 미덕이 되는 시절이다. 한국인이 익숙하지 않은 이 ‘단독행’으로 만나는 섬 여행은 어떤 매력과 의미가 있을까. 타의반 자의반으로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여행 홀로서기’의 개념과 방법을 모색해 본다. 첫 번째 추천 코스는 1004섬 자전거길 중 최북단에 있는 임자도와 그 이웃의 증도다

 

한국인에게 ‘우리’는 일종의 본성이자 기질이고 삶의 방식이었다. 우리 나라, 우리 학교, 우리 가족 심지어는 외국인이 듣고 기절초풍 하는 ‘우리 아내’ ‘우리 남편’이라는 말도 자연스럽다. 단순히 문법적인 특성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어떤 본유관념으로 자리 잡지 않으면 불가능한 언어습관이다.
2000년 간 정착 농경사회였으니 끈끈한 공동체는 생존의 조건이기도 했다. 서로 모여 살면서 도와주지 않으면 농경이 힘들기 때문이다. 품앗이, 향약, 계 등등 이런 자생적 공동체는 지금도 동창회, 향우회, 동호회 등등의 수많은 ‘울타리’ 방식으로 존재하고, 최첨단 IT시대에 걸맞게 친구맺기, 팔로워, 구독자 같은 방식으로 열렬히 추구된다. 

홀로서기 여행 
코로나 팬데믹이 한국인에게 특히 충격적인 것은, 바이러스 그 자체의 공포 외에도 그 여파로 인해 이런 ‘우리’가 파괴되는데 있다. 동시에 ‘우리’의 파탄을 통해서 ‘개인’을 새롭게 발견하고 또 받아들이고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은 모래알 같은 이기적 각자가 아니라 자유롭게 행동하되 무한 책임을 지는 근대적 각성을 거친 개별자다. 
여행은 외면으로 보이는 풍경과 특별한 사물을 접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런 자극과 교류를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돌아보며 내면이 성장하고 확장되는 경험이기도 하다. 쾌락을 위주로 하는 ‘관광’과 자아를 재조명하는 ‘여행’의 차별성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이제 혼자 떠나는 여행은 그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내면과 세계를 동시에 통찰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특히 ‘단절’을 특성으로 하는 섬 여행은 이런 고독한 여행의 깊이를 더해준다. 
혼자가 되어 현장에 서면 주변과 완벽히 1대 1로 마주하는 느낌을 받는다. 단체로 행렬을 따라 움직이다보면 어디를 어떤 길로 다녀왔는지 기억에 잘 남지 않고, ‘들뜸 과잉’으로 찍은 명소의 ‘인증샷’만이 남기 일쑤다. 사람도 그렇고 자연과 세상도 그룹으로 대면해서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아주 가볍고 뻔한 최대공약수 밖에는 나눌 수 없다. 오히려 현장과의 만남보다 함께 하는 ‘우리’끼리의 친분, 교감을 더 중시하는 경우가 많아서, 여행은 사교를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고독력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앞으로는 ‘우리’와 별개로 나만의 시간을 충만하게 가질 수 있는 역량이 대단히 중요해졌다. 고령화와 개인주의에서 앞서가고 있는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고독력(孤獨力)’이라는 말을 쓰고 있고 관련 책도 많이 나와 있다. 쉽게 말해서 혼자서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고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능력에 따라 특히 인생 후반기에서 삶의 질과 깊이가 결정된다고한다. 그렇다고 외톨이로 지내자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고독력’을 갖추면 혼자라도 좋고 같이 해도 좋은, 폭 넓은 정서적 스펙트럼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혼자 남겨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 일본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리에서 소외되는 ‘따돌림’인데 이 공포를 넘어서면 한결 자유로워지고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팬데믹 시대에 스스로든, 남에게든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 ‘홀로서기 여행’을 시작해보자. 첫 번째 추천지는 국내최대의 섬 천국, 신안의 1004섬 자전거길이다. 그래도 우리는 두바퀴와 동행하니 고독은 하되 외롭지는 않다. 혼자 도보로 여행할 경우 외로움으로 위축되기 쉽지만 자전거를 타면 적당한 속도와 큰 덩치로 ‘동행’의 든든함을 주기에 고독력을 키우기에 아주 좋다. 남들이 보기에도 도보로 홀로 다니면 외롭고 어딘가 불안해 보이지만, 자전거로 혼자 여행하면 멋있고 자유로워 보인다. 

임자도의 섬 운명   
신안의 1004섬 중에 형태적으로 가장 특이한 곳은 비금도일 것이다. 먼 바다를 향해 날개를 펼친 새 모양으로 섬 이름 비금(飛禽)도 ‘날아가는 새’라는 뜻이다. 하지만 깨가 많이 나서 깨(荏子) 섬이 된 임자도 역시 날개를 활짝 펼친 모습이다. 비금도의 모양이 어딘가 맹금류인 독수리를 닮아 박력이 있다면, 임자도는 긴 날개를 천천히 펄럭이는 두루미나 황새를 연상케 해서 우아하다. 
육지를 벗어나 바다로 날아가려는 것만 같은 임자도는 이제 곧 연륙교가 완공되어 육지에 영원히 붙들리는 신세가 된다. 임자대교는 오는 3월 개통 예정으로 해상교량 2개소 1.92km, 접속도로 3.07km를 포함해 4.99km의 연륙도로가 새로 생겨난다. 
배를 타고 들어가는 진짜 섬 임자도의 운명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임자대교가 개통되면 천사대교 개통 후 자은-암태-팔금-안좌의 격변이 재연될 것이 분명하다. 1004섬 중 최북단에 있어 수도권에서는 접근이 더 쉽기도 하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임자도의 관문인 진리항은 쓸쓸한 포구로 남는 대신 한산하던 진리마을은 밀려드는 외지인과 차량들로 북새통을 겪을 것이다. 그래도 기분 좋고 활기 넘치는 북새통 아닐까.            

대광해변 하나만으로도 
임자도 북쪽으로 활짝 펼쳐진 날갯죽지에는 흔히 30리 해변으로 불리는 대광해수욕장이 길게 이어진다. 내가 처음 임자도에 끌린 것도 이 장대하고 적막한 해변 때문이었다. 신안 1004섬에 그 많은 해변 중에서 가장 길고 웅장하며, 전국을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한 백사장은 특별한 매혹이다. 
언제 가도 무인지경의 이 거대한 해변은 백사장이 단단해서 두바퀴 애마와 함께 바다를 지척에서 체험할 수 있다. 거칠고 위협적인 동해와 달리 이곳의 파도는 부드럽고 얕아서 바퀴를 살짝 적시며 달리는 기분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다. 해변 승마가 재미와 분위기에서 최고의 낭만이라지만 같은 안장인 두바퀴 위에서도 말이 부럽지 않다. 달리는 동안 누구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풍경의 주인이 된다. 
해변 남단에는 봄이면 형형색색의 꽃이 광대한 화원을 이루는 튤립공원이 있어 해변의 정취와 절경에 농후한 색감을 더해준다. 

전장포와 해안임도    
임자도의 들판은 온통 대파밭이다. 깨밭은 크게 준 대신 대파 재배로 주민들은 신안에서도 부농을 일궈냈다. 시즌이 아니라도 섬 내부로 들어서면 바람결에 스며있는 대파 향을 은은하게 느낄 수 있다. 초록빛 대파밭은 초원 못지않은 서정풍경이다. 
최북단에 있는 전장포항은 새우젓으로 유명하고 어딘가 극적인 분위기다. 새우젓을 숙성시킨 동굴도 남아 있고 새우잡이 어민들의 애환을 그린 ‘전장포아리랑’ 비석도 포구에 서 있다. 외지고 낯선 포구의 비릿한 내음과 갯벌에 기우뚱 얹힌 쪽배에서 기분 좋은 일탈감과 여수가 엄습한다. 
섬 남단에는 큼직한 산들이 모여 있다. 이 산줄기를 돌아나가는 임도는 바다와 먼 섬의 풍경을 저 아래로 내려다보는 장쾌한 경관로다. 해안임도는 산과 바다를 동시에 감각한다는 데서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짜장과 짬뽕 사이에서 고민하듯 산과 바다 중에서 선택장애를 겪는다면 해안임도는 ‘짜장반 짬뽕반’의 멋진 타협이자 조화경이다. 

임자도 코스 48km
추천코스 : 임자 진리항 ~ 전장포항·새우젓토굴 ~ 대광해수욕장 ~ 하우리 임도 ~ 대둔산임도 ~ 어머리해수욕장·용난굴 ~ 진리항
인증지점 : 3곳 (전장포항, 대광해수욕장, 어머리해수욕장·용난굴)
이동거리 : 48 ㎞

홀로여행 tip
임자도와 증도를 함께 돌아보려면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임자도와 증도 중간의 지도읍으로 가야 한다. 서울센트럴시티 터미널에서 하루 2번 우등고속버스가 운행한다(07:30, 16:20). 광주나 목포로 가서 지도읍 행 시외버스를 타도 된다(광주 약 1시간 간격, 목포 약 2시간 간격). 지도읍에서 임자도행 배를 탈 수 있는 점암선착장까지는 7km, 증도까지는 8km로 라이딩으도 무리가 없다. 점암선착장에서 임자도 가는 배는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3월 임자대교 개통 후에는 배를 타지 않고 자전거나 자동차로 바로 갈 수 있다. 

맛집 
▗ 부두식당(061-275-2566) : 임자면 진리 306-2 / 백반 
▗ 털보네식당(061-262-0010) : 임자면 대광해수욕장길 174 / 백반, 간재미회무침  
▗ 닭사랑(061-275-3160) : 임자면 임자서길 43 / 한약 백숙 
▗ 편안한횟집(061-275-2828) : 임자면 대기리 2523-12 / 생선회

숙박
▗ 임자펜션(061-262-3388) : 임자면 독우길 48-12 (대광해변) 
▗ 은동통나무집(061-262-8562) : 임자면 조희룡길 241 (은동해변) 

 

 

증도 코스 48km
추천코스 : 증도관광안내소 ~ 방축리해안도로 ~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비(인증) ~ 짱뚱어다리(인증) ~ 한반도해송숲 ~ 증도갯벌생태공원 ~ 왕바위선착장 ~ 화도노두길(인증) ~ 태평염전(인증) ~ 증도관광안내소
인증지점 : 인증센터 4곳
이동거리 : 48 ㎞

 

증도에 빠지다 
이 땅의 큰 섬이자 명소이기도 한 제주도, 울릉도, 거제도, 남해도, 진도, 강화도, 완도 정도를 제외하고 가장 인상적이고 특별한 섬을 5곳 꼽는다면 증도를 빼먹을 수 없다. 2007년 국내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후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느림과 한적함을 내세운 ‘슬로시티’가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놀라운 자연 · 문화 자원으로 갈수록 매혹을 더하고 있다. 광대한 송림과 이국적인 분위기의 우전해변, 국내최대의 태평염전, ‘보물선’으로 알려진 원나라 무역선 발굴해역 등 신비와 매력이 가득하다. 
이 다채로운 섬을 하루에 보고자 한다면 주마간산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슬로시티 이름처럼 적어도 하룻밤은 머물면서 천천히 하나하나 깊이 있게 만나야 한다. 
우전해변에서 노을을 보려면 이미 해가 질 것이고, 화도 노두길을 지나고 싶다면 하루 두 번뿐인 물때를 맞춰야 한다. 시간에 쫓긴다면 아예 증도는 오지 말아야 한다.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과 짜증이 정신건강을 크게 해칠테니까. 

맛집 
▗ 짱뚱이네식당(061-275-1999) : 증도면 우전길 17-12 / 짱뚱어탕, 장어탕 
▗ 함초식당(061-261-2277) : 증도면 지도증도로 1053-11 / 각종 회, 탕, 경양식  
▗ 고향식당(061-271-7533) : 증도면 문준경길 165 / 짱뚱어탕

숙박
▗ 엘도라도리조트(061-275-0300) : 증도면 지도증도로 1766-15 (우전해변) 
▗ 증도가온26(1522-4114) : 증도면 지도증도로 1712 (우전해변)     
▗ 증도민박협의회 : www.j-minb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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