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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자전거 여행 - 금산 깊은 골 돌아나가면 갈매기 춤추는 미조항남해 금산~미조항

금산 깊은 골 돌아나가면 갈매기 춤추는 미조항
남해 금산~미조항


이름 그대로 남쪽 바다에 있는 섬 남해도, 그 남해도에서도 가장 남쪽에 금산(701m)이 있다. 청장 바다에서 곧장 솟구친 몸체는 700m급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위풍당당하다. 금산 동쪽에 말굽처럼 깊고 길게 패인 봉화리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다채로운 산악코스를 누빈다. 중심에는 편백숲이 울창한 자연휴양림이 있고 섬 최남단의 미조항도 함께 돌아볼 수 있다
 

가마봉 북쪽을 돌아가는 산중턱 길의 놀라운 조망. 해안절벽을 이룬 남해도 동해안이 북쪽으로 구비치고, 그 뒤편으로 멀리 삼천포항이 희미하다

 

평일 저녁 남해 독일마을 거리는 스산했다.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건 휴일이나 여름 시즌뿐이란다. 그때도 저녁 8시만 되면 대부분의 가게는 철시하고 아름답고 세련된 유럽풍 마을은 진짜 독일처럼 적막만이 감도는 세트장으로 탈색된다. 역시 생계로 만들어진 마을이 아니다. 


남해도로 오면서 일부러 숙소를 독일마을로 잡았는데 봄이 아니라 늦가을 같은 황량함만이 감도는 거리에서 기분은 움츠러들고 괜스레 옷깃을 세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문을 연 가게에서 맛본 독일식 수제 소시지와 독일 생맥주 맛은 정말 훌륭했다. 입안에 감도는 그 특별한 풍미만으로도 순간 유럽으로 공간이동을 한 것만 같다. 오래전 독일 여행의 기억마저 새록새록 되살아나기까지 했다. 

개인적으로 독일은 미국, 일본과 함께 경외(敬畏)하는 나라다. 좋아한다기보다 그 저력과 국민성이 존경스럽고 때로는 두려워지는 그런 나라…. 그런데 희한하게도 독일마을을 시작으로 미국마을도 남해에 조성되었다. 서구에서 살다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해변 마을은 노년을 보내기에 최고의 장소로 여겨지기 때문일까. 오래전 배를 타고 탈북한 일가족이 남해에 정착했다는 소식도 새삼 오버랩된다. 보통명사 ‘남해’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동경의 바다라면, 고유명사 ‘남해도’는 실제로 정착하고 싶은 현실의 이상향이랄까.
3월말 어느 날, 햇살이 뉘엿할 때 우리 일행이 독일마을에 들어선 것은 이웃한 금산(701m)과 편백자연휴양림 일대의 산악코스를 답사하기 위해서다.

산길은 해발 400m까지 올라간다. 뒤편으로 앙상한 숲을 뚫고 순천바위가 돌출하고 음지에는 잔설이 하얗다
미조항 가는 길목의 송정솔바람 해변

 

남해에 아직 잔설이?
가장 남쪽으로 내려간 것은 조금이라도 빨리 봄기운을 느끼고 싶은 성급함의 발로였다. 그래서 남해도를 택했고, 남해도 중에서도 가장 남쪽 금산 일대로 코스를 잡았다. 이름만으로도 애틋한 사연이 연상되는 최남단의 포구, 미조항도 들릴 것이다.
금산 정상 직전에 있는 보리암 참배객을 위해 도로가 나 있지만 자전거는 통행금지여서 우리는 금산 동쪽의 봉화리 산길을 일주할 것이다. 편백휴양림을 중심으로 산중턱에 순환 임도가 주능선을 넘나들며 산과 바다를 배경지로 아우른다.
편백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하면 원점순환코스로 적당한데, 우리는 숙소가 있는 독일마을에서 라이딩을 시작해 휴양림에서 일정을 마칠 계획이다.    


봉화리 골짜기는 말굽 형태로 오목하고 길이가 6km에 이를 정도로 길게 패여 있다. 서쪽은 금산의 동봉에 해당하는 666m봉과 순천바위 줄기가, 동쪽은 가마봉(414m) 능선이 마주보며 감싼 형국이다. 산길의 초입은 봉화리 내산마을 버스정류장 맞은편 금암로370번길에서 시작된다(독일마을에서 5.4km). 마을을 벗어나면 길은 경사가 급해지면서 훌쩍 고도를 높여 해발 300m 선까지 이르다가 보리암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고개 삼거리에 이른다(내산 정류장에서 3km 지점). 순천바위 쪽으로 좌회전하면 길은 계속 하늘로 올라간다. 겨우 해발 400m를 돌파했지만 1000m급 산에 오른 듯 고도감이 대단하다. 게다가 음지에는 잔설까지 남아 있다. 이 머나먼 남쪽 바닷가에 아직 눈이 남았다니…. 섬 산의 기세는 아무래도 수치적인 높이로만 봐서는 안 될 것 같다. 

몇 구비 모퉁이를 돌아서니 높이 60~70m의 수직 단애를 이룬 순천바위가 하늘을 찌르고 외줄기 산길은 그 아래를 휘감는다. 순천바위 아래에서 5km 정도 가면 다시 삼거리다. 직진하면 편백휴양림으로 하산하고, 우회전하면 고갯마루 전망대를 거쳐 미조로 넘어간다. 전망대에는 연세가 있는 등산객 몇 분이 사과를 깎아먹으며 쉬고 있다. 우리를 보더니 “자전거로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대단하다!”고 감탄한다. “전기 모터가 달려 있어서 힘들지 않게 올라왔다”고 해명했지만 배터리 잔량을 관리하느라 어시스트 강도를 낮춰 다소 힘겨웠다. 한 분이 굳이 사과 두 쪽을 나눠주며 힘내라고 격려해준다.  

전망대 조망은 산자락에 가려 그다지 신통치 않다. 남쪽으로 천하몽돌해변 앞바다가 좁게 보이고 북쪽으로는 휴양림 일대가 골짜기로 흘러든다. 봉화리 계곡이 거의 직선이어서 멀리 사천 와룡산(799m)의 둔중한 능선이 스카이라인을 그리고 있다.

최영장군을 모신 사당 무민사에서 바라본 북미조항. 방파제 뒤로 두미도 천황산(468m)이 바다 위로 헌칠하다
독일마을의 아침. 집만 달라져도 경관의 격이 바뀐다

 


아름답다기보다… 미조항
전망대 고개에서 해안까지 3.5km의 다운힐을 신나게 내려서면 미조(彌助) 항이 지척이다. 솔밭이 운치 있는 송정솔바람해변을 지나 망산(286m)을 돌아가면 남미조항이다. 이름부터 감미롭고 지리적으로도 최남단의 외딴 포구여서 미조항 하면 어딘가 시적인 감상에 젖게 된다.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연이 어려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옛날부터 왜구가 자주 출몰해서 주민들을 괴롭혔고 임진왜란 때는 격전지였다. 이곳에서 왜구를 격퇴한 최영장군을 모신 사당 무민사(武愍祠)는 지금도 북미조항을 바라보는 언덕바지에 보존되고 있다. 

미조항은 남북 두 군데로 나뉘는데 남미조항은 어선이 정박하고 수리하는 어업기지이고, 최근에 조성된 북미조항은 관광지 분위기로 색깔이 완전히 다르다. 미조항에 들어서면서 어딘가 애잔하고 아기자기한 풍경을 기대했지만 일상의 모습만이 가득해 지나치는 여행자로서는 살짝 국외자의 소외감이 앞서고 호기심이 일지 않는다. 괜히 이름만 예쁜 포구였나. 

미조항을 돌아나온 삼거리는 3번 국도의 시발점이다. 3번 국도는 여기서 출발해 서울을 거쳐 평안북도 초산군 압록강변까지 1096km(남측 555.2km)의 한반도 종단 길이다. 동두천~의정부~성남~이천을 거쳐 가서 수도권에서도 익숙한 3번 국도가 여기 남해도 남단에서 시작해 압록강까지 이어진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하지만 갈 수 없는 북녘 길이 무슨 소용일까. 

 

한반도를 종단해 압록강까지 1096km에 이르는 3번 국도 시작점
산에서 내려다본 해안도로(3번 국도)와 마안도, 두미도의 환상곡 3중창

 


산길에서 바라보는 해안 풍경
3번 국도 시점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6km 가면 일출식당을 200m 지난 지점에서 왼쪽으로 다시 산길이 시작된다. 첫 번째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계속 고도를 높여가면 저 아래로 해안선을 따라 구비치는 3번 국도와 바다가 탁 트인다. 앞서 첫 번째 삼거리에서 편백휴양림으로 내려서기까지 약 7km의 산록구간이 이번 코스의 백미다. 쉴 틈 없이 작은 기복을 이루는 코스는 라이딩 재미를 더해주고, 시원하게 트인 조망은 눈과 마음을 씻어준다. 전망이 좋은 포인트에서는 쉬어가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만큼 경관의 스케일이 탁월하다. 

사량도, 두미도, 추도, 저 멀리는 비진도와 욕지도까지… 통영 일원의 아름다운 섬들이 대부분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시야가 좋은 것은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이 덜한 동남단의 지리적 이점도 있을 것이다.
산길에서 만나는 바다는 각별해서 서로가 더욱 두드러지게 각인된다. 산은 해수면에서 시작되어 해발(海拔)을 기준으로 삼고, 바다는 곧 산의 부재다. 이 땅의 섬들은 모두 바다 위로 머리를 드러낸 산일 뿐이다.
편백숲이 보이기 시작하면 휴양림에 거의 다 온 것이다. 경치 좋은 길가에서 마침 인부들이 나무 식재 작업을 하다 막걸리를 곁들여 간식을 들고 있다. 이런 험한 산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우리가 자신들의 작업보다 더 힘들어보였는지 측은한 눈빛으로 말을 건다. 


“좀 쉬었다 가요. 이것도 좀 같이 먹고….”
은근 편한 말투가 젊게 차려 입고 자전거를 타는 우리가 어려 보였나 보다. 이미 좋은 경치, 좋은 공기에 몸도 마음도 한껏 젊어진 건 사실 아닌가. 우리는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고, 휴양림까지 쾌속의 다운힐을 즐겼다. 편백숲 사이로 질주하는 사이, 농염한 피톤치드는 그동안 쌓인 피로를 단번에 해소해 주었다.
“산길을 50km나 달렸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은데?! 좋은 공기와 피톤치드 덕분일까요?”
“아니, 우리 지금 전기자전거 타고 있잖아요.”

 

금산 서쪽 앵강만 옆에는 주택가 위주의 미국마을이 들어섰다. 마을 입구에 선 독수리와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을 상징한다
이제 편백휴양림까지 다운힐만 남았다. 맞은편 왼쪽으로 앞서 지나온 순천바위가 오똑하다

 


여정
코스의 초입에서 가까운 독일마을에서 묵으면 편하기도 하고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마을 내에 펜션이 많이 있는데 취재팀은 가장 최근에 지었고 바다 조망도 멋진 ‘만하임펜션’을 이용했다. 마을 뒤편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광장의 ‘바이로이트’ 식당이 그나마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고, 시원한 조망과 함께 수제 소시지와 독일 생맥주를 맛볼 수 있다. 편백휴양림을 기점으로 코스를 일주하면 총거리는 약 45km가 된다. 

 

 

 

 



김병훈 발행인  soolme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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