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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가는 봄날, 와 그리 서두르노섬진강(하)(곡성·구례·하동·광양)

어차피 가는 봄날, 와 그리 서두르노
섬진강(하)(곡성·구례·하동·광양)


아껴둔 섬진강, 꽃소식 하나 믿고 떠난다. 사는 날이 팍팍한 우리네가 그저 기댈 데라곤 오늘도 여여한 강물 하난데, 아랫녘 섬진강 이백리 벚꽃 길에 못 떠난 겨울 치마꼬리 잡고 비가 내린다. 산천이 젖으니 화개장터 동동주만 축이 나고, 세상의 시계로 가는 관광버스 노랫가락만 늘어진다. 밀물의 고요 속에 하동재첩도 잠시 한숨 돌린다. 광양 바다로 가는 섬진강가 벚꽃님은 이제 버짐 닮은 산 벚에게 시절을 물려주고, 가는 봄 자락에 매달려 안간힘 다해 춤춘다. 봄바람이 영 거칠다
 

섬진강을 가장 ‘한국적인 강’이라 하는 것은 강물과 사람이 어깨동무하며 갈 수 있어서다


섬진강(유로연장 223.86km, 유역면적 4911.89㎢)
-  ‌국가하천 : 전북 임실군 신평면(지장천 합류점) ~ 경남 하동군 금남면 갈도(삼각점)
-  ‌지방하천 : 전북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 전북 임실군 신평면(국가하천기점)
-  ‌발원지 및 최장발원지 :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교, 팔공산(1147m) 서부능선 데미샘을 발원지로 함
-  ‌지류 : 제1지류 69개(추령천, 오수천, 옥과천, 요천, 보성강, 황전천, 횡천강, 주교천 등), 제2지류 144개(동복천, 주암천 등), 제3지류 55개(유천천, 외남천 등), 제4지류 11개(가수천 등), 제5지류 2개(율곡천 등)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곡성은 기차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구 곡성역에는 기차의 추억이 산 채로 남아 있다(곡성읍)
자전거도로만 고집하면 자전거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특히 인적이 뜸한 시골 강가에서는 더욱 그렇다(곡성 오곡)
침목이 보이는 철교는 정겹다. 마을 초입에는 꽃까지 피어서(곡성 오곡)

 

눈밭을 미끄러지며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을 다녀온 지 달포도 안 되었는데 봄이 깊다. 쫓기지 않는 여정으로 길을 떠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곡성에서 하룻밤 묵을 심산이다. 어둠이 벌써 내린 낯선 소읍을 둘러보다 여장을 풀고, 동네 사람만 아는 식당의 소박한 저녁상 옛 입맛에 행복하다.
곡성은 이름그대로 ‘골짜기 마케팅’에 성공한 시골이다. 골짜기 곡(谷)자가 들어가는 면이 죽곡, 오곡, 석곡 3개면이다. 군 전체의 74%가 산지이니 산자락 사이사이 붙어 있는 논밭전지가 삶의 터전이던 여느 산골과 다름이 없다. 그렇다고 높은 산도 없다. 800m도 안 되는 동악산(735m)이 최고봉이고, 곤방산(715m)이 엇비슷하다. 



떠나간 기차, 곡성으로 돌아오다
땅도 없지, 바다도 없지, 이렇다 할 공단조차 없는 곡성이 곡성읍, 오곡, 고달은 남원권으로, 옥과, 입면, 오산, 겸면은 광주권으로, 석곡, 삼기, 목사동, 죽곡은 순천권으로 경제권마저 나눠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곡성은 사라진 증기기관차의 추억과 함께 기차로 되살아났다. 굳이 말하자면 짝퉁기가 줄줄 흐르는 기관차지만 섬진강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명작도 그렇게나마 전선 열차를 찍을 수 있는 곳이 곡성밖에 없으니 말이다. 기차마을은 구 곡성역의 모습에서, 기차마을 전통시장으로까지 그 세를 불려가고 있다.

곡성에 들어서면 마주하는 곡성 신역사도 성곽의 날개를 얹은 디자인이다. 현판 글씨체는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다. 경찰서마저도 표준 CI를 벗어나면서까지 같은 서체다. 영화 <곡성>의 호러물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과민성인가 아니면 관청들의 의도가 맞아 떨어진 걸까. 

시골 마을의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신예감독(나홍진)의 2016년 작품은 대종상, 청룡영화상을 휩쓸면서 곡성의 공포를 더했다. “보이지 않고, 모르는 것이 가장 무섭다.”는 말, 형형색색 무당 황정민의 무복과 의문의 여인 천우희가 입은 광목천 하얀색이 공포에 가세한다. 일본배우 쿠니무라 준(国村 隼)의 형용하기 어려운 청회색 눈빛은 러닝타임 2시간36분 동안 관객을 옴짝 달싹 못하게 한다. 한을 토해내는 울음 곡성(哭聲)이 곡성(谷城) 위에 오버랩 된다. 곡성이 공포를 마케팅화 하려는 뜻과 대척점에 곤지암이 있다. 소머리국밥으로 이미 천지에 이름을 낸 소읍 곤지암은 또 다른 공포영화 <곤지암>을 영 마땅찮아 한다. 환자 42명을 살해한 후 자살한 병원장의 비밀을 추적해 가는 공포체험단, 그 7인방이 하나씩 죽어가는 공포는 호러의 극치를 이룬다. 오랫동안 방치해 이미 CNN이 ‘세계 7대 소름끼치는 장소’의 하나로 선정한 옛 정신병원(옛 곤지암 남양신경정신과 병원)에서 찍으려던 영화는 소유주의 반발 속에 세트촬영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곤지암의 브랜드가 호러로 덧칠 되는 걸 동네도 거절했다.

‘버려둔다는 것’, ‘사람의 체온이 사라졌다는 것’에 다가가는 것은 공포의 문턱에 들어서는 것이다. 옛 철도에 생명을 불어넣고, 문화유산으로서의 옛 역사(驛舍) 보존에 만족하지 않는 곡성의 정신이 기차를 너나 없는 놀이공간으로 만든 원동력이다. 이제 퇴역하는 기차들을 박제화 할 것이 아니라 종류별로 모셔다가 전라선 폐선구간에 실제 운행하는 시도도 해보면 좋을 것이다. 일본 오카야마(岡山)의 폐선된 카타테츠(片鐵) 키치가하라(吉ヶ原) 철도역처럼, 한 달에 한번 운행하는 그날을 철도마니아들은 기다린다니 말이다. 

벚꽃은 가지만 신록이 벌써 저만치서 바라보고 있다(구례 간전)
벚꽃터널, 꽃 터널로 들어선다는 일은 얼마나 설레는가(구례읍)
쌍계사로 들어가는 길, 벚꽃의 유명세도 비 한줄기로 끝이 나버렸다. 시계가 흐리다



섬진강 주운(舟運)의 사실상 종점, 압록(鴨綠)
오지리에서 17번 국도와 함께 내려오다가 두곡교(잠수교)에서 강을 건넌다. 이미 벚꽃 천지다.   여기서부터 따지면 벚꽃 200리 길이 시작되는 셈이다. 아직 청년 벚꽃이라 완숙미는 덜하나 풋풋하다. 어차피 전라선 새 철로도 레일바이크의 반환점인 가정역(폐역) 근처에서 다시 섬진강과 만나니 자전거길은 출렁다리 아래로 난 두가세월교(잠수교)를 건너야 한다. 

잠시 후 전라남도 동부의 큰 강 보성강이 섬진강과 합치는 압록(鴨綠)이다. 압록은 북한의 압록강과 같은 이름이라 더 다정하다. 섬진강 하구에서 올라오던 배들도 더 올라갈 수는 있지만 사실상 주운의 큰 종점은 압록이었다. 장선(돛단배)이 오가던 것도 1935년까지였다.
섬진강은 구례구역 어간에서 크게 가로막혀 동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구례읍을 만들고, 전라선열차도 강을 버리고 서남쪽 황전 깊은 골짜기로 사라진다. 그러고 보니 구례구역의 ‘구’자는 ‘옛구(舊)’ 자가 아니라 ‘입구(口)’ 자다. 구례 들머리에 있는 역이라는 뜻이다.


구례 부근에서 황전천과 합류하면서 옛 섬진강은 메추라기란 예쁜 이름 순자강(鶉子江)을 버리고, 잔수강(潺水江)이 된다. 산경표를 지은 신경준(1712~1771)이 전국 12개 하천이름에서도 그리 불렀다. ‘조용히 흐르는 물’이라는 뜻이다. 1936년 구례교가 놓이고 나룻배도 사라졌다. 구례구역 바로 다리 건너 구례읍 신월리 신촌이 잔수역이 있던 포구자리다. 간전에서 건너오는 토지면 파도리 동방천나루는 뗏목의 거점이었다. 그야말로 압록강 뗏목이 유명하지만 압록 아래 섬진강 뗏목이다. 구례~하동 간 정기 화물선도 겨울을 빼곤 항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만 가르는 게 아니라 판소리의 동·서편제를 가른다. 섬진강 동쪽 구례에는 동편제의 거장 국창 송만갑(1865~1939)이 태어났다. 한번쯤은 들어 봤을 이름이다. 그가 죽어 떠나던 날 “저 우뚝 솟은 지리산 푸른 정기, 강철같이 꿋꿋하고 쟁쟁한 그 목청, 저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 비단 물결, 구슬같이 해 맑은 고운 음조”라고 후학들은 목 놓아 고별했다.

예부터 문척면 건너 토지면 오미리에는 천하 명당터가 있다 했다. 천상 옥녀가 형제봉에서 놀다 금가락지를 떨어트린 자리라 명당이라 했다. 형제봉(873m)은 바로 지리산 노고단에서 화엄사를 품고 내려온 산줄기다. 일본인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이 <조선의 풍수>에서 점찍은 터라 해방될 쯤에는 한옥 300여 채가 들어서기도 했으나 마을이 시들시들 골았다. 조선 영조 때 낙안군수 유이주의  ‘ㄷ자’꼴 기와집 ‘운조루’가 들어선걸 보면 턱없는 터는 아니겠으나 전설 속 금가락지 터는 찾지 못한 게 분명하다.

봄꽃 완상에 혼자는 쓸쓸하다. 봄바람 곁에 사랑이 있다면 남자는 남자다워질 거다(구례 간전)

 

화개장터, 낭만은 옛말이 되고
굵어진 빗줄기 속에서 남도대교를 건넌다. ‘화개장터’ 노래 속 광양사람들이 똑딱배 타고 5일장에 건너오던 그 길이다. 줄배도 똑딱배도 다리 하나 만들면서 다 사라졌다. 문명은 그런 것이다. 생겨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의 숙명은 인간의 욕망과 편리 사이에서 결정된다. 재첩국에 몇 알갱이 들어간 재첩이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구별할 눈은 길손에겐 없다. 왁자지껄 장터의 풍경이 아니라 오직 붙박이 장사의 셈본만이 화개라는 이름에 걸려 있을 뿐이다. 그나마 평일이라서 덜 붐빈다는 이 꽃놀이 철, 하기야 나도 꽃피는 철 기다려 지금 온 것 아닌가.

쌍계사 벚꽃 길은 남도 벚꽃의 대명사다. 올해는 한 닷새 일찍 피더니만 비바람에 서둘러 꽃그늘을 거두어 가고 있다. 아마도 주말에 열리는 ‘쌍계사벚꽃축제’를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실망스런 술잔을 기울이리라. “꽃이사 져도 쪼매 있어 바라. 포르무리한 잎이 기양 보기 좋은 기라.” 길가 버스정류장에서 해넘긴 옥수수를 까먹고 있던 할머니들이 위로한다.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벚꽃여행을 나섰다. 그들은 굳이 ‘가출’이라고 말했다(구례읍)
펑크가 났다. 그래도 동행이 있어 든든하다. 이것도 여럿이 하면 재미다(구례읍)
벚꽃이 서둘러 갈 길을 재촉한다. 꽃잎은 스토커가 되었다(하동 화개)
최참판댁 입구, 죽은 최서희가 여럿 먹여 살린다(하동 악양)
남도대교, 화개장터를 상설시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낭만은 노래에나 있다(하동 화개)

 

섬진강 이쪽 저쪽, 여인들이 일궈낸 역사
점심을 먹고 여전히 멎지 않는 빗속에 나선다. 이제 악양으로 가는 길이다. 검은 산 사이로 유장한 섬진강의 물줄기가 은비늘로 반짝이는 사진은 대개 악양들에서 올려다 보이는 고소산성에서 셔터를 누른 조감(鳥瞰)이다. 그 시린 서정은 가을강이 제격이지만 봄은 꽃길 상춘이다. 

이십리길이면 평사리 악양 들판이다. ‘악양’이나 초입에서 맞아주는 ‘동정호’나 모두 모화(慕華)의 흔적이다. 문화를 동경하는 사람의 심성을 어찌 그냥 사대의 잣대로만 잴 수 있겠는가. 박경리문학관과 최참판댁 마을 풍경은 또 다른 형제봉 줄기 신선봉 아래에 높직하니 올라 앉아 있다. <토지>의 힘은 이미 유서 깊은 산사 아래 사하촌처럼 장사치 마을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망해 가는 양반 집안, 만주에서 돈을 벌어 다시 평사리로 돌아온 서희의 서릿발 같은 기상이 이곳저곳에서 느껴진다. 옷집에서 분식집까지도 온통 ‘서희’다. 박경리문학관이 가장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토지>는 땅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구한말, 일제로 이어지는 시간의 계단 사이에서 짓밟힌 존엄에서 빚어진 한(恨)과 해원(解寃)을 말하고 있다. 소설가 박경리는 원주, 통영 그리고 하동에 걸쳐 한국현대문학의 기념비로서, 영원히 지사적 이름으로 존재할 것이다. 어디에 어떤 유품이 얼마나 더 많이 전시되어 있는가는 의미 없는 나눔이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는 그의 수상록은 얇지만 법정의 ‘무소유’ 만큼이나 가볍지 않다.

최참판댁 사랑채에 올라선 사람들은 드넓은 악양들판과 한 눈에 들어오는 섬진강을 보고 놀란다. 어떤 책은 박경리 선생이 미점리 아미산 아래에서 동정호까지 악양 ‘무딤이들’을 보고 이 넓은 들판이야말로 만석지기 여럿을 내고도 남을 땅이라며 <토지>의 주 무대로 낙점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소설의 배경을 눈에 본 듯 그려낸 박경리 선생이 실은 단 한 번도 이곳 평사리에 와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랍다. 아마도 진주여고 시절, 하동에서 유학 온 친구들에게서라도 악양 만석꾼 이야기를 듣지 알았다면 어찌 그리 묘사할 수 있었겠는가.

서희와 길상의 소나무가 서있는 들판을 지나 강둑길로 나선다. 19번 국도를 넓히느라 어수선하다. 얼굴로 파고드는 빗줄기와 싸우느라 강 건너를 바라볼 생각도 못한다. 강 건너는 광양 다압이다. 백운산이 워낙 높게 솟아 있어 산비탈은 섬진강 언저리나 비알 밭이 붙어있을 뿐 산그림자가 깊다. 섬진강의 꽃 소식이 매화에서부터 시작하니 벚꽃으로 분주한 하동 땅과는 달리 차분하다. 

또 한 여인의 이름 홍쌍리가 있다. 사실 섬진강 매화를 중앙 무대에 제대로 알린 공으로 치면 그녀만한 사람이 없다. 그녀가 맨손으로 일군 매화농장의 이야기는 어떤 성공과 실패담보다 감동적이다. 경상도 밀양 여인이 전라도 광양으로 시집가서 시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일궈낸 매화꽃과 매실 이야기를 텔레비전을 통해서 들을 때면 만사를 제쳐 놓았다. 손마디가 굵어지도록 일을 한 그녀가 억척만으로 세월을 지켜낸 게 아니다. 매화 한 송이, 들꽃, 들풀 하나에도 일일이 말을 건네는 감수성은 그대로 시다. 막힘없이 그녀가 풀어내는 삶의 지혜는 대본에는 아예 없는 이야기다. 오랜 경륜과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어낸 족집게 같은 교훈이 요즘은 뜸한 그녀의 등장을 기다리게 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광양제철보다도 광양 매화가 우리 가슴속을 더 촉촉하게 적시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경리 선생의 젊은 날의 초상. 어떤 아름다움과 그늘이 붉은 색으로 칠해졌을까(하동 악양)


하동 송림, 섬진강 여정의 커다란 여백
 하동에 들어서면 섬진강을 건너가는 경전선 철로가 높이 걸려 있다. 하동 송림 옆이다. 소나무숲은 빽빽해서 대낮에도 컴컴하다. 한때 흥청거렸던 하동장 이야기는 지역 사람들에게도 빛바랜 추억이다. 발동선이 40~50대씩 하동포구에 들어왔었다. 여수, 삼천포, 남해에서 온 배는 공산품과 바다 물산을 싣고 오고, 강 언저리에서 오는 배는 산중 물산을 실어와 바꿔 갔다. 영화는 순식간이라 섬진강 모래가 퇴적해 간신히 재첩이나 잡게 되고, 기찻길이 놓이면서 외지로 손님을 빼앗겼다. 6·25를 전후해서 빨치산이 오래 은거하는 통에 피폐한 지리산 자락의 기운이 하동까지 밀려왔었다.

섬진강 재첩이 해장에 좋다 해서 비싸게 팔려 나갔으니 강가의 사람들은 “조상 묘 자리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긴다.”는 강바닥 구획이다. 하동과 광양 구역이 다르고, 마을마다 다르다. 물량을 못 대다 보니 결국 중국산이 밀고 들어오고, 하동말로 ‘갱조개’라고 부르던 말도 ‘재첩’으로 표준화 되어 버렸다.
하동이 양력 4월 20일 곡우절 앞뒤로 20여일에 따는 작설차로 유명하지만 하동김이 유명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갈도와 고포리 사이 광양만 60여만평 얕은 바다는 깨끗한 섬진강 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지역이라 김이 많이 나 전국으로 이름을 알렸었다.


가야할 길은 아직 20여km나 남았는데 비는 더 거세지고 대나무 숲으로 부는 바람은 귀곡성을 방불케 한다. 일본이 제 땅에서 열심히 옮겨다 심은 대나무 덕분에 죽림이 강변에도 꿋꿋하다. 그러고 보니 방풍효과도 꽤 크다. 새로 놓은 섬진강교를 건너 다시 강변 자전거길이다.

악양들판은 만석꾼 서넛은 낼 너른 평야다. 섬진강이 멀리 보인다
하동 송림은 섬진강의 여백이자 하동이 자랑하는 강변풍경이다(하동읍)
하동 섬진강 재첩잡이(조용현 자료 사진)

 

백운산 맺힌 정기 광양으로 흐르다
백운산(1218m)은 낮은 산이 아니다. 강 건너 지리산이 워낙 높아 그렇지 소백산맥이 무등산, 조계산에서 솟아오르고 나서 마지막 힘을 쓴 산이다. 구례 산동의 고로쇠가 나오기 전에 고로쇠물을 만들어 내는 산이다. 이 지방사투리로 ‘고리세물’이라고 하는 수액은 반찬을 짜게 하고, 달달한 것을 일부러 많이 먹어 물이 키도록 해 말통으로 먹자고 산에 가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어쨌건 광양사람들에겐 “순천장에서 광양장까지 벼룩 몇 만 마리를 하나도 안 놓치고 몰고 왔다.”는 칭찬인 듯 아닌듯한 옛말이 전해 온다. 

또한 광양은 불고기로도 유명해졌다. 질겅질겅 씹을 필요 없이 넘어간다는 석쇠불고기, 고기 결을 잘 살려 자른다는 설과 센 힘줄을 잘 다져서 양념을 해 부드럽다는 설도 분분해 한때는 “연육소를 쓴 게 아니냐”는 질시를 받기도 했다. 좌우간 광양은 잘 사는 동네가 되었다. 광양제철소가 들어와 상전벽해가 되었다. 금호도와 사도 등 10여개 섬이 사라져 여의도 다섯 곱의 넓은 땅 500만평이 새로 생겼다. 마을이 통째로 보상받고 이주한 금호도는 재미를 봤고, 섬진강을 막고 있어 “겨울 한 철 일해 한 해를 잘 먹고 산다.”는 광양김의 원산지인 태인도가 제일 죽 쒔다는 말도 있다.
눈치 없는 4월 비에 젖어 떨면서 안장에서 내린 곳이 태인도 북단 배알도 해수욕장이다. 섬진강 여정의 종점이다. 제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화장실 수도까지 잠군 야박한 인심에 손도 못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참고 자료
1. 한국의 발견, 전라남도, 뿌리깊은나무, 1989 
2. 한국의 발견, 경상남도, 뿌리깊은나무, 1989
3. 네이버포스트, 영화리뷰, <곡성>, 썬도그 

4. 구례군지, 군지편찬위원회, 2005
5.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2012

 

 

조용연 편집위원  choy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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