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방랑적 일주(中)
시코쿠 방랑적 일주(中)
드디어 ‘사이클리스트의 성지’에 서다
아, 시마나미해도!
여행 일주일이 지나니 몸이 적응해 라이딩이 한결 편해졌다. 에히메로 들어서서는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한참을 산속을 헤매다 한국인 교포를 만나 신세를 졌다. 어려울 때마다 귀인이 나타나 도움을 주니 신기하다. 이제 시코쿠에서 가장 가고 싶던 곳으로 들어선다.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자전거여행자들의 로망 중 하나인 시마나미해도다
8일차
시코쿠의 남쪽 끝으로
어제는 오후 5시경 일찌감치 시만토(四万十) 시에서 여장을 풀었다. 저녁 먹고 빨래하고 8시에 벌써 가물가물… 새벽 4시반경에 자동 기상. 여행기 쓰고 일정 챙기다 보니 2시간이 훌쩍이다. 아침이 진수성찬이다. 계란 프라이에 생 유정란, 낫토, 우메보시, 미역된장국, 햄 등등… 아침부터 두 그릇을 비웠다. 4500엔의 착한 가격에 이렇게 푸짐하게 베푸니 주인장 관상이 넉넉해지는가 보다. 어제 빨래한 뽀송이를 입으니 피부가 웃는다.
오늘은 시코쿠의 최남단 아시즈리미사키로 향한다. 남쪽나라의 남쪽을 간다니 가슴이 설렌다. 벌써부터 인어공주가 기다리고 있을텐데… 이런 내 맘을 아는지 시만토 강둑을 따라서 평탄하게 난 길은 해안선 옆으로 완만하게 이어져 그야말로 씽씽 나아간다.
마음은 인어공주한테 가있는데 자꾸만 쉬어가란다. 바로 활짝 핀 꽃들이다. 벚꽃, 유채꽃, 목련, 명자꽃, 천리향 그리고 이름 모를 노란꽃 등 그 유혹을 뿌리치기엔 난 너무 마음이 약하다. 쉼 없이 셔터를 누른다.
내가 그리던 바로 그런 해안길
321번 도로에서 27번 도로를 타면 아시즈리미사키는 12km 거리에 있다. 어떤 영감님이 차를 세워놓고 가르쳐준 신작로(2015년 건설)를 택했지만 업다운의 연속이다.
드디어 도착이다. 그러나 약간 실망이다. 홋카이도의 최북단 소야미사키를 연상해서 일까. 천길 낭떠러지에 등대만 달랑. 그리고 왜 이제사 왔냐며 동백꽃은 눈물이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물론 인어공주는커녕 꼬리지느러미도 볼 수가 없다. 뱃사람들의 희망으로 우뚝 서 있는 등대의 위대함을 뭍사람이 어찌 알아볼까. 그래도 남쪽 바다내음을 가슴속에 한껏 주입했다. 여기에 있는 사찰 금강복사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시코쿠 88개사 순례코스인 오헨로의 38번째 ‘삼팔광땡’인가 보다. 특히 중앙에 있는 거울 같은 연못에 부질없는 마음을 비추어 본다. 일체유심조!
점심은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할머니 식당에서 돈까스 정식으로 먹는다. 모서리가 닳고 닳은 욘사마 캐리커처를 상장처럼 자랑스럽게 보여 주면서 한국에 꼭 가고 싶다고 한다. 내 자전거 뒤에 올라타기 전에 재빠르게 내뺐다.
온 길을 다시 돌아 321번 도로에 접어들었다. 내가 상상하고 있던, S자를 그리면서 평탄하게 이어지는 해안도로 바로 그 모습이다. 날씨도 바로 그 날씨다. 그 이름도 어울리는 ‘써니 로드(Sunny road)’. 지금 달리는 이 순간, 남쪽나라 햇볕은 나의 등에서는 기분 좋은 땀이 되어 흐르고 바다에서는 물비늘이 되어 반짝이고 있다. 이거야말로 바로 써니다! 내 인생도 ‘언제나 맑음’이다.
9일차
파라다이스에서의 하룻밤
스모선수 같이 우람한 덩치의 나카타 여관의 주인이 창고에서 자전거를 건넨다. 어제는 수크모(宿毛) 근처의 조그만 동네에서 머물렀다. 처음엔 자전거 보관 때문에 좀 뻣뻣했던 주인장은 내 레퍼토리(?)를 듣고 나서는 급 친절해졌다. 욕탕에서 나오니 캔맥주를 들고 서 있다. 특별 서비스란다. 2리터 우롱차는 덤이란다. 한국에 관심이 많다. 한국 드라마 얘기를 장황하게 펼치는데 내가 아는 건 ‘겨울연가’뿐이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말이 통한다니… 그동안 일본어 학원에 갖다 바친 고래심줄 같은 학원비를 여기서 본전을 빼는구나.
오늘은 고치현을 벗어나 에히메현으로 들어서기 위해 기분 좋게 출발이다. 이제 일주일이 지나니 엉덩이도 안장과 타협을 봤고 허벅지엔 물이 올라 도로에도 익숙해져서 진도가 자~알 나간다. 12시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50여km를 초과달성했다. 삿포로 라면집에서 카츠미소라면에 밥을 말아서 먹었다.
평탄한 도로가 연속되니 슬슬 졸린다. 이래서 오르막이 있어야 하나 보다. 인생도 너무 편하면 재미 1도 없다. 왼쪽에 새파란 잔디와 숲이 보인다. 그래 저기서 잠깐 쉬었다 가자 하고 들어섰는데 그 순간의 판단이 나를 파라다이스로 안내할 줄이야!
“여행은 혼자가 최고야”
텐트를 치고 있던 중년 남성에게 인사를 건네니 야영할거면 자기 옆으로 오란다. 아무도 없어 외로울 것 같단다. 이게 아닌데… 하다가 그래, 오늘은 여기서 주저앉자.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자전거 거치용 텐트는 작년 홋카이도에 가지고는 갔지만 쳐볼 기회가 없었고 지난 가을 치바현 1박2일 여행 때는 수완이와 술김에 쳐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불로 트랜스포밍. 아무튼 처음으로 팜플렛과 똑 같이 재현해 놓고 보니 내가 텐트 모델인양 우쭐한 마음까지 든다.
옆 텐트의 고시마상은 올해 64세로 교토에서 보도블록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단다. 간사이 지방에서 자기 이름 모르면 간첩이란다. 하기사 타고 있는 오토바이를 보니 통 거짓은 아닌 것 같다. 750cc 혼다다. 20살 즈음부터 오토바이를 좋아했는데 사업 때문에 즐기지 못하다가 60세에 은퇴해 이렇게 여행을 즐긴단다. “역시 여행은 혼자가 최고야” 할 때는 둘이서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곳 수노가와 공원은 특이하게도 해수호와 담수호가 나란히 있다. 건너편에 있는 사우나에도 해수탕과 일반탕이 있다. 목욕 후에 오징어회와 맛살튀김에 생맥주를 한잔하고 해변을 거닐어 본다. 여름을 기다리지 못한 성급한 서퍼들이 파도를 타고 있다. 저 친구들은 바람이 불어야 살고 나는 바람이 불면 죽는데…. 정말 파아란 하늘, 파릇한 잔디, 울창한 숲, 하얀 모래밭, 출렁이는 파도 그리고 내가 있는 이 순간. 너무나 완벽한 조합이다. 그냥 이대로 액자에 넣어서 영구보관하고 싶다. 알고 보니 이곳이 시코쿠 3대 유명 야영장이란다. 우연히 들렀는데 바닷가에서 그냥 돌이 예뻐 보여 주웠는데 알고 보니 보석이더라고. 우리 집사람도 여기에 속하지(아부만이 살길이다. 딸랑딸랑~).
바람이 잠잠한 걸 보니 이제 천지만물도 모든 걸 내려놓고 잠드는 시간이다. 우리도 따라서 누에고치처럼 침낭 속으로 기어든다.
이른 새벽. 자동차가 뜸해지니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새들은 벌써 노래를 시작했다. 아직도 시커먼 산 그림자 위에 노란 그믐달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무궁화 5개, 중국이나 일본의 5성 호텔은 잽이 안 된다. 별들이 모두 모인 모두 총(總) 자 총성(總星) 호텔의 미리내룸에서의 하루밤이다. 고시마상은 먼저 떠나고 텐트를 나무에 걸어 말리는 사이 간이의자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실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10일차
진퇴양난, 태진 난감, 극적 상봉
2 양에 가려 보이진 않지만 지금도 하늘에 떠 있는 그믐달의 시선을 느끼면서 페달은 신이 났다. 기온은 벌써 20도를 웃돌아 가방을 벗어 짐받이에 싣고 자켓도 벗어 반팔로 내달린다. 그렇게 기다리던 봄인데 막상 오니 버겁다.
이제 고치현을 벗어나 에히메현에 들어섰다. 소요시에서 서소요시로 가는 길에는 오르막에 터널이 7개나 있다. 이곳은 개도 감귤로 야구할 정도로 유명한 감귤산지란다. 당도가 333%라 입맛 까탈스런 아카다이(빨간 도미)도 밤이면 감귤밭에 마실을 온다나 뭐라나.
그 높은 7부 능선까지 감귤밭이다. 조만간 유네스코에 등재될 정도로 가파르다. 그 가파른 경사면에서 감귤을 따는 아낙네의 땀범벅 고생이 절로 느껴진다.
잘 달리던 56번 국도가 갑자기 자동차 전용도로로 바뀌어 있다. 해서 왼쪽으로 틀었지만 지겹도록 바다만 봐와서 산이 그리워 56번을 택했는데 오르막의 연속이다. 터널이 나오겠지, 커브만 돌면 정상이겠지 희망을 걸어도 길은 좁아지고 지나가는 자동차도 없고. 벌떡 선 오르막에 자전거는 고개를 돌리고 앞바퀴를 들면서 사보타지를 하니 아예 내려서 끌고 간다. 오후 5시에 들어선 산길은 라이트를 밝힌 7시가 지나도 끝이 없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고 그야말로 진퇴양난 급기야는 ‘태진 난감’이다. 만감이 교차한다. 이 고생을 정말 사서 하는구나! 그래도 힘들고 지치니 무서운 것도 모르고 무조건 앞으로다. 뭐든지 그 끝은 있는 법이니까.
주변이 깜깜한 8시경 산골마을에서 여관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지금은 손자가 많이 생겨 벌써 몇 년 전에 여관을 그만두었단다. 사정을 들은 아주머니는 팔을 걷고 해결해주겠단다. 일단 배가 고플테니 하면서 밥을 내준다. 5km 정도 떨어진 산골마을에서 운영하는 숙박처가 있는데 집 전체를 빌려야 한단다. 그래 지금은 집 아니라 성이라도 상관없지 않는가!
여기서 한국인을 만나다니
안내해줄 부부가 들어서면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데 귀를 의심했다. 이 산골 오지에서 한국인을 만나다니. ‘극적 상봉’이 영화에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올해 54세인 한준현 씨는 통일교를 통해 일본여성과 결혼해 19년 전에 이곳에 왔단다. 고향이 경북 경산이라는 걸로 시작해서 그냥 바로 본인의 ‘인생극장’을 틀어준다. 금방 우리는 ‘우리’가 되었고 시작한 얘기는 봇물이 터져 버렸다. 옆의 일본인 부인도 한국사람을 만나 정말 반갑단다. 준현 씨는 다리가 불편한데도 아침에는 신문배달, 낮에는 화장터 근무, 봄에는 고사리·산마늘 등 산나물 채취, 표고버섯·오이 재배 등 철인이 따로 없다. 부인은 가베마을에서 운영하는 후루사토관에서 근무한단다. 내가 온 산길 사진을 보여주니 그 길은 국도 56번이 아니고 56번 현도란다. 이 길은 험해서 현지인들도 꺼린다니 나 참.
오늘 밤 묵을 집에 가보니 일본식 난방 ‘고다츠’가 있는 안방과 또 다른 큰방 그리고 주방, 일본식 전통난로가 있는 응접실, 사각 히노키탕, 남녀 화장실 등 완벽한 일본 전통가옥이었다. 아니 저택이다. 축구팀 한팀에 감독·코치가 전부 잘 수 있는 규모다. 이렇게 크고 멋진 집에서 혼자 밤을 보낸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고문 수준이다. 왜냐면 남들한테 이 즐거운 상황을 다 보여줄 수가 없으니….
후루사토 회관에서 아침을 먹고 나니 신문배달을 마친 한선생이 들어온다. 체크아웃을 하는데 옆에 와서 어젯밤 먹은 맥주와 아침밥값은 자기가 내겠다고 한다. 기념촬영을 하고 미니밴에 자전거와 짐을 싣고는 넓은 국도의 미치노에키(도로변 휴게소)까지 바래다 준다. 낚시 얘기며 사카모토 료마가 왜 유명한지도 얘기해주고 빵하고 도시락 그리고 이곳의 명물 산천어 훈제구이까지 사서 건넨다. 살아생전 처음 만났고 또 언제 만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베푸는 한국인의 ‘정’이라는 것을 첨단 디지털 측정기로 재면 어떻게 나올까? 산길의 힘듦은 모래에 새기고 한선생 부부의 마음은 바위에 새기리라.
11일차
다시 나를 부르는 바다로
어제 묵은 가와베마을에서 한선생의 차로 수원지 댐현장을 지나 우치꼬 휴게소까지 오는데도 30분 내내 내리막이었다. 그곳에서 한선생과 작별하고 달리는 도로는 얌전히 어깨를 숙이고 있고 바람도 등을 밀어 주고 있다. 어제 내가 얼마나 높이 올라갔었는지 실로 그 느낌에 몸서리친다.
한적한 시골마을과 정말 어울리는 대합실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건물에 다이얼식 공중전화, 다다미식 평상… 지금이라도 김두한 패거리가 튀어나올 것 같다. 할머니 한 러니 나 혼자다. 그래도 한선생의 마음이 담긴 도시락과 훈제 산천어에 배도 불러오고 마음은 ‘이빠이’다.
나가하마초의 안내판이 보인다. 이제 내려 올만큼 내려온 바다마을이다. ‘하마(浜)’는 해변을 뜻한다. ‘부루라이트 요코하마’란 노래를 몰랐다면 요코하마가 ‘물먹는 하마’의 서브 브랜드로 착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외우기 쉽지 않은 일본 선생의 이름 중에 맨 처음 확 들어온 이름은 ‘하마나까’ 선생이다. 생긴 모습에서 저 양반 뱃속에 하마가 한 마리 들어있나 싶었다(센세이, 스미마셍^^). 그래도 작년에 홋카이도 여행 전에 비리비리한 나의 비앙키를 날렵한 적토마로 변신시켜준 명조련사로 학교에서도 인기 짱이다.
드디어 에히메현청이 있는 마쓰야마시에 들어섰다. 이 곳은 항구도 있고 공항도 있는 교통 요충지다. 도시에 들어서니 노면 전차는 스물스물, 자전거는 느릿느릿, 야외활동의 학생들은 노닥노닥…. 나도 한가로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애마가 도망 못 가게 열쇠를 3개나 채워주는 호텔 보이한테 뽀뽀해주고 싶다. 10층 스카이라운지에는 해결사가 대령해 있다. 우선 코인 란도리에 세탁물을 넣고 버튼을 누른다. 50엔 동전이 세탁을 하는 동안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온천탕에 몸을 담근다. 이곳 온천은 유명한 오쿠도고지역에서 6km 파이프로 끌어 온 천연 온천수란다. 갑자기 내 피부가 뱀장어처럼 미끌미끌해진다.
자판기에서 레몬사와를 뽑으려는데 자꾸 얼굴을 들이밀란다. 아래쪽 담배 자판기에서 나오는 소리다. 담배를 살려면 어른 확인이 필요하단다. 60년을 살아와도 모르는 게 아직도 많고 헷갈리기 일쑤다. 대체 얼마나 더 살아야 능수능란해질까?
12일차
자연은 직선을 싫어한다
아침은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일본식 뷔페인 바이킹이다. 일본에는 타베 호다이, 노미 호다이, 아소비 호다이 등 우리나라 뷔페 같이 일정금액만 지불하면 무제한인 ‘○○호다이’가 많다. 그렇게 무제한 먹을 수 있는 타베 호다이의 최초 브랜드가 ‘바이킹’이다. 블랙 펄 갑판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는 해적들이 연상되는 딱 맞는 브랜드 네이밍이다. 비록 새벽 6시30분이지만 800엔 본전을 뿌리 채 뽑으려 포크와 젓가락을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육해공군을 제압해 나간다.
비는 창문을 때리고 있고 TV에서도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계속 오겠다고 귓가를 때리고 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울고 싶은데 뒤통수를 때려주는 격이다. 이곳 마쓰야마는 수박으로 여기고 겉만 핥고 가기에는 너무 아깝다. 프론트에 연박 신청을 하고 우산도 빌렸다. 먼저 마쓰야마성을 가보기로 한다. 멀리 보이는 성을 보면서 걷다보니 척 봐도 예사롭지 않은 건물이 나타난다. 에히메현청이다. 근데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다. 광화문을 가로 막고 버티고 있던 조선총독부의 지붕, 그 파란 모자다.
비는 촉촉이 내려 안개띠를 두른 성은 신비감을 더한다. 비록 130여m의 낮은 산이지만 케이블카도 있고 숲이 울창한 산성의 규모를 갖추었다. S자의 오르막길 옆의 배수로도 꼬불꼬불 이어진다. 20여m 높이의 성벽도 부채살처럼 휘어져 곡선미를 더한다. 성의 제일 높은 누각 천수각에 오르니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 항구에서는 적군의 함선에서 병사들이 내려서고 있다.
성 안의 소나무는 한마리 용이 되어 몸을 비틀고 있고 벚나무는 제각각이다. 용마루와 처마는 버선코처럼 살포시 하늘을 향하고 잉어는 춤추고 있다. 그래서 보는 이도 부담이 없다. 이런 걸 바로 자연스럽다고 하는 것일 게다. 대학 때 조경 전공한답시고 유명 관광지를 다녔었고 ‘경치를 만드는’ 나는 바로 조물주 조카라고 뻥도 쳤지. 그래도 렌더링한다고 오리알도 그려보고 밤새 드라이 마킹과 로터링 하느라 손가락 끝이 시려본 경험도 떠오른다. 벌써 30년도 더 된 추억이지만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하고 그 부드러움은 곡선으로 표현된다’는 나름의 개똥철학은 생생하다.
3000년 된 온천
노면 전차에 올랐다. 요금을 내려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내릴 때 내는 거란다. 그래서 뒷문으로 타서 앞문으로 내릴 때 운전사가 확인한다. 요금은 어디서 타든 160엔 고정이다. 종착역 도고온천역에 내렸다. 나보다 훨씬 연세 많으신 옛날 전차도 움직이고 있다.
대학 졸업생들과 한컷하고 상가를 지나니 그 유명한 도고온천 건물이 앉아 있다. <일본서기>에도 기록이 있다 해서 그 역사가 3000년이란다. 일본무사의 투구처럼 생긴 아치형의 입구 지붕을 시작으로 속옷 그리고 중간, 또 겉옷 또 장옷 등 겹겹이 걸친 기모노처럼 켜켜이 높낮이가 다른 지붕들은 저마다의 풍채를 뽐내고 있다. 살포시 끝이 올라간 처마에는 귀걸이처럼 초롱등이 매달려 흔들거리고 흰 회벽과 검은 나무기둥은 간결함을 보여준다. 베란다에는 흰색과 빨간색의 천을 둘러 선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붕 맨 꼭대기에 자리한 학은 ‘인간 미물’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몸의 때만 밀지 말고 마음도 씻고 가세요” 하듯이.
전차로 온 길을 더듬어 걸어가기로 했다. 한참 가다보니 건너편에 이발소가 있다. 간판도 없이 카타가나로 캇토(cut)라고만 씌어있다. 풀이하면 그냥 ‘싹뚝싹뚝’이다. 의자에 앉아 “마루가리(짧게 깍음)요 6미리데” 했다. 바리캉으로 밀면 끝이다. 1080엔이란다. 분명 어른은 1500엔이었는데. 마루가리는 간단해서 학생요금만 받는단다. 내가 ‘학생’인줄 어떻게 알고. 어쨌든 언제나 배우는 학생이고 싶다. 하기야 세월이 더 흐르면 아들 기민이가 ‘현고학생부군 신위’ 앞에서 잔을 치고 있겠지…. 빛은 어둠이 있어 더욱 빛나고 죽음을 알기에 삶은 더 간절한 것 아닌가.
13일차
아, 시마나미해도!
날씨가 쨍쨍하다. 나도 새벽부터 분주하고 들떠 있다. 오늘은 이번 여행중 가장 기대되는 곳으로 가기 때문이다. 크리스찬에게 예루살렘이 있다면 사이클리스트에게는 바로 이 ‘시마나미해도(島波海道)’가 있다. 일단 이 길의 시작점인 50여km 거리의 이마바리로 향한다. 처음 20여km의 평탄하고 잔잔했던 길은 바닷가로 접어들면서 앞바람이 세차게 부딪힌다.
마음이 급하다고 성질을 못 죽이면 손해다. 세월을 거부하면 주름이 생기고 세월을 받아들이면 연륜이 생긴다 했나. 이 상황에서 속도를 내면 무릎이 망가지고 속도를 죽이면 경치가 보이리라. 해안의 풍경은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드디어 시마나미해도 입구 안내판이 보인다. 이 길은 혼슈와 시코쿠를 이어주는 총 거리 70여km의 길이다. 오시마 등 여섯개의 섬을 다리로 연결한 징검다리 형태의 연륙교인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길이 있다. 경남 사천(삼천포)과 남해도를 잇는 연륙교다. 이 길은 풍광이 뛰어나고 먹을거리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시마나미해도 같이 자전거를 위한 배려는 없다.
시마나미해도는 하나의 길이지만 ‘엔진’에 따라 진입로는 각각이다. 먼저 자동차는 직진하고 125cc 이하 원동기는 약간 휘어진 길로, ‘심장 엔진’을 가진 자전거와 보행자는 에둘러 원을 그리면서 만들어진 다리로 오른다. 멀리 히로시마의 구레(吳) 항이 보이는 쿠루시마 해협이 강처럼 흐르고 있다.
조그마한 섬들은 바다를 보내기 싫어 막아보지만 오히려 물살은 더 빠르게 빠져 나간다. 모래알을 쥐면 쥘수록 더 빠져 나가듯이. 오늘도 타이밍은 최고다. 주말이라 연인, 가족, 친구들과 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 외롭지 않다. 첫번째 다리가 끝나니 자동차는 계속 직진이고 자전거길은 섬 안쪽 길로 들어선다. 섬의 속살을 누비는 것이다.
포구의 배도 구경하고 빨래 널고 계신 할머니께 인사한다. 손자의 오줌지도 그려진 이불 옆에 발목 늘어진 누런 할배 내복도 나란히 걸려 있다. 아, 이래서 시마나미해도 하는 거구나! 그냥 쌩쌩 앞으로만 달리고 빨리 달리기 대회하듯 서울에서 부산까지 몇 시간에 주파했다는 등 바보들은 앞만 보고 질주만 한다. 여기는 자전거 본연의 컨셉 ‘천천히’에 충실한 코스인 것이다.
섬을 둘러보고 다른 섬으로 이동하기 위해 높은 다리로 진입하기 위해 다시 구불구불 완만한 경사로를 오른다. 한강다리의 친절한 척(?) 하는 자전거용 엘리베이터 따위는 없다. 물만 ‘셀프’가 아니고 자전거도 인생도 ‘셀프’인 것이다.
오미시마의 ‘사이클의 성지’ 탑에서 한컷하고 바로 뒤에 있는 캠핑장에 텐트를 쳤다. 기도하듯 두 손 모은 교각의 타타라대교는 건담처럼 팔짱을 끼고 나를 지켜주리라. 옆 텐트의 일본인과 나는 밤새 코를 골면서 소통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