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속으로 들어가 자전거로 신선놀음

이윤기의 탐사투어
동양화 속으로 들어가 자전거로 신선놀음 
산수절경의 선계(仙界), 계림을 탐하다

“계림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계림산수 갑천하)”는 말은 사실이었다. 사진과 영상으로 수없이 봐왔지만 현장에서 보는 계림은 그냥 산수화 속으로 뛰어든 비현실적 황홀경이다. 계림에서 양삭까지 83km에 이르는 이강을 따라 형성된 놀라운 기봉(奇峯)들의 향연은 카르스트 지형으로 인해 형성되었다. “죽어서 신선이 되느니 차라리 계림에 살고 싶다”는 중국인 특유의 과장법도 수긍이 간다 

 

계림시 양삭현 흥평 노채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이강과 흥평진 건너편 마을

 

이 세상에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자연의 오묘한 풍광들이 참으로 많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현실의 무릉도원, 절묘하게 우뚝 솟은 석회암 봉림(峰林) 사이로 유유자적 흐르는 이강(離江)에서 자전거로 노닐었던 ‘신선놀음’ 이야기가 이제부터 시작된다. 

계림(桂林)은 중국 광시좡족자치구에 속한 도시로 중국 발음으로 구이린(Guilin)으로 불린다. 내가 처음으로 계림을 알게 된 건, 1984년 이연걸 주연의 중국영화 <소림사2>를 접하고 나서다. 그 당시 무협영화는 온통 중국과 홍콩에서 제작된 영화들로 판을 치던 시기였다.  

고교 2학년 시절, 오직 집과 학교밖에 몰랐었고  세상 물정도, 세계 여행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리숙한 눈에 비쳐진 계림 리강 주변의 기이하고 수려한 봉우리는 경악과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 되어 언제나 흠모의 장소가 되어왔다. 

34년만에 이룬 꿈
현실의 무릉도원처럼 느껴진 선계(仙界)를 잊지 않고 살아온 지 어느덧 벌써 34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매체를 통해 계림의 영상은 빠짐없이 찾아보곤 했지만, 드디어 꿈을 이뤘다.
비록 짧은 일정의 자전거 투어로 다녀왔지만 후회는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카메라가 오작동을 일으켜 멋진 풍광을 담지 못했고, 궁여지책으로 들고 간 액션캠은 조작 미숙으로 화질이 엉망이라는 것이다.  

예로부터 ‘도시 전체가 계수나무 숲을 이룬다’라는 의미로 이름 지어진 계림(桂林)은, 중국 내에서도 그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인해 “계림 산수가 천하의 으뜸이다, 죽어서 신선이 되느니 차라리 계림에 살고 싶다”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계림은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으로서 가는 곳마다 기암괴석의 향연이 펼쳐진다. 해저 지형이 지각변동으로 인해 이강과 그 주변의 물줄기를 따라 융기하여 길게 이어진 봉우리들은 누가 뭐래도 중국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의 신비로운 경치를 자랑한다.

계림의 이강 자전거투어는 계림보다도 양삭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계림에서 양삭까지 이강의 길이는 83km로 양삭을 중심으로 황홀한 풍경이 펼쳐진다.

인간이 이보다 더 잘 그릴 수 있을까. 흥평 구마화산
낮은 구름이 떠돌아 신비감을 더해주는 상공산 전망대

 

봉림(峰林)의 향연이 시작되는 이강 흥평마을
첫 투어는 양삭현 관할 행정구인 흥평진(兴坪镇, 싱핑진)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기이한 산봉우리와 하천으로 둘러싸여 경관이 매우 뛰어나 주위의 수많은 산봉우리는 서로 빼어남을 다투고 있으며 강을 따라 명소들이 집결해 3암, 5정, 12산(三岩, 五井, 十二山) 등의 명소가 있다.

흥편진은 양삭현으로부터 이강을 따라 북쪽으로 30km 떨어진 향급(鄕級) 행정구다. 흥평마을이 무엇보다 유명한 것은 바로 이곳에 계림산수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20위안 인민폐 뒷면의 배경지인 원보산(元宝山) 때문이다. 흥편진 선착장에서 구마화산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볼 수 있으며, 현지인들은 원보산을 불자암(佛子岩)이라고 부른다. 구마화산(九马画山)이나 양제향(杨堤鄕) 행 대나무 뗏목을 타면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구마화산에서 길은 끊기고 이곳에서 배를 타고 이강을 건너 뒤를 바라보면 구마화산이 잘 보인다. 구마화산은 흥평진 앞을 흐르는 이강 변에 인접한 산으로 거대한 수직 절벽이 물가에 서 있다. 좁은 간격으로 9마리의 말이 붙어 있는 바위가 벽화처럼 보인다고 하여 구마화산이라 한다. 

흥평의 관광명소 중 하나로 상공산(相公山)을 빠뜨리면 곤란하다. 상공산의 상공(相公)은 중국어로 아내가 남편을 존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양삭현 흥평진으로 흐르는 리강의 서쪽에 위치한 아담한 산이다. 입구에서 20분 정도 오르면 정상인데, 여기서 바라보는 모습은 계림산수의 진면목을 잘 보여준다. 적절한 시간에 오면 일출, 운해, 노을 등을 잘 볼 수 있다. 운무가 낀 봉림(峰林) 아래로 이강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배들이 천하절경의 화룡점정을 이룬다. 

누가 그린 그림이 이곳보다 아름다울까. 끝없이 이어지는 봉우리와 봉우리, 산을 휘감아 유유히 흘러가는 강줄기,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애절한 마음과 눈물이 구름이 되어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모습이 하나 되어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문구 외에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상공산을 표현해 낼 수 없을 것 같다.
상공산을 내려와 이강을 잠시 벗어나 양제향(杨堤鄕, 양디썅)으로 가는 마을길은 서정적이다. 목가적 느낌이 가득한 마을은 우리가 어릴 때 흔히 보았던 시골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이곳 특유의 카르스트 지형과 봉우리가 있어서 그런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양제향은 양삭으로 내려가는 수상 출입문이자 이강이 양삭으로 유입된 후 가장 먼저 나타나는 풍경구다. 계림의 일반적인 산세와 달리 산봉우리가 돌출되어 있다.

양삭 유공촌 마을


계림 중의 제일 경관, 노채산
흥평마을의 노채산(老寨山)을 가보지 않았다면 계림을 제대로 여행했다고 말할 수 없다. 계림의 산수가 천하제일이고, 양삭의 산수가 계림에서 제일이라면, 단언컨대 흥평마을의 풍경은 양삭에서 제일인 노채산을 올라야 한다. 

노채산은 흥평하와 이강이 합류하는 선착장 지점에 있다. 부근에는 기이한 산봉우리가 둘러싸고 있어 경관이 매우 뛰어나다. 입장료는 따로 없어 산 정상까지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오르면 우호정(友好亭)에서 탁 트인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기이한 산봉우리와 하천으로 둘러싸여 경관이 매우 뛰어나 주위의 수많은 산봉우리는 서로 빼어남을 다투는 듯 하며, 상공산에 비견될 정도로 풍경이 환상적이어서 몇 시간이라도 머물고 싶어진다.

동양화 속으로 들어서다
등산을 마치고 흥평마을에서 양삭으로 가는 두 번째 라이딩을 시작한다. 강변을 따라 가파른 대주령을 넘어 노인동과 대산을 거쳐 리강에 위치한 폭포당으로 가는 길은 수없는 업다운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강 변에 있는 폭포당 마을에서 양삭까지는 이강의 물줄기를 따라 편안하게 라이딩 할 수 있는 코스다. 고주촌-양매평-월랑주-상탄으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마을을 거치면서 이강 변에서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계림에서 양삭에 이르는 이강 유람은 한 폭의 동양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인데, 강물이 산속 깊숙이 돌아 흐르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진귀한 곡선의 산봉우리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가히 선경이라 할 수 있다. 이강 곳곳을 유람하다보면 가마우지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대나무 쪽배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계림의 그림 같은 풍경은 이강에서 배를 타고 감상하는 것이 최고인데, 그 때문에 계림을 찾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배를 타고 이강을 따라 내려가며 절경을 감상하는 ‘이강유람’을 선택한다.
양삭(阳朔)에 도착하니 모든 게 새롭다. 양삭은 계림시 남쪽에 위치하며, 계림시에 속한 현(縣)으로 흥평진(兴坪镇)을 포함한 작은 도시지만, 기암에 둘러싸인 시가지는 마치 선계와 인간계가 함께 공존하는 도시로 착각하게 만든다. 

양삭공원 앞에 있는 서가(西街) 거리는 유명하다. 이 시장 거리는 1674부터 서양인들이 몰려들어 상거래가 발달해 동서양의 먹거리, 마실거리, 유명브랜드 제품, 기념품 등 다양하다.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중국전통 재래시장 거리로 각종 중국 골동품과 공예품, 서양식 카페와 음식점, 술집 등이 즐비하다.

양삭현 유공촌
경치가 계림에서 최고라는 양삭은 계림으로부터 동남쪽으로 약 80km, 대중교통으로 약 1시간30분 거리에 위치해있다.  양삭은 광시좡족자치구 내에서 단연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소박한 시골마을이다.  계림 중에서도 빼어난 경치로 찬미되는 양삭은 외국인 자유·배낭 여행객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외국인 거리로 불리는 ‘양삭서가(陽朔西街)’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숙박·식사·쇼핑 등 많은 편의시설이 밀집해 있다. 시골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여행객들은 전혀 불편함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오전에는 양삭의 서남쪽에 위치한 유공촌 마을 주변을 둘러보는 코스다. 이강을 끼고 살아가는 마을과 수려한 봉림(峰林)의 향연을 한없이 볼 수 있는 코스다.
이강 양안(两岸)의 산봉우리는 우뚝 솟아 천태만상으로, 기기묘묘한 암봉에는 수많은 관목과 작은 화초가 무성해 멀리서 바라보면 미녀가 치마를 두른 것 같이 보인다.  

강둑의 사시사철 푸르른 관음죽은 마치 소녀가 입은 치맛자락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자태를 연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은 물에 비쳐 또렷하다가 흐려지는 산봉우리의 전경과 강에 떠있는 몇몇 고기잡이배는 한 폭의 전형적인 중국 수묵화가 되어, ‘백리 이강’, 또는 ’백리화랑’이라고 부르고 있다. 

기봉에 둘러싸인 양삭 시가지
수많은 동서양 가게가 모여 있는 양삭 서가 거리
양삭 십리화랑길에서 바라본 우룡하 풍경. 원시적 뗏목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셔터를 누르면 산수화가 된다. 흥평마을을 흐르는 이강으로 구마화산 방향이다

 

풍경화 속 십리화랑
양삭 시내에서 서가 반대방향으로 쭉 가면 십리화랑이 시작된다. 양삭 필수 여행지로 유명한 십리화랑(十里畵廊)은 꼭 자전거로 가야 한다. 구경하면서 왕복하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대용수, 월량산, 용담고진, 호접천(나비동굴), 금수동굴 등 볼거리가 많지만, 그만큼 들어가는 곳마다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름처럼 십리화랑길은 가르스트 지형의 아름다운 봉우리들 때문에 풍경화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든다.

십리화랑길에 들어서서 맨 처음 닿는 곳은 호접천(蝴蝶泉)이다. 호접천을 일명 ‘나비동굴’이라 부른다. 커다란 암벽에 거대한 나비가 날개짓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나비 조형물 아래의 동굴로 입장하면 다양한 종유석을 볼 수 있으며, 구름다리를 건너는 코스도 있다.  

뱃놀이 관광의 황홀경
역시 이강 관광의 핵심은 뱃놀이 투어다. 이강 변에는 수없이 많은 뱃놀이 선착장이 있다. 어디를 가든 뱃놀이 투어는 비슷하다. 하나는 대형 유람선이고 또 하나는 대나무 뗏목을 타는 것이다. 대나무 뗏목은 이제 더 이상 순수한 대나무 뗏목이 아니라 플라스틱 파이프를 엮어 만든 인공 뗏목이다. 거기다 소형 모터를 설치해서 모양만 뗏목이지 모터보트나 다를 바 없다. 그래도 재래식 대나무 뗏목의 운치를 느끼고 싶다면 십리화랑길에 있는 우룡하(遇龍河)에서 타야 한다. 

우룡하 뗏목 투어는 83km의 이강 유람의 종착지이자 이강의 지류인 우룡하에서 자연 그대로의 대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고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절경을 보는 것은 물론 깨끗한 물위로 반영되는 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십리화랑에 들어와 풍경화 속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대용수(大榕樹) 나무를 볼 수 있는 매표소가 나온다. 풍경구 안쪽은 작지만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거대한 녹색 우산처럼 보이는 용수나무는 1400여년 동안 이 부근을 지켜왔고, 현지인들은 이 나무를 신수(神樹)라 하여 신성시 여긴다. 

대용수 나무를 보고 다시 달린 곳은 최종 목적지 월량산(月亮山)이다. 산의 높이는 약 380m로 정상부 아래에 둥근 구멍이 뚫려있어 마치 하늘에 높이 떠 있는 보름달처럼 보인다. 산은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천천히 올라가도 30분이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세외도원(世外桃源)은 양삭현에 위치한 테마공원으로서, 진(晉)나라 때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상상속의 아름다운 배경들을 모토로 지어진 공원이다. 한폭의 수채화 같은 양삭의 전원 풍경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각종 건축물들은 흡사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니라 신선들이 노니는 곳에 와있나 싶을 정도로 몽환적이다. 도보관광과 수상관광이 모두 가능한 세외도원에서 유유자적 거닐며 속세에 찌든 스트레스를 훌훌 날려 본다.

 

흥평마을에서 대주령을 넘어 양삭으로 가는 길
십리화랑길의 호접천. 거대한 나비 조형물로 인해 일명 ‘나비동굴’이라 칭한다
십리화랑길 종착지점에 있는 월량산

 

과연 ‘계림산수 갑천하’
예로부터 계림의 아름다움에 대해 많은 시인묵객들이 찬미했지만, 진짜 직접 와보니 어디를 가도 한 폭의 산수화다. 이래서 ‘계림산수 갑천하’라 하였나 보다. ‘계림을 보지 않고 산수를 논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럼 계림산수의 핵심은 무엇일까? ‘계림을 보지 않고 산수를 논하지 말고, 양삭을 보지 않고 계림에 왔다고 하지 말라’는 말 그대로다. 황홀한 계림여행. 역시 양삭은 계림의 중심이라 칭할 만하다. 카르스트 지형으로 생성된 수많은 봉우리를 감돌아 흐르는 이강은 특이한 봉우리와 기암의 절벽 사이를 흐르기 때문에 계림만의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수많은 관광 유람선과 뗏목들의 향연 속에 한쪽 강어귀에는 나무 뗏목을 띄워 가마우지를 통해 유유자적 낚시를 하는 어부들의 모습은 빠름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지친 삶에 느림의 미학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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