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알프스에 온 듯, 간월재와 사자평 억새밭에서

천연의 요새이자 천혜의 비경, 영남알프스
진짜 알프스에 온 듯, 간월재와 사자평 억새밭에서

지리산 영역과 같은 3개 시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영남알프스는 1000m를 넘는 고봉이 10개나 밀집해 있는 영남 중부지역 최대의 산악지대다. 산상에 목가적인 억새고원이 많아 ‘영남알프스’로 불리며, 흔히 한강 이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지대로 꼽힌다. 곳곳에 임도가 잘 나 있어 스릴만점의 라이딩과 함께 천상의 억새밭과 웅장한 경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간월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간월재 풍경. 억새밭 뒤편으로 신불산(1159m)이 웅장하다(왼쪽 뒤편이 정상). 두 사람 사이에 간월재 휴게소 일부가 보이고, 왼쪽 길은 등억온천, 오른쪽은 천황산과 신불산 자연휴양림 방면으로 이어진다

 

코스  거리 46.5km
등억온천~간월재~ 배내고개~ 천황산~배내고개~ 신불산자연휴양림~죽림골~ 간월재~등억온천

꽤나 오랜만에 찾은 영남알프스다. 2007년에 울주군이 주최하고 자전거생활이 주관한 ‘제1회 울주7봉 전국MTB챌린지’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어느덧 11년이 흘렀는데 당시 등억온천에서 출발해 간월재로 올라가는 임도 업힐은 악명이 높을 정도로 힘들었던 코스로 기억된다.  

영남알프스는 영남지방의 중심부에 자리한 산악지대로, 울산(울주)과 경북(경주, 청도), 경남(밀양, 양산) 의 3개 시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산악지대를 일컫는다. 1000m 이상의 고봉이 10개나 밀집해 있는데 가지산(1241), 운문산(1195m), 천황산(1189m), 신불산(1159m), 재약산(1119m), 상운산(1114m), 영축산(1081m), 간월산(1069m), 고헌산(1034m), 문복산(1015m) 등이다. 

저지대에서 솟은 1000m 이상의 육중한 봉우리들이 즐비하고, 정상부에 억새초원을 이룬 고원이 많아 일제 때부터 일대를 통틀어 유럽의 알프스를 방불케 한다는 의미로 ‘영남알프스’로 불러왔다.
수치적인 산 높이는 대단치 않으나 낮은 지대에서 솟아올라 실제 비고가 높아 산 덩치가 크고, 억새가 장관을 이룬 산상고원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주요지역은 가지산도립공원과 신불산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간월재 직전의 가파른 헤어핀. 저 위로 간월재 휴게소가 보인다
간월재 오름길에서 잠시 쉬며. 뒤편으로 언양읍과 울산 시가지가 보인다
간월재 정상에는 거대한 돌탑이 세워져 있다. 해발 900m로 등억온천에서 꼬박 표고차 700m를 극복해야 한다

 

다시 오르는 ‘악몽의 간월재 업힐’
설레는 가슴을 안고 서울·경기권에 거주하는 지인들과 수서역에서 SRT 새벽 첫차에 몸을 싣는다. 목적지 울산역까지 소요시간은 2시간20분가량이 걸리고 울산역에서 등억온천까지 자전거로 약 8km 가면 출발지점이다.
등억온천 입구에서 나머지 일행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편의점에 들러 간단하게 요기를 마친 다음 비상식량을 챙긴다. 

등억온천 입구에서 작괘천을 따라 상류를 거슬러 1.4km 가서 왼쪽 침수교를 건너면 천상골가든이다. 이곳에서 간월재까지 6.4km의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임도는 간월재 정상까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 업힐하는데 큰 무리가 없지만 경사가 제법 가팔라 많이 힘든 구간이다.
깎아지른 낭떠러지와 벼랑을 따라 올라가는 임도는 울창한 숲터널을 자주 지나가고 눈에 보이는 건 오직 숲과 하늘뿐이다. 가슴이 터질 듯한 심장 박동과 가쁜 숨소리만 들릴 뿐, 언제 정상까지 다다를까 속도계만 바라본다. 

힘들게 업힐하는 우리 일행을 앞질러 수많은 라이더들이 쉴 새 없이 오르고 있다. 그것도 아주 가볍게 페달링 하면서 말이다. ‘소풍라이딩’을 즐기는 나에겐 그들이 그저 짐승처럼 보인다. 아마도 6월 영남알프스를 주무대로 개최되는 280랠리 때문에 사전 답사 겸 훈련을 온 라이더라는 직감이 든다. 36시간 동안 산악코스 280km를 달려야 하는 지옥의 280랠리도 올해로 벌써 19회째를 맞고 있으니 대단하다.
대회 참가를 접은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진 몇몇 라이더가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가 고통스럽다. 여전히 술·담배를 하니 대회참가는 물건너 갔고 천천히 경치를 음미하며 나만의 소풍라이딩을 즐길 것이다. 

해발 700m에서 간월재 정상까지는 헤어핀 구간이라 지그재그로 올라야 한다. 헤어핀 구간에서부터 서서히 하늘이 열리고 간월재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상당한 고도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발 아래로는 울주군 언양읍 일대와 울산 시가지가 아득하게 바라보인다. 
 

간월재 억새밭에 조성된 데크 탐방로. 뒤쪽으로 신불산이 둔중하다
간월재 직전의 업힐 구간. 왼쪽 가파른 산록 아래에 등억온천이 보이고 그 뒤는 언양읍과 울산 시내 방면

 

표고차 700m를 극복하고 오른 간월재
간월재를 오르는 막바지 구간. 간월산 공룡능선의 거대한 암릉이 나타나면서 간월재휴게소가 보인다. 드디어 힘들게 올라선 간월재. 맑고 파란 하늘과 너른 억새고원이 초록 빛깔로 환호해 준다. 해발 900m를 알리는 돌탑으로 쌓아 올린 표지석을 기념삼아 인증사진을 찍어본다.
해발 200m의 등억온천에서 900m의 간월재까지 7.8km인데 표고차는 무려 700m나 되어 그렇게 힘들게 올라온 것이다. 간월산은 계절에 따라 바람도 많고 사연도 많은 곳이다. 

간월산과 신불산 사이에는 10만여평의 억새밭이 있어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라이더와 등산객이 찾는다. 최근 간월재에는 목재데크 등이 잘 설치되어 있어 억새꽃이 만발하는 가을철이 되면 장관을 이룬다.
청정한 자연과 ‘요들송’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있다. 바로 스위스다. 싱그러운 목초지와 예쁜 야생화를 보며 걷는 간월재 산책길은 마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송’이 울려 퍼질 것 같은 풍경으로 사뭇 목가적이다. 

간월재에서 저 멀리 천황산과 재약산이 잘 바라보인다. 그 사이에 배내골이 깊은 골짜기를 이룬다. 배내골은 양산시 원동면 대리·선리와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로 이어지는 길이 16km의 골짜기다. 영남알프스의 고봉들이 감싸고 있으며 산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맑은 계류들이 모여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맑은 개울 옆으로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란다 하여 배내골이라 한다는 이곳은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오지로 꼽히는 양산시 대리, 선리가 중심이지만 울주군 이천리에서 시작된다. 상류는 울주군이고 하류는 양산시인 것이다.

간월재에서 천황산으로 가려면 약 6km의 임도가 끝나는 배내골 사슴농장 방향으로 가면 된다. 예전에는 차량이 다니곤 했는데 현재는 공무차량 외에는 차량 접근이 제한되어 있다. 임도는 완만한 내리막길로 왕봉골과 방방골, 리제골로 이어진다. 노면은 파쇄석이 섞인 비포장과 시멘트길로 이뤄져 있는데, 파쇄석이 깔린 길은 바퀴가 빠져 속도를 내면 위험하다. 

 

천황재에서 천황산을 도보로 오르며. 사람 뒤편의 작은 초지가 천황재이고 그 뒤의 봉우리는 재약산이다
사자평 억새밭길. 뒤편 왼쪽이 재약산, 오른쪽이 천황산이다
신불산 자연휴양림 상류 왕봉골에 있는 죽림굴 앞. 뒤편으로 임도가 숲을 가르고 맨 뒤에는 재약산이 웅장하다

 

사자평의 일대 장관
간월재에서 임도를 내려오면 차단기가 설치된 곳이 사슴농장 입구로 배내골로 이어진 69번 지방도를 만나게 된다. 우측 오르막길을 1.3km 가면 터널이 보이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다시 우측으로 진입하면 나오는 넓은 공터가 배내고개 정상이다.
해발 690m의 배내고개는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와 덕현리의 경계지점으로 69번 지방도는 배내골을 관통한다. 북쪽 덕현리에는 유명한 통도사의 말사인 석남사가 있으며, 석남터널과 가지산터널을 통과하면 밀양시 방향으로 천황산 얼음골 케이블카와 천년고찰 표충사가 있다. 

배내고개 정상에서 천황산 가는 임도가 시작된다. 임도는 대부분이 비포장으로 천황산 정상까지는 8.7km이다. 이 코스는 여느 임도와는 사뭇 다르게 탁 트인 개방감이 좋다. 깊은 산 능선길은 하늘만 보이다가 어느 순간 온 세상이 눈앞에 쫙 펼쳐지는 시원한 전망을 보여준다.   
배내고개에서 920m의 능선까지 처음 2.7km 가량은 고달픈 업힐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하늘 능선길로 재미있는 업다운이 반복된다. 울창한 숲과 하늘이 맞닿은 듯한 능선길에는 수목과 기묘한 바위들이 어우러져 사시사철 사랑받을 만한 코스다.  

배내고개에서 5.7km 오르면 탁 트인 고원이 펼쳐지면서 샘물상회 갈림길이 나온다. 샘물상회는 천황산과 재약산으로 가는 등산객이 꼭 들리는 참새 방앗간 같은 곳으로 과거 샘물상회에서 라면과 막걸리로 허기를 때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입하면 천황산 능선으로 가는 등산로이고, 좌측으로 들어서면 천황산 바로 아래의 천황재로 가는 거칠면서 아기자기한 임도 구간이다. 좌측 임도로 가는 것이 편하고, 천황재에서 걸어서 천황산 정상을 밟기를 추천한다. 

천황산과 재약산 사이의 천황재(915m)에는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 자전거를 묶어놓고 걸어서 데크 계단과 흙길을 번갈아 가면서 1km를 올라가면 천황산 정상에 다다른다. 육산과 골산이 뒤섞인 정상에는 거대한 암벽이 있고, 능선은 모두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황산의 동쪽은 대체로 경사가 완만하지만, 북서쪽은 급경사를 이룬다. 천황산의 주봉을 사자봉이라 한다. 높이는 해발 1189m이고 남동쪽 직선거리로 1.6km에 위치한 재약산의 주봉 수미봉(1119m)과 함께 쌍둥이 봉을 이룬다. 별도의 이름이 붙었지만 너무 가까워 하나의 산으로 보는 것이 맞다.
재약산 동남쪽에는 사자평(獅子坪)이란 한없이 넓은 억새밭이 있고 서쪽 기슭에는 유명한 표충사(表忠寺)가 있다. 동쪽은 고원이나 서쪽은 수백 길 바위절벽이다.

재약산 남동쪽에 펼쳐진 사자평은 넓디넓은 억새밭이다. 전국에서 가장 넓은 억새밭으로 알려진 사자평은 약 125만평으로 가을이 무르익어 가면 황금물결 일렁이는 장관을 만끽하면서 세속에 찌든 번뇌를 씻겨버릴 수 있겠다.
천황재에서 재약산 수미봉을 우회하면 표충사로 내려가는 임도가 연결되어 있다. 천년고찰 표충사에서 느긋하게 절을 배경으로 천황산과 재약산을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시간적 여유가 허락된다면 가볼만 하다.
 

천황재에 자전거를 두고 걸어서 천황산 정상에 올랐다. 가지산과 운문산이 더 높지만 입지와 분위기, 이름에서 천황산이 영남알프스의 중심으로 여겨진다

 

신비와 사연 간직한 배내골
우리 일행은 천황재에서 회차해 다시 배내고개로 향한다. 배내고개에서 69번 지방도를 만나 남쪽 배내골 방향으로 3.6km 내려가면 좌측으로 신불산자연휴양림 가는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이정표에서 간월재까지는 4.7km로 오직 업힐 구간이다. 특히 입구에서 신불산자연휴양림 갈림길까지의 1.9km 구간이 제일 힘들다. 웬만하면 이 코스로 간월재로 안가는 것이 좋다. 앞서 지나왔던 배내골 위쪽의 사슴농장에서 완만한 임도로 진입하는 게 좋다. 

신불산자연휴양림 갈림길이 나오면 왕봉골 골짜기를 만나게 된다. 두 길 모두 왕봉골을 따라 임도가 개설되어 있어 간월재로 오를 수 있다. 왼쪽 길로 오르면 죽림굴이 나온다. 왕방골 상단에 있는 죽림굴은 작은 천연동굴로, 구한말 천주교 박해 시 천주교도들이 관아의 압박을 피해 활동하던 대재공소(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단위의 성당)가 있던 곳이었다고 전해진다. 

힘들게 다시 올라 온 간월재에서 많은 시간을 갖고 달콤한 휴식을 취해 본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기약할 수 없는 간월재에서 영남알프스 풍광을 가슴과 눈으로 가득 느껴보고자 간월산 전망대에 올라선다.
배내골을 중심으로 맑고 파란 하늘 아래 고산준령이 나무뿌리가 뻗어나가듯 연이어 있다. 영남알프스는 산을 타고 넘어 다른 지역으로 노출되지 않는 천연의 요새였다. 배내골은 협곡 속의 외길이라 골짜기 양쪽을 장악하면 독 안에 든 쥐와 같이 적을 소탕하거나 반대로 방어할 수 있는 천혜의 지형임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는 배내봉을 시작으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오룡산과 염수봉이 남북으로 뻗어있고, 북쪽에는 영남알프스의 최고봉인 가지산에서 뻗어나온 능선이 서쪽으로 능동산과 천황산, 재약산을 거쳐 항로봉까지 이어지면서 배내골 양쪽으로 1000m가 넘는 고봉이 에워싸듯 솟아있다.
한강 이남에서는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영남알프스. 대관령 목장에 버금갈 만큼 아름다운 이곳에 올 가을에는 e-MTB를 가지고 좀 더 여유롭게 돌아보리라 다짐해보며, 등억온천단지로 신나게 내려온다.

 

 

Tip
울주군 상북면 알프스리(옛 등억리)에는 등억온천단지와 간월산자연휴양림이 있다. 휴양림은 단체나 가족 단위로 야영하거나 방갈로를 이용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고, 등억온천은 피로를 풀 수 있는 온천욕 시설을 갖추고 있다. 등억온천은 국내최대 규모의 온천단지로 수온 29~33도의 알칼리성 중조천이다. 22만평에 달하는 등억온천은 신불산, 간월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산과 인접해 있어 경관도 아름답다. 목가풍의 산을 등반한 뒤, 흘린 땀과 쌓인 피로를 온천에서 시원하게 씻어 내리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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