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의 바다를 횡단하고, 천지까지 두바퀴로 오른 절대 감동

백두산을 라이딩하다!
수림의 바다를 횡단하고, 천지까지 두바퀴로 오른 절대 감동

백두산을 자전거로 만났다. 중국측에서 백두산을 오르는 길은 가장 오래된 북파 외에 서파, 남파 세 코스가 있는데 서파에서 북파 입구 이도백하까지 침엽수와 자작나무가 밀림을 이룬 수림의 바다를 항해하고, 남파는 천지를 에워싼 주능선까지 자전거로 올랐다. 더없이 맑은 하늘 아래, 광활한 백두산 기슭과 고요에 잠긴 천지를 눈의 감동과 가슴의 감격으로 대면했다

 

백두산 남쪽 기슭을 올라가는 남파산문 코스로 업힐하는 도중 해발 약 2000m 지점에서 남서쪽으로 내려다본 모습. 백두산은 남쪽에 기생화산이 여럿 있어서 협곡과 다소 복잡한 지형을 이룬다. 왼쪽 구름을 인 산은 대규모 기생화산인 망천아봉(2051m)이다.멀리 저지대 기슭에는 구름바다가 하얗다

 

오래전 백두산 라이딩을 위해 동호인들과 함께 배편으로 밤새 서해를 건너가 다시 장장 8시간 이상을 버스로 이동해야 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강행군으로 심신이 피로해지는 경험을 한 일행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는 백두산은 두 번 다시 라이딩으로 오고 싶지 않다는 말들을 했다. 나 또한 그러했다.
꼭 10년만에 다시 백두산을 찾는다. 한국인에게 백두산은 ‘민족의 성산’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죽기 전에 한 번은 가봐야 하는 산으로 한민족 근원지를 찾아가는 일종의 순례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장백산에 백두산은 없다
특히 만주지역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근거지로 많은 유적이 남아 있어 민족의 혼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의 영토여서 아쉽게도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는 게 자유스럽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백두산과 만주는 우리에겐 이미 잃어버린 과거의 땅이 되었다. 다시 우리의 땅이 될런지 알 수 없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의 땅이었다는 과거와 되찾겠다는 미래에 대한 상상과 착각은 자유다.
우리에게는 ‘백두산(白頭山)’이지만, 중국에서는 ‘장백산(長白山)’이라 불린다. 백두산 천지에 올라서도 백두산이라는 호칭을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고, 현수막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패배자의 비통함은 결국 이런 것이다. 

백두산 가는 길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항공 노선으로는 장춘, 연길, 대련이 있지만, 연길(延吉, 옌지)이 가장 가깝다. 백두산 서파에 장백산공항이 있으나 중국 국적기만 운항한다.
바닷길은 인천항에서 단동항, 대련항, 영구항으로 가는 방법이 있으며, 단동항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다.
백두산을 오르는 길은 동·서·남·북 네 곳이 있다. 중국쪽 백두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북파산문(北坡山門), 서파산문(西坡山門), 남파산문(南坡山門) 등 세곳이 있고, 북한쪽으로는 삼지연으로 들어가는 동쪽 코스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최고봉인 장군봉(2750m)은 북한쪽에 있어, 사실상 백두산을 간다는 것은 중국쪽의 세 코스로 올라 천지를 보는 것을 뜻한다. 
북파산문, 서파산문, 남파산문을 줄여서 북파, 서파, 남파로 부르는데, ‘파(坡)’는 언덕, 고개, 비탈의 뜻이다. 산문(山門)은 말 그대로 ‘산 입구’로 백두산에 오르기 위한 입장권을 판매하는 관광센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민족의 성산도 마음대로 못가는 현실
한국인에게 백두산 여행은 한·중 관계와 매우 밀접하다. 사드 여파가 한창 불거질 무렵 여행업계를 비롯한 우리나라 경제에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러던 것이 사드문제가 서서히 잦아들고 중국이 한국행 단체관광객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한국인의 백두산 여행도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이번 백두산 자전거여행은 여행사 ‘고구려닷컴’을 통해 단동페리로 떠나는 여정이다. 고구려닷컴의 백두산 자전거 여행은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근래에 붐이 일어 올해도 많은 라이더들이 다녀와 사진과 동영상을 접하고는 있었다.
백두산 서파와 남파를 자전거로 오르는 사진들을 보고 지인들에게서 백두산 투어 안가느냐는 요청을 여러 차례 들었지만 단동에서 백두산까지 가는 과거의 여정이 악몽으로 되살아나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고구려닷컴이 기획한 여행은 특히 일부 구간이지만, 천지를 자전거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이 획기적이었다. 고속도로가 뚫려서 버스 이동시간도 훨씬 줄어들었다는 희소식까지 들려 10년만에 다시 백두산행을 나섰다.  

압록강 라이딩 강을 사이에 둔 극단적 대비
인천에서 단동페리를 타고 16시간을 가면 북한 신의주와 압록강을 사이로 마주한 단동시(丹東市) 동강항에서 하선한다. 단동시내로 이동해 압록강공원에 있는 압록강 단교를 관람하고, 압록강을 따라 상류로 약 50km를 라이딩 한다.
압록강공원은 단동을 중심으로 상류에서 하류까지 아주 길게 조성되어 있다. 신의주와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 월량도 등 북한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에 북한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조·중우호교가 북한과 연결되어 있고 바로 옆에 6·25전쟁 때 미군에 의해 폭파된 압록강 단교가 있다. 입구에는 전쟁의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한국전쟁 참전기념비’와 군인들 동상이 세워져 있다. 물론 당시의 중국군이다. 
압록강변을 따라 달리다 보면, 중국과 북한의 강 양안에 쳐진 철책과 초소가 군데군데 보여 압록강이 북중 국경선임을 알리고 있다. 지척으로 위화도가 바라보인다. 위화도는 성분이 좋은 군인가족들이 사는 살림집이 있다. 3층짜리 건물이 강변에 늘어서 있지만 너무 남루해서 오히려 거대한 수용소 같은 느낌이 들어 암울하다. 철책 뒤로 펼쳐진 너른 습지에는 옥수수 밭이 펼쳐져 있다. 열악하기 그지없는 북한 땅과 반대로 해가 갈수록 발전하는 중국 땅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극과 극을 달린다. 
호산산성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다. 호산산성은 고구려가 압록강을 방어하기 위해 전략 거점으로 쌓았던 성곽으로 역사기록 상의 ‘박장성(泊灼城)’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동북공정에 의해 있지도 않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으로 설정해 성을 중국식으로 복원하면서 호산산성으로 둔갑시켜 놓았다고 한다.
50km가 채 안되는 라이딩을 마치고 버스로 통화(通化)로 이동하는 길. 잠시나마 오녀산성을 바라 볼 수 있었다.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나라를 세우고 최초로 쌓은 졸본성으로, 환인현에서 동북쪽으로 8.5km 떨어진 오녀산 위에 있다. 산성은 해발 820m에 남북 길이 1000m, 동서 너비 300m쯤 되며, 고구려의 수도 집안과 서쪽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대에 위치해 있다.
차창 밖으로 스쳐 보이는 산천초목은 우리의 땅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길가로는 옥수수 밭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압록강변을 따라 달리는 호반길 라이딩. 갓길이 넓고 잘 정비된 호반도로 반대편으로 누추한 북한 땅이 계속 보인다
단동시 압록강변에 조성된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압록강을 넘어 남진하던 중국군의 모습이다. 이들 때문에 통일이 무산됐는데…
6 · 25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단동의 압록강 단교
기록상의 ‘박장성’으로 추정되는 고구려 성곽을 중국식으로 복원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홍보하는 호산산성
차창으로 잠깐 본 오녀산성. 주몽이 도읍한 졸본성이 있던 곳이다

 


백두산 서파 라이딩  울창한 삼림지대 관통
통화에서 3시간을 달려 서파산문 입구의 천사호텔(天賜旅遊度假村)에 도착해 점심식사를 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이라서 처음에는 놀랐는데, 고구려닷컴 신정범 대표가 2016년에 인수해 운영중이다.
호텔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백두산에서 내려오는 천마계곡의 폭포수와 저수지를 만날 수 있고, 왼쪽은 지방도 진입로로 숲에는 자작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산책하기에 알맞다.
호텔 인근에는 폭포수에 나무데크를 설치해 언제든지 물을 만질 수 있고, 저녁식사는 각종 야채와 무제한 통돼지 바비큐로 입을 즐겁게 해준다. 옆마당에 설치된 포차에서는 노래 한 자락도 부를 수 있다.
특히 서파산문에서 시작해 천사호텔로 이어지는 래프팅은 추천할 만하다. 천마계곡에서 래프팅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기에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다.
서파 라이딩 코스는 천사호텔에서 출발해 북파 입구의 이도백하(二道白河)까지 약 80km 구간이다. 시간 여건상 이도백하까지 갔다가 다시 차량으로 돌아오기에는 무리가 있어 중간지점에서 되돌아와야 한다. 이 코스는 백두산 서파의 해발 900~1100m의 울창한 삼림지대를 지나가며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양 옆으로 자작나무 숲을 감상하며 달릴 수 있다. 업다운이 그리 심하지 않아 힘들지 않게 달릴 수 있다.
대체로 서파에서 이도백하로 이어지는 코스는 단조로워 지루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파의 울창한 삼림지대에는 숨겨진 다양한 오프로드가 존재한다. 그러나 진출입구마다 감시초소와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가이드 말로는 조만간 산악자전거를 위한 트래킹 코스를 개설할 계획이라니 기다려볼 일이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밀림 사이로 직선로가 아득하다
하얀 몸통을 드러낸 자작나무 숲이 길가로 지천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서파산문 입구의 천사호텔에서
서파에서 북파로 가는 삼림 길. 평지 같지만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백두산 기슭이다

 


백두산 남파 라이딩 주능선까지 자전거로 오르다
이번 백두산 투어의 백미는 남파 코스다. 산 중턱의 악화폭포에서 천지까지 자전거로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은 실로 고무적이다. 호텔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해 버스로 1시간30분을 가야 남파산문에 도착한다. 이렇게 일찍 나서는 이유는 공식적인 관광이 시작되는 8시 이전에 천지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일반 관광객은 버스로 오른다).
남파산문(1360m)에서 남파 정상(2530m)까지는 30.8km로 표고차는 1170m나 된다. 남파산문에서 악화폭포까지 약 16km는 차량으로 오른 후 라이딩을 시작한다. 악화폭포(1750m)에서 남파 정상까지 표고차 789m, 거리 15km를 고스란히 자전거로 올라야 한다. 컷오프 시간은 3시간으로 8시까지는 정상부까지 열심히 가야 한다.
구름 한 점 없는 시퍼런 하늘. 백두산의 용암대지를 힘들게 오르면서 모두들 탄성을 질러댄다. 조상 3대가 복을 받아야 볼 수 있다는 천지아니던가. 가이드가 말하길 이렇게 쾌청한 날씨는 자신도 처음이란다. 사실 이번 투어팀은 하늘이 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천지가 가까워질수록 산 아래를 자주 내려다보게 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용암대지의 웅잠함과 용암이 흘러내린 계곡의 꿈틀거림은 아직도 살아 숨쉬는 듯 하다. 끝없이 펼쳐진 삼림을 보노라면 어디가 백두산의 시작이고 끝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다.
 

해발 1800m를 넘어서면 수목이 사라지고 광활한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사면의 경사는 고도가 높을수록 점점 가팔라진다
백두산의 장관은 천지와 함께 넓고 완만하게 펼쳐진 산기슭에 있다
이런 날씨는 연중 몇 번 없다는 천지의 쨍한 모습. 맞은편 정면이 장백폭포로 물이 빠지는 달문이고 정상인 장군봉(2750m)은 오른쪽 화면 밖에 있다
서파산문에서 천사호텔 사이 천마계곡에서 래프팅을 즐길 수 있다

 


강원도보다 넓은 산
백두산의 영역은 천지에서 분출한 용암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굳어진 용암대지를 포함한다. 천지에서 내려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밀림이 펼쳐져 있는데, 겉보기는 대평원 같지만 실은 완만한 경사도를 이룬 백두산의 기슭이다.
화산 폭발로 이루어진 백두산의 면적은 과연 얼마나 될까? 높이는 2750m에 불과하지만 바닥 지름은 무려 150km에 이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는 강원도 전체 면적과 비슷하다. 천지를 중심으로 동쪽의 대흥단까지 약 65km, 서쪽 송강하까지 52km이며, 북쪽의 이도백하까지 50km, 남쪽의 혜산시까지는 약 70km이다. 이는 도시 기준으로 대략적인 거리를 잰 것으로 실제로는 용암과 화산재가 쌓인 범위는 더 넓다.  
직경 150km에 높이 2.7km의 백두산을 상상해 보자. 그게 어찌 산으로 보이겠는지. 백두산의 관문인 북파는 해발 1100m, 서파는 980m, 남파는 1350m에 위치해 있다. 즉 산문이 시작되는 1000m 지대에서는 백두산의 정상부인 종상화산만 보이니, 우리가 지나온 1000m 이하의 삼림지대는 산으로 보지 않은 결과다.

천지가 보인다!
드디어 천지 주차장에 도착, 천지를 알리는 표지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천지를 바라본다. 맑고 파란 하늘 아래 탁 트인 천지는 한 점 출렁임도 없는 고요함으로 순결한 영혼이 깃든 정령의 호수가 되어 펼쳐진다.
티 없이 맑고 영롱한 천지를 배경삼아 모두들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고 관리인들은 큰소리로 고함을 치며 성가시게 군다. 말뚝을 세워 길게 줄이 쳐진 너머는 금단의 땅, 북한 영역이라 관리인들의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남파 바로 옆으로 조·중국경선이 지난다.
천지는 기상변화가 심해서 거센 바람과 폭풍우 발생이 빈번하기 때문에 모든 방문객이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투어팀은 하늘의 특혜를 받았다. 한민족은 하느님의 자손이라 하지 않았던가. 즉 우리는 천손인 것이다. 

백두산 투어의 적기
백두산 자전거투어는 6월 중순에서 9월 중순까지가 적기다. 백두산의 사계(四季)를 보면, 봄은 5~6월로 봄과 겨울을 동시에 느낄 수 있고, 여름은 6월 중순~8월 말로 관광하기에 가장 좋은 시즌이다. 가을은 9~10월 말로 9월이면 이미 첫눈이 내리고, 겨울은 10월 말~4월 말로 자전거투어는 거의 불가능하다.
올해는 이미 늦었지만 내년이라도 고구려닷컴에서 진행하는 백두산 자전거투어에 꼭 참여해 보기를 권한다. 현지 가이드의 정확하고 철저한 준비로 라이딩 내내 안전이 보장되며 평생 잊지 못할 감동과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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