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를 벗어나 태평양 따라 북으로 북으로

일본 북부 방랑기➀
도쿄를 벗어나 태평양 따라 북으로 북으로

이번에는 일본 북부 방랑이다. 도쿄를 떠나 태평양 연안을 따라 치바현, 이바라키현, 후쿠시마현, 이와테현 방면으로 북상한다. 도쿄에서 시작된 6번 국도는 우리의 7번 국도처럼 해안을 따라 북상한다. 후쿠시마에서는 사고 원전을 피해 100여km를 덤프트럭으로 점프하는 행운을 누렸다. 곤란할 때마다 나타나는 귀인과 의인 덕분에 나의 애마 ‘구르미’의 바퀴는 더욱 힘을 얻는다

태평양 연안을 따라가다 보니 해변 캠핑장을 자주 이용하게 된다. 바닷가 절벽 위에 자리한 미야기현의 카미와리자키 캠핑장에 마련한 하룻밤 잠자리

 

D-1  7월 14일
톱질 전에 톱을 갈다, 쓱싹 쓱싹!!

나무를 베는데 현명한 이는 톱을 가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준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오늘부터 방학이라 내일 떠날 여행준비를 시작한다. 
그동안 침대 밑에서 휴식하던 놈들을 일으켜 세운다. 텐트, 침낭, 매트리스, 간이의자 등등. 그리고 얼마 전 오버홀을 해서 더욱 핸섬해진 애마 구르미의 어깨에 갑옷을 입히듯이 캐리어를 부착한다. 패니어 백에 세면도구와 옷가지, 의약품, 지도 등을 꼼꼼히 챙겨 담는다. 슬리퍼와 읽을 책도 담았으니 이만하면 뒤를 돌아볼 일은 없으리라. 더욱이 두툼한 지갑을 보니 배짱마저 두둑해진다.  
점심을 먹고 나니 눕고 싶어지는 몸을 이끌고 찌는 여름골목을 지나 목욕탕에 들어섰다. 이 무더운 오후에도 이열치열 일본인이 그득하다. 시금치를 데치듯이 더운 물과 찬물을 오간다. 딱 맞게 익은 몸의 때를 빡빡 밀고 면도도 치밀하게, 양치도 칫솔이 망가질 정도로 왕복한다. 저녁을 먹고는 이발까지 하고 코털도 고르고 손발톱도 깎는 등 몸과 마음을 최대한 비우려한다. 하안거를 앞둔 성철스님 흉내를 제대로 내본다. 
기숙사 이사장 부부가 안전 여행을 기원해 준다. 한국의 집사람과 딸 갱도 차 조심하고 자기 몫까지 즐기고 느끼고 오란다. 유석이가 구르미 체인에 기름을 쳐주고 바람도 넣어주고 핸드폰 거치대도 달아준다. 모두들 고맙기만 하다. 
내일 새벽에 떠나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 윔블던 테니스 준결승에 빠져 버렸다. 나달과 조코비치가 내 갈 길에 버티고 있다.

애마 ‘구르미’에 패니어를 달고 눈에 잘 띄는 저지를 입었다

 

1일차 7월 15일
도쿄를 벗어나 6번 국도 타고 북으로

결국 4시 반 알람을 무시하고 6시에 일어나 라면에 밥을 말아 후루룩하고는 7시에 집을 나선다. 일요일 아침이라 거리는 한산하고 아직은 시원하다. 어제 결정한 6번 국도를 향해 와세다 거리를 달린다. 비록 패니어 백이 가볍진 않지만 반바지 차림이라 그런지 아니면 들뜬 마음 때문인지 구르미와 나는 한몸이 되어 신나게 나아간다.
사실 첫출발해서 가고자 하는 길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나처럼 구글지도보다는 종이지도와 거리 표지판을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그래서 오감을 총동원해서 살피고 또 살피면서 달린다. 아카사카교역을 지나니 바로 6번 국도가 나온다. 바로 당첨이다. 첫 화살이 10점 만점이다. 알아봐 주는 이가 없어 못내 아쉽다.
6번 국도는 치바현 북쪽을 지나 이바라키, 후쿠시마, 센다이 등 혼슈의 동쪽 즉, 태평양 옆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다. 우리나라 동해안의 7번 국도인 셈이랄까.
도쿄 심장부를 흐르는 스미다 강 건너 스카이트리와 아사히 본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자전거길. 야구장과 골프장이 강변에 즐비한 아라 강을 건너고 에도 강 다리를 지나면 치바현(千葉縣)이다.
이제 해도 중천까지 올라 앉아 본격적으로 세상을 달구기 시작한다. 치바 이치가야시를 지나니 뜨거운 여름 볕에서 서로 키재기를 하는 논의 벼가 새파랗다. 여기는 평야지대라 펼쳐지는 길도 완만해서 거침없는 페달링을 2시간 넘게 해도 별로 지치지가 않는다.
띠리링~~. 페이스 톡이다. 둘째의 폰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걱정하실까봐 연락 안드렸는데 텔레파시가 통했나보다. 역시 우린 환상의 모자 콤비. 온몸에 원기소가 퍼져나간다.

호반의 캠핑장으로 안내해준 ‘귀인’ 
트랙터 등 농기계를 파는 가게가 보이고 논밭과 과수원이 있고 고향의 내음도 풍겨오는, 우리네 농촌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정겨운 모습들이다.
이제 몽우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감! 아직은 솜털 같은 밤송이! 뜨거운 여름을 토해내는 백일홍! 담장에서 너울거리는 능소화! 자주 보여서 기분 좋은 무궁화! 그리고 중랑천을 떠오르게 하는 파초의 붉은 자태들~. 이 황홀한 풍경에 오디오가 빠지면 섭섭하지~. 매미는 열심히 여름을 노래하고 있다. 맴맴~~.
오후 4시가 넘어서고 있다. 슬슬 오늘 밤 머물 장소를 알아봐야겠다. 6번 국도를 벗어나 이바라키현(茨城) 미토(水戶) 시내를 찾아들어간다. 지도상에는 제법 큰 도시로 표시되어 있는데 초입이라 그런지 시골 읍 풍경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노부부에게 캠핑장이나 호텔을 물어본다. 바로 그때 뒤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귀인’이 납신다. 좋은 캠핑장이 있다며 따라오라면서 사이클로 앞서간다. 차림을 보니 ‘한’ 라이딩 할 것 같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확 트인 호수가 보인다. 히누마란다. 미즈우미는 호수, 이케는 연못이며 누마는 늪인데… 그러나 이곳은 수초나 물풀이 하나도 없는 호수 수준이다. 호수 옆에 푸른 잔디가 펼쳐진 오야자키캠핑장은 텐트가 즐비하다. 그야말로 천국의 모습이다. 음수대와 넓은 화장실이 있지만 아뿔싸, 식당이나 슈퍼가 없단다. 덕분에 더 맛있는 맥주를 마시게 되는 건가. 왕복 7km를 달려 먹거리를 장만했다. 꿀꺽꿀꺽~~ 혀까지 삼킬 뻔 했다. 

6번 국도를 따라가면 도쿄를 벗어나 태평양을 따라 북상하게 된다
도쿄시내를 벗어나며 바라본 높이 634m의 스카이트리와 맥주잔 모양의 아사히 본사 건물
같은 입장의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면 무조건 반갑다
이바라키현 미토(水戶) 외곽 히누마 호숫가에 있는 오야자키 캠핑장에서 첫밤을 보냈다
도깨비가 일본까지 진출했다

 

2일차 7월 16일
텅 빈 캠핑장에서 만난 ‘천사 가족’

물새가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며 잠을 깨운다. 오랜만에 든 텐트 속이 덥고 답답하여 열어 제켜둔 틈새로 호수풍경이 펼쳐져 있다. 하늘인지 물인지, 물안개의 아스라함은 꿈속인지 현실인지.
하얀 장막을 살포시 열며 수줍은 햇님이 얼굴을 내민다. 저런 새색시가 몇 시간 뒤에는 성난 황소로 변한다니·… 그건 나중의 일이고 어쨌든 지금의 행복을 차곡차곡 접어 패니어 백에 담으면서 하룻밤 이웃인 브라질 대가족과 작별한다. 삼바축제의 브라질인들과 난생 처음 대화를 하는 것도 신기하고 일본어로 뜻이 통하니 더욱 각별했다. 그러다 아리송하면 맥주 캔을 부딪치면 만사 오케이다. 브라보~~
호수주변의 자전거도로를 유유히 빠져나와 50번 현도를 거쳐 6번 국도에 복귀했다. 왕복 2차선 국도는 벌써 차들이 밀리기 시작한다. 황금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귀가길 차량이 몰리기 때문일 것이다. 7월의 세번째 월요일은 ‘바다의 날’로 이름 지어진 공휴일이다. 일본에서는 몇해 전부터 샐러리맨들을 위해 국경일과 관계없이 한달 중 월요일 하루를 택해 그냥 노는 날로 정하기로 했단다.
우리와 달리 서고동저의 일본지형을 실감한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은 동쪽지역이라 터널 하나 없는 완만한 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오늘은 내리막이 더 많은, 그야말로 남는 장사다.
히타치 전자회사의 본사가 있는 히타치시(日立市)를 지나서는 슬슬 바다가 그리워진다.
지도상에서도 그렇고 바다내음이 풍겨오는 듯한 오른쪽 길로 핸들을 꺾는다. 파란 얼굴의 바다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시원한 부채질로 반겨준다. 역시 뽈락은 바다가 그리운 천생 생선인가 보다. 

유일한 손님
태평양의 스케일에 어울리는 해수욕장을 상상했는데… 이를테면 끝없이 흰모래가 펼쳐진 마이애미 같은 곳? 오늘 본 이곳의 해수욕장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다. 백사장은 짧고 시설도 야외 샤워장과 구조타워 등 너무 간단하다.
주변에 온천과 요양원은 있지만 벼랑 끝에는 아슬아슬한 레스토랑도, 펄떡거리는 횟집도, 슈퍼는커녕 구멍가게조차 보이질 않는다. 남해 상주해수욕장처럼 송림이 우거진 곳에 텐트를 치고 수평선을 바라보며 낭만을 즐겨볼까 했는데 뜨거운 백사장만 나뒹굴고 있다. 카프카의 그 백사장처럼….
이곳저곳을 들락거리다 보니 오늘은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하긴 키로수 저축하려 시작한 여행도 아니니 신경 끄고 천천히 살피기로 하니 캠핑장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속도를 줄이면 비로소 보이나니.
개인이 운영하는 조그만 캠핑장이다. 연휴가 끝나 모두들 돌아가고 내가 유일한 손님이란다. 3000엔이란다. 갑자기 주인영감이 김선달로 보인다. 농담반으로 조금 비싸네 했더니 맥주 한 캔 서비스하겠단다. 그때 갑자기 천둥벼락과 함께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진다.
비치 하우스로 들어가니 주인영감부부, 친구부부, 지배인, 사위부부와 꼬맹이 2명 등으로 시끌하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내 앞에도 켄맥주를 시작으로 불고기, 튀김, 절임무우, 두부조림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엄청 맛있다, 요리 솜씨가 환상적이다”고 알고 있는 일본어를 총동원한다. 역시 일본 주부도 칭찬에는 고래처럼 춤을 춘다. 이제 합석하여 나도 가족이 되어 국수도 한그릇 뚝딱했다
네살짜리 아이리짱은 내 뒤를 졸졸 따라 다니고 내 텐트도 기웃거린다. 아까 친 벼락은 영감님한테가 아니고 비싸다고 투덜대던 내게 보내준 사인이란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 가족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한 천사인줄도 몰랐으니.

파도 위를 지나는 도로
해변을 따라 해수욕장이 즐비하지만 백사장이 짧고 시설도 단출해서 초라해보인다
사설 캠핑장 주인집의 네 살짜리 아이리짱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3일차 7월 17일
구르미가 덤프트럭을 탄 까닭

오늘은 파도 소리와 함께 새벽을 연다. 오래전 산산이 부서진 모래사장을 밤새 파도는 뺨을 때리고 있다. 철썩 철썩~. 그러다 자기 손만 파랗게 멍들고 있다.
가만히 들어보면 바다 깊숙한 용궁에서 달려오는 천군만마의 “우두두두” “쿠르릉” 하는 소리도 들린다.
바다를 낚으려 해를 향해 릴을 던지는 낚시꾼도 부지런하다. 90년 여름 통영 앞바다 매물도의 그 밤이 떠오른다. 맑은 물속에서 흔들거리는 케미라이트를 신호로 시작된 소나기 입질에 어깨는 탈골 직전이었고 나는 ‘뽈락’이라는 위대한 닉네임을 수여받았었지. 3만 볼트가 흐르는 첫사랑 손목의 추억은 가물하지만 그 밤의 ‘손맛’은 어제처럼 뚜렷하다.
기타이바라키를 지나면 후쿠시마현(福島縣)이다. ‘웰컴 투 후쿠시마’란 간판이 보인다. 웰컴이라니?
‘기왕에 오셨으니 방사능 샤워나 하고 가시지요. 살기 싫은 이 지구를 하루빨리 떠나실 수 있습니다’ 이런 뜻은 절대 아니리라. 간판 상태가 폐기 일보 직전인 걸 볼 때 원전 사고 훨씬 전에 세워진 것이 분명하리라.
초입의 검문소를 지나니 4차선으로 도로는 넓어지고 멀리 원전 모습이 해변에 어른거린다. 겁이 나는 것보다 상태가 궁금해진다. 영락없는 중국집 철가방 스쿠터에 ‘일본일주’가 쓰여 있다. 파이팅 했더니 파이팅이 메아리되어 돌아온다. 헬멧 속의 크고 선한 눈동자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봐서 동남아계로 보인다.
다시 파이팅이다. 멀리 보였던 원전 옆으로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다. 이 원전은 문제의 그 원전이 아니었다. 54km 전방에서 차량통제가 된다는 안내판이 그걸 확인해준다. 

자판기 앞에서 만난 회장님
임해공단이 있는 타이라시를 지나면 6번 국도는 2차선으로 좁아지고 차량통행도 많아진다. 땡볕은 가득하고 온 몸의 땀구멍은 전부 오픈 상태다. 이륜차, 모터사이클은 통행하면 안된다는 간판이 나왔지만 통제요원도 안보이고 우회도로 안내판도 없어 일본어를 모르는 채 직진 또 직진이다.
순찰차가 옆을 지나가더니 저 위 도로옆에 주차했다. 경찰이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돌아가란다. 경찰이 알려준 35번 현도는 나오질 않아 현장 인부에게 센다이 가는 길을 물어본다. 저기 가다가 좌회전 다시 우회전? 어째 시코쿠 그 산길의 악몽의 데쟈뷰인가 싶다.  낭패다. 어제 그 캠핑장 주인도 원전 때문에 우회해야 되는 길은 높은 산을 올라야 한다고 했는데….
그늘이 있는 목좋은 곳에 자판기가 손짓한다. 중년 사내가 음료수를 2개나 건넨다. 사정을 들은 이 양반이 의리맨일 줄이야! 올백 머리스타일이 말론 브란도처럼 멋있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천사처럼 나타난 하얀색 덤프트럭에 구루미를 통째로 실었다.
에어컨 빵빵하고 전망이 확 트인 덤프에 올라 허벅지를 살짝 꼬집어본다. 의리맨의 본명은 타카하시이고 집은 자판기 앞의 대궐이며 나이는 57세다. 제주도에 사냥 가서 한국인의 친절을 체험했단다. 덤프 운전기사 가토상에 의하면 그 타카하시상은 지역유지여서 회장으로 불리고 차남이 덤프회사 사장이란다. 가토상은 22살에 연상의 여인과 결혼하여 이듬해 장녀를 낳아서 4남매를 키워 지금은 손자가 9명이나 된단다. 아침 7시에 출근하여 3시반에 퇴근한단다. 별다른 취미는 없고 손자와 노는 게 그렇게 재미있단다. 좀 있으면 또 한명 생긴다고…. 술은 한잔씩 하지만 매일 아침 회사에서 음주측정에 건강체크까지 한단다.
미쓰비시에서 나온 후소라는 덤프는 1만6000km 정도 달린 애송이 신차여서 좁은 현도를 달려도 승차감이 좋다. 228번 현도의 좁고 가파르며 긴 고갯길을 보면서 허벅지는 기가 죽어 조용하다. 아무튼 2시간 남짓 100여km를 달려서 후쿠시마현의 내륙 최대도시 코리야마시(郡山市)에 도착했다. 기념사진도 마다하는 가토상! 앞으로 “아리가토” 할 때마다 아리아리하게 가토상이 떠오르지 싶다. 

후쿠시마현에 들어서니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상흔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대양의 일출을 낚는 것 같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같은 몸이 드러나는 교통수단의 통행을 막고 있다
우연히 자판기 앞에서 만난 트럭회사 회장 타카하시 씨. 그의 배려로 트럭을 타고 원전 위험지대를 우회했다
트럭으로 후쿠시마 내륙의 중심도시 코리야마로 가는 길

 

4일차 7월 18일
일찍 끝내고 풀장으로 풍덩

어제 묵은 덩치 있고 키 큰 코리야마 호텔은 착한가격은 아니었지만(7250엔) 잘 선택한 것 같다. 싼 게 비지떡이고 비싼 것에는 앙꼬가 있다는 진리를 그 사설 캠핑장에서 깨닫지 않았던가! 싱글 룸이 없어 트윈 룸이라 확 트인 느낌이었고 자동 세탁·탈수 동안에는 대욕탕에서 눈을 스르르 감을 수 있고 무엇보다 뷔페식 아침상은 영양을 골고루 채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덤으로 프리 와이파이 덕분에 한국까지 톡을 쏘아 날린다.
어제 ‘덤프 축지법’으로 점프했다는 포만감에 구르미도 한껏 여유를 부린다. 중앙분리대의 4차선 4번 국도는 고속도로처럼 쫙 뻗어서 나를 태운다. 오랜만에 만난 ‘미치노에키’에 들린다. 우리네 도로 휴게소라 관광 안내, 편익시설, 지역 특산물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이곳 후쿠시마는 생선도 유명하지만 맑은 물과 맛있는 쌀로 빚은 명주의 본향이란다. 이렇게 후쿠시마(福島)는 이름 그대로 복 받은 곳이었는데 그 놈의 지진과 원전 사고 때문에 이미지가 다 망가지고 말았다.
후쿠시마 현청이 있는 후쿠시마시를 지나자 한적한 동네가 보이면서 스포츠 공원이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시골로서는 다소 과분한 시설들이 펼쳐진다. 일일 목표량에 턱 없이 부족한 60km 달성이지만 오늘은 여기서 농땡이를 칠까나!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집터(텐트)를 지정했다. 가로등이 있으면서도 나무 밑이라 그늘도 있고, 풀밭이면서 습하지 않으며 화장실도 그리 멀지 않다. 콘센트 위치를 확인하고 자판기와도 눈인사를 나눈다.
온수 풀장의 안내실에서 쭈뼛거린다. 60세 이상이라 100엔 할인해서 300엔이란다. 500엔짜리 수영모자도 강매 당했다. 수영팬티의 필요성은 당연하지만 모자는 왜 써야 하는지 60년을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다.
자전거 쫄바지를 걸치고 머리통을 쥐어짜는 모자를 쓰니 그럴 듯하다. 수심 1m, 25m 라인에 7개 정도의 스테이지를 갖춘 수영장에는 오후 4시 타임이라 나보다 높은 연식의 분들이 대부분이다. 본네트는 올드 스타일이지만 엔진은 카랑카랑하다. 물을 가르는 솜씨가 물개수준들이다. 나는 그냥 개헤엄인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런 풀장에 와보기나 했나 할 정도로 오랜만이다. 집사람은 20년 넘게 로얄스포츠 수영반에 다녀서 로얄회원인데…. 아무튼 1시간 반 정도 물속에서 온갖 애를 써도 이 더위에 땀 한 방울을 흘릴 수가 없었다.

가로등과 나무가 있는 스포츠공원의 한켠에 텐트를 쳤다
도로휴게소(미치노에키)의 대형 술통 앞에서. 장비나 노지심을 닮았나?
온수풀장 이용권 판매기. 60세 이상은 100엔 할인해서 300엔이다
역시 여름에는 메밀소바가 제격이다. 소바는 튀김과 잘 어울리고

 

5일차 7월 19일
신선의 고장 센다이로

4시 반경에 일어나 5시에 새벽을 달린다. 먼산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하늘엔 구름이 드리워져있다. 요코하마 하면 부루라이트! 히로시마 하면 원폭! 나가사키는 짬뽕! 처럼 신선 선(仙)자 센다이는 신선이 떠오르는 곳이다. 부산 신선대 부두의 컨테이너 안에는 신선용품만 가득한줄 알 듯이. 그런 내 마음을 캐치한 구르미는 잘도 달린다.
잘 나가다가 오르막이다. 낑낑거리며 정상에 오르니 미야기현이 반긴다. 왜 지역의 경계에는 강이나 고개가 있는지? 보내기 싫어서, 가기 아쉬워서 오르막을 쌓았고, 어서 오라고 빨리 보고파서 내리막을 깔아놓았나 보다.
고생 끝에 낙이라, 그 고개 이후에는 도로가 넓어졌다 좁아졌다 했지만 완만한 내리막 느낌이다. 하여 구르미와 손발이 척척이다. 내가 힘차게 밟으면 구르미는 짜아짝 굴러주고, 그러면서 앞으로 쓱쓱 나아간다. 12시 조금 지나 75km를 단숨에 달려 센다이시(仙台市)에 도착이다. 혼슈 동북부 최대도시인 센다이는 바다연안의 넓은 평원에 위치해 있다.
물회가 눈앞에 어른거렸지만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라. 중국식 냉면을 시켰다. 면은 밀면 감촉, 김치 대신 노란 단무지뿐이지만 맛있었다.
부둣가 공원은 갈매기와 낚시꾼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 그럴듯한 옛성을 찾았지만 흔적만 허무하다. 물론 세 아들 때문에 눌러 앉은 그 선녀도 이제는 백골난망이리라.

쓰나미를 막아준 송도 
타가성 유적 안내 영감님이 추천해준 소나무 섬, 송도(松島, 마쓰시마)로 향한다. 코리야마에서부터 우리를 안내한 4번 국도는 센다이에서 바닷바람을 잠시 들이키고는 다시 산속으로 달려 아오모리로 향한다. 갈아 탄 45번 국도는 해안을 따라가는 좁고 꼬불꼬불한 길이다. 25km를 달려 마쓰시마에 도착한다.
쭉쭉 뻗은 삼나무 일색에서 부드러운 곡선미의 소나무숲을 대하니 마음마저 부드러워진다. 역시 일본 삼대 절경이란 칭송에 어울리는 송도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도 ‘송도’라는 지명이 많다. 부산, 인천, 개성 등등. 마쓰시마의 낭만을 즐기려 전통 료칸에 짐을 풀었다. 만엔으로 신선의 풍류를 살 수 있을까?
야외온천에 몸을 잠깐 담그고는 구르미는 쉬라하고 슬리퍼차림으로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앞바다에 송도가 점점이 떠있다. 2011년 동북 대지진의 진앙지가 센다이 근처였다고 한다. 그래서 전지역이 쓰나미 피해가 컸는데 이곳은 저 송도들이 앞장서서 막아줘 큰 피해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늙고 비틀어진 소나무가 조상 묘를 지키듯이 조그마한 송도는 그네들 가족을 지키고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듯하다. 석양에 휘어진 노송의 등걸에 한마리 학이 사뿐히 날아든다.

일본의 3대 절경으로 꼽히는 마쓰시마
맛있게 먹은 중국식 냉면
마쓰시마의 그윽한 사원 거리
료칸의 정갈한 다다미방
초대형 가라오케

 


6일차 7월 20일
다시 나를 부르는 바다로…

송도의 아침은 고요하다. 운무에 휩싸인 바다 풍경이 포근하다. 까끌까끌한 감촉에 풀내음이 살짝 나는 다다미는 여름에는 여름대로 또 겨울이면 겨울대로 어울린다. 그 위에 깐 폭신하고 두툼한 잠자리는 어릴 적 할머니가 보듬어 주듯이 포근해서 푹 잤다.
며칠 동안 계속된 햇볕 노출로 피곤에 찌든 피부는 단비를 맞은 오이처럼 뽀송하다. 역시 소나무 뿌리 주변을 맴돌아 나온 온천수의 효과일 것이다.
7시 반이 되어 아침을 먹으러 간다. 결혼식장을 겸한 넓은 식당에서 혼자 아침상을 받는다. 내용으로 치자면 별로지만 정성이 담긴 정갈한 식단과 다소곳한 인사에 밥 한 공기를 더 비웠다.
마쓰시마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삼삼오오 등교길 초등생들의 발걸음이 게으르다. 과식으로 뒤가 무겁다. 저 앞에 주유소가 보이지만 일부러 코방 즉, 파출소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젊은 경찰이 의외라는 눈빛으로 화장실을 안내해준다.
나오면서 눈에 띈 것은 책상 옆에 자리 잡고 있는 큰 석유난로였다. 난로를 가리키며 밤에 춥냐고 했더니 “아직 손질을 못했다”면서 겸연쩍어 하길래 작년 이맘때 홋카이도 왓카나이 파출소에는 밤에 추워서 난로가 있더라고 물타기를 해주었지만 다소 실망이다. 편의점 앞에 일을 보는 동안 차를 공회전하고 있는 일본인도 많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짜고 면장갑도 기워 쓰는 ‘도요타정신’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한편으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남의 실수는 나의 경쟁력인가.
도로의 오아시스 미치노에키(휴게소)에 들린다. 모시옷 같이 깔끔한 자루소바를 먹고 아이쇼핑에 나섰다. 지역 특산물이 많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나무로 만든 수제 루어 릴대에 발이 멈춘다. 여기는 서울보다 위도가 분명 높을텐데 대나무숲이 군데군데 있다. 촘촘한 마디는 뿌리인지 줄기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잡아보는 것만으로도 ‘손맛’이 느껴진다.
안내소에는 다다미 평상에 할머니들이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나도 그 옆에 다리를 뻗고 한참을 졸았다. 그네들은 자기들 얘기의 맞장구인줄 알고 있었으리라. 한켠에는 온천시설도 되어 있다. 이렇게 미치노에키는 정보·쇼핑·휴식의 3종 선물세트다.

황당한 저녁 식단
오후 3시에 만나는 고갯길은 무섭다. 그대 앞에 서면 내 몸은 작아지는데 체인을 세월아 네월아에 걸치고 애써 여유를 부려봐도 입은 벌어지고 헉헉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등 뒤에는 불화살이 여지없이 꽂히고 정수리에서 시작된 왕구슬땀은 고글에 머물다 콧잔등을 타고는 그만 구르미 목덜미에 떨어지고 만다.
‘나가이 쿠다리사카.’ 긴 내리막길이란, 가장 마음에 드는 안내판에서 내리막은 시작된다. 쌩 달리다가 그늘 구간에는 브레이크를 살짝 잡아 이 행복의 순간을 슬로비디오로 만든다. 그러다 시원한 바람을 더 느끼려 브레이크를 놓고 내려와 버린다.
삼거리가 보인다. 45번 국도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398번 국도이다. 오늘 묵을 카미와리 캠핑장을 확인하기 위해 공사감독에게 물어본다. 예상대로 오른쪽으로 가면 멋진 캠핑장이 나온단다. 맛있는 레스토랑도 있단다. 그러나 커브를 도니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제초작업하던 일군의 사람들이 쉬었다가란다. 참시간인 듯한데 큰 물통뿐이다. 막걸리에 신김치 한가닥이면 배가 벌떡해지는데…. 뻐드렁니 이창명이 떠오른다. “여기 짜장면 열 그릇. 짜열! 올꼽!!!” 하긴 여긴 배달의 민족이 아닌 배다른 민족이지.
드디어 도착한 카미와리 캠핑장은 낭떠러지에 조성된 국립공원 지정 캠핑장이다. 이용료 900엔을 내고 폼 잡고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점심만 한단다. 저녁은 크래커에 꽁치 통조림과 주스.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식단이다. 더구나 맥주도 없다니…. 이렇게 황망한 캠핑이라니.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이태백도 한잔해야 시가 나오는데… 파도도 밤새 애석해하고 있다. 

제초작업 중인 인부들이 쉬어가라고 해 멈췄지만 물뿐이다
카미와리자키 캠프장 안내도. 일대는 산리쿠후코 국립공원이다
식당은 점심만 팔아 크래커와 꽁치 통조림, 주스로 저녁을 때워야 했다
잡는 것만으로도 손맛이 느껴지는 루어 릴낚싯대

 

7일차 7월 21일
기적의 소나무

배가 고파 일찌감치 짐을 챙겨 출발한다. 그래도 어제 더운 물에 샤워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다행이라 여긴다.
빨리 편의점에 가고 싶지만 고개는 계속되고 갈아입은 저지는 벌써 땀이 흥건하다. 398번 국도에서 45번 국도에 합류하는 10km가 이렇게 멀 줄이야. 어제 갔던 길을 되돌아온다고 생각하니 억울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어제의 오르막이 오늘은 신나는 내리막이다.
지도상에는 바다와 연이어 있는 45번 국도지만 한번씩 바다를 보여주고는 내륙으로 들어가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오늘은 유난히 터널이 많다. 그만큼 지형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증거다. 100m 정도의 짧은 것부터 2km 남짓한 긴 터널까지 6개 정도를 통과한 것 같다. 말굽모양 터널이 보이면 일단은 기분이 좋다. 오르막이 줄어서 좋고 시원해서 짱이다. 하지만 크르릉거리는 네발괴물의 괴성은 그야말로 ‘납량특집’이다. 길고 컴컴할수록 등골이 쏴 하다.
그렇게 터널을 들락날락하면서 이와테현(岩手縣)에 접어든다. 멀리 넓은 평원에 대대적인 토목공사로 분주하다. 그 가운데 나무 한그루가 등대처럼 서 있다. 바로 그 유명한 기적의 소나무다.
2011년 대지진 당시 이곳 리쿠젠타카타시(陸前高田市)에도 쓰나미가 밀려와 모든 터전을 집어 삼킬 때 이곳에 있던 7만 그루의 소나무 중에서 유일하게 버티고 서 있어 화제가 되었던 그 소나무다. 지금은 살아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기적과 희망의 상징으로 버티고 있다.
뒤쪽의 허물어진 건물과 7년이 지난 지금도 복구를 계속하는 것을 볼 때 당시의 피해 규모를 짐작케 한다. 태백산의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지만 이 소나무는 비록 100여년을 살았지만 일본인의 마음속에서 영원을 살고 있는 셈이다.
오후나토시(大船渡市) 초입에서 오른편 해안길을 달린다. 고이시캠핑장을 향하는 10여km의 길을 누군가가 엄청 찌그러트려 놓았다. 내리막이다 싶으면 바로 오르막!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다. 구르미의 뒷변속기에 불이 날 지경이다. 하지만 소나기 뒤에 무지개요, 겨울 뒤에 춘풍이라, 환상적인 캠핑장이다. 특히 그 기적의 소나무 사촌들이 쭉쭉빵빵 각선미를 자랑하고 있다.

2011년 대지진 때 7만 그루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기적의 소나무’
해변 솔밭에 조성된 여유로운 캠핑장
645km를 달려온 여행 일주일째를 혼자 자축하며
헝겊으로 만든 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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