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시작했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양민호 코치의

혼자 시작했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양민호 코치의 
엔듀로 월드시리즈(ENDURO WORLD SERIES) 도전기
아시아 시리즈에서 3위 입상, 캐나다 월드시리즈에서는…

이 글은 2년 전부터 꿈꿔오던 엔듀로 월드시리즈에 참가한 과정의 기록이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대회를 위해 지난 1년간 준비하며 겪은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필자와 같이 대회에 도전하려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필자는 크로스컨트리 XC 선수 출신이다. 자전거와의 첫 인연은 중학교 입학 후 등하교에 필요한 유사 MTB를 구매하면서 시작되었고, 우연한 계기로 수원의 A-TEN이라는 산악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자전거에 빠져들게 되었다. 추억해보면 생활형 유사 MTB로 산악라이딩을 어떻게 따라 다녔는지 궁금증이 남는다. 
점점 산악라이딩에 익숙해지자 동호회의 권유로 전국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함께 동고동락하던 유사 MTB로 모든 코스를 완주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후 동호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진짜 MTB를 탈 수 있게 되어 XC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엔듀로란? 산악라이딩의 한 종류인 엔듀로는 다운힐 성격에 업힐이 포함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다운힐 같이 상체 보호대나 큰 장비 없이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올마운틴 자전거와 간단한 보호대와 가방을 메고 산악을 즐기는 방식을 엔듀로로 분류할 수 있다
필자의 첫 자전거, 삼천리 넥스트 헥토

 

자연스럽게 XC 이외의 장르에도 눈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관심 있던 제품은 풀서스펜션 자전거였으나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았다. 약 2년 전 엔듀로라는 장르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외국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은 장르로, 매년 엔듀로 월드시리즈라는 대회가 열리고 있고 나의 기량을 해외무대에서 시험해보고 싶어 대회 참가를 결정하게 된다.

엔듀로 월드시리즈(ENDURO WORLD SERIES (EWS))
엔듀로 월드시리즈(이하 EWS)는 1년 8개 정도의 라운드로 구성되며 각국을 돌며 개최된다. 보통 이틀 또는 원데이 레이스로 총 5~6개의 스테이지 경기를 하게 된다. 대부분 유럽과 남미에서 진행되고 라운드마다 일정 포인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연말 합산을 통해 포인트가 가장 높은 선수가 시리즈 챔피언이 되며 다음해 챔피언으로 활동하게 된다. 
올해 본선은 8개 라운드 외에 북미, 유럽, 아시아에서 컨티넨탈 시리즈로 포인트를 부여해 각 챔피언을 결정한다. 본선 경기 외에도 챌린저 레이스도 존재하며 최근 UCI(세계자전거연맹)와 협업으로 2019년부터 우승국가 팀에게 레인보우 저지(월드챔피언)를 적용한다.

 

훈련과 준비과정
EWS의 존재를 알게 된 뒤부터는 한 번은 꼭 참가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마침 공식추첨 기간으로 참가신청을 하게 되었다. EWS는 총 4개의 루트로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2개의 루트는 EWS 공식등록 프로팀과 작년 예선 시리즈에서 포인트를 얻어 100위 안에 든 선수에게 우선순위가 주어지고, 나머지 2개의 루트는 공식추첨과 와일드카드가 있다. 후자의 경우 일반인에게도 기회가 열려있으므로 필자 역시 공식추첨에 응모하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한 통의 메일로 EWS측으로부터 합격통보를 받았다. 물론 참가비와 모든 일정에 대한 경제적 부담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지만 걱정보다는 세계무대에서 달릴 수 있다는 기쁨이 앞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정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기쁨도 잠시, 6개월 안에 모든 준비를 해야 하므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당시 필자는 코리아바이크스쿨에서 MTB 선수를 꿈꾸는 학생부를 지도하는 코치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개인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결국 퇴사를 결정하게 된다. 수년간 함께해온 학생들과 헤어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응원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대회 준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뿔싸!”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처음으로 내뱉은 단어다. 대회에 참가하는데는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첫번째로 부딪힌 난관은 바로 자전거다. 퇴사와 함께 후원을 받아 타고 있던 자전거들을 모두 반납했기 때문에 막상 훈련에 필요한 자전거를 구하지 못했다. 두번째는 경제적 문제로 처음 기획했던 예산보다 훨씬 초과된 예산이 필요해 새 자전거를 조립하려던 계획마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자전거 조립도 문제지만 당장 훈련에 사용할 자전거가 필요했다. 당시 자전거생활과 함께 ‘양민호 코치의 MTB 스쿨’에 사용하던 비앙키 알콜 FS를 통해 훈련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MTB 스쿨’은 산악라이딩 기술을 소개하는 게 목적이었던 코너로 사진으로 표현하려다 보니 트릭에 가까울 정도로 연출을 많이 하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트릭을 위해서는 자전거를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며 세팅이 라이더에게 최적화되어야 했다. 다행히 비앙키 알콜 FS의 수입사인 대진인터내셔널의 배려로 연재가 진행되는 동안 잠시 맡아 훈련에 사용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으로 대여받았던 자전거는 연재가 마무리되며 다시 수입사의 품으로 돌아가야 했다. 훈련할 장비가 없다 보니 다시 한정된 예산 안에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YT 브랜드의 수입사인 블루레포츠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EWS를 준비하고 있는 필자에게 YT 자전거를 타고 출전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온 것이다. 지난해 자전거생활과 함께 YT 자전거를 시승해 본 경험을 비춰보면 자전거의 성능, 디자인, 가격 무엇 하나 부족한 점이 없던 자전거로 기억되어 흔쾌히 제의를 받아들여 YT 자전거로 EWS에 출전하게 되었다.
 

훈련과정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부드러운 느낌이 일품인 자전거다. 비앙키 브랜드는 로드바이크로 유명하지만 MTB 쪽으로는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아 성능대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자리를 통해 훈련에 사용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대회를 함께하게 된 YT 자전거

 

예상치 못한 부상과 도움
새로운 자전거가 생기자 훈련에 열의를 불태우며 더 열심히 집중할 수 있었다. 여전히 경제적인 압박이 있었지만, 파트타임 일과 훈련을 병행하며 순탄하다고 느끼려던 찰나,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 선수 생활을 하며 크고 작은 부상을 수없이 겪어보았지만, 처음으로 손가락 골절을 당해보니 큰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손가락은 자전거의 조향을 담당하는 핸들부터 브레이크를 수시로 잡아야 하는 중요한 부위이다. 게다가 골절의 회복시간은 짧게는 몇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얼마 남지 않은 대회 일정을 보니 답답함이 밀려 왔다. 최대한 빠른 회복을 위해 골절된 뼈에 핀 고정 수술을 택했고 1주일 동안 회복에 집중했다. 다행히 핀을 제거하고 나서 훈련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1주일만에 다시 컨디션을 회복하려고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시간은 촉박했고 기량은 떨어졌다. 부상으로 인해 기량 향상을 위한 고강도의 트레이닝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조바심만 내는 상황이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의 어느 날, 자전거생활 이상윤 기자가 필자의 집 근처로 외근을 나왔다가 부상 소식을 듣고는 방문했다. 커피 한잔 마시며 부상과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숨김없이 대답했다. 손가락의 상태를 보던 기자는 잠시 어두운 표정을 짓더니 가장 급한 사항을 체크했다. 대회에 사용될 새 타이어, 샥 정비 그리고 고강도 트레이닝 후 필요한 리커버리 용품으로 정리되었다. 다행히 자전거생활의 도움으로 꼭 필요했던 자강통상의 맥시스 타이어, 신도 바이오실크의 실크파우다100, 비엠웍스의 롤 리커버리를 협찬 받게 되었다.
 

인위적이지 않은 맛으로 먹는데 거부감이 없는 제품이다. 다른 리커버리 제품보다는 입자가 커서 물에 타먹기보다는 제품을 먹고 음료를 마시는 방법으로 섭취했다. 부피가 작고 포장이 잘되어 있어 휴대성이 뛰어나다. 많은 짐을 가지고 이동해야 하는 해외 라이딩에서 작은 부피는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주기적인 섭취를 통해 근육이 빠르게 회복되는 느낌을 받았다. 한 CF의 카피처럼 “참 좋은데 말로 설명할 방법이 없네…”라는 느낌이 드는 제품이다
라이딩을 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근육을 많이 사용하게 된다. 특히 다리 근육에는 많은 부하가 걸려 근육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롤 리커버리의 경우 훈련 초기부터 대회까지 가지고 다니면서 유용하게 사용한 제품이다. 사용방법도 간편하다. 제품을 양손으로 잡고 당기거나 밀면 롤러가 근육 안쪽까지 시원하게 마시지 해준다. 실크파우다와 함께 대회 기간 내내 유용하게 사용한 제품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 엔듀로 시리즈에 출전
EWS 참가를 앞두고 보다 높은 성적을 위해서는 실전경험이 필요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국제 엔듀로 시리즈의 경기운영 방식도 미리 체험하고자 아시아 엔듀로 시리즈에 참가하기로 했다. 부상으로 인해 참가를 포기한 상태였으나 예상보다 회복이 좋아 본 대회를 1달 남긴 7월 말레이시아로 향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경기는 월드시리즈의 시스템과 많이 닮아 있었는데 먼저 체계적으로 라이더를 배려한 일정이 눈에 띄었다. 대회는 총 4일 일정으로 2일간은 공식연습이 진행되었으며 나머지 2일간은 총 8개 스테이지로 나눠 경기가 진행되었다. 공식연습 기간 동안 현지 라이더들이 그룹을 나눠 가이드를 해주었다. 이틀 안에 8개 코스를 다 타야 하므로 시간적 제약과 습한 날씨로 인해 상황이 여유롭지 않았다. 기회가 적다 보니 미리 준비한 액션캠을 활용해 코스를 분석해가며 최대한 코스공략에 집중했다.
 


아시아 종합3위의 쾌거, 이제는 월드시리즈로
어느새 경기 첫날이 밝았다. 첫날 코스가 대회 전체일정의 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길다 보니 물백이 들어있는 배낭을 챙겨 출전했다. 스테이지당 코스가 길어 모든 길을 다 기억할 수 없어 많은 실수가 있었지만 큰 부상 없이 4위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본 대회인 둘째날에는 첫날보다 코스가 짧고 스테이지 이동 중 보급지점이 가까워 배낭을 메지 않고 참가했다. 코스 공략 방법도 조금 바꿔 보았다. 어려운 코스를 무리해서 돌파하기보다는 자신 있는 구간에서 시간차를 줄이는 방법으로 평소 자신 있는 코너 구간에 집중했다. 그 결과 2위라는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첫날 4위, 둘째날 2위로 종합 3위에 랭크되어 연습차 참가한 아시아 엔듀로 시리즈 대회에서 포디엄에 오를 수 있었다.
사실 말레이시아로 출국 이틀 전 손가락에 고정되어 있던 핀을 빼고 왔기 때문에 성적은 큰 기대를 않고 경험과 회복에 중점을 두었지만, 종합 3위라는 결과와 함께 경기 운영시스템을 배우고 많은 외국인 라이더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월드시리즈에 대한 자신감이 한층 제고되었다.

아시아 엔듀로 시리즈 시상식. 오른쪽이 필자

 

캐나다 휘슬러 바이크파크에서 열린 엔듀로 월드시리즈
종합 3위의 기쁨도 잠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2주 뒤 진행될 월드시리즈 캐나다 휘슬러 라운드를 준비해야 했다. 
우선순위를 두고 준비해야 할 사항을 체크해보니 타이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타이어 선택은 경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말레이시아 경기에는 앞에는 맥시스 하이롤러 2.4인치 맥스 그립을, 뒤에는 미니온 SS 2.3인치 조합으로 출전했다. 앞 타이어의 충분한 그립력과 뒷 타이어의 부드러운 구름성 세팅으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 캐나다 휘슬러 라운드는 다른 세팅의 타이어가 필요했다.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에는 휘슬러는 산이 매우 높고 바위가 날카로워 잦은 펑크와 심하면 타이어가 찢어지는 경우가 많아 보다 튼튼하고 높은 그립력을 제공하는 타이어가 필요했다. 모든 요건을 충족하는 타이어는 자강통상이 수입판매 중인 맥시스 미니온 DHF 2.5 DH 케이싱 타이어가 적합하다고 판단해 교체하게 되었다. 휘슬러 바이크파크에 가보니 대부분의 라이더가 맥시스 타이어를 사용해 다른 브랜드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인기를 입증하듯 대회장 근처에 위치한 샵에는 맥시스 타이어가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을 정도로 해외 산악 라이더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임을 실감했다.

자강통상에서 지원받은 맥시스 미니온 DHF 2.5 DH. 뛰어난 성능을 갖춰 경기를 진행하는 동안 보다 과감한 라이딩을 할 수 있었다


영상으로만 보던 유명 선수들 집결
타이어와 자전거 정비가 완료되자 한국과 시차가 큰 캐나다 현지생활에 적응하고 휘슬러 바이크파크를 충분히 즐기기 위해 경기 일정보다 2주 이른 8월 1일 미리 떠나게 된다. 밴쿠버 공항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정말 큰 대회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 영상 속에서 보던 세계 유명 선수를 직접 볼 수 있었다. 공항에서 예약한 셔틀버스를 타고 밴쿠버에서 약 2시간 떨어진 휘슬러 바이크파크로 향했고 국내 파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의 파크를 보고 충격과 동시에 설렘의 감정이 공존했다.
당일 저녁 바이크파크 패스를 구입하고 곧바로 숙소로 돌아와 자전거를 조립했다. 다행히 자전거는 운송 중 손상이 없어 큰 문제없이 준비가 완료되었다.   아시아 엔듀로 시리즈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날 일정을 계획했다. 첫째날과 둘째날은 코스를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익혀 실수를 줄이도록 집중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복병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시차가 주는 피로감이 어마어마했다. 반나절 연습 후 반나절은 잠들어 있을 정도로 초반 적응시간이 필요했다. 
몸이 조금씩 적응되자 코스 파악에 집중했지만, 현지 코스를 잘 아는 사람의 조언이 필요했다. 때마침 현지 샵에서 미캐닉으로 근무하는 한국인 청년을 만나게 되었고 코스에 대해 그가 자세한 설명과 함께 노하우를 알려줘 보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만나게 된 휘슬러 바이크파크의 모습
공항 도착 후 셔틀버스를 이용해 휘슬러 바이크파크까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바이크파크 패스를 구매하니 점점 대회에 참가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만난 한국인 미캐닉

 

아시아 시리즈 우승자와 반가운 재회
하루 이틀 코스답사와 트레이닝 그리고 휴식을 반복하다 보니 대회 일정이 다가옴과 동시에 세계 곳곳에서 대회에 참가하려는 선수들이 모여들었다. 코스훈련 중 반가운 얼굴을 만났는데 지난달 아시아 엔듀로 시리즈 우승자 플로렌트(프랑스) 선수와 재회한 것이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같은 경기에 참가할 줄은 몰랐고 현장에서 만나게 되니 더욱 반가웠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라이딩을 하며 지난 시합을 추억 삼아 이후 일정 동안 함께 하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 대회 등록 기간이 되었다. 오전에는 플로렌트 선수와 코스를 걸으며 꼼꼼히 살피고 참가등록을 통해 대회에 필요한 배번을 수령했다. 125번, 필자의 첫 월드시리즈 번호로 만감이 교차했다. 번호판 하나에 무슨 호들갑이냐고 핀잔을 줄 수 있겠지만 그동안 순탄치 않았던 준비기간을 떠올려보니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플로렌트 선수와 함께 코스를 걸으며 사전답사를 진행했다. 듣던 대로 코스의 난이도가 상당해 위험한 구간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분석했다
드디어 받게 된 번호표!
세계 각국의 라이더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다양한 국적만큼이나 자전거 브랜드도 다양하다

장장 11.5km의 거친 다운힐 
감상도 잠시, 등록 후 다음날부터 바로 공식 연습이 시작되었다. 인원이 많다 보니 2개 그룹으로 나눠 진행되었는데 이전 아시아 시리즈와는 다르게 가이드가 없고 본인이 속해 있는 그룹이 지정된 코스를 시간 안에 자유롭게 타는 방식이었다. 
첫번째 연습 코스는 탑 오브 더 월드라는 휘슬러 산 가장 높은 정상에서 출발해 파크 입구인 빌리지까지 이어졌다. 스테이지5는 총 길이 11.5㎞로 지금까지 타본 다운힐 코스 중 가장 긴 거리를 자랑했다. 첫 도전이다 보니 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체력분배에 실패하면 후반부 부상 확률이 높으므로 최대한 체력을 아끼며 안전한 방법을 택하고 첫 공식 연습을 마무리했다. 
둘째날에는 첫날 라이딩한 스테이지5를 제외한 나머지 스테이지들을 모두 연습하는 일정으로 상당히 시간이 촉박했다. 비까지 오는 바람에 코스를 익히고 외우는데 더 힘이 들었다. 결국 한 스테이지에 한 번만 연습이 가능했다. 다음날 컨디션을 위해 자전거를 정비하고 일찍 휴식에 들었다.
 
라이더를 위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더러워진 자전거를 세척하는데 매우 편하다
공식연습으로 붐비는 코스. 기록한 사진과 영상을 보며 코스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경치가 일품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로스트 레이크에서 휴식을 취했다
흔쾌히 기념촬영을 해준 총감독 크리스볼(좌)과 레이스 디렉터 대런(우)
기록을 담당하는 레이스 칩은 팔찌형태로 양손에 착용한다

 

성적이냐, 안전한 완주냐 
10시40분 드디어 필자의 차례가 되었다. 스테이지1 경기를 하기 위해 산 정상으로 향했다. EWS는 스테이지 간 이동 제한시간과 개인별 출발시각이 정해져 있는데 스테이지1까지 이동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1시간가량으로 실제 이동에 든 시간은 45분이다. 만약 자칫 펑크나 장비 트러블이 발생한다면 출발시각을 지키지 못하고 페널티를 받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타이트한 진행 시간은 장비트러블이 발생할 경우 완주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부담감이 크게 다가왔다. 워낙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경기를 하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과격한 라이딩으로 경기결과를 쫓을지,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통해 문제를 최소화하고 완주에 목표를 두어야 할지 많은 내적 고민을 하게 되었다. 결국 첫출전에 욕심을 내지 않기로 하고 완주에 목표를 두고 진행하게 되었다.
스테이지1, 2는 바이크파크에서 조금 떨어진 산에서 진행되었다. 경기를 위해서는 산을 두 번 올라야 했는데 이동시간이 길어 체력안배와 시간 관리가 관건이었다. 무사히 스테이지1, 2를 끝내고 스테이지3으로 이동하는데 오후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간단히 주최측에서 준비한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스테이지3으로 향하는 리프트에 올랐으나 식사시간으로 인해 스테이지3 출발시간에 늦을 뻔했다. 다행히 스테이지3, 4 모두 무사히 마치고 마지막 스테이지로 향했다.
스테이지5는 휘슬러 산 정상에 있어 리프트를 3번 갈아타야 했다. 이동시간만 약 40분으로 오후 4시38분에 마지막 스테이지를 출발했다. 출발 때 보았던 구름 위의 멋진 풍경은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경기결과

 

조바심이 낳은 실수 그리고 냉혹한 현실
코스 상단인 탑 오브 더 월드는 펑크 위험 구간도 많고 총 거리 11.5㎞를 소화해야 하므로 속도를 조금 줄이고 체력을 아끼며 진행했다. 위험 구간을 지나면 미리 이미지트레이닝 해놓은 코스에서 페이스를 높이며 경기 텐션을 올려나갔다. 상단부를 지나 하단부까지 경기의 흐름이 정말 좋았으나 막바지 싱글코스에서 페달에서 발이 빠지면서 안장에 배를 찍어 페이스가 다운되었다. 
끊어진 페이스를 다시 잡으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고 조바심은 바로 실수로 이어졌다. 급한 마음에 서두른다는 게 끝내 미끄러지면서 많은 시간을 잃게 되었다. 결국 50:06.77의 기록으로 120위를 하게 되었다. 1등과는 9분 차이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3자리 등수와 1위 프로선수와의 격차를 받아들이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해보니 세계수준의 선수들과 겨뤄 내 위치를 알고 싶었던 목표와 완주 두 가지를 다 이룰 수 있었다. 원하는 걸 얻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차분해지며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고 즐기며 남은 대회를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비록 포디엄에 드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이번 도전을 통해 좋은 경험과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추억을 얻었다. 처음 도전이라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도 겪었다. 혼자서 월드시리즈를 준비하는 독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정보를 전달하며, 모든 사람에게 도전의 기회가 열려있으니 산악라이딩을 즐기는 독자라면 한번 도전해보길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나의 꿈에 응원을 보내준 모든 분들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업체 관계자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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