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수림을 벗 삼아 최북단으로 가는 해안길

홋카이도 오로론 라인①
바다와 수림을 벗 삼아 최북단으로 가는 해안길

2년 전 홋카이도 동북부 일주에 이어 이번에는 ‘일본 100대 길’에 포함된 ‘오로론 라인’이다. 홋카이도 서해안을 따라 오타루(小樽)에서 왓카나이(稚內)까지 이어지는 약 380km의 해안도로로 우리의 7번 국도에 비견된다고나 할까. 하지만 훨씬 더 북쪽이라 풍경은 황량하고 인적이 드물며 물빛은 심연으로 맑고, 삼림은 밀림으로 우거지며, 하늘은 우주의 기운이 느껴지듯 깊다 

 

멋진 풍광이 맞아주는 231번 국도. 오로론 라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아이구 오선생님, 일본 북해도에 8월 강수량이 110년 만에 최고를 기록한 해에 자전거 투어를 하셨군요. 이번에는 태풍이 7개나 연속으로 몰려와서 계속 힘드셨겠어요. 북해도는 장마와 비가 없는 곳으로 자전거여행은 8월이 적기인데, 재작년 오셨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계속 비로 인해 고생을 많이 하셨네요.”
 홋카이도(北海道) 여행을 마치고 오타루에 도착했을 때 만난 정사장의 첫마디였다. 빗속에 고생했음을 능히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홋카이도 서해안을 훑는 해안길 380km
홋카이도는 2년 전 1차 투어를 하고 <자전거생활>에 2016년 10월호에서 12월호까지 기고한 적이 있다. 그때는 코스가 동북부 중심으로 아사히카와(旭川)부터 오비히로(帶廣)까지였는데, 이번에는 가보지 못한 서부와 남부를 둘러보고 싶었다. 서부는 일본인들이 선망하는 홋카이도 최고의 드라이브코스이며 ‘일본 100대 길’ 중의 하나인 231번 국도 오로론 라인(구글지도에는 오로로 라인으로 표기)을 달리는 것이다.
오로론 라인(オロロンライン)은 홋카이도 서해안을 따라 오타루(小樽)에서 왓카나이(稚內)까지 이어지는 약 380km의 해안선이다. 이시카리에서 루모이는 231번 국도, 루모이에서 테시오까지는 232번 국도, 테시오에서 왓카나이까지는 106번 국도로 이어지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이번 여정은 왓카나이에 도착하여 야생화 천국인 리시리 섬으로 건너가 한바퀴를 돌고, 이어서 트래킹코스가 유명한 이웃 레분 섬까지 가보려 한다. 다시 왓카나이로 나오면 최북단 소야미사키로 가서 1983년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오던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 전투기에 격추되어 269명이 순식간에 희생된 대한항공 추모탑에 가서 묵념을 할 것이다.
여행의 후반부는 남부로 내려와 삿포로에서 출발하여 시코쓰 호수를 돌아 도마코마이에서 하코다데까지 진행하는 코스를 잡았다. 기간은 지난번처럼 약 2주간을 잡아 여행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놓았다. 홋카이도의 중심도시 삿포로를 기준으로 남북을 종주하는 코스로 루트를 잡은 것이다. 

오타루에서 여행 준비
치토세 공항은 이제 구면이라 낯이 익고 어색하지 않았다. 마치 서울역 지하철에 다시 들린 나그네 같은 느낌이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미나미오타루의 정사장댁에 입출국 날 2박을 예약했고 자전거 포장박스는 여행기간 동안 창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항공으로 실어온 자전거와 트레일러, 짐까지 더해 총무게가 35kg이 넘는다.
한국의 여름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찾은 삿포로는 역시 선선한 바람으로 손님을 맞아 주었다. 공기마저 상큼함을 주어 폐 속 깊이 정화되는 기분이 온몸에 퍼져오는 듯하다.
2년만에 반갑게 조우한 북해도민박 정사장과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되자 정사장은 유명한 오타루 운하의 야경을 감상시켜 주었다. 슈쿠츠(祝津) 파노라마 전망대로 이동해 벼랑에 올라 어둠 속에서 수평선을 살펴보는데 희미하게 보이는 수평선은 가운데가 둥글게 올라있고 양옆으로 약간 낮게 드리워져 지구가 둥글다는 실감을 하게 한다고 정사장은 말한다. 저녁식사는 오타루에서 초밥집으로 유명한 와라쿠(和樂)로 갔는데 사람들이 많아 대기표를 받을 정도였다. 맛도 신선하고 가격도 비교적 착한 편이라 오타루 주민의 사랑을 받는 곳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인천공항 출발 전의 모습. 좌로부터, 두번째 동행하는 정경헌, 대전중앙고 체육교사 김영일, 필자, 인천공항 친구 최동권

 

 

1일차
이시카리(石狩) ~ 하마마스(浜益) 해변공원
날씨는 청명했다. 원색의 파란 하늘은 조금의 티끌도 허용하지 않는 무결점의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사장의 배려로 우리는 그의 차로 차량통행이 많고 오르내림이 심한 오타루를 벗어나고 있었다. 향하는 곳은 하마나스 공원. 홋카이도 중앙의 왼편에 아주 작은 혹처럼 붙어 있는 곶(串)이다.
데시오 산과 다이세츠 산 사이에서 발원한 긴 강줄기는 아사히카와를 거쳐 삿포로까지 오면서 휘둘러 나와 이시카리에서 비로소 바다로 그 긴 줄기를 내어준다. 바다와 접하면서 넓은 초지와 낮은 구릉을 이뤄 영화 ‘喜びも悲しみも幾年月(요로코비모 카나시미모 이쿠토시츠키 ; 기쁨도 슬픔도 얼마나 흘렀을까)’라는 유명한 작품을 탄생시킨 곳이다. 이 영화는 1957년 개봉되어 성공을 거뒀는데 다시 1986년에 재개봉해서 또 한번의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전근이 많은 등대지기의 13년간의 가족사를 그린 영화로 아버지의 맡은 바 책무를 다하는 모습과 부부의 애정을 다루고 있으며 바로 이시카리 등대를 배경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등대 일대는 1.1km가 식물보호지역으로 설정되어 있고 곶을 따라 끝까지 비포장의 가벼운 걷기코스가 허리높이의 부드러운 풀밭을 배경으로 잔잔하게 펼쳐져 있다. 흰색과 붉은색을 나란히 칠한 작은 등대는 초지에 우뚝 솟아 한층 돋보였다. 중간부분 서편에는 이시카리하마 해수욕장이 있는데 날씨가 선선해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장대한 터널 구간 아찔
본격적인 여행은 점심 후에 이시카리 시민문화회관에서 출발했다. 언덕을 올라 3~4km 지나면서 231번 도로와 만났는데 잘못된 만남인 줄은 1시간 반이 지나도록 깨닫지 못했다. 231번 교차점에서 만난 언덕길을 북쪽으로 착각하고 확인 없이 진행하여 오르막을 여러 개 힘들게 넘기면서 3시쯤 휴식을 취할 때 확인한 곳은 거꾸로 내려와서 하마나스 공원 우측편 231번 도로였다. 허탈감에 힘이 빠진다. 시간도 이미 많이 흘렀고 갈 길은 멀고… 그래도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출발했다.
오로론 라인! 그저 시원하다. 눈앞에 끊임없이 북쪽으로 뻗은 도로는 50에서 80까지 제한속도가 군데군데 있지만 도로에서 경찰을 만난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자전거는 속도제한과는 상관이 없지만, 차량도 많지 않아 드라이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환상의 도로라고 하겠다. 오른쪽은 초지에 간간이 이어지는 수목과 작은 언덕이 나와 답답하지 않아서 느린 자전거로 여행하기에 최적이다.
오후의 중반을 넘기면서 피부가 쌀쌀해지면서 기온이 내려가는 듯하다. 왼쪽 등뒤에서 시작되어 눈앞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수평선은 끊임없이 나를 따라온다. 우리나라 동해안 수평선과는 다른 점이 있다. 동해안은 해안선이나 작은 절벽 등으로 인해 이어질 듯 하면서 수시로 끊어지는 수평선인데 이곳은 시종일관 길게 자로 잰 듯한 수평선이 너무나 반듯하게 나의 허리를 따라다니는 것이다.
흡사 거제도 해안선 같은 업다운이 여행자를 수시로 괴롭힌다. 청아한 날씨에 눈앞에 펼쳐지는 시원스런 바다 조망은 땀을 흘리는 와중에 수시로 휴식을 주면서 위로를 던져주곤 한다.
터널이 몇 개 나타난다. 그 중 타이시마우치(太島內), 신오쿠리게(新送毛) 터널은 각각 2.5km와 3km에 달해 통과에 심각한 부담을 주었다. 특히 터널 속의 조도가 흐릿하고, 자전거를 위한 갓길이 없어 부득이 차선으로 주행을 하는데 맞은편이나 뒤에서 오는 자동차의 주행소리는 커다란 굉음으로 다가와 지나칠 때마다 심한 압박을 주었다. 거의 생존을 위협하는 듯한 느낌이라 터널 주행은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한국에 와서 터널을 지나보니 새삼스레 일본보다 밝기가 두 배 이상인 것 같다.
터널 밖으로 나오면서 만나는 ‘교통안전’이란 한글 표지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사진만 찍으면 마치 한국땅인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곳이다. 한국사람이 그다지 많이 다니지 않을텐데 배려심이 남다르다.
예정했던 하마마스 해변공원에 둥지를 틀기로 했다. 여기는 무료캠핑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입구에는 요금표가 붙어있다. 그러나 관리인이 없어서 거의 무료나 다름없었다. 밤으로 접어들면서 날씨는 제법 추워진다. 하루의 일교차가 14~25도나 되어 몸관리를 잘해야 남은 기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마나스 공원의 등대
홋카이도 2차 투어의 장도에 오르다
타이시마우치(太島內) 터널을 빠져나오자 마자 만나는 한글 교통 표지판
석양이 고즈넉한 하마마스 해변공원에서 첫날 야영을 했다

 


2일차
하마마스 해변공원 ~ 도마마에(苫前)
캠핑의 하루가 밝았다. 여명은 해안가에 옅은 주황색의 빛을 뿌려준다. 곳곳에 산재되어 텐트를 친 캠핑족들은 가족단위로 조용하게 밤을 보내고 있었다. 자전거는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작은 모양으로 군데군데 채색한 구름이 어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달린다. 바다는 역시 시원하게 품안에 가득 담겨져 온다. 수평선 너머 저 멀리 아랫녘에 한국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부모님의 곁에 있는 듯한 안도감을 갖는다.
1시간을 달려 하마마스 터널을 지난다.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터널 끝에 나란히 붙어 있는 시라가네(白銀) 폭포를 만났다. 만약 차를 타고 간다면 터널 끝에 있어서 무심결에 그냥 지나쳐 버리는 폭포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로 앞의 바다로 그 물줄기를 내어주며 순식간에 꼬리를 감추고 사라진다. 이곳은 테우리야기시리(天賣焼尻) 국정공원(지자체가 관리하는 국립공원)에 속한 곳으로 겨울에 눈 녹은 물이 이곳을 통하여 동해로 빠져 나간다. 손으로 만져질 정도로 가까이 있는 폭포는 낙차가 40m로 폭과 소리에 있어 위용을 보여주며 아름답고 힘차게 떨어진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바로 앞에 있는 푯말은 이 도로가 개설될 때 시라가네 폭포라고 명명했다고 씌어있다.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바다
햇살이 등뒤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행정구역으로 마시케시(增毛市)라고 알려준다. 오후유(雄冬) 지역을 지나는데 우측에 솟은 산꼭대기 전망대에는 멋진 정자가 해변을 굽어보고 있다. 입구 표지판에 암석(岩石) 공원과 전망대가 있음을 안내하고 있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을 자전거 탓으로 돌리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에 나타난 아카이와미사키(赤岩岬)를 지나치는 곳에 터널이 있는데 진입 전이나 통과 후, 모두 주변 풍광이 빼어나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바다색과 하늘색이 조화를 이루어 온통 주변이 맑고 아름다운 모습에 그저 보는 눈이 즐겁다.
구글지도에서 미리 보았지만 우측의 쇼칸베쓰산(1492m)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다. 해안도로는 오르막 내리막을 끊임없이 선물해 준다. 오전에 해안선을 휘둘러 마시케 시내까지 가는데 두어 시간이 경과한다. 화창한 날씨는 맑은 하늘과 바다의 깨끗한 조화를 보여주는데다 새롭게 펼쳐진 도로는 페달링에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왼쪽에 펼쳐진 바다는 심신의 안정과 시쳇말로 ‘안구정화’를 시켜주기에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여유롭다.
이윽고 긴린(銀麟) 폭포를 만나는데 그다지 뚜렷한 특징을 찾기가 어렵다. 그저 평범한 자연폭포다.
햇살이 뜨거워지지 시작한다. 오르막을 오르면서 발아래 삼림 속에 속살을 드러낸 바다는 청명하기가 밑바닥 잔돌까지 들여다보일 정도이며, 산 중턱에서 멀리 내려다보아도 몹시 맑다.
터널을 빠져나와서 뜻밖에 승용차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던 낯선 중년 남자를 만났다. 그는 갖고 있던 노란 물품을 건네주면서 우리가 자전거 안전등이 없다면서 부착하라고 전달만 해주고 쏜살같이 사라진다. 받아 보니 라이트인데 비상용으로 자전거에 부착하기엔 적절치 않았다.
편의점에서 아들 같은 어린 대학생을 만났다. 20세로 오토바이로 전국일주에 나선 ‘히데유키 미야기’란 말끔한 얼굴의 청년이다. 후쿠오카에 사는 이 친구는 저녁에 머문 도마마에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인연이 이어진다.

40m 높이에서 떨어지는 아름다운 시라가네 폭포
오후유미사키(雄冬岬)를 지나 마시케 시내를 향한다
맑은 바닷물이 산 중턱에서도 육안으로 내려다 보인다

 

 

유유자적 여유만만의 해안길
마시케에 도착해서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쿠니마레(國稀) 양조장이다. 전통 양조장으로 그 규모나 시설면에서 잘 갖추어진 곳이다. 마침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 노인들이 단체로 견학하고 있었다. 기념품과 술 판매장이 나란히 있는데, 직원이 술병의 라벨을 보여주는데 쌀 함유량이 60% 이상인 순곡주다. 다른 방에는 그동안 이곳에서 생산된 다양한 술과 술병, 술 만드는 통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우물이 있다. 맑은 물을 바가지로 떠서 마실 수 있는데 아마 원천수인 것 같았다. 그 뒤로 커다란 저장시설 탱크가 여러 개 보였다. 벽에는 영화포스터가 몇 장 붙어 있어서 살펴보니 양조장 모습이 사진 속에 군데군데 담겨 있어서 이곳의 유명세를 짐작하게 한다.
마시케에서 루모이(留萌) 가는 해안도로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정적미와 더불어 굴곡도 없어 자전거로 달리기에 최상의 환경이다. 아마 일본 자전거여행중 가장 여유 있는 코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펼쳐진 바닷길에서 걸음을 멈추고 몽돌 해변으로 들어가 작은 돌을 집어 보는 여유도 갖는다. 
이제 루모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르막으로 휘어진 언덕길은 왼편 아래에 루모이 해수욕장(골든 비치 루모이)과 오곤미사키(黃金岬) 해안공원이 있다. 육안으로 보아도 아름답고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다. 
이곳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바로 오곤미사키인데, 석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으로 해변공원에 있는 탑을 중심으로 멋진 석양이 펼쳐진다. 하지만 지금은 정오의 시간이라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시내에 진입해도 식당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마침 길에서 만난 젊은 친구가 따라오라면서 데려다 준 곳은 쇼쿠도엔(食道園)과 그 맞은편에 검정색톤의 인테리어로 감싼 쇼쿠차이쿄엔(食彩饗宴)이란 식당 두 곳이다. 우리는 쇼쿠차이쿄엔으로 들어갔는데 가격 대비 맛도 좋아서 혹시 이곳을 지날 때 이용하면 괜찮을 것 같다. 

쾌청한 날씨를 배경으로 한 멋진 풍광이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낯선 일본인이 안전을 위해 주고 간 플래시
오토바이로 일본을 일주하는 20살 청년, 히데유키 미야기
오랜 전통의 쿠니마레 양조장 정문
루모이로 향하는 평탄한 바닷길은 마음이 여유롭다
멋진 건축물 쿠하나다케반야(舊花田家番屋)가 있는 오비라니신반야 휴게소
도마마에 입성을 환영해 주는 커다란 곰 4
도마마에 캠핑장에는 선선한 날씨로 캠핑족이 많지 않았다

 

이미 무성한 숲을 또 가꾸는 일본
삿포로를 벗어나 이시카리에서부터 우리를 인도했던 231번 국도는 이제 루모이를 지나면서 232번 국도로 길을 내준다. 
이제 오른편은 삼림이 무성한 한적한 길을 계속 달리게 된다. 개인삼림으로 치산사업 중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이렇게도 숲이 무성한데도 끊임없이 삼림녹화를 펼치는 모습이 대단해 보인다.
한적하고 외딴 길을 체구의 2/3나 되는 배낭을 멘 뚱뚱한 일본인이 홀로 터벅터벅 걷고 있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도보여행중이라 한다. 자전거로도 먼 길인데 도대체 어느 기간 동안 저 체구로 여행을 할까 의구심이 든다. 그저 건강하고 무탈하길 바랄 뿐이다.
1시간을 달려 만난 곳은 검정색의 중후한 질감으로 온통 건물 전체를 채색한 멋진 일본풍의 휴게소다. 이곳은 중요문화재 쿠하나다케반야(舊花田家番屋)가 있는 오비라니신반야(おびら鰊番屋) 휴게소다. 광장 건너 바닷가에 3척의 조난된 배를 추모하는 위령비가 양쪽에 조화를 거느린 채 흐릿한 날씨 속에 서있다.
날이 다시 회색빛으로 어두워져 간다. 기온도 낮아진다. 쌀쌀함 속에 해안을 질주한다. 이제 숙소를 찾아야 된다. 풍력발전기의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이 점점 다가온다. 해안과 낮은 구릉 속에 10여기의 발전기가 줄지어 있는 모습이 그림 같다.
도마마에(苫前)에 도착했다. 온천이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소방서 앞을 지나면서 커다란 곰 동상의 사진을 담아본다. 곰의 습격으로 사람이 죽은 곳이라서 그런지 곰의 모습이 위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표지엔 아이러니 하게도 웰컴이란다. 마침 멋진 온천을 끼고 돌아 올라가니 제법 커다란 유료캠핑장이 우리를 맞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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