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왜, 어떻게, 자전거 천국이 되었을까

유럽 자전거 문화를 엿보다(상) 
유럽은 왜, 어떻게, 자전거 천국이 되었을까

유럽은 흔히 알려져 있듯이 ‘자전거 천국’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고, 자전거도로와 주차장, 신호등, 열차와 버스의 적재 시설 등 사회 전체 시스템이 자전거를 당당한 교통수단으로 배려하고 있다. 늘어나는 교통수요를 자동차로만 감당하려 하지 않고 자전거로 대체하고 있는 점에서, 우리와는 근원적으로 접근방식이 다르다

 

노면전차(트램)와 자전거, 자동차가 평화롭고 질서있게 공존하는 유럽의 거리

 

어느덧 찬바람이 나는 계절이 돌아왔다. 이제 날씨가 조금 더 추워지면 길거리에서 자전거를 보는 빈도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 기후는 많은 장점도 있지만, 아웃도어 스포츠에서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한가? 겨울엔 또 겨울만의 매력적인 스포츠가 있으니 말이다. 입장의 차이에 따라 같은 상황과 사물도 달리 보이는 법이다.

유럽은 뭐가 다를까
필자는 라이프 스타일 관련 일을 했던 과거의 경험상 젊은 시절부터 해외를 자주 방문하고 또 장기 체류하면서 외국인들의 생활을 들여다볼 기회가 제법 많았다. 마침 올해 늦은 여름에도 업무와 관련된 몇 가지 이슈와 휴가를 연결해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과거의 방문 경험과 이번 여정을 통해 살펴본 느낌을 더해서 유럽의 자전거 문화에 대해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이번에는 방문했던 나라의 자전거 사용 환경을 주로 소개하고, 다음달에는 우리나라와 다른 이러한 현상을 만드는 원인, 그 중에서도 특히 필자가 생각하는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나라별 라이프 스타일과 그 차이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자전거에 대해 전문가적인 식견을 갖춘 매니아가 많은 구독자의 특성상, 그 중에서도 특히 유럽을 많이 다녀본 일부 독자들에게는 이달의 내용이 어쩌면 식상할 수도 있겠으나, 필자 나름의 경험과 이번 일정을 종합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유럽과 중국의 근본적인 차이 
우리나라는 전후 국가 주도의 급속한 사회 인프라 구축과 빠른 경제 발전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차량 중심의 교통문화가 빠르게 발전해 왔고, 때문에 유럽과 달리 자전거가 끼어들 틈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보인다. 마치 중국이 유선 인터넷 단계 없이 모바일로 직행한 까닭에 우리보다 핀테크가 더 발달한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유럽의 자전거 환경은 정말 놀라울 만큼 부러운 수준이다. 특히 네덜란드와 독일은 가히 자전거의 천국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자전거 중심의 교통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21세기 들어서 경제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도 한편으로는 자전거 천국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큰 영역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보인다. 서구에 비해 도시화가 늦은 중국은 국가 주도의 도시계획을 통해 빠르게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애초부터 자전거도로를 포함하여 도로 설계를 하기가 수월했다.
반면 유럽은 오랜 세월을 거쳐 도시가 형성되어 온데다 워낙 오래된 문화유산이 많아 도시를 재개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이에 따라 늘어나는 교통수요에 맞게 도로를 확장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용이 많이 드는 지하철 등 대규모 공사를 통해 개선하기보다는 대중교통과 자전거 활성화를 위한 제도와 인프라, 그리고 문화를 잘 정비해 가면서 지금의 자전거 환경를 만들어 온 것이 유럽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실용적인 왜건이 국내에서 안 팔리는 이유  
수세기 전부터 유럽은 철도망이 매우 발달했다. 최근 들어 저가항공의 무서운 성장세로 인해 일부 장거리 노선이 폐지되는 등 변화를 겪고는 있지만, 자전거 이용자에게 있어서 철도만큼 편한 연계 수단은 없다.
비행기에 자전거를 실어 보았는가? 유럽 국가를 오가는 저가항공 요금은 수하물 없이 갈 경우 불과 몇 만원에 지나지 않는다(그 대가로 잦은 지연을 각오해야 한다는 점은 다 아는 비밀). 하지만 만약 자전거를 싣고 가야 한다면? 내 돈 내고 타야 하는 여정이라면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사용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매사에 실용적인 유럽인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왜건형 승용차를 선호하는데, 자전거를 싣고 다니는 차량을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자전거를 지붕에 싣고 달리는 차를 본 적이 있는가?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이 풍경을 필자는 과거 속도 무제한의 독일 아우토반에서도 본 적이 있다(당시 필자는 처음 시도해 보는 시속 200km의 속도를 찍는데 집중하느라 사진을 찍을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 왜 실용적인 왜건이 우리나라에서는 무덤이 되는 것일까?
다음달에는 이러한 현상의 차이를 만드는 유럽인들의 생활방식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 볼 것이다. 

버스 뒤에 자전거를 달고 다른 나라로  
유럽의 많은 국가에 있어서 장거리든 단거리든, 열차에는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별도의 전용공간이 있다. 비단 열차뿐만이 아니다. 유럽 각국을 오가는 버스의 뒷편에도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장치가 달려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우리나라는 지방으로 라이딩을 오갈 때 고속버스 화물칸에 자전거를 싣는데 이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유럽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유로존의 많은 나라들이 국경 통제 없이 사실상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서 이동이 손쉽고, 무엇보다도 유럽인들의 생활에 자전거가 그만큼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옆 마을에 마실가듯이 자전거를 열차에 싣고 또 버스에 매달고 옆 나라를 가는 것이다.
장거리 교통 말고 단거리 교통수단은 어떠한가? 유럽의 많은 나라들(특히 서구권)에는 트램과 지하철에도 자전거를 배려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장거리보다 피크타임 밀집도가 높은 지하철에도 접을 수 있는 가변형 좌석 구조를 통해 이를 배려하고 자전거 이용을 권장하고 있다. 

 

열차에 표시된 자전거 이용칸
열차 객실의 자전거 적재 공간 표시
열차의 자전거 적재 공간은 좌석을 접이식으로 설치해 공간활용도를 높였다
자전거 우선 좌석

 

도시교통의 상당부분을 맡는 자전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 유럽국가들은 자전거도로가 정말 잘 되어 있다. 방문하는 어느 도시든지, 번잡한 중심부든 변두리든 자전거도로는 별도의 신호등과 안내판, 별도의 색깔로 칠해진 차선 등 모든 것이 너무나 잘 구비되어 있다. 심지어 중소도시의 일부 도로에서는 차선의 절반이 자전거도로인 곳도 있다.
한 예를 들어 네덜란드를 말하자면, 이 나라도 과거에는 차량 중심의 교통환경이었다고 한다. 1980년대 들어 차량 중심으로는 더 이상 늘어나는 교통 수요와 인프라 투자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격렬한 논란을 거쳐 자전거가 교통의 상당 부분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전환시켜 왔다고 한다. 결과로 볼 때 이 시도는 꽤 성공적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지만 자전거가 교통의 큰 축을 담당하도록 진화해 온 데에는 단지 자전거 인구가 많았기 때문이라기보다 국가 단위의 제도 개선과 캠페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유럽인들의 합리적 사고방식이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사고방식이 문화를 만들고 그에 따라 형성되는 시장이 다르기 마련인데 이러한 내용은 다음달 살펴보겠다.  

자동차보다 앞에 있는 자전거 정지선
유럽에서는 자전거를 정책적으로 배려하는 의지를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 예를 들자면 도로의 차량 정지선보다 자전거 정지선이 앞에 있다. 대부분의 도로에 자전거도로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만, 간혹 자전거도로를 별도로 구분하기 어려운 도로에서는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앞에서 출발하게 함으로써 안전을 배려한 것이다. 자전거도로가 분리된 도로에서는 심지어 교차로에서 자전거 차선이 직진과 우회전이 나뉘어 차로가 복수로 마련된 곳도 있었다.
고속도로와 유사한 지방국도까지도 자전거도로가 완벽하게 이어져 있다. 스위스의 알프스 산골 지역에서 보니 왕복 자동차로에는 중앙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자전거도로는 차선이 나뉘어 있었다. 심지어 도중에 만난 터널 안에서조차 그랬다. 오가는 교통량을 감안해 차량은 알아서 요령껏 교차하고 때로는 차도 중앙을 넘어갈 수 있도록 허용하더라도 자전거 영역은 구분하여 배려하고 있었다. 원칙에 입각한 규제보다 실용성에 우선순위를 둔 유럽다운 모습이었다. 

 

나라를 오가는 장거리 고속버스 뒤편에 자전거 적재 시설이 달려 있다
자전거 정지선이 자동차보다 앞에 있다
별도의 신호등이 있는 자전거 전용 횡단로

 

 

자전거도 차도의 당당한 주인 대접
실용성을 중시하는 유럽의 DNA는 여러 곳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교차로에서는 어김없이 별도의 자전거 전용 좌회전 레인이 있다. 유럽은 사거리에 신호등 대신 로터리를 설치한 곳이 많은데, 이 또한 적은 비용으로 실용성을 추구하는 유럽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자전거도로를 달리던 중 불편함이 없도록 로터리에도 자전거도로가 둥글게 이어져 있다. 네방향 횡단보도가 있는 일부 교차로에서는 자동차의 진행과 마찬가지로 자전거도 오른쪽으로 순환 횡단하도록 안내판이 있는 곳도 있었다. 자전거는 분명 당당한 차도의 주인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유럽 도시에는 노면 트램이 많은데 자동차와 트램, 자전거가 뒤섞여 다니면서도 모두가 이에 익숙한 듯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도심에서 차도로 자전거가 들어가면 어떤 대접을 받는지 한번 떠올려 보라. 자동차 중심의 우리나라 도시에서는 자전거가 끼어들 틈이 전혀 없는 환경이 대부분인 것을 감안하면 부러울 따름이다.

환승역마다 대형 자전거 주차장 
스위스의 바젤 기차역과 네덜란드 북부도시 리우와르던에서는 자전거 지하 주차장을 겸한 자전거 전용 지하도로를 볼 수 있다. 늘어나는 교통 수요를 입체교차로를 만들어 차량 중심으로만 모두 감당하려고 하지 않고,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해 교통을 분산하면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유럽식의 교통 인프라 정책 방향을 엿볼 수 있다.
유럽은 나라마다 기차역 등 환승이 이뤄지는 곳에는 어김없이 자전거 주차장이 잘 되어 있다. 늘 관광객이 붐비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유동인구 중 70%는 관광객이라는 말이 있다. 유동객이 많은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 광장에는 특히 압도적인 규모의 주차장이 여러 개 있는데 관광객은 대부분 자전거를 갖고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많은 양은 모두 이곳 거주자들의 자전거라는 의미이다(서울역처럼 자동차 환승주차장은 없다. 차를 타고 도심에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다).
이번에 방문한 네덜란드의 어느 북부 도시 기차역에서도 매우 큰 자전거 주차장을 볼 수 있었는데 특이한 점은 비를 맞지 않도록 지하로 구조화된 안쪽에 2층 수납이 가능한 주차장이라는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지방 도시임에도 광장 앞은 자동차 주차장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잘 정비된 자전거 시설의 차지였다. 수백년 되었다는 역사 앞에는 역시 수백년은 됨직한 큰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가 계속 살 수 있도록 구멍을 뚫은 구조물을 설치해 자전거 주차장과 그 위에 광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무와 경관도 살리고 효율성도 높인 것은 우리나라와는 정책적 DNA가 다르게 느껴지는 면이다.
유럽에는 자전거 신호등이 별도로 있다. 아직 모든 도시에 다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전거가 차지하는 도로 위에서의 비중은 사뭇 남달라 보였다. 

우리도 노력하고는 있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전혀 새로운 일도 아니지만 유럽에서는 자전거가 일상생활이다. 많은 돈을 들여 도로를 뜯어고치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인 방법들을 통해 자전거 문화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우리나라는 제발 보도블록 좀 자주 갈아엎지 말고 이 돈으로 자전거를 위한 뭔가를 착실히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서울의 지하철에도 자전거 수납을 배려한 듯한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사실 휠체어를 더 염두에 둔 공간 같기는 하다), 자전거 진입 자체를 통제하는 안내판을 보면, 도대체 정책의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 일관성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전거도로 인프라에 관한 최근의 서울시와 몇몇 지자체의 행보를 보면, 색깔로 구분된 자전거도로와 전용 횡단보도 레인, 전용 표지판들을 갖춰가는 등 많은 변화의 노력들이 보이고 있다. 분명히 중국보다는 유럽을 벤치마킹해 나가는 것 같아 보인다.
물론 교통 인프라의 특성상 자전거 신호등, 도로 연결망 등 전체 인프라가 다 갖춰지기 전까지는 실효성에 많은 제약이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이러한 노력들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그 어느 때보다도 우선순위를 두고 애쓰고 있다고 느껴진다. 가급적 빠른 기간 내에 우리나라도 에코 모빌리티 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다음 달에는 후드는 어떤 용도의 옷인지, 왜 우리나라에서는 무덤이라고 하는 왜건을 유럽에서는 많이 타는지, 요즘 피자 배달은 무엇으로 하는지, 자전거와 관련된 유럽인들의 생활상과 이를 만들어낸 보다 근원적 요소, 즉 유럽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살펴보겠다. 

 

전기자전거를 화물운송용으로 활용하는 모습
주요 역에는 지하공간을 활용해 대형 자전거주차장을 설치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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