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雨後)에만 만폭동! 폭포가 몸을 숨기는 까닭은

변산반도 건폭(乾瀑) 3제
우후(雨後)에만 만폭동! 폭포가 몸을 숨기는 까닭은

한반도 내륙에서 거의 유일하게 외톨이 산군을 이룬 변산반도는 해변에는 까마득한 백악기의 화산활동 흔적이, 내륙에는 새하얀 화강암이 돌출한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다. 온통 바위산이지만 산이 낮고 골짜기가 짧아 곳곳에 건폭(乾瀑)이 걸려 있어 폭우가 내린 후에는 온 산이 폭포 천지의 만폭동이 된다. 높이가 50~60m에 달하는 거대한 건폭 세 곳을 찾아 변산을 일주한다

 

우동제 수면에 비친 선계폭포. 폭포 주변의 병풍 같은 암벽 위쪽에 선계사가 있던 분지가 숨어 있다
높이 60m 절벽에서 떨어지는 선계폭포. 수량이 부족해 작은 물줄기만 흐를 뿐이지만 직벽 거암과 시커멓게 젖은 물줄기의 흔적이 압도적이다. 동그라미 안의 이윤기 이사가 저렇게 작아 보인다

 

폭포는 일상에서 만나는 기현상이다. 강물은 멈춘 듯 유장하고, 상류로 올라가 골짜기로 가도 계곡물은 졸졸졸 애교를 부린다. 폭우로 급류가 몰아쳐도 물은 비스듬히 옆으로 흐를 뿐이다. 지상에서 물은 옆으로(실은 중력을 따라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지만) 흐르는 어떤 물질이다. 그러다 호수나 바다를 만나면 평면의 절정을 이룬다. 고요한 바다와 호수는 유리처럼 반듯하고 거울처럼 하늘을 비춘다. 그런데 옆으로만 흐르고 무한평면으로 고요하던 물이 반란을 일으키는 곳이 있다. 바로 폭포다.
조용하고 얌전하던 사람이 과격한 면모를 보이면 놀라듯이, 물의 이 형태적 급변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감을 준다. 얌전하고 조용하던 것이 갑자기 왜 저러지!?
옆으로만 흐르고 가만히 모여 있던 물이, 수직으로 급전직하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일상과 평범의 풍경이 아니다. 굉음으로 절벽을 쏟아져 내리는 물은 비말로 산화하면서 공기중으로 스며들고 가슴으로 파고든다. 눈과 귀가 멍해질 때 저절로 벌어진 입으로는 몇 개의 비말이 튀어들어 혀끝마저 농락한다. 

 

화산암 해식애인 적벽강. 서해가 아니라 제주도나 동해안 풍경 같다

 

동떨어진 선풍(仙風)의 땅
동양의 산수화에서 폭포는 신선의 흰 수염처럼 선풍(仙風)을 더해주는 배경이다. 신선이 폭포를 가만히 완상하고 있는 모습은 ‘관폭도(觀瀑圖)’라고 문인화의 한 장르가 되어 있다. 산수화에서, 특히 신선경을 묘사할 때 산과 물은 기본이고 폭포는 필수가 된다. 물은 반드시 강이나 호수로 표현되고, 산 속에서는 필히 폭포가 떨어져야 비로소 신선경이 완성된다. 물의 반란, 이 기현상은 현실을 초극해 비현실로 접어들거나 상상하게 해주는 어떤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신선이니, 관폭도니 하는 건 모두 중국의 도교(道敎)에서 유래했다. 도교는 현대의 중국인도 가장 많이 신봉하는, 종교라기보다 일종의 사유방식,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도피, 탈속, 염세주의 느낌을 주는 도교가 어떻게 극단적으로 현실적이고 이재에 밝은 중국인의 가치관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어쩌면 삶의 역설일지도 모른다. 지극히 현실적이면 지극히 비현실적인 관념을 보상처럼 갈망하기 마련이다.
이 땅에서 산수화 속 풍경처럼 선풍이 느껴지는 곳이 여러군데 있지만 내게는 변산반도가 가장 특이하다. 한반도의 모든 산은 대간, 정간, 지맥 등등의 산줄기로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유독 변산반도만 호남평야 남서단에 홀로 떨어져 거대한 산군을 형성하고 있다. 아마도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에 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마저 ‘동떨어진 산’이라는 변산(邊山)이다. 어쨌거나 다들 연결되어 어우러져 있는데 홀로 떨어져 있고 풍경과 지질마저 다른 것은 묘한 격리감과 경외감을 준다. 예리하지 않으면서 뭉툭바위로 불거져 나온 능선은 달마대사 눈처럼 부리부리 하고, 포대화상 배처럼 넉넉하다.
암봉이 많으면 절벽이 많고, 절벽이 많으면 폭포가 많기 마련. 변산반도는 폭포를 더해서 선풍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변산의 폭포는 한층 비범하다. 평소에는 아예 말라 있거나 셀 수 있을 것만 같은 물방울로 멍울져 내리다가 폭우가 쏟아져야 비로소 거폭의 위용을 보여주는 건폭(乾瀑)이 많다. 많이 알려진 직소폭포는 수량은 풍부하지만 높이는 23m에 불과한 항폭(恒瀑)으로 산중 깊숙이 숨었지만 50~60m급 건폭은 길에서도 가까운 작은 협곡에 번듯이 걸려 있다. 이제 변산반도에 숨은 대형 건폭 세 곳을 자전거로 돌아본다. 

 

집 뒤편으로 절벽에 시커먼 잔해로 남은 수락폭포가 보인다. 높이 50m


격포에서 반시계방향으로 반도 일주
험하지만 빼어난 산세가 바다를 만나면 해변도 아름답기 마련이다. 변산을 에워싼 해변은 이색적인 절경의 연속이다. 남쪽 곰소만은 갯벌지대가 광활하고 북쪽에는 새만금방조제가 한바다를 직선으로 건너 고군산군도의 뭇 섬들을 꿴 다음 군산을 향해 아스라하다. 나머지 해변은 해안절벽이 즐비하다. 영광의 백수해안도로와 함께 가장 서해답지 않은 풍광이 여기 있다.
서쪽 끝 격포는 변산반도 여행의 거점이다. 독특한 해식애인 적벽강과 채석강, 격포해변이 인접해 있어 온갖 시설이 다 모여 있다.
우리도 격포에서 출발해 남서쪽 도청리의 수락폭포로 향한다. 오래전 우연히 그 앞을 지나다 산중턱에서 하얗게 떨어지는 거폭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이름조차 없던 건폭이었는데 어느새 ‘수락폭포’란 이름이 붙었다. 폭포가 곧 수락(水落)인데 무의미한 동의반복 아닌가. 아래의 동네이름이 하필 수락이라 그리 부르게 된 것 같다. 
전날 밤 비가 내려 물줄기를 기대했지만 30번 국도에서도 잘 보이는 거폭은 시커멓게 젖어 있는 절벽만 보여줄 뿐이다. 망원경으로 살펴보아도 마찬가지다. 임도를 따라 폭포 200m 전까지 접근했지만 물줄기가 아예 없어 원경만 보고는 돌아섰다. 50m 절벽을 곧게 떨어지는 거폭인데 상류의 골짜기가 워낙 짧아 상당한 폭우가 내리지 않으면 물줄기를 보기 어렵다. 서귀포의 엉또폭포와 규모와 분위기가 흡사하다.

 
격포에서 반시계방향으로 반도 일주
남쪽으로 곰소만을 돌아 보안면 우동리에서 부안무형문화재종합전수교육관을 끼고 산쪽으로 진입하면 우동제 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 중간쯤 굴바위 입구 삼거리에 다다르면 호수 저편으로 또 하나의 거대한 건폭이 드러난다. 높이가 60m에 달하는 선계폭포다.
희한하게도 병풍처럼 긴 절벽을 이룬 폭포 안쪽에 한때 변산 4대 사찰 중 하나였던 선계사가 있었던 분지가 있다. 외부에서 보면 폭포 너머에 평지가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특별한 곳이라 은둔자들에게는 최고의 피신처였을 것이다. 비가 오면 분지에 고인 물이 폭포로 떨어지지만 분지와 계곡이 크지 않아 평소에는 거의 말라 있다. 다행히 간밤의 비 때문인지 가냘픈 물줄기가 보인다.
호숫가에 자전거를 두고 5분 정도 올라가면 바로 폭포 아래다. 엄청난 수직절벽이 실로 위압적이다. 물줄기가 약해서 방울로 흩어지고 실개울 소리뿐이지만 거암이 자아내는 육중함과 절벽이 주는 압도감이 폭포 아래에 선 인간을 한없이 위축시킨다. 중국의 명산 여산(廬山)의 폭포를 보고, “은하수가 하늘 가운데로 떨어지는 것 같다(疑是銀河落九天)”고 읊은 이백(李白)과 어렴풋하게 교감한다.
이런 거폭 바로 앞에서는 오래 머물기 어렵다. 일정이 급해서가 아니라, 공감각적 위압감을 장시간 버텨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이 폭포 아래에서 각종 수련을 하던 이유를 알겠다.

변산반도 해안 풍경. 물은 깊고 푸르고 섬은 저만큼 물러났다. 멀리 보이는 산줄기는 위도
선계폭포 맞은편 대불사 뒤에는 80m 높이의 굴바위가 거대하다. 시커먼 물줄기 자국은 역시 건폭의 흔적이다

 

직소천 저편에 숨은 벼락폭포
선계폭포 뒤편으로 바드재를 넘어가면 내변산의 깊은 협곡지대다. 변산의 최고봉인 의상봉(508m)이 암벽을 훈장처럼 덕지덕지 거느리고 둔중하게 솟아있고, 길이 구불대는 산 아래는 협곡이 중구난방으로 뒤얽혀 심산유곡의 탈속감을 더해준다. 산중호수인 부안호(부안댐으로 인한 인공호수) 상류를 살짝 거쳐 나지막한 남여치를 넘으면 새만금방조제가 아득한 북쪽 해변으로 나서게 된다.
방조제 남단에서 부안댐 방면으로 2km 남짓 가면 댐에서 흘러내린 직소천 옆에 조성된 쉼터가 나온다. 쉼터 맞은편으로 흡사 금강산의 한 자락을 떼어놓은 듯한 기암들의 대향연이 펼쳐지는데, 자세히 보면 안쪽 깊숙한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보인다. 벼락폭포다.      
강을 사이에 두고 500m 가량 먼거리에서 폭포 상부만 겨우 볼 수 있는 것이 아쉽지만 그나마 물줄기가 가장 우렁차다. 벼락폭포 역시 높이 50m 정도의 거폭이다. 왼쪽 마을을 통해 암벽을 위태롭게 올라가는 접근로가 보이지만 다시 비가 시작되어 일부만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건폭을 찾아와서인지 비가 내려도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 저 건폭들은 이 비를 얼마나 기다렸을 것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이 비 그치면 변산의 숱한 건폭들은 참았던 물줄기를 쏟아내면서 만폭동(萬瀑洞)을 이룰 것이다. 금강과 설악이 늘상 만폭동이라면, 변산은 우후(雨後) 만폭동의 희소성, 까칠함을 내세운다.
고사포에서 변산해변로를 따라 격포로 돌아오는 길. 해안선에 널브러진 시커먼 화산암은 제주도에 온 것만 같다. 지질학적으로는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활동 흔적이라는데 공룡 발자국도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고 보니 변산은 참으로 오래되고 늙은 지형이다. 바위가 지천이지만 예리한 첨봉(尖峯)이 아니라 무던하게 둥글려 인간의 접근을 슬며시 보듬는다. 백제 최후의 저항군도 이 변산에 기댔고(백제 부흥군 최후 거점이던 주류성은 상서면 감교리의 우금산성으로 비정), 신라와 당, 백제와 왜 4개국이 맞붙은 동양 최초의 국제전인 백강전투도 변산 북쪽 동진강 하구쯤에서 벌어졌다(금강 하구로 보는 설도 있음).
변산 곳곳에 걸린 건폭이 그리웠던 것은 또 다른 역사의 격변을 예감하기 때문일까. 
 

서해안 최고의 입체 경관을 보여주는 변산해변로. 뒤편의 섬은 썰물 때 육지와 연결되는 하섬
부안댐 아래 직소천 건너편으로 보이는 벼락폭포 일원의 절경. 계곡 안쪽에 폭포가 걸려있어 상부만 보인다(아래 사진)

 

여 정
격포를 중심으로 수락폭포, 선계폭포, 벼락폭포를 모두 들리면 70km 정도 된다. 바드재 외에는 큰 고개가 없어 한번 충전으로도 완주가 가능하다. 당일치기보다는 1박을 하며 변산의 명소를 함께 둘러보면 좋다. 리조트와 펜션 등이 해안을 따라 즐비하지만 격포나 모항에 숙소를 잡는 것이 마트 등이 가까워 여러모로 편하다. 바지락 숙회를 곁들인 바지락비빔밥을 특별 요리로 추천한다. 고사포해변 인근의 변산명인바지락죽(변산면 변산해변로 794, 063-584-1400) 집이 맛깔나게 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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