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076m 미쿠니고개 넘어 도쿄로

일본 북부 방랑기
굿바이 동해! 
해발 1076m 미쿠니고개 넘어 도쿄로

 

해안을 따라가는 7번 국도는 야마가타에서 해안 경치의 절정을 보여준다. 니이가타의 해변은 평이하지만 대신 힘들이지 않고 질주한다. 이제 동해와 작별하고 해발 1076m에 달하는 미쿠니(三國) 고개를 넘어 군마와 사이타마현을 거쳐 도쿄로 방향을 잡는다. 사이타마에서는 절친한 고바야시 상과 ‘마마’ 정희 씨가 성대한 환영회를 준비해두고 있어 폭염에도 힘든 줄을 모른다

 

 

15일차 7월 29일
아키타엔 미인이 많다는데…
호텔의 뜨거운 탕에서 찜질하고 푹 자서 그런지 컨디션이 100프로다. 역시 잠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피로회복제이리라.
오늘은 일단 서쪽 바다를 향해서 그림자가 앞장을 선다. 시끄러운 자동차들을 전용도로로 보내서인지 좁은 길이 한산하다. 선선한 아침바람이 얼굴을 매만지고 코발트색 도로는 커브를 완만하게 그리고 있다. 길옆 삼나무숲 사이사이에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금방 세수한 듯 깔끔하다. 이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면서 페달링을 한없이 계속하고 싶다.
구르미가 아침 언제 먹느냐고 투덜거리면서 환상을 깨트린다. 이렇게 축복받은 아침에 편의점 구석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건 거의 범죄수준 아닌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고 했단다. 구르미가 받아친다. 그 소크라테스가 “니 꼬라지를 알라”고 했다네….
서울에서 동해바다를 보려면 진부령이나 미시령 같은 힘든 고개를 넘어야 한다. 그런 생각에 동해(일본측에서는 일본해) 쪽은 험난한 여정을 각오했는데 7번 국도는 이렇다 할 고개 없이 키타아키타(北秋田)로 들어선다. 골짜기 사이로 길을 내고 피할 수 없는 산이 나오면 그냥 터널을 뚫는 식이다. 7번 국도는 최상의 선택이었고 역시 ‘럭키 세븐’은 행운 그 자체다.
지나치던 한 동네에서 멜론잔치가 한창이다. 수박을 좋아하는 도쿄 기숙사 이동욱 사장이 생각나서 한 박스를 택배로 보낸다.
길 건너에 목장직영 말고기식당이 있어 호기심반 보신에 도움될까 하고 말고기 냄비탕을 시켜 밥을 말아 배불리 먹었다. 국물이 담백하다. 예전에는 말고기를 비싼 소고기인양 속여 팔았단다. 색깔이 사쿠라(벚꽃)처럼 붉은색이라 사쿠라 니쿠(고기)라 한단다. 그래서 ‘사쿠라’ 하면 진짜가 아닌 사이비를 나타내는 말이란다. 중국의 ‘양두구육’은 양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얘기고, 우리도 광어가 엄청 비쌀 때는 가물치 고기를 섞어 파는 나쁜 사람들이 있었지.
키타아키타를 지나니 푸른 바다 대신 넓디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그동안 하늘을 바라보고 달렸다면 이젠 녹색의 들판 사잇길을 요리조리 달리는 셈이다. 아키타산 쌀이 유명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늘도 없고 막힘없이 툭 터진 넓은 평야에서 풍부한 일조량과 맑고 시원한 해풍에 밤에는 서늘한 기온의 이슬을 먹고 자라니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 나는가 보다.
교토 미인과 더불어 일본 삼대 미인의 고장 아키타! 그래서 그런지 마주치는 여인들이 다 미녀로 보인다. 집 떠난 지 오래 되어 헛것이 보이는 건지?
해질 무렵 아키타항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젊은 부부와 잠시 얘기를 나눈다. 우리나라 대구 미인과 사과의 관계를 얘기했더니 아오모리의 사과가 도움준 건 전혀 없단다. 겨울이 길어서 잠을 많이 자고 눈이 많이 와서 습도가 높아 촉촉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어 미인이 많단다. 다 알고 있는 얘기지만 그러냐고 맞장구를 쳐준다. 그러면서 한국 여자들은 다 예쁘게 보인단다. 그려,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집에 있듯이 진짜 미인은 우리 ‘금숙이’지. 아부만이 살길이다. 딸랑딸랑~.

아침 일찍 서쪽 바다를 향하니 그림자가 앞서 나간다
아오모리를 벗어나 키타아키타시로 접어든다. 길옆으로 삼나무숲이 울창하고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금방 세수한 듯 깔끔하다
말고기 냄비탕 정식
키타아키타를 지나면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풍부한 일조량과 맑고 시원한 해풍에 자라는 아키타 쌀이 유명하다
아키타는 일본 3대 미인의 고장이다. 겨울이 길어 잠을 많이 자고 눈이 많아 습도가 높아 촉촉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16일차 7월 30일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 내려다보면 푸른 바다
아키타항은 새벽부터 시끌시끌하다. 월요일인데도 낚시꾼들이 모여들었다. 텐트와 짐정리를 한 후 근처의 편의점을 찾았다. 여긴 우리네처럼 24시 해장국집은커녕 아침에 문을 여는 식당이 드물다. 해서 언제나 아침은 편의점에서 해결한다. 때에 따라서는 세수도 하고 양치질과 볼일까지 그야말로 나의 아침 별장인 셈이다.
오니기리(삼각김밥)부터 각종 도시락이 “어서 듭쇼” 하고 있다. 컵라면이나 샌드위치, 면종류도 있지만 역시 촌놈에겐 밥도시락이 최고다. 그저껜 초밥을 먹어 봤고 오늘은 카라아게(닭튀김) 도시락을 골랐다. 맛있어 잘 넘어간다. 나의 이 못 말리는 식성을 모두들 부러워한다. 그래서 내게는 절대 ‘맛집’을 물어보지 않는다. 내게는 전부가 다 ‘맛있는 집’이기에…. 그래도 ‘폭풍흡입’ 뽈락도 못 먹는 게 딱 세가지가 있다. 몰라서! 없어서! 안줘서!
7번 국도를 얼마 안 달려 아키타시내 간판이 보인다. 왼쪽으로 꺾어 시내로 접어들어 본다. 고층건물이 없고 자동차가 적은 도로가 넓고 시원하게 펼쳐진다. 산이 많아 도시가 협소할 줄 알았는데 홋카이도의 도시들 같이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오래된 아키타 현청사가 건너편의 신식 아키타 시청사에 비해 초라해 보인다. 하긴 가방크기가 성적을 가름하진 않으니….
돌아서서 아까 왔던 도로로 접어든다. 왼쪽으로 한참을 달렸는데 13번 국도 팻말이 계속이다. 앞서 거기서 직진해야 되는데 짐작으로만 열심히 달렸던 것이다. 역시 ‘열심히’보다 방향성이 더 중요한 것을.
다시 7번 국도에 오르니 4차선 넓은 도로와 푸른 하늘이 눈앞에 깔려있고 오른쪽 옆에는 어느새 푸른 파도가 넘실대고 있다. 드디어 본격적인 일본 서부해안을 달리는 것이다. 절벽이 높은 탓에 바다를 만질 순 없지만 해안을 따라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고 이리 돌고 저리 도는 커브길에서 보이는 풍경은 쳐다보면 절경이요, 찰칵하면 작품이다. 달리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으면 그대로 멈추면 된다. 이것이 자전거여행의 특권이다.
구르미도 넋을 잃고 가다 서기를 반복하니 오늘 진도 나가기는 글렀다. 그래, 그깟 진도가 대수냐! 자연이 붙잡고 우리가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는데.
기왕 내친김에 쉬어가기로 하고 휴게소의 온천탕에 들른다. 하루종일 500엔, 3시간 이내 300엔의 착하디착한 가격이다. 경북 문경온천처럼 누런 온천수가 모락모락 하고 있다. 노천탕에서는 흰모래와 푸른 바다가 손에 잡힌다. 바로 그 백사장에서는 연인들이 산책하고 있는데 영감님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향해 가랑이를 쩍 벌리고 있다. 도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아키타항 부둣가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했다. 월요일인데도 아침부터 낚시꾼들이 모여들었다
우리처럼 아침에 문을 여는 식당이 없어 아침은 언제나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다양한 도시락이 나와 있다
드디어 일본 서해안을 달린다. 쳐다보면 절경이요 찰칵하면 작품이다
온천 휴게소에 마련된 식당. 다다미방으로 취침장소로도 활용된다
기발한 장어잡이 물통
밀항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살벌한 표지판. 동해안이니 밀항이라면 한국이나 북한밖에 없는데…

 

 

17일차 7월 31일
‘구르미’의 특별한 일기
어젯밤은 이 구르미가 자전거로 태어나 처음으로 특별한 추억을 만든 날이다. 해거름이 짙어질 때 아키타현의 조그만 동네인 혼조시(本莊市) 역전에 있는 한 호텔에서 진이와 한방에서 밤을 지센 것이다. 말하자면 첫날밤을 보냈다.
길거리에서는 참외를 파는 할머니에게 냉장고 참외를 깎게 해서 먹고 웃으며 인증샷도 남겼다. 사실 요즘은 세상이 각박해져서 길을 묻거나 맛집이라도 물어 보면 그런 거 네 손안에 다 있는데 왜 물어보냐고 하는 판이다. 그래도 진이의 ‘들이댐’이 통하는 것은 순전히 내 덕분이다. 다들 얘기는 진이와 하고 있지만 눈길은 내게 와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것도 모르면서 진이는 지가 잘 나서 그런 줄 안다. 흥~
얼마 전엔 정말 기분 좋고 흥분되는 일도 있었다. 진이가 직접 나를 전부 분해해서 구석구석을 닦아주고 아픈데 없는지 살펴주고 다시 정성껏 조립해줄 때 난 너무 좋아 미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동안 살면서 섭섭할 때가 없진 않았다.
처음으로 혼자 전국일주 간다면서 날씬한 티탄씨 하고 가버렸고 3년 전에는 내가 좋아 나를 더 알고 싶어서 일본유학 가야 한다고 금숙이한테는 ‘히말라야 베이스캠프론’을 3박4일 동안 설명해 설득시키더니 정작 내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이태리에서 왔다는 비앙키 양을 데리고 현해탄을 건너가 버렸지. 그리곤 그녀와 홋카이도로 여행을 갔다나 뭐라나.
그래도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희미한 것. 현재가 중요한 것 아니겠어. 지금 같이 한 방향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달리고 있는데 뭐가 부럽겠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리할 건데…. 해피엔딩으로~

호텔방에 구르미를 고이 모셨다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게 참외를 파는 행상. 냉장고에 든 걸 할머니가 깎아줘 시원하게 먹었다
해안길은 백사장, 자갈마당, 절벽, 바위섬 지대 등 천변만화의 얼굴을 보여준다
너른 평야 저 멀리 구름을 잡은 고산들이 솟아 있다. 도쿄로 가려면 저 산맥을 넘어야 한다
제철인 석화(굴)를 만났지만 초장이 없어 간장과 레몬을 얹어 먹을 수밖에
지붕도 없이 땡볕에 나앉은 주유소. 일반 휘발유가 142엔이니 우리보다 100원 정도 싸다

 

 

18일차 8월 1일
야마가타의 비경! 니이가타의 질주!
새벽 5시30분. 오늘은 좀 더 일찍 길을 나선다. 목표 니이가타시(新潟市)까지 140여km이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얕은 오르막이다. 벌써 등쪽이 뜨끈해진다. 도로 갓길의 흰색 차선에서 야광용 투명 알갱이들이 빛을 낸다. 고개 정상에 올라서니 푸른 바다가 보인다. 그 옆으로 7번 국도는 달린다. 기암괴석이 군데군데 어우러져 계속 발길을 멈추게 한다.
무서운 쓰나미 때문에 도로를 해안에서 멀고 높게 만들거나 성벽 같은 방파제를 둘러치는 동쪽의 태평양 연안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그저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고 보지 않으려 해도 눈앞에는 절경의 파노라마다. 울릉도 해안도로를 몇 배 확대해 놓은 듯하다.
가끔 7번 도로를 벗어나 345번 옛 7번국도로 가본다. 좀 돌아가는 느낌이지만 해안의 풍경은 일부러 찾아온 이방인에게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만드는 비경을 보여준다.
어릴 적, 먼지 폴폴 나는 길을 덜컹거리는 버스로 갔던 외갓집. 외할머니는 손주에게 보물단지를 풀어헤쳐 보여주셨는데 꼭 외갓집에 온 듯 신기하고 가슴 설레는 정경이다.
이곳은 산악지역이라 토양이 강원도 같이 척박할 것으로 짐작했지만 비옥한 논은 물론이고 밭도 토질이 너무나 부드럽다. 물빠짐이 좋은 마사토 성분이라 멜론이나 산마, 담배 농사도 잘 되는 것 같다. 어제는 일본에서 보기 힘든 참외를 만나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 혼자 먹으려니 안 넘어가서 시코쿠여행 때 신세진 한선생에게도 보냈다.
이렇게 농사가 일상이라 자연 이런저런 농기구도 팔고 있다. 아주머니가 톱날 달린 호미를 보여주면서 최신 인기품목이란다. 역시 난 구르미가 옆에 없으면 ‘칸츄리맨’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하나 사줄까 하다가 무서운 세관원의 얼굴이 떠올라 포기했다.
야마가타와 니이가타 경계 직전의 아츠미온천에서 터널을 몇개 지나니 니이가타현이다. 무라카미시(村上市) 근처의 휴게소에서 빨리가야 한다는 7번 국도를 먼저 보내고 다시 바다가 보고 싶어 113번 국도와 만난다. 아마 오늘이 지나면 일본 서쪽연안 바다는 한동안 못 볼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부터는 동쪽으로 서서히 넘어가야한다.
113번 국도는 바다와 맞붙어 있어 쭉 가는 동안 왼쪽에서 옆구리를 치는 도로와는 무조건 T자 형태다. 오른쪽 해안에는 소나무숲이 쭉 이어져 방조림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오후에는 시원한 그늘도 제공해준다. 하지만 야마가타 같은 절경은 없다. 그냥 밋밋하게 쭉 이어지는, 말하자면 달리기 좋은 길이다.
오픈카가 쌩하고 지나가면서 오른손을 치켜든다. 구르미가 “바퀴도 나보다 작은 숏다리 주제에… 우리도 달려볼까?” 한다. 콜~
뜨겁던 태양도 힘을 잃고 선선한 바람이 스치는 석양의 이 시간이야말로 달리기 좋은 때다. 이미 100km 넘게 달려 피곤할 것 같아도 오히려 전신이 풀려 다리는 자동으로 돌아가고, 정신은 맑아 온다.
니이카타역의 한 호텔 앞에 멈추었다. 구르미가 “오늘 주행거리 154km! 이번 여행 중 최장! 수고했슈!” 한다. 이래서 나는 구르미가 좋다. 함께 해서 좋다.

야마가타에서는 해안길이 바다와 부쩍 가까워진다. 작고 옹골찬 섬의 신사도 바로 길가에 있다
울릉도 해안을 닮은 절벽길 구간
농업지대여서 다양한 농기구를 팔고 있다. 톱날 달린 호미가 인기란다
이렇게 다양한 식칼을 팔다니… 역시 칼을 좋아하는 민족 답다
태양이 힘을 잃고 선선한 바람이 스치는 황혼녘은 특히 달리기 좋은 때다
산물인 대구를 형상화한 장식물
야마가타는 통나무 빨리 자르기 대회가 유명하다. 벌써 27회나 된다

 

 

19일차 8월 2일
결국 부처님 손 안에서…
어제는 좀 무리했으나 5시에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새벽잠이 많은 편인데 여행을 하면 일찍 눈이 뜨인다. 특히 오늘은 일본 서쪽해안에서 도쿄로 가는, 말하자면 ‘귀가길’로 접어든다. 등산으로 치면 하산길이요, 군대로 치면 말년 병장격이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지 하고 다짐한다. 껌도 씹지 말고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야 한다. 호텔을 나서는데 까마귀가 머리 위에서 “까악깍” 하면서 고맙게도 주의를 환기시킨다.
먼저 8번 국도를 찾아야 한다. 친절한 안내판 덕분에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8번 간판이 나타났지만 자동차 전용도로여서 자전거와 125cc 이하 오토바이는 출입금지라는 표시만 해놓고는 어디로 가라는 안내가 없다. 뒷골목을 돌아 강변으로 난 길을 통해서 겨우 8번 국도의 본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덕분에 구르미와 아침부터 한적한 데이트는 했지만 기분은 별로다. 암표 사서 극장 뒷문으로 들어가는 그런 기분?
어제는 밤중에 도착해서 몰랐는데 아침에 도시를 벗어나면서 시나노강 대교에서 바라보니 과연 니이가타의 현청소재지뿐만 아니라 항만, 철도, 공항 등을 고루 갖춘 서북 최대의 도시다. 앞으로는 툭 터진 바다가 보이고 저 멀리 희미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있다. 가운데는 한강 폭에 버금가는 시나노강이 흐르고 시가지는 푸른 논밭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들을 지나야 도쿄에 갈 건데 하면서 열심히 페달을 저어보지만 무지개처럼 좀체 잡을 수가 없다.
산조시(三條市)를 지나 나가오카시(長岡市) 초입에서 8번 국도가 우리를 17번 국도에게 인계한다. 17번 국도는 “도쿄까지 284km야~”하고 알려준다. 17번 국도는 평탄하고 갓길이 넓어 마음에 든다.
니이가타역을 출발해 무려 80km 정도를 달려서야 산그늘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부처님의 손바닥에서 놀림을 당했던 손오공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부처님의 손바닥에서 벗어나려고 용을 쓰는 바람에 벌써 오후 1시가 지났다. 보통의 일정은 오전에 60~70km 이동한 후 12시부터 3시까지는 점심과 휴식이다. 그래서 미치노에키(도로휴게소)는 언제나 나의 점심시간 별장이다. 점심시간도 늦었는데 딴 생각하느라 미치노에키를 지나쳐버렸다.
다행히 8km 정도 지나 다른 미치노에키를 만났다. 오늘 점심은 대나무 잎으로 싼 떡. 찹쌀떡. 가지나물과 미역무침 그리고 오다가 산 복숭아다. 궁합이 맞진 않지만 콜라 한 병도 추가다.
사실 자전거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건 체력관리다. 특히 장거리 여행은 더욱 신경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잘” 먹어야 한다. 한번에 많이 먹는 것보다 적게 자주 먹는다. 낮술은 절대 금물이고 저녁에도 한 캔으로 기분을 즐긴다. 시원한 게 당기지만 기회가 있다면 뜨거운 차를 마시거나 뜨거운 물에 찜질한다. 언제나 2리터짜리 보리차병은 싣고 다닌다. 오이, 토마토 등의 야채와 과일도 수시로 섭취한다.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실천되는 것 같다.

나가오카시 초입에서 17번 국도로 들어선다. 도쿄까지 284km 남았다. 듬성듬성 도열한 삼나무 가로수가 멋지다
8번 국도와 17번 국도가 엇갈리는 곳
댓잎에 싼 당고(일본식 떡)
당고와 찹쌀떡, 북숭아로 간단히 해결한다
여전히 사용되는 오래되고 낡은 목제가옥
독특한 구조로 지붕을 씌운 자전거보관대

 

 

20일차 8월 3일
1100고지 삼국령을 넘다
어제는 야트막한 언덕들이 있었지만 비교적 평탄한 길을 달려 니이가타시에서 120여km 떨어진 미나미유오누마(南魚沼)라는 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나가오카시의 강변에서 벌어지는 불꽃축제를 보기위해 이곳 우라사(浦佐) 역 주변에 차를 주차해 놓고 기차로 이동해서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 호텔도 만실이었으나 다행히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오늘은 이번 여행에서 최대·최고의 전쟁을 치루는 날이다. 이곳 서쪽에서 동쪽인 도쿄로 가려면 공룡의 등뼈처럼 솟아 있는 산들을 넘어야 한다. 걱정보다는 호기심과 정상에서의 기분을 상상하며 구르미의 등에 올라탄다.
아직은 파란 논이 펼쳐진 평야지대이지만 멀리 짙푸른 산 속에 연록색의 섬처럼 스키장 슬로프가 보이기 시작한다. 길옆으로 마을의 풍경이 쭉 스쳐지나간다. 유독 눈에 많이 띄는 것은 장례식장과 석물공장 그리고 무덤들이다. 죽음과 멀지 않은 어르신들이 많다는 얘기다. 혐오시설이라 동네에서 되도록 멀리 있는 우리와 달리 동네 안에 위치해 있다. 하기야 죽음은 바로 우리 옆에 있고 죽는다는 게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열심히 살지 않은 게 진짜 부끄러운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된다. 이제 내리막을 만나려면 저 큰산을 지나야 할 것이다. 겨울이 시즌인 산촌 마을은 조용하다. 스키, 겨울용품 판매라는 빛바랜 간판들은 겨울을 기다리며 긴 잠을 자고 있다. 오른쪽, 왼쪽, 저 멀리 전방에도 스키 리조트가 즐비하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의 단편소설 <설국(雪國)>의 무대가 된 유자와(湯澤)에서 길은 본격적으로 산으로 접어든다. 험산을 오르는 17번 국도도 힘이 드는지 뱀처럼 몸을 비틀면서 S자를 계속 그리고 있다.
이제 뒷목을 다 재껴야 하늘이 겨우 보인다. 산이 높으니 목이 짧은 걸 실감한다.
몸 전체의 구멍을 전부 열어 제켰다. 자신의 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다. 머리끝에서 시작된 땀은 얼굴, 가슴을 지나 배를 타고는 앞섶까지 적셔버렸다. 그래도 이 땀이 뱃살의 지방이려니 생각하니 나쁘진 않다.
고개를 들어보니 위의 길은 아득하다. ‘눈은 게으르고 손은 부지런하다’고 쳐다보면 한숨만 나와 안 보려고 애쓴다. 한번 쳐다보는데 10cm씩 오르막이 자란다고 최면을 걸어 인내해 보지만 그만 또 고개를 든다.
구르미를 쉬게 하고 위가 아니라 온 길을 본다. 지나온 마을들이 발아래에 있다. “벌써 이렇게 많이 올라왔잖아!” 역시 구르미는 긍정의 화신이다.
2000m가 넘는 산들이 버티고 있는 이 산맥을 쉽게 넘으려는 내가 염치가 없다는 생각으로 반성하는 차원에서 그냥 고개 푹 숙이고 느릿느릿 페달링에만 몰두한다.
터널이 보인다. 하지만 산을 관통하는 게 아니라 산허리를 자연스럽게 감고 서서히 올라가는 터널이라 한쪽은 공기구멍이 송송하다. 마치 거실처럼 커튼도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열려있지만 아마 겨울 눈보라가 칠 때는 굳게 닫히리라 짐작한다.
왼쪽으로 옛길이 보이는 곳에 낡은 터널이 입을 벌리고 있다. 600여m의 굴을 통과하면서 고생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오픈게임이었다. 소조령을 힘들게 넘었더니 이화령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그래,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온갖 알고 있는 문구들을 주문처럼 중얼거리면서 또 고개 푹~ 페달 쫙쫙~ 이다. 해발 1000m라는 간판을 한참 지나 드디어 삼국(三國, 미쿠니) 령의 삼국터널이 보인다(해발 1076m). 근데 조금은 서운하고 허무하다. 이렇다 할 표지석도, 조그만 공터도 없다. 삼국터널의 주민증(?)을 보니 소화 32년 10월생이다. 기가 막히게도 나하고 57 닭띠 동갑이다. “왜 이제 왔어. 이제는 입안도 헐고 물도 새는데” 하면서 삼국터널은 겸연쩍어 한다.
60년의 세월동안 니이가타와 도쿄를 잇는 유일한 통로가 되어준 삼국터널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나는 그 세월을 어떻게 보냈지 하는 생각을 하며 1200여m의 사연 많은 터널을 달린다. 이 터널을 지나면 군마현(群馬縣)이다.
터널을 나오는 순간 짠 하고 널따란 군마현의 풍경이 펼쳐질 줄 알았다. 대관령에 오르면 강릉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듯이. 그러나 다시 산은 깊고 숲만 울창할 뿐이다. 그래도 지그재그를 그리는 내리막은 스키 활강을 하듯 부드럽고 편안해서 꿈을 꾸는 듯하다. 슬슬 온천마을이 나타나고 오른쪽 숲 사이로 댐으로 이루어진 아카다니(赤谷) 호수가 새파랗다.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려는데 구르미의 앞바퀴가 덜렁거린다. 바퀴를 살펴보니 머리 넓은 압정이 타이어에 박혀 있다. “먹을 게 없어 압정을 먹냐?” 하고는 예비튜브로 후다닥 교체했다.
길은 아카다니강을 따라 쭉 이어진다. 강폭은 좁으나 계곡이 깊어 벼랑 옆으로 난 길이 아슬아슬하다. 터널도 제비집처럼 가까스로 붙어 있는 형상이다. 그래도 완만한 내리막에 더위가 옅어지는 해질녘의 라이딩은 환상적이다.
군마현의 도시와 들판이 펼쳐지고 이제 17번 국도는 4차선으로 넓어졌다. 이정표에 드디어 군마현청 소재지 마에바시시(前橋市)가 보인다. 아까부터 마에바시 훨씬 후에 있는 타카사키시(高崎市) 안내만 보여 의아하던 참이었다.
오늘은 최고의 고개를 넘고도 130여km를 이동하여 마에바시역 앞의 여관에서 머물기로 한다. 뿌듯하고 근사한 하루였다.

소박한 묘비가 길가의 나무 아래 모여 있다. 일본에서는 묘지가 일상 가까이 자리한다
미쿠니고개(삼국령) 일대의 지형 모형. 왼쪽 넓은 계곡이 유자와, 오른쪽 우회로가 미쿠니고개다. 일대의 최고봉은 센노쿠라(仙ノ倉) 산으로 해발 2026m에 달한다
커튼이 쳐진 반개방 터널. 겨울 눈보라가 칠 때는 커튼을 닫는다
미쿠니고개 터널 입구. 미쿠니고개(1139m) 아래 해발 1076m 지점을 통과하며 길이는 1218m
군마현으로 들어서서 늦은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는데 압정이 정통으로 박혀 펑크가 난 타이어
노점 야채상에 허수아비 강태공이 시선을 끈다
대장금 간판을 내건 한국식당

 


21일차 8월 4일
사이타마에서 열린 환영파티
마에바시는 군마현의 현청소재지로 우리네 대구처럼 내륙분지라 여름에 덥기로 유명하다. 역시 오늘도 40도에 육박한다고 하니 각오해야겠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도쿄까지는 지형상 서서히 내려가는 형태라고 생각하니 페달링이 가벼워진다.
4차선이 계속되는 17번 국도는 시내를 벗어나 외곽에 접어드니 도로상태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한다. 특히 갓길주변부는 아스콘이 녹았다 굳었다하면서 파도처럼 울퉁불퉁하다. 이걸 피하려고 도로 안쪽으로 핸들을 꺾는 순간 차량들이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지나간다. 이게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옆의 보도를 이용하려고 하면 무성한 풀속을 헤쳐야 하고 보도턱이 자주 울렁거린다. 그래서 다시 차도에서 정신을 집중해 달린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사이타마현(埼玉縣)에 접어들었다. 이렇다 할 특별한 표식도 없이 넓은 평지가 계속된다. 사이타마시가 10km 남았다는 이정표에서 도쿄의 이케부쿠로(池袋)로 가는 17번 국도와 요코하마(橫浜), 가와코에(川越)로 이어지는 16번 국도가 나온다.
오른쪽 16번 국도에 오른다. 17번 국도를 그대로 따라가면 도쿄의 집까지 30여km밖에 안되지만 오늘 사이타마에서 나를 위한 환영식이 있어 그리로 가는 것이다. 가는 도중에 시간이 되면 가와코에도 들릴 예정이다. 가와코에는 2차대전 때도 폭격피해가 없어 에도시대의 건물과 거리가 보존된 지역이라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평지를 달려도 여전히 땀범벅이고 긴장이 조금씩 풀려서 그런지 좀체 속도가 나질 않는다.
가와코에는 상상이상으로 큰 도시였고 에도시대의 거리를 가려면 또 옆으로 빠져야 해서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루마시(入間市)에서 463번 국도를 이용해 마침내 사야마가오카(狹山ヶ丘)에 있는 고바야시 상의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경이다. 고바야시 상은 나에게는 자상한 맏형 같은 분이다. 여행갈 때마다 지도를 구해주었고, 작년에는 집사람과 같이 한 나의 회갑기념 골프도 안내해주었다. 올해는 처가집 식구들의 도쿄여행도 같이 가주고 영화, 콘서트 등의 일본문화도 접하게 해준 분이다.
고바야시 상을 알게 된 것은 그의 부인인 ‘마마’ 정희 씨와 ‘술친구’를 맺으면서이다. 우리 기숙사 근처에서 ‘진미’라는 한국식당을 해서 ‘마마’라고 불리는 정희 씨는 부산 출신으로 음식솜씨가 뛰어나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인 단골고객이 많다. 덕분에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을 수 있었고 일본인들과도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며 일본인 가정방문이나 봄꽃놀이 등 일본인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그것도 대부분이 여성들이라 ‘타고난 복’에  깔려 죽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20여년 거주의 일본어 실력은 나의 어정쩡한 일본어를 정리, 요약해주는 선생이기도 하다.
사실은 어제가 마마 정희 씨의 생일이라 조촐한 파티가 있었는데 내가 이 근처를 지나간다니 다시 다들 모여서 환영파티를 열기로 한 것이다.
벌써, 다리가 튼튼한 상에 산해진미가 가득하다. 일본 생활 12년차 카나짱은 바쁜 회사생활에서도 몸매관리와 남동생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마마를 친엄마 같이 잘 따르는 리사 상은 지금은 보육원에 근무하지만 전직 간호원으로 마마의 건강 상담원이다. 그렇게 힘들다는 군생활을 8년씩이나 하고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방송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방송전문대학에 다니는 태연양도 함께 했다.
“김선생님 수고했어요. 건배!”

군마현 현청소재지 마에바시에 있는 대형 성당.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다
자전거와 보행자 도로를 표시하는 노면안내판, 선명하고 알아보기 쉽다
폭격을 면해 에도시대 거리가 보존된 가와코에(川越)는 스쳐지나 16번 국도를 따라 사이타마시로 향한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싱싱한 회인가
고바야시 상과 ‘마마’ 정희 씨가 산해진미로 가득한 환영회를 열어주었다
노른자를 떠올리게 하는 계란 직판장 건물

 

 

22일차 8월 5일
유유히 도쿄에 입성
9시가 지나서야 잠을 깼다. 커튼으로 가려진 캄캄한 실내 그리고 폭신한 이부자리에 선선한 에어컨의 분위기에 빠져 이렇게 꿀잠을 잤다. 무엇보다 편안하게 대해주는 고바야시 상 부부 덕분에 마치 내집인양 온 몸의 긴장을 놓아버린 것이다.
어제 환영파티에서 오랜만에 만난 이슬이의 숙취해소를 위해 마마 정희 씨가 벌건 육개장을 내놓는다. 하얀 밥을 말고 사각사각 씹히는 생김치를 얹어 입안에 넣는다. 정말 한국의 맛이다.
그동안 마마는 세탁기의 빨래를 쨍쨍한 햇볕에 널어놓고 있다. TV에서는 오늘도 39도라며 열사병 주의 방송을 한다.
바짝 마른 옷들을 개서 가방에 넣고 슬슬 떠날 준비를 한다. 마침 12시가 다 되었으니 우동을 먹고 가란다. 고바야시 상이 직접 끓인 즈케우동을 먹고 작별을 한다. 냉수 한병에 도토리묵을 마마가 따로 챙겨준다. 이렇게 신세만 지고 산다. 뒤돌아보니 손을 흔들고 있다. 이 더운데…. 날씨만큼이나 참 따뜻한 분들이다.
여기서 도쿄의 집까지는 대략 30km다. 그전에 자전거로 한번 와봤기 때문에 헤맬 일은 없다.
463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사이타마시 근처에서 4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와세다 길이 나온다. 길은 넓지 않지만 평탄하다.
오후 2시경의 태양은 세상을 다 태울 기세로 이글거려 헬멧에서부터 온 몸이 축축해 오지만 장거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귀가길이라 위풍당당하다.

고바야시 상의 환송을 받으며 도쿄까지 마지막 30km 길에 나선다
질서 있게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
드디어 22일만에 도쿄에 입성한다
갓길에 차선과 노면표시로 자전거도로를 배려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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