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전거시장의 위기와 대안

각계에서 바라보는 한국 자전거시장의 위기와 대안 

터널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자전거시장이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계와 수입 브랜드 업계는 매출 하락으로 비명을 지르고, 크고 작은 판매점과 전문샵까지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다. 본지가 창간된 2002년 이후 이런 적은 처음이고, 업계에 오래 몸담은 사람들은 97~99년 IMF 때보다 더 혹독하다고 말한다. 마치 한때의 서점처럼 동네골목에서 하나둘 사라져가는 자전거샵은 일상 속에서 위기의 크기와 깊이를 말해준다. 본지는 창간 200호 특별기획으로 각계각층에서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대안은 뭐라고 생각하는지를 총정리 해보았다

 

 

우리나라의 레저용 자전거시장은 2000년대의 MTB 흥행, 2010년 경 유행하기 시작한 로드바이크를 중심으로 급격히 성장해왔다. 하지만 2016년부터 침체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2019년이 밝은 지금까지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자전거산업의 뿌리인 생활자전거는 판매량이 심각한 수준으로 급감했다. 공공자전거가 활발히 공급된 지역에서 판매량의 감소가 더욱 두드러진다. 생활차의 부진을 메워줄 거라고 기대했던 전기자전거는 반짝하는 듯 보였지만 시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새해의 전망은 여전히 좋지 않다. 일부에서는 다시 정상화되기까지 2년 이상 걸릴 거라고 말한다. 그 정상화 역시 뼈아픈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 많은 자전거 매장들이 폐점을 결정했고, 유망한 해외제품의 국내 수입 역시 중단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동호인 이탈도 심각
업체들의 판매부진으로 인한 시장악화만이 문제일까? 물론 자전거 판매를 당장의 생업으로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만 판매부진이라는 이면에는 시장이 아닌 ‘자전거 문화의 후퇴’라는 문제도 버티고 있다. 동호인의 이탈이 심각한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자전거 관련 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되고 있는 것.  
지난 5월호에서도 한번 다룬 바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자전거가 급격하게 쇠락한 원인을 다시 한번 짚어본다. 5월호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자전거시장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모두 반영했다는 것이다. 국내외 완성차 업계와 대리점은 물론 소비자이기도 한 동호인까지 자전거시장을 지탱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를 들어봤다.  

1. 소매업계 반응
     고급차 생활차 모두 수요 급감, 용품도 피해가지 못해 

공공자전거의 그림자에 가린 생활자전거
익명을 요구한 자전거 대리점주 A씨는 지난 2년 동안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매출에 최근 가게 문을 닫고 다른 사업을 할까 고민하고 있다. A씨는 2013년 서울에 가게를 오픈한 뒤로 소위 대박은 아니지만 꾸준히 매출을 상승시켜왔다. 그의 가게는 주로 생활차, 하이브리드, 픽시 등 청소년이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자전거가 주를 이루고 고급자전거는 구색만 갖춰놓은 정도다. 하지만 지난 2016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다.
A씨는 원인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첫 번째로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꼽았다. 따릉이가 활성화 되고나서부터는 일반 생활차는 매출이 거의 없다는 것. 애초부터 생활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개통하면 한 대 주는 물건 수준으로 인식하는데 그친다. 그렇게 인식이 낮은 와중에 공공자전거가 사방에 깔리고 나니 생활차가 팔릴 리가 없다며 한탄했다. A씨는 그러면서도 공공자전거가 앞으로 자전거 저변에 주는 영향력은 긍정적으로 판단한다는 배치된 의견도 내놓았다. 공공자전거가 활성화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나중에는 소매점도 활로가 열릴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당장은 가게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 닥쳐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이라며 호소했다. 

고급자전거 취급점은? 
서울 응봉동에 위치한 성진바이크는 기자가 과거 동대문구에 거주하던 시절, 자주 들렀던 샵이다.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응봉역에 있으며 불과 100m도 안되는 거리에 한강자전거도로가 있어, 자전거 매장으로서는 최상의 위치다. 성진바이크는 모든 종류의 자전거를 다루지만 고급자전거에 집중해 온 매장이다. 지리적 이점과 김성진 대표의 정비경력 등 다양한 장점으로 중장년 동호인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온 만큼 단골도 많다.
하지만 오랜만에 방문한 성진바이크 역시 자전거시장의 위축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는 듯하다. 최근 업황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성진 대표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용인시 보정동에 위치했던 최대규모의 자전거 매장 하이텐은 지난달 철수했다
따릉이
유명 자전거샵 성진바이크 앞 도로. 시즌오프가 성큼 다가와서인지 한산한 모습이다

 

 

고급자전거는 무분별한 떨이에 진통… 
가격정책 철저히 지켜야

성진바이크 김성진 대표

 

“침체가 이처럼 길어질 거라고는 예감해왔지만 막상 닥쳐보니 심각한 수준이다. 9월쯤의 매출을 작년과 비교하면 30~40%나 줄었다. 다른 곳 같았으면 벌써 재고를 털고 문을 닫았어야 할 수준이지만, 성진바이크는 그간 쌓아온 업력과 단골이 있어 아직 그런 상황까지는 아니다. 또 꾸준한 정비수요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성진바이크로 업계의 상황을 대변하면 안된다. 자전거시장은 전반적으로 매우 심각하게 위축되어있다. 몇가지 원인을 짚어보자면 경기침체로 동호인들의 자전거 개비가 얼어붙은 점과 그동안 기준미달의 샵이 너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것, 또 대형 수입사의 불합리한 영업정책 등을 들 수 있다.
경기침체는 소비심리 하락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가장 먼저 여가생활에 대한 소비를 줄일 것이고 그것이 자전거시장으로 그대로 전해져왔다. 거기에 미세먼지 여파까지 더해져 자전거를 즐기던 사람들도 접는 판인데 새로운 소비가 이어질리 만무하다.
또 과거 자전거가 호황이라는 말에 너도나도 샵을 무분별하게 연 것도 문제라고 본다. 자전거 매장 한곳에 주로 다니는 손님이 100명 있었다고 하면, 지금은 1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곳저곳 가까운곳에 샵들이 많아진 것이 그 이유다. 또 그 100명의 손님이 모두 자전거를 구매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구매를 하는 손님은 10% 수준으로 봐야하는데, 10명중 1명이 자전거를 구매하는데 가게가 돌아갈 리가 있나.
마지막으로는 대형 수입사들의 불합리한 영업정책이다, 같은 제품을 출시해놓고는 어느 대리점은 잘 판다며 기존 공급가보다 더 싸게 많이 공급해주는가 하면, 그저 그런 매출을 보이는 샵에는 이렇다 할 혜택조차 없다. 여기서부터 양극화의 악순환이 일어난다. 그저 그런 매출의 매장은 영업이익도 내기 어려워 사업을 포기하는 수순에 이르고, 가지고 있던 자전거는 말도 안되는 할인폭으로 팔려나가게 된다. 그러면 소비자들은 그 가격을 해당 제품의 가격으로 인식하게 되고 시장질서가 무너지게 된다.
물론 이렇게 ‘후려치기’로 시장질서를 흔드는 것은 큰 문제이지만, 기본적으로 제조·수입사에서 가격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의무를 유기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은 대형브랜드 중심으로 이러한 관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다행스런 청신호라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시장질서를 유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업보가 바로 작금의 상황 아닐까싶다.”

생활차는 생활차대로, 고급차는 고급차대로 다양한 이유를 들어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액세서리나 의류는 어떨까? 기자는 행주산성으로 라이딩을 가면 자주 들렀던 용·부품 및 의류 전문점을 11월 말 방문했지만 리모델링으로 휴업중이었다. 이곳은 매 시즌이면 행주산성을 찾는 라이더들이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하는 곳으로 자전거시장의 침체가 본격화된 17년에도 나쁘지 않은 매출을 올렸던 곳이다. 매년 혹한기에는 당분간 문을 닫을 때가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좀 이른 편. 자전거의류 아울렛 ‘더 핏’의 박용범 점장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어봤다.

자전거의류 역시 여파를 피해가지 못해 
더 핏 박용범 점장

리모델링 준비로 당분간 휴업중인 더 핏 의류아울렛


“17년까지는 확실히 괜찮았다. 주변의 자전거 관련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이곳은 지리적 여건도 그렇고 매장에서 자체적으로 많은 혜택을 제공하기도 해서 항상 많은 손님들로 북적였는데, 18년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거의 40% 가까운 매출감소가 있었다. 이에 회사 대표는 매장을 접으려고 했지만, 만류해둔 상태다.
국가 경제가 전체적으로 침체된 상황이기에 자전거시장만의 문제만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자전거시장 내부의 문제도 적지않다. 내부의 문제 중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공급과잉으로 인해 필요이상으로 과열된 시장 분위기인다. 많은 업체들이 16년, 17년을 통해 시장 침체를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기대감에 필요이상의 공급이 쏟아진 것이 그대로 재고부담이 되어 도산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저가형 용품이 쏟아져 나온 적이 있었다. 3만원이 안되는 저렴한 의류, 장갑 등. 당시는 불티나게 팔렸지만 그 불티가 유지되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한때 인기가 좋았던 그 제품들은 시장에 과도하게 공급됐고 거의 팔리지 않아 해당 브랜드는 아예 자취를 감춘 경우도 있다. 현재 자전거시장은 전체적으로 이러한 분위기라고 볼 수 있다.”

Q & A

바이크랜드 이진호 실장
철수네자전거 박철수 대표

 

1. 현 자전거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진단하고 계신가요? 
철수네자전거 박철수 대표  “샵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현 자전거시장 상황은 정말 암울하고 가장 바닥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이크랜드 이진호 실장  “국내 경제 침체와 맞물려서 자전거시장 역시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2. ‌(시장이 어렵다고 생각하면 또는 좋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철수네자전거 박철수 대표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은 영향도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우리나라 경기상황이 아주 좋지 않은 게 가장 큰 영향이라 보입니다. 또한 따릉이와 같은 공공자전거의 확산으로 생활자전거 판매하락도 큰 요인 중 하나입니다.”
바이크랜드 이진호 실장  “취업 및 소득 문제, 생활필수품 물가상승 등 실생활과 밀접한 부분에서 여유가 없다 보니 취미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 소비가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반대로 자전거시장 쪽은 공급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과잉공급이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합니다. 또한, 매년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심해질수록 야외 운동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도 영향이 있다고 봅니다.”

3. 어떤 대처방안이 있을까요? 
철수네자전거 박철수 대표  “자전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운동능력 향상이나 환경오염 감소 등입니다. 샵의 입장에서는 판매 후 높은 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손님들이 다시 오는 샵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서비스가 좋더라도 정비실력이 떨어지면 안 되므로 항상 미캐닉은 최상의 정비실력을 갖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바이크랜드 이진호 실장  “국가적인 측면에서 자전거도로 확충 및 개선, 편의성, 환경 개선 등으로 자전거 보급을 독려해주고, 해외구매제품에 대응해 경쟁력을 얻기 위해 단가조절과 높은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코스개발, 이벤트 등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내년 자전거 시장에 대한 전망과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철수네자전거 박철수 대표  “지난 10년간의 경제를 살펴보면 계속해서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지금이 가장 바닥이라고 생각하며 내년에는 조금 괜찮아 질 거란 생각이 듭니다. 우후죽순 생겼던 샵들도 현재 많이 없어진 상태이고, 실력 있고 친절하며 책임감 있는 샵만이 살아남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철수네자전거는 최상의 정비 서비스를 추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이크랜드 이진호 실장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상황으로 예측됩니다. 바이크랜드는 매장은 자전거에 한해선 더욱 마진을 줄여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드리고, 프리미엄 제품과 보급용 제품의 가격에 차별화를 두어 판매할 계획입니다.”

2. 제조·수입사의 반응
     과당경쟁, 과잉공급, 지나친 인증절차 등등 침체원인 산적

우리나라의 자전거문화와 시장이 그동안 급성장한 배경에는 여러 제조·수입사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대중교통으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자전거가 대표적 레저스포츠로 인기를 끌어온 것은 여러 제조·수입사들이 다양한 제품을 선보여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고 관련 문화를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숱한 제조·수입사들 역시 이번의 위기를 쉽게 바라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자전거시장의 침체로 인해 자전거문화 기반까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조절되지 않은 공급과잉, 자전거 관련 이벤트 부족, 한가지 장르에 편중된 문화 등이다.
제조·수입사들의 입장을 파악해보기 위해 스포츠온55의 기명호 대표를 만나봤다. 기명호 대표는 대부분의 업체에서 부정적 내용이라며 취재를 기피하는 와중에도 이런 때일수록 업계가 한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며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기명호 대표는 자전거 업계를 22년 동안 지켜왔으며 현재 스포츠온55에서 BMC, 지로, 블랙번 등 다양한 해외브랜드의 국내유통을 총괄하고 있다.

이제는 업계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스포츠온55 기명호 대표

 

지금 세계는
“현재 전세계 자전거시장은 침체로 일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안 좋은 국가를 꼽자면 우리나라와 중국을 들 수 있다. 중국은 공유자전거의 여파로 자전거를 구입하는 비중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어 중국 내수용 자전거 업체들은 특히나 맥을 못 추고 있다. 그 중국 제조사들 중 유럽이나 기타 국가에 수출하는 곳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중국 내수시장과 우리나라를 주요 수출국으로 삼는 업체들은 굉장히 힘들다고 들었다. 반면에 유럽 등지는 이미 전기자전거가 거의 모든 생활자전거를 대체해가고 있는 실정이라 자전거의 침체를 어느 정도 커버하고 있는 수준이다.”

공급과잉, 정확한 데이터 도출 필요
“일단 우리나라 자전거시장이 이 지경이 된 원인 중에서 가장 먼저 지목하고 싶은 문제는 바로 공급과잉이다. 우리나라 자전거시장은 2010년경부터 크나큰 성장을 이뤄왔다. 특히 4대강을 중심으로 도로가 잘 닦이면서 레저스포츠로서의 발전이 컸다. 그래서 자전거 인구 천만 시대가 열린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성장일변도였던 시장이 2016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당시부터 시장상황을 주의 깊게 살폈어야 한다고 본다.
그때 자전거시장이 위축되는 모습과 나라 안팎의 정세(정치적 격변)는 우리나라 경제가 전체적으로 침체의 길을 걷게 될 것을 예고한 셈이다. 하지만 그러한 내·외부적 요인이 눈앞에 뚜렷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미래에 대해 달콤한 상상을 늘어놓으며 다음시즌의 물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내부적 문제라고 진단한다.
생각보다 많은 업체들이 제품을 수입하거나 생산할 때, 작년의 결과를 토대로 올해의 계획을 두루뭉술하게 잡는 단순한 방식만을 고수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결과물이 어떠한가? 모든 업체가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문제인 공급과잉만을 불러왔다. 공급과잉은 재고가 썩어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재고가 순환되지 못하고 창고에서 방치된다면 그 가치는 폭락하기 마련이다.
유명 의류 브랜드들이야 재고가 남아돌면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 재고를 모두 소각하는 방식으로 폐기하기도 하지만 자전거가 그럴 수 있는 물건이 아님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내부적으로 만든 자신들의 매출정보 데이터가 아니라 외부적으로 수집되어 적정 생산 물량에 대한 합리적 근거가 되어줄 데이터를 뜻한다. 이는 전체적인 소비심리, 트렌드 흐름, 국내외 정세 등 다양한 정보를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통해 한해의 계획을 세운다면 재고에 대한 리스크는 물론 향후의 방향성에 대해 짚어보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라 본다.”

다양성의 부재
“다음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다양성의 부재다. 우리나라 자전거, 특히 고급자전거시장은 로드바이크 일색이다. 로드바이크 덕분에 시장이 이만큼 성장한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양성이 부족한 시장은 언제 도태돼도 이상하지 않다. 과거 로드바이크가 재미있다고 하니 동호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동호인이 늘어나니 자연스레 업체들도 동호인이 많은 로드바이크 위주로 시장을 구성했다.
하지만 지금 어떠한가. 로드 일변도의 문화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사실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 전부터 업체들은 더더욱 앞장서서 동호인들에게 ‘이제 이런 자전거를 타보는 것은 어때요?’라고 하며 자전거시장의 변화를 주도했어야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작년의 결과만을 보고 향후의 계획을 안일하게 잡아온 탓에 다양성은 상당히 배제되어 버렸다. 개인적으로 내년에는 그래블 장르에 집중해볼 계획이다. 매출보다는 그래블 장르를 좀 더 알려 이 문화를 정착시키는 창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지나친 인증과 규제
“전기자전거 한 모델을 수입할 때 인증기관에서 자전거를 3대를 부쉈다. 그러고도 인증절차에 3개월이 넘게 걸리는 것을 보고 이게 인증인지 그저 발목만 붙잡겠다고 하는 모양새인지 헷갈렸다. 게다가 전기자전거 한 대에 드는 인증비용은 1000만원 가까이 된다. 이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분명히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며 여기에 대해서는 업계가 한목소리를 내야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제조·수입사는 아니지만 자전거업계와 그 문화를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봐온 사람의 인터뷰 내용을 실어본다. 우리나라 대표 자전거카페인 벨로마노의 서천우 대표다. 서천우 대표는 10여년 전부터 자전거 카페를 운영하며 동호인들과 부대끼고 때로는 업체들과의 소통의 장을 마련해 주기도 하면서 시장의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펴왔다.

업계는 서로 견제하기 바빠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카페 벨로마노 서천우 대표 

벨로마노 역시 수익구조 다변화를 위해 저녁에는 다른 수익모델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사진은 내부 공사중인 벨로마노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업계 관계자들이 이 카페에 들르면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벨로마노는 카페이면서도 자전거 업계 관계자들의 소통의 장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발걸음도 뜸해 지면서 자전거 업계의 위축을 통감한다. 벨로마노는 카페인지라 일반 손님들의 방문도 있어 유지하고는 있지만 자전거라는 테마를 공고히 해온 만큼 업계가 받는 타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업계 관계자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이후로는 누군가 방문하더라도 정보를 주거나 받기도 어려운, 정보의 가뭄이 온 느낌이다.
이럴 때일수록 다들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최근 지켜본 바에 따르면 업체들은 서로를 경쟁자를 넘어 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각을 세우거나 무관심하다. 개인적으로 의식적인 무관심이라고 표현하는데, 저쪽이 잘되든 못되든 경쟁업체인 우리와는 상관없으니 개의치 않는다는 느낌이다.
또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타이베이사이클쇼와 같은 대형 이벤트의 경우 우리나라의 수입사들은 몽땅 몰려간다는데 그 이유가 기가 막힌다. 그들이 몽땅 몰려가는 이유는 자신들이 국내에 전개하는 브랜드를 다른 업체로부터 지켜내거나, 뺏으러간다는 우스개소리까지 있는 정도다.
자전거 업계는 좁다. 그만큼 협력의 창구도 쉽게 열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현재의 상황은 반대로 마치 ‘어리석은 양들’에 비유할 수 있다. 양들이 더울 때는 뭉쳐있고 추울 때는 따로 떨어져서 벌벌 떨고 있다는 어리석음을 표현한 이야기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소통과 신뢰가 무너진 것부터 수복해 자전거 업계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일궈낼 필요가 있다.”  

 

 

1. 현 자전거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진단하고 계신가요? 
수티스미스 한덕현 대표  “프레임이나 완성차를 취급하는 제조사와 수입사의 상황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자전거 관련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업체는 조금 덜 한 편입니다. 10년 이상 자전거 샵을 운영해온 지인을 만나면 요즘에는 돈을 번다는 개념이 아니라 어떻게든 버틴다는 생각으로 영업중이라고 한탄합니다.”
오디바이크 마케팅팀 박상혁 이사  “자전거의 문화가 성숙해지고 세분되어 다양한 컨텐츠가 생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시장은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재작년을 기준으로 하향세이며 작년 판매량을 보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자강통상 김진수 대표  “2000년대 초 레저스포츠 호황기를 누리며 급성장했던 자전거 시장이 현재는 많이 축소되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연간 200만 대 정도의 자전거를 수입하던 상황에서 현재 80만대 정도만 수입하고 있다고 하니 시장의 분위기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수치로 표현하면 약 2년 전 20~25% 정도 하락률을 보이다가 올해는 50%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사이클존 장용진 대표  “자전거 판매 업계는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사이클 교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는 시장의 분위기와는 크게 상관없이 꾸준합니다. 실력이 일정 수준에 이른 동호인은 자연스럽게 나가지만 그만큼 새로운 입문자들이 꾸준히 들어오는 편입니다.”
대진인터내셔널 장홍주 실장  “국내 전문 자전거시장이 활성화된 이후로 IMF 시기를 포함하여 가장 어려운 때라고 생각됩니다. 입문 자전거에 대한 수요조차 급감한 것을 볼 때 앞으로 이러한 상황은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봅니다.”

2. ‌(시장이 어렵다고 생각하면 또는 좋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수티스미스 한덕현 대표  “여러 요인이 존재하겠지만 트렌드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성장, 성숙, 감소의 수순을 밟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주기가 한국은 너무 빠릅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고 한 가지 제품만 반짝인기를 끌고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레이싱 위주의 문화도 문제로 들 수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로드바이크가 인기를 얻을 무렵 서로 자전거를 배우며 시작하는 동호회가 있었다면 지금은 일반 동호회도 빠른 속도만을 추구하고 새로운 유입자가 버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입사들이 이월상품을 처리하는 주기가 짧아지고 할인폭도 크게 잡는 정책도 침체에 영향이 있다고 봅니다. 1년 정도의 기간을 갖고 진행하던 할인행사가 점차 시기가 짧아지면서 신제품을 구매하려는 고객들의 소비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디바이크 마케팅팀 박상혁 이사  “사회 전반적인 불황이 가장 큰 요인이라 생각합니다. 수입이 줄어들면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레저산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되는데 현 상황이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적 요인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신규 자전거 인구가 줄고 있다는 점입니다. 16년도와 17년도를 비교했을 때 50% 이상 유입인구가 줄었다고 예상되며 초보라이더들이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자강통상 김진수 대표  “가장 큰 문제는 경기침체를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젊은층의 소비가 굉장히 위축된 상태입니다. 이 외에는 레저산업이 발달하면서 자전거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웃도어 스포츠의 확산으로 유저의 이동도 있지만, 컴퓨터 게임이 모든 레저 유저를 흡수하고 있다고 봅니다.
미세먼지, 강력한 자외선 등 환경요인도 시장 침체의 요인이지만 자전거가 공도를 주행하는데 아직도 위험하다는 사실이 자전거시장 확장에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이클존 장용진 대표  “완성차 판매시장이 어려운 이유는 입문자들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판매량 감소로 이어진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또한, 과도한 세일 폭으로 소비자들이 할인된 제품만을 찾게 된 영향도 있습니다. 게다가 업그레이드 없이 데칼만 변경되어 신모델로 출시되는 관행도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악영향 중 하나로 생각됩니다.”
대진인터내셔널 장홍주 실장  “자전거시장도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경기 불황과 전반적인 국내 경기침체에 큰 영향을 받고 있지만, 자전거 업계의 불황이 유독 두드러진 가장 큰 이유는 최근 자전거 부품 규격이 너무 다양해진 데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과거 MTB의 경우 단일 26인치 프레임에 BSA 방식 BB 규격만을 채용했지만, 최근에는 27.5인치, 29인치 프레임과 각 규격별로 매우 다양한 BB컵 규격이 혼재해 있습니다. 로드의 경우도 최근 림 브레이크, 디스크 브레이크 프레임 규격이 각각 세분화되어 있고, 여기에 기계식과 전동식 변속기로 또 다시 가지치기하면서 정말 많은 종류의 규격이 혼재해 있습니다. 이렇게 통일되지 않은 다양한 규격들은 재고 리스크를 급격히 증가시켜 지금처럼 불경기가 되면 관련 업계에 치명타를 입히게 됩니다.”

3. 어떤 대처방안이 있을까요? 
수티스미스 한덕현 대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사항은 국민의 인식이라 생각합니다. 자전거는 위험한 운동이 아닌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도로에서 자전거에 대한 운전자들의 배려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아이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밸런스바이크 대회 같은 행사가 많이 늘어나야 합니다.
새롭게 유입되는 인원에 대해 적응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의 조성도 중요합니다. 초보자를 대상으로 타는 방법과 함께 타는 재미를 알게 해주면 아주 자연스럽게 자전거가 활성화 될 것이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수입업체들이 너무 이익만을 앞세워 판매에 혈안이 되기보다는 업체끼리 협업을 통해 다양한 이벤트 등을 기획해 참여율을 높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디바이크 마케팅팀 박상혁 이사  “먼저 브랜드 간 경쟁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더 나은 컨텐츠와 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단순히 자사의 자전거만을 홍보하는 게 아니라 공동 전시회라든가 자전거 장르에 맞는 수준의 대회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공생의 길을 찾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인다면 지금과 같은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브랜드의 문어발 확장도 문제지만 대리점 오픈이 너무 쉽다는 문제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자전거를 수익사업으로 쉽게 보고 도전한 분들은 대부분 쓴맛을 보고 사라져갔습니다. 소비자들에게도 좋지 않은 인식으로 남게 되므로 본사에서 일정 수준의 정비실력과 서비스 교육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강통상 김진수 대표  “일반적으로 자전거는 날씨가 좋을 때 탄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야외에서 타는 게 자전거의 매력이지만 실내에서도 충분히 재미를 즐길 수 있으므로 자전거를 인도어 활동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실내에서 트레이너를 타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탈 수 있는 센터가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과 비교해보면 자전거의 교통분담율이 현저히 낮은 걸 알 수 있습니다. 정부가 앞서서 자전거 활성화에 앞서준다면 환경, 건강까지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사이클존 장용진 대표  “자전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자전거가 멋을 부리는 용도가 아니라 운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강효과를 인식하게 해야 합니다. 생활차, 하이브리드, 로드바이크, MTB 등 모든 자전거가 심폐운동에 굉장히 좋다는 걸 알고 인식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입사는 수입가의 안정화와 합리적인 유통정책을 지킨다면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쌓아 다시 회복될 수 있다고 봅니다.”
대진인터내셔널 장홍주 실장  “아픈 곳을 당장 치료할 특효약은 없다고 봅니다. 체질 개선을 단시간에 할 수는 없습니다. 불경기를 예측하여 대비하지 않았거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브랜드와 관련 업체는 가까운 시기 안에 도태될 것 같습니다. 장기적인 대처방안이라면, 전세계 메이저 브랜드들을 포함한 자전거 업계 관련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된 설계 규격에 합의하고 이를 의무적으로 실천해 가는 협의체 구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 IS2000 규격을 떠올려 볼 때 IS2020이 도출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4. 내년 자전거 시장에 대한 전망과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수티스미스 한덕현 대표  “여전히 완성차와 프레임 시장은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액세서리 시장은 조금 더 성장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국산 브랜드가 더 성장하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유는 가장 아래부터 노하우를 쌓으며 올라온 브랜드들이기 때문에 퀄리티를 더 높여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을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오디바이크 마케팅팀 박상혁 이사  “전기자전거 시장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보다 다양한 종류의 전기자전거를 국내 소비자들에게 소개하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고급 전기자전거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부담을 낮춘 생활형 자전거까지 장르를 넓힐 예정입니다.
대회와 투어도 꾸준히 활성화할 예정입니다. 대회의 경우 난이도에 따라 세분화해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재미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고, 투어를 통해 자전거의 다양한 재미를 알 수 있도록 알릴 예정입니다.
오디바이크가 더 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일에 임하겠지만 다양한 브랜드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어려운 상황을 함께 타개할 방안을 모색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강통상 김진수 대표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뚜렷한 해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점차 공용자전거에 밀려 저가 자전거시장은 축소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자강통상은 인도어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제품을 발굴하고, 라이더의 안전에 연관된 아이템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사이클존 장용진 대표  “전기자전거 시장이 상당히 커지고 있습니다. 같은 자전거로 분류할 수 있지만, 일반자전거가 반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전기자전거의 사회적 이슈가 생겼을 때를 잘 공략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이클존은 건강을 테마로 더 전문적인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하겠습니다. 같은 훈련강도라도 더 높은 효율로 차별화를 추구할 예정입니다.”
대진인터내셔널 장홍주 실장  “현 동계시즌이 자전거 업계 사상 최저점이라고 봅니다. 힘든 시기가 어떤 식으로든지 흘러가면, 내년 하반기에는 경쟁력있는 브랜드 주도로 전반적인 수요가 조금씩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3. 동호인 반응
     쇠퇴하는 것은 자전거시장뿐인가? 급감하는 동호인 숫자

많은 직장인들이 출퇴근수단으로 자전거를 고려하기도 하고, 퇴근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자전거를 선택하기도 한다.

 

동호인 A씨의 입문기
부푼 꿈을 갖고 입사한 3년차의 직장. 그곳에서는 취업 전 말로만 듣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정말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토요일은 격주 근무에다 평일 중 4일은 9시가 넘어서 퇴근하기 일쑤였으니까. 그렇게 내 시간을 온전히 회사에 헌신한 덕택에 수중에 몇 푼 안 되는 돈이 쥐어지긴 했다. 물론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 집을 산다든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돈으로 해결될 일은 추호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턱턱 막혀오는 내 숨통을 터줄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어느날은 대중교통을 고사하고 한강을 걸으며 돌아왔다. 직장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날따라 유독 콩나물 대가리마냥 빽빽한 지하철에서 한번 더 스트레스를 받기가 죽기보다도 싫었기 때문이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던 찰나, 뒤에서 “지나갑니다!” 하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어폰을 끼고 있었음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큰 소리에 화들짝 놀라 옆으로 얼른 비켜서자, 자전거 몇 대가 우르르 지나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걷고 있던 도로는 자전거도로였다. 얼른 인도로 비켜선 후 걷고 있자니 정말 많은 자전거들이 보였다. 문득 ‘저거… 재밌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길로 집앞에 있는 자전거가게에 들렀다. 그냥 어느 동네에나 있는 자전거가게다. 가게 앞은 한강을 질주하던 자전거들과 비슷한 모양새부터 아이들이 타는 작은 자전거들이 즐비했다. 밤 10시가 다되어가던 시간에 들러서 그런지 가게를 정리하던 주인에게 다짜고짜 한강에서 본 자전거에 대해 설명해주며 비슷한 것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그 자전거는 ‘로드바이크’라며 바쁜 와중에도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다. 

 

한강을 달리는 동호인들의 모습. 도란도란 즐겁게 달리는 라이딩이 동호인들이 진정 원하는 것 아닐까

 

이것저것 설명을 듣고 나서는 며칠 후 다시 들르겠노라고 말하고 가게를 나섰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을 정리했다. 역시나 마음에 걸린 건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다. 제대로 된 로드바이크를 시작하려면 50~60만원, 거기에 헬멧과 전조등, 자물쇠 같은 액세서리까지 갖추려면 70만원은 훌쩍 넘게 생겼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가 지쳐 ‘무슨 자전거냐’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는 희한하게도 거리에서 유독 자전거에 눈길이 갔다. 스마트폰 검색내역은 온통 로드바이크 일색이다. 점심시간에 동료와 자전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자신도 그랬다며 “사서 타면 참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 동료는 웃으며 “니가 먼저 타봐~ 그래서 재미있으면 나도 같이 사게”라며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동료의 응원 아닌 응원을 받아서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바로 그날 밤 어제의 그 가게에 들러 거금을 주고 로드바이크를 턱 받아왔다.
집에서 자전거를 보고 있자니 정체모를 뿌듯함이 솟아오른다. 갖고 싶었던 물건을 구매했을 때 흔히 느끼는 뿌듯함은 물론, 앞으로 이 녀석과 함께 도로를 누빌 상상을 하니 기분이 좋다. 몸이 건강해질 거라는 기대는 덤이다. 내일은 무조건 칼퇴를 하고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퇴근 후 설레는 마음으로 혼자 탄 자전거는 썩 괜찮았다. 집앞에서 시작해 근처에 있는 한강공원까지 다녀왔다. 한강을 달리는 기분은 자동차 면허를 처음 따고 운전하는 것보다 짜릿했다. 열심히 페달을 굴리니 오랜만에 땀도 비오듯 쏟아졌다. 그렇게 며칠을 자전거와 함께 심취해 달리던 중, 종종 “지나갑니다”라고 외치며 고속으로 질주하는 무리들을 보게 되었다. 처음 탈 때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매일밤 혼자 같은 코스를 달리다 보니 슬슬 지루하던 참이었다. 

자전거의 성지라 불리우는 반포한강공원. 일명 '반미니'. 한창 로드바이크가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모습이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자전거 매장

 

그 무리들의 정체를 알아보니 온라인상의 카페나 앱을 통해 형성된 자전거 모임이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모임에 덜컥 가입했다. 모임의 인원은 50명 정도로 매일 10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여서 자전거를 타는 듯 보였다. 다른 사람들의 가입인사를 살펴보고 공지사항 따위를 읽고 있자니 무슨 말인지 당체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난무한다. ‘늅뉴비’ ‘엔진’ ‘끌바’ ‘추노’ ‘굇수’ 등등… 사실 그런 뜻 따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게시글보다는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렜으니까. 일단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타보고 싶은 게 전부다.
가입한 뒤 며칠 후에야 평일 밤에 열린 ‘벙’에 참석할 수 있었다. 며칠간 격무에 시달렸던 터라 오늘만큼은 신나게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모임장소에 도착하니 형형색색의 자전거와 복장을 갖춘 10여명의 일행이 속속 모여들었다. 정말 프로선수 못지않은 복장을 갖춘 그들의 모습에 주눅이 들 뻔 했지만, ‘자전거 타는데 저런 옷이 크게 상관 있겠어’하는 생각으로 넘겼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후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모임장소는 살곶이공원, 목적지는 여의도한강공원이다. 사실 그렇게까지 멀리 가본 적이 없어서 걱정되기도 했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거기까지 못가겠어? 남들 다 가는 거’ 하는 생각으로 페달을 밟았다.
곧 나의 생각은 터무니없는 오판이었던 것으로 결론났다. 여의도까지의 거리는 30㎞ 정도로 초보자인 나에게는 무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물며 일행이 어찌나 빨리 달리던지 나는 수도 없이 맨 꽁지로 처지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모임장님이 나를 끌어줬다. 우여곡절 끝에 여의도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일행은 편의점에 앉아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많은 자전거 동호인들이 애용하는 '소모임' 앱
대표적 입문기인 메리다 스컬트라 100 모델. 소비자 가격은 60~70만원 선

 

그들 중 몇몇은 내게 음료수를 권하면서 처음에는 다 힘들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줬지만, 다른 몇몇은 짜증이 난 듯한 모양새였다. 한명이 “우리 25㎞ 정도로 왔는데, 많이 힘들었어요? 천천히 온건데”라고 내게 물었으나 나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너무 힘들었던 건 물론이고 왠지 모를 부끄러움 때문이다. 또 나 때문에 일행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함과 속상함이 든 것도 한몫했다.
그는 곧이어 “속도계 없어요? 속도계 없으면 같이 타기 불편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속도계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굳이 속도를 보며 달릴 필요가 있나 싶어 구매를 미뤘다. 저렴한 것은 10만원, 비싼 것은 100만원이 넘는다는 자전거가게 사장님의 이야기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도 이유였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일행의 자전거에는 모두 속도계가 달려있다. 전부 30~40만원은 훌쩍 넘는 제품들로 ‘가민’이라는 브랜드의 제품이라고 한다. 내가 자전거를 구매할 때 쓴 70만원의 절반을 넘는 금액이다. 당연히 구매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보니 저건 무조건 써야 되는 거구나 싶다. 그렇다고 당장 살 여유는 안된다.
그렇게 이것저것 묻다보니 다른 한명이 이렇게 말한다. “지금 당장은 필요 없어요. 몇달있다가 기변하면 사도 돼요”라고. 자칫 고개를 끄덕거릴 뻔 했다. 기변? 한달도 채 안된 내 자전거를 보고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이 자전거와 앞으로 10년은 함께 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는 왜 내가 몇 달 후 기변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깊어졌다. 각자 가는 길이 제각각이었는지 모임은 여기서 해산하기로 했다. 나는 방향이 같은 사람과 함께 둘이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자전거를 타면 탈수록 장비욕심이 심해진다고, 그래서 그걸 갖추지 못하면 자전거 타기가 싫어진다는 내용이 주 골자였다(진짜로 그렇게 말했다). 상당수 자전거인들이 그러한 투자를 아낌없이 한다는 사실에 나는 이미 많은 충격을 받았고, 이미 자전거라는 문화 자체가 그렇게 소위 말하는 ‘장비빨’ 위주로 굴러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나는 ‘대체 왜?’ 라는 의문을 던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저 ‘자전거는 그렇게 타는 거구나…’ 라고 생각하고 말게 되었다.

 

핸들바에 이것저것 거치된 MTB의 모습. 가벼움과 공기저항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로드바이크에서는 썩 권장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모습이 '틀린'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전거 동호인들의 이탈… 원인은 보수적 진입장벽
여기까지 익명을 요구한 동호인 A씨의 입문기를 각색한 내용이다. 많은 이들의 입문과정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동호인을 직접 만나 들어본 바로는 자전거, 특히 로드바이크의 유행이 시들해진 것은 많은 동호인들의 이탈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자가 필드에 나가 자전거를 타 봐도 전에 비해 동호인들이 상당히 많이 줄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물론 지금은 12월이고 비시즌이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더욱 없다. 기사는 9~10월 한창의 시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특히 2015~6년 경 반포한강공원, 일명 ‘반미니’는 자전거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동호인들이 바글바글 했으나 올해는 같은 시기의 같은 장소에 모여드는 인원만 봐도 절반이하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동호인들이 이탈하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동호인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바로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진입장벽’이었다. 

로드바이크에 그게 뭐하는 짓? 
위 사례를 보면 순수하게 자전거가 타고 싶어 입문한 동호인이 겪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약간의 과장이 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동호인들은 이 내용에 대해 자신도 그러했다며 수긍했다.
한 동호인은 “이제 와서 이야기지만 처음 나가서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치 내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적이 많다. 그런 식으로 입문해서 자전거를 타다보니 어느새 나도 새로 입문한 사람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동호인은 “자전거를 막 타기 시작할 때, 자전거에 스마트폰 거치대, 전조등, 블루투스 스피커 등 여러 가지를 달고 다녔다. 모임에 나갔더니 어떤 사람이 로드바이크에 그게 뭐하는 짓이냐면서, 당장 다 떼버리라고 했다. 그때는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얼굴이 화끈거렸다.”며 회상했다. 

자전거라는 장비 
자전거는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자전거 라이딩에는 여러가지 장비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즐길 수 있어 장비에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 특히 레저로 MTB나 로드바이크를 즐기기 위해서라면 100만원에 육박하는 금액이 들 수도 있다. 게다가 이 100만원이라는 금액은 거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도 문제다.
로드, MTB의 가격은 100만원 미만부터 1000만원이 넘어가는 호화 모델까지 천차만별이다. 이 천차만별의 가격대 자전거가 한 모임 안에 무리를 지어 함께 달려야 하는데 마치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와 경차가 함께 달리는 듯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위화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자전거는 다르다. 동호인 수준에서는 자전거의 차이가 실력의 차이로 직결 되지는 않으므로 자전거는 같은 종류라면 입문급을 타나 플래그십을 타나 기량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함께 달리는데 크게 영향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뭐다? ‘간지’다. 

 

동호인의 '간지' 목록에서 카본휠을 빼놓을 수는 없다

 

강요된 사이클링 
‘선(先)간지 후(後)실력’.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우스개소리다. 장비나 옷, 액세서리 등 남에게 보여지는 이른바 ‘간지’를 먼저 챙기고 나서 실력을 키우라는 소리다. 그런데 이렇게 간지를 키우기 위해서는 대면해야할 문제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바로 비용이다. 일반 동호회에서 남들 못지않은 자전거 혹은 그 이상의 자전거로 유세 한번 떨어볼라치면 500만원은 훌쩍 넘는 고급자전거를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또 비싼 속도계도 구매해야 하고, 자전거의 ‘급’에 맞는 의상도 준비해야함은 물론이다. 카본 휠세트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물론 잘못은 아니다. 다만 문제는 그렇게 먼저 갖춘 이들은 마치 그것이 정답인 양 로드바이크 문화 전반에 공식처럼 뿌려대며 ‘강요’했다는 게 문제다. 기자의 개인적 의견이 절대 아니다. 동호인 대다수가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한 ‘보편적 사실’이라는 것이 더더욱 큰 문제다. 하지만 강요는 장비의 강요로 끝나지 않는다. 

 

스트라바를 활용해 해당구간의 여러사람 기록을 한번에 확인할 수 있다
동호인들의 축전인 투르 드 코리아 대회. 대표적 경쟁경기다

 

못타면 눈치 보여
로드바이크는 특성상 장거리 고속주행이 잦다. 선수들은 평지에서 시속 40~50㎞까지 낼 수 있으니 자전거 중에서는 최고속을 자랑한다. 실력 있는 동호인은 평균 시속 30㎞ 수준. 하지만 모든 이가 그런 속도를 쉽게 낼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초심자에게는 평속 25㎞도 버거울 수 있다. 게다가 속도가 속도인 만큼 함께 달리는 인원보다 평속이 1~2㎞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꽤 먼 거리의 격차가 벌어진다.
이같은 특성상 대회를 제외하고 동호인들이 단체 라이딩을 원하는 경우라면 모두 같은 속도로 균일하게, 꾸준히 달려야 함이 옳다. 그러면 당연히 숙련된 상급자가 초심자의 수준에 맞춰주는 것이 맞다. 물론 초심자 입장에서도 실력차를 극복할만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상당수 동호회의 단체라이딩에서는 실력자가 중간 목적지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며 눈치를 준다는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물론 드바이크의 특성상 그렇게 무작정 빠르게 달리기만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 역시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자신들의 그러한 생각을 초심자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실제로 자전거를 ‘접은’ 동호인들 중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고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라이딩을 미루다가 자전거를 관뒀다는 사람도 종종 있다.
실력차로 인한 이러한 현상은 비단 자전거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실력차로 인해 함께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로드바이크에만 있는 현상이다. 실력차가 나면 거리가 멀어져 함께 달릴 수 없게 된다. 그러면 함께 하는 단체 라이딩의 의미는 무색해진다. 그래서 로드바이크 동호회라면 실력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함께 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트레이닝 수준으로 빠르게 달리기만을 원한다면 일반 동호인 모임보다는 ‘도싸’ 모임을 추천한다. 그곳에는 일명 ‘도싸이언’이라 불리는 ‘굇수’들이 바글바글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빠르게 실력을 뽐내며 타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호인 수준의 라이딩이라면 ‘함께 타는 것’이 먼저 추구되어야 할 가치 아닐까. 

여기서도 경쟁?
동호인이 자전거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이고 나면 구매를 고려하는 1순위는 바로 속도계다. 그냥 속도계가 아니라 ‘사이클링컴퓨터’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나오는 고급 속도계.
이런 속도계가 동호인 사이에 숱하게 보급되면서 이를 활용한 온라인 앱 상에서도 경쟁이 붙는다. 바로 ‘스트라바’다. 스트라바는 러닝, 사이클링 등의 스포츠를 즐길 때 기록을 남겨 훈련에 재미를 더해주자는 취지로 개발된 앱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거의 모든 구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기록이 남겨지다보니 사람들은 이제 스트라바를 또 하나의 ‘경쟁의 장’으로 인식한다. 어떤 구간에서 누가 제일 빠르다느니, 누가 남산을 몇분대에 끊었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한 동호인은 “안 그래도 치열한 경쟁사회인데, 취미로 즐기는 자전거에서도 경쟁이라니 한편으로는 지긋지긋하다”라며 온라인까지 파고든 경쟁전을 꼬집었다. 

인터뷰 
동호인 이수연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동호인 라이더 이수연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화려한 겉모습에 자칫 ‘패션라이더’로 종종 오해받기도 하는 그는 자전거를 탄지 벌써 5년여가 넘어가는 베테랑이다. 실력도 출중해 각종 대회에서 포디움에 오르기도 하고 자전거 관련 문화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갖는 진정한 골수 자전거인이다.

기성 동호인과 입문자가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문화 필요 
“최근 자전거 타는 사람이 부쩍 줄어들었음을 실감한다. 지금은 시즌오프 기간이라 그러려니 하지만 한두달 전 한참 시즌에도 상당히 줄었다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그 원인중 하나는 양분화된 자전거 신(scene)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동호회는 최상급 자전거가 즐비하다. 100~200만원대 자전거는 보기 힘들다. 더 큰 문제는 자전거를 이제 막 입문하려는 사람들은 계속 생겨나는데 그 사람들이 자전거라는 취미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입문자라면 입문자의 눈높이에 맞게끔 서서히 재미를 붙여가면서 장비도 하나씩 업그레이드해가는 재미를 느껴야 하는데, 막상 자전거를 타려고 들어와보니 최고급 자전거 일색이라 아연실색하는 모습들이 선하다. 그래서 조금 업그레이드해서 중급기라도 마련해볼까 하지만 다들 너무 최고만을 의식하는 것 같다.
특히 몇몇 고급 유저들은 자전거를 타기위한 것이 아닌 과시욕의 창구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쉽다. 소수의 고급자전거 유저들이 자전거 신을 끌어가는 형국이다 보니, 중저가 자전거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중저가 자전거가 더욱 활성화되고 장르가 다양해져야 자전거가 보다 활성화될 것이라고 본다. 그래야 입문자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자전거를 즐길 수 있고 자연스러운 정착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유행에 휩쓸리는 자전거문화, 다양한 정보가 뒷받침 되어야 
“또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한 점이다. 특히 의류가 그런데, 사실 본인도 유행하는 옷을 입지 않는 것이 아니기에 말을 꺼내는 것이 사뭇 조심스럽지만 확실히 우리나라 자전거 의류는 유행에 너무도 심각하게 휩쓸리는 것 같다. 한가지 브랜드가 유행하면 너도나도 그 옷을 입고 나타난다. 너무 심각한 몰개성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의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도 그 원인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 의견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입어보고 옷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그런 정보가 활성화 된다면 좀 더 다양한 의류를 자전거 신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이러한 반(反)유행의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유행하는 것을 꺼리는 현상인데 개인적으로 이런 현상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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