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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이타마현 가와고에 에도시대 모습 그대로 간직한 타임머신 여정사이타마현 가와고에(川越) 자전거여행

사이타마현 가와고에(川越)
에도시대 모습 그대로 간직한 타임머신 여정


지난번 혼슈 북부 일주 때 스쳐지나온 가와고에로 다시 향한다. 태평양전쟁 때도 피해를 입지 않아 에도시대 건물과 풍광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도쿄 옆 사이타마현에 있어 거리는 50km 정도. 마침 멀지 않은 ‘정희 마마’ 집에서 생일파티가 있어 하룻밤 신세까지 졌다.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가와고에에서는 인생 최대의 치욕을 맛보는데…

 

태평양전쟁 때도 폭격의 피해를 입지 않아 에도시대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가와고에 거리. 오른쪽 뒤의 망루는 가와고에의 랜드마크이다

 

오늘은 11월 23일 금요일이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는 디자인 수업이지만 오늘은 일본 노동절 휴일이다. 그냥 권리처럼 맞이하는 주말보다 평일의 휴식은 보너스를 받는 기분이다. 그것도 토요일과 붙어 있는 연휴는 마누라 몰래 받는 현금 보너스인양 기분이 째진다.^^ 그러다 머리 깨진다~. 
기숙사 이사장 부부와 도란도란 점심을 먹고 괴나리봇짐을 챙겨 구르미와 길을 나선다. 가을의 끝자락 만추이지만 가로수는 떨군 잎보다 떨굴 잎이 더 남은 것 같다. 딱 좋은 날씨에 딱 좋은 느낌이다. 누군 해변이 너무 뜨거워 살인을 했다지만 나는 날씨가 너무 좋아 욕이 나올 지경이다. 오늘 기온이 18도라고 한다. 거기에 생일잔치에 가는 길이라니.

바람은 살랑살랑 햇볕은 자글자글 하늘은 파릇파릇 낙엽은 나풀나풀 내 얼굴은 싱글벙글 구르미는 샤방샤방! 모두가 스마일이요 총천연색 시네마스고프다. 그냥 달리고 싶은 마음에 빨간 신호등도 파랗게 보일 정도다. 

도쿄를 벗어나 교외로 나서니 노랗게 물든 가로수가 만추 분위기를 물씬 자아낸다
일본 은반의 여왕, 아사다 마오가 웬 쌀 광고에?
가벼운 잎은 다 떨어지고 무거운 감만 남은 가을의 역설

 

생일파티 참석 위해 사이타마로
8년 여군 경력의 태연양이 생일파티에 초대했다. 사이타마의 정희 마마네로 오란다. 여기서 정희 마마네는 약 35km 거리다. 평소에 몇 번 가본 길이라 너무 쉽다. 2시에 출발하여 시간도 넉넉할 것 같아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잠깐 지도책을 보니 호수가 보인다. 원래는 5번 도로를 가다가 4번 도로를 타야 하지만 계속 오우메 방향의 5번 도로를 달리기로 한다.
미타카를 지나니 건물들은 키를 낮추고 회색에서 녹색으로 풍경이 바뀌어 간다. 제주도 화산토 같이 검붉고 보드라운 밭이랑도 보인다. 살짝살짝 보이는 시골풍경은 구르미와 나를 위해 말갛게 세수하고 연지곤지 다소곳한 자태다. 경치에 홀려서 절로 감흥에 취해 그만 방향 감각을 상실했나보다. 히가시야마토시에서 길을 묻고 물어 겨우 다마호수 산책로 입구에 들어서니 땅에 거미가 우글거리고 가로등은 오늘밤 역할를 준비하고 있다.
보행자 겸용 자전거도로를 계속 오르다보니 숲과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진 않지만 오른쪽이 호수라는 감이 온다. 때때로 사람들이 오가는 초저녁의 초행길 라이딩은 살얼음의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여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이제 호수의 제방을 가로 지르면 사이타마현이다. 드라이브를 즐기러 나온 차들이 줄지어 선 도로를 유유히 빠져 나올 때는 운전자들의 부러운 눈길에 뒤통수가 가렵다.



다시 맛보는 마마님의 진수성찬
딩동~. 5시30분인데도 벌써 깜깜하다. 특히 시골은 밤이 더 일찍 내려앉는다. 벌써 오늘의 주인공이 와 있다. 고바야시상, 마마 정희씨, 간호사 리사 그리고 큐슈 출신 기시모토. 모두들 늦게 왔다고 야단들이다. 나그네는 벌건 대낮보다 어둑어둑한 저녁에 문을 두드려야 어울리는 것 아닌가. 방안에는 지구를 지고 있는 아틀라스처럼 음식을 떠받들고 있는 상다리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역시 마마는 일본열도의 여자 백종원이다. 아니 백종원이 한국의 마마 정희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김치만두, 감자탕, 청포묵 등 한국요리 일색의 메뉴에 고향으로 순간 이동한다. 참치, 참돔 등 참으로 시작된 모듬회 바로 옆에서 반갑다고 참씨 성을 가진 이슬이도 눈물이 송송 맺혀있다. 해피버스데이 송과 케이크 자르기의 공식행사는 오뚜기카레처럼 3분 이내에 끝을 내고 본격적인 만찬이 시작된다. 45km를 달려온 배속에는 거지가 자리를 잡았다. 지금 제일 바쁜 것은 다름 아닌  입이다. 우물우물 씹어야 하고 홀짝홀짝 들이켜야 하고 쫑알쫑알 얘기도 해야 하니. 앞집 쌀가게의 미짱이 열쇠 출장수리를 마치고 들어온다. 30대 중반의 골드미스 미짱은 맥주를 좋아하는 톰보이 스타일이라 분위기가 어질어질 해진다.
간빠이! 그리고 건배! 간간이 일본어로 아재 개그라도 하려면 머리가 복잡해져서 취기도 사라지고 답답할 뿐이다. 왜 벙어리 삼룡이의 가슴이 시퍼렇게 멍들었는지 알 것 같다. 갈 사람은 가고 기시모토와 마마는 안방에, 고바야시상과 나는 건넌방에 자리를 폈다. 베란다의 구르미는 내일 갈 가와고에 동네의 꿈을 꾸고 있나보다.

 

마마 정희씨가 차려준 참치와 참돔 등 모듬회
마마 정희씨 집에서 열린 8년 여군 경력의 태연(가운데) 양 생일파티
평생 처음으로 음식을 남기게 만든 돼지고기라면
마마 정희씨 옆집에 있는 미짱의 쌀가게. 일본 각지의 쌀이 전시되어 있다

 

전쟁 피해 없어 옛모습 그대로 
우리 집의 토요일인양 늦잠을 잤다. 어제 음식 준비하느라 피곤한 마마의 안방은 아직도 정적이 흐르고 있다. 고바야시상이 만들어온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고 나서려는데 안방에서 부스스 소리가 들린다. 앞집 쌀가게에 다 함께 가서 어제 미짱이 약속한 녹차 타임을 갖는다. 30여평의 넓은 가게에는 일본 각 지역의 쌀이 전시되어 있는 가운데 왕년의 일본 은반의 여왕 아사다 마오가 쌀 광고 포스터에서 웃고 있다. 스케이트와 쌀의 관계가 아리송하다.
이제 이번 여행의 목적지 가와고에로 향한다. 463번 옛 국도를 20여분 달려 8번 현도에 들어서니 주변의 시야가 트이면서 본격적인 시골풍경이 펼쳐진다. 2차선 도로는 갓길도 없어 더욱 좁게 느껴지지만 불법주차 한대 없는 시골길은 정답고 조용해서 마음이 평온해진다. 우리나라 5대강 중에서 섬진강 코스가 제일 맘에 드는 것은 강폭이 좁고 손을 덜 댄 자연 그대로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농가 옆의 감나무에는 앙상한 가지에 노란 감들이 주렁주렁이다. 가벼운 잎은 벌써 떨어졌는데 무거운 감은 그대로라니…. 뉴턴 박사는 사과나무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단다.  
가와고에역의 웅장한 모습에 제법 큰 도시 규모를 짐작한다. 에도시대 도쿄 북부의 가와고에성은 교통 요충지였단다. 태평양전쟁 중에도 다행히 폭격을 피해 지금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다고 한다. 500미터 정도의 짧은 옛 에도거리라 미니 교토라 불린다. 잘난체 뽐내는 고층건물이 없는 이곳에는 2층 기와집이 어깨를 서로 기댄 채 쭉 서있고 오늘의 배경은 파란 하늘이라 더 멋지고 든든한 호위무사의 모습이다.
아담한 2층 건물들은 용마루가 유난히 두터워 마치 5등신 만화 캐릭터의 앙증스런 모습이다. 검은 기와에 검정 목재 심지어 우체통의 칙칙한 색감의 고색창연함이 세월의 무게를 더해준다. 기모노를 곱게 차려 입은 여인네들 그리고 닌자도 사무라이도 아닌 에도시대 관군 복장의 어르신 모습 등 마침 토요일이라 좁은 도로는 사람들로 그득하다. 그 사이를 지나는 노선버스와 승용차들은 마치 인산인해의 물결에 둥둥 떠 있는 듯하다.
에도시대의 일상이 세월을 견디다 보니 이제는 그 진가가 빛을 발한다. 이곳의 랜드마크인 망루가 그려진 엽서를 사서 시를 한 수 올려본다. 자작시는 무리여서 김사인 시인의 ‘조용한 일’이란 시를 제목은 살짝 바꾸고 일본어로 옮기느라 벌써 30분채 낑낑 거리고 있다. 딱히 보낼 곳도 마땅찮은데.

 

관광객으로 붐비는 가와고에 거리
고풍스런 우체통
가와고에에서 그림엽서에 일본어로 써본 시
필자가 직접 그린 투어 코스 약도

 


음식을 남기다니, 인생 최초의 치욕 
에도시대의 타임머신에서 하차하여 한적한 도로 모퉁이에 라면집 간판을 보니 허기가 밀려온다. 메뉴가 간단해서 좋다. 일반라면과 돼지고기라면 각각 대소 4종류다. 가격은 조금 센 편이지만 그래도 나는 덩치가 있어 대인(大人)이라 착각하고 돼지고기라면 큰것을 시켰다. 근데 양이 장난이 아니다. 돼지고기 수육은 두꺼비처럼 두툼한 놈이 7개나 버티고 있고 짬뽕같이 두꺼운 면빨은 뿌리를 내렸는지 묵직하다. 숙주나물도 에스키모 모자처럼 수북하다. 세숫대야 냉면의 곱배기 수준이다. 30분간 땀을 흘리면서 씨름하다 결국 두손 들었다. 60평생에 음식을 남기는 것은 인생 처음이다. 특히나 일본에 지면 절대 안되는데…. 8월 29일은 국치일이요, 11월 24일은 뽈치일(뽈락 치욕의 날)이다.
옛 463번 국도와 나란히 뻗어 있는 신작로 463번 국도를 타고가다 다시 좁은 223번 현도를 따라 언덕에 오르니 호수가 보인다. 사야마(狹山) 호수다. 양쪽에 단풍숲의 커튼을 두른 아담한 호수에는 어느새 가을 햇볕이 내려와 물비늘이 반짝거리고 있다. 



어르신들 인심
호반의 파고라 쉼터에는 가을바람을 따라 온 어르신 몇 분이 오손도손 하다. 몇 마디 주고받았는데 어느새 내 앞에는 먹을거리가 수북이 쌓였다. 역시 한국이나 일본의 어르신들은 남을 위해 꼬불쳐 놓은 마음이 항상 푸짐하다. 등산 오셨냐 했더니 여기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많단다. 제주도 올레길 같은 곳이라고 설명까지 덧붙인다. 나의 우쭐한 무용담에 재미있어 하면서 눈길이 아득해진다. 여기서 바라보는 황혼이 멋있다면서 일행은 자리를 뜬다. 나도 갈 길이 바쁘다. 황혼은 그냥 구르미와 상상만 하기로 합의했다.
사야마 호수의 일직선 제방을 가로질러 어제 왔던 제방을 지나 도쿄로 복귀했다. 차도와는 턱을 만들고 가드레일까지 설치한 자전거도로를 따라 구불구불 페달을 저어간다. 구르미의 타이어는 노란색, 빨간색 등 형형색색의 낙엽을 쓰다듬으며 나아간다. 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 꽃잎을 떨어뜨리지만 낙엽은 살기위해 떨어뜨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낙엽에는 피를 토하듯 고민과 아픔이 서려 있으리라. 사람들은 그 고통의 응어리를 책갈피에 간직하면서 자신의 추억이라 여기지…. 

 

황혼녘의 사야마 호수에서 기운을 한번 내봤다. 자전거가 가벼워 별로 힘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으랏차차~
땅거미 지는 사야마 호수. 도쿄로 돌아가는 길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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