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라이딩의 매혹, 이제는 짧은 거리에 긴 시간을 들이고 싶다

새해 풍경 & 도심 라이딩 그리고, 자전거
골목 라이딩의 매혹, 이제는 짧은 거리에 긴 시간을 들이고 싶다

일본은 철저히 양력 위주여서 1월 1일이 설날이다. 우리는 포동포동한 복돼지해라지만 일본은 우락부락한 멧돼지해란다. 신년을 맞아 도쿄의 골목길을 4일간 120km 정도 달렸다. 달렸다기보다는 기어갔다는 게 맞을 것이다. 예전에는 먼 거리를 짧은 시간에 가려고 용을 썼지만 이제는 되도록 짧은 거리에 긴 시간을 들이려고 노력한다. 아이를 앞뒤로 태운 아줌마, 자전거 메신저, 경찰과 우체부 등등 자전거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선진국 일본을 떠받치는 저력이다

 

새해 첫날 아침 찾은 동네의 사찰. 너무 한산하고 조용해서 법당 앞에서 인사만 드리고 돌아나왔다

 

이 엄동설한의 삭풍에도 세월은 고개를 넘고 있다.
새해가 밝았다. 동양에서 가장 먼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철저하게 ‘신식문화’를 따르고 있다. ‘동양에 있으면서 서양을 지향한다’는 모토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 중국, 베트남 등은 달을 중심으로 한 농경문화의 음력을 지켜왔다. 그러나 일본의 달력에는 조그마한 음력날짜도 없고 젊은이들은 음력 자체를 신기해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양력 1월 1일이 새해를 맞는 진정한 첫날이자 엄숙한(?) 명절이다.

일본식 새해맞이
연말에는 대대적인 집안청소로 깨끗이 한 후 대나무, 소나무, 굵은 새끼줄, 빨간 열매와 꽃, 지그재그 흰종이 등으로 대문을 장식하고 새해를 맞는다. 지나가다 들린 장식가게의 가와다상이 각 물품들의 의미를 열심히 설명하는데 짧은 일본어 가방끈을 실감한다. 하지만 고개 끄덕 웃음 얼굴로 대충 진도를 나간다. ‘1년 동안 쌓인 먼지와 흉과 오해들을 털어내고 집안과 나를 청결히 하면 만복이 깃든다’ 이런 의미 아니겠어. 안 봐도 비디오^^
나는 음력설이 진짜 원단이라 생각하지만 달력상의 새 날이라 몸이 반응하여 일찍 일어났다. 며칠 전 보아 둔 근처의 선정원이라는 절을 찾았다. 아무리 이른 새벽이지만 그래도 새해 첫날인데 너무 한산하고 조용하다. 다들 신사로 갔을 것이다. 법당 앞의 향불은 흰 연기의 희미한 꼬리가 처량하고 스님의 불경소리도 없다. 오히려 머쓱하고 미안하여 법당 앞에 선 채로 손을 모으고 고개를 조아리고는 돌아 나오는데 뒤뜰 모란밭 사이의 연못에서 비단잉어들이 유유히 노닐고 있다
그려… 나도 너처럼 언제나 깨어 있어야지 하면서 잉어와 눈약속을 나눈다. 절 북쪽에는 나무 팻말이 우뚝우뚝한 묘들이 총총하다. 일본인은 도시 한복판에 무덤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하기야 낮이 자연스럽게 밤으로 이어지듯이 죽음도 우리네 삶의 연장선일 것이다. 오히려 죽음이 있기에 우리네 인생이 더 소중하고 애틋한 것이리라.

일본은 멧돼지해
바다에서 목욕하고 나온 햇님은 벌써 하늘에 말갛게 떠있는데 거리는 한산하다. 상점들은 대부분 셔터를 내리고 새해를 알리는 연하 포스터가 인사를 올리고 있다. 2019년이란 표기보다는 천황의 연호를 따라 ‘헤이세이(平成) 31년’이란 자기네 셈법으로 세월을 표기한 곳이 대부분이다. 크리스마스와 석가탄신일은 공휴일이 아니면서 천황 생일은 공휴일로 지정해 놓았다.
올해는 기해년, 12간지의 마지막 동물인 돼지해다. 우리네는 황금돼지해라 하여 복스럽고 동글동글한 돼지가 인기 있지만 여기서는 이노시시라 하여 터프한 이미지의 멧돼지해라 부른다. 12간지가 전파되던 시대에 일본에는 집에서 키우는 돼지가 없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관공서 등 대부분은 3일까지 휴일이고 착한(?) 회사는 7일부터 새해업무를 시작한다.
새해 인사와 함께 영업 개시일을 알리는 가게들의 연하 포스터도 각양각색이다. 흔하디 흔한 ‘근하신년’부터 멧돼지와 함께 세배를 올리는 파나소닉, 오토바이 화보의 혼다, 일본 미인도의 이미용협회 포스터도 눈에 들어온다. 특히 ‘영춘(迎春)’이란 단어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벌써 봄을 상상하고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니…. 그래서 자세히 보니 얼어붙은 듯 조용한 벚나무와 목련 가지에는 송글송글 꽃망울들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물소리가 들린다. 이처럼 나무들은 미련한 곰처럼 잠만 쿨쿨 자는 게 아니라 겸손하게 쉬지 않고 봄을 만들고 있다.

 

가게 앞에 나붙은 새해인사 포스터. 벌써부터 봄을 맞는다는 ‘영춘’과 멧돼지해 그림이 독특하다
도쿄 골목 탐사에 나서는 필자. 영상 10도 정도로 포근한 날씨다

 

도쿄의 속살을 달리다
도쿄에 처음 와서 자전거로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고삐 풀린 로시난테처럼 무작정 달릴 순 없지 않은가.
먼저 서울의 지하철 2호선처럼 도쿄 시내를 순환하는 JR 야마노테선을 따라 도쿄역을 비롯해 신주쿠역, 시부야역, 우에노역, 이케부쿠로역 등 29개의 역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노선은 지상철이라 전차를 보면서 따라가면 된다. 마치 사막에서 북극성을 보면서 걷듯이. 작은 수첩을 준비해 각 역의 스탬프를 찍는 쏠쏠 재미는 덤이다. 아쉽게도 스탬프 장소는 한 군데뿐이라 헤맬 수도 있는데 경험상 대개 남쪽 출구에 있더라.
새해 첫날 부처님께 잠깐 문안도 드렸고 나름의 마음다짐도 하고나서 긴장이 풀려서인지 책상에 앉은 채 꾸벅하다보니 어느새 햇살이 노크를 한다. 문앞의 구르미도 나가보자고 안달이다.
무심코 동네옆 묘정사천을 따라 흐르듯이 구르미가 길머리를 잡는다. 홍제천보다 폭은 좁은데 깊이는 7, 8미터로 더 깊숙하다. 그냥 홍수 방지용 강둑이라 산책로나 자전거도로도 없다.  물빛까지 컴컴한 그곳에는 물오리들이 놀고 있다. 천이라 부르기엔 너무 작고 개울이라 하기엔 너무 깊다. 그래도 하천 옆으로 도로는 이어져 있어 동네 토박이처럼 살살 나아간다.
조그만 다리가 수없이 많아 속도를 낼 수도 없다. 간선도로나 철길을 만나면 한참을 헤매기도 한다. 처음엔 “뭐야?”하고 불평하다가 꼬불꼬불, 멈칫멈칫 뒷골목의 묘한 매력에 빠져든다. 다카다노바바 근처에서 간다천과 합세한 물은 점차 그 세를 불려나간다. 이치가야 근처에서는 둑을 쌓아 저수지로 만들고 주변 조경이 되어 제법 강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맥도날드의 쌍무지개를 보는 순간 평소 즐기지 않는 패스트푸드가 당긴다. 새해 첫날 떡국과 김치를 대신하여 햄버거에 감자튀김을 먹었다. 후식으로 식혜 대신 콜라를 꿀꺽한다. 아무렴 어때. 우리에겐 진짜 설이 기다리고 있잖니^^

 

 

간다가와(神田川) 서정 
다음 날, 기온도 영상 10도에 바람도 자고 있어 본격적으로 도쿄의 속살을 누비기로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나카노구(中野區)에는 에고다천, 묘정사천, 후쿠젠지천, 간다천이 흐르고 있다. 그 중에 맏형격인 간다천은 도쿄와 사이타마현의 경계를 흐르는 아라가와가 원류로서 서북쪽 미타케시의 이노가시라 호수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지금은 도시화에 찌든 간다천은 에도시대에는 물이 맑아 수원지로 활용되었다. 도쿄 도심을 흐르면서 위의 3형제와 나카노구와 신주쿠구에서 만나 대학가로 유명한 오차노미즈의 유원지로 모였다가 황궁의 해자를 돌아 스미다가와와 합류하며, 지도상의 거리는 총 25km 정도의 짧은 천이다. 아마도 강은 산이나 들 같은 자연 속에서 흐를 때 그 가치와 의미가 클 것이다. 그래서 도심을 흐르면서 생활 오수, 매연, 소음에 시달리는 간다천은 불운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정반대의 입장이리라. 얼마나 고마운가! 팍팍한 객지생활을 잊게 해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일 것이다.
금수저에 밀리고 밀려 할 수 없이 배수의 진을 친 서민들의 강변 삶이다. 그들이 생활할 때 이들은 생존하려고 몸부림쳤으리라. 와세다대학을 지날 때는 1973년에 가쿠야 히메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친 ‘간다가와’란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3간(2평) 쪽방의 가난한 대학생 커플의 사랑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젊을 때는 두려운 게 없었지만 단지 당신의 다정함이 두려웠다고 한다. 어린 왕자의 여유가 길들여지는 게 두렵듯이.
작은 비누가 달칵거리는 목욕통을 끼고 둘이 갔던 요코초의 목욕탕은 사라졌지만 헤매던 끝에 비슷한 센토(대중탕)를 발견한다. 이제 옛날의 어둡고 암울한 것들을 벗겨내고 강 주변에는 가로 공원과 놀이터가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다. 강둑에는 강을 지키는 호위무사처럼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길쪽에는 가지가 듬성한 반면 강쪽에는 기린이 목을 늘어뜨려 물을 마시려는 듯 가지들이 쭉쭉 늘어져 있다.
나무 둥치에 손을 대고 눈을 감고는 작년 어느 봄날 흐드러진 벚꽃의 잔치를 떠올려 본다. 흘러가는 강물 따라 길도 흐르고 집들도 흐르고 있다. 대문도 없이 어깨를 서로 기댄 채 늘어선 강변의 집들은 길이 앞마당이요 강이 전망대다. 마음을 열면 천하가 내것이요, 내가 천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4일간 누빈 골목길 120km 
상류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강 옆의 길은 사라지거나 좁아진다. 핸들이 걸려 머뭇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헛기침으로 압박한다. 뜀박질을 하는 아줌마에게 길을 터준다. 자전거보다 달리기가 더 빠른 길이다.
길옆에는 가을 서리를 견디고 겨울 추위도 아랑곳없는 들국화의 절개가 가상하다. 주먹보다 더 큰 노란 감귤은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강으로 추락 일보직전이다. 사라진 강변 골목길이 말을 걸어온다. 집이 너무 좁아 들일 수 없는 자전거가 추울세라 파란 이불을 둘렀다. 꼬마가 훌쩍 커버려 쓸모없어진 용품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풍물가게에 들러 전에 갔던 일본 여행지의 기념 뱃지를 샀다. 제주도 신혼여행 갔다가 남대문시장에서 기념품을 사는 격이다. 홋카이도의 최북단 소야미사키, 야경이 떠오르는 하코다테, 금숙이와의 추억이 깃든 하코네 등 기억이 새록새록해진다. 나의 요청에 주인장 엔도상은 수줍은 포즈를 취해준다.
초등학교 담벼락에 그려진 나무 등걸 위에서는 아이들의 꿈이 자라고 있다. 강의 상류에는 호수가 있어 흑두루미 등 겨울철새의 보금자리로 이용된다. 겨울철새를 사진에 담는 사람들,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아가씨, 휘파람 연습중인 영감님, 엄마는 유모차를 끌고 아빠는 아기를 안은 도란도란한 가족, 닌자처럼 야구 방망이를 뒤로 메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꼬마 야구단 등 자연과 사람과 동물이 한가로운 풍경이다. 겨울이지만 봄날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날들이다.
주행거리를 계산해보니 4일 동안 120km 정도이다. 이쯤 되면 달렸다기보다는 기어갔다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억울하거나 섭섭함은 전혀 없다. 오히려 여유가 몸에 붙어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을 것 같다. 예전엔 먼 거리를 짧은 시간에 가려고 용을 썼지만 이제는 되도록 짧은 거리에 긴 시간을 들이려 노력한다. 그래야 더 자세히 볼 수 있으니…. 

자전거와 함께 하는 사람들
1월 7일 겨울방학이 끝나고 드디어 개학이다. 꿀맛 같은 방학 뒤의 개학에 ‘드디어’가 나오다니! 이제 3월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NHK 일기예보 기상 캐스터는 영상 10도의 날씨를 브리핑하면서 춥다고 겁(?)을 준다. 서울은 영하 15도라던데.
여느 때처럼 헬멧에 장갑, 마스크의 완전무장으로 구르미와 함께 조금 일찍 학교를 향한다. 새로 이사온 누마부쿠로를 출발하여 나카노역을 지나 신주쿠에 다다르면 출발시의 한기는 사라지고 등쪽에 땀이 송글함을 느낀다. 다시 요요기를 지나 하라주쿠 언덕 내리막을 쏠 때는 차가운 공기가 코를 통해 폐속까지 전달되면 뇌에서 상쾌하고 기분 좋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리곤 가슴은 벌렁거리며 “살아있다”고 알린다.
키 큰 가로수들이 내려다보는 오모테산도를 지나면 시부야의 학교에 도착이다. 편도 12km 정도의 짧은 구간이지만 오르막 내리막 그리고 좁은 길, 넓은 대로 등 도로가 다양해서 그야말로 ‘어반 트라이얼’을 즐긴다. 어쩌다 신호 한번 안 걸리고 오는 날이면 로또 당첨 기분이다. 60번 이상 봄을 보냈으면서도 아직도 ‘물가 어린애’인가 보다.

 

강변에 도열한 아름드리 벚나무가 마치 물을 마시려는 듯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방치하면 자전거도 견인(?)당한다
나카노역 주변은 출근 인파가 거리를 꽉 매웠다. 각종 자전거 출근자까지 뒤섞여 더욱 복잡하다. 역 주변의 구청 실내 공영주차장이 모자라 노상주차장에도 자전거가 빽빽하다. 하루 이용권이 100엔이고 한달 정기권은 1600엔이다. 자전거 도난방지와 거리 경관을 위해 꼭 주륜장을 이용하라고 권장하고 있다. 급하다고 대충 아무 곳에 애마를 방치했다가는 “에이!” 하는 경우가 생긴다.
옅은 녹색 유니폼을 입고 2인1조로 다니는 단속 영감님들은 주차위반 딱지도 끊고 불법 방치 자전거도 견인해 간다. 작년에 시부야 학교 근처에 세워두었던 구르미가 견인당해 거금 2000엔을 주고 찾아왔다. 살고 있는 나카노구는 5000엔이란 소릴 듣고는 3000엔 벌었다고 바보 이반처럼 웃고 말았다.
일본의 도시 풍경이 정돈되고 깔끔한 것은 시민의식 덕분일테지만 신고정신과 더불어 위반하면 엄격한 벌칙과 살인적인(?) 과태료가 도덕군자를 양성하는 셈이다. 아무렴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땐 들어야지^^

마마차리의 행복  
일본의 자전거하면 단연 ‘마마차리’라 할 것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엄마들이 이용하는 자전거 즉 아이들을 앞뒤로 태우고는 씽씽 잘도 나아간다. 아침이 바쁜 엄마들은 두리번거리는 나를 그대로 추월해버린다. 일본 아지매들은 이상화 허벅지인가 했는데 비밀이 있었다. 바로 전동이란 놈이 BB 근처에 숨어서 아지매를 도와주고 있었다.
1993년 야마하에서 세계 최초로 전동 어시스트 자전거를 개발함으로써 이렇게 주부들의 마술 같은 발로 탄생한 것이다. 타고 내리기 쉬운 L자형 프레임, 오르막 등판이 용이한 내장 3단 기어, 롤러 브레이크, 허브 다이나모 라이트, 말굽형 자물쇠, 넓고 편안한 스프링 안장, 튼튼한 더블 스탠드, 주륜를 위한 핸들 잠금장치 등 자전거 구석구석 배려가 묻어있다. 신호를 기다리는 마마차리 앞좌석의 아이는 투명 비닐의 바람막이 의자가 침대인양 쌔근쌔근 잠들어 있고 엄마는 뒷좌석의 아이와 구구절절하고 있다. 행복이 전염될까 좀 더 옆으로….
 

한국인 자전거 메신저 
또 한대의 자전거가 바람처럼 휙 지나간다. 날렵한 뒤태가 섹시한 사이클이다. 삑삑 무전기를 가슴에 대롱대롱 비껴 맨 메신저 가방에, 안장 밑에는 타원형 번호판이 달랑달랑 한걸 보니 ‘자전거 메신저’이다. 1870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되어 ‘옐로우 캡(택시)’ 버금갈 정도로 유명한 뉴욕의 메신저가 이곳 도쿄에도 있다. 펜으로 갈겨대는 사인보다는 인감과 원본을 중시하는 일본문화와 좁고 막히는 도쿄도심을 고려해보면 꼭 필요한 수단이다.
메신저의 대부분은 젊고 팔팔한 20~30대가 대부분이고 대략 800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 ‘쎄다’는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도쿄의 자전거 메신저로 활약중인 한국인 김의호 씨와 야끼소바를 같이 했다. 2010년부터 자전거의 매력에 슬슬 빠지기 시작해 이제는 주황색 MASI가 신체의 일부란다. 지금의 회사 ‘T 서브’는 1989년 창업하여 130명 정도가 근무한단다. 그중에는 20년 된 베테랑도 있다고.
처음 입사하면 일주일정도 안전교육 등을 이수한 후 몇 개월은 시급을 받다가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건당 수입이 생긴다. 4월말, 9월말 그리고 연말이 제일 바쁘다. 여기저기 언덕이 많은 도쿄의 지형을 고려하여 장비는 개인소유의 로드바이크가 주류를 이루지만 ‘멋부림’에 픽시(여기서는 피스타)를 고집하는 친구들도 있단다. 

자전거 탄 경찰과 우체부   
큰 사거리 모퉁이에서 신호를 위반한 차에게 경찰이 스티커를 발부하고 있다. 그 옆에는 흰색 자전거가 위풍당당하다. 교통 스티커는 보통 순찰차나 경찰 오토바이의 영역이지만 일반 파출소 순경도 교통단속을 한다.
벤츠 S클래스가 단속 자전거 앞에서 고양이 앞의 생쥐 꼴이라니! 자전거인으로서 묘한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야간에 라이트를 켜지 않았다고 불러 세워서 자전거 등록했냐? 외국인이면 재류카드 내봐라고 할 때는 벌레 반토막 씹은 기분이다. 남을 혼내줄 때는 ‘정의의 사도’였다가 막상 내가 당하면 ‘악마의 사촌’ 쯤으로 여겨지는 것은 ‘내로남불’이란 불치병의 전조현상인가.
아무튼 우리네 파출소 같은 코반은 도시 곳곳에 위치하여 치안을 지키고 있고 그 코반 앞에는 어김없이 순찰용 자전거가 옹기종기하다. 흰색 프레임에 포크 양쪽에는 야간 지시봉이 꽂혀 있는 투명 플라스틱 튜브가 있고 캐리어에는 흰색 구급상자가 반질하다. 이 자전거로 늙은 나카무라 순경은 오늘도 좁고 구불구불한 관내 골목을 어슬렁어슬렁 살피며 낯익은 주민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아케마시테 오메데토 고자이마스!(새해가 열림을 축하드립니다) 코토시모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사히신문 보급소에는 새벽에 따끈한 뉴스를 돌리고 온 배달 자전거가 땀을 훔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멀리서 빨간색 자전거가 달려와서 척하고 서더니 낡은 가죽 가방의 큰 입을 벌리고는 소식들을 토해낸다.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까마득한 우체부 아저씨의 자전거가 고맙게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자전거 덕분에 세월은 한층 여유롭게 흐르고 지켜보는 외국인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일본을 떠받치는 두바퀴의 힘 
또 한대의 자전거가 두리번거리고 있다. 정육면체 검정 가방을 부담스럽게 둘러메고 휴대폰 한번 쳐다보고 건물 한번 쳐다보고…. 이른바 우버 음식배달 자전거다. 기본 370엔부터 많게는 1200엔까지 거리에 따른 괜찮은 벌이여서 자주 눈에 띄는 풍경이다. 특히 여름 장마기간이나 지금처럼 추운 겨울에는 ‘귀챠니스트’의 주문이 폭주한단다. 자칫 현금에 욕심이 동하여 속도를 올렸다간 고객으로부터 클레임을 받을 수 있다. 콜라가 쏟아지거나 초밥이 한쪽으로 쏠려 회덥밥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한다.
자전거와 리어카가 합체한 소위 카고자전거도 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고양이 부자(모자인지?)의 로고가 인상적인 일본 최대의 택배회사 야마토에서도 골목길 택배는 이 자전거가 안성맞춤이다. 주류를 운반하는 카고자전거와 함께 ‘ECO’를 회사 모토로 광고하면서 달리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자신들의 환경과 생활에 맞게 적절하게 자전거를 이용하는 아이디어와 습관이 일본을 선진국으로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저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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