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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맨의이바이크에세이-전기자전거가 맺어준 아름답고 소중한 인연들

5년만에 만난 후배, 20년만에 만난 지인 
전기자전거가 맺어준 아름답고 소중한 인연들


본지에 전기자전거 칼럼을 4년간 연재하면서 뜻밖에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다. 5년간 연락이 두절된 후배가 칼럼을 보고 연락을 해왔고, 20여년만에 지인을 다시 만나기도 했다. 필자와의 인연으로 전 가족이 전기자전거를 타게 된 경우도 있다. 라이딩의 신세계를 열어주는 전기자전거는 필자에게는 사업이면서 동시에 소중한 인연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필자는 전기자전거를 통해서 참 많은 것을 얻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즐기면서 일하는 필자를 보며 부러워한다. 필자가 전기자전거를 통해서 누렸던 행복을 더 많은 사람이 전기자전거로 잠 못 이루는 설렘과 즐거움, 건강은 물론 아름다운 인연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매월 원고 마감 스트레스에도 4년째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 이러다가 자전거생활 최장수 연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자전거생활에 기고한 ‘Yesman’s E-Bike story’의 인연으로 연락이 끊어졌던 지인들이 필자와 다시 연결된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는 전기자전거로 인해 이어진 아름다운 인연을 소개한다.


5년간 연락 두절된 후배와의 재회
필자의 첫 직장에서 같이 근무하면서 매주 패러글라이드로 하늘을 누비다가 강풍에 휘말려 추락해서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식목일에 톱질을 같이했던 친한 후배가 있었다. 필자가 회사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락이 끊겨서 오랜 기간 연락이 없었다. 보통 전화번호가 바뀌면 바뀐 번호로 연결되는데 후배는 그런 연결도 안 되고 소식이 두절되어 수소문해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10년 가까이 연락이 없다가 4년 전 필자의 연재글에 소개된 이메일 주소를 통해서 반가운 재회를 하게 되었다.
후배는 세상과 연락 두절된 5년간의 큰 공백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고 한다. 그가 근무한 곳은 인터넷도 전화도 연결되지 않고 사람의 왕래도 쉽지 않은 북한이었다. 북파 간첩(?)이 아니라 금강산 사업자로 파견근무를 하는 바람에 생긴 5년의 공백이었다. 다행히 자전거에 대한 관심 덕분에 10년만에 필자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결국 이 후배도 필자에게 전염된(?) 전기자전거와의 인연으로 조만간 아들과 함께 국토종주를 준비하고 있다.


이경범 원장과의 인연
전기자전거 초창기에 필자와의 인연으로 12인치 전기자전거로 입문해서 출퇴근을 시작했다가 결국 필자의 전기자전거를 입양한 회원이 있었다. 전기자전거를 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그는 서울에서 경기도로 출퇴근하는 치과의사였다. 전기자전거가 요즘처럼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 같은 지역에 개업한 선배 의사로부터 전기자전거를 알게 되었다.
그의 선배에게서 인수한 중고 전기자전거는 필자 회사의 고성능 모터를 장착한 일반자전거를 전기자전거로 만든 제품이었다. 당시에는 상당한 고출력 스펙이었다. 그런데 그의 첫 전기자전거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전 주인은 체중이 무겁고 고속을 즐기는 스타일로 필자도 알고 지내던 회원인데 고출력 모터 2개를 달아 누가 봐도 자토바이(페달만 달렸지 영락없는 오토바이) 형태의 무늬만 자전거였다. 비교적 몸이 가벼운 그에게는 너무 과한 스펙이었다.
그렇게 빨리 달릴 필요도 없고, 몸무게도 가볍고, 산에 갈 일도 없어 자토바이가 필요 없는 그에게 감당하기에 벅찬 시련이 닥쳐왔다. 모터가 독립된 2개의 시스템이라 지나치게 무거운 당신을 데리고 이사를 한 곳이 마침 승강기가 멈추지 않는 아파트 2층이었다. 고가의 전기자전거를 외부에 두고 다닐 수도 없고 안전한 실내로 가는 여정은 험난했다. 30kg이 훨씬 넘는 자토바이를 먼저 3층으로 올린 다음 다시 2층으로 내려와야 하는 고난의 길이었다.
결국 필자의 권유에 따라 두 개의 모터 중에 크랭크에 장착된 센터드라이브 방식의 모터만 남기고 뒷바퀴에 장착했던 3.5kg이 넘는 허브 모터와 무게 생각하지 않고 주렁주렁 달았던 쇳덩이들, 3년 이상 사용한 배터리까지 과감히 줄여 10kg 가까운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자토바이에서 누가 봐도 전기자전거로 변신한 후 그는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전기자전거는 죄다 그렇게 무거운 줄 알았던 그의 전기자전거가 충분히 감당할 수준까지 가벼워지고, 페달링 반응이 즉각적으로 바퀴에 전달되면서 모터는 일정 부분 도와주는, 말 그대로 진정한 자전거 범주의 전기자전거가 된 것이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하루 왕복 40km가 넘는 거리를 자출하는 그에게 페달링의 묘미라는 즐거움이 하나 더 생겼다. 전기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자연과 함께하는 힐링은 물론 6학년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건강까지 챙길 수 있어 그에게는 지상 최고의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눈비 오는 날만 전철을 이용하고, 나머지 날은 기온과 상관없이 전기자전거로 수년째 출퇴근하고 있다.


한겨울에 스페인 순례자 코스를?!
나이보다 건강하게 자전거를 열심히 타온 그에게는 버킷리스트 1순위가 스페인 순례자 코스를 자전거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자전거 천국인 유럽 자전거여행은 필자를 포함해 많은 라이더들의 꿈이다. 그의 꿈을 실현하기에 가장 큰 장애물은 꿈을 찾아 떠난 사이에 병원 문을 닫아야 하는 점이었다. 더 늦기 전에 비교적 휴일이 많은 겨울에 자전거를 좋아하는 아들과 함께 가슴 떨리는 순례자의 길을 떠났다.
처음 계획은 몇 년 동안 자출로 남다른 건강을 자랑하는 본인과 자전거 타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들과 함께 6학년 아빠는 전기자전거로, 3학년 아들은 일반 자전거로 힘들면 바꿔 타기도 하면서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겨울 순례자 코스를 준비했다.
겨울철에는 스페인 레온에서 출발해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322km 순례자 코스만 개방되기에 6일 코스로 잡았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고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아들 덕분에 러시아를 거치는 저렴한 비행기도 예약했지만 처음 계획에서 큰 차질이 생겼다.
유럽에서도 워낙 전기자전거가 인기여서 여행 기간에 대여 가능한 전기자전거가 없어 일반 자전거 2대를 호텔로 배달하는 서비스를 받았다. 일반 자전거로 눈길 322km를 6일 동안 달리는 건 누가 봐도 말려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전기자전거로 몇 년간 하루에 40km 이상 눈비 오는 날 빼고는 자출해서 단단해진 다릿심을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들은 주말에 인력거를 몰았던 체력이라 아버지가 걱정이지 자기는 자신만만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도전은 첫날부터 시련이 닥쳐왔고 아버지와 아들에게는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일주일이었지만 이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값진 추억이 되었다.
여행 중에 매일 필자와 카톡으로 나누었던 생생한 현장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하루에 펑크가 두 번 나고 눈 때문에 인생에서 잊지 못할 하루로 기억될 것이라고 사진을 보내온 날, 아이러니하게도 필자는 대학에 합격한 딸과 뜨거운 푸켓 해변에서 마시는 시원한 모히또 사진을 보냈다.
322km를 6일 만에 무사히 완주하고 2월 4일 산티아고 입성 소식을 전해 와서 마음이 놓였다. 사실 6학년 나이에 스페인 순례자 코스를 눈길에 라이딩하는 것은 현지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말리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6학년이 된 그에게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게 해준 것은 평소 전기자전거로 매일 출퇴근하면서 생긴 체력에 대한 자신감과 누구보다 든든한 아들의 존재였다.

 

눈비 오는 날 제외하고 전기자전거로 매일 40km 이상 출퇴근하는 이경범 원장
보는 것만으로 몸서리가 쳐지는 한겨울 스페인 순례자 코스에서 이경범 원장 부자
흙탕물이 흐르는 순례자 코스에서의 이경범 원장.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고

 

아내를 위한 최고의 선물
여행을 마치고 이 원장은 모처럼 주말에 필자에게 출퇴근용 전기자전거의 점검을 받으러 왔다. 필자와 점심을 먹으면서 순례자길 무용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다가 최근 자전거에 입문한 부인 이야기를 꺼냈다. 다소 늦은 나이에 자전거를 배워 즐거워하는데 체력이 받쳐주지 못해 멀리 떠나는 것은 아직은 어렵다며 부인을 위한 가벼운 전기자전거 제작을 의뢰했다. 마침 필자 회사에서 제작해 정식인증을 받아 놓은 18kg의 가벼운 여성용 MTB가 있었다. 본인이 먼저 시승해보고는 부인을 위한 선물로 결정을 내렸다.
필자가 “수백만원짜리 핸드백은 용납이 되지만 수백만원짜리 자전거는 이해를 못 하는 여성분들이 있는데 그래도 부인에게 재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했더니, “아내를 위한 선물이라 내 맘에 들면 된다”고 바로 결정을 했다. 문제는 자전거를 타고 50km를 달려온 그가 또 한 대의 자전거를 가지고 갈 방법이 없었다.
비 오는 날 필자의 차로 퇴근길에 집까지 배달을 해주기로 했는데 마침 다음날 비가 내려 부인을 위한 사랑의 선물을 배달해 주었다. 그의 집에서 차 한 잔 마시면서 그가 도전했던, 인생에서 가장 큰 산이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무용담 뒷이야기를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엄청난 눈으로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현관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포기할까 고민하던 중에 눈을 치우는 차가 도착해서 그 뒤를 따라 눈 속에 고립된 마을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그 사람이 바로 그의 아들이었다니! 
더 재미있는 인연은 그의 집에서 듣게 된 필자와 이미 연결되어 있던 아들과의 인연이었다. 자전거를 워낙 좋아하는 그의 아들은 몇 년 전 서울에서 관광용 인력거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든든한 직장이라 그만두지는 못하고 주말에만 인력거를 직접 몰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 회사가 필자 회사에서 일반 인력거에 중앙구동 방식의 모터를 달아 전동 인력거로 개조한 업체였다. 이 회사는 3년 전에 1대로 시작해서 꾸준히 전동 인력거 숫자를 늘리고 있으며,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매체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해 이제는 자리를 잡은 ‘아띠인력거’로, 창립멤버가 그의 아들이다. 그는 일부 지분을 처분해서 중국 유학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아띠인력거 라이더는 영어는 기본이고 외국인들을 위한 관광 가이드에 엄청난 체력까지 갖추어야 하는 힘든 일이었다. 초기 창립멤버로 열심히 꿈을 키웠던 아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포지티브 규제 일변도인 한국의 법과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인력거 라이더를 무시하는 시선이었다고 한다. 아들의 인력거를 이용한 손님의 대화가 마음 아팠다고 한다.
“아들아, 공부 열심히 해야지?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힘들게 인력거나 몰아야 해.”
“저 공부 잘했는데요? 페달 밟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데요?”하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날 밤 아들은 잠 못 이루고 술로 지새웠다고 한다.
한 사람과의 인연이 결국 또 하나의 인연으로 이어져 전 가족을 전기자전거 가족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아들에게까지 필자와의 인연이 이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웠다. 정작 아띠인력거를 필자 회사에서 전기자전거로 만들었던 사연은 그의 가족도 처음 들었고, 필자도 아들이 아띠인력거의 창립멤버라는 사실도 그의 부인을 통해서 처음 들었다. 

20여년 전 필자가 취재해서 실은 구 선생과 현대고 기술부
순레자 코스 답사 중에 폭설이 내렸다는 이경범 원장의 카톡 내용.  마침 그 때 필자는 대학에 합격한 딸과 함께 푸켓에서 뜨거운 태양을 즐기고 있었으니

 

구기복 선생과 20년 만에 재회
회사가 있는 마포로 전기자전거 상담 전화가 왔다. 상당히 전문적인 질문으로 상담 직원들을 힘들게 한 고객이었다. 필자가 궁금한 모든 것에 답을 드릴 수 있다고 했더니 마포로 바로 달려왔다. 몇 가지 궁금증을 바로 해결한 고객은 원하는 모터의 출력과 배터리 용량, 기타 옵션 사양을 정하고 그만을 위한 맞춤형 전기자전거 제작을 위한 계약서를 작성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구기복입니다.”
“참 특이한 이름이네요. 제가 아는 분 중에도 현대고등학교 구기복 선생님이 계셨는데, 20년도 넘은 아주 오래전에 몇 번 뵈었지요. 제가 취재한 그분이랑 성함이 같네요?”
“제가 그 구기복인데요?”
자세히 보니 얼굴에 살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오래전 그 모습이 남아 있었다. 사람 몸의 세포는 10년이면 모두 바뀌게 된다. 20여년의 세월로 세포는 모두 바뀌었지만 뇌 속에 저장된 추억이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다. 20년이 넘어서 전기자전거가 인연이 되어 다시 만나다니!
당시 현대고등학교 기술부는 사람이 탈 수 있는 비행기와 자동차를 만들고, 기름 1ℓ로 1000km를 달리는 마일리지 마라톤카도 제작하면서 지도교사인 구 선생님은 관련 계통에서는 꽤 유명했다. 당시 필자가 몸담았던 현대그룹 홍보실에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취재해서 책자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7학년을 바라보는 나이에 학생들과 전기자전거에 빠져서 자료를 모으고, 자전거생활에 연재 중인 필자 칼럼을 일일이 찾아서 정독한 열혈 팬이라고 말했다. 2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서 전기자전거를 통해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원하는 스펙의 전기자전거를 제작하기 위해 계약을 하고 조용한 일요일에 필자와 함께 본인의 전기자전거를 직접 만들어 한강의 강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달려보았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전기자전거에 접목되어 라이딩에 무한 자유를 부여한다. 체력이 모자라도 험난한 곳을 오를 수 있고 긴 오르막과 장거리가 두렵지 않게 된다. 그는 “신체적인 나이에서 오는 체력의 한계를 과학의 힘으로 극복해 더 빨리 더 멀리 더 자주 이용하게 될 것 같다”며 “이 정도로 전기자전거 기술이 발전한 줄은 몰랐다”고 감탄했다.
전기자전거는 가장 효율적인 미래의 단거리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며 장래가 밝은 전기자전거 사업에 뛰어든 필자에게 희망적인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20여년만에 재회한 구기복 선생(왼쪽)과 필자
옛 솜씨를 발휘해서 직접 모터를 장착하는 구기복 선생
한강에 시승 나온 구기복 선생

 

좋은 인연의 연속 
자전거생활에 4년간 연재하면서 전기자전거로 즐겁고 아름다운 인연들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를 통해 전기자전거로 이어진 인연들은 오늘도 신세계에서 그들만의 특별한 라이딩을 즐기고 있다. 필자가 자주 하는 큰소리가 있다.
“이보다 더 재미있는 어른들의 장난감이 있다면 이야기해 보라고요!”
그런데, 어린 시절 가슴 저리게 아련했던 첫사랑의 ‘긴 머리 소녀’는 늘어난 흰머리 때문에 ‘염색머리 소녀’가 되었을 것 같은데 전기자전거에는 관심이 없나 보다. 전기자전거 이야기를 아무리 열심히 적어도 소식이 없다. 결국 아련한 첫사랑의 여인은 두고두고 가슴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겨두고, 전기자전거를 열심히 타면서 좋은 글을 많이 써서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야 할 것 같다. 

 


예민수 객원기자  yesu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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