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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락선생의 일본편지-도쿄 ~ 서울 자전거 유랑기도쿄여 안녕! 후지산아 굿바이!
  • 김태진(한국산악자전거협회회장)
  • 승인 2019.05.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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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 서울 자전거 유랑기
도쿄여 안녕! 후지산아 굿바이!

 

3년간의 일본 유학을 마치고 이제 귀국길이다. 내 손으로 만든 바다미를 타고 도쿄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가는 20일 여정이다. 최대의 난코스 하코네 고개를 넘어 후지산을 등 뒤로 하고 나고야로 접어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대를 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세키가하라 전적지를 지나 드디어 바다 같은 비와호를 만난다

성 둘레 200km로 바다 같이 넓은 비와호 일주 코스의 시발점인 모리야마 시에는 유명한 여상 사이클리스트의 상이 서 있다. 다리가 덜 올라가도 포즈를 따라해봤다

 

1일차  3월 15일
도쿄 ~ 오다와라

일본 탈출 시작   아, 자유의 향기
새벽 4시20분에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휴대폰 알람보다 10분 일찍 생체 알람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여행을 가거나 놀러갈 때는 신기하게도 무조건 일찍 일어나지는 반사작용은 무슨 조화인지? 전생에 혹시 사막을 여행하는 캐러밴? 아님 낙타?
지난 3년간 어머니처럼 챙겨준 기숙사의 경옥 사모에게 감사의 손 편지를 남기고 신라면에 밥을 팍 말아 먹는다. 창밖이 훤해진 6시경에 바다미의 어깨를 두드리며 출발이다. 이제 언제 또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신라면의 매운 맛이 코를 찡하게 한다. 아침 공기는 아직 서늘해서 찬물을 들이킨 듯 순간 닭살이 돋지만 기분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일본 탈출의 시작을 알리는 자유의 냄새에 끌린다.


벚꽃에 물든 고도, 가마쿠라
신주쿠를 지나 하츠다이, 고탄다에서 1번 국도와 만난다. 이른 아침이라 도로는 한산하다. 타마강을 건너니 카나가와현의 가와사키(川崎) 시가 반기면서 오토바이 시동소리가 요란하다.
예쁜 다리가 보이는 쯔루미강을 지나 달리다 보니 멀리 랜드마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요코하마에 들어선 것이다. 이번이 벌써 4번째라 낯익은 거리다. 삼거리에서 1번 국도를 보내고 왼쪽으로 턴하여 21번 지방도를 택했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지만 가마쿠라도 다시 한번 들리고 싶어서다.
배낭차림에 손에 든 지도를 쳐다보는 관광객이 점점 많아진다. 모두들 웃음 가득, 사뿐 걸음들이다. 그리고 넉넉한 마음에 친절도 더해진다. 이곳은 역사적인 사찰과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오늘은 가마쿠라 막부를 지키는 수호신을 모신 쓰루가오카 하치만구 신사를 찾았다. 벌써 사람들로 북적인다. 단연 최고의 인기는 일찍 꽃망울을 터뜨린 벚나무다. 가람의 중심인 본전을 향해 일직선으로 동선이 쭉 이어져 있다. 차도의 한가운데 가슴높이의 석축을 쌓아 보도를 만들고 벚나무가 호위무사처럼 도열해 있다.
그 길을 달리다 보니 어느듯 시야가 탁 트인다. 태평양이다. 저 멀리 잠자리 날개의 요트는 바다 수면에서 춤을 추고 있다. 모래사장에는 연인들이 사랑을 새기고 있고 일광욕을 즐기는 이도 있다. 도로 난간에는 까마귀들이 그 모습을 보고 있다. 바다에 점점한 바위 위에서는 아침 사냥을 마친 가마우지가 날개를 말리는 중이고 하늘에는 솔개가 눈을 번쩍이고 있다.
318번 국도는 왼쪽의 해안선과 달리기 하듯 길은 꾸불꾸불 이어진다. 바로 옆에는 에노덴이란 협궤전차가 느릿느릿 함께 달리고 있다. 슬램덩크의 주 무대인 가마쿠라 고등학교 앞 건널목에는 만화 성지 여행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3년 전 왔을 때도 도로 확장공사였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공사를 하는 건지 여행을 하는 건지 원. 저 멀리 둥그런 해안선 끝에 툭 튀어나온 에노시마가 보인다. 섬 중앙을 오르는 신사길에는 여전히 사람들로 빽빽하다. 꼭대기의 전망대는 해남 땅끝마을과 유사하다.

 

도로변에 별도로 마련된 자전거도로. 우리는 있어도 무용지물인데…
타마강, 쯔루미강 등 몇 개의 강을 건너 도쿄에서 벗어난다. 굿바이 도쿄여!
가마쿠라의 중심유적인 쓰루가오카 하치만구 신사는 언제나 인산인해다
가마쿠라를 지나 오이소에서 뜻밖에 TCD의 사이토 선생을 만났다
가마쿠라의 협궤전차 ‘에노덴’

 

뜻밖의 만남 
다시 318번 국도에 몸을 싣는다. 해안을 따라 4차선으로 시원하게 달리고 있다. 길 양쪽에는 해송을 무리로 심어 방풍림을 조성해 놓았다. 바다와 맞닿은 곳에 태평양 해안산책길이 마련되어 있어 들어섰지만 도로에는 바람을 타고 온 모래가 바다미 신발을 움켜잡는다. 잘 닦인 4차선 도로의 차들은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가고 나도 질세라 달리니 바다미도 첫 나들이에 신이 났다.
히라즈카(平塚) 시에 들어서니 어느새 도로는 2차선으로 좁아지면서 1번 국도로 변했다. 100여km를 달렸는데도 피곤하지 않고 해도 많이 남았다. 도로 앞 저만치에 누군가가 웃으면서 손짓을 한다. 바로 TCD의 사이토 선생이다. 이런 뜻밖의 일이 있나!
이곳 오이소(大磯)에 선생이 살고 있는데 자동차로 지나다가 나를 발견했단다. 그러니까 놀라기는 선생이 먼저였던 것이다. 그리고는 선물도 건넨다. 졸업식 때 주려고 했는데 만나질 못해 아쉬웠다면서. 하코네의 특산품 나무로 만든 비밀상자이다. 이렇게 세상에는 놀랄 일도 많고 뜻밖의 기쁨도 길에서 줍는다. 그래서 살만한 인생인가 보다.  
오다와라(小田原) 시에 들어서서 눈에 띄는 호텔에 조금 일찍 여장을 풀었다.

지난 3년간 돌봐준 기숙사의 이 사장 부부와 마지막 기념사진
유명한 신사와 전망대가 있는 에노시마가 백사장 끝에 아득하다

 

2일차  3월 16일
하코네 고개를 넘다, 헉헉!
오다와라 ~ 후지
새벽 4시반, 오늘은 걱정으로 눈이 떠진 것 같다. 이번 여행의 최대 고비인 하코네 고개를 넘어야 하고 설상가상으로 비 예보까지 있다. 비옷을 꺼내고 긴 타이즈에 반바지로 챙겨 입었다.
지도를 펴놓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타미로 가는 135번 해안도로로 여유있게 갈까…. 일단 가면서 생각하기로 하고 6시경 호텔을 빠져 나와 1번 국도에 올랐다. 약 30분 후 삼거리가 나온다. 다시 머뭇거리는데 바다미가 못 먹어도 고! 남자는 직진이지! 그려, 그 유명한 도카이도선(東海道線, 교토~도쿄를 잇는 옛길)을 올라보자고.
1번 국도를 따라 하코네로 향했다. 로만스카 열차의 종점인 하코네 본역에 도착했다. 이 곳 하코네는 한국에서 가족, 친구가 오면 안내하는 단골 레퍼토리여서 눈에 익다. 특히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하고 고속열차, 등산전차, 케이블카, 해적선, 버스를 패키지로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잠시 후 돌로 만든 아치형 다리가 보인다. 저 아치는 다리에게 도움을 줄까. 아님 무거워서 부담을 줄까? 나도 남들에게 저런 존재는 아닐까? 바로 여기부터 오르막이 시작된다. 하늘은 찌푸려 있지만 비는 뿌리지 않아 다행이다. 거리가 얼마인지, 경사도는 어떻게 되는지 사전 조사도 없는 게으른 뽈락을 비웃듯 친절한 안내판도 없다. 그냥 계속 올라가란다. 그려, 태산도 하늘아래 뫼일 뿐이지.
좁은 길은 구불구불 힘겹게 올라가고 있다. 마인드 컨트롤로 딴 생각에 집중해도 서서히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순환버스는 정기적으로 큰 덩치로 압박한다. 같은 두바퀴인데도 쌩하고 지나는 오토바이가 얄밉다. 마주 오는 동네 아저씨에게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인사를 해도 소 닭 보듯이다. 위로 오를수록 기온은 떨어지는데 체온은 점점 상승하여 땀범벅이다. 고글도 김이 서려 뽀얘지면서 날씨처럼 흐릿하다. 배가 부르면 둔할 것 같아 먹지 않고 출발한 빈속의 허기가 식은땀으로 신호를 보낸다. 기어는 최고 저속모드이지만 체인은 이를 악물고 서로를 잡고 버티고 있다.
시속 6km가 되질 않는다. 바다미도 힘이 드는지 연신 앞다리를 들어 올린다. 커브 길에 설치된 자동 제설제 살포기를 보면서 앞에 서 있다간 순식간에 염장처리 되겠다는 웃긴 생각을 해도 헉헉 소리만 자꾸 나온다. 힘든 오르막 라이더를 위한 강풍 발사기는 없나?
결국 내려서 끌바를 한다. 온 몸이 방망이찜질을 한듯 여기저기 아우성이다. 도로 갓길의 배수로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울리고 있다. 참나무통에서 흐르는 소린지 밤 중 아낙네의 목간소리인지 은은하게 들려온다. 내리막인 듯하여 올랐으나 페달링을 안 하면 나가질 않는다. 제주의 도깨비 길을 여기까지 수출했나? 그래도 바다미가 먹구름을 후하고 불어 버렸는지 하늘은 파란 얼굴을 내밀고 있다.
흐느적거렸다가 내려서 끌었다가 쉬었다가… 그래도 터널의 끝은 분명히 있기 마련,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국도 1호선 최고지점으로 해발 874m란다. 일본에서 최고 높은 도쿄의 스카이트리도 634m밖에 안되는데…. 12km를 오르는데 2시간50분이 걸렸다. 이 정도면 거의 걷는 수준이다. 이 길은 자전거 길이 아니라 악마가 만든 고행의 가시덤불이다.

아타미로 해안 따라 편하게 가느냐, 하코네 고개를 넘느냐 주저하다 그대로 직진이다!
해발 846m의 하코네 고개 정상. 대관령(832m)과 비슷한 까마득한 높이다
하코네 정상부에는 화구호인 아시노코가 있다
등롱이 정겹고 갓길까지 넓은 구간

 

드디어 후지산 바로 옆
얕은 내리막 뒤에 산정호수인 아시노호가 보이며 원 하코네항에는 해적선이 접안하고 있다. 등에 붙어버린 뱃가죽을 움켜쥐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려는데 미치노에키(도로휴게소)가 2km 남았단다. 복잡한 관광지 삭당보다는 푹 쉴 수 있는 휴게소로 향한다. 그런데 아뿔사, 휴게소가 리뉴얼 공사중이다. 그냥 어린애처럼 울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비상식량도 뜨거운 물이 있어야 하는데 자판기만 멀뚱히 서 있다. 아이스크림 3개를 자판기에서 빼서 껍질째 삼킬 듯이 먹어 치웠다. 그러고는 뜨거운 카카오 캔을 꿀꺽 꿀꺽 들이켰다. 아마 뱃속에선 전쟁이라도 난줄 알았을 것이다.
다시 1km 가량 오르막을 올라가니 시야가 확 트이는 높이 846m의 하코네 고개가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시즈오카현의 미시마(三島) 시가 시작된다. 하코다테처럼 멀리 바다 연안에 집들이 옹기종기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타미(熱海)의 온천에 못 간 것이 아쉬웠지만 이즈반도의 북쪽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인 하코네 고개에서 흘린 땀은 오랫동안 가슴을 비롯한 몸 전체가 기억하고 있으리라.
맑은 날씨지만 긴 내리막 라이딩을 위해 우의를 단단히 걸쳤다. 내리막은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져 바다를 향하고 있다. 핸들에 매달린 가방 때문에 앞 흔들림이 심하다. 역시 앞 포크에도 캐리어를 달아 무게중심을 낮추는 게 안정적일 듯하다.
미시마시에서는 다시 1번 국도가 4차선으로 넓어지면서 평탄하게 달리고 있다. 특히 누마즈(沼津) 시는 1번 국도 옆으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별도로 마련되어 안전과 더불어 호젓함도 즐길 수 있다. 천연두를 앓았는지 군데군데 딤플 자국을 만나기도 했지만….
후지(富士) 시에 들어섰다. 과연 오른쪽에 꽉 찬 후지산(3776m)이 보인다. 아니 바로 옆에 성큼 서있다. 하지만 이내 구름속에 자취를 감춘다. 오늘은 신후지역 앞 토요코 호텔에 여장을 푼다. 내일은 후지산을 볼 수 있을려나.

하코네 고개 직전 국도 1호선 최고지점인 874m의 고개를 넘는다

 

3일차  3월 17일
마이바라~교토
후지산을 뒤에 두고
어제 구름속에 숨은 후지산 모습을 아쉬워하자 다음날 일기예보가 비라면서 호텔 프론트 아가씨가 엄청 미안해했다. 사실 자기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영역인데 미안해하기까지 하다니…. 포기하고 푹 자고 커튼을 제치니 이럴수가! 파란 하늘에 햇볕이 쏟아지고 있다.
호텔의 뷔페 조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느라 8시가 되어서야 출발이다. 가다 서다 연속이다. 흰 목도리에 구름모자를 걸친 후지산이 계속 돌아서 가는 우리를 붙잡기 때문이다. 여기쯤이 좋을 듯, 또 여기가…. 3년 전 후지산 정상에 올랐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우람함을 느껴 보진 못했다. 그땐 늦은 오후에 산 중간쯤에 도착해서 밤새 올라 새벽 일출을 보고 부랴부랴 내려와서는 도쿄 가는 버스에서 잠들어 버렸으니.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본  셈이다. 아니 후지산엔 나무도 없으니 그냥 화산모래만 보고 왔다고나 할까. 아무튼 길 떠나는 손주에게 손을 흔들듯 후지산은 등뒤에서 한참을 길게 드리우고 있다.

후지시 후지가와에서 바라본 후지산. 둥근 버섯구름을 머리에 이고 눈을 덮어쓴 모습이 경외스럽다
졸업여행으로 교토에서 도쿄까지 자전거 여행중인 고교생들
후지산을 등지고 바닷가를 따라가다 유이(由比)에서 반가운 자전거여행자를 만났다

 

교토~도쿄 간 자전거여행 중인 고등학생들
해안 쪽에는 토메이 고속도로가, 내륙으로는 다시 신토메이 고속도로가 생겼지만 1번 국도도 4차선으로 확장되어 대부분이 자동차전용도로로 변모했다. 도심을 벗어나면 자전거와 우마차는 진입을 거부한다. 길은 원래 주인이 없어 가는 사람이 주인일진대. 어쩔 수 없이 자전거는 옛 국도 1호선을 보물찾기 하면서 지그재그로 나아가고 있다. 어차피 빨리 가려고 선택한 여정이 아니기에 이 또한 즐길 만하다.
옛길은 여기저기 동네를 흐르면서 호흡을 같이한다. 시미즈마을에서는 사쿠라 새우와 시라스의 철이다. 보리가 필 때 나는 우리네 보리새우처럼 벚꽃이 필 때 발간 새우가 맛이 있단다. 시라스는 벌써 어제 점심때 먹어 봤다. 멸치가 아닌 뽀두라치의 치어를 시라스라고 부른단다. 조그만 미술관 앞에 잠시 멈췄더니 동네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나보고 일본어를 잘 한다기에 “감사합니다”는 우리말 발음이 죽인다고 급 칭찬해줬다.
바닷가의 초등학교 교정은 어선이 놀이터다. 멀리 후지산을 보면서 야망을 키우겠지. 3일 전 교토를 출발한 고등학생들은 졸업여행으로 도쿄까지 가는 중이란다. 펑크 수리하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강변 둔치에는 야구 시합이 한판 붙었다. 방파제 겸 산책로에는 외발자전거 연습에 페달링이 현란하다. 단체 바이크족들이 우르릉 굉음을 쏟아내며 몰려간다. 저기서 반가운 동족, 자전거 여행자가 마주오며 손을 흔들며 미소를 날려준다.

시즈오카 초입의 시미즈(淸水) 지역은 분홍빛 보리새우로 유명하다
에도시대 도카이도를 지나던 나그네 모습의 인형
다리에는 자전거도로가 난간으로 안전하게 구분되어 있다
교토와 도쿄를 잇던 간선도로인 옛날 도카이도(東海道)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일본에는 외발자전거 인구가 꽤 많다

 

캄캄해져 도착한 하마마쓰 
통과하는데 1시간이나 걸릴 정도로 큰 시즈오카(靜岡) 시를 지나고 있다. 도시는 청소기를 돌린 듯 깔끔하지만 가로수 등 나무가 별로 없어 어째 삭막한 느낌이다. 또 길이 엉켜 엉거주춤이다. 이럴 땐 자전거 타고 가는 주민에게 물어 보는 게 상책이다. 옛 국도 1호선은 이제 갈기갈기 찢겨 지방도 몇번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조그만 팻말에 국도 1호선 표시가 되어 있고 군데군데 1호선보다 더 옛길인 토카이도선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점심을 먹고 달리는 중 먹구름이 몰려오며 후두둑 비가 쏟아진다. 우의를 걸친다. 갑옷을 두른 듯 든든하다. 불화살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라서 천천히 비를 즐기는데 아쉽게 30여분만에 상황 종료다.
카케가와 다리를 건너 멀리 오르막이 보인다. “까짓것” 하고 오르기 시작하는데 산 뒤쪽을 돌아서도 계속 오르막이다. 빙산이 무서운 건 안 보이는 게 더 커서 그렇듯이 이제 “어쭈” 소리가 나온다. 그래도 한적하고 촉촉한 오르막길의 땀흘림은 또 다른 개운함이다. 아무튼 다음 단계인 “아이고”의 곡소리가 없는 적당한 오름이었다.
신나는 내리막 산길을 내려오니 이번엔 바람이 마주한다. 아마 바다미가 왔다고 ‘맞바람’이란 친구가 마중을 나왔나보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꽃소식 바람치고는 쌀쌀하고 강하다. 오르면서 열렸던 온 몸의 땀구멍으로 바람이 숭숭함를 느낀다.
서쪽으로 지고 있는 해를 정면으로 보며 나고야를 향해 달린다. 오늘은 조금 무리해서라도 하마마쓰(浜松)까지는 가야한다. 121km를 달려 완전히 캄캄해진 7시경 하마마쓰의 메이지야 호텔 706호실에 안착했다.



4일차  3월 18일
하마마쓰~나고야 
TCD 동기가 기다리는 나고야 입성
아침 6시30분 호텔 1층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일본식 가정요리다. 와사비를 곁들인 낫또, 오메무시와 단무지 그리고 오이절임, 생계란, 미역 된장국에 흰밥, 손가락 두 개 정도 넓이의 딱딱한 김 4조각, 연어구이 한점 등이 딱 먹을 만큼 정갈하게 차려졌다. 자전거 캡을 쓴 여행자의 모습에 주방 아주머니는 야채샐러드와 카레도 가져다준다. 역시 옷차림이 컨셉이자 전략이다. 몸에 좋을 것 같아 우유 한잔, 시즈오카니까 전차 한잔, 생선 냄새 제거용으로 커피도. 나고야까지 120km는 달려야 하니 연료를 만땅으로 채웠다. 푹 쉬고 왕창 먹었는데 숙박료가 4800엔(약 4만8000원). 착한 가격이다.

하마마쓰의 하마나호(浜名湖). 속초 영랑호와 같은 거대한 바닷가 석호다

 

도쿄에서 350km 벗어나다
호텔을 나오니 파란 하늘과 신선한 공기가 반긴다. 257번 국도는 평탄하게 쭉 뻗어 있다.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마 어제 밤에 페이스 톡한 어머님의 기도와 바램 그대로인 듯.
다시 옛 국도 1호선이었던 317번 지방도를 따라 가면서 바다처럼 넓고 큰 하마나 호수의 하류 다리를 건넌다. 속초의 영랑호처럼 긴 여정을 끝낸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기 전에 숨고르기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미 녹아버려 불어난 뒷물이 앞물을 바다로 밀어내고 있다.
물결치는 기와를 머리에 인 일본식 옛 건물에 빨간 자동차들이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다. 고사이(湖西) 시의 소방서이다. 우리네 경주에선가 본 풍경이다. 조그만 포구에 배들도 한가로운 늦잠이다.
평탄하던 길이 각을 세운다. 등을 비추는 해와 힘이 들어가는 오르막 페달링은 금방 땀을 송글송글 만들고 있다. 시즈오카현을 벗어나 아이치현의 초입 정상까지 숨은 차오른다. 하지만 고개 이름도 현의 경계표시도 없다.
겨울은 벌써 아득한 전설이 된 듯 대지는 온통 파릇파릇이지만 몽둥이처럼 가지치기 당한 가로수는 많이 아파하고 있다. 제법 큰 도시 토요가와(豊川)에서 오랜만에 노면전차를 본다. 넓은 도로의 중앙을 오가는 전차는 언제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겹다. 비슷한 서울의 버스중앙차로는 왜 이런 정취가 싹 사라질까?
도쿄 니혼바시에서 300km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 미터기는 350여km를 나타내는데… 그럼 50여km만큼 지그재그 즉 갈지자로 살아왔단 것인가.
아이치현에 들어서고부터는 옛 국도 1호선이 4차선에 갓길도 있어 진도가 쑥쑥이다. 평지가 계속되어 어쩌다 만나는 완만한 오르막이 반가워지기도 한다. 도카이도의 37번째 역참이었던 후지가와노 슈쿠(宿) 휴게소는 도쿠가와가 태어난 오카자키(岡崎)의 동쪽 현관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점심을 먹으면서 들은 도카이도에 대한 할머니의 설명이 귀에 쏙 들어온다. 철길 건너 마을을 관통하는 도카이도 길을 찾아가 보았다. 마차가 오갈 수 있는 정도로 당시로서는 교토와 도쿄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였던 셈이다. 아직도 그 길이 남아 있다지만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우리네 자전거길 표시처럼 페인트로 선을 주욱 그어놓으면 어떨까?

 

국도 1호선 이정표. 도쿄 니혼바시에서 275.1km 지점이다
에도시대의 후지가와 슈쿠 일대의 지도
기와를 얹은 소방서
가혹한 가지치기로 몽둥이꼴이 된 가로수가 아파 보인다
오카자키의 후지가와노 슈쿠 휴게소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출생지’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아이치현에 들어서서 만난 후지가와노 슈쿠 휴게소의 옛길 안내도. 옛날 교토~도쿄 간 도카이도에는 53개의 역참이 있었는데 후지가와 슈쿠는 도쿄에서 37번째였다


나고야에서 반겨준 학우 
일본의 3대 도시인 나고야에 입성했다. 일본 전국시대를 이끈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3대 명장이 모두 이곳 나고야 인근 아이치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옛날부터 군수물자를 만드는 공업이 발달하여 도요타 자동차와 미쓰비씨 그룹도 여기에서 시작했단다.
TCD 3년 코스를 마치고 올해 졸업한 이곳 출신의 켄타 군을 만났다. 여행 전부터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 한 걸음에 달려와 호텔도 예약해 준다. 22살의 어린 나이지만 예의바르고 성실한 친구다. 특히 밤에도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컨셉으로 만든 그의 자전거는 졸업 최우수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나고야의 명물 테바사키라는 닭날개 튀김과 맥주는 치맥의 궁합과 비슷했다. 4월부터 교토에 있는 자전거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켄타 군을 위해 건배!

켄타 군은 4월부터 교토의 자전거회사에서 일한다니 다행이다
TCD 동기 켄타 군과 만나 나고야의 명물이라는 테바사키를 맛보았다. 닭날개 튀김에 맥주를 곁들이니 우리의 치맥과 비슷했다

 

5일차  3월 19일
나고야~마이바라
나고야성, 세키가하라 그리고 비와호
사람 인(人) 자가 서로를 의지하는 형상이듯이 우리네 인생살이도 사람들과의 관계의 연속일 것이다. 특히 혼자만의 여행길의 즐거움은 멋진 경치나 맛있는 음식보다 미지의 세계에서 만나는 사람간의 설레임이다. 어제 켄타 군을 만나 오랜만에 실컷 웃고 떠들었더니 입 근육뿐만 아니라 온 몸의 근육이 마사지를 받은 듯 부드럽게 토실해졌다.
이곳 나고야의 카나야마 프라자 호텔의 지배인도 내 여행길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어제 바다미를 밝은 로비에 정중하게 모시는 걸 보고 알아봤다. 오늘 일정에 대해 물어봤더니 구글 맵 몇장을 프린트해서 컬러펜으로 그려 가면서 설명해준다. 얼굴을 맛댄 모습이 같이 여행을 가는 듯하다. 향긋한 친절함이 오감을 통해 뇌로 전달된다.

일본의 3대 명성에 드는 나고야성


나고야성 입성
19번 8차선 넓은 대로를 5km 달려 나고야성에 도착했다. 갈 길 급한 나그네와 달리 500여년을 뿌리내린 성은 느긋하다. 8시30분경에 도착했는데 9시에 성문을 연단다. 휑하던 매표소 앞은 9시가 되니 관광버스에서 쏟아진 사람들로 붐빈다. 가이드가 있으니 편리하기도 하다. 나도 내 손안에 비서가 있지만 별로 친하지 않다.
그래도 이런 아날로그 덕분에 효고(兵庫)에서 2시간반 새벽운전을 한 엄마를 둔 타로짱과 친해지지 않았는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타로짱은 무척 밝고 명랑하다. 둘이서 시간 죽이기를 겸해 흉내내기 게임을 한참하고 나니 제법 친해졌다. 이렇게 내가 조금 망가지니 모두가 즐거워한다.
나고야성은 161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토 키요마사 등 12명의 다이묘를 동원해서 지은 평지형 성이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때 공습으로 파괴된 것을 1959년 재건했단다. 흐린 날씨의 회색 배경은 나고야성의 모습을 더욱 고즈넉하게 보여준다.

나고야성 천수각 처마끝을 장식하는 황금 물고기. 우리는 까치 꼬리 형태라고 해서 치미(雉尾)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화재예방을 기원하는 의미로 머리는 호랑이(또는 용) 몸통은 물고기 형상의 상상의 동물상(샤치)을 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대를 연 계기가 된 세키가하라 전투 현장. 들판 곳곳에 유적지가 남아 있다. 사진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최초 진지 입구
세키가하라 자전거여행 지도. 옛 전장을 돌아보는 11.5km 코스다
비와호 호반의 마이바라 렌탈 사이클 센터. 4월초 벚꽃 필 때 많은 라이더가 찾는다고

 

세키가하라를 넘어 
나고야를 벗어나니 도로는 22번 국도로 변하고 기요스, 이치노미야 등의 작은 도시를 지나고 있다. 시골 도시의 도로지만 넓게 잘 되어 있다. 보도와 차도 사이에도 별도의 소형전용 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1990년경 일본의 버블 경제기에 이른바 일본의 뉴딜정책이라 하여 온갖 도로를 만들었던 결과물이다. 덕분에 나와 바다미도 활개를 치면서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강이나 철로가 나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오버브릿지 입구에서 우리는 찬밥 신세로 전락한다. 별도의 길로 가란다. 나고야성을 100여리나 벗어났는데도 바다미와 나는 성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덕분에 허벅지의 근육은 더 탄탄해지고 동네 영감님들의 쉼터도 엿볼 수 있다. 거친 파도가 강한 사공을 만든다나? 그러다 죽은 사공도 여럿 있지만.
큰 강을 지나니 이름도 생소한 기후현 카사마쓰초(笠松町)가 반긴다. 가끔 언덕을 오르지만 오늘의 라이딩은 쾌속 질주다. 거기다 행여 봄볕에 얼굴이라도 그슬릴까 하늘은 잿빛 커튼을 둘렀다. 바다미가 손을 썼는지 바람도 등을 밀어준다.
라멘집에 들어가서 상의를 벗어 제치고 신발도 벗어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한다. 흑돈 돈코츠라멘과 밥을 주문했다. 테이블과 그릇 그리고 국물도 시커멓다. 시골 장터의 뚝배기 국밥 맛이다. 무제한 김치 서비스에 주인장이 천사로 보인다.
삼거리에서 21번 국도를 만났다. 오늘의 목적지 비와호(琵琶湖)로 가려면 무조건 자기만 따라 오란다. 그래, 나도 무개념으로 가기로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천하를 안겨준 그 유명한 세키가하라 격전지는 언덕을 한참 낑낑대야 볼 수 있다. 이곳 저곳 격전지 간판이 보이고 자전거로 둘러볼 수도 있다는데 손사래를 친다. 저들끼리 싸움박질 한 것에 더 이상 관심 둘 시간이 없다.

나고야성 개장을 기다리며 친해진 타로짱
처음 보면 바다로 착각하게 될 정도로 광활한 비와호. 둘레가 200km나 된다
도치기현에서 와서 막 비와호 라이딩을 마친 학생들과

 


둘레 200km의 비와호 
세키가하라 언덕을 기분 좋게 내려오니 시가현의 푯말이 반긴다. 이쯤되면 슬슬 호수가 있는 평지나 습지가 보여야 되는데 계속 오르막 내리막 산길이다. 21번 국도 몰래 주유소에 가서 길을 묻는다. 그냥 21번 시키는 대로 하란다.
드디어 비와호에 도착했다. 우리네 발음으로 비파호수. 모르고 왔으면 바다로 판단해야 정상인 취급을 받을 것이다. 둘레가 200km라니. 제주도 환상자전거길이 230여km니까 이만 하면 바다가 맞지 않을까. 호수 물을 찍어 맛보려다 그만둔다. 그래도 깊은 용궁에서 유혹의 비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마이바라(米原) 시에 여장을 풀고 역 주변의 랜탈 사이클 센터를 찾았다. 4월초 벚꽃 필 때 전국의 사이클리스트들이 가장 많이 모인단다. 도치기현에서 신칸센을 타고 와서 막 라이딩을 마친 일본학생들에게 시마나미카이도(島波海道)를 알려주고 자전거 예찬론을 강의했다. 그 즐겁고 재미있는 분위기를 사진에 담았다. 

 


김태진(한국산악자전거협회회장)  bicycle_lif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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