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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경순왕릉 ~ 군남댐 임진강변길곳곳에 전쟁의 상처, 그러나 물은 맑고 자연은 웅장하다

연천 경순왕릉 ~ 군남댐 임진강변길 35km 
곳곳에 전쟁의 상처, 그러나 물은 맑고 자연은 웅장하다


DMZ를 지척에 둔 강줄기는 이름만으로도 긴장감과 통한의 정서가 느껴진다. 임진강, 그중에서도 DMZ를 뚫고온 물줄기가 바다를 향해 서향하는 연천 즈음이 가장 극적이다. 강변의 산이란 산에는 군부대가 진을 치고 있고 1500년 전부터 누적된 전쟁의 상흔은 곳곳에 선명하다. 연천군이 조성한 평화누리 자전거길은 파주경계 장남교에서 철원경계 대광리까지 74.2km 이어지지만 여기서는 임진강을 따라 경순왕릉에서 군남댐까지 35km를 달린다

장남면과 백학면의 경계를 이루며 휴전선을 관통해 흘러온 사미천 둑길. 나무 그늘막 저편으로 파주 감악산이 우뚝하다

 

인간의 힘으로 기껏 경계를 지을 수 있는 것은 결국 두 발을 디딘 대지뿐이다. 하늘과 바다에도 경계선이 있다지만 그 허망한 추상의 선을 무심히 넘나드는 바람과 물길을 무슨 수로 밀봉할 것인가.
최북단의 강, 임진강 변에 서면 강도, 사람도 옹색하고 소심해진다. 임진강 하면 DMZ를 지척에 둔 접경의 강, 긴장의 강으로 생각한다. 임진강 자체가 DMZ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때는 강 일대가 군사지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상당 부분이 개방되었지만 254km의 기나긴 강줄기는 함경남도 마식령산맥에서 발원해 북한땅을 흐르는 구간이 2/3나 된다. 우리가 보는 임진강은 북한의 그 헐벗은 산야를 겨우 적시고 남은 물이 DMZ를 숨죽이며 지나 온, 기적 같은 생존의 모습이다. 물줄기에마저 스며 있는 그 고달픔이 보는 이의 심사를 불편하게 한다. 임진강변에서 진정으로 평화롭거나 한가로울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강변에 숱한 전흔(戰痕)도 마음에 물결을 일으킨다.

이 긴장과 애환의 물줄기를 따라 연천군이 조성한 평화누리 자전거길이 이어진다. 자전거길은 남쪽의 파주경계에서 북단의 철원경계까지 74.2km나 되지만 마음을 홀리는 구간은 임진강 강변길로 장남교에서 군남댐까지 30여km이다. 

삼국의 쟁패지
이 임진강 라인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공취하기 위해 다투던 전선이었다. 고구려는 이 강을 넘어 더 남쪽으로 전진하기 위한 남진정책의 프론티어였고, 백제는 그런 고구려의 압박을 막아내야 하는 필사의 저지선이었으며, 신라는 두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강줄기를 확보해 중원의 대국와 동맹을 맺어야 하는 생명선이었다.
지금도 강변에는 당시의 성곽과 고분 등이 다수 남아 있는데 대체로 고구려 계통이 많다. 삼국시대에 임진강은 칠중하(七重河)였고, 고구려 칠중현의 치소인 칠중성은 지금도 파주 적성면에 남아 있다. 칠중성은 신라가 고구려에 크게 이겨 빼앗은 뒤 당의 힘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킨 후 자신까지 넘보는 당과 결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신라는 여기서는 대패했지만 매초성(전곡읍 대전리산성)에서 크게 이겨 당을 몰아내고 진정한 삼국통일을 완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운을 품고 있는 강은 인간들의 다툼이 싫은지 계속 땅 속으로 파고들어 강변은 내내 절벽이다. 임진강(臨津江)이란 이름부터 그렇다. 옛날에는 ‘더덜나루’ ‘더덜매’라고 했다는데 ‘더덜’이 언덕을 뜻하고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다는 뜻으로 임할 임(臨) 자를 쓴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언덕 아래로 흐르는 강이다.
연천의 임진강 일원은 제주도, 울릉도, 함경북도 칠보산에 필적하는 용암지대로, 오래전 한반도 중심부를 뚫고 나온 용암이 꾸역꾸역 뒤덮어 만들어진 화산지형이다. 당시의 화구는 북측 철원평야에 남아 있다. 다만 한라산이나 울릉도 성인봉과 달리 높은 화산이 아니라 평원에서 폭발해 미국 옐로스톤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주변 대지와 비슷한 높이로 도도하게 흐르는 다른 강들과는 지형과 지질이 완연히 다르다.
코스는 장남면 원당리 장남교에서 시작되지만 살짝 하류로 더 내려가 경순왕릉에서 출발해 상류 방면으로 갈 것이다.   

1000년 왕국 신라 최후의 왕 경순왕은 왕건에 항복해 개성에 살다 죽었다. 시신을 경주로 운구하는 도중 왕건이 제지해 고랑포리 산언덕에 묻혔다. 뒤쪽 능선이 바로 DMZ 남방한계선을 이로는 최전방이다
마의태자 영단에서 바라본 호로고루성과 임진강 그리고 파주 파평산(496m)
역사적으로는 고조선시대와 겹치는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유적인 고인돌. 백학면 학곡리마을 한가운데 있다. 현무암으로 만든 덮개돌은 접시처럼 가운데가 패여 있고 받침돌이 훌쩍 높은 전형적인 북방식(탁자식)이다
학곡리 마을 동단에 있는 적석총. 길이 25m, 폭 5m 정도의 긴 형태로 낙랑계 유물이 출토되어 초기 백제계 무덤으로 추정된다

 

신라 최후의 왕이 왜 이곳에 
장남교에서 고랑포리 방면으로 4km 정도 가면 경순왕릉 입구가 나온다. 나라를 들어 왕건에 항복한 신라 최후의 왕, 경순왕(재위 927~935)의 무덤이 여기 강변 언덕에서 남향하고 있다. 무덤마저 고향 경주를 그리워하는 모양새인데 임진강조차 건너지 못했으니 참으로 아득한 고향길이다. 경순왕은 왕건에게 항복한 후 개경에서 살다가 죽는다. 그의 무덤만은 고향에 쓰기 위해 경주로 운구하는데 급하게 개경에서 달려온 군사들이 제지해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고 이곳에 안장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경순왕의 유해가 경주로 운구되면 지역 민심을 자극할까 두려워한 왕건이 제지한 것이다. 이미 몰락한 왕국이고 견훤이 허수아비처럼 세운 것이 경순왕인데 포용과 관용의 왕건답지 않다. 왕릉이 있는 바로 뒤 능선이 DMZ 남방한계선이서 절묘한 운명적 입지에 회한이 더한다.
경순왕릉에서 임진강을 따라 1km쯤 가면 왼쪽 산중턱에 경순왕의 장남으로 투항을 극구 반대했던 마의태자 영단(靈壇)이 있다. 마의태자는 강원도 인제와 설악산 일원에서 부흥운동을 주도하다 좌절, 금강산에 들어가 생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무덤은 금강산 비로봉 옆에 있다고 하지만 전설일 뿐, 그의 최후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후손인 경주김씨 종중에서 영령을 모시는 영단을 경순왕릉 인근에 만들고 제사를 모신다. 마의태자의 본명이 김일(金鎰)이라는 것을 영단 비를 통해 처음 알았다. 본명과 영단을 보니 전설속에 실체가 묘연한 마의태자가 아니라 역사에 실존한 인물로 성큼 다가온다.
마의태자 영단 맞은편 강변 언덕에 우뚝한 성벽은 고구려의 전초기지였던 호로고루성이다. 10m 정도의 강변 절벽을 자연 성벽으로 활용해 방어력을 극대화한 구조다. 이런 강변 성곽은 임진강과 한탄강변에 여럿 분포한다. 용암지대의 하안단구는 최소한의 축성으로 방어능력을 확보할 수 있어 천혜의 성곽입지를 이루기 때문이다. 6·25 때도 이 일대 고랑포는 대전투가 벌어진 격전지였다. 태생적으로 임진강은 전선이 될 운명을 타고난 것만 같다. 

경순왕릉 인근에 후손들이 조성한 마의태자 김일(金鎰) 영단. 무덤을 실전해 영단에서 대신 제사를 모신다
장남면 원당리에는 잔디를 가꾸는 밭이 초원처럼 질펀하다

 

돌무덤 지나 숭의전 가는 길 
장남교부터는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알리는 파란 실선이 바닥에 표시되어 있다. 내륙으로 잠시 우회해 지류인 사미천 제방길을 거쳐 백학면으로 접어든다. 
강변 나지막한 언덕에 촌가가 도란도란 모여 있는 학곡리는 마을 안길을 천천히 걷고 싶게 만들 만큼 정겹다. 구멍이 숭숭한 현무암으로 만든 고인돌이 이 땅의 장구한 유래를 말해준다. 마을을 벗어나면 백제 계통의 장방형 적석총도 남아 있어 마을에 얽힌 심상치 않은 배경에 매혹된다. 수양버들이 춤추고 강물은 유유하며 하안단구는 구릉으로 낮아져 어느 곳보다 안온한 전원풍경이다. 건너편으로는 일대에서 가장 높은 파주 감악산(675m)의 준봉이 내내 올려다보인다.
강변을 살짝 벗어나 작은 고개를 넘으면 미산면으로 접어들면서 곧 절벽 위 고목 숲에 그윽하게 자리 잡은 숭의전(崇義殿)이 나온다. 1397년 조선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고려 태조 왕건과 7왕, 정몽주를 비롯한 고려 충신 15명을 제사지내기 위해 세워졌다. 역성혁명으로 고려를 뒤엎은 이성계는 주군을 배신했다는 점에서 내심 미안하고 불편했을 것이다. 한때 자신이 봉사한 고려왕조의 제사를 유지하게 한 것은 속죄감 때문 아니었을까. 후삼국시대에는 개성에 살던 왕건이 발밑의 강을 통해 궁예를 만나기 위해 철원을 오갔다고 한다. 전각을 둘러싼 고목이 울창하고 산책로도 멋지다.
마전리 삼화교 옆에는 호로고루성보다 더 큰 당포성이 우뚝하다. 성채의 규모의 방향에서 고구려의 강력한 남진의지가 느껴진다. 당포성을 조금 지난 산자락에는 아주 특별한 유적이 전한다. 바로 6·25 당시 유엔군화장장시설이다. 1952년 건립되었다니 휴전선을 두고 교착상태에서 전투를 벌이던 때다.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참전한 16개국 유엔군 전사자는 이곳에서 화장되어 부산유엔묘지나 본국으로 이송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해외 참전용사들의 영령에 깊이 머리를 숙인다. 길에서 100여m 들어가야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꼭 찾아보고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 곳이다.       
      

장대한 주상절리의 웅자 
동이리에서 다시 강변으로 나서면 37번 국도 동이대교 아래 펼쳐진 주상절리의 장관을 만난다. 높이 40m 남짓한 수직절벽은 제주도에서나 보던 용암 주상절리로, 장장 3km나 병풍처럼 이어져 있어 눈이 번쩍 뜨이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높고 아름다운 동이대교까지 어우러져 실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경관이다.
강을 따라 절벽 아래로 ‘동이리주상절리 코스모스길’이란 걷기 코스가 나 있는데 MTB라면 라이딩도 어렵지 않다. 이 주상절리 절벽길은 이번 코스에서 단연 백미다. 
우정리의 편안한 둑길을 한참 달려 왕징면소재지 직전에서 임진교를 건너면 군남면이다. 이제는 강변절벽이 사라진 대신 홍수를 막기 위해 기나긴 제방이 뻗어난다. 북삼교 근처는 대규모 부지조성공사가 한창이다. 북삼교 아래를 통과하면 목적지 군남댐까지는 둔치 자전거길이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군남댐은 국내에서 최초로 건설된 홍수조절전용 단일목적댐으로 2011년 완공되었다. 길이 658m, 높이 26m 규모. 2009년 북한쪽 황강댐의 사전통보 없는 무단방류로 우리 국민 6명이 사망하자 예정보다 앞당겨 건설되었다. 임진강 유역의 홍수예방도 있지만 북한 황강댐에 대응하는 전략적 목적도 크다. 북한 금강산댐에 대응한 평화의 댐과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임진강 기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특하고 웅장한 자연경관 속에 전쟁과 죽음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다시는 이 아름다운 강에 피가 흘러들지 말아야 할텐데 싶다가도 DMZ와 근접 평행선을 그리는 입지는 불안을 드리운다. 

미산면 아미리 강변 절벽에 자리한 숭의전은 왕건과 고려왕 7위, 정몽주 등 고려 충신 15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미산면 동이리에 있는 6·25 당시의 유엔군화장장시설. 16개국 유엔군 전사자는 이곳에서 화장되어 부산 유엔묘지나 본국으로 이송되었을 것이다. 길에서 100여m 들어가야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꼭 찾아보고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 곳이다
동이대교 아래에 3km나 길게 펼쳐진 주상절리. 맞은편 절벽 아래 소로를 따라가며 내내 마주할 수 있다. 이번 코스에서 단연 백미
저 앞으로 군남댐을 향해 산뜻하게 뻗어나는 자전거길. 군남댐은 북한측 황강댐 방류에 대응한 전략적 목적이 크다

 

 

여행Tip
편도 35km 정도지만 코스의 기복이 다소 있고 주변에 볼거리가 많아 완주에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순환코스가 아니어서 장남교로 돌아올 경우 군남면 진상리에서 372번 지방도를 이용하면 거리와 시간을 다소 줄일 수 있다(군남댐에서 경순왕릉까지 약 30km). 백학면 노곡리 비룡대교 북단의 대교설렁탕(031-835-2524), 왕징면사무소 인근의 황해냉면(031-833-7470)을 추천한다.

 


김병훈 발행인  soolme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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