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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곳마다 귀인이 도와주시누나~
교토~오사카~고베 거쳐 히메지성 입성

히메지성 수문장과 함께. 어딘가 어리숙한 모습이 동네 아저씨의 잠깐 알바인 모양이다

 

6일차 3월 20일 
비와호 ~ 교토

비와호에 홀리다
어제 오후 늦게 도착한, 회색 하늘을 이고 있는 비와호의 모습이 부엌에서 군불을 때다가 나온 수더분한 시골 아낙네였다면 쾌청한 날씨의 오늘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모습이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한폭의 동양화이다. 파도에 쓸려 뒹굴고 있는 나무 등걸마저도 예쁘게 보인다. 어제 밤부터 비와호 라이딩 생각에 제 정신이 아니니 눈인들 멀지 않겠는가! 하긴 출발 전부터 가슴에 꼭 품고 있지 않았던가!
2번 지방도를 따라 가다가 히코네시(彦根市)부터 25번 지방도를 따라 본격적인 호반 라이딩이 시작된다. 길은 호수의 연안을 따라 잔잔한 수면처럼 미끄러지듯이 나아간다. 차도를 벗어나 동네 좁은 길을 거치기도 하고 고약한 주인의 담벼락을 만나면 다시 차도와 합류하여 자전거로로 달린다. 호수와 좀 더 가까이 가려고 오른쪽 길을 택했다. 마치 누가 뒤에서 밀어 주듯이 살랑살랑한 페달링이지만 가다서기를 반복한다. 호기심 많은 어린 학생 때문에 좀처럼 수업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처럼 모든 풍경과 분위기를 휴대폰과 마음에 담고 싶은 욕심꾸러기가 여기 또 한명 있다.

도중에 청소년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면 더욱 반갑고 참 대견스럽다. 국내에서도 이런 친구들을 많이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비와호를 건너는 비와호대교. 건너편으로 눈을 인 고봉은 비와호 전망 케이블카가 있는 호수라이산(蓬萊山, 1174m)

 

비와호 사람들
대동강물이 봉이 김선달 한사람만 먹여 살리지 않듯이 비와호는 많은 이들에게 삶 그 자체이다. 우선 풍부한 물과 비옥한 토지로 언제나 풍년이다. 호수 여기저기에 정치망 등 그물이 쳐져있는 걸로 봐서 어부사시사를 부르는 이들도 많을 듯하다. 비와호에서 발원해 오사카 앞바다로 이어지는 요도가와(淀川) 강을 거슬러 숭어 떼까지 올라온단다.
점점이 떠 있는 섬 중에 사람이 살고 있는 큰 섬도 있단다. 섬섬억수? 섬나라속의 섬에서 억수로 수고하는 사람들이리라. 이렇게 주섬주섬 읊어대고 있다. 지명에 나루 진(津) 자가 많이 보인다. 크루저선은 중국 단체 관광객을 태우고 항해한다.
평일인데도 철시처럼 시장이 열렸다. 엄연한 일본 땅에 미국 성조기가 휘날리는 마이애미라는 이름의 오토캠핑장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한국의 부곡 하와이인가? 안타깝게도 부곡 하와이는 문을 닫고 말았다는데….
25번 지방도는 해수욕장이 있는 리조트를 지나 호젓한 산길을 오른다. 좁고 한적한 길은 중앙차선조차 없다. 선이 없으니 탈선할 염려가 없는 자유자재의 융통성이 발휘되리라.
처음 상상한 호반길은 절벽 밑에 교각을 심어 데크를 설치한, 그래서 친절한 너무나 친절한 우리네 강변의 자전거길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있는 그대로의 지형을 최대한 살린다. 한마디로 쓸데없는데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나무가 쓰러지면 쓰러진대로 해송 방풍림의 죽은 덩걸도 나뒹굴고 자전거도로 바닥의 코스 안내용 청색 화살표도 뛰엄뛰엄이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도 추억 만들기 러브호텔도 없고 편의점도 사막의 오아시스다. 이게 호수에 대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또 다른 묘미는 소박하고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시골 동네 풍경이다. 사람들은 나무로 지은 집과 풀로 엮은 다다미에서 자고, 정원에는 살아 있는 나무들이 가득하다. 삐거덕 나무 대문이 열리면서 한 여인이 강아지와 함께 나온다. 교토까지 거리가 얼만지 물어본다. “30키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50키로? 60키로?” 자꾸 멀어진다. 얼른 손을 흔들고 페달을 밟는다.

거대한 유람선은 중국 단체 여행객이 단골 손님이다
비와호 호반의 닻 구조물 앞에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길 
그렇게 55km를 달려 비와호 라이딩의 시발점인 모리야마시(守山市)에 도착했다. 먼저 유명한 여성 사이클리스트상에서 포즈를 취했다. 동상의 자세를 따라 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불가능. 다리 대신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실감한다.
시마나미카이도와 더불어 이곳이 사이클 성지로 알려진 것은 오래되진 않았다. 2016년 자이언트(GIANT)의 킹류(유금표) 회장이 이곳에 와서 많은 사이클리스트와 라이딩을 한 후 제안을 했단다. 그 후 2017년 4월 16일 미야모토 시장이 이 동상을 세우고 자전거길도 조성하게 되었다. 역시 킹류 회장은 존경할만한 인물이다. 고령임에도 자신이 직접 자전거를 타면서 자전거의 매력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외국인의 제안을 성큼 받아들이고 그 내력을 그대로 기록한 일본인도 대단하다.
역시 이곳의 랜드마크는 비와호대교일 것이다. 모리야마시와 오쓰시(大津市)를 연결하는 이 다리는 길이 1400m로서 1964년에 준공했고 그후 1994년에 쌍둥이 다리를 증설했다. 자동차는 통행료를 내야하는 유료대교지만 자전거에게는 무지개처럼 볼록한 5% 구배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땀으로 대신 내면 된다. 다리의 전망대에서 만난 70세의 동네 형님과 함께 아리랑 한곡을 열창했다.
다리를 내려오면 오쓰에서는 558번 지방도가 교토로 간다고 외쳐된다. 이 길 역시 자전거도로의 일부지만 호반에는 건물이 줄줄이 이어져 간간이 호수를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륙방면인 오른쪽에서 합류하는 길들은 모두 T자형으로 만나 좌측통행 하는 나는 교차로에서도 자연스럽게 프리패스다.
하마오쓰항에서 비와호와 눈물의 이별을 하고는 161번 지방도를 따라 고개를 오른다. 교토 16km라는 간판이 참 고맙다. 하지만 제법 가파른 고개가 씩씩대게 만든다. 하기야 이 길이 어떤 길인가. 교토! 비록 옛날얘기지만 수도가 아닌가! 수도는 항상 ‘상경(上京)’이라 하여 올라가는 길이다.
고개를 내려오니 1번 국도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환하게 웃고 있다. 편의점 휴게실에서 발을 의자에 걸치고는 비와호 사진의 카톡 자랑질을 한참 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다시 고개를 올라 터널을 지나서야 진짜 교토였던 것이다. 교토 관문에는 큰 솟을 대문도,  “반갑습니다. 천년고도 교토입니다” 같은 간판도 없다. 뭐야 이건? 오든지 가든지 상관없다는 무관심에 괜히 불청객으로 찾아드는 느낌이다.

비와호 일주 자전거 코스 안내도. 일주거리는 192km이며 중요 포인트가 표시되어 있다

 

호반을 벗어난 숲길도 나온다
성조기가 휘날리는 ‘마이애미’ 캠핑장. 일본인의 미국 동경은 일상이다

 

7일차 3월 21일
교토
천황은 장기 출장 중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이 있겠지만 잠자리, 즉 숙소도 중요하다. 처음에는 무슨 로맨티스트라고 노숙도 하곤 했지만 지금 휴대하고 있는 텐트와 침낭, 매트리스는 비상용일 뿐이다. 어제 묵은 교토역 근처의 일본식 료칸은 가격도 착하고 기분도 좋은 집이었다. 숙박비 4000엔, 관광진흥비 200엔 그리고 아침밥 500엔 해서 4700엔이다. 화장실, 욕탕, 세면대가 공용이지만 바로 옆에 있고 깔끔하다.
객실명이 ‘오동나무 동자’인 내 방에 들어서니 깔끔한 다다미 바닥 위에 폭신한 침구와 금방 다림질한 유카타가 놓여 있다. 앉은뱅이 탁자에는 과자 2점과 따뜻한 물이 담겨 있는 보온병, 다기가 준비되어 있다.
목욕 후 외출하기 위해 현관으로 향한다. 기모노로 단장한 여인이 신발을 대령한다. 가까운 식당가에서 5종류 꼬치와 우롱차 한잔으로 저녁을 하고 료칸에 들어 캔맥주 자판기를 찾았더니 예의 그 여인이 쟁반에 캔맥주와 유리컵을 올려 건네준다.
푹 자고 일어난 오늘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내선전화가 왔다. 김과 계란말이 그리고 두부무찌개와 짠지 등의 밥상이 차려져 있다. 자리에 앉으니 된장국을 떠와서 무릎을 꿇고 다소곳이 올린다. 휴… 잠시 금숙이를 잊어버릴 뻔 했다.


흐린 날이 더 좋은 교토
밤부터 시작된 비는 아직도 가늘게 뿌리고 있다. 가라는 가랑비인지 있으라는 이슬비인지? 아무튼 오늘도 날씨는 딱이다. 오래된 도시의 산책에는 흐리거나 비가 오면 한층 분위기가 나기 마련이다. 료칸에서 교토의 메인거리 중 하나인 토리가와대로를 북쪽으로 쭉 따라가다 왼쪽으로 꺾어 돌면 10km 거리에 유명한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가 나온다. 이른 아침인데도 관광객이 넘쳐난다. 입장권이 개운초복(開運招福), 가내안전의 부적이다. 400엔에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면 이거야 말로 로또다. 굿 아이디어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금각 사리전이 물위에 반짝거린다. 바위와 소나무, 연못으로 무릉도원을 꿈꾸는 중국식 축산산수(築山山水)식 정원양식이다. 또한 극락정토를 이루려는 부처님의 마음일 것이다. 화려한 금박의 외관보다는 안에 모셔진 사리가 진짜 보물일 것이다. 개 목줄 같은 금목걸이에 수갑 같은 금팔찌로 치장한 겉모습보다는 가슴속의 인품이 중요하듯 말이다.
살짝 장난기가 동한다. 근데 왜 1층에는 금박을 하지 않았을까? 이 건물을 짓던 쇼군이 급사하여 후원금이 모자랐던 건 아닐까? 


금각사 vs 은각사 
올림픽에 금메달이 있으면 당근 은메달도 있다. 하여 이번에는 동쪽을 향해 은각사(銀閣寺, 긴카쿠지)로 달린다. 교토의 큰 도로는 바둑판처럼 잘 정리되어 있어 편리하다. 길거리에는 곱게 기모노를 차려 입은 여인들이 많이 보인다. 아장아장 걷는 전통 일본 아지매, 졸업을 맞은 신나는 학생, 성큼성큼 걷는 외국인 등 기모노는 이렇게 옷 색깔만큼 걸음걸이도 다양하다. 아마 그중 게이샤 미치코도 섞여 있을 것이다.
은각사로 오르는 오른쪽에 교토대학이 보인다. 일본의 최고 명문 도쿄대와 쌍벽을 이루는, 그래서 간사이(關西)의 수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은각사 가는 좁은 도로 옆에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부처님은 이렇게 댜양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신다. 실제로 일본은 절 안에서 술도 팔고 고기까지 굽는 곳이 일반적이다. 향불 향기와 돈 냄새가 섞여 야리꾸리하다.
냄비뚜껑만한 둥근 자갈이 박힌 도로는 빗물에 씻겨 더욱 윤기가 흐른다. 금각사를 보고 만든 은각사라 그런지 부적 입장권에 빌어주는 단어도 똑같다. 다만 크기가 조금 작을 뿐이다. 자전거 바퀴(은륜)처럼 반짝일 줄 알았던 은각 보살전은 짙은 갈색의 우중충한 모습이다. 연못에 비친 달빛 풍경이 은빛이란다. 그리 치면 경포호 술잔도 모두 실버라이트?
은모래를 동원해 갈퀴로 부드러운 물결무늬를 표현하는 일본 전통의 고산수(枯山水) 정원이 독특하다. 특히 경내의 정원 지표면 전체를 파란 이끼로 덮어 연못과 물소리 들리는 좁은 도랑과 함께 절의 고색창연함을 더해준다. 


특별공개된 왕궁 
교토의 상징이자 중심에 있는 교토 고쇼(御所)에는 마침 오늘까지 특별 공개를 하고 있었다. 가마쿠라 막부에서 시작되어 550여년 동안 천황의 즉위식이 열렸고 천황이 거주한 곳이다. 총 3만5000여평의 부지에 고래등 같은 건물들이 용도별로 배치되어 있고 역사적 사진이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월을 함께한 정원의 나무들은 역사의 산증인들이다. 특히 올해 5월에는 아키히토 천황이 퇴임해 일본인들의 관심도 높다.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에 의해 일본의 수도가 도쿄로 정해졌지만 교토 사람들은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단다. 그동안 공식 천도령이 내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도쿄 고쇼는 지방의 행궁에 불과하고 이곳이 본궁이라는 얘기다. 즉 천황은 메이지유신으로 150여년 전에 도쿄로 출장을 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교토의 대표적인 건물인 금각사 사리전. 물에 비쳐 환상적인 멋을 더해준다
모처럼 개방된 교토 고쇼. 건물의 웅장미가 대단하다
은각사 주변 개울가에 나 있는 ‘철학의 길’

 

8일차 3월 22일
교토 ~ 오사카
나만을 위해 문을 열어준 자전거 박물관
교토에서 오사카까지는 50여km의 짧은 거리다. 왕복 4차선의 1번 국도는 보도가 나 있고 갓길도 확보되어 있다. 자를 대고 쑤욱 긋고 바리캉으로 쭈욱 밀어 놓은 듯 똑바로 난 평탄한 길이다. 어쩌다 만나는 얕은 오르막은 허리를 굽히면서 상체를 당겨 몇번 영차하면 어느새 페달이 가벼워진다. 그러고는 긴 내리막이 시원하게 이어진다.
물기를 살짝 머금은 코발트빛 아스팔트를 밟는 바다미는 차르르 하면서 즐거워한다. 교토와 오사카의 경계인 키즈(木津) 강을 건넌다. 나가오 고개를 내려오는데 왼쪽 저 멀리 일본의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인다. 오사카에 국회의사당이라니… 궁금해서 경로를 벗어나 건물을 찾아 오른다. 테트리스처럼 꾸불꾸불한 지붕의 건물은 오사카공업대학이다.
오사카에 진입하면서 먼저 오사카성을 찾았다. 28년 전 4월의 벚꽃 날리는 오사카성에서 처음으로 일본의 향기를 느꼈었지…. 역시 그때의 느낌처럼 넓은 해자를 방석으로 깔고 우뚝 솟은 모습이란! 깎아지른 화강암 석축은 접근 엄금이요, 황금색 동판으로 장식된 흑백 성채는 샤넬 백이다. 황금 잉어가 춤추는 쪽빛 지붕은 봉황의 날개짓이다. 천하의 도쿠가와도 몇달을 공격했지만 성공하지 못해 이간계로 해자를 메우게 해 점령하게 되었다는 난공불락의 성이다. 물론 이 사건으로 도쿠가와는 주군이던 도요토미 가를 멸망시켜 두고두고 ‘배신의 정치가’라고 욕을 듣고 있지만….


혼자서 관람한 자전거 박물관
역사는 흘러가듯이 오사카성의 추억도 뒤로 하고 자전거 박물관으로 향한다. 역시 뽈락의 오매불망 관심사는 자전거이기에 일본에서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이다. 오사카성 앞에 있는 호텔에 짐을 맡기고 바다미도 오랜만의 홀가분한 하이킹이다.
사카이(堺) 시로 가는 26번 도로를 찾아 10여 km 달리다 야마토강을 건너면 사카이시에 들어선다. 다시 10여km를 더 가야 하는 박물관은 급한 마음에 오히려 더 헤맨다. 드디어 다이센(大仙) 공원에 있는 박물관을 발견했지만 두번 아니 세번 놀랐다. 첫째는 휴관이란다. 어제가 일본의 휴일이라 그 다음 날이 정기휴관일이었던 것이다. 두번째는 예상보다 부지가 좁고 건물 외관도 초라한 느낌이다. 마지막은, 난감해하고 있는데 또 귀인이 나타난 것이다. 잠깐 들린 하세배 사무국장을 만나 사정얘기를 하니 뜻밖에도 문을 활짝 열어준다. 규정대로만 해서 융통성 없기로 유명한 일본인이 이렇게 특별 관람을 하게 해줄 줄이야. 아마 이 하세배상의 조상은 배달민족 아니었을까?
3층의 박물관은 먼저 외부 계단을 올라가서 2층에서부터 관람이 시작된다. 접수와 안내를 하는 사무실이 있고 최초의 자전거 드라이지네가 자전거 역사관 입구에서 반기고 있다. 미쇼형 자전거, 드라이지네 그리고 세이프티 등의 클래식 자전거와 MTB, 로드바이크 등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실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다 멀리, 보다 빨리, 보다 즐겁게’란 모티브다.
이곳 사카이시의 역사, 즉 5세기 고분을 통해 이곳이 철 가공지였고 또한 그 철을 이용하여 칼과 총을 만드는 명소로 발달해 자연히 자전거산업도 번성하기 시작했단다. 그 유명한 시마노 본사가 근처에 있고, 이 박물관도 시마노가 설립, 운영하고 있다. 
3층에 오르면 자전거 문화공간으로서 자전거의 필요성, 효용성 등을 얘기해준다. 한켠에서는 프랑스 자전거 특별전도 열리고 있다. 1층에 250여대의 세계 자전거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은 압권이다. 벽면에는 자전거 그림 콘테스트 작품들로 도배되어 있어 꿈속의 자전거 천국에 있는 기분이다. 이외에도 클래식 자전거 타기 체험행사, 자전거 투어링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단다.
휴관이라 눈물을 삼키며 되돌아가야 했을 오늘. 단 혼자서 사무국장의 호위를 받으며 박물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니…. 이게 누구의 덕인지? 아마도 자전거 신의 은총이리라! 자렐루야!

오사카성 천수각을 배경으로
시마노가 운영하는 자전거 박물관 ‘사이클 센터.’ 희귀한 진품만 수백대 소장하고 있다
사이클센터 로고 앞에 선 간편한 차림의 바다미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사이클 센터 건물을 그림으로 그려보았다
수장고에만 250대의 자전거가 전시를 기다린다
자전거 그림 콘테스트의 입상작들. 어린이 작품인데 정확한 묘사가 놀랍다
우연히 나타나 휴관 중인 박물관 문을 열어준 하세배 사무국장

 

9일차 3월 23일
오사카 ~ 가코가와
참사를 극복한 고베! 건배! 축배!
세계적인 장사꾼 하면 단연 유태인이다. 일본에서는 오사카의 상술을 으뜸으로 친다. 머리가 잘 돌아가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말솜씨가 뛰어나단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유명 연예인 대부분이 오사카 출신이란다.
길거리에 있는 자전거 대리점의 간판은 크고 원색적이어서 눈에 확 띈다. 성질 급한 오사카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스피드 수리’라고 크게 써놓았다. 오사카 거리의 풍경은 도심을 제외하면 일본답지 않게 뭔가 흐트러지고 지저분한 느낌도 든다. 가로수인 목련은 흐드러지고 지천으로 서 있는 자전거는 아무렇게 뒤죽박죽이다. 빨간 신호등에도 우르르 지나간다. 나도 따라서 슬쩍…. 역시 강남 귤이 강북 탱자가 되는 건 자연의 이치다. 그래도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아 정답게 느껴진다.
오사카역 근처에서 2번 국도에 오른다. 한강처럼 넒은 요도가와를 건너 달린지 얼마 되지 않아 효고현(兵庫縣) 간판이 보인다.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2번 국도는 왼쪽에 바다를 두고 시모노세키까지 이를 것이다.
오늘은 흐린 날씨에다 10도 내외의 꽃샘추위에 마파람까지 얼굴을 때린다. 하지만 마음만 달리 먹으면 그만이다. 마파람이 불어 천천히 구경할 수 있고 쌀쌀하니 땀이 안나서 좋다.
낯익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고시엔 입구라고 적혀있다. 1924년 갑자년에 지어져서 갑자원(甲子園) 즉 고시엔으로 불리는 유명한 야구장이 왜 여기에? 보통은 ‘오사카 고시엔’이라 해서 동대문야구장처럼 오사카 시내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튼 일본 대학야구의 도쿄 메이지진구 야구장과 더불어 고교야구의 고시엔이 효고현 니시노미야시(西宮市)에 있다는 것도 바다미 덕분에 알게 되었다. 지금 막 일본 춘계 야구대회가 열리고 있다.


24년 전의 상흔
동서문화 교류의 도시라는 고베(神戶)에 들어섰다. 고베하면 1995년 TV를 통해 본, 다리가 두 동강나고 도로가 솟구쳐 있는 그야말로 영화보다 더 리얼하고 처참했던 한신대지진의 모습이 떠오르는 곳이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의 현대적이고 깔끔한 도시 풍경은 요코하마를 떠올릴 정도다. 오사카와는 30여km의 지근거리에 있어 공동생활권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한신(阪神, 오사카의 阪과 고베의 神) 타이거스팀이 창단된 지도 오래다.
고베는 항만, 철도, 공항, 도로 등의 인프라가 완벽하게 건설되어 이제는 지진의 고베가 아니라 세계의 고베로 재탄생했다. 그래서 과거의 고베를 넘어 건배하고 나아가 축배를 든다. 사람 키보다 더 큰 ‘BE KOBE’란 랜드마크 앞에서 흔적을 남기려 바다미의 허리가 휘는 줄도 모르고 스탠딩이다. 이곳이 그 당시 사망한 6300명을 기리는 메모리얼 공원인 줄도 모르고 눈치 없이 희희낙락 했으니… 으이그 이럴 땐 36계 줄행랑이 최고다.
멀리 무지개처럼 곡선을 그리며 파란 바다 위에 떠 있는 현수교로 달려간다. 시코쿠로 가는 길목의 효고현 아와지(淡路) 섬과 고베를 연결하는 길이 3911미터의 세계최장 현수교 아카이시해협(明石海峽) 대교란다. 당장 달리고 싶은 마음은 꿀떡같지만 고속도로여서 자전거는 절대 사양이란다. 

1995년 한신대지진 희생자를 기리는 메모리얼 공원. ‘BE KOBE(고베가 되다)’는 문구가 걸려 있다
일본도 자전거시장은 불황이라 대리점마다 비상이다
깨끗하고 밝은 이미지의 고베항
고베를 벗어나면 만나게 되는 세계최장 현수교라는 아카이시해협 대교(전장 391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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