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자전거여행하기 좋은곳

부산 송정역 ~ 기장역 해안길  
즐비한 포구, 환상의 오시리아… 여기도 부산이다

부산의 동쪽 끝자락 송정역에서 해안을 따라 기장역까지 겨우 18km. 이 길을 가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자전거가 후져서도 체력이 부족해서도 시간이 남아돌아서도 아니다. 경치가 충격적으로 아름답고 새로워서다. 부산에서 살기도 했고 이후에도 셀 수 없이 다녔건만 아직도 모르는 부산이 있었단 말인가 

세련된 인공미와 자연미가 잘 조화된 기장 오시리아 해안산책로. 짙푸른 바다, 파란 하늘, 빨간 자전거길, 녹색 풀밭 그리고 현대적 건물이 어우러지는 멋진 풍경이다

 

“여기가 부산이란 말이야? 이건 제주도인데!”
떠도는 것이 직업이자 취미인 내게 지자체별로 관광지와 명소를 새롭게 가꿔가며 일신하는 모습은 늘 참신해서 이 땅을 계속 다닐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좋아하고 익숙한 지역이 몇 곳 있기는 하다.
특히 부산은 어릴 때부터 동경해서 제주도, 경주와 더불어 가장 친숙하고 가장 많이 다닌 곳이다. 부산에서 몇 년을 산 것도 동경의 무대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의 발로였다. 그래서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미니벨로를 조립하고 송정항 뒤편으로 돌아나가는 순간,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언젠가 여러번 스쳐 지났을 풍경인데 자전거로 다시 만나고 재정비된 해변은 참으로 새롭고 아름다워서 눈이 번쩍 뜨였다. 제주도의 용암해변을 방불케 하는 경관이 모퉁이를 돌 때마다 시야를 채운다. 큰 기대 없이 나섰다가 나는 처음부터 흥분과 설렘에 시간 가는 줄도, 내가 왜 여기 왔는지, 행선지도 잊었다.

인공이 이리도 매혹적이다니! 아, 오시리아
바닷가 언덕에 앉은 해동용궁사는 이미 국내외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명찰이다. 이 익숙한 곳도 국립수산과학원을 거쳐 해변에서 접근하니 또 다른 비경이다. 오가는 관광객에 무심한 부부는 낚시에 여념이 없고 바위 언덕에 편안히 앉은 당우와 불상, 돌탑은 국내에서 다시 보기 힘든 기경이다. 격랑이라도 일면 절집 전체가 포말로 뒤덮일 것 같다.
아주 작은 동암항을 돌아나가자 갑자기 최고급 호텔과 리조트가 줄지은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예전에는 분명히 없던 것인데 알고 보니 부산도시공사가 조성한 리조트와 해안산책로다. 미국 서부의 사막지대를 달리다 갑자기 만나는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같다고나 할까. ‘오시리아’라는, 우리말 같지 않은 독특한 이름도 매력적이다. 주변의 전망 좋은 바위경관인 오랑대와 시랑대에서 앞자를 따고 ‘~리아’라는 접미사를 붙였단다. 한국을 넘어 국제감각이 돋보이는 이 놀랍고 참신한 발상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페달링을 할 겨를이 없다. 처음 보는 환상적인 해안경치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느라 진도는 지지부진. 첫눈에 나는 전국 최고의 해안길이라고 자평했다. 이 아름답고 매혹적인 풍경도 자연경관만 그대로 보존됐다면 별 감흥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경관을 방해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경관의 일부가 되고 경관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아름답고 우아한 건물, 코발트블루 해면과 대조를 이루며 한층 선명하게 일렁이는 주홍빛 산책로, 장구한 세월 파도와 바람에 침식되어 자연의 조각품이 된 바위까지… 나는 인공과 자연의 멋진 접점 혹은 조화를 여기서 본다. 언젠가는 대양을 향해 활짝 열린 저기 어느 방에 묵으며 밤새 바다와 이 해안을 경배하고 싶다. 

 

보기 드물게 바닷가 지척에 터 잡은 해동용궁사. 1376년 나옹화상이 창건했고 지금 건물은 1930년대와 70년대에 중창해 고졸한 맛은 떨어진다. 절마당까지 파도가 철썩이는 이색경관이다
해운대 바로 옆에 있지만 비교적 한산한 송정해수욕장. 뒤편으로 달맞이고개 너머로 해운대의 마천루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해양관련 연구시설인 국립수산과학원. 과학관과 일부 시설은 개방하고 있고 해안으로 나가면 해동용궁사까지 멋진 산책로가 나 있다
역시 대변항은 멸치의 고향이다. 따사로운 햇살과 해풍에 맛나게 말라가는 멸치
기장은 멸치, 미역 외에 장어 잡이로도 유명하다. 시랑리 바닷가에서 붕장어(아나고)를 말리는 아낙네. 먹장어(곰장어)와는 다른 종이다
멀리 연화리포구를 바라보는 오랑대 인근의 해안산책로. 그저 말문이 막히는 환상경이다

 

많기도 하구나, 포구여 
리조트 건물을 지나 잠시 숲을 거쳐 가면 기암에 용머리가 장식된 용왕단과 오랑대가 달력 속 풍경처럼 비현실적으로 닥친다. 시커먼 바위는 오래전 저 차가운 푸른 물에 식어간 불타는 용암이었을 것이다. 바다로 깊숙이 뻗은 바위군락은 오랑대(五郞臺)라는 이름에서 짐작이 가듯이 옛날 기장에 유배된 친구를 찾아온 선비 5명이 절경에 취해 노닐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가 기장에서 7년이나 유배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그를 찾아온 손님들일까.
오랑대는 캠핑의 성지가 된 모양이다. 평일인데도 주차장은 캠핑카와 텐트로 가득하다. 오랑대에서 마지막으로 구비치는 오시리아 산책로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얽힌 사연이 없다면 내가 그 주인공이 되고픈 과대망상증을 부른다.
2km 남짓한 오시리아 해안산책로를 지나는데 1시간이나 걸렸으니 보행보다 늦었다. 그래도 눈과 가슴과 머리에 저 풍경이 안겨주는 영감과 감흥의 절반도 못 채운 것 같아 아쉬움이 질질 끌린다.
초미니 연화리 포구는 닭벼슬을 닮은 닭볏등대와 젖병을 닮은 젖병등대가 방파제 좌우에 나란하다. 등대까지 이렇게 기발한 파격을 할 수 있다니 부산사람들 다시 보게 된다.
배를 타는 선원들은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바다로 나가기 때문에 매사에 대단히 민감하다. 아직도 무속을 숭배하고 대나무로 배를 치장하며 온갖 금기와 터부를 지키는 것도 위험한 일을 하는 작업의 특성상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는 일종의 심리적 장치다. 등대도 뱃사람들에게는 생명과 직결되는 시설인데 이를 장난스럽게 만든 것은 큰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대변항 방파제에도 마징가제트등대, 태권브이등대가 나란히 서 있으니 여기 뱃사람들은 이미 그런 경지를 넘어선 것인가.
송정포구, 연화리 포구가 너무 작아서일까, 멸치잡이로 유명한 대변항이 대단히 크게 느껴진다. 대변항을 돌아나가면 길은 좁아지고 상하좌우 입체로 굽이쳐 라이딩이 조금 힘들다. 대신 솔숲 사이로 터지는 해식애와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의 종말을 가까이 볼 수 있다.   
앙증맞은 월전포구를 돌아나가면 이제 종점이 멀지 않았다. 죽성포구에 이르기 전 바닷가 언덕에 그림처럼 성당이 우뚝 서 있다. 역시 예사 건물이 아니다. 한눈에 봐도 영화의 배경 같은 이곳은 드라마 세트장으로 지어졌단다. 이름도 ‘드림세트장’이다. 드라마가 별로 없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특히 연인들은 세트장에서 억지로라도 드라마를 만들고 주인공이 되어 영원의 추억을 양생한다.  

 

죽성항 초입에 있는 드림세트장 성당. 입지와 겉모습은 드라마틱해서 작위 드라마가 필요한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동해선 전철 타고 해운대로 
죽성포구 입구의 작은 언덕이 고산 윤선도가 기장 유배시절 중국 우한(武漢)의 명승 황학루를 본따 황학대로 명명한 곳이다. 바로 곁에는 해녀상이 방치되듯 서 있지만, 오는 길에 해녀를 여러 명 볼 정도로 기장은 아직도 해녀가 현역으로 일하는 육지의 바다다.
죽성포구에서 봉대산 북쪽 고개를 힘겹게 넘으면 웬만한 시청보다 큰 기장군청이다. 가까운 기장역으로 가서 동해선 전철에 오른다. 접이식 미니벨로는 이럴 때 무한대의 자유를 선사한다. 부산에 와서, 기장까지 와서 해운대를 지나칠 수는 없다. 그렇게 많이 다녔어도 해운대는 첫사랑처럼 영원의 매혹이다.
벡스코역에 내려 요트경기장으로 들어서면, 서울사람도 기가 딱 질리는 초고층빌딩의 군무에 압도당한다. 70~80층에 300m를 넘나드는 까마득한 빌딩이 밀집해서 뿜어내는 육중한 위압감은 전국에서 이곳이 단연 최고다. 뉴욕 맨해튼이나 상해 푸동지구 못지않은 스카이라인의 박력과 위용이다. 도대체 저런 데서 사는 사람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닐 것만 같다. 
동백섬을 돌아 백사장으로 나서면 이번에는 달맞이고개와 101층 마천루가 곡선과 직선, 자연과 인공의 불협화음으로 시야를 온통 채운다. 하지만 풍경의 부조리는 두 바퀴와 삼각형으로 어우러진 자전거처럼 해운대의 이름으로, 국내 유일 혹은 국내 최고의 해안경관을 완성한다.
오시리아의 그 눈부신 해안산책로, 만(灣)마다 터 잡은 포구들의 비릿한 삶의 향기, 포만감을 삽시간에 질식시키는 온갖 맛집, 굽이굽이 얽힌 옛 사연들도 결국은 여기, 한국 해변의 절대적 클라이막스 해운대로 귀결된다. 해운대와 가깝다는 것만으로도 풍경은 격상되고 맛도 사연도 부풀려진다. 그를 보는 나의 마음, 감성이 이미 해운대의 그 빌딩만큼, 그 하얀 백사장 길이만큼 팽창해 있으니까.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바라본 해운대 마린시티의 마천루군. 실제로 보면 육중한 위압감에 고개 들기가 벅찬 느낌마저 든다
해운대 마린시티 해변의 영화의 거리. 숱한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지만 놀라운 경관 그 자체가 이미 드라마다
한국 해안경관의 절정 해운대는 이제 101층 411m 높이의 마천루로 클라이막스의 고점을 더 높였다. 176m의 달맞이고개(와우산)는 허리춤에도 미치지 못한다

 

Tip
해운대에서 출발해도 되지만 달맞이고개 구간은 갓길이 좁고 차량 통행이 많아 라이딩이 불편해서 송정역을 기점으로 잡았다. 송정역에서 죽성포구까지는 해안을 따라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동해선 전철은 20~30분 간격으로 있으며 평일은 접이식만, 주말에는 일반 자전거도 휴대가 가능하다. 신해운대역보다 벡스코역에서 내려 요트경기장~영화의 거리를 거쳐 해운대로 진입하는 것이 좋다. 해안 코스에는 주로 횟집이 많아 간편식으로는 부담스러운데, 대변항 초입의 오가다짬뽕(기장읍 연화1길 157, 051-723-3456)의 활문어짬뽕, 철판짜장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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