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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베가본드①-여정의 시작,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캘거리로반가운 순풍, 고마운 사람들… 이번 여행은 잘 풀리려나

아메리카 베가본드 ①
여정의 시작,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캘거리로 

반가운 순풍, 고마운 사람들… 이번 여행은 잘 풀리려나


이달부터 677일간에 걸쳐 캐나다에서 남미 최남단 칠레까지 남북 아메리카대륙 16개국 2만3000km를 자전거로 일주한 김민형(28) 씨의 여행기 ‘아메리카 베가본드’를 연재한다. 90일간의 일본 히치하이킹 여행을 시작으로 보다 멀고 넓은 세계여행을 꿈꿔온 김 씨는 1년간의 준비를 거쳐 2017년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약 2년에 걸친 아메리카 대륙 횡단을 무사히 마쳤다. 김 씨는 “여행이 좋아서,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일상이 궁금해서 2년 간 자전거 세계일주를 다녀왔다”면서 “여행 중 많은 현지인을 만나며 사람은 제각각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수많은 인생 이야기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귀국 후 나 또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연재 소감을 밝혔다

 

열아홉, 한 여름날의 시험기간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러 공부 잘하는 친구와 함께 집 근처 도서관에 갔다. 집중시간이 2시간이 넘지 못하는 나는 시험공부를 하다말고 도서관에 있는 책을 구경하기 시작했고, 도서관 한켠에 꽂혀있는 책 한권을 발견했다.

그 책의 제목은 김태현 작가의 <떠나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다>라는, 630일간 아메리카 대륙을 자전거로 종단한 리얼 여행기였다. 당시, 여행이란 일상을 벗어나 3~4일 휴식하는 의미로만 생각했던 내게 2년간의 자전거 여행기는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사는 삶도 있구나!’
나에게 여행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해준 책 한권.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는 나도 성인이 되면 자전거를 끌고 세상을 누비는 상상을 했다. 이후 대학생이 된 나는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전국일주를 떠났다. 처음 느끼는 자전거 라이딩의 매력에, 현지인들의 친절에 점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리한 페달링으로 인해 무릎 옆 장경인대에 염증이 생겨버린 것이다.
잘못된 페달링으로 인한 장경인대 염증은 계속해서 재발했고, 그때마다 인대는 두터워지고 굳어갔다. 유연성을 잃은 인대는 잦은 통증을 유발했다. 자전거는커녕 계단을 오르기만 해도 심한 통증이 생겼다. 내 인생에서 자전거 세계여행은 무리라고 절망한 채로 군대에 가게 된다.

일본 히치하이킹 7000km, 그 다음은…
내가 절박하게 하고 싶었던 여행은 이동과 숙박에 돈을 아끼며 최대한 현지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여행이었다. 자전거여행 외에 이런 방법으로 여행을 할 수 있는지, 군 생활을 하며 항상 고민하고 연구했다. 항상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또 다른 여행이 바로 히치하이킹이었다. 군에서 전역한 나는 200만원을 들고 일본일주에 나섰다. 처음 보는 일본인들의 차를 93번이나 얻어 타며 후쿠오카에서 일본 최북단 와카나이까지 90일간 7000km를 여행했다. 발바닥에 물집이 날 정도로 걸어 다녔고, 공원이나 다리 밑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 여행 중에는 힘들었지만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고생한 여행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렸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나의 여행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게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90일간의 일본일주를 다녀온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을 여행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치관에 변화가 생겼는데, 이보다 더 먼 나라를 더 오랫동안 여행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이런 생각의 끝엔 잊고 살았던 자전거 여행의 존재가 떠올랐다. 아메리카 대륙은 꼭 자전거로 종단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하지 않아도 되는 무릎 수술을 받기로 했다. 장경인대를 2cm 연장하는 수술,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한 결단이었지만 당시에는 이것만이 방법이라 생각했다. 무엇인가에 미쳐야만 그것에 미칠 수 있다고 했던가. 당시 나는 세계여행에 미쳐있었다.
오죽했으면 수술대에 누워 척추에 하반신 마취를 할 때, 자전거여행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히죽히죽 웃었을까.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6개월간 운동선수들과 같이 재활치료를 받았다. 수술과 재활로 인해 5년간 나를 절망에 빠뜨렸던 장경인대 증후군은 깨끗이 나았다. 무릎 완치 판정을 받은 뒤 여행준비는 더 이상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행경비를 모으기 위해 1년간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5분 대기조처럼, 언제나 떠날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17년 5월 27일, 출국 전까지 내 머릿속에는 “자전거 세계여행”이라는 단어 밖에 없었다. 마치 경주마가 콧김을 뿜어대며 출발신호를 기다리듯, 자유에 심하게 굶주렸던 야생마 한 마리가 세상 밖으로 뛰쳐나간다.

 

1년간의 준비, 2년간의 여행을 떠나기 전
떠나기 전 김포공항에서 같이 밤을 새준 형과 동생

 

Canada 1일째
두 가지 용기
떠나는 날이 되었다. 자전거를 포함해서 40kg이 넘는 짐을 혼자 나를 수 없어서 가족의 도움을 받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밤을 새고 아침 9시에 캐나다 에드먼턴 행 비행기를 탈 계획이었다. 배웅 온 가족과 이별을 하는데 어머니는 아들을 웃으며 보내주고 싶다며 눈물을 꾹 참고 나를 꽉 껴안아주셨다. 이별은 참 아쉽고 슬픈 것이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나도 멋쩍은 웃음으로 어머니와 헤어졌다.
3살 많은 형과 7살 어린 남동생은 서프라이즈 이벤트라며, 아침에 비행기를 탈 때까지 공항에서 같이 밤을 새줘 내 마음을 짠하게 했다. 새벽, 불빛이 꺼진 어두운 김포공항에서 우리는 한동안 나누지 못할 수다를 떨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출국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민형아, 몸 건강히 잘 다녀와라 사랑한다.” 입국수속대 앞에서 형과 마지막 포옹을 했다.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여행이었는데, 막상 떠나려니 출국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형에게서 등을 돌려 앞을 보며 카트를 끌고 출국장으로 걸어가는데 공항 실내가 안개가 낀 것 같이 흐리멍덩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려면 대가가 필요했다. 세계여행을 준비하는 1년 동안 새로운 곳으로 떠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미지의 세계로 당차게 떠날 용기는 있었지만, 이곳에, 내가 살아왔던 이 땅에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두고 떠날 용기는 아직 내게 없었던 것이다. 그 대가는 눈물이 되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감정에 젖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출국심사 중, 항공사 직원은 편도 티켓으로 캐나다에 입국하려는 나를 저지했다. 당장 왕복 티켓을 사지 않으면 비행기에 태워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비행기 이륙시간은 다가왔고 항공사 직원은 내게 와서 각서를 쓰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캐나다 입국수속을 거절당하면 본인 부담으로 다시 한국으로 귀국한다는 내용의 각서였다. 종이에 쓰인 내용을 읽어 볼 새도 없이 나는 내 이름 석 자를 쓰고 있었다. 결국 나는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탑승한 승객이 됐다.
지구 반대편 캐나다로 가는 길은 멀고도 길었다. 김포공항에서 베이징을 거쳐 캐나다의 밴쿠버에 도착, 또 다시 에드먼턴이라는 캐나다 중부 대도시로 가야했다. 비행시간만 총 15시간에 경유지에서 대기시간까지 포함하면 20시간이 넘었다. 전날 밤까지 새고 비행기에서 쪽잠으로 이틀을 지내려니 고역이었다. 육체적인 피로보다 나를 더 피곤하게 했던 건 캐나다에서 입국을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비행기 창밖으로 밴쿠버 풍경이 보이는데 즐겁지 않고 긴장되기 시작했다.
캐나다 입국심사 줄을 설 때 일부러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입국심사를 약간 대충 할 것 같은 심사관 앞에 줄을 섰다. 당시 내가 심사관과 나눴던 대화 내용은 이렇다.
“캐나다에 왜 왔니?” “자전거여행.”
“캐나다에 19일이나 있는다고?” “응.”
“자전거여행은 누구랑 하는 거야?” “나 혼자.”
“캐나다에 아는 사람은 없어?” “응, 없어.”
“왜 캐나다로 자전거여행을 온 건데?” “캐나다 자연을 사랑하거든.”
귀찮아 보이던 심사관이 약간 미소를 짓는 걸 감지했다.
“자전거는 한국에서 갖고 온 거지?” “응.”
“오케이, 즐거운 여행이 되길!”
캐나다 입국심사를 무사히 마치자,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내 양쪽 입꼬리는 위아래로 사정없이 씰룩거렸고, 허파에 바람이 든 것처럼 실소가 새어나왔다. 방실방실, 나는 혼자 밴쿠버 공항을 웃음으로 휩쓸고 다녔다.

밴쿠버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은 뒤 그제야 보이던 창밖 풍경
에드먼튼 공항에 도착해서 자전거 조립을 시작! 3시간이나 걸려버렸다

 

Canada 3일째
지구 반대편에서의 생활
에드먼턴(Edmonton) 공항에 도착하니 시간은 오후 5시였다. 공항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자전거 조립을 시작했다. 1시간이면 될 줄 알았던 자전거 조립은 3시간이나 걸렸다. GPS가 없어서 공항 직원에게 에드먼턴으로 가는 방향만 묻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자, 이제 시작이다.”
에드먼턴 시내까지는 20km. 잘 곳이 정해진 것도, 누굴 만날 예정도 없었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그저 이정표가 제시해주는 대로 길을 따라 유유히 페달을 밟을 뿐. 사실, 여행 출발지를 에드먼턴으로 정한 것도 큰 이유가 없었다. 집에서 구글맵을 펴놓고 캐나다 지도를 보다가 캐나다의 최종 목적지를 밴쿠버로 설정하고는 적당히 2000km 정도 떨어진 곳을 찾다보니 에드먼턴에서 여행을 시작하면 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에드먼턴 시내로 들어가는 길, 오후 9시가 넘었는데도 노을이 지지 않고 1시간 동안 온 세상을 짙은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아, 캐나다는 오후 10시에 해가 지는구나.’
지금껏 노을은 오후 8시 이전에 지는 게 당연하다고 살아왔던 내게 이런 사소한 자연현상은 신선한 자극이었다. 마치, “이제까지 네가 알고 있던 상식은 틀린 것일 수도 있어”라고 누군가가 속삭여주는 것만 같았다.
에드먼턴 시내에 도착하니 오후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마트에 들러 현지 물가를 파악하고, 식빵과 소시지를 사서 인적이 없는 공원 벤치에 앉아 허기를 채웠다. 배가 불러오니 슬슬 졸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행인이 없어질 때까지 1시간을 더 기다리다가 공원 한 구석에 텐트를 쳤다. 잘 준비를 마치고 잠깐 텐트 밖으로 나왔는데, 하늘에 구름이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었다.
구름이라고 하기엔 너무 밝고, 그렇다고 어딘가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도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옅은 녹색을 띄고 있었다. 내가 마주하고 있던 것은 오로라였다. 태양에서 방출된 플라즈마의 일부가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로 진입하면서 공기분자와 반응해서 빛을 낸다는, 극지방에서 시기를 잘 맞춘 운 좋은 사람만이 볼 수 있다는 그 오로라 말이다. 저녁에 마주했던 지지 않는 노을은 내게 신선한 자극이었다면, 생전 처음 보는 오로라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공원에서 나 홀로 “대박! 대박!” 을 외쳐가며, 카메라와 삼각대를 꺼내 연신 셔터를 눌렀다. 여행 첫날부터 이런 진귀한 광경을 목격하다니, 뭔가 운이 좋은 여행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음날, 마을에서 지도를 구입하고 300km 떨어진 캘거리로 가기로 했다. 하루 100km씩 자전거를 타면 3일이면 도착한다는 단순한 계산이었다. 갓길이 넓은 고속도로를 따라 가는 것이라 별로 위험할 것 같지 않았다. 일주일은 버틸 수 있는 식량도 있어서 어디서든 캠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식량이 아닌 물이었다. 마을을 떠날 때 작은 생수 4병을 자전거에 실었는데, 하루 8시간의 라이딩에 4L 이상의 물을 소비한다는 걸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물을 구할 곳은 당연히 없었다. 뙤약볕 아래서 갈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음 마을까지는 20km, 1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는 수없이 이따금씩 들판 위로 보이는 목장에 찾아가서 물을 얻어 보기로 했다.
목장에 들어가니, 헤드셋을 낀 채 트랙터를 타고 밭을 갈고 있는 금발의 여인 제시를 만났다. 물 좀 얻을 수 있을지 묻자, 집에 있는 정수기 물을 주면서 더위를 식히고 가라며 아이스크림도 건네주던 마음씨 좋은 제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제시에게 물었다.
“여기도 가끔 자전거 여행자들이 찾아오곤 하나요?”
“전혀, 네가 처음이야.”
나는 이미 캐나다의 인적 드문 시골을 달리고 있었다.

노숙과 라이딩으로 점철된 지구 반대편에서의 생활

 

더위에 지친 내게 물과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던 제시
여행 첫날 에드먼턴에서 본 오로라. 2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초록빛 커튼

 


Canada 7일째
2번 고속도로를 따라 캘거리로
여행을 시작하고 내 일상은 서서히 변해갔다. 아침에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텐트를 정리하고 짐을 챙긴 후, 전날 해지기 전까지 달렸던 고속도로로 다시 들어간다. 마치 저장하고 다시 불러오기가 가능한 비디오게임처럼 말이다. 오전 중의 가볍고 선선한 바람은 자전거 여행자만이 즐길 수 있는 특권이리라.
자전거를 타다가 배가 고프면 어딘가 나무그늘을 찾아 취사를 하고, 졸음이 오면 들판에 누워서 낮잠도 잔다. 해가 지면 잘 곳을 찾아다니며 인적 없는 들판이나, 현지인의 집 마당에 텐트를 친다. 혼자, 혹은 길 위에서 만난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여행을 채워나간다. 노숙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몸은 더러웠지만, 마음은 점점 편안해지는 게 느껴졌다. 주변에 눈치 볼일도 없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페달만 밟으면 되는 삶이니까.
캘거리에 도착하기 100km 전, 고속도로변 휴게소에 들렀다. 며칠 씻지 못해서 짠내 가득한 얼굴을 닦으러 들어갔는데 이게 웬걸, 휴게소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샤워시설이 있는 게 아닌가. 정신을 차려보니, 웃통을 벗고 몸 구석구석을 닦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찬물 샤워를 마치고 웃통을 벗은 채, 고속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는 순풍이 불어오기 시작했고 자전거는 아스팔트 위를 시속 30km의 속도로 미끄러졌다. 자유,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가 순풍을 타고 불어와 내 등을 떠밀어준다.
몸에 묻은 물방울이 마르는 느낌을 받으며 시속 30km의 속도로 흘러가는 눈앞의 풍경에 짜릿함을 느낀 나는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평소 하루 100km를 달리려면 8시간은 자전거를 타야했지만, 이날은 등 뒤에서 밀어주는 순풍 덕분에 6시간만에 100km를 달릴 수 있었으니, 자전거 여행자에게 순풍이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지평선 끝으로 캘거리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도심으로 향하는 차량이 많아졌고, 곳곳에서 클랙슨 소리가 들려왔다.
‘세계 어디든 대도시 주변은 차로 붐비는구나’ 라고 생각하던 찰나, 어디선가 클랙슨이 또 다시 울렸다. 뒤를 돌아보니 경찰차가 자전거를 세우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조금 긴장한 나는 바로 갓길에 자전거를 세웠다. 실탄으로 무장한 경찰이 순찰차에서 내려 내게 뚜벅뚜벅 걸어왔다.
“how are you?”
“여기서 자전거 타면 안 돼. 자전거는 국도에서 타야지.”
캐나다는 경찰관도 정말 친절했다. 고속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내게 국도로 가는 길을 친절히 알려주고 캘거리는 뭐가 유명한지도 알려준다. 에드먼턴에서 왔다고 하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경찰관은 헤어지기 전에 한마디 건넸다.
“Be safe!”
경찰관의 말을 듣고 국도를 따라 캘거리 중심가에 도착했다. 이정표에 쓰인 목적지를 따라 며칠간 자전거만 타다가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커피숍에서 밤이 오길 기다리다가 근처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아침을 맞이했다.
다음날, 도시 구경이라도 할 생각에 자전거를 타고 캘거리 중심가를 서성거렸다. 느지막한 오후, 자전거를 세워두고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한 여성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이름은 베렌, 아르헨티나 여성이었다. 자신은 오토바이 여행자이며, 여행경비를 벌기 위해 캐나다에 체류 중인데 혹시 내가 갈 곳이 없으면 자신의 집에 머물러도 좋다고 한다.
자전거에 잡동사니를 싣고 다니는 여행자가 같은 동족이라고 느꼈던 것일까. 그녀는 처음 보는 동양인 남자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나는 그녀의 달콤한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Canada 9일째
오토바이 여행자 베렌과 티토
아르헨티나 여행자 베렌은 남자친구 티토와 함께 살고 있다. 이미 오토바이로 남미대륙을 한 바퀴 돌았다는 그들은 향후 여행자금을 모으기 위해 캘거리에 체류 중이라 했다.
베렌은 나에게 정말 친절했다. 내가 일주일 만에 실내 취침을 한다고 좋아했더니, 자신의 집에서 원하는 만큼 편하게 쉬다 가라고 한다. 밀린 빨래를 달라고 하고, 저녁에는 같이 장봐서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먹자고 하던 베렌. 어떻게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이방인에게 이토록 선의를 베풀 수 있는 것일까.
‘나라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누군가가 나에게 대가없는 선의를 베풀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상황이 바뀌어서 내가 집주인이고 이들이 여행자라면 과연 나는 이들이 나를 대해주는 것만큼, 이들에게 진심어린 친절을 베풀 수 있을까. 나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의 대답은 항상 ‘No’였다. 그것을 잘 알기에 오늘 처음 만난 베렌과 티토의 친절이 내 가슴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 만에 실내 취침을 하고 상쾌하게 아침을 맞았다. 방에서 나오니 베렌은 거실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 밥 말리의 ‘버팔로 솔저’를 들으며 음악소리에 맞춰 리듬을 타고 있었다. 베렌의 집에는 TV도 없고 인터넷도 없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삶을 지향한다는 그녀의 말이 참 멋있게 들렸다.
베렌과 아침을 먹고 캘거리 시내를 구경하기로 했다. 자전거를 집에 두고 도난 걱정 없이 걸어 다니니 도시의 풍경이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삼삼오오 카페에 앉아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금발의 현지인들,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거리 위에서 홀로 색소폰을 부는 배나온 아저씨,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 한국에서 보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익숙함 속에서 산뜻한 신선함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참 재밌었다. 산책 중 베렌은 나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은 파스타 해먹을까?”
“응? 파스타? 나 한 번도 요리해본 적 없는데.”
베렌은 파스타를 요리할 줄 모른다는 나를 정말 심각하게 쳐다봤다. 그리고는 오늘은 정말 맛있는 특제 파스타를 해주겠다고 장담했다. 생각해보니, 여행 전에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계란 프라이와 라면뿐이었다. 이참에 베렌에게 파스타 요리법을 배우면 여행 중 두고두고 요리해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시간에 맞춰 베렌은 파스타를 요리하기 시작했다. 메뉴는 토마토 치즈 파스타였다. 퇴근길에 티토는 와인 한 병을 사왔다.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 그리고 좋은 와인.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저녁식사였다. 우리는 Salud(건배)을 외치며 와인잔을 부딪쳤다. 오붓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여행이야기, 각자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중 티토는 내가 입고 있던,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 문양이 그려진 티셔츠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왜 네 번째 손가락만 짧은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티토의 질문에 내가 존경하는 안중근 의사에 관한 이야기를 영어로 설명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에 대해 종종 질문을 받곤 한다. 내가 그들의 문화를 궁금해 하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의 문화가 궁금한 것이다. 자문화를 잘 알아야 타문화를 더 폭넓게 이해하고 대조적으로 견주어 생각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내가 가고 싶은 나라에 대해서만 조사할 게 아니라, 내가 살아온 나라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한다면 여행 중 새롭게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범위는 넓어지고 여행의 풍미는 더욱 깊어지지 않을까.
저녁을 먹으며 베렌과 티토에게 내일 아침 벤프 국립공원으로 떠난다고 말했다. 베렌은 내게 손 글씨로 예쁜 카드를 써줬다. 당시에는 스페인어를 몰라서 카드에 쓰여 있는 의미를 몰랐지만, 시간이 흘러 그녀가 내게 남겨준 메시지는 큰 감동을 줬다.
아침에 짐을 챙겨 떠나는 나를 눈물을 글썽이면 배웅해주던 베렌, 500일이 지나 아르헨티나에 입국했을 때 내게 연락을 해주던 그녀는 내가 이번 여행 길 위에서 만난 첫 번째 천사이다.

큰 친절을 베풀어 준 오토바이 여행자 베렌(오른쪽)과 티토
캐나다 1번 국도, 우리나라와 다르게 고속도로가 정말 심플한 느낌이다. 게다가 오로지 직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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