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제는 도움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2년간 남북미대륙 종주한, ‘아메리카 베가본드’ 필자 김민형 씨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제는 도움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본지에 연재 중인 ‘아메리카 베가본드’의 필자 김민형(28) 씨는 혼자서, 그것도 자전거로, 캠핑을 하며, 무려 677일간 남북아메리카 대륙을 종주했다. 캐나다 중부의 에드먼턴을 출발해 남미 최남단의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까지 16개국을 통과하며 2만3000km를 달렸다. 작렬하는 태양에 피부는 거슬렸지만 신체는 강해졌고, 극심한 외로움은 새로운 시야와 가치관 정립을 도와주었다 

 

 

무엇보다 그는 요즘 20대 같지 않았다. 어딘가 나약하고 세상이나 남을 탓하며 자신의 실력은 기르지 않는, 모험심과 도전정신이 사라진 세대랄까. 풍요로운 세상에 태어나 부모의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랐지만 극심한 불황과 사회 갈등으로 사회에 첫발을 떼기조차 어려워진 현실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7월호부터 ‘아메리카 베가본드’를 연재하고 있는 김민형(28) 씨는 보기 드물게 성실하고 진지하면서도 특별한 젊은이였다. 엄청난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일까, 처음부터 타고난 성품일까. 
본지에는 기고나 출간을 원하는 글이 가끔 오는데 대개는 정중히 사양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의 글과 사진은 첫눈에 강한 인상으로 와 닿았다. 글과 사진의 수준이 높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기자가 높이 산 건, 자신만의 특별한 관점과 경험 그리고 그것을 글과 사진으로 풀어내려고 애쓰는 노력과 고민이었다. 그에게는 그런 것이 넘쳐났다. 무엇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보기 힘든 모험심, 긍정적인 마인드, 글로벌한 가치관이 놀랍고 반가웠다.
첫 원고를 편집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시흥에 산다는 그는 글과 사진으로 기대한 그대로의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사무실 문을 들어섰다. 귀국한 지 1달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피부는 까무잡잡했고 눈은 형형하게 빛났으며 낭랑한 목소리는 활기가 넘쳤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한국인에게서 특히 드문, 긍정 에너지의 화신이었다.

677일간 남북미 대륙 2만3000km 종주
2년 전 26세 약관의 젊은이가 집과 고국을 떠나 2년 간 남북 아메리카대륙 자전거 종주에 나선 것만으로도 놀랄 일이다. 그것도 하루 5달러를 쓰며 혼자서 캠핑으로 지냈다는 것은 더욱 감탄스럽다. 비교적 치안이 안전하고 도로와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캐나다와 미국은 그렇다 쳐도 중남미와 남미는 정국과 치안이 불안하고 경제적으로도 낙후된 곳 아닌가.
도대체 왜, 어떻게, 그런 엄청난 여행을 했으며 또 그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그의 이야기를 포인트별로 정리해보았다.    
  
고3 때 만난 한권의 책 
"19살 때 시험공부를 위해 집 근처 도서관에 갔다가 <떠나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다>(김태현 저)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630일간 아메리카대륙을 자전거로 종단한 여행기였는데, 여행이란 3~4일 하는 정도로 알았던 내게 2년간의 자전거여행은 충격이었다. 나도 성인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세상을 누비고 싶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친구와 함께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떠났고, 일본에서는 93번의 히치하이킹으로 90일간 후쿠오카에서 최북단 와카나이까지 종주했다. 가장 가까운 일본을 여행한 것만으로도 가치관에 큰 변화가 생겼는데 더 먼 나라를 오랫동안 여행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이런 마음으로 아메리카대륙 종주를 계획했다.” 

미국 포틀랜드에서 맞은 일대 위기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진입해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 잠시 마트에 다녀오는 사이 자전거와 장비 등 600만원어치를 몽땅 도난당하고 말았다. 여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급한 마음에 몇 군데에 메일로 도움을 요청했다. 마침 도난 자전거를 찾아주는 자선사업을 하는 분이 나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기부행사를 열어주었다. 나를 다시 길 위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뜻으로 ‘Take Min on the road’란 테마로 내가 잃어버린 것보다 더 많은 800만원을 모금해줘 다시 장비를 갖추고 출발할 수 있었다. 그 분이 “우리는 네가 포틀랜드에서 여행을 멈추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준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위기는 곧 기회이고,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있듯이 도난 사건을 계기로 좋은 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나의 여행을 응원해주는 팬까지 생겼다. 아르헨티나까지 여행을 마치고 다시 포틀랜드를 찾아 고마운 분들께 인사를 드렸다. 그때는 지역 TV방송에도 내 이야기가 소개되기도 했다.”

 

코스타리카에서는 마약쟁이들을 피해 들판에서 캠핑을 했다. 좁아도 자전거 실내 보관은 기본

 

난생 처음 본 은하수 
“혼자 여행하는 장점은 자연을 독차지하는 느낌이랄까. 멕시코 사막에서 야영을 하며 은하수를 처음 보고 너무 놀랐다. 하나둘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별이 아니라 장대한 구름이나 물결 같은 별무리는 정말 경이로웠다. 그 모든 자연을 나 혼자 독차지 한다는 느낌, 나 혼자 대자연을 일대일로 만난다는 느낌은 황홀했다.”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  
“혼자 다니다보니 처음에는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외로움이란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어느 순간 혼자 있는 것도 외롭지 않았다. 촛농이 떨어질 때는 말랑거려도 곧 딱딱해지는 것처럼 외로움이란 감정도 그런 것 아닐까. 500일이 넘어가서는 외로움에 익숙해져 여행 자체를 즐겼다. 오히려 대자연 속에서 혼자 보낸 시간이 가치관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
“22개월간 16개국을 지났는데 그중 멕시코에서 가장 긴 4개월을 보냈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멕시코이다. 한국에서는 멕시코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으나 실제는 매우 친절하고 편안했다. 멕시코는 여행의 한 분기점이기도 했다. 현지인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여행을 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아무리 영어를 잘 해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남미는 대부분 스페인어권이라 멕시코에서 1달간 스페인어를 배웠다. 이후에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어져 현지인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페루인의 생각 
“페루는 40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여서 한때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와 공감을 느껴 현지인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스페인은 우리를 발전시켜준 나라’라고 오히려 고마워해서 놀랐다. 400년이란 긴 시간 동화되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본적으로 역사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해서 씁쓸하기도 했다.”     

살벌한 중남미 
“과테말라 등 중남미에서는 다들 총을 들고 다녀 처음에는 놀라고 겁도 났다. 하지만 전쟁지역도 결국에는 사람이 사는 곳이고, 총 든 그들에게도 가족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무서운 생각이 줄어들었다.”  

멕시코에서 9남매 가족과 함께
길이 나쁜 칠레에서는 무려 22번의 펑크가 났다
콜롬비아 코코누카 길가에서 점심 준비

 

해발 6088m 와이나 포토시 산 등정
“산을 좋아해서 좋은 산이 있으면 여행 중에도 트레킹을 하곤 했다. 볼리비아에 있는 와이나 포토시 산은 해발 6088미터의 고산인데 2박3일간 가이드 등반을 했다. 마지막날 폭설이 내려 대장님이 못 간다고 했고 고산병 증세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가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대학도 유학도 중도포기해서 힘든 일이 있으면 도중에 발을 뺀 적이 많아 이번 여행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팀은 다 내려갔지만 우리 팀만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뚫고 정상에 섰다. 대장님이 ‘네 의지가 하도 간절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정상까지 왔다’며 안아줬을 때 눈물이 터졌다. 남미는 고도가 높아 안데스산맥 주변은 해발 2000m 이상이 흔하다. 4000m 높이에서도 오래 라이딩을 한 적이 있어 자연스럽게 고산병에 적응이 된 것 같다. 일반 트레킹 여행자는 해발 2000~3000m에서도 고산병이 오지만 나는 5500미터에서 호흡곤란이 왔는데 참을 만했다.” 

페루의 해발 5100m 비니쿤카에서. 남미는 고지대를 많이 다녀 자연스럽게 고산적응이 되었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반사광에 눈이 멀어 큰 고역을 치렀다
해발 4000m의 페루 안데스산맥 중턱
볼리비아의 해발 6088m 와이나 포토시 산 정상에 올랐을 때

 

인생의 길을 찾다 
“여행 초반에는 아무 집이나 찾아가 집 마당에 텐트를 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며 다녔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타인에게 너무 의지하며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혼자만의 힘으로 다녀보자는 생각에 1년쯤 지났을 때는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유롭게 야영하며 보냈다. 하지만 너무 외로웠다. 혼자서 하루 8시간 이상 자전거를 타다보니 스스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5가지를 간추렸는데, 여행하는 것, 자전거 타는 것, 사진 찍기, 새로운 사람 만나기, 이야기하는 것 등이다. 한국에 돌아가서는 내가 좋아하는 이 5개를 실현하면서 살면 성공한 삶은 아닐지라도 행복한 삶은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방향성이 잡힌 느낌이랄까, 외로움 속에서 찾아낸 나만의 결론이다.”
 
최후의 목적지에 도착한 그날 
“여행 677일째인 18년 12월 17일 남미 최남단인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 도착했다. 사실 큰 감격은 없었고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해냈다는 성취감이 컸다. 출발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아르헨티나까지 간다고 하면 어떻게 거기까지 자전거로 가느냐며 놀라워했다. 내가 2년간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닌 곳이 바로 여기구나, 2시간짜리 영화라기보다 2년짜리로 흩어진 감동이랄까. 앞으로 여행작가나 사진가로서 죽을 때까지 포기 말고 해보자, 하면 된다는 생각을 다졌다.” 

이렇게 살고 싶다 
“여행하는 동안 사람들에게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아서 이제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 그분들이 베풀어주신 1/10, 1/100이라도 보답해야지 하는 마음이다.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후배들을 돕고 싶고, 여행중 만났던 분들이 한국에 왔을 때 도와주고 싶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플러스가 되는 사람이 될까 고민중이다. 청소년 대상 강연을 다니게 된 것도 한권의 책이 내 인생을 바꿔놓은 것처럼 아이들에게 나의 경험을 들려주고 싶어서다. 이렇게 사는 길도 있구나 하고. 한국에 와서는 내가 찾아낸 5가지를 하나씩 실현하고 있어 행복하고 보람차다.”  

여행은 만병통치약(?)
“여행 중에 ‘여행은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는 분을 만났다. 그때는 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멀고 힘든 여행을 하고 나면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되고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결과적으로 (과욕을 부리지 않아) 모든 일이 잘 풀리니 그 말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 그동안 보고 느꼈던 것을 글과 사진으로 소개하고, 다음 여행을 준비할 것이다. 차기 목적지는 아프리카 종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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