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어 달리는 비경의 원시림

양양 미천골 임도 70km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어 달리는 비경의 원시림

양양 응복산(1360m)과 조봉(1182m) 사이에 깊게 패인 미천골은 원시 그대로의 자연을 잘 보존하고 있고 해발 1000m를 넘어가는 장대한 임도가 많이 개설되어 있는, 산악라이딩 천국이다. 웅장한 산악미와 계곡, 울창한 원시림은 절경이지만 임도가 워낙 길고 험한데다 길도 복잡해서 시간계획을 넉넉하게 잡아야 하고 상당한 체력도 필요하다

 

해발 1000m의 조봉 주릉을 넘어서면 기나긴 다운힐이 펼쳐지고 군데군데 벌목지대가 이국적인 풍광을 보여준다

 

‘양양’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단어들이 몇가지 있다. 먼저 설악산과 한계령, 오색약수, 낙산사, 하조대 등이다. 또한 연어들의 고향, 남대천과 자연이 준 선물 송이도 있다. 동해의 시원한 바다와 해변, 백두대간의 높은 산자락과 깊은 계곡으로 널리 알려진 양양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대자연의 보고다.
양양군 서면 응복산(1360m)에서 발원하는 후천과 오대산 두로봉(1422m)에서 발원해 북으로 흐르는 남대천 사이에는 조봉(祖峰, 1182m)이라는 산이 있다. 조봉을 중심으로 수많은 임도가 개설되어 있어  그야말로 ‘임도 천국’이다. 조봉 임도는 보통 미천골에서 시작되어 흔히 ‘미천골 임도’라고 칭한다.
조봉은 백두대간의 응복산에서 북쪽으로 솟구친 산이다. 응복산 북릉과 백두대간 사이에는 자연스레 협곡이 생성되었는데 서쪽은 갈천약수가 있는 구룡령 계곡, 동쪽은 불바라기약수가 있는 미천골 계곡이다.

계곡 물놀이와 산악라이딩을 동시에
미천골은 자연휴양림이 들어서기 전부터 비경의 계곡으로 이름이 높았다. 계곡에는 오랜 세월 거센 물살에 다듬어진 암반이 널려 있고, 계류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그냥 마셔도 될 정도로 깨끗하다. 골짜기가 깊고 좁아 햇볕 드는 시간이 짧아서 7~8월 무더위에도 냉기가 감돈다. 한여름 휴가철에 피서지로 많이 찾는 곳이다. 산세는 크고 비탈면은 가파르며, 산림이 울창하다.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차가운 계류에 발을 담그면 어디선가 천년 전 울리던 목탁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미천골. 그 계곡 끝에 걸린 청룡폭포 바위틈에선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은 신비한 불바라기약수가 샘솟는다. 약수의 철분 성분 때문에 청룡폭포 주변의 바위벽은 온통 붉은 색을 띠고 있다. 불바라기는 폭포 주변이 온통 붉다는 뜻의 ‘불바닥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물맛이 무척 강해 목젖이 불을 삼키듯 뜨겁게 느껴질 정도여서 불바라기라고 한다는 말도 있다.
휴양림이 조성되기 전에는 접근하기가 어려웠던 산이라서 원시 그대로의 숲이 살아있고, 계곡에는 크고 작은 암반과 소(沼), 폭포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여름에 찾으면 시원한 물놀이를 겸해 라이딩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56번 국도 바로 옆에 있는 미천골자연휴양림 입구. 코스의 출발점이다
계곡이 임도 바로 옆으로 흘러 더위를 식히며 쉬어가기 좋다
미천골 초입에서 휴양림 구간은 계곡과 함께 가는 길이다
불바라기약수 바로 옆에서 떨어지는 청룡폭포(왼쪽)와 황룡폭포

 

원시림 속살을 엿보는 길 
오래전 오색찬란한 단풍으로 곱게 물든 수려한 미천골을 수차례 다니면서 느꼈던 감흥은 아직도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지만 10여년 간 다시 찾을 기회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미천골 라이딩을 가자고 노래를 불러댄 친구의 제안으로 몇 명의 동료들과 미천골 임도를 다시 찾게 되었다. 정확히 13년만의 방문이다.
56번 국도변의 서림가든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시키고 편의점에서 음료와 행동식을 준비해 각자 배낭에 나누어 담는다. 미천골에 들어서면 되돌아 나올 때까지 물과 음식을 구할 방도는 없다.
미천휴양림교에서 시작되는 미천골 계곡은 상류 불바라기약수 입구까지 약 12km 구간으로 계곡을 끼고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조봉을 중심으로 한 미천골 순환임도는 최저 해발 150m에서 최고 1005m까지 올라가 표고차는 855m나 되어 난이도가 높고 체력소모가 많은 코스다.
미천휴양림교에서 약 1km 가면 매표소가 나타난다. 입장료는 대인 1000원, 차량은 3000원을 징수한다. 매표소에서 계곡과 맞닿아 있는 완만한 포장길을 따라 선림원지를 지나면 도로와 계곡이 한층 더 가깝게 다가선다. 시원스레 흘러내리는 계류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선림원지에서 숲속의집 3지구까지는 그렇게 물결치듯 길이 이어진다. 계곡을 따라 천천히 달리는 길이기에 힘들면 잠시 물놀이를 하며 쉴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미천골 최대비경, 상직폭포와 불바라기약수
숲속의집 제3지구에서부터는 임도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이곳부터는 본격적인 비포장 임도가 시작된다. 미천골은 원시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자연을 벗 삼아 라이딩을 즐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거친 노면의 임도를 달리다 보면 미천골정(정자)이 나타나고 계곡 건너편에는 상직폭포가 떨어진다. 상직폭포(上直瀑布)는 높이 70m, 폭 10m에 이르며, 폭포가 길고 수직으로 되어 있어 물고기가 더이상 오르지 못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휴양림 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불바라기약수까지 이어지는 4.8km 구간은 미천골 라이딩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원시림의 속살을 보듬듯 그렇게 깊숙이 파고드는 길의 끝에 불바라기약수를 알리는 이정표가 반긴다.
임도에서 불바라기약수까지는 계곡길을 약 200m 걸어가야 한다. 지금까지 힘들게 올라온 보상이라고 해도 넘치고 남을 정도로 비경을 간직한 곳이다. 이정표 옆 좁은 산길로 접어들어 내리막을 지나면 이내 계곡이 눈앞에 펼쳐진다. 계곡을 넘나들며 10여분 가면 두 줄기 웅장한 폭포와 마주하게 된다. 불바라기약수의 명물, 청룡폭포와 황룡폭포다. 계곡 끝에서 만난 두 줄기 폭포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폭포의 웅장함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다. 쇳내를 머금은 불바라기약수는 두 폭포 사이의 중턱에 있다. 
 

철분으로 주위가 붉은 색을 띠는 불바라기약수
인적 없는 산길은 수풀에 가린 곳이 많지만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첩첩산중의 길은 간혹 장쾌한 조망을 보여준다

 

가도 가도 끝없는 심산유곡 
빈 물통에 약수를 가득 채우고 임도로 되돌아 나와 계속 오르막을 오른다. 불바라기약수 입구에서 아직 가야할 길이 50km나 남아 있어 갈 길이 막막하다. 앞으로 가야할 임도는 길도 복잡할 뿐만 아니라, 지명을 알리는 이정표도 찾아 볼 수 없어 자칫 잘못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잘못 진입하면 법수치리, 면옥치리, 어성전리의 남대천변으로 내려갈 수 있어 원점회귀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해발 1000m의 능선을 넘으면 갈림길이 많은 미지의 임도가 시작된다. 사전에 준비한 구간별 지도가 있어 걱정은 없지만 새로운 임도가 생겨났거나 새로 공사를 하고 있어 조금은 당황스럽다.
끝도 없는 임도는 탁 트인 풍광을 가끔씩 보여주다가 울창한 숲터널을 통과하기를 반복한다. 산악 경험이 많고 체력이 좋은 남자 두 명과 eMTB를 타는 나, 그리고 임도 경험이 있는 여자 한 명과 전혀 경험이 없는 여자 한 명까지 총 다섯명으로 구성된 일행은 결코 순탄한 라이딩 멤버가 아니지만 친구이기에 끝까지 완주하자고 서로를 응원하며 격려한다.
인적이 거의 없는 심산유곡의 울창한 굽이길은 관리가 안 되어 수풀로 가득하고 때로는 음산할 정도로 소름이 끼치는 구간이 제법 많다.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도망치는 멧돼지들과 고라니를 자주 목격하면서 덩달아 우리도 깜짝 놀라 기겁을 하고 만다. 다행히 친구 하나가 호각을 간혹 불어가면서 달려 나간다. “삑~삑~~ 하나 둘~~~”
어느덧 서산에 해는 넘어갔고 이미 체력 저하가 오기 시작한 여자 친구들은 휴식을 밥 먹듯 한다. 가다가 힘들면 쉬고 또 달리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원래 계획은 아무리 늦어도 오후 4시에 끝낼 수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시계는 벌써 6시를 가리키고 있다.
깊은 산중이라 어둠이 빨리 몰려온다. 이제 목적지까지는 16km의 내리막이다. 서둘러 자전거에 라이트를 부착하고 다시 서로를 격려하면서 달려본다. 호각 소리에 맞춰 모두 외쳐댄다.
“삑~삑~~ 하나 둘~~~, 삑~삑~~ 하나 둘~~~”
밤 8시40분,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멧돼지들에게 호각소리와 외침으로 경고를 날려가면서 우리는 무사히 종착지에 도착했다. 모두들 무사완주를 해냈다는 기쁨과 감격으로 비로소 환한 웃음을 짓는다. 총 라이딩 시간은 12시간36분27초를 가리키고 있다. 
 

구름을 붙잡는 까마득한 고도, 끝없는 업힐과 다운힐은 실로 에픽 라이딩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다
미천골은 조봉 주릉까지 업힐만 17km가 넘어 eMTB가 특히 유용하다

 

찾아가는 길 
서울양양고속도로 서양양IC로 빠져나와 56번국도를 따라 구룡령 방향으로 조금가면 미천골휴양림 안내판이 있다. 내비게이션에서 ‘미천골자연휴양림’을 검색하면 된다. 코스가 워낙 길고 험준한데다 인적도 없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는 팀단위로 움직일 것을 권한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행동식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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