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람들, 인상적인 풍경… 함께 달려낸 2000km

도쿄~서울 자전거 유랑기 (마지막회)
고마운 사람들, 인상적인 풍경… 함께 달려낸 2000km
 

이제는 우리 땅이다. 부산을 출발해 국도와 자전거길을 오가며 북상한다. 경주와 대구, 구미에서는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 환대를 받고 추억을 되새기면서 재충전의 힘을 얻었다. 젊은 부부 라이더와 의기투합해 밤에 이화령을 넘어 수안보까지 달리기도 했다. 이윽고 남한강 자전거길에 들어서니 집은 점점 다가오는데… 마중 나온 금숙이 저 앞에서 손수건을 흔들고 있다

“우리는 저쪽으로 갑니다~!” 새재길과 남한강 자전거길이 만나는 충주 탄금대에서. 이제 집까지는 160km 정도만 남았다

 

15일차 4월 1일
부산 ~ 언양
다시 출발이다, 부산에서!
한국에 도착한 지난 이틀 동안 바다미는 푹 쉬었지만 뽈락은 바쁘다. 30일 오전 8시 밤새 흘러온 부관페리호를 뒤에 두고 부산 국제여객선터미널을 빠져나와 초량, 가야, 개금, 주례를 거쳐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진주행 버스를 탔다.  바다미는 화물칸에 편안히 자리를 잡았다. 역시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일본에서 자전거를 버스나 열차에 실으려면 분해해서 가방으로 포장해야 한다. 게다가 별도의 요금도 지불해야 한다. 
구순의 어머님은 손을 꼭 잡으시며 고맙단다. 일본 유학 무사히 마치고 먼저 여기로 온 것에 대해 오히려 고마워하신다. 건강하게 키워주고 보살펴주신 은혜를 표현하기도 전에 이러시니 그저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자줏빛이 도는 사랑의 찰밥에 갈비탕을 내놓으신다. 일본에서 보기 드문 참외 맛도 본다. 막내에게 기념촬영을 부탁하니 안방에서 새 옷을 걸치신다.
저녁에는 창원에서 죽림회 회원들의 환영회가 열렸다. 9명 전원이 모인 가운데 꽃다발까지 준비했다. 남자에게 꽃을 받아 보기는 평생 처음인 듯하다. 옛 코렉스 시절의 부서장 모임이 벌써 30년을 넘기니 이젠 형제같이 우애가 깊어졌다.
바다미를 승합차에 태우고 엘파마 김사장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다음날 점심은 윗동서와 아래동서 그리고 처제와 같이 삼랑진에서 향어회로 오랜만의 회포를 푼다. 저녁에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태종대 자갈마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조개구이로 축하연을 연다. 다들 이렇게 기뻐해주고 반가워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앞으로 정신 바짝 차리고 잘 살라는 의미라고 새겨본다.

부산 영도에서 서울을 향해 
4월의 첫날이다. 서울로 가는 출발지는 부산 태종대 근처이다. 부산은 산복도로라 하여 가파른 언덕길이 많다. 영도는 작은 섬이지만 작은 고추처럼 매운 오르막 투성이다. 배가 점점이 떠 있는 시원한 바다를 보면서 오르막을 애써 외면하며 페달링한다. 용두산공원의 타워가 보이는 영도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부산역, 범내골, 서면, 거제리를 거친다.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대라 도로는 복잡하다. 갓길에는 이물질도 많고 패인 곳도 많다. 보도에 올라서니 보도블럭들이 살아 움직인다. 자전거로 이동해야하는 부산의 도로는 D학점이다. 게다가 빵빵거리며 정신 바짝 챙겨주는 고마운(?) 차들도 적지 않다.
동래 사직구장 근처에 있는 ‘MTB랜드’를 찾았다. 김진홍 사장은 도로 앞까지 나와서 반겨준다. 새로 이전한 샵은 크고 깔끔하게 정돈된 전문샵의 모습이다. 역시 섬세하고 센스 있는 김사장의 열정이 보인다. 자전거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부산의 자전거시장을 키워온 김사장이다. 그의 부인도 야무지고 정열적이다. 한국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지만 지형상 업다운이 많아 자전거 이용하기에 불편한 부산을 전국적인 자전거 메카로 만든 것도 이들 부부의 헌신적인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남녀간의 밀어만 가슴이 뛰고 황홀하겠는가. 김사장과의 만남은 설레고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 열정에 동화되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7번 국도 범어사 고갯길도 그와 같이 먹은 장어탕의 효험과 그에게 전염된 열정 에너지가 혼합되어 거뜬히 오른다.

 

“반갑다, 부산항아!” 접안하는 부관페리호에서 바라본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부산 MTB랜드 김진홍 대표와

 

강변길을 버리고 국도를 택한 이유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자전거길은 단연 낙동강 자전거길이 편하고 빠를 것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그 길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획을 바꿔서 일반 도로를 따라 가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도쿄에서 오사카까지는 1번 국도를, 오사카에서 시모노세키까지는 2번 국도를 근간으로 달렸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3번 국도를 탈까 싶었지만 3번 국도는 진주까지 가야하고 너무 작위적인 생각이 들어 1번 고속국도인 경부고속도로를 연하는 국도를 따라 문경 근처에서 3번 국도와 만나기로 한다.
범어사 고갯길을 지나자 동해안으로 향하는 7번 국도에서 왼쪽으로 꺾이는 1077번 지방도로 바꿔 탄다. 지방도이지만 왕복 6차선으로 노면 상태나 갓길도 좋다. 더욱이 차들도 많지 않고 가로수의 벚꽃도 만개하여 우리를 반기고 있다. 나란히 가는 경부고속도로도 보인다.
양산시에 도착해서는 잘 안내해준 지방도는 물금 쪽으로 보내고 오른쪽으로 향하는 35번 국도에 올랐다. 경주로 향하는 왕복 4차로인 이 도로 역시 큰 굴곡이 없고 오르막 내리막도 완만한 다소 한산한 길이다. 다만 파랑주의보가 내려진 기상에 바람은 갈 길을 막는 방해꾼이었다가 뒷등을 밀어주는 우군이 되기도 한다. 
전에 가봤던 통도사 모습이 궁금하다. 통도사 입구에 들어서니 안내원이 가로막는다. 자전거는 통행불가란다. 승용차는 씽씽 들락날락하는데 자전거는 안 된다니 기가 찬다. 그럼 부처님은 돈 많아 보이는 자가용만 좋아 하신단 말인가. 셔틀버스도 없고 걸어서 다녀오려면 족히 1시간 이상 걸리니 서산의 해가 떨어질텐데…. 바다미를 가로막는 야속한 안내원을 빨리 가서 쉬라는 보살님으로 여기고 돌아섰다. 바로 시작되는 울산광역시 경계의 낮은 오르막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 첫 국토종주에 나서는 바다미의 안전을 기원해 주시는 통도사 부처님의 마음이 바람 되어 우리를 감싼다. 아미타불!

‘이제 다 왔다!’ 부산항대교를 지나며
먼저 고향으로 달려가 구순의 노모를 뵈었다
코렉스 시절 부서장 모임인 죽림회 회원들이 환영해 주었다
양산에서 언양 방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에 벚꽃이 만개했다

 

16일차 4월 2일
언양 ~ 대구
추억으로 가는 길
어제 묵은 언양의 신라장은 전형적인 시골읍내 여관이다. 3만원의 착한 가격에 바다미와 함께 들어가라고 1층 방을 내준다. 몸이 반쯤 들어가는 자그마한 욕조는 여기 저기 상처투성이지만 다행히 물이 새지는 않고 넘칠 뿐이다. 생수, 음료수, 커피 등이 모두 2인분으로 얌전히 모셔져 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뜨끈뜨끈한 방바닥이다. 쾌적한 다다미도 좋지만 역시 촌놈에겐 슬슬 끊는 온돌이 최고다. 오랜만에 등을 지지고 나니 피로가 멀리 도망갔다.
오늘 가는 35번 국도는 쭉 뻗어있어 찾기 편한 길이다. 경주, 건천, 영천, 경산, 대구로 이어지는 지명은 머리 속에 벌써 세팅되었다. 일본에서는 간판의 지명을  한자의 의미까지 곱씹으며 외워도 다음 지명을 만나면 눈이 쌓이면서 발자국이 없어지듯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역시 우리말 지명이라 머리에 쏙 들어온다. 길은 경부고속도로와 경주하듯 같이 달리다가 구름다리를 건너 고속도로 위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사거리에서 4번 국도와 합류한다. 왕복 4차로의 산업도로라 동네와 멀리 떨어져 있어 마을풍경을 살피지 못하는 게 아쉽다. 경주를 지나 경산시에 도착해서는 35번 국도는 사라지고 4번 국도를 따라 대구광역시 동대구역을 향한다. 오늘도 일찍 핀 벚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에 맞바람을 맞아야 했다. 소위 꽃샘바람이다. 그래도 그 바람을 뚫고 100km를 돌파했다. 금호강이 유유하다.

온통 벚꽃길로 화사한 경주시내


경주의 추억 
그전에 경주시 근처를 지날 때가 마침 점심 먹을 시간이었다. 만만한 후배 재억이가 득달같이 나왔다. 오랜만에 얼굴 보면서 곰탕 한그릇 간단하게 할까 했는데 앞선 승용차는 서라벌대학을 지나 한참을 가서 한적한 가든식당 앞에서 멈춘다. 여기가 거창도 전주도 아닌데 거창하게 한상 차려져 나온다.
소불고기를 먹으며 35년 전 같이 근무했던 직장 이야기로 얘기꽃을 피웠다. 이곳이 이렇게 발전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1979년 대학 4학년 때 동국대 경주캠퍼스 마스터플랜 프로젝트팀에 소속되어 이곳을 처음 답사왔을 때는 잔솔만 무성한 구릉지였다. 그때는 전국적으로 야간통행금지였으나 경주는 관광특구 자유지역이라 밤새 설치고 다닌 추억도 있다. 사람의 인연이 무엇인지… 바쁠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서 마음을 함께하며 타임머신에 동승해준다. 고맙다.

수제 프레임 제작의 전설 
경산을 지나 대구에 들어서면서 떠오르는 이가 있다. 오래돼서 연락처를 몰라 수소문 끝에 연락을 해보았다. 알아보기나 할까 했는데 반가운 목소리로 아양교 전철역으로 일단 오란다. 자그만 자전거가게는 옛날 그대로다. 가이야스의 전종호 사장이다. 선경 스마트에서 자전거를 시작해 자전거 개발부장으로 활동하던 베테랑이다. 특히 브레이징 용접 전문가로 크롬몰리 파이프로 수려한 디자인의 사이클 프레임인 가이야스를 만든 장인이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가이야스 매니아들은 아직도 잊지 않고 만들어 달라는 이도 있는 수제 프레임 제작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한국의 자전거 환경이 일본만큼 좋아서 TCD 같이 한국사이클디자인 전문학교가 생긴다면 교장으로 모실 분이다. 지금은 8개 자전거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주말이면 라이딩하기에 바쁘단다. 자전거여행에는 영양보충이 필수라며 오리고기집으로 이끈다.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신원 자전거와 쓰노다 자전거의 합작과 부도, 선경그룹의 스마트자전거 이야기 그리고 이어지는 영진스마트의 탄생 비화 등을 듣는다. 쫄깃쫄깃 맛있는 오리고기처럼 그 옛날 자전거산업에 대한 역사가 신기하고 재미있다. 오늘은 추억의 바다에 빠져 기분 좋게 유영한 날이다.

수제 프레임의 장인인 전종호 대표와
동대구역 도착

 

17일차 4월 3일
대구 ~ 구미
강 따라 물 따라
바다미와 한 방에서 푹 잤다. 오늘은 전종호 사장이 추천해준대로 금호강 자전거길을 가기로 한다. 동촌유원지의 모텔에서 나오자 말자 강변길이 열려 있다. 유원지라 아침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그대로 금호강을 따라 무작정 흘러가보기로 한다. 시끄럽고 살벌한 국도를 달리다가 이렇게 내 세상처럼 달리는 자전거도로에 바다미가 좋아라 한다. 벚꽃 가로수, 개나리 군락, 새파란 수양버들의 봄 아침을 그냥 보내기는 아까워서인지 평일 아침인데도 자전거 타는 사람과 산책하는 이들이 많아 심심치 않다. 남자 둘이서 손을 잡고 걸어가길래 눈여겨봤더니 같이 늙어 가는 부자인 듯하다. 어릴 때 이끌어 주던 아들의 손은 이제 듬직하고 따스한 지팡이가 되었다.
자전거를 길가에 나란히 세워 놓고 하얀 갈대 덤불속에서 쑥을 캐는 노부부도 있다. 쑥이 많이 나왔냐고 인사를 건넸더니 벌써 너무 자라 쇨 지경이란다. 릴낚싯대를 부채살처럼 펼쳐 놓고 잉어를 기다리는 낚시꾼도 있다. 저 정도면 거의 그물을 촘촘히 친 듯하다. 저 그물을 피하느라 잉어는 한결 날씬한 몸매로 맞설 것이다.
지나가는 대부분의 자전거는 플랫바의 MTB 스타일이지만 역시 유니폼을 빼입은 젊은 라이더들은 날렵한 로드바이크로 씽하고 지나간다. 자전거 이용자뿐 아니라 산책하는 사람들도 마스크로 복면처럼 얼굴을 가리고 있다. 피부 관리도 중요하지만 얼굴에 문신을 한 듯해서 진짜 나쁜 놈들과 구분이 안 될까 염려된다.

강정고령보를 지나면 강변 언덕을 따라 매혹적인 데크길이 나온다

 

일반 돈가스가 왕돈가스로 
30여km를 달려 금호강 하류쯤에 접어들자 하천 둔치를 따라 평탄하게 가던 길이 강둑으로 오르면서 세천교를 지난다. 강변 공사를 하고 있어 길을 헤매던 중에 근처의 식당에 들어갔다. 달성군 매곡마을이란다. 수제 돈가스를 시키고 젊은 부부에게 일본 유학 얘기도 들려줬다. 장거리여행 중이란 얘기에 일반 돈가스가 왕돈가스로 변하고 반찬 가짓수도 쑥 늘었다.
섬마을을 한바퀴 돌게끔 되어 있는 일본의 사이클 성지 시마나미해도가 생각난다. 우리네 자전거길도 이렇게 마을에 들리게끔 하면 서로 좋은 인연을 맺을텐데…. 여행자는 재밌는 여행담을 선사하고 주인은 맛있는 음식솜씨를 보여주는 상생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텐데….
우주선 모양의 랜드마크가 있는 강정고령보에 도착했다. 역시 낙동강은 스케일부터 다르다. 넓디넓은 강폭에 가슴이 확 트인다. 강 너머로 아스라하게 산들의 스카이라인이 일렁인다. 기온도 어제보다 포근하고 꽃샘바람도 한눈을 팔고 있다. 벼랑 옆으로 난 데크길은 곡선을 그리며 물위를 달린다. 정수장을 피해 산속으로 갔다가 다시 강옆으로 복귀한다. 좁은 도로의 벚나무 가로수는 서로 손을 맞잡고 꽃을 활짝 피웠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벌들은 꽃잎이 활주로 인양 열심히 이착륙 중이다. 윙윙~

여행의 철칙이 무너지다 
구미시 초입인 동락공원에 펼쳐진 봄의 꽃잔치에 홀려 길을 놓치고 말았다. 다시 길을 찾아 갈까하다가 이것도 운명이려니 생각한다. 여기서도 보고 싶은 얼굴이 있다. 전화를 해보니 결번이란다. 그만큼 무심한 세월이 흘러갔나 보다. 기억을 살려 구미시 봉곡동을 무작정 찾아가보기로 한다. 그러려면 여기 구미 남쪽 끝에서 김천 방향 북쪽 끝으로 가면 될 것이다.
공단로를 지나면 산업탑이 나오고 다시 구미역을 거쳐 한참을 묻고 물어 이정화 사장을 만났다. 코렉스 공장 근무 때 과장으로 승진하여 처음으로 맡게 된 물류과에서 같이 일해 남다른 추억이 많은 친구다. 그 당시 300여평의 크고 높은 창고에 쌓인 20여억원 치의 재고 입출고 관리를 하느라 고생도 많이 했다. 일찌감치 가게문을 닫고 삼겹살집으로 들어섰다. 간판이 삼천리로 바뀐 것에 머쓱해하며 과정설명도 곁들인다. 아들 우주에게 자전거 업을 물려주려고 3년간이나 공을 들였는데 시장상황이 계속 좋지 않아 결국 베트남으로 취직해 떠났단다. 여행의 철칙이 무너졌다. 딱 1병이 3병이 되고 얘기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간은 상할지라도 우정은 상하면 안 되지 않겠는가! 건배!

잘 정비된 금호강 자전거길
쑥을 캐러 온 노부부가 타고 온 자전거 커플
강정고령보의 유쾌한 조형물
코렉스 시절 함께 근무한 구미의 이정화 대표

 

18일차 4월 4일
구미 ~ 수안보
밤에 넘은 이화령
역시 세상엔 공짜가 없다. 어제의 즐거운 술자리는 아침의 괴로움을 떠안아야한다. 출발부터 힘든 언덕을 겨우 오르니 선산행 33번 국도가 보인다.
10여km를 달리니 선산읍의 수문장처럼 누각이 서 있다. 떨어질 낙(落)에 남녘 남(南)자의 낙남루 현판을 걸고 있다. 낙동강이란 이름이 상주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이것도 그 영향인가 어림잡는다. 시외버스터미널 내에 있는 식당에 들어간다. 뷔페가 착하디착한 6000원이다. 내 뱃속 상태를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생태탕은 무, 두부와 대파의 기를 살려 펄펄 끓고 있다. 토실토실한 꼬막, 바삭바삭한 튀김과 큼직한 깍두기 등에 숙취가 싹 도망갔다. 수정과로 후식 입가심을 하고 본격적인 라이딩에 돌입한다.
그동안 참새 방앗간 들리듯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계획보다 늦어졌다. 그래서 오늘은 낙동강 자전거길이 아닌 일반 국도를 이용하기로 한다. 선산의 끝자락에서 만난 25번 국도는 전에 봤던 대로 중앙분리대가 있는 4차로로 고속도로같이 뻥 뚫린 길이다. 하지만 바로 옆의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이 많아 조금은 한가한 편이다.
선산대교 밑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옆으로 자전거길이 이어져 있다. 질주하는 차량을 피해 왼편 강둑의 자전거길로 가려해도 이제는 빠져나갈 수가 없다. 오히려 대형차량이 지날 때는 맞바람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 그동안의 여행 경험과 습관으로 차와 함께 달리는 것을 즐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상주시를 지날 무렵 기다리던 3번 국도와 조우했다. 일본의 1번, 2번 국도와 우리의 3번 국도를 이어보려는 뽈락식 억지 스토리텔링이다. 3번 국도도 이미 현대화되어 4차로로 변한지 오래고 문경시 입구부터는 자동차전용도로로 바뀌어 바다미는 옛 국도를 찾아야 한다.

어둠 속에 도착한 이화령 정상(카메라의 노출 장치로 밝게 찍혔지만 실제는 별이 보이는 어둠 속이었다)

 

포항서 온 부부 라이더
보도블럭 교체공사가 한창인 옛 점촌읍인 문경시를 빠져 나와 다시 3번 국도를 달린다. 씩씩거리며 달리는 차들에 굴하지 않고 바다미도 씽씽거리며 달린다. 차량들의 협박도 거세지고 육교에 오르면 갓길도 사라진다. 진남휴게소에서 오랜만에 짜장면의 면발 식감을 음미한다.
이제부터는 새재 자전거길에 올라 유유한 페달링이다. 이곳의 벚꽃은 아직 손님 맞을 준비 중이다. 나보다 짐을 더 실은 자전거가 옆을 스치며 인사를 한다. 살랑살랑한 사이클을 한대 달고서. 포항에서 버스로 상주까지 와서 출발했는데 갈 데까지 가본단다. 아마 시간 날 때마다 국토종주를 이어가는 직장인 커플인 모양이다. 무거운 짐은 남편에게 맡긴 그녀가 좀 야속해 보이지만 같이 해주는 것만으로도 황송한 일인지 모르겠다.
과음으로 구미에서 출발할 때는 쓰린 배를 움켜쥐고 어쨌든 문경까지만 가면 다행이라 여겼다. 문경읍에서 진흙 온천을 즐기려던 우리는 이 젊은이들과 한판 승부를 하고픈 오기가 발동했다. 다 같이 문경새재 관문에서 인증샷을 하고 이화령을 오르고 있다. 국토종주에서 가장 힘들다는 고갯길을 힘은 빠지고 서산에 해 저무는 6시10분에 출발한 것이다. 나름대로 기대한 바는 그동안 겪었던 일본의 고개들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휘휘 감고 올라가는 오르막에는 바람도 잠들어 주위가 조용하다. 가끔 짝 잃은 산새 소리만 처량하다. 저멀리 희미하게 보이던 이화령 정상의 구름다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윽고 정상에 올랐다. 7km를 45분만에 오른 셈이다. 그렇게 넓었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지금은 손바닥만하게 보이듯이 전설의 이화령이 이제는 그냥 보통의 고개 정도로 여겨진다. 바다미가 오히려 뽈락의 허벅지를 어루만지며 아직은 쓸 만하다고 칭찬해준다.
너무 쉽게 올라와 버려서 조금은 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잠시 후 젊은 부부가 도착한다. 사방은 이미 깜깜하여 별들의 잔치가 시작되었다. 처음 올랐다는 두 사람은 인증샷을 아쉬워 한다. 부부의 야간데이트를 눈치 없이 방해하는 것 같아 두 사람을 먼저 보내고 연풍에 머물려 했으나 마땅치 않아 소조령을 훌쩍 넘어 수안보까지 왔다. 숙취의 아침에는 적당히 문경읍까지 가서 쉬려고 했는데 오늘은 포항의 귀인 커플이 이화령으로 이끌어준 덕분에 123km를 무난히 달려 월악산 막걸리를 들이키고 있다. 꿀~꺽!

새재길이 지나는 문경에는 2015 세계군인체육대회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서 있다
이동식 자전거 카페
선산읍의 수문장처럼 버티고 선 낙남루
“왜 세웠어요?” 알고 보니 경찰 마네킹이다
포항에서 온 부부 라이더와 함께 어둠 속 이화령을 올랐다

 

19일차 4월 5일
수안보 ~ 여주
구름에 달 가듯이
수안보에서 느긋한 아침을 맞는다. 어젯밤 이화령을 넘은 일이 꿈속같이 신기하다. 그동안 몇 차례 이화령을 넘었지만 이렇게 밤중에 넘기는 처음이다. 이번엔 바다미도 제법 무게가 나가고 짐도 많은데 샤방샤방 오른 것이 대견하고 기쁘다. 처음 오를 때는 그래도 주변 관찰이 되었는데 정상에 올랐을 때는 완전히 캄캄해져 라이트를 켜고 혼자 길을 나섰다.
내리막길은 도로 사정을 잘 몰라 낮처럼 신나게 질주할 수도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덕에 소조령은 있는지도 모르게 지나쳤다. 중간중간 갈래길이 있었지만 안내판과 바닥에 그려진 자전거 마크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식당들 앞에는 큼직하고 화려한 꿩 조각상이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올갱이 해장국으로 배를 채우고 하루를 시작한다.

쌈밥집 할머니의 친절
소조령을 넘어 한참을 내려왔지만 이곳 수안보에서 충주로 가는 길은 아직도 완만한 내리막이라 마음 편한 길이다. 도로옆 한적한 식당의 처마에는 사이클 레이스의 현판이 붙어 있다. 다음엔 그 집에 들러 주인을 만나 그 그림의 역사를 듣고 싶다.
충주로 흘러드는 달래강의 모습에서 봄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두룽산의 깎아지른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서서 휘도는 강물을 안고 있는 수주팔봉 옆 토계마을은 초가삼간 낡은 다리 옆에 고래등 같은 큰 다리가 완성일보 직전이다. 도로도 넓히고 방갈로도 설치하는 등 올 여름 피서객 맞이에 분주하다.
길은 강을 따라가다 들판도 지나고 이윽고 충주 탄금대에 도착한다. 드디어 새재길은 끝이 나고 남한강 자전거길이 시작된다. 강변길을 한참 달렸는데도 남한강을 되짚어 오느라 바로 건너편에서 탄금대가 손을 흔들고 있다. 점심때가 지나 자전거 호텔·휴게소의 안내판을 보고 열심히 달렸건만 입구에는 우편물이 쌓여 있고 화장실도 드럼통으로 막아 놨다. 뭍으로 반쯤 올라온 배는 이미 넝쿨이 덮고 있고 그 넝쿨마저 세월에 바랬다.
한적한 일반 도로를 가다가 임페리얼 골프장을 지나자 큼지막한 식당이 보인다. 벌써 오후 2시반이다. 쌈밥정식을 시켰더니 2인분 이상이라 곤란하단다. 이런… 내가 손오공이라면 털 한 오라기로 친구라도 한명 뚝딱 만들텐데. 잠시 후 주방 할머니가 나와서는 나를 보더니 특별히 해주겠단다. 역시 오늘의 귀인은 주방에 살고 있었다. 제육볶음이 너무 많아 상추를 2번이나 추가했다. 행복 쌈집이었다. 주인장에게 배도 부르고 후한 인심에 바퀴가 안 움직일 것 같다고 엄살을 떨었다.
앙성온천 근처 옛날 슈퍼의 좁은 상점에는 연탄난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시원한 콜라를 사기가 민망하다. 길지 않은 남한강대교를 건너면 강원도가 어서 오랍신다. 강둑을 따라 휘돌아 가면 흥원창이 나온다. 한강 마포나루에서 이곳까지 배가 오갔다는 옛이야기에 고개가 끄떡여질 정도로 강폭도 넓고 수량이 풍부하다. 바로 옆의 섬강을 거슬러 가다가 가파르게 오르면 영동고속도로가 나온다. 다시 다리를 건너면 경기도 여주땅이다. 처음 학생들과 이 코스를 지날 때 하루에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를 달렸다고 재미있어 했었다. 신륵사 근처에 도착하니 하루를 마감하는 석양이 찬란하다. 오늘도 100여km를 달려 우리 집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오늘 밤만 자고 나면 드디어 금숙이를 만날 수 있겠지. 빨리 자자.

출렁다리가 놓이고 주변에는 새 교량이 건설중인, 새지길의 명소 수주팔봉
옛날에는 서울 마포에서 남한강을 따라 배가 오갔다는 원주 부론면의 흥원창 터
양평에 오니 집에 다 온 것만 같다

 

20일차 4월 6일
여주 ~ 서울
역시 우리 집이 최고
집으로 가는 새벽은 설레고 바쁘다. 대충 세수만 하고는 7시경에 여관을 총알같이 튀어 나왔다. 자전거길로 가려다 양평으로 가는 37번 국도가 바로 나와 그 길을 택했다. 금숙을 비롯한 환영팀과 두물머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해서 마음이 급하다. 먼저 도착해서 여유만만 폼을 재고 싶다.
토요일 아침이라 차량도 적을 것 같아 국도를 선택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자동차 전용도로로 바뀌면서 길이 사라진다. 굴다리를 지나고 보니 오래된 시멘트 포장의 시골길이 나온다. 그것도 공사중이란 안내판과 함께 주변이 어수선하다. 그래도 방향을 보니 강옆으로 가는 것 같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과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에 바다미도 즐거운 눈치지만 길은 오른쪽으로 꺾어지면서 강과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이젠 돌아갈 수도 없고 드문드문 집들은 있지만 물어볼 인기척도 없다. 그냥 계속 가고 있는데 마침 저 멀리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다. 부산으로 마을 봄놀이를 간단다. 일러준 대로 비포장도로를 거쳐 모퉁이를 돌아 나오니 바로 여주보가 짠 하고 나온다. 그동안 이 자전거길을 수 없이 다니면서도 바로 옆 야산 너머에 있는 시골마을을 몰랐던 것이다.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자전거도로는 깔끔하게 단장되어 쭉쭉 뻗어 우리를 반긴다. 오토캠핑장의 텐트 주변에는 아침준비에 사람들이 분주하다. 키 큰 나무에는 태극기가 연처럼 걸려 펄럭이고 있다. 이포보와 파사산 사이를 지나 양평군에 들어선다.
오늘 마침 바람이 늦잠을 자는 틈을 타 바다미는 앞으로 쑥쑥 나아간다. 꿈꾸는 노랑 산수유가 활짝인 개군에 들어선다. 옆길로 빠져서 개군우체국 앞 할머니순대국집 앞에 바다미를 세우고 가방을 여는 순간, 아차!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뒤져도 없다. 어제 묵었던 모텔에 연락을 해본다. 잠시 후 지갑이 있다고 한다. 우리 딸 갱이 언제나 잘 챙기라고 해서 신경을 꽉 쓰다가 마지막에 아차 했다. 마침 여권 속에 있던 일본 1000엔짜리를 들고 식당 할머니께 사정 얘기를 했더니 얼마짜린지 몰라도 아무튼 특순대국밥을 내줄테니 맛있게 들고 가란다. 든든한 배를 두드리면서 아무 걱정 없이 다시 달린다. 단체 팀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간다. 간간이 나타나는 200미터 내외의 터널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깜박거려서 동화속의 피터팬이 된 기분이다.

도쿄에서 서울까지 1965km 무사 완주
금숙과 만나기로 한 양수역에 도착하니 12시 5분 전이다. 올림픽공원에서 출발한 환영팀은 미사리 근처에서부터 차가 거북이로 변했단다. 약속 장소를 바꿔서 팔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양수대교 입구에서 한 컷하고 다리를 건넌다. 주말이라 트레킹하는 등산팀, 평상복 차림의 하이킹 가족, 속도감을 즐기는 사이클 팀, 트로트 음악에 맞춰 페달링하는 슬슬 시니어 등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이 봄을 즐기고 있다. 잔잔한 호수의 물결 끝에 팔당댐의 아치가 무지개처럼 걸려 있다.
옛 철길이 끝나는 팔당 입구에서 손수건을 흔드는 모습이 보이고 함성도 들린다. 이때는 감동·감격의 눈물이라도 좀 흘려야 되는데… 이렇게 뽈락은 무심하고 무드 없는 갱상도 사나이일 뿐이다. 꽃다발까지 준비한 환영팀은 사랑하는 금숙과 자전거가 맺어준 선배들이다. 올해 8학년이신 김문배 선배와 박양자 회장 부부는 우리에겐 자전거 멘토 커플이다. 라금봉 이사와 장순희 이사는 누나같이 잘 챙겨주는 든든한 후원자이다. 몸보신해야 한다며 민물장어와 매운탕을 시켜 막걸리 한잔으로 축배를 든다.
형, 누나들 앞에서 재롱떨듯이 바다미와의 여행담을 한껏 풀어놓는다. 금숙과 일행은 지갑을 찾으러 여주로 향하고, 바다미와 팔당대교 밑을 지날 때쯤부터 뽈락의 감동 눈물을 대신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오는 비도 나를 환영하는 음악으로 들린다. 헬멧과 비옷을 드럼을 두드리듯 따닥따닥 빗방울이 춤추고 있다.
뚝섬유원지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 중랑천을 거슬러 오른다. 장안교 다음 겸재교에서 강둑을 타고 오르니 우리 집이 보인다. 오후 6시. 문을 여니 기동이가 반갑게 꼬리를 흔든다. 2차 환영식은 아들과 예비 며느리와 함께 4명이서 동네 고바우식당에서 하는 건배다. 도쿄에서 서울까지 내가 만든 자전거인 바디미와 둘 다 무사히 도착한 것이다.
금숙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사랑과 응원이 훌륭하고 든든한 엔진의 역할을 해주었다. 도쿄에서 시모노세키까지 14일 걸려 1374km, 그리고 부산에서 서울까지는 6일간 591km 총 1965km를 달렸다. 좌충우돌 모험 같은 아날로그적 여행이라서 창피하고 불편한 사건도 있었지만 뽈락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인생의 한 페이지다. 그래서 즐겁고 뿌듯하다. 고맙다. 이 세상 모든 것이!(끝) 
 

나뭇가지에 태극기가 가득 걸렸네! 이포보 캠핑장 근처에서
“여기 맞아요?” 드디어 집 앞에 도착한 바다미
팔당까지 마중 나와 준 금숙과 지인 분들
가족의 환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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