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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배가본드4-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 닥친 일대위기자전거와 장비까지 모조리 도난… 아,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 닥친 일대위기
자전거와 장비까지 모조리 도난… 아,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미국으로 넘어와 워싱턴주 시애틀을 거쳐 오레곤주 포틀랜드로 들어섰다. 일본에서 함께 유학한 호진 형을 반갑게 만났지만 기쁨도 잠시, 마트에서 잠시 장을 보는 사이 묶어둔 자전거를 도난당하고 말았다. 몸에 지닌 지갑과 핸드폰을 제외하고 모조리 잃어버린 것이다. 절망, 좌절, 슬픔… 견딜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내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준 분들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시애틀 타워 앞에서. 자전거를 도난당하기 전에 찍었던 사진

 


usa 36일째
전 재산을 도난당하다
포틀랜드는 미국에서 Top 3 안에 들 정도로 자전거 인프라가 잘 갖춰진 자전거 도시다. 많은 사람들이 취미, 운동 또는 출퇴근의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 자전거 이용률이 높은 만큼 자전거를 노리는 도둑도 많아서 미국에서 자전거 도난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도시로 악명이 높다.
일본 도쿄에서 1년간 유학생활을 했던 나는 당시 같이 유학생활을 했던 호진 형에게 미국 포틀랜드에서 공부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안 그래도 미국에 입국하고부터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터라, 포틀랜드에 도착하면 조금은 쉬려고 했다. 포틀랜드에 도착해 호진 형을 2년 만에 재회했을 때는 정말 기뻤다. 호프집에서 회포를 풀고 호진 형이 머물고 있는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맥주를 사러 잠시 마트에 들렀다. 15분정도 지났을까. 맥주를 사고 나왔는데 마트 앞에 묶어둔 자전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출구를 잘못 나온 줄 알고 후문으로 다시 나왔으나 역시 자전거는 정문 앞에 세워둔 것이었고 호진 형 자전거 옆에 묶어뒀던 내 자전거만 감쪽같이 사라졌다.
둔탁한 무언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고 상황 파악이 잘 안됐다. 머리가 새하얘진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겠다. 전속력으로 마트 주변을 한 바퀴 돌아봤지만, 자물쇠를 끊고 자전거를 훔쳐갈 정도로 계획된 범죄였기에 도둑이 주변에 흔적을 남길 리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모든 것을 도난당하고 내가 갖고 있던 건 카메라, 여권, 카드가 들어있는 지갑과 핸드폰 뿐이었다. 당장 갈아입을 속옷도 없어서 호진 형의 속옷을 빌려 입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암울했다. 꿈이 접히는 기분. 절망 속에서도 졸음은 쏟아졌다. 가족에게 전 재산을 도난당한 소식을 보내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억울하고 분했는지 2시간 뒤에 눈이 떠졌다. 자는 동안 도착한 가족의 격려 문자를 받아보고 어둠 속에서 혼자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다음날, 정신을 차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했던 세 가지 방법은 이러했다. 첫째, 남은 돈으로 중고장비를 구입해서 1년 안에 여행을 마친다. 둘째, 배낭과 침낭만 사서 히치하이킹으로 남미까지 간다. 셋째, 귀국 후 돈을 벌어서 다시 미국으로 온다. 세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 것도 실행에 옮기고 싶지 않았다. 일단은 마트 앞에서 찍힌 CCTV의 영상을 토대로 범인을 찾아보겠다는 경찰의 말을 믿고 며칠간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경찰서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기다림 없이 흘러만 갔다.
침대에 반쯤 걸터앉아 멍하니 핸드폰만 만지작거린다.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어떤 비행기 표를 사야할까? 경유는 몇 번이든 좋으니 가격이 싼 비행기 표를 사는 게 좋겠다. 조금이라도 더 싼 비행기 표를 구하려고 애쓰는 내 모습에서 반발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부글부글 무엇인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래, 이건 반항심이다.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싫은 본능적인 반항.
‘아직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끝까지 발버둥치리라.’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나의 이야기. 누군가는 읽어줬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적기 시작했다.
이튿날 아침, 포틀랜드 지역 신문사, 방송국, 내 페이스북에 자전거 도난 소식을 알렸다.  자전거 페달을 돌리면 바퀴가 돌아가 듯, 염원을 담은 나의 메시지에 포틀랜드 사회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틀랜드 전경
눈물을 흘리며 많은 생각을 했던 숙소의 침대

 

usa 41일째
Take Min on the road
여행을 시작하고 몸무게가 6kg나 빠졌다. 매일 100km씩 자전거를 탈 때보다 자전거를 잃고 마음고생 하면서 더 많이 야윈 것 같다. 몸이 고단한 게 마음이 힘든 것보다 훨씬 낫다는 얘기다.
포틀랜드 지역 커뮤니티에 내 소식을 알리고 하루가 지났다. 지역사람들이 내 글에 공감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도와줄건 없는지 물어왔다. 따듯한 위로의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된다는 걸 느끼고 있을 즈음, ‘브라이언 핸스’의 메시지는 나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헤이 친구, 절대로 포기하지 마! 우리 포틀랜드는 너를 다시 도로 위로 돌려보낼 거야.”
지난 10년간 포틀랜드에서 도난 자전거를 찾아주는 일을 해온 그는 확신에 차있는 말투로 나를 위로했다. 그의 말에 자신감마저 느껴졌다. 실제로 포틀랜드에서 브라이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신문사, 방송국 직원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했고, 순식간에 몇몇 방송국에서 나에게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오전, 오후로 인터뷰를 한 편씩 찍고 곧바로 그날 저녁 포틀랜드 전역에 나의 슬픈 뉴스가 방송됐다. 며칠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끌어안고 있던 슬픔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미디어의 영향력은 실로 엄청났다. 방송이 나간 뒤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관심이 생겼고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고 싶다며 연락해왔다. 포틀랜드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는 일본계 미국인 ‘제나 요코야마’는 머무를 곳이 없는 나를 집으로 초대해주었다. 그리고는 나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영문서류, 통역 일을 담당해주었다. 라디오 DJ인 그녀의 영어는 어릴 적 EBS 교육방송에서나 듣던 고급스러운 발음이었다. 제나와 브라이언은 일면식이 없는 사이지만, 나를 돕겠다는 일념 하나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기부회 일정을 잡았다. 일사천리. 흩어져있던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브라이언의 추진력에 힘을 얻어 모든 것들이 거침없이 빠르게 진행됐다. 

무소유(無所有) 시절 내 모습. 살이 6kg이나 빠졌다
기부회 날 브라이언 핸스와의 만남. 그에게는 아직도 감사하다

 

며칠 뒤, 포틀랜드의 작은 맥주집에서 기부회가 개최됐다.
‘Take Min on the road.’(민형을 도로로 보내자)
이날의 슬로건이었다. 맥주집에 도착했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놀랐다. 며칠 전 인터뷰를 했던 방송국 사람들도 보였고, 포틀랜드 한인회에서도 소식을 듣고 발걸음을 해주셨다. 대부분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는 브라이언도 있었다. 브라이언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말없이 그를 끌어안았다. 브라이언도 웃으며 나의 포옹을 받아주었다. 너무 고마웠기에 꽉 껴안았다. 이 사람은 내편이라는 사실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브라이언에게 물었다.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포틀랜드에서 자전거를 도난당하는데, 왜 저만 특별하게 뉴스에 소식을 보내고 기부회를 열어주신 건가요?”
“아메리카 자전거 종단을 나선 한국인 청년이 포틀랜드에서 꿈이 접혔다, 라는 신문기사를 보고 싶지 않았어. 나는 너의 긴 여행이 우리 동네에서 끝난다는 게 너무 싫었어(웃음).”
그의 대답은 유쾌했지만, 그 대답 안에는 굳은 이유가 있었다. 나는 이미 울먹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넋 놓고 감동받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맥주집을 찾아온 손님들이 죄다 ‘미스터 킴’을 찾았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 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받았다.
“우리 동네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정말 미안해, 포틀랜드에는 네가 생각하는 만큼 나쁜 사람만 사는 건 아니야. 우리 포틀랜드를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줘.”
따듯한 위로와 함께 그들은 주머니에 고이 접어둔, 20달러를 내게 건네주며 여행에 보태 써달라고 한다. 편지봉투에 담긴 편지와 10달러, 20달러, 50달러의 지폐들. 그들이 나에게 원하는 건 한 가지였다. ‘내가 여행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
먹먹한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을 즈음, 방송국 리포터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지금 심정이 어떤가요?”
“영화 같아요.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는 게 꿈만 같다고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는 대답했다. 이날은 여행을 시작하고 가장 많이 웃은 날이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기부회는 끝이 났다. 제나의 집으로 돌아와서 받은 편지와 돈, 자전거 여행 장비를 정리했다. 두툼하게 쌓인 돈다발과 편지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40일 전에 한국을 떠나올 때는 혼자였는데, 더 이상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정성어린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현지인들의 끝없는 베품에 진심으로 감동받았다. 자전거를 도난당했던 일주일 전에는 좌절과 슬픔에 울음을 터트렸는데 이 날은 감동과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 여행을 시작한지 한 달하고 며칠, 나는 울보가 되었다.

기부회를 찾은 사람들에게 받은 편지와 돈. 집에 돌아와서 짠한 마음으로 편지를 모두 읽었다. 총 600만원어치를 분실했으나 800만원 이상이 모금되어 다시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전화위복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일까
기부회에서 했던 인터뷰
왼쪽부터 리포터 앤드류, 자전거 탐정 브라이언 핸스와 나

 

usa 67일째
포틀랜드에서의 한 달
라디오 DJ 제나의 집에 머무르면서 잃어버린 여행용품을 다시 모으기 시작했다. 제나는 내가 포틀랜드에서 완벽하게 여행준비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내가 필요한 것을 찾을 때마다 아웃도어 매장이나 자전거샵까지 차로 태워주기도 하고, 자신이 쓰는 좋은 캠핑용품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한없이 베풀어주기만 하는 제나가 날개 없는 천사로 보였다. 나에게 왜 이렇게까지 친절한지 그 이유를 파헤쳐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 년 전에 제나는 남편 아담과 함께 6개월간 미국 서부종단 트레킹을 했단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이라는 이 코스는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정장 4300km가 넘는 산길을 걷는 여정이다. 제나와 아담은 몇 개월간 트레킹을 다니면서 힘들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만난 현지인들의 베품에 크게 감동 받았다고 한다. 절박한 상황에서 따듯한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귀중한지 알기에 그녀는 나를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어깨너머로 후광이 비쳐보였다. 위기가 곧 기회로 바뀐다.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전 재산을 도난당했기 때문에 좋은 사람들과 인연이 닿은 게 아닐까.
주말이면 제나 부부와 함께 포틀랜드 근방의 산으로 트레킹을 다녔다. 풀냄새를 좋아하는 내게 트레킹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제나는 식물도감을 들고 다니며 산길에 핀 꽃의 이름을 찾아보면서 트레킹을 한껏 즐기는 모습이었다. 모르는 꽃의 이름을 새롭게 알게 됐을 때 그녀는 마치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처럼 환하게 미소 지었다.

카투 뉴스 인터뷰
포틀랜드를 떠나기 전 DJ 제나와 라디오 녹음을 하던 날
제나와 아담. 두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여행을 이어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제나의 집 창고에서 다시 떠날 준비를 하며 잃어버린 용품을 차곡차곡 모았다

한 달간 제나의 집에서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다. 산악구조대원 션, 도자기 공예사 희영 누님, 라디오 DJ 케넌, 사진가 도죠, 유학생 호진 형.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다. 내가 모르는 삶의 이야기.
잃어버린 여행용품을 다시 모으는데 3주가 넘게 걸렸다. 은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은빛날개가 뜯겨서 날 수 없었던 잠자리에게 다시금 날개가 돋아난다면 이런 기분일까. 절망은 어느새 희망으로 바뀌었고 나는 용기를 되찾았다.
포틀랜드를 떠나기 이틀 전, 제나는 라디오 방송국에 나를 초대했다. 녹음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여행과 꿈. 이날의 인터뷰 주제였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 제나는 나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머물러줘서, 같이 밥 먹고 밤늦도록 이야기 나눠줘서, 함께 웃어줘서 고마워.”
제나는 울먹이고 있었다. 제나의 말을 듣는 나도 코끝이 짠해졌다.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 이별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다음을 기약하기 힘든 이별이라고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차갑게 아려왔다. 이별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포틀랜드에서 만난 인연들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포틀랜드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의 불 오브 우즈 윌더니스(Bull of the woods wilderness) 산 정상에서 아담(17번)과 나(18번)

 

usa 68일째
불타는 5번 프리웨이
포틀랜드를 떠나는 날은 기록적인 폭염이 발효됐던 날이었다. 자전거를 타는데 아스팔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운동화 밑창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한 달 만의 라이딩이라 힘든 것이라 생각했는데, 30분 이상 도로위에 있으면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운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날은 화씨 110도, 그러니까 섭씨 43도를 웃도는 날씨였다.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더위였다. 어쩐지 길가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 보이지 않더라니. 도로변에는 농작물이 마르지 않게 360도로 회전하며 물을 뿜는 분수가 종종 보였다. 분수가 보일 때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분수로 달려가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윗옷을 흥건하게 적시고 다시 자전거를 타도 20분이면 옷이 다 말라 버렸다.

다리 밑에서 잠시 쉬어가면서 셀카 한 장

 

해질 녘까지 70km 정도 달려서 도착한 작은 마을 살렘(salem). 현지인 집 앞에 캠핑을 허락 받았다. 창고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던 테리 아저씨는 3일 전까지 경찰이었지만 지금은 백수가 됐다며 미국식 개그로 자신을 소개했다. 집에서 샤워도 시켜주고 맥주도 건네주는 등 내게 친절을 베풀어주는 아저씨 가족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이윽고 졸음이 쏟아져서 텐트로 돌아가 자려고 하니, 아들 게이브는 내게 다가와서 구글 번역기를 재생시켰다.
“새벽에 화장실이 급하면 현관문을 똑똑 두드리세요.”
음성이 변조된 이상한 한국어가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피식 웃으며 게이브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다음날 다시 길을 떠나려고 자전거에 짐을 싣고 있는데 테리 아저씨가 같이 아침 먹자고 하신다. 테리 아저씨의 차를 얻어 타고 근처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식사를 하면서 테리 아저씨의 아들 게이브가 나랑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게이브가 서른이 넘은 줄 알았던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치킨가스를 썰면서 게이브에게 나는 몇 살로 보이는지 물었다.
“음, 한 29살?”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게이브도 나를 실제 나이보다 많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스물다섯 동갑인데 서로 상대방을 노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노안으로 보이게 된 모든 이유를 검게 그을린 피부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포틀랜드를 떠나던 날, 섭씨 43도의 도로를 달리며 쓰러질 뻔 했다
도로변에 분수가 보일 때마다 머리를 씻고 옷을 적시며 자전거를 탔다
살렘에 도착해서 테리 아저씨 집 앞에서 캠핑
테리 아저씨와 부인
동갑친구 게이브

 


김민형 작가  bicycle_lif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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