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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골목길(7)-주현미의 이태원, 강남 그리고 영동대교까지주현미의 이태원, 강남 그리고 영동대교까지

대중가요의 골목길(7)
주현미의 이태원, 강남 그리고 영동대교까지


주현미는 이제 트로트의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화교소학교 4학년 때 이미 이미자의 노래로 그랑프리를 거머쥔 하늘이 내린 그녀의 노래는 길보드 차트의 전설적 1위 <쌍쌍파티>에서 폭발한다. <이태원 연가>가 흐르는 남산자락에서부터 흥청거리는 환락의 거리 신사동의 밤 이야기는 현철의 <추억의 테헤란로>를 거치며 강남 한 바퀴를 돈다. 영동대교에 이르러면 신도시 강남에서 이루어진 80년대식 남녀의 사랑과 이별도 흐느끼는 빗속에서 매듭지어진다

제3한강교로 만들어진 한남대교는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강을 건너는 상징적 다리로 경부고속도로와 이어져 있다

 

주현미가 부른 블루스 곡의 걸작 <이태원 연가>
태풍 ‘링링’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웃비만 그치자 자전거를 끌고 이태원에 접어든다. 주현미의 <이태원 연가>가 탄생한 공간을 지나가 보기로 한다. 미8군 문화에서 잉태되어 다국적 문화로 융합되어 국제적 거리로 이루어지기까지 이태원은 꽤 많은 시간을 지나와야 했다.

전국의 많은 지명을 선점한 주현미의 노래는 이태원도 예외가 아니다. 그녀가 화교라거나 대학 시절 ‘강변가요제’에 참가했다거나 약국까지 차렸던 약사라는 이야기는 너무 알려져 건너뛴다. 노래의 재능은 한성화교소학교 4학년 때 MBC-TV ‘이미자 스페셜’에서 <잊을 수 없는 연인>을 불러 그랑프리를 먹었다는 데서 이미 입증된다. 고속도로 발 ‘쌍쌍파티’의 돌풍은 소위 ‘길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며 그녀를 트로트의 세계로 내몬다.
<이태원 연가>가 탄생하기 1년 전, 그녀의 데뷔 음반의 타이틀곡인 <비내리는 영동교>가 빅히트하는 통에 그 쟈켓의 세 번째 곡인 <미련부르스>라는 노래는 빅히트에 깔려 잊혀져버린 노래가 된다. 장경수 작사 남국인 작곡인 이 곡이 실은 주현미의 데뷔곡이라고 한다.
지금 전성기를 구가하는 작사가 장경수가 막 가요계에 등판하여 이태원, 오늘날 경리단길로 통하는 단칸방에 어렵게 살 때였다. 남석현이 작곡한 노래 멜로디가 너무 좋아 주현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작사했다는 노래가 <이태원 연가>다. 블루스풍의 대중가요가 히트하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 노래는 이태원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요가 그러하듯이 이태원만 빼면 어디에 갖다 놓아도 통하는 남녀의 절절한 이별의 애가(哀歌)다.

밤 깊은 이태원 불빛 속에서
젖어버린 두 가슴
떠나갈 사람도 울고 있나요
보내는 나도 우는데
새벽 찬바람은 가슴 때리고
쌓인 정을 지워버려도
아~~못다한 사랑에 외로운 이 거리
잊지는 말아요 이태원 밤 부루스
밤 깊은 이태원 안개 속에서
말 없던 두 사람
어디서 들리는 사랑 노래는
슬픔만 더해 주네요
새벽 찬바람이 등을 밀어도
고개 돌려 뒤돌아보던
아~~마지막 그 모습 남겨진 이 거리
잊지는 못해요 이태원 밤부루스
<이태원 연가> 
 장경수 작사, 남석현 작곡, 주현미노래, 1986, 오아시스레코드


작사가 장경수는 조용필의 <상처>, 최진희의 <꼬마인형>, 박정식의 <천년바위> 등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톱클래스의 가요작가다. 이태원에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혼혈인 가수들과의 인연이 그의 가요시적 감성을 일깨워 평생 가요계에서 밥벌이를 하게 했다. 이제 김동찬, 김병걸, 김순곤, 강은경, 이건우 등과 함께 가요 작가계의 정상에 서 있다.   실없는 농담을 너무도 천연덕스레 잘하는 그가 주현미의 인간미를 말한다.
“장 선생님, 선생님과 저는 생계형 작사가고, 생계형 가수 아니에요? 저는 선생님 노래로 데뷔하고, <이태원 연가>가 히트하면서 결혼도 했으니까요”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트로트의 별 주현미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증언한다.


경부고속도로와 혜은이의 <제3한강교>
이태원에서 한강진역을 끼고 돌아 강남으로 향하면 한남대교를 건너야 한다. 굳이 ‘제3한강교’를 말하려면 1985년 개명한 한강의 ‘4번째 다리’라고 주석을 달아야 안다. 70년대 강남개발, 아니 국토개발의 상징적 다리로서 ‘제3한강교’를 지금까지 널리 알린 것은 단연 혜은이의 공로다.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한남대교>로 이름을 바꿀 수는 도저히 없다. 그 시절의 이미지를 그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국민학교’를 치면 ‘초등학교’라고 자동변환이 되지만 그 초등학교에는 나의 국민학교 시절이 담겨 있지 않은 것처럼.
1969년 12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며 이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한남 나루터였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용산고등학교에 다니던 내 선배의 이야기다. 학교에서 고등학교 1학년 신입생들에게 담임선생님이 가정환경조사서를 내도록 했다. 며칠 후 선생님이 종례시간에 나오라고 이름을 부르더니 “야, 안00, 너 임마~ 뭐, 통학수단이 ‘배’라고? 장난하냐?” 다짜고짜 출석부로 머리통을 내리쳤다. “왜 때려요? 저는 한남나루에서 배로 한강을 건너다니는데요.” “???” 그는 지금의 코엑스가 있는 삼성동, 그러니까 옛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삼성리에 사는 농사꾼의 아들이었다. 선생님의 사과는 없었지만 그 뒤로 그는 비구름이 몰려오면 배편이 끊어질지 모른다는 핑계로 책가방을 싸서 공인 조퇴를 무시로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제3한강교의 개통으로 대한민국 경제, 교육의 일번지로 고속성장하는 강남행 직통다리가 놓인 것이다. 한강 인도교로 이어지던 1번 국도의 중심축은 바뀌었다. 서울의 심장에서 내뿜는 발전의 혈액을 남산에 터널을 뚫고 바로 경부고속도로를 동맥으로 하여 전국으로 보냈다.
이제 예순에 접어든 혜은이에게 언뜻 떠올리긴 어렵지만 ‘70년대 아이유’ 같은 국민 여동생의 애칭이 붙은 이유는 그 시절 날개 돋힌 듯 팔린 앨범 쟈켓을 보면 알 수 있다. 쌍거풀이 진 듯 만 듯한 그녀의 눈에는 가녀린 이미지까지 더해 ‘선데이서울’에 실린 화보를 떼어내 벽에 붙여 놓고 살던 총각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 둘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 둘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흘러만 갑니다 흘러만 갑니다
<제3한강교>  
길옥윤 작사 작곡, 혜은이 노래, 1970


언제부터인가 지금의 가사로 젊잖아졌다.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했다’는 이야기의 퇴폐나 ‘첫차를 타고 이름 모를 거리로 떠나간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견디지 못한 시대와의 불화 속에 타협된 노래로 바뀐 것이리라.

영등포의 동쪽, 영동 개발과 <신사동 그 사람>
한남대교를 건너 들어서는 강남은 언덕이 가로막는다. 거기 신사동은 1970년대 후반부터 환락의 거리로 태어난다. 강남개발은 1972년 ‘특정지구개발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이라는 제도적 보장 아래 날개를 단다. 세금규제의 전면완화는 지하 룸살롱으로 흘러 들어가는 양주에까지 세금 혜택이 돌아갔다. 새로 들어서는 압구정동 아파트를 배경으로 밭에서 소를 몰며 쟁기질하던 농부의 사진은 그 시대의 천지개벽을 말해 준다. 더러는 졸부가 되기도 했고, 더 먼 바깥으로 땅을 사서 농사를 고집한 이들도 있었다.
눈먼 돈이 돌던 시절의 밤은 네온과 함께 신천지를 만들고 신사동 언저리에는 술과 춤이 넘쳐났다. 신사역 사거리 주유소 건너편 건물에는 ‘88‘ ’궁전‘ 카바레가 자리 잡았고, 영동호텔 지하에는 ’황궁‘이 불야성 속 성업이었다. 즐거운 박자 속에 출출해진 사람들이 찾는 뒷골목엔 마산아구찜과 대구따로국밥집이 철야를 했다. 그래도 술이 성에 안 찬 축이 찾아가는 ‘아네모네’ 마담은 자정 넘어 셔터를 내리고도 새벽까지 물장사를 했다. 그 가운데 탄생한 노래가 <신사동 그 사람>이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마주치는 그 눈길 피할 수 없어
나도 몰래 사랑을 느끼며 만났던 그 사람
행여 오늘도 다시 만날까
그날 밤 그 자리에 기다리는데
그 사람 오지 않고 나를 울리네
시간은 자정 넘어 새벽으로 가는데
아~그 날밤 만났던 사람 나를 잊으셨나봐
희미한 불빛 사이로 오고 가던 그 눈길 어쩔 수 없어
나도 몰래 마음을 주면서 사랑한 그 사람
오늘 밤도 행여 만날까
그날 밤 그 자리에 마음 설레며
그 사람 기다려도 오지를 않네
자정은 벌써지나 새벽으로 가는데
아~ 내 마음 가져간 사람 신사동 그 사람
<신사동 그 사람>  
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 주현미 노래, 1988, 지구레코드


그간의 단조 발라드의 그늘을 벗어나 빠른 템포로 맛을 더하는 이 노래 속 희미한 불빛은 조도를 극도로 낮추어 어둠 속에서 욕망을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장치다. 그 속에서도 마주치는 눈길,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남자를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설렘과 기다림을 간직한 여인은 순진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안타깝게 기다리며 반신반의하는 마음조차 경쾌하게 표현한 노래여서 오래 사랑받고 있는 것이리라.
여기서 트로트의 신예 문희옥이 발굴된다. 은광여고 3학년 때 팔도사투리 메들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녀가 신사동 가로축에서 주현미의 바톤을 이어 받는다. 역시 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의 두 노래 <사랑의 거리>(1989)와 <강남멋장이>(1990)는 좀 더 진도가 나간다.
사랑의 거리가 강남의 환락공간을 말한다면 강남멋장이는 그 속의 인물에 집중한다. 어느 평론가가 말한 노골적인 호객행위라고 하긴 뭣하지만 그 시대 강남의 밤풍경이기도 하다.


네온이 꽃피는 강남의 밤거리
장미 한 송이 손에 들고서
노래하는 강남 멋쟁이 
제아무리 잘난 사람도
어쩌다 두 눈길이 마주칠 때면
느끼는 감정 참을 수 없어 
여보세요 한 번만 만나주세요
 하면서 미소를 받는
강남 멋쟁이 
사랑이 꽃피는 강남의 밤거리
사랑 가득히 한몸에 안고
노래하는 강남 멋쟁이 
제아무리 잘난 사람도
어쩌다 스리 살짝 미소만 주면
황홀한 기분 감출 수 없어 
여보세요 시간 좀 줄 수 있나요
하면서 미소를 받는
강남 멋쟁이 
<강남 멋장이> 
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 1990, 지구레코드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에서 외롭거나 쓸쓸할 때,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은 오라는 노래는댄서나 호스티스의 호객이 아니라 외로운 사람들끼리 ‘사계절 봄봄봄’을 외치며 즐겁게 놀 수 있는 그 시대의 위락공간을 말한다. 자전거로 강남대로를 달려봐야 이 비싼 땅으로 몇 거듭을 나기 전, 시흥군 신동면 양재리 말죽거리로 가는 고개와 구릉이 잇달아 펼쳐지는 지형을 체감하게 된다.
신사동 가로축 ‘화류전선’은 더욱 확장되어 학동역4거리 근처까지 숱한 룸살롱 군락촌을 이루었다. 영업시간 단속을 피한 셔터 속에서 맥주+양주의 폭탄은 투하 횟수를 늘려간다. 손님을 끌고 오는 값 ‘텐프로’를 속셈에 넣은 마담들의 작전 속에 ‘북창동식 룸살롱문화’는 한강 도하 후 성공적 ‘강남버전’으로 진화한다. 단골손님의 기발난 폭탄주 개발에서 소주+백세주+산사춘의 ‘소백산’은 저강도 폭탄이다. 뿅가리, 타이타닉, 수류탄, 칙칙폭폭, 쌍끌이, 황제주, 벤처주까지 국방과학연구원도 상상치 못한 신형 폭탄을 아마 그 시절 주당들은 기억하시리라.

 

<신사동 그사람>을 만난 신사사거리에는 그 시절 이름 날리는 카바레가 여럿 있었다(신사동)
술과 춤이 한 판 끝나고 나면 찾던 마산아구찜 골목(신사동)
연인과 함께 타는 자전거는 여전히 즐거운 연애의 소도구다(신사동)
강남대로는 이 땅의 욕망이 모이는 직진주로다. 태극기가 오래도록 지켜주길 기원한다(서초동)
강남역 지하상가는 2호선 전철을 타고 내리는 1일 유동인구 20만명 승객으로 시끌벅적한 지하상권의 왕자다(서초동)

 

세계로 퍼져간 강남역, 성형미인의 도시
강남역은 2호선 순환 지하철이 지나는, 1일 승하차 인원 20만 명으로 ‘19년 연속’ 이용객이 가장 많은 역이다. 청춘들이 몰려드는 강남대로에서, 지하 강남역 상가의 북적거림에서 불경기의 그림자를 잠시라도 잊는다.
한 건물 건너 들어서 있는 유학원과 성형외과는 칼로 손을 대서라도 아름다움을 얻어야 그게 힘이고 권력이 된다는 사실에 눈뜬 ‘뷰티 코리아’와 붕어빵처럼 찍어낸 ‘K팝’이 세계의 신명을 흔들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전진기지다. 신논현역에서 뱅뱅사거리 사이의 대로는 활기찬 대낮의 강남과 취기 가득한 밤의 강남으로 사람들을 불러오는 직선주로다. 아직 성형의 부기가 빠지지 않아 마스크를 하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여성들이 삼삼오오 거리를 활보한다. 가장 번잡한, 도시의 이 지하 교차공간에서는 세일과 유행으로 승부하는 상권의 화망(火網)을 피해 가기도 어렵거니와 화살표를 보지 않고는 도저히 햇빛으로 나갈 수조차 없다.
다시 기억을 되살린다. 2016년에 발생한 강남역 공중화장실 여성 살해사건은 비정한 도시의 이미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한 조현병 환자의 난자(亂刺)는 전형적인 ‘묻지마 살인’ 속에 여성혐오라는 대립의 비극이 담겨 있는 현장을 보여주었다. 성형의 본산에서 여성혐오라니! 잘난 여인에 대한 질투인가. 못난 남자의 반란인가.
 

이란과 좋았던 시절, ‘추억의 테헤란로’
강남역에서 좌회전을 하여 언덕길로 접어들면 테헤란로가 시작한다. 1977년 구자춘 서울 시장이 이란의 테헤란시장과 함께 세운 ‘테헤란로’ 비석이 초라하게 늙어 가고 있다. 테헤란에도 ‘서울로’가 만들어질 정도로 우호가 깊었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영원한 우방도, 변치 않는 사랑도 없다 해야 옳다. 국내 원유수송 물동량 72%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확보를 위해 미국이 요청한 한국군 파병은 턱밑에 들이댄 칼날처럼 거절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테헤란로 좌우는 빌딩의 숲에서 언덕바지 구석에 있던 국기원이나 격조있는 웨딩의 상징으로 목화예식장을 기억하는 이는 옛사람이다. 이 거리는 이 나라 경제의 기상도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빌딩공실률의 표준지다. 테헤란로 뒷골목에 ‘소(小)헤란밸리’가 뜬다는 기사도 결국 ‘국내 제1의 스타트업 메카’가 이루어질 만한 창업생태계가 역삼동 비탈에 오밀조밀 몸을 기대고 있다는 말이 된다.
힘겹게 금융감독원이 있는 테헤란로 가장 높은 고개턱에 올라서면 삼성역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이 더 시원해 보인다. 강남을 설계하면서 당시에는 아마도 이렇게 넓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가졌음직하다.
트로트 애호가에게 ‘테헤란로’는 현철의 노래 한 곡으로 새겨져 있다.
 

피우지 못한 그 사랑에 꽃잎을 접어둔 채로
비오던 밤에 우리는 서로 눈물로 헤어진 뒤
그리움과 외로움이 그 여인을 생각게 하며
오늘도 터벅터벅 홀로 걷는 테헤란로
아~아~아~아 추억의 테헤란로
이루지 못한 그 사랑에 아쉬움 남겨둔 채로
다시 또 만날 기약도 없이 우리는 헤어졌지만
 그리움과 외로움이 그 여인을 생각게 하며
오늘도 터벅터벅 홀로 걷는 테헤란로
아~아~아~아 추억의 테헤란로
<추억의 테헤란로>  
윤익삼 작사, 남국인 작곡, 현철 노래, 1984, 지구레코드


이 노래 역시 <신사동 그 사람>이나 <강남 멋장이>처럼 지명을 빼고 나면 어디에도 이 거리를 특정할만한 그 무엇은 없다. 그저 투박한 부산 사나이, ‘현철과 벌떼들’로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면서도 비교적 늦게 트로트로 운이 트인 현철을 떠올리면 곡조가 이내 튀어나온다. 트로트의 꺾기가 비음과 섞여 몇 번씩 뒤집고도 자연스레 돌아오는 현철이다. 성형을 진하게 하여 감정변화를 유심히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는 그의 얼굴에는 두툼한 입술이 두드러진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일까 ‘가요무대’에서도 그를 자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란과 잘나가던 시절 지은 이름 ‘테헤란로.’ 예전과 달리 서먹하다(역삼동)
태풍 링링이 지나고 부러진 나뭇가지가 발걸음을 가로막는다(역삼동)
붉은 체리라! 강남의 부와 희망처럼 보인다(대치동)
무역회관이 들어선 광장. 붉은 루즈 광고는 여인의 강한 유혹이다(삼성동)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한 지 50년, 그때 오메가 시계를 차고 있었다고 한다(삼성동)
봉은사에 걸린 ‘극락왕생’ 기원등, 하얀색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삼성동)
경기고 교문. 한때 ‘경기’ 배지는 선망을 넘어 아득한 별처럼 보였었다(청담동)

 

COEX광장의 강남스타일
KOEX에서 COEX까지 진화한 삼성역 언저리는 경제발전의 상징 건물이 밀집한 공간이다. 더 이상 확장의 여지가 없는 강남역과 달리 삼성역은 GTX 시대에 주요한 교차로가 될 것이다.
G20을 유치하고, 아셈을 개최했던 흔적은 건물 이름으로 남았다. 정작 쓸쓸하기 그지없는 것은 사람의 이름이다. 건물의 위용은 여전하나 ‘2011. 3. 1. 대통령 이명박’의 이름은 전혀 윤기가 없다. 영원하기를 기원하며 새긴 이름이 핏기를 잃어버리는 데는 긴 세월이 필요하지 않다는 징표다.
영동대로변 광장에 황동색으로 빛나는 말춤의 엇갈린 손 조형물이 환하게 맞아준다. ‘강남스타일’이다. 철 지난 듯해도 노래는 경쾌하고, 외국 관광객들은 기어이 무한 리필되는 노래를 들으며 인증사진을 찍고 가는 필수코스다.
2012년 7월 15일 발매된 정규앨범 6집 <싸이 6甲 part1>의 타이틀곡이 <강남스타일>이다.  싸이 박재상이 그해 여름, 세계를 향해 공개한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은 파격 그 자체였다. 억지로 잠근 윗도리 단추와 허리놀림이 전혀 어울릴 성 싶지 않은 싸이의 댄스 파워는 ‘6甲’이라는 표제에 걸맞게 놀랍고도 방정맞아 보였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이 드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선 일렉트릭 사운드가 반복되는 리듬은 점층법의 변주였다. 파격에 불량기까지 엿보이면서도 중독성 강한 노랫말, 열정적이고 신나는 춤의 군집(群集), 엽기적 코믹 행동은 마하 단위로는 설명도 되지 않는 SNS의 감염경로를 타고 전세계를 강타했다.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나는 사나이 
낮에는 너만큼 따사로운 그런 사나이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 
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버리는 사나이 
그런 사나이 
(중략)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지금부터 갈 때까지 가볼까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오오오오 오빤 강남스타일 
(중략)
Eh- Sexy Lady 
오오오오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 
나는 사나이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그런 사나이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중략)
오오오오 오빤 강남스타일 
오빤 강남스타일

 

싸이의 말춤 조형물. 유튜브 20억뷰를 넘은 세계 최초기록으로 여전히 외국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다(삼성동)

 

비내리는 영동교에서 비오는 압구정까지
영동대로변 가장 높은 언덕에는 북촌에서 옮겨온 경기고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오랜 옛날 백제가 강남땅에 자리 잡으면서 몽촌토성까지 토성을 쌓았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다는 유래비만 수목장의 비석처럼 길가에 서있다.
영동대로가 한강과 맞닿아 강북으로 이어주는 지점에 영동대교가 있다. 1987년 가요 팬들이 가장 좋아한 노래로 뽑힌 주현미의 <비내리는 영동교> 배경이다. 우리 시대 아포리즘(Aphorism)의 대가라 할 수 있는 시인 이성복이 추석날 올림픽대로를 타고 영동대교 아래를 지나갈 때 저절로 터져 나와 아내의 지청구를 들었다는 “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눈물에 젖어” 또한 트로트 한 소절의 위력이다. 2박자의 전형에서 벗어나 4분의3 박자 왈츠 리듬에는 춤의 중심축 변환이 고관절에 느껴진다. 새롭게 판을 갈아 끼우듯 영동대교 입구 크로바호텔 나이트클럽 악단이 휴식을 위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때 나오던 귀한 리듬이다.


1.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
그 사람은 모를거야 모르실거야
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눈물에 젖어
하염없이 걷고 있네 밤비 내리는 영동교
잊어야지 하면서도 못잊는 것은
미련 미련 미련 때문인가봐
2.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헤매도는 이 마음
그 사람은 모를거야 모르실거야
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아픔에 젖어
하염없이 헤매이네 밤비 내리는 영동교
생각말자 하면서도 생각하는 건
미련 미련 미련 때문인가봐
<비 내리는 영동교> 
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 1985, 오아시스레코드


손아람 작가가 강남의 남자와 강북의 여자가 눈물 속에 헤어지는 영동대교를 경제적, 신분적 대립의 구도로 해석한 것도 흥미롭다. 정은이와 남국인이 어떤 뜻이었다 해도 확실히 해석은 자유다. ‘시는 내놓는 순간 시인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듯이.
다시 청담동으로 접어든다. 청담동에는 1989년에 세운 ‘청담애향비’가 있다. 가재 잡던 청수골을 그리워하는 원주민, 아파트 부촌이 되어버린 옛고향을 그리워하는 신실향민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가운데 강남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확실히 청담사거리에서 갤러리백화점으로 이어지는 길은 갤러리와 명품의 거리답게 아예 간판이 영어 일색이다. 한류 거리에 서 있는 캐릭터가 반가이 손을 흔들지만 건물 출입구 안에서 슈트를 멀끔하게 차려입고 경계의 시선을 풀지 않는 경비원이 낯설다. 청담동 사모님이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그 뒷골목은 지하 공간들에 점점으로 박혀 있는 클럽 차지다.
온 국민을 달군 ‘버닝선’ 사건이 강남 언저리에서 등장한다. 가수 승리도, ‘경찰총장’이 된 윤총경의 이름도 비틀려 각인되었다. 압축성장을 지나온 세대의 후손들이 SNS를 타고 떨어진 돈벼락을 주체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도 물 좋은 강남이 무대가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요즈음 재벌 3~4세가 마약 단속의 투망에 여기저기서 걸려드는 것도 능력을 넘어 짊어지게 된 돈의 무게가 근원이다.
3호선 압구정역에서 뒷골목으로 접어들면 오렌지족이 활보하던 8학군의 또 다른 뒷골목이다. 채 자라지 못한 가로수 아래에는 꼭지가 돌아버린 내장에서 토해낸 이물질이 독버섯처럼 말라 비틀어져 있다. 2002년 나얼과 윤건의 남성2인조 그룹 ‘브라운아이즈’의 노래 <비오는 압구정>의 배경이다. 뒤섞인 영어와 읊조리는 듯한 노래 스타일만 빼면 술에 취해 헤어진 여친을 만날까 기다리는 모습은 예외 없이 소방차로라도 비를 뿌려야 영화가 되는 70년대식 한국영화처럼, 비에 젖는 도식마저 같다. 이제 젊음은 가로수길로, 세로수길로 번져 나갔다.
애플이 20년간 초고가 장기임대계약을 했다는 ‘애플가로수길’ 스토어에는 젊음이 이 시대를 만끽하는 또 다른 방식이 펼쳐지고 있다. 맨하탄 거리와 가로수길의 벤치는 170:3이라고 하지만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로수길에서 헤어지는 2020 버전 <신사동 그 사람>은 건강하다. 

 

<비 내리는 영동교>. 우산을 쓴 여인은 보이지 않아도 쓸쓸한 이별의 분위기는 전해진다(청담동)
압구정동에 들어선 한류돌의 익살스러운 표정(압구정동)
가로수길에는 별난 이벤트가 드물지 않다. 고급 승용차 위의 낙서는 드림카에 대한 욕망의 배설이다(신사동)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로수길로 모여드는 청춘들. 그들만의 독특한 8학군식 운동방식이다(신사동)
박원순표 공공 퍼스널모빌리티 ‘킥공’이 아무데나 버려져 있다. 걱정된다, 이 제도의 앞날이(압구정동)
압구정역 현대백화점 앞에서 하루를 마감한다

 


참고자료
1. ‌서울지명사전, <제3한강교>, 서울시사편찬위원회, 2009
2. ‌<서울의 밤문화>, 김명환,김중식,  생각의 나무, 2006
3. ‌<한국대중가요앨범11000> 문희옥3집, 권정구
4.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강남스타일>, pmg, 지식엔진연구소

 

 


조용연 편집위원  choy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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