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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베가본드 ⑤-굿바이 USA, 반갑다 MEXICO멕시코를 자전거로 간다고?! 걱정보다 더 큰 호기심을 안고

아메리카 베가본드 ⑤
멕시코를 자전거로 간다고?! 걱정보다 더 큰 호기심을 안고 
굿바이 USA, 반갑다 MEXICO


멕시코를 자전거로 간다고 하니 다들 위험하다고 대걱정이다. 하지만 캐네디언은 미국이 위험하다고 했고 미국인은 멕시코를 위험하다고 하니 이웃나라에 대한 편견일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그보다는 호기심이 발동해 국경을 넘었다. 곧바로 펼쳐진 사막지대, 요금소 직원은 ‘최근에도 총기사건이 났으니 도로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텐트를 쳐라’고 충고한다. 정말 위험한가? 홀로 지내는 사막의 밤, 코요테마저 울부짖는데…  

 

 

107일째

국경을 넘나드는 가족
로스앤젤레스를 떠나고 며칠간 1번 국도를 따라 해안도로를 달렸다. 캘리포니아 주의 해안가는 은퇴한 부부가 여생을 보내는 곳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다. 10m가 넘게 쭉쭉 뻗은 초록색의 야자수와 하늘과 맞닿을 만큼 끝없이 펼쳐진 푸른빛의 태평양은 가히 최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샌디에고(San Diego)에 도착할 때까지 자전거 스포크가 네 번이나 부러졌던 것이다. 바퀴살이 뒤 짐받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것인데, 초원을 건너오면서 8리터가 넘는 페트병을 가득 싣고 다녔던 게 문제였나 보다. 
샌디에고에 도착해서 부서진 스포크와 닳아버린 타이어를 전부 교체했다. 수리비가 200달러 가까이 나왔다. 가방에 품고 다니던 비상금을 꺼내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그동안 무엇을 위해 궁상맞게 돈을 아끼고 다녔단 말인가.
어느덧 미국에서의 체류기간도 20일 남짓 남았다. 멕시코 국경도 가까워졌고 건조한 사막기후도 더 뚜렷해졌다. 비자 만료일까지 최대한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멕시코 국경을 넘기로 했다.
샌디에고 동쪽으로는 큰 산맥이 있다. 자전거를 끌고 산을 올라야 한다는 얘기다. 뜨거운 햇살아래 땀을 흘리며 산 정상에 도착했고, 바람을 가르며 내리막을 내려왔다. 최고속도 78km. 여행하고 가장 빠른 스피드가 속도계에 찍혔다.

속도와 기분의 함수관계 
몇 달간 매일 자전거를 타며 느꼈던 속도에 따른 심경의 변화는 대충 이렇다. 

 5~11km 대체로 오르막  자전거를 끌고 산 오르는 게 힘들다. 말수가 적어지며 가끔씩 욕.
 12~15km 약간 오르막, 역풍  바람이 원망스럽다.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갈지 페달을 돌릴지 고민.
 16~20km 평지  지극히 평범한 속도. 아무 생각이 없다.
 20~32km 평지 순풍  슬슬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32~40km 언덕 내리막  소리 지르면서 바람을 만끽!
 40~50km 산등성이 내리막  자전거는 움직이는 코인 노래방. 혼자 노래 열창,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50~65km 산간 지형 내리막  속도가 슬슬 빨라져서 긴장한다. 주변에 장애물이 없는지 확인하며 노래열창. 이정도 속도면 오토바이와도 겨뤄볼만 하다.
 65km 이상 산간지형 내리막  극락(極樂), 최고의 쾌락을 느낀다.

산에서 내려와 젖은 텐트를 말리고 있는데 한 멕시칸 아줌마가 말을 걸었다. 본인을 산드라라고 소개한 아줌마는 집까지 차로 10분 거리라며 주소를 알려주고 놀러오라고 한다. 오늘 저녁은 현지인과 이야기를 하며 밤을 보낼 생각에 마음이 들떠서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걸, 차로 10분 거리라던 길은 굉장히 험준한 산길이 아닌가. 게다가 갓길도 좁아서 지나가는 차량이 위협적으로 스쳐 지나간다. 
2시간이 넘게 긴장하며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도착한 곳은 포트레로(Potrero).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마을이었다. 포트레로의 풍경은 지금까지 여행했던 마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들판위에 집이 아닌 캠핑카가 듬성듬성 세워져 있는 게 그 이유였다. 마을이라기보다는 캠핑장이라는 표현이 알맞아 보였다. 
캠핑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모두 멕시칸이다. 평일에는 자녀들의 학업을 위해 포트레로에서 캠핑카 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돌아간단다. 물론 산드라 아줌마의 가족도 같은 이유로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산드라 아줌마의 캠핑카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저녁으로 타코를 대접 받았다. 옥수수가루로 만든 토르티야에 고기와 채소를 싸먹는 멕시코 전통음식 타코. 햄버거 밖에 모르던 내가 맛보게 된 신세계 음식이었다. 
“무쵸 델리시오소.”
‘엄청 맛있다‘라는 짧은 스페인어를 연발하며 타코를 우걱우걱 입에 집어넣으니 가족들이 모두 환하게 웃었다.

벨로 아저씨의 눈물 
저녁을 먹은 뒤 산드라 아줌마의 트럭을 타고 멕시코 국경의 장벽을 보러 갔다. 3m가 넘는 빨간 장벽이 언덕을 넘어서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이어져있다. 녹이 슬고 구멍이 뚫린 장벽 너머로 멕시코 국경 마을 테카테(Tecate)가 보였다. 작은 구멍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나라 멕시코. 
문득 국가란 무엇이고 국가와 국가를 나누는 국경은 또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국가는 국민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 다시 말해 국민의 뜻이 적용되는 최대한의 영역이다.
국경이란 인간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그어놓은 선. 즉, 하나의 울타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울타리는 인접국가와 이해관계에 따라서 유럽연합의 국경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될 수도, 한국과 북한의 국경처럼 민족과 역사를 차단하는 철책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의미로 생각해봤을 때 미국과 멕시코의 길고 높은 장벽은 두 나라의 관계가 어떤지 내게 철저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만 소지하면 육로로 자유롭게 두 나라를 왕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부럽게 느껴졌다.
이 날은 산드라 아줌마의 캠핑카 앞에 텐트를 쳤다. 이튿날 아침에 출발하려는 나에게 남편 벨로 아저씨는 멕시코 본가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결국 멕시코 국경마을 테카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떠나는 날 벨로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멕시코를 여행하는 건 정말 위험하다며, 내 걱정을 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벨로 아저씨의 눈물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
‘과연 멕시코는 위험한 나라인가.’
가슴 속에서 걱정이 싹트고 호기심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113일째
멕시코여행의 시작! 사막을 달리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를 여행할 때 만났던 미국인은 멕시코로 간다는 내게 미쳤다고 했다. 멕시코는 자전거로 여행할 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생각해보니 캐나다에 있을 때는 캐네디언이 미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언제나 돈만 밝혀. 자본주의의 노예들.”
“이민국 직원은 인상 쓰며 나를 범죄자 취급해.”
근접국가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 부각된 어두운 초점. 오해와 편견은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 버렸다. 제3자를 통해 들은 멕시코는 위험 그 자체였지만, 한편으로는 내 호기심을 심하게 자극했다. 
‘정말로 위험할까.’
호기심이 두려움을 뛰어넘으면 그것은 새로운 발걸음이 되는 법. 세 번째 나라 멕시코를 마주했던 순간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코요테와 교감하는 법   
국경마을 산 루이스(San luis)에서 멕시코로 입국했다. 며칠짜리 비자를 원하느냐는 이민국 직원의 물음에 90일이라고 대답했다. 내 자전거를 쳐다본 이민국 직원은 자전거로 멕시코를 통과하려면 90일로는 부족하겠다며 입국수속 서류에 180일을 적고 도장을 ‘쾅쾅’ 찍었다.
이민국 앞에서 환전을 하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낯설고 신기하다. 도로변 음식점 간판은 죄다 스페인어라서 읽을 수 없었고, 거리를 가득 메운 라틴음악은 괴이하게 들렸다. 시속 20km로 스쳐지나가는 나에게 멕시칸들이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러댔다.
“헤이~ 치노 돈데 바스!?” (이봐 중국인, 어디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채 앞만 보고 페달을 밟았다. 
마을을 벗어나자 모래사막이 이어졌다. 통행료를 지불해야 하는 요금소를 지나며 바닥이 드러난 페트병에 물을 받았다. 시원한 물을 챙겨주던 직원은 앞으로 100km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라며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전 근방에서 총기사건이 발생했으니 밤에 텐트를 치거든 도로에서 보이지 않게 숨으라고 당부했다. 직원의 충고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음 대도시 푸에르토페나스코(Puertopeñasco)까지 250km는 사막을 가로질러야 했다(도중에 자그마한 마을을 지나긴 한다). 사흘간 낮에는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를 달렸다. 밤에는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는 권총강도를 피해 도로변에서 떨어진 사막에 텐트를 쳤다. 매일 8시간씩 사막에서 자전거를 타다 보니 물 소비량이 굉장했다. 하루에 6L 이상의 물을 마셨는데, 페트병의 물이 줄어들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이 부족하면 캠핑할 때 요리를 하지 못하고 무엇보다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하루는 저녁까지 라이딩을 하고 도로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텐트를 쳤다. 저녁을 준비하는데 멀리서 코요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서쪽 산에서 코요테 한 마리가 울자 사방팔방에서 단체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 서둘러 텐트로 들어갔다. 코요테 울음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호신용 후추 스프레이와 조리용 칼을 머리맡에 두고 있어도 무서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야생 코요테를 만났을 때 겁먹지 않고 맞설 수 있을까. 한 마리는 저승길에 데리고 가야지. 근데 몇 마리가 동시에 덤비는 걸까.’ 
온갖 잡생각에 사로잡혀 머릿속이 복잡했다.
코요테의 소음공해는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문제는 소변이 급해서 텐트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구가 정신을 지배했다는 것이다. 조리용 식칼을 손에 쥐고 텐트 밖으로 나갔다. 텐트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암흑 속에서 소변을 봤다. 자연스레 시선은 하늘로 향했다. 하늘에는 붉고 선명한 은하수가 반짝이고 있었다. 블랙홀이 빛을 흡수하듯, 붉게 빛나는 은하수는 나의 시선을 빨아들였다.
‘황홀하다.’
지금 이 황홀함이 참았던 생리현상이 해결되어 느껴지는 것인지, 붉은 은하수에 감동받아서 느껴지는 것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아드레날린이 분비됐는지 이미 기분은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우!!!”
흥분한 나는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악악악! 아우!!!”
나의 외침에 코요테 무리가 응답해주기 시작했다. 무서웠던 코요테의 울부짖음이 후렴구처럼 들렸다. 사막 한가운데, 은하수 아래에서 우리는 교감하고 있었다. 뜨거운 사막은 어느새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으로 변해버렸다.

 

 

120일째
사막위의 바다,  멕시코의 매력
뜨거운 역풍을 뚫고 푸에르토페나스코에 도착했다. 값싼 모텔에 며칠간 쉬면서 매일 아침 산책도 다니고 마트에 들러 멕시칸의 일상도 들여다봤다. 멕시코의 마트를 다니며 흥미로웠던 건 뭐든지 양이 많고 크기도 크다는 것이다. 5L짜리 오렌지 주스, 1갤런(3.78L) 우유, 3L 코카콜라와 20L 생수. 심지어 수박도 내가 알고 있는 크기의 1.5배는 되어보였다. 이 모든 것이 미국·캐나다 물가의 절반 가격이다. 
여행하며 음식에 굶주린 한이 맺혔던지라, 값싸고 양 많은 식량을 정신없이 카트에 주워 담기 바빴다. 이렇게 과소비를 할 것 같을 때는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진리’를 가슴속에 되새기며 사물의 집착에 대한 욕구를 최대한 떨쳐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면 언제나 내 카트는 식량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허기진 신도에게 ‘무소유의 진리’를 깨닫기란 여간 쉽지 않은 모양이다.
다시 사막을 달리기 시작했다.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경찰에게 물을 구걸하며 페달을 밟았다. 이날도 역풍이 심해서 많은 거리를 이동하지 못했다.

장난꾸러기 프랑코 
해질녘에 지도에도 없는 마을에 들어섰다. 비포장도로를 따라가니 무너져가는 낡은 집이 몇 채 보였다. 마당에서 잡일을 하는 현지인 앞에서 미리 적어둔 스페인어를 읊자, 웃으며 뒷마당으로 안내해준다. 낡고 허름한 집이었지만 주인아저씨의 마음씀씀이는 너그러웠다. 텐트를 치고 저녁을 준비하는데 주인아저씨의 아이가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이름이 뭐야?”
“몇 살이니?”
나는 웃으며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그저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오른손으로 내 가슴을 두 번 두드리며 ‘민(Min)’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아이를 향해 손바닥을 보였다. 그제야 아이는 씩씩하게 말했다.
“프랑코!!”
프랑코는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아이다.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거리를 거닐며 고삐 풀린 가축들을 괴롭힌다. 엉기적거리는 소의 엉덩이를 때리기도 하고 개에게 레슬링 기술을 걸기도 했다. 얼마나 못살게 굴었으면 프랑코가 길을 걸어가면 개, 소, 닭 할 것 없이 가축들이 그를 피해서 길이 열리는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허름한 옷에 모래를 잔뜩 묻히고 또 흙구덩이를 파는 프랑코를 바라보며 저녁을 먹었다. 
프랑코는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민, 내가 1부터 10까지 영어로 세어볼게. 원! 투! 쓰리… 콰트로 싱코 세이스 시에테 오쵸 누에베 디에즈!”
프랑코의 자신감 넘치던 어조는 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영어는 스페인어로 변해갔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한참을 웃었다. 
영어교육의 중요성을 강요받으며 스트레스 속에서 자라는 우리나라의 아이들과 달리, 멕시코 사막의 아이들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외국어는 필요성을 느낄 때 비로소 배움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 프랑크와의 짧은 교감을 통해서 스페인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현지인과 진실된 소통은 내가 세계여행을 떠난 이유니까.  

사막 위의 해안마을 
며칠 뒤 푸에르토로보(Puertolobos)에 도착했다. 마치 바다위에 떠있는 물의 도시를 연상케 하는 해안마을 푸에르토로보. 도로에서 마을까지 3km 정도 비포장도로를 따라 마을에 다다랐다. 자전거 바퀴가 푹푹 빠지는 모랫길을 걸었다. 마주치는 현지인들은 내게 휘파람을 불며 손으로 V를 만들어 인사해준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손으로 만든 V는 평화를 뜻한다). 
콜라가 마시고 싶어 구멍가게를 찾았다. 허름한 구멍가게에서 만난 주인아저씨는 유쾌하고 친절한 분이었다. 자전거를 맡아줄 테니 편하게 동네를 구경하다 오라고 하신다. 도난이 걱정됐지만 인구 1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아저씨의 말을 듣기로 했다. 
사막 위의 해안마을 푸에르토로보. 언뜻 사막과 바다의 조합에 위화감이 들 수도 있지만 내가 마주했던 풍경은 경이로웠다. 노란 모래언덕과 푸른 바다가 함께 수평선을 만들며 보는 이에게 평화를 안겨주었다. 거기에 리듬감 있게 정적을 깨는 파도 소리. 이 작은 마을이 마음에 드는 순간이다. 
다시 구멍가게로 돌아왔다. 주인아줌마는 나에게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타코를 대접해주었다. 자전거를 맡아주신 게 감사해서 몇 개 팔아드릴 생각이었는데 돈은 안 받겠단다. 그러면서 후식까지 챙겨주신다. 낯선 이방인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부부에게 감동받았다. 내가 보답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줌마가 보여주는 사진에 호응을 해주고 보디랭귀지를 이용해 지나온 여정을 설명하는 것뿐이었다. 
이날 부부와의 대화를 통해서 언어는 하나의 소통수단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때로는 형상이 없는 언어보다 눈에 보이는 표정과 몸짓이 상대방의 마음에 더 진실되게 전해진다.
책장을 넘기는 시늉을 하며, 여행 마치고 꼭 책을 쓰라고 말씀하시던 아저씨의 흐뭇한 미소가 글을 쓰는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있는 게 그 증거다. 

 

 


김민형 여행작가  kim_min_hyeong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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