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유일의 지중해, 세토내해의 보석 – 카가와(香川)

일본의 주요 4대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四國)는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덜 알려져 있다. 대도시가 없고 특별한 명승고적도 많지 않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일본 고유의 문화와 전통, 자연이 잘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먼저 카가와(香川) 현(縣)을 시작으로 시계 방향으로 섬을 한바퀴 돌며 해안 절경 코스를 소개한다
글·사진 김병훈(본지 발행인)

쓰다에서 오오쿠시미사키 가는 길목의 한적한 세토내해 풍경. 길은 산허리를 따라 높직이 나 있어 내내 시원한 경관이 함께 한다

“자 이제 곧 국경을 넘어서 도쿠시마현으로 들어섭니다.”
통역을 맡은 타무라 아키코(田村彰子) 씨가 버스 통로에서 일어서더니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일러준다. 그런데 현경(縣境)이 아니고 국경이라니?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雪國)’ 첫문장도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로 시작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국경(國境)’은 실은 정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외국인으로서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의 역사 문화적 내막, 그리고 어쩌면 제국주의 시대에 비유럽 국가로 유일하게 열강의 반열에 오른 일본의 본질적 저력마저 이 한마디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뒤에 다시 생각해 보자. 


시코쿠(四國)의 4개 현(카가와, 도쿠시마, 고치, 에히메)이 지역 홍보를 위해 해외 미디어와 여행 전문가를 초청한 팸투어에 참가한 나는 10월 24일부터 7박8일 간 시코쿠를 일주하며 중간중간 경치 좋은 구간에서 자전거를 탔다. 이번호부터 4회에 걸쳐 각 현과 주요 자전거 코스를 소개한다. 가장 먼저 간 곳이 카가와(香川)다.


세토내해의 완성 
시코쿠 섬은 일본을 구성하는 4개의 큰 섬 중에 가장 작다. 면적이 1만8795㎢로 경상북도와 비슷하고 인구는 390만으로 부산보다 조금 많은 편이니 인구밀도가 높은 일본에서도 홋카이도와 함께 다소 예외적으로 한산한 곳이다. 우리에게는 일본 여행에서 가장 뒷전에 두는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일본의 전통 문화와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뜻도 된다. 


일본 전체가 내륙은 온통 산악지대이고 해변에 조금씩 형성된 평야에 도시와 마을이 들어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시코쿠도 마찬가지다. 내륙은 매우 험준하고 깊은 산악지대다. 서쪽의 이시즈치산(1982m)과 동쪽의 쓰루기산(1955m) 같은 2000m에 육박하는 고산을 중심으로 강건하고 표독스런 일본 산 특유의 산세가 섬 전체를 뒤덮고 있다.


하지만 군데군데 해변을 따라 형성된 평야는 상당히 넓다. 섬의 북동쪽에 자리한 카가와현은 폭 10km 이상의 큰 들판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 산악지대라기보다 들판과 해안지방의 특성이 강하다.    


시코쿠가 큐슈와 혼슈 사이에 위치하면서 세토내해(瀨戶內海)라는 동양 유일의 지중해가 생겨났다. 세토내해는 그냥 바다가 아니다. 지중해는 유럽에서도 그랬지만 일본에서도 역사와 문화, 산업의 태동기에 가장 중요한 무대가 되었고 극적인 역할을 했다. 


세토내해는 유럽 지중해보다는 작지만 조그만 바다가 아니다. 시모노세키에서 오사카까지 동서 길이가 430km, 남북 폭은 좁은 곳은 7km 정도지만 넓은 곳은 60km를 넘는다. 이렇게 큰 바다도 결국은 육지에 둘러싸인 내해이고, 이 바다 어디서든 육안으로 육지가 보이기 때문에 항해와 선박 기술이 부족하던 옛날에도 안전하게 항해하고 어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 내해가 주는 이런 ‘안심감’이 고대인에게 가장 큰 위협이자 장벽이던 바다를 친근하게 대할 수 있게 해주지 않았을까. 일본의 역사와 문화가 이 세토내해를 중심으로 성립해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간 도래인들도 처음에는 가까운 큐슈에 정착했지만 고대국가를 형성할 역사시대에 접어들면 대부분 세토내해를 거쳐 오사카만으로 들어갔다. 


시코쿠는 일본인에게 정신적으로는 일종의 ‘마음의 고향’ 같은 영적(靈的)인 지역이기도 하다. 시코쿠 사누키지방(지금의 카가와현)에서 태어난 고보(弘法)대사 구카이(空海, 774~835)는 22세에 출가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유학승 출신이다(일본에서는 고보대사보다 이름인 구카이로 친근하게 부른다). 당나라에서 밀교(密敎)를 익혀 일본에 돌아와서는 진언종(眞言宗)을 일으켰다. 다소 주술적이고 현세적인 진언종은 일본인들의 심성에 잘 맞아서 평민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게 되고, 신비로운 힘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구카이는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구카이는 815년 시코쿠에 영장(靈場, 사찰)을 열고 섬을 일주하며 수많은 사찰을 순례하거나 새롭게 창건했다. 이때 구카이와 인연이 있는 88개의 절을 참배하는 길을 시코쿠 헨로(四國遍路)라고 하는데 마치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일본인이면 언젠가는 가봐야 하는 마음의 길이 되었다. 거리는 장장 1400km에 이르러 온전히 걷는다면 몇 달을 잡아야 하지만 지금도 하얀 옷차림에 삿갓과 지팡이를 쥔 순례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얀 옷은 수의(壽衣)를 상징하는데, 옛날에는 순례 도중 죽기도 해서 그대로 장례를 치러 달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1200년 간 죽음을 각오하고 걸어온 길… 이 순례길은 사실상 시코쿠 일주 코스이기도 하다.             


시코쿠는 세토내해의 완성이며 최고의 산물이다. 그 중 가장 빛나고 두드러지는 접점이 동북쪽에 자리한 카가와현이다.  


 ‘사누키’의 고장 
시코쿠는 마름모꼴 두 개를 붙인 독특한 아령 모양인데, 카가와현은 동북쪽에 자리한다. 면적은 제주도 정도인 1877㎢로 시코쿠 4개 현 중에서 가장 작다. 시코쿠에서 가장 넓은 평야지대를 품고 있어서 인구는 98만(2014년)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지중해성기후여서 맑은 날이 많아 화창한 하늘과 반짝이는 바다, 들판 곳곳에 있는 수많은 저수지가 상징적인 풍경을 이룬다. 


한국인이라면 카가와는 몰라도 사누키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비단결처럼 탱탱하고 쫄깃한 면발의 ‘사누키 우동’은 고유명사처럼 쓰이는데 이 사누키 우동의 본고장이 바로 카가와현이다. 카가와현의 옛 이름이 사누키(讚岐)인데, 현청(縣廳)이 있는 다카마쓰(高松)의 공항에도 큰 글씨로 ‘さぬき(사누키)’를 새겨놓았다.      


우동도 사누키, 평야 이름도 사누키, 산맥도 사누키… 온통 사누키다. 이런 옛지명은 앞서 얘기한 국경(國境) 개념과도 관계가 있다. 일본이 근대화의 길로 들어선 명치유신(1868년) 이전에는 지금의 현이 대부분 거의 독립적인 자치권을 누리던 각각의 ‘나라’였다. 중세 일본은 중세 유럽과 비슷하게 전형적인 봉건주의 체제였다. 중국에서 유래한 봉건주의는 황제가 지역별로 공신을 보내 다스리도록 봉(封)하는 지방분권적 지배체제다. 분봉 받은 지역 군주의 세력이 강해지면 황제까지 위협해서 황조가 망하거나 분봉 세력간의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일본의 중세 전국시대가 모두 이런 유형이다. 반면 우리나라와 한(漢) 나라 이후의 중국에서는 봉건제도를 택한 적이 없고, 모두 왕이 전권을 누리면서 지방에 관리를 파견하는 중앙집권체제였다.  


봉건시대가 오래 되면 지역군주를 세습하면서 거의 별개의 국가처럼 개별화되는데, 지금까지도 ‘국경’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현재의 일본 현의 경계는 대부분 예전 봉건영지의 경계와 겹쳐서 나라와 나라를 구분 짓는 국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도계(道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봉건영지인 번(藩)을 폐지하고 현(縣)을 둔 것(廢藩置縣, 폐번치현)이 1871년이니 아직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입에서는 국경이 익숙한 것 같다. 폐번치현 당시 번은 261개나 되었으나 통폐합을 거쳐 지금처럼 43개 현으로 재편되었다. 우리보다 산이 더 높고 험해서 지역간의 독립성이 강화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아직도 일본의 교통비가 우리보다 월등히 비싼 것은 지역간의 이런 심리적 거리감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일본여행의 낭만, 페리          
내가 생각하는 일본여행의 두 가지 특별한 낭만과 매력이 있다. 첫 번째는 완성도와 시스템에서 세계제일이라는 철도, 또 하나는 수많은 섬과 섬을 잇는 페리다.


시코쿠, 그중에서도 카가와현에서의 첫 번째 여행지는 쇼도시마(小豆島). 면적이 153㎢로 강화도의 절반 정도이며 세토내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세토내해 최대의 섬은 아와지시마(淡路島)로 거제도보다 큰 533㎢에 달한다. 아와지시마는 세토내해 동쪽 끝에서 시코쿠와 혼슈 사이에 길게 뻗어나 세토내해를 오사카만과 단절시키고 있어 섬이라기보다 육지의 연장처럼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사방이 바다로 에워싸인 진짜 섬 분위기로는 쇼도시마가 세토내해 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세토내해 한가운데 떠 있으니 세토내해의 진면모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자못 기대가 되었다. 예전에 서쪽 야마구치(山口)현에 속한 야시로시마(屋代島)를 일주한 적이 있고, 부산~오사카 간 1박2일 페리를 타본 적도 있어서 세토내해의 분위기와 절경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내해가 주는 편안한 느낌과 에메랄드 물빛, 다도해 저편으로 아득히 넘어가던 석양은 선명한 이미지로 내 추억의 앨범에 담겨 있다.     

      
다카마쓰항에는 쇼도시마행 배가 30분~1시간 간격으로 자주 있다. 바닥에는 자동차를 싣고 상층에는 승객이 타는 전형적인 연근해 페리다. 일본은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나 황사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대양으로 둘러싸여 대기가 깨끗하고, 특히 세토내해 일원은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로 비도 적다. 마침 하늘은 화창하게 맑았고 대기도 쾌청해서 바다 건너 저편의 오카야마(岡山) 지역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우리의 다도해 같은 섬무리를 헤치고 배는 쇼도시마의 대표항인 도노쇼(土庄)항에 입항했다. 일본 최초의 올리브 재배지이며 지금도 올리브가 많이 난다니 유럽 지중해와 근사하게 닮았다. 항구에는 키큰 야자수가 남국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올리브도 곳곳에서 자란다. 비슷한 분위기의 그리스 밀로스섬(Milos)과 자매 섬이라니 더욱 지중해의 따사롭고 평화로운 매혹이 더한다. 

쇼도시마(小豆島) 코스
도노쇼~쿠사카베항~24의 눈동자 분교(20km) 

도노쇼항에서 지역 특산물이기도 한 수타 소면의 우동으로 점심을 들고 시 외곽에 자리한 오래되고 허름한 자전거 가게인 이시이(石井) 사이클(www7.ocn.ne.jp/~ishii-c)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노부부가 경영하는데 1965년 창업했으니 올해로 51년이 된다. 고급 자전거가 아니라 스틸 프레임의 ‘클래식 자전거’를 앞세워 전통과 고집이 느껴진다. 대여료는 생활자전거는 하루 1000엔(1만1000원), 입문용 로드와 MTB 2000엔이니 싼 편이다. 나는 구식 로드바이크가 당첨(?)됐는데 몸에 맞지 않아 라이딩이 불편했다. 다음날부터 나는 국내에서 가져간 미니벨로(브롬톤)를 계속 탔다. 일행 중에는 초보자도 있어 페이스가 빠르지 않아 미니벨로로도 충분히 보조를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인데 변속기가 3단뿐이어서 언덕길에서는 고역을 각오해야 했다.  


코스 안내는 도쿠시마 출신으로 프로선수 생활까지 한 후지오카 카츠마(25, 藤岡克磨) 씨와 도쿠시마현 아마추어 대표선수인 하라 료타(30, 原 良太) 씨가 맡아주었다. 후지오카 씨가 선두에, 하라 씨는 후미에서 일주일 내내 투어팀을 챙겼다.


쇼도시마는 상당히 큰 편이어서 섬을 제대로 일주하자면 70~80km나 되어 종일을 잡아야 할 것이다. 해가 짧은(일본과 우리는 같은 시간을 써서 실제는 거의 1시간가량 해가 빨리 뜨고 빨리 진다) 오후에 일정을 마쳐야 해서 남쪽 해안 일부만 달려보기로 했다.    

    
섬치고는 많은 인구인 3만이 살아서일까. 해안을 도는 436번 국도는 차량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어지고 갓길도 좁아 라이딩이 다소 불편했다. 그러다 작은 고개를 넘어 쿠사카베(草壁)항으로 접어들자 좁게 형성된 내만이 잔잔하고 왼쪽으로는 쇼도시마 최고봉인 호시가죠(星ヶ城, 816m) 산이 당당하다. 산의 북쪽편에는 일본의 3대 계곡의 하나로 꼽히는 칸카케이(寒霞溪) 계곡이 있다지만 이번에는 가지 못한다. 주최측이 일정과 코스를 모두 정해서 안내해주는 초청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 사전답사 투어)는 마음은 편하지만 자유롭게 가고픈 곳을 가지 못하는 제약이 따른다. 


쿠사카베 항은 앞서 도노쇼항과 함께 타카마쓰항에서 페리가 운항한다. 간장 공장이 많이 보이는데 섬 이름처럼 콩이 많이 나서 간장이 특산물이다. 


쿠사카베 항을 지나 남쪽으로 뻗어난 반도를 따라가면 마지막에 ‘24개의 눈동자 분교’가 나온다. 이곳 출신의 작가 츠보이 사카에(壺井 榮)의 소설 <24개의 눈동자>의 배경이 된 곳으로 분교에 다니는 12명의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여교사 이야기다. 이 소설은 1954년 영화로 만들어져 이곳은 ‘교육의 원점’으로 각광받으며 지금도 교육 관련 인사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 기념으로 낡은 목조 분교 건물이 남아 있다. 24의 눈동자는 12명의 어린이를 뜻한다. 


가는 도중에 맞은편 미토반도(三都半島) 방면으로 스러지는 멋진 낙조를 만났다. 주행거리가 20km에 불과했고 코스도 섬 일주의 1/3도 되지 않아 아쉬웠다. 제대로 보자면 쇼도시마 만으로도 1박2일은 잡아야 할 것이다.      

오오쿠시미사키(大串崎) 코스
쓰다(津田) ~ 오다(小田) ~ 오키츠해수욕장 ~ 오오쿠시미사키(16km)

 


일본은 지형이 다양해서 지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이제 거의 쓰지 않는 반도, 만, 곶, 해협, 제도, 열도 등의 지리명칭을 잘 활용하고 똑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명소로 가꾸고 있다. 덕분에 지리가 쉽게 눈에 들어오고 다채로움을 더해준다. 특히 바다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끝단을 뜻하는 미사키(곶)는 일본에서 가장 흔한 지형 중의 하나다. 


다카마쓰와 동쪽으로 이웃한 사누키시 북단에 자리한 오오쿠시미사키도 경관과 지리적 특성에서 특별한 곳이다. 어제 답사했던 쇼도시마의 미토반도 남단과 마주한 형상인데 바다로 좁고 길게 뻗어난 반도 끝에 자리한다. 


라이딩 코스는 11번 국도변의 쓰다(津田) 킨린(琴林)공원에서 출발해 해안을 따라 오오쿠시미사키까지 가는 여정이다. 킨린공원은 이름처럼 아름다운 해송숲이 해변을 따라 운치있게 조성되어 있다. 마을을 벗어나면 한적한 해안길이다. 쇼도시마와 달리 자동차 통행이 드물고 세토내해는 길 옆으로 내내 탁 트인다.


높이 100m 내외의 고개가 여러 번 나와서 라이딩 재미도 적당하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마을, 인적은 없건만 이 궁벽한 어촌 마을 뒷골목도 병적일 정도로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결벽증’과 ‘완벽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는지 일본에 올 때마다 신기하고 놀랍다. 


마을을 여럿 지나지만 인적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 하는 후지오카 씨에게 “나이든 사람들도 많을 텐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안 보이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시계를 힐끗 보면서 “평일 이 시간이면 다들 일하러 갔을 것”이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고개가 많아 라이딩은 힘들지만 경관은 대단히 아름답고 정갈하다. 작은 마을 오다(小田)를 지나 언덕을 오르면 오키츠해수욕장이 그림 같이 내려앉아 있다. 


곶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반도지형은 내내 오르막이고 숲길이다. 이윽고 숲을 벗어나면 바닷가에 호화 별장 같은 건물이 나오면서 세토내해의 푸른 물결이 다시 시야를 채운다. 별장이나 호텔인줄 알았더니 놀랍게도 쓰레기 소각장이란다. 마을에서 동떨어진 이런 곳에 소각장을 지으면서도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많은 비용을 들인 것이다. 


라이딩은 오오쿠시미사키까지는 가지 않고 미사키 입구의 와이너리에서 마무리했다. 거리는 16km로 짧았지만 코스의 기복이 심해 체력소모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름답고 웅장한 자연경관과 조용한 마을들을 지나며 가까이서 지켜본 시골 마을의 이면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이것으로 카가와현의 일정은 끝났다. 다카마쓰 서쪽의 북쪽 해변에도 좋은 코스가 많지만 앞으로 나머지 세 현도 돌아야 하기 때문에 다음 도쿠시마현(德島縣)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시계 방향으로 해안을 따라 섬을 모두 일주했지만 마지막 에히메(愛媛)현은 북서쪽 이마바리(今治)에서 일정을 끝내고 북쪽 혼슈에 있는 히로시마(廣島) 방면으로 바로 넘어갔기 때문에 이마바리에서 다카마쓰에 이르는 약 140km의 북부 해변은 가보지 못했다. 다음 기회에 이 구간을 완주하고 시코쿠 일주를 완성시켜야 할 기약이 남았으니, 기분 좋은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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