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뛰놀던 들판을 두 바퀴로 누비는 ‘착잡’ 근교행

마유로(馬遊路) 타고 부천 ~ 시흥 외곽 일주
말이 뛰놀던 들판을 두 바퀴로 누비는 ‘착잡’ 근교행

새로운 길이 없을 때는 기존 길을 엮어서 새 루트를 만들면 된다. 근교도시 부천, 시흥을 돌아보는 중심축은 시흥 마유로. 말이 뛰어놀던 곳이라고 해서 안산 마유면(馬遊面)에서 유래한 도로명이다. 시원하게 뻗은 도로변에 자전거도로가 잘 나 있어 자전거 고속도로의 느낌을 맛본다. 곳곳에 신도시는 들어서고 있고 길은 공사중이다. 근교는 언제나 이렇다. 서울의 확산은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호조벌에서 전원의 진한 향기를 맡고 한숨을 돌린다 

 

시흥 물왕저수지에서 갯골생태공원으로 이어지는 호조벌 자전거도로. 시야의 끝에는 아파트로 모가 나지만 고목이 듬성한 들길은 한없이 정겹다

 

코스
소새울역→마유로→봉화로(군자동 방면)→군자로(거모동 방면)→거모사거리→ 황고개로(시흥경찰서 방면)→동서로(물왕저수지 방면)→물왕저수지→호조벌 자전거길→ 시흥갯골생태공원→마유로(부천방면)→소새울역. 46km 3간30분 소요. 

길은 곧 풍경이다. 우리는 길에서 풍경을 보고 만나기 때문이다. 당연히 새로운 길은 새 풍경이고 새 느낌이다. 새 길이 없다면 기존 길을 새롭게 엮어도 풍경과 감상은 새로운 조합으로 승화된다. 
근교도시는 매양 공사중이고 개발중이라 자전거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데 그래도 하나둘 완성된 새 길을 따라 몇 달이면 달라지는 근교행에 나서본다. 수도권에 ‘갇혀’ 질식할 것 같다면, 맨날 똑 같은 길만 다녀서 자전거 타고 싶은 마음마저 식고 있다면, 알던 길을 포함해 ‘루트’를 새로 꾸며보자. 절반 정도만 새 길이 들어가도 전체가 새롭게 느껴지고, 안 가본 길이 1/3만 넘으면 호기심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하다. 
익히 알고 수없이 지나쳤지만 속내는 잘 모르는, 그런 근교 도시를 아울러보기로 한다. 서울 서남부의 부천과 시흥 지역이다. 

시흥 마유로가 중심
이번 코스의 큰 줄기는 시흥 마유로(馬遊路)다. 예전에 말이 뛰놀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안산 마유면에서 유래한 도로명인데, 부천 접경의 시흥IC 인근에서 반월공단 끝단까지 이어지며 총길이는 약 20km이다. 가로등에 붙은 도로명판에는 한자가 없으니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말젖(馬乳)’인지, ‘마귀가 놀던 곳(魔遊)’인지, 아니면 발음만 그럴듯한 영어식 표기 ‘Mayu’인지… 뜻이 담긴 고유명사를 이렇게 암호로 방치하다니. 전국을 다니면서 이렇게 의미가 사라진 지명을 보면서 탄식을 금치 못한다. 
출발지는 부천시 남단의 서해선 전철 소새울역이다. 소새울은 ‘작은(小) 억새풀이 자라던 개울’이라는 뜻이란다.  
남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시흥으로 접어들면서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뚫린 마유로가 시작된다. 길가에 도로와 구분된 자전거도로가 잘 나 있지만 교차로에서는 차도만 고가도로로 넘어가고 자전거도로는 아래쪽으로 내려가 사거리를 지나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근처에서 가장 높게 곧추선 소래산(300m) 아래로 시흥 시가지가 아담하다. 하지만 시가지는 게속 확장중으로 마유로 바로 옆에까지 아파트단지가 밀어닥치고 있다.     

이제부터 도시 탈출이닷! 
제2경인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면 갑자기 논이 펼쳐지면서 전원풍경이 시작된다. “도시 탈출이다!” 탄사를 내뱉으려는 찰나, 자세히 보니 저만치 물러나 야산자락에 모인 집들은 시골마을이 아니라 공장들이고, 더 멀리는 고층아파트가 원경 위로 삐죽하다.  
여기서 시골길을 유유자적 하듯 한가로울 수는 없다. 바로 곁으로는 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굉음과 횡풍이 전신을 옥죄기 때문이다. 그래도 차도와 난간으로 분리된 자전거길은 안전하고 한적하다. 
충남지방으로 이어지는 39번 국도를 지나면 옛날 소래염전이 있던 황무지에 시흥갯골생태공원의 흔들전망대가 우뚝하다. 겨우 22m 높이로 저리 솟은 것은 지대가 하도 낮고 주변에 더 높은 건물이 없기 때문이다.  
영동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해 정왕IC 방면 갈림길에서 마유로를 벗어나 군자동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갓길에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가 있지만 도로확장 공사로 어수선하다. 길 이름은 봉화로인데 주택가와 공장이 뒤섞인, 전형적인 근교의 잿빛 경관이다. 
평택시흥고속도로 아래를 지난다. 일대에는 고속도로가 많아 굴다리 통과가 여러번이다. 자동차로 이들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스쳐 갔던 풍경 속으로 들어오니 관점이 뒤바뀐다. 
군자로를 만나는 삼거리에서는 맞은편으로 영동고속도로 군자 톨게이트가 가까이 보인다. 여러 번 저곳을 통과하면서 여기, 지금 내가 선 곳을 의식한 적이 없었다. 톨게이트는 물론 고속도로는 현실의 풍경과 유리된 공간임을 실감한다. 일방적인 이동만 허여된 자동차의 격리수용소임이 분명한데 우리는 그 위에 들어서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자유를 착각한다. 그런 공간의 자유는 여기 느리고 구불대는 열린 공간에 더 있는데.        

 

이 길은 또 어떻게 바뀔까 
거모사거리에서 황고개로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나지막한 황고개를 넘으면 신시가지가 나온다. 시흥시청과 경찰서가 있는 시흥장현지구 신도시다. 도로는 이미 다 깔렸고 아파트단지도 하나둘 허공을 채워가고 있다. 행정구역상의 서울이 만원이니 도시는 이런 근교를 잠식하며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인구가 준다고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은 여전히 성장일로다. 기회와 돈과 명성이 여기 있으니 욕망의 인간도 모여들지 않을 수 없다. 도시는 그렇게 거대화되고 문명을 이루며 양적, 질적으로 성장해간다.
인천 소래포구와 물왕저수지를 잇는 동서로에 올라타 물왕저수지 방면으로 향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낚시터였다는 물왕저수지는 식당과 카페로 포위된 유원지로 산뜻하다.  
잠시 둑길을 걷는데 멀리 백색 비행운을 남기며 하늘 높이 치솟는 비행기가 있다. 저렇게 고공을 가파르게 상승하는 걸 보면 전투기 같은데 꼭 수리산 정상의 레이더기지에서 발사한 미사일 같다. 
이제 보통천을 따라 호조벌을 가로지르는 자전거길을 따라 갯골생태공원으로 간다. 이 길은 익히 알려진, 수도권의 보물 같은 코스다. 전원풍이 물씬하고 고목이 듬성듬성한 길 자체가 아름답다. 1721년 조선 경종 때 150만평의 갯벌을 간척해서 일군 들판이란다. 재정을 담당하는 호조(戶曹)에서 공사를 주관해 ‘호조벌’이 된 모양이다.  
  

 

명소가 된 갯골생태공원 
옛 폐염전 자리에 들어선 시흥갯골생태공원은 언제 와도 새롭고 탁 트인 개방감이 좋다. 소래포구 앞에서 시작되는 갯골은 간만의 차에 따라 바닷물이 드나드는 작은 강이다. 갯벌 위에 마치 골짜기처럼 푹 파여서 ‘갯골’이라고 하며 생태공원 주변의 갯골이 특히 깊고 입체적이다. 
억새가 하늘거리는 창공 아래 거대한 보아뱀처럼 구불대는 갯골은 비현실적 추상화 같다. 겨울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적지 않다. 들판은 물론이고 황야는 더욱 드문 이 땅에서 갯골생태공원은 황량한 풍경에 갯골과 폐염전까지 참으로 귀한 존재다. 
공원 앞을 스쳐가는 마유로에 다시 오른다. 소래산이 지척으로 다가서면 다시 도시권으로 접어든다는 신호다. 
겨우 3시간여… 탈출은 무슨, 겨우 작은 일탈인 것을. 일탈(逸脫)이 아니라 잠시 떠났다 되돌아오는 일탈(一脫)일 뿐이다. 그래도 한숨을 돌렸으니 한동안 버틸 만하지 않은가. 

 

물이끼가 살짝 오른 갯골의 이색적인 풍경. 멀리 흔들전망대 쪽으로 뱀처럼 구비친다

 

Tip
소새울역 옆 한울빛도서관(소사대공원)에 무료주차가 가능하다. 여기에 공간이 없을 경우 마유로 초입의 부천대 소사캠퍼스에 유료주차를 하면 된다. 호조벌 자전거길을 따라 시흥갯골생태공원에 2km 가량 못미친 개울가에 수타박사(031-317-5578) 중국집이 있다. 맛은 특별하지 않으나 창가 전망이 좋고 자전거길에 바로 붙어 있으며 자전거 보관도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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