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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1004섬 산행 ①-비금도 선왕산~그림산신안 1004섬 산행

신안 1004섬 산행 ①
비금도 선왕산~그림산 
암릉이 물결치고, 해안선이 일렁이는 절정의 섬 산

신안의 섬 산은 각별하다. 높지는 않으나 웬만한 산은 모두 등성이에 거친 바위와 암릉, 기암괴석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 대단한 산악미를 과시한다. 그중에서도 비금도의 선왕산~그림산은 신안 섬 산의 클라이막스다. 해발 255m의 높이는 해수면에서 그대로 치솟아 내륙의 400m급 위용을 과시하고 놀라운 조망을 내내 보여주는 암릉길은 비현실적일 정도다. 산 위에서 보는 하트해변은 입체적인 감동을 더해준다

 

그림산에서 본 투구봉. 북한산 인수봉을 빼닮은 독립 암봉이다. 뒤편으로 비금도의 염전지대와 갯벌이 질펀하고, 투구봉 오른쪽 뒤 멀리 자은도 두봉산(364m)이 오똑하다

 

겨울, 다시 남행이다. 그것도 신안의 1004 섬으로. 두바퀴를 두고 다시 섬으로 가는 이유는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안의 섬 산은 특별하다. 높지는 않으나 해발 200~300m로 암릉과 기암괴석, 첨봉을 주렁주렁 매달아 금강이나 설악의 꼭대기만 싹둑 잘라 옮겨놓은 것만 같다. 
1004섬을 수없이 라이딩 하면서 시야에 강렬한 잔상을 남긴 능선과 봉우리를 올려다보며 언젠가는 올라봐야지,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결행에 나선 것이다. 겨울에 산행을 떠나는 것은 산 아래에서는 보지 못한 경관과 조망, 지형을 즐기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조락한 수목은 조망과 시야를 한층 시원하게 터준다. 또 하나, 산길을 오르내리는 동작은 페달링 근육 조련에도 큰 도움이 되어 다가오는 봄, 심각한 ‘초기화’를 예방해주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1004섬에는 아름다운 산이 지천인데 그 중에서도 첫손에 꼽을 만한 곳은 비금도에 있는 선왕산~그림산이다. 비금도를 아무리 많이 가고 속속들이 라이딩을 했어도 이 두 산을 올라보지 못했다면 아직 비금도의 절반을 못 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 위에서 보는 하트해변, 말문이 막힐 뿐    
마치 70년대 거리 같은 비금면소재지 유성식당(061-275-8878)에서 짜장면으로 점심을 먹고 선왕산 북쪽에 깊숙이 숨은 서산사로 향한다. 서산사가 이미 해발 100m이니 255m 높이의 선왕산 등산에서 40%는 먹고 가는 셈이다(차량으로 이동한다면). 
서산사에서 등고선 따라 서쪽으로 400m 가면 온갖 바위가 치렁치렁 매달린 주능선에 바로 올라선다. 얼마 가지 않아 전망이 트이는데,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감탄사만 내뱉었다. 길을 따라 하트해변을 처음 보았을 때도 이랬을 것이다. 그 하트해변을 산에서 내려다보니 또 다른 감동이다. 방향상 하트 형태를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발자국 하나 없이 말갛게 씻긴 백사장에는 여린 파도가 밀려들고, 먼 바다에는 구름 그림자가 듬성듬성 대자연의 구상화를 그린다. 42km나 떨어진 흑산도가 수평선 저편에 선명하다. 
갈 길이 먼데 겨우 10여m 더 높은 바위 하나 올라서면 또 다른 경관이 펼쳐지는 통에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호흡은 가쁘고 다리는 뻐근해도 눈과 가슴은 더없이 즐겁고, 복잡하던 머릿속은 어느덧 출생 직후 마냥 하얗게 탈색된다. 
고작 255m 높이로 이런 장관과 산세를 연출할 수 있다니 비금도의 산세에 계속 감탄한다. 벼랑과 암봉, 암릉이 지천을 이룬 산세는 그대로 진경산수화 속이다. 정상에 오르면 남서쪽으로는 하트해변을 돌아나오는 실타래 같은 길이 극한으로 구비치고, 능선은 올망졸망 아기봉을 지그재그로 봉긋 솟구치며 바다로 치닫는다. 선과 입체가 절묘하게 겹치는 사이 저 편에는 무한 평면의 해수면이 새파랗다. 대자연이 선보이는 기하학의 거대군무다. 

 

서산사에서 주릉에 올라서면 바로 내려다보이는 하트해변. 조망이 트인 바위가 계속 있어서 10m 오를 때마다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바다 멀리 아스라한 섬은 흑산도

 

 

선왕산 정상부에서 본 하트해변 언덕길과 아기봉 능선

 

   춤추는 능선
선왕산에서 그림산까지 2km는 오르내림이 심한 능선길이다. 조망이 탁 트인 암릉길이라 비금도는 물론 신안의 숱한 섬들을 볼 수 있다. 거대한 백색 바람개비가 도열한 명사십리 저편으로 자은도가 아득하고, 비금도 염전지대 너머로는 수치도, 상하 사치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등이 마치 육지마냥 능선만으로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신기하게도 비금도의 산은 대부분 정상부와 주능선이 바위다. 이웃한 도초도의 산들 역시 비금도만큼은 아니지만 울끈불끈 지면을 뚫고 나오는 바위들의 에너지를 겉잡지 못한다. 높지는 않으나 바위산은 기나긴 백사장과 더불어 신안 1004섬만의 특별한 매력이다.
탁월한 조망에 지루할 틈이 없지만 오르락내리락 꽤나 격렬한 춤을 추는 능선길에서 체력은 빨리 소모되고 다리는 지쳐간다. 하지만 바로 아래에 들판과 마을이 보이니 불안한 느낌은 아예 없고 친근감만 더한다. 
선왕산에서 그림산 쪽으로 1.3km 가면 봉우리 사이의 안부에 죽치우실이 기다랗다. 우실은 방풍을 위해 쌓은 돌담으로 신안의 섬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오목한 골짜기 끝이라 높이 2.5m 돌담만으로도 골짜기와 마을에 불어 닥치는 차가운 북풍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북한산 정상부처럼 온통 새하얀 화강암으로 이뤄진 그림산이 장벽처럼 앞을 가로막는다. 산 높이의 절반을 바위가 뒤덮어서 길이나 제대로 있을지 긴장하게 만든다. 멀리서 보니 아찔한 경사의 사다리가 곳곳에 놓여 있다. 

바위, 꽃으로 피어나다 
거대한 바위는 지구가 피워낸 꽃이다. 아름다우면서 위태롭고 흔치도 않으니까. 그렇다면 바위산이 이렇게 많은 비금도와 1004섬은 ‘지구가 빚어낸 대자연의 꽃밭’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림산은 이름 그대로 산수화를 현실에서 직접 만나는 듯한 기경이다. 
겨우 226m의 높이로 웅장함을 발산하는 이 특이한 산은 매혹의 섬 비금도의 신비를 덧칠한다. 해수면에서 시작되는 산세는 수치 그대로가 산체에 반영되어 같은 높이의 육지 산보다 훨씬 더 높아 보이고 산체도 크다. 
가파른 철사다리와 로프에 의지해 주릉에 올라서면 독립 암봉인 투구봉과 그림산 정상이 북한산 백운대·인수봉과 판박이로 쌍봉을 이룬다. 한산으로 이어진 구름다리를 건너 계단을 올라서면 아찔한 벼랑 끝에서 1004섬 다도해 장관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급사면을 치올라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몰아치는 강풍에도 거암에 두 다리를 버티면 세상은 발아래, 고뇌와 잡념은 작은 몸통 안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다. 
망연히 한참을 머물렀다. 그림산 정상에서 또 한동안 퍼질러 앉아 경치를 보노라니 시간 가는 줄을 잊었다. 두 산의 종주에 3시간 정도를 잡았는데 당치도 않을 계획이었다. 물론 속보로 걷는다면 2시간에도 주파가 가능하겠지만 선왕산~그림산 능선길에서 ‘정서적 조난’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괜한 발품이다. 

그림산에서 본 투구봉과 구름다리

 

 

텅 빈 산, 꽉 찬 마음
겨울이라고는 해도 포근한 휴일인데 산은 텅 비었다. 무리를 이룬 세 사람을 겨우 마주쳤을 뿐이다. 그들도 평상복에 뒷짐을 지고 느린 걸음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걸으면서 바위산이 내뿜는 강고한 기운과 장쾌한 조망, 바다가 둘러싼 광막한 배경 위에서 심신은 원초적 건강함을 되찾는다. 다른 섬 산이 이러기는 어렵고 용의 등줄기처럼 암릉을 돌출시킨 신안의 섬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산행 효험이다.    
나와 이윤기 이사는 탄식을 거듭했다. 자전거로 그렇게 많이 왔어도 그동안 알던 비금도는 평지의 극히 일부였구나 하고. 이 이사는 다음에 라이딩으로 비금도를 찾을 때 꼭 자전거를 두고 산을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사람들에게 보다 많이, 더 특별한 경관을 보여주고 감동을 나누고 싶어하는 그이기에 당연한 반응이다. 라이딩과 등산을 병행하는 것은 풍경을 만나는 관점을 입체화하고, 비슷한 근육을 사용해 자전거여행의 깊이를 더해준다.      
죽림리로 내려서는 길은 정상부의 급경사 암릉을 잠시 지나면 편안한 능선길이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왔는데 바로 앞에서 큼직한 멧돼지가 후다닥 지나간다. 순천 모후산 고갯마루에서 1대1로 멧돼지와 만났을 때는 크게 긴장하고 식겁했는데 이번에는 토끼를 본 것처럼 발걸음조차 멈춰지지 않는다. 
‘아하, 저놈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제놈에게는 사람인 내가 더 무섭겠지.’
거암에게서 받은 기운이 세상을 우습게 보는 만용을 부추긴다. 

 

선왕산 ~ 그림산 안내도

 

 


김병훈 발행인  soolme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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