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천방지축

잡학천방지축
뙈기, 마지기, 단보, 정보, 평, 리… 이야기
‘사내’는 열 마지기 농사꾼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는 땅의 면적을 나타내는 단위가 특히 많다. 뙈기, 마지기, 단보, 정보, 평, 사방 등등.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면적 단위도 농경과 생산력과 연관된 것이 많다. 마지기와 단보는 1인당 연간 소비량의 쌀을 생산하는 면적이고, 1정보는 10명이 먹고 살 수 있는 경작지 면적이다. 흔히 사용하는 평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처음 만들었다 

글 김종성(자유기고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여서 땅의 면적을 나타내는 단위가 경작지와 수확량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이달부터 자유기고가 김종성 씨가 집필하는 ‘잡학 천방지축’을 연재한다. 필자 김종성 씨는 오래 전부터 각종 매체와 온라인에 다양한 주제와 새로운 관점으로 고정관념을 깨는 글들을 많이 써왔다. 대충 알고 있던 내용, 혹은 애매하게 알려진 사실을 집요하게 파헤쳐 그 밑바탕에 깔린 본래의 의미와 원인, 어원 등을 밝히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사다. 때로는 자전거 이야기도 등장하는 그의 잡학 열전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최근 정부의 각종 규제조치로 인하여 부동산 경기가 안 좋을 것 같다고 하는데, 이럴 땐 마음도 달랠 겸 그냥 토지와 관련된 전통적 도량형의 의미라도 한번 새겨보면서 딴 생각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그래서 필자가 오래 전에 쓴 글을 엮어보았는데, 당부 드리는 것은 순전히 전문성 없는 필자의 추측이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재미로 읽어주고 좋은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뙈기’와 ‘마지기’ 
일단 땅 한 ‘뙈기’라고 할 때 뙈기의 의미는 무얼까? 뙈기는 면적과 관계없이 토지의 거래구분 개체로서 요즈음 쓰이는 필지(筆地)를 말한다. 
그럼 한 ‘마지기’란 무엇을 의미할까? 마지기와 가장 유사한 단위는 단보(段步)라는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면 300평이요, 991.735537m²라고 나와 있다. 이를 미터법 근사치로 표현하면 1아르(a : 가로10m × 세로10m=100㎡ 정사각형)가 30평 쯤 되니까, 1단보는 10아르 정도 된다. 
그럼 도대체 여기에는 무슨 뜻이 있을까?
예전에 농업생산성 통계에서 ‘단위면적당 생산고’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이 때 단위면적은 항상 10아르를 의미하였다. 그럼 왜 굳이 10아르 크기를 즐겨 썼을까?
쌀의 경우만 보면, 10아르당 약 400~500kg을 수확하는데, 근대 이전에 생산성이 낮았던 점과 지금처럼 쌀 이외의 끼니거리가 없었던 점을 생각하면, 한 사람이 1년 먹고 사는 양 정도에 해당된다. 이렇게 보면 10아르 즉, 한 마지기는 ‘한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땅의 넓이’가 된다. 그래서 서남 지역 기름진 동네는 200평이 한 마지기였는데, 동북쪽 척박한 동네는 300평이 한마지기인 것이다. 한 마지기의 크기가 들쭉날쭉 한데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지금처럼 지면을 평탄하게 만들 장비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그냥 맨땅에 육안으로 평평한 정도를 짐작하여 물이 고르게 잠길 논 한 뙈기를 만들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수평(水平, horizontal)을 한자로 쓸 때 물 수(水)자를 쓰는지도 모른다. 육안으로 물높이가 수평인 땅을 만들 수 있는 최대크기가 300평 정도의 넓이인 한마지기였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한마지기 넓이의 논 한 뙈기를 만들면 논뙈기마다 높이가 달랐는지, 아니면 주로 산간지역에 한마지기짜리 땅이 위치하였는지 몰라도 단보(段步)라고 계단 단(段)자를 쓴 것 같다.

정보(町步)와 사내 남(男) 
정보(町步)와 사내 남(男)자의 연관성을 알아보자. 흔히 속설로 사내 남(男)자는 十 + 口 + 力 세 글자를 합한 것이라고 해석하여 사내는 ‘열 식구를 먹여 살릴 힘’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오히려 교훈적인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를 약간 다르게 본다. 
일단, 1헥타르(=100아르. 10,000m²) 즉 약 3,000평 넓이인 1정보(町步)는 10단보(段步)를 의미한다. 1단보가 한 마지기이므로 1정보는 열 마지기 넓이에 해당된다. 즉, 한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땅이 한 마지기이므로, 1정보는 열 식구가 먹고 살 땅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옛날에 부역이나 군역에 소집된 남자를 장정(壯丁)이라고 하였다. 쉽게 말하여 장정이란 성인남자를 말하는데, 신기한 것은 町=田+丁, ‘장정(丁) 한 사람이 농사지을 수 있는 땅(田)’이라는 의미가 1정보(町步)가 된다는 사실이다. 열 마지기 농사지을 땅의 단위가 정보(町步)라는 점에서, 결국 사내는 ‘열 식구를 먹여 살릴 힘’이 있어야 한다는 속설이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한 마지기는 한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땅 (1단보 : 段步) 300평
사내는 열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미의 1정보 (町步) 3000평

평(平)
그럼 1평(平)은 무엇을 의미할까? 평(平)이라는 단위가 놀라운 것은 이를 만든 게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2차원 면적단위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토지의 넓이에 2차원 단위 개념을 동양에서는 최초로 적용한 것 아닌가 싶다. 역사적 감정을 떠나 어찌 보면 참으로 신묘한 인물이다. 
여기서 1평은 가로‧세로 각각 6자(181.82cm)로서 3.3058㎡를 의미한다. 그런데, 평(平)에 쓰이는 길이 단위인 자(尺)라는 것을 종래의 주척(20.81cm)이나 당척(29.7cm)을 배격하고 서양의 feet(30.48cm)에 근접한 30.303cm를 적용한 것을 보면 세계표준의 필요성도 알았던 것 같다. 
예전에 어떤 신문에선 1평을 두고 우리의 전통단위라면서 한 사람이 지내기에 딱 맞는 자리 혹은 한사람 묻기에 딱 맞는 무덤의 넓이라고 신토불이식 예찬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던데, 그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작품이란 걸 알았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싶다. 
여기서 필자가 굳이 한 평을 평가하자면 척관법상 300분의 1마지기이니까 결국 한 사람이 하루 먹을 식량을 생산하는 면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예전엔 굶는 일도 잦았고, 삼시세끼의 역사가 100년 남짓한 점에서 굳이 1마지기를 365평으로 적용할 이유는 없었을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1정보(町步)의 땅 둘레는 400m 정도 된다는 점이다. 바로 1리(里)라는 거리가 나온다. 그럼 1리(里)가 마을 한 바퀴란 뜻인가? 그렇다. 마을의 크기도 대충 1정보 정도면 알맞았으리라.
특이한 점은 동양에선 넓이에 대한 2차원인 평방(제곱)단위가 발달하지 않아서 둘레 같은 1차원적 길이 단위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넓이 단위인 단보(段步)와 정보(町步)에 걸음 보(步)라는 길이단위를 썼던 것이다.

사방백리? - 넓이와 둘레의 혼동
고대 동양의 땅 넓이를 이야기할 때 ‘사방 백리’라고 하는 말이 있다. 사방 백리? 도대체 얼마만한 크기일까?
요즘 사람이 얼핏 생각하기엔 100리는 대략 40km이니까 반경 40km 이내의 땅, 즉, 40km×40km×3.14=5,024㎢이니 서울시 면적이 605㎢라는 점을 고려하면, 서울의 8배가 넘는 땅이 된다. 이런 큰 땅을 공신들에게 식읍(食邑)으로 주었다면 나라살림은 금방 거덜 났을 것이다.
고대에는 사방의 관념이 달랐다. 고대 동양에는 ‘가로 × 세로 = 넓이’ 같은 2차원으로 비교하는 관념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저 1차원적인 길이 단위로 넓이를 짐작하고 비교하였던 것이다. 즉, 요즈음 말하는 넓이보다는 둘레를 가지고 땅의 크기를 짐작했던 것이다. 
따라서 ‘사방 백리’는 둘레의 길이가 백리란 뜻이다. 100리는 대략 40km이므로, 가로와 세로가 각각 10km인 정사각형을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10km×10km = 100㎢가 되는데, 이는 서울시 면적의 6분의 1이다.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방백리(5.024㎢)와 고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방백리(100㎢)는 50배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사방’을 왜 정사각형으로 보아야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사방(四方)에서 방(方)자는 모난 것을 뜻한다. 그래서 ‘모 방(方)’이라고 한다. 사방(四方)은 모가 4개라는 뜻이니 동서남북 방위(方位)를 뜻하며, 방위를 표시할 땐 방향별 길이를 동일하게 표현하므로 정사각형을 나타낸다. 
고대 사람들은 둘레가 같은 사각형 중에 정사각형이 가장 넓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다만 모가 4개이니 사각형이고, 동서남북 방위로 보아 정사각형이라는 정도로 간주했을 뿐이다. 그리고 2차원적 면적개념 단위가 없었기에 둘레가 같으면 넓이도 같은 것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사방(四方) 얼마’라는 말 자체가 둘레를 의미하였던 것이다.
설령 정사각형의 넓이 공식으로 계산하려 해도 문제는 사방 백리(가로 10km×세로 10km) 되는 정사각형 땅은 실제로 존재하기 어렵기에 오늘날 같이 측량기술도 발달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냥 넓이보다 둘레를 가지고 표현하는 것이 훨씬 편했던 것이다. 
쉬운 예로, 앞에서 얘기한 1마지기의 땅이 200평인 곳도 있고 300평인 곳도 있는 게 바로 넓이 계산방식이 없는 생활에서 우러난 습속인 것이요, 넓이 단위인 단보(段步)와 정보(町步)에 걸음 보(步)라는 길이단위를 쓰는 것도 바로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는 증거이다.

서양에도 있는 둘레 개념 
그럼 동양만 이렇게 넓이 계산을 못하고 둘레를 가지고 따졌을까? 서양도 매한가지였다고 본다. 쉬운 예만 들면 이렇다. 톨스토이의 소설에 나오는 욕심 많은 농부 파홈 이야기를 알 것이다.
해 뜨는 시각부터 해지는 시각까지 다녀온 거리만큼 땅을 공짜로 준다니까, 땅을 많이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너무 멀리 간 나머지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려고 달려오다 지쳐서 죽었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땅의 크기는 넓이가 아닌 둘레를 가지고 따진 것이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나오는 영화 <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에 보면 미국 서부 개척기에 미주리 대평원의 광대한 땅을 공짜로 분양하는데, 통제관의 총소리에 맞춰서 말을 달려 들판 여기저기에 꽂아둔 깃발을 찜하는 식으로 자기 땅을 차지하라고 하는데, 이 역시 대평원에서 측량하는 것이 귀찮으니 면적이 넓니 좁니 따지는 것 없이 그냥 거리로만 따졌던 것이다.  
덧붙여 생각난 김에 평(平)과 ㎡를 쉽게 환산하는 법을 소개한다. 1평은 3.3058㎡이므로 요즈음 미터법으로 표시된 면적에다 3.3058을 나누려고 하는데, 계산이 쉽지 않아 앱(App)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주 간단하게 근사치를 구하려 한다면 이렇게 하라.
100㎡를 평으로 환산할 때 3.3058로 나눌 게 아니라, 그냥 ‘곱하기 3에다 나누기 10을 하라’는 거다.  그럼 대충 30평이다. 그 정도면 크기가 쉽게 짐작된다.
거꾸로 30평을 미터법으로 환산할 때는 3.3058을 곱할 게 아니라, ‘곱하기 10에다 나누기 3을 하라’는 것이다. 그럼 대충 100㎡가 나온다. 어차피, 소수점 뒤까지 따지는 것이 아닐 바에야 합리적 근사치를 산출하는 게 편리하다. 

 

우리나라는 산악지대가 많아 아직도 경지정리가 되지 않은 계단식 천수답이 적지 않다. 단보(段步)는 이런 산간지대에 1마지기 기준으로 경작한 땅이 많아 생겨난 말인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자전거생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