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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베가본드 ⑧-좋은 만남으로 가득한 멕시코의 나날들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좋은 만남으로 가득한 멕시코의 나날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액터, 마르가리타 부부는 미국 워싱턴주에서 멕시코 콜리마까지 자동차로 3일만에 5000km를 달렸다. 짐으로 가득한 그들의 승합차에 끼어 타고 콜리마에 도착해 두 사람의 집에서 15일을 머물렀다. 축제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활화산 밑에서 수십년 간 혼자 사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대학생 미겔과 청춘을 즐기기도 했다. 어느 산길에서 만난 캐네디언 여성 라이더 켄드라와 마야와는 한동안 여행을 함께 했다

오악사카 호스텔에 도착해서 기념의 세레머니

 

177일째

life in Colima
밤낮으로 꼬박 12시간을 달려 이튿날 오후 콜리마에 도착했다. 액터와 부인 마르가리타는 미국 워싱턴 주에서 배관공으로 일하는 프리랜서다. 미국에서 일을 마친 뒤 자재를 승합차에 싣고 멕시코 고향까지 3일간 5000km를 달렸단다(자재를 항공으로 운반하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 나는 5000km 여행하는데 5개월이 걸렸다고 푸념하자 부부는 재밌어했다. 
액터는 허벅지 염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자신의 집에서 지내라고 말했다. 때마침 콜리마에 도착한 날은 15일간의 지역 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액터의 호의 덕분에 콜리마에서 지냈던 3주간은 여한 없이 축제거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 
액터는 멕시코 맥주 ‘모델로(modelo)’를 매일 마셨다. 그때마다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수다를 떨며 술잔을 부딪쳤다. 소금을 뿌리고 라임즙 몇 방울 떨어뜨린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걸쭉하게 트림을 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날은 대부분 마을을 두발로 걸어 다녔다. 마을 중앙 광장에 있는 콜리마 대성당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규모가 여태까지 내가 봐왔던 성당의 크기를 초월한다. 아름다움과 웅장함이라는 두 가지의 매력을 고루 갖춘 건축물이다. 콜리마 대성당의 사진을 찍기 위해 몇 번이고 산책길로 나설 정도였다.

멕시칸의 폭탄주 제조법 
하루는 콜리마에서 차로 2시간 떨어진 마르가리타의 고향을 부부와 함께 방문했다. 그녀의 고향은 신비로웠다. 마을 뒤에 활화산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마을에 도착하니 하루를 시작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활기를 띈 마을 풍경이 마음에 들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윽고 액터가 처남과 함께 산악용 자동차를 타고 왔다. 차를 타고 20분쯤 산을 오르니 숲 사이로 오두막집 한 채가 보였다. 카우보이모자를 깊게 눌러 쓴 할아버지가 홀로 장작을 패고 있었다. 마르가리타의 외삼촌이다. 그는 60년이나 산속에 혼자 살았단다. 오랜만에 찾아온 외지인, 더구나 한국에서 온 나를 할아버지는 격하게 환대해 주었다.  
붉게 그을린 피부에서 느껴지는 터프함, 빠진 이 사이로 새어나오는 호탕함. 할아버지의 풍채에서는 야생의 숨결이 느껴졌다. 물을 찾는 나에게 마당에 있는 소의 젖을 짜주고 집 앞에 열매를 맺은 과일을 건네주기도 하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조금 특별한 술을 권하셨다. 갓 짠 신선한 우유에 멕시코 전통주 테킬라를 섞고 초콜릿으로 달콤함을 곁들인 폭탄주가 그것이다. 멕시코 사나이들은 우유 잔을 맞대고 우정을 다졌다. 나도 폭탄주를 한 모금 마셨는데 취기가 훅 올라와서 다음부터는 우유에 초콜릿만 넣어 마셨다.  
할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집 앞 활화산은 2017년에도 분화가 있었단다. 주민 대피령이 발효됐음에도 할아버지는 홀로 데킬라를 마시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대학생 미겔
콜리마 생활이 보름을 지날 무렵에는 액터의 누님이 운영하는 민박으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그곳에서 룸메이트 미겔을 만났다. 대학생 미겔은 외향적이고 밝은 친구였다. 18살이라는 말을 믿지 못하는 나에게 당당하게 지갑에서 주민증을 꺼내 보이더라. 미겔이 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면 나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인터넷을 썼다. 마켈과는 같이 마트를 다니고 요리를 해먹으며 친해졌다. 하루는 미겔이 대학 친구들을 나에게 소개했다. 페루니, 페드로, 파블로, 레히나. 모두 개성 있는 친구들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는 꽃을 피웠다.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 클럽 가자.”
나는 청바지 한 벌 없이 누추하게 여행 중이라고, 은근슬쩍 거부의사를 내비쳤다. 내 말을 들은 미겔은 방에서 청바지 한 벌을 갖고 나온다. 그리고는 모두 입을 맞춰 말했다.
“Today is the day. 오늘이 날이야!”
그렇게 청춘들은 클럽으로 향한다. 멕시코 클럽은 입구에서 흉기검사를 엄격하게 했다. 가드에게 몸을 구석구석 검문 받고 나서야 ‘젊음의 지하 동굴’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이날 나는 처음 알게 됐다. 한국남자가 멕시코 여성에게 꽤 인기가 좋다는 사실을 말이다. 

 

182일째
행복하게 사는 방법
콜리마를 떠나던 날, 마을을 벗어나자 기어 변속기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앞쪽 크랭크가 1단 기어로 변속이 되지 않는 문제였다. 임기응변으로 변속기 나사를 조였더니 변속은 되는데 자전거가 덜덜거리는 게 불안하다. 200km 떨어진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 도착해야 변속기를 고칠 수 있을 듯했다.
과달라하라까지는 고속도로 갓길을 이용했다. 산길이 험해서 자전거를 타는 시간보다 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오르는 일이 많았다. 힘들게 고개 정상까지 오른 뒤, 빠른 속도로 내리막을 달리며 흘러가는 초록의 풍경을 바라볼 때는 정말이지 최고였다.
어스름한 시간까지 고속도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휴게소 앞을 서성이다가 직원에게 허락을 받고 잔디밭에 텐트를 친다. 산속이라 그런지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직원 루이즈는 잔디밭에서 캠핑하면 새벽에 춥다며 모포 두 장을 갖고 왔다. 한 장은 바닥에 깔아주고 한 장은 덮고 자라며 건네주었다. 불현 듯 찾아온 이방인을 따듯하게 대해주는 직원의 배려가 고마웠다. 
이튿날 아침, 루이즈는 짐을 싸고 있는 나에게 아침을 먹고 떠나라고 말했다. 근처에 있는 식당 음식이 기가 막히게 맛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알고 보니 그 식당은 루이즈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루이즈의 말대로 어머니의 멕시코 음식은 맛이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루이즈의 어머니는 따듯한 음식의 대가를 한사코 거절했다. 
포만감을 느끼며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으로 페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침 햇살이 나의 전신을 비추기 시작했다. 행복함이 서서히 온몸을 뒤덮는다. 현지인의 베풂으로, 자연의 은혜로, 마음과 몸이 따듯해지는 순간이다.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닐까. 여행도 일도 그리고 사랑도.

 

201일째
자전거 여행자 켄드라와 마야
멕시코시티(Mexico City)에서 오악사카(Oaxaca)로 향할 때였다. 산세가 험한 산길을 내려오다가 도로 위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급커브를 미리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위험을 감지하고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60km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던 자전거는 제동이 되지 않았다. 아스팔트 바닥에 고꾸라지는 자전거에서 튕겨 나오면서 가드레일에 오른쪽 가슴팍을 세게 부딪쳤다. ‘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옷을 들춰보니 몽둥이로 한 대 맞은 것처럼 빨갛게 부어올랐다. 팔뚝, 가슴, 다리. 가드레일에 쓸린 곳이 심하게 화끈거린다. 새하얘지는 정신을 부여잡기 급급했다. 이내 정신이 돌아왔을 때 ‘살았다’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들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속도를 즐기려는 욕심에, 안전을 소홀히 여긴 대가를 혹독히 치룬 저녁이었다.
여행은 계속된다. 이틀간 산에서 캠핑을 하고 오악사카 주에 들어섰다. 정오 무렵, 공터에 앉아 마지막 남은 신라면을 뜯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데 산 아래에서 꾀죄죄한 몰골의 자전거 여행자들이 힘겹게 언덕을 올라온다. 캐나다에서 온 여행자 켄드라, 마야와의 첫 만남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는 한국에서 왔어. 둘은 캐나다 어디에서 온 거야?”
“밴쿠버(Vancouver)!”
“오호, 나도 이번에 밴쿠버를 여행했어. 캐네디언은 정말 친절해! 지금은 어디까지 가니?”
“오악사카(Oaxaca)!”
그녀들은 방긋방긋 웃으며 내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길눈이 밝은 마야는 오악사카까지 가는 길을 내게 일러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라면이 퉁퉁 불었다. “Enjoy Ramen”이라고 말하곤 그녀들은 다시 페달을 돌려 오르막을 오른다. 캐나다를 떠난 지 6개월, 오랜만에 느끼는 캐네디언의 친절 덕분에 퉁퉁 불은 라면도 별미로 느껴진다. 

해발 2000m 고지대에서의 라이딩

 

혹독한 신고식
오후에는 역풍이 강하게 불었다. 자전거를 질질 끌고 평야를 걷는데 켄드라와 마야가 뒤에서 나를 애타게 부른다.
“Hey~Min!!”
‘응? 왜 나보다 뒤에 있는 거지?’
그녀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내가 앞지른 것이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쫒아오는 그녀들이 정말 반가웠다. 텐트를 갖고 다니는지 묻고는 근처에서 캠핑을 하자고 제안했다. 해발 2000m의 산속 작은 마을에서 텐트를 쳤다. 마침 주인이 없는 낡은 슈퍼마켓 앞에 바람 막을 공간도 충분했다. 각자의 취사도구를 꺼내서 저녁을 준비한다. 음식을 먹으며 팝송 이야기를 나눴다.
“어렸을 때부터 캐나다 가수 에이브릴라빈 노래를 자주 들었어.” 
숟가락 가득 계란찜을 입에 넣으며 내가 말했다.
“응? 그게 누구야?”
그녀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에.이.브.릴.라.빈. 몰라? 그 있잖아 ‘Girl Friend’ 부른 유명한 가수. 캐나다에서는 안 유명해?”
“오우~ 아~블 리빈!! 나도 엄청 좋아해. 근데 너 방금 뭐라고 한 거야?”(웃음)
“에.이.브.릴.라.빈”
나의 영어 발음을 듣고 그녀들은 배를 움켜쥐고 깔깔깔 소리 내서 웃기 시작했다. 얼마나 재밌게 웃던지 눈에서는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내가 시무룩한 만큼 그녀들은 해맑았다. 여행자들이 교감하는 순간은 찰나에 찾아왔다. 우리는 밤늦도록 팝송을 들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췄다.
다음날부터 그녀들과 함께 바퀴를 굴렸다. 누군가와 같이 자전거를 타는 건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이었다. 오전에 산속 내리막을 달리며 선선한 바람을 갈랐다. 다음 마을에 도착했을 때 채식주의자 마야는 애호박이 먹고 싶다며 마을 구석구석을 쏘다녔다. 시장에서 애호박을 발견한 그녀는 유창한 스페인어로 가격을 흥정했다. 그리고는 어느새 상인과 친해져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녀의 친화력에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현지인과의 교감은 여행의 풍미를 더하는 향신료와 같다. 켄드라, 마야와 함께 자전거를 타면 힘든 순간도 웃음으로 채워진다. 
해질녘에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 도착했다. 켄드라와 마야는 값이 싼 모텔에서 잔단다. 숙박비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던 나는 마을 외곽에 텐트를 친다고 말했다. 그러자 켄드라는 주저 없이 내게 말했다. 
“어차피 침대가 두 개인데 나랑 마야가 같은 침대 쓸 테니까 오늘 모텔에서 같이 자자.”
‘다 큰 사내가 여인들과 한 방에서 자다니.’ 머릿속으로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문지방에 서있는 나를 발견한다. 야릇한 상상을 하며 좁은 방으로 짐을 옮겼다. 순간 방안에 퍼지는 구린내. 며칠간 씻지 못한 여행자 세 명이 가득 채운 야생의 냄새였다. 진한 구린내는 나로 하여금 그녀들을 더 이상 여자로 볼 수 없게 최면을 걸었다. ‘드르렁 드르렁.’ 피곤한 여행자들의 코골이는 초저녁부터 좁은 방을 가득 채웠다. 

 

205일째
샥슈카(Chakchouka)의 추억
장기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여행지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저렴한 물가, 입에 맞는 음식, 친절한 현지인, 아름다운 자연이 바로 그것이다. 멕시코에도 세계의 배낭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여행지가 몇 곳 있는 데, 오악사카 주의 오악사카(Oaxaca)와 치아파스 주의 산 크리스토발(San cristobal)이 대표적이다. 여행자들은 하루 숙박비 8달러 정도인 싼 호스텔에 머물며 스페인어를 배우거나 휴식을 취하며 긴 여정의 여독을 푼다. 

켄드라(좌)와 마야(우)

 

켄드라, 마야와 함께 멕시코 남부의 전통 도시 오악사카에 도착했다. 며칠간 그녀들과 저렴한 호스텔에 머물며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물가가 싼 오악사카 현지 시장을 방문하면 닭다리를 곁들인 식사가 40페소. 그러니까 한화 2500원으로 한 끼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다. 하루는 전통 시장을 둘러보다가 함께 있던 마야가 기쁜 듯이 말했다.
“어? 여기에도 가지가 있네. Min 오늘 저녁은 샥슈카(Chakchouka) 해먹을까?”
“샥슈카가 뭔데? 맛있는 거야?”
“응. 이스라엘 전통요리야.”
이스라엘계 캐네디언인 그녀는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 배운 샥슈카를 저녁으로 대접하겠다고 호언했다. 나는 주방보조를 자처하며 양파를 열정적으로 다졌다. 눈가에 눈물을 머금으며 말이다. 샥슈카는 피망, 토마토, 양파를 기름에 볶고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일종의 스튜다. 푹 고아서 으깨진 채소 위로 달걀을 깨뜨려 넣기도 하는데, 달걀이 하얗게 익으면 요리가 완성된다. 켄드라, 마야와 테이블에 둥글게 둘러앉아 만찬을 즐겼다. 마야의 실력발휘로 맛보게 된 샥슈카는 꽤 맛있었다. 샥슈카를 한입 가득 먹고 우리는 입가에 미소를 한가득 지었다. 이윽고 코카콜라가 든 유리잔을 부딪쳤다. 콜라가 달았던 것인지 분위기가 달콤했던 것인지, 행복이 느껴지는 밤이었다.
오악사카에서 4일간 지냈다. 정들었던 켄드라, 마야와는 여행 경로가 달랐기 때문에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 고독한 여행을 이어나갔다. 다음 도시인 산 크리스토발에서 지낼 때 그녀들은 나를 만나러 와주었다. 산 크리스토발이 해발 2000m에 위치한 고산지대인 것을 생각하면 그녀들의 의리에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켄드라는 배낭여행자가 되어 중앙아메리카를 여행하고 캐나다로 귀국했다. 마야는 5개월 뒤 남아메리카의 콜롬비아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내 가슴속에는 광활한 자연이 보여주는 감동과 여행자들이 전해주는 체취 가득한 정(情)으로 켜켜이 쌓여간다. 나도 조금 더 따듯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김민형 여행작가  kim_min_hyeong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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