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 최고 조망 두봉산, 낮지만 웅장한 범산

신안 1004섬 산행 ②
다도해 최고 조망 두봉산, 낮지만 웅장한 범산
자은도 두봉산(364m),  추포도 범산(117m) 연속 산행

자은도 동부에 솟은 두봉산은 먼 바다의 흑산도와 가거도를 제외한 신안의 연근해 섬 중 가장 높다. 정상부는 거친 바위를 드러내고 있고 조망이 탁월하다. 1004 섬의 상당수가 시야에 들어온다. 추포도 남단에 고래등 같은 바위능선으로 돌출한 범산(117m)은 낮지만 산 전체가 통바위를 이뤄 웅장하고 기댈 곳 없는 암릉은 아찔한 고도감을 준다. 신안 섬 산 중 연근해에서 가장 높은 산과 가장 특이한 산을 연속으로 오른다

 

신안의 1004 섬은 육지와의 거리를 기준으로 대략 연근해와 먼 바다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 바다는 흑산도, 홍도, 가거도가 대표적이고 숫자가 적으며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 연근해는 북단의 임자도에서 남단의 신의도까지 대부분의 섬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다도해의 클라이막스다. 이 연근해 섬 무리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자은도 두봉산(364m)이다.
작은 섬에서 364m의 높이는 결코 낮지 않다. 해발 제로에서 곧장 치솟아 눈으로 보는 덩치와 비고가 대단해서 내륙의 웬만한 500~600m급 산과 맞먹는다. 가끔 흐린 날에는 산꼭대기가 구름모자를 쓸 정도다. 두봉산(斗峯山)이라는, 어딘가 듬직하고 남성적인 이름도 이 산의 위세를 더해주는 것만 같다. 주민들은 ‘말봉산’으로 부른다는데 어차피 말 두(斗) 자이니 같은 말이다. 바로 옆의 암태도 승봉산(355m)은 되 승(升) 자를 쓰는 것도 이채롭다. 되보다는 말이 10배 많으니, 육안으로는 구분이 힘든 고작 9m 차이인데 옛사람도 두봉산이 승봉산보다 높았음을 알았나 보다.   

도명사에서 산행 시작 
산행 코스는 여러 길이 있지만 취재팀은 최단거리인 도명사에서 출발한다. 작은 절집 바로 뒤에 우뚝한 정상까지는 겨우 1.1km. 동쪽 능선의 안부까지는 널찍한 길이 나 있고 여기서 주능선으로 올라타면 본격적으로 경사가 가팔라진다.
해발 200m 정도부터 암릉이 시작되면서 로프와 난간, 계단이 번갈아 나오는 험로가 이어진다. 호흡은 턱밑에 차고 손발은 후들거려도 숲을 뚫고 허공으로 올라선 암릉길은 장쾌한 조망으로 보상해준다. 도명사는 저 아래로 아득하고, 구불대는 해안선과 바다 건너 다른 섬들까지 가없는 모습을 드러낸다.
40여분을 힘겹게 걸어 마침내 정상에 도착한다. 커다란 암반을 이룬 정상은 남쪽과 서쪽으로는 아찔한 절벽이다. 특히 도명사 방면 남쪽 절벽은 높이가 100m 정도로 위용이 대단하다.
정상 바로 서쪽 벼랑 위에서는 놀라운 조망이 펼쳐진다. 성제봉(225m) 방면으로 길게 뻗어내린 능선은 더 멀리 풍력발전기가 도열한 둔장해변과 외기해변으로까지 치달아 바다와 만나면서 소멸한다. 산줄기의 스케일은 실로 거산(巨山)의 풍모로 300m급 산에서는 정말 드물게 보는 진풍경이다.
조망이 아까워 정상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1004 섬의 매력은 바다, 해변, 들판뿐 아니라 여기 허공 속, 산 위에도 있음을 거듭 절감한다. 

 

호랑이를 닮은 통바위산 
암태도에 딸린 작은 섬 추포도 남단에 범산(117m)이 있다. 117m 높이로 산이라고 부르기가 무엇할 것 같지만, 실제로 대면하면 웅장미와 특이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송공항이나 목포항에서 비금도를 배편으로 오가면 이 범산을 꼭 지나치게 되는데, 마치 해로를 지키는 맹호처럼 거대한 바위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산 이름도 호랑이산 곧 범산이 된 것 같다. 추포도의 명소는 추포해변과 노두길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진짜 볼거리는 여기 범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행 코스는 추포해변이나 추포마을 남단에서 진입하면 된다. 추포해변 남단에서 정상까지는 약 1.2km. 산이 높지 않아 가볍게 주능선에 올라서면 저 앞으로 고래등처럼 거대한 통바위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좌우로 기댈 곳 없는 바위 등줄기를 따라 길이 나 있는데 난간이 없다면 아찔한 고도감에 발길을 떼기 어려울 것이다.
고래등에 올라서면 해풍과 해살에 삭아버린 로프 난간이 어설프게 길을 안내한다. 겨우 100m 높이인데 바다는 저 아래로 아득하고 서쪽으로는 비금도의 산야가, 동쪽으로는 암태도, 팔금도 일원이 훤하다. 

 

추포도 호랑이 
고래등 남단, 해안 절벽 끝에 자리한 정상에 서면 오금이 저리기 전에 놀라운 광경에 환성을 올리게 된다. 바로 맞은편 팔금도 서근등대 쪽과는 겨우 700m의 해협이고 이 사이로 수많은 배가 다닌다. 목포에서 비금도와 흑산도행 여객선이 오가는 서근등대~안좌도 사이 해협을 감안하더라도 전체 폭은 2.4km 남짓이니 큰 호수 수준이다.
등대가 밤에 뱃길을 지켜준다면, 범산은 낮에 뱃길을 안내하는 등대가 된다. 바다에서 보아도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은 거암이 확연하기 때문이다.
북쪽으로는 두봉산이 피라미드꼴로 고고하고, 바다 건너 바로 옆으로는 작은 기암괴석을 훈장처럼 단 승봉산이 둔중한 능선을 흘리고 있다. 1004섬의 진면목은 과연 해변인지, 솔밭인지, 염전인지 팔색조의 다채로움으로 종잡기가 힘든데 여기, 비범한 산세까지 더했으니 매혹의 끝을 단정할 수 없다.  
밀물이면 물에 잠기던 노두길은 이제 현대적인 교량으로 대체되는 중이다. 빨간 교량 옆으로 원래의 노두길을 보존한다니 그나마 옛 정취를 맛볼 수는 있겠다.
벼랑에 막힌 길은 외줄기,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다시금 고래등이다. 왼쪽으로는 인적이 아예 없는 무인지경의 해안선이 나란하다. 산과 바다는 암반과 파도로 거칠게 만나 한동안 불화하다가 100m 남짓한 작은 백사장에서 부드러운 애무로 화해의 몸짓을 나눈다. 아마도 저 백사장 위치면 호랑이의 아랫 품쯤 될까. 먹이감이 아니라 보호대상으로 호랑이 품에 안겨 있다면 세상 두려울 게 있을까.
내륙의 산에서 호랑이는 공포와 숭배의 대상이지만, 여기 추포도 범산에서 호랑이는 품에 안기고 싶은 친근함, 뱃길을 지켜주는 든든한 의지처다. 

 

Tip
두봉산은 자은면소재지에서 출발해 능선을 일주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거리가 7km, 3시간30분이 소요된다. 도명사에서 정상을 왕복하면 2.2km 1시간20분이면 넉넉하다. 추포도 범산은 추포해변에 주차하고 백사장을 따라 남쪽으로 계속 진행하면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왕복 2.4km, 1시간30분 소요. 두 산 모두 천사대교 개통으로 자동차로 접근할 수 있다. 자은면소재지의 두봉건강숯불갈비(061-271-6655)의 왕갈비탕(1만2천원)과 그옛날손짜장(061-261-3556)의 중국요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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