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TRAVEL
아메리카 베가본드 ⑨- 두 달을 지낸 산 크리스토발의 추억길 위에서 만난 사랑…

아메리카 베가본드 ⑨
두 달을 지낸 산 크리스토발의 추억
길 위에서 만난 사랑…


멕시코에서 보내는 마지막 도시 산 크리스토발에서 두 달 가까이 지내며 스페인어를 배웠다. 숙소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그곳에서 배낭여행자인 그녀를 만났다. 친근함을 거쳐 자연스럽게 싹터 오른 감정의 격동…. 갈 길이 달라 곧 헤어져야할 운명임이 분명하지만 나는 숨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의 속마음을 

 

232일 째

Love Story in San Cristobal
‘러브스토리’는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 언제나 여행자들의 낭만으로 손꼽힌다. 여행과 로맨스는 빛과 그림자 같은 존재라서 떼려야 뗄 수 없다. 여행의 상징인 자유를 누리며 인생의 하이라이트인 사랑을 꿈꾸는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 나 또한 그러한 여행자였으니. 멕시코의 마지막 도시 산 크리스토발(San Cristobal)에서 경험한 씁쓸하고 가슴 시린 풋사랑.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멕시코의 사막에서 현지인과 대화할 때면 종종 의사소통의 한계에 부딪히곤 했다.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나라 대부분의 공용어는 스페인어. 현지인과의 교감은 여행의 중요한 요소다. 때문에 멕시코에서 물가가 가장 저렴한 산 크리스토발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기로 했다. 두 달 가까이 머물렀던 호스텔은 일본인 게스트하우스 카사카사(Casakasa)라는 곳이다.
일주일에 나흘을 스페인어 과외를 받았다. 한국어와 달리 스페인어는 남성명사, 여성명사를 구분하며 그에 따라 동사의 형태가 변형된다. 스페인어가 영어보다 어렵다는 소리다. 그래도 나름 공부 열정을 불태우며 매일 밤 공책을 스페인어로 가득 채웠다. 멕시칸 선생님에게 배운 초급 스페인어는 대충 이렇다.

한 달간 스페인어를 배운 뒤로는 현지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실력 반, 눈치 반으로 알아듣는 경지에 도달했다. 중남미는 조금 더 현지인과 소통하며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페인어 공부를 핑계로 산 크리스토발에 장기체류를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관심사는 일본인 친구를 사귀는 것과 사진을 찍는 쪽으로 점점 기울었다.
숙소에는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진 일본인 여행자로 붐볐다. 호스텔 사장 타케시, 3년 간 세상을 유랑한 매니저 류지, 멕시코 정착을 준비 중인 셰프 하지메, 드론 조종사 치하루, 한국인 여행자 성민 그리고 30개국 이상을 여행한 배낭여행자 사야카.


친근감은 떨림의 시작?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에 단발머리, 콧등에서 볼까지 퍼진 주근깨, 구수한 오사카 사투리를 구사하는 유머러스한 일본인. 덩치는 작지만 자신의 몸만큼 큰 배낭을 지고 다니는 여성 여행자 사야카의 첫인상이다. 그녀는 다정한 여행자였다. 마사지 자격증이 있다며 숙소에 머물고 있는 모두에게 20분씩 마사지를 해주었다. 내 차례는 새벽 1시가 넘어서 찾아왔다. 손사래 치며 쑥스러워하던 나도 결국 그녀의 안마 서비스를 받았다. 내 어깨를 주무르던 그녀는 말했다.
“다른 여행자들은 어깨가 많이 굳었는데. 민쨩(쨩은 친한 사람을 귀엽게 부르는 말)은 어깨가 말랑말랑하네.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여행하고 있구나!”
나는 그녀의 말에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듯한 벽난로 앞에서, 오붓한 여행자의 밤이 깊어갔다.  다음날, 그녀는 칸쿤(Cancun)으로 떠난단다. 산 크리스토발에서 칸쿤까지는 버스로 23시간 거리다. 먼 길을 떠나는 그녀를 호스텔 매니저 류지, 한국인 여행자 성민과 함께 배웅해주었다. 헤어지기 전 나는 그녀의 사진을 찍어주었고 마크라메 장인 성민은 그녀에게 목걸이를 선물해 주었다. 성민에게 목걸이를 선물 받은 사야카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그녀가 버스를 기다리는 인파 속으로 파묻힐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칸쿤에서 3주간 지낼 생각이라던 그녀는 삼일 뒤에 숙소 카사카사로 돌아왔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녀는 꼬박 23시간을 걸려서, 쿠바 여행을 취소하고 산 크리스토발로 돌아온 것이다. 게다가 그녀와 똑같이 생긴 쌍둥이 언니 아카네를 데리고 왔다. 

 

그녀를 등에 업고 새벽길을
사야카의 쌍둥이 언니 아카네는 유방암 환자였다. 2년 전에 유방암 판정을 받고 1년 동안 투병을 했지만 암은 완치되지 않았단다. 스물다섯, 가장 아름다울 나이에 건강이라는 큰 재산을 잃은 아카네는 사야카의 권유로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자연에서의 치유를 선택했다. 아카네의 항암치료에는 웃음이 효과적이란다. 배꼽이 빠질 정도로 크게 웃거나 허그를 할 때 몸의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호르몬이 분비되는 모양이다. 이른바 ‘행복 바이러스’.
사야카를 다시 만났을 때는 정말 기뻤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매일 밤 고요한 새벽 시간까지 수다를 떨었다. 자기 전에는 그녀들을 끌어안아주며 ‘항암치료’를 했다. 그래서였을까, 프로 독신남인 나의 마음이 점점 사야카를 향하기 시작했다. 그녀와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공감대가 많았고 이야기가 즐거웠다. 항상 자신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그녀가 예뻐 보였다. 나는 친한 친구라는 명목 하에 쌍둥이 자매를 챙기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야카를 향한 마음은 애틋함을 더해갔다.
주말, 호스텔의 여행자들과 클럽에서 춤을 추고 돌아오는 길. 사야카는 나에게 업어 달라고 했다. 그녀를 등에 업고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새벽길을 걸었다. 고요함 속에서 나는 입을 떼었다.

 

“너를 좋아해….”
지극히 감정에 충실한 말을 뱉어버렸다. 하지만 이 고백은 결코 가볍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았다. 장기 여행자인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때가 되면 각자의 여행길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귀자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단지 지금 끓어오르는 이 감정이 그대를 향하고 있다고, 두근거리는 이 마음이 당신에게 끌리고 있다고 전하고 싶을 뿐이다. 그 밤, 형상이 없는 나의 감정은 그녀에게 어떤 형태로 다가갔을까?


248일 째
그녀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싶어
사야카는 매일 아침 일기를 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기록. 말로는 표현하기 부끄러운 솔직한 감정들이 적혀있단다. 그녀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싶었다. 며칠 전 고백에 대한 그녀의 솔직한 감정은 무엇일까?
산 크리스토발에서 이웃나라 과테말라까지는 버스로 반나절이면 갈 수 있다. 목요일 아침, 사야카와 아카네는 나흘간 과테말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쌍둥이 자매와 헤어진 다음날부터 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감기몸살에 걸린 것이다. 두통, 발열과 함께 심한 어깨 통증이 찾아왔다. 오른팔을 제대로 들어 올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몸에서 계속 열이 났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서글픈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 사야카와 아카네가 과테말라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쌍둥이 자매는 나를 돌봐주었다. 아카네는 해열에 도움이 되는 매실즙을 챙겨주었고 사야카는 통증이 심한 어깨를 마사지해주었다. 체온계로 온도를 측정해보니 39.4도. 감기몸살을 겪으며 사야카에게 의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Love is…
며칠 뒤 3년간의 세계여행을 마치고 매니저 류지가 일본으로 귀국하던 날, 숙소의 여행자들은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버스터미널까지는 도보로 30분. 평소 인품이 좋았던 그를 배웅하는 행렬은 길었다. 아직 감기 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나도 무리에 합류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류지는 한 사람씩 손을 잡으며 작별을 고했다. 류지가 버스에 타기 직전에 사야카는 류지에게 안겼다. 그리고 분홍색 편지를 그에게 건넸다. 류지는 사야카의 볼에 입을 맞추었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 광경을 지켜본 나는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 사야카는 류지를 좋아하는구나.’
순간 한 가지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얼마 전 나에게 사진을 보내달라던 류지의 노트북에 유독 사야카와 찍은 사진이 많이 보였던 것을….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30분이나 걸어서 숙소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혼자 택시를 탔다. 창밖에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발열로 인해 지끈거리는 두통보다, 며칠간 계속되는 지긋지긋한 어깨 통증 보다 가슴이 아팠다. 공허함으로 가슴이 차갑게 아려왔다. 더 이상 사야카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
다음날부터 사야카를 피했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그녀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그녀가 미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누굴 좋아하든, 행복했던 한 달간의 시간이 사라지는 게 두려웠다.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한밤중에 그녀를 옥상으로 불렀다. 그리고 나의 솔직한 감정을 모두 털어놓았다.
“사야카, 오늘부터 너에 대한 마음을 깔끔하게 포기할게. 다시 편한 친구로 지내자.”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사야카와 류지의 관계를 응원해 주겠다는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했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윽고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흐느끼며 울었다. 한참을 눈물을 쏟아낸 뒤 그녀는 입을 떼었다.
“민쨩, 솔직하게 네 감정을 말해줘서 고마워.”
그녀의 눈물에는 나에 대한 어떤 감정이 섞여있는지 궁금했다. 아니, 이제 이런 감정 소모는 그만두기로 했다.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을 접겠다고 말했지만, 인간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전원 스위치를 껐다 켜듯이 하루아침에 지울 수 있겠는가. 다만 숨길 뿐이다.
허심탄회한 또 한 번의 고백 이후로 사야카와 다시 허물없는 친구가 되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쌍둥이 자매가 떠나는 날이 찾아왔다. 이별의 순간 나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참는 게 고작이었다. 슬픔이 가득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와의 이별로 싱숭생숭한 생활로부터 해방되었다. 이성 친구를 떠나보내고 이성을 되찾은 것이다.
전 세계 여행자들이 여행지에서 낭만을 꿈꾼다. 매력적인 이성과 달콤한 로맨스를 그려본다. 하지만 풋사랑의 끝 맛은 쓸지도 모른다. 윤기 흐르는 풋사과를 그대로 둘 것인지 한 입 베물어서 과즙을 음미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나의 경우는 굉장히 쓰라린 맛이었다.



268일 째
과테말라의 화폐 케찰
과테말라 국경이 가까워질수록 산길이 험해졌다. 지나치는 트럭은 연신 흙먼지를 공기 중에 뿜어댔고 비포장도로 위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은 모래를 몰고 왔다. 이따금씩 강풍이 휘몰아칠 때면 자전거를 세우고 눈을 찡그린 채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아스팔트 도로 상태도 좋지 않았다. 여기저기 구덩이가 깊게 파여 있다. 반대편 차선을 달리던 트럭이 구덩이를 피해서 나에게 돌진해 오면 도로 가장 자리로 몸을 피해야 한다. 정돈되지 않은 도로 상태… 과테말라가 멕시코 보다 낙후된 나라라는 것을 실감했다.
오후 4시가 넘어서 과테말라 국경에 도착했다. 멕시코 출국 허가를 받기 위해 이민국에 들어섰다. 이민국직원들은 팔짱을 끼고 텔레비전 시청에 한창이다. 서둘러 여권에 도장을 받고 밖으로 나가는데 텔레비전에서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맛있는 음식 프로그램이라도 보나?’ 하는 생각에 텔레비전을 쳐다보니, 벌거벗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벌건 대낮에, 그것도 근무시간에 당당히 포르노를 보는 멕시코 이민국 직원들. 5개월 간 머물렀던 멕시코는 떠날 때까지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과테말라 국경을 통과하기가 무섭게 환전상이 나에게 들러붙었다. 멕시코 화폐 100페소(약 6달러)를 과테말라 화폐 35케찰로 바꿔준단다. 40케찰 이상 받으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국경에서 환전을 하지 못했다. 이후 며칠간 산길을 달리게 됐는데, 시골에는 돈을 환전할 곳이 없었다. 결국 사흘간 ‘무전여행’을 했다. 그나마 패니어에 비상식량을 구비해두어서 낮에는 라면을 끓여 먹고 밤에는 텐트에서 취사를 하며 버텼다. 부족한 물은 시냇물을 정수해서 마셨다. 

 

 

하루는 저녁에 들판에 텐트를 쳤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경찰초소 앞이었다. 근무 중이던 경찰은 오늘 밤은 자신이 지켜줄 테니 안심하라며 허리에 찬 권총을 내게 보였다. 하룻밤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휘파람을 부르며 쌀에 물을 부었다. 그때 학교를 마친 여고생 세 명이 들판을 지나갔다. 과테말라의 여고생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온 동양인 여행자를 굉장히 신기해했다. 여고생들에게 물었다.
“근처 슈퍼에서 저녁거리를 좀 사려는데 여긴 시골이라서 멕시코 돈은 안 받겠지?”
여고생들은 당연히 과테말라 화폐 케찰만 사용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윽고 한 여학생이 내게 20케찰(약 3달러)을 건네면서 말했다. 
“과테말라 입국을 축하해. 오늘 밤은 슈퍼에서 맛있는 거 사 먹어.”  
나보다 10살 어린 학생의 돈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기특하고 고마워서 20케찰 상당의 멕시코 돈을 내밀었다. 여학생은 웃으며 돈을 마다했다. 마음이 따듯해진 나는 지갑에서 한국 돈 3천원을 꺼내 여학생들에게 한 장씩 나눠줬다. ‘돈’이 아닌 ‘기념’으로 받아달라는 말을 전했다. 여고생들은 어린아이 마냥 기뻐하며 한국 돈을 받았다. 마음이 통했던 것인지, 여학생들은 귀가 후 부모와 함께 내 텐트를 찾아왔다. 부모는 접시 가득 과테말라 가정요리를 내게 대접해주었다. 굶주렸던 나는 숨도 쉬지 않고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경찰도, 여학생들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시골 인심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통하나 보다.
아, 과테말라 화폐는 대도시 우에우에타낭고(Huehuetenango)에서 환전할 수 있었다.

 


김민형 작가  blog.naver.com/alsgud0404

<저작권자 © 자전거생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