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과 지평선 아른대는, 이국풍 호반길

평택호아산호 일주 150리
수평선과 지평선 아른대는, 이국풍 호반길 

평택호(아산호)는 안성천 하구를 가로막은 아산만방조제로 인해 생겨난 인공호수다. 넓은 평택평야를 끼고 있고 미국 외에 단일 규모로는 세계최대라는 미군기지(캠프 험프리)도 접해 있어 미국의 광활한 평원에 온 것 같다. 호수를 일주하는 66km는 미국풍의 렌탈하우스와 적지 않은 외국인 때문에 다분히 이국적이다 

 

 

코스  
평택역~군문교(남단)~안성천 자전거도로~내리문화공원~미군기지 우회~평택국제대교(동단)~백석포리~ 아산만방조제~평택호관광단지~한국소리터 야외공연장(뒤편에서 비포장 농로로 진입)~대안리(마안산 우회)~ 평택국제대교(서단)~길음리~팽성대교~평택역. 66km, 6시간 소요.

Tip
팽성대교를 기준으로 평택호를 시계방향으로 일주하는 코스다. 팽성대교 이후에는 평택호 관광단지까지 식당과 매점이 없으므로 물과 행동식을 준비한다. 평택호 관광단지에서 국제대교까지는 길을 잘 찾아야 하는데 자신이 없으면 신왕2리 마을회관(평택시 현덕면 신왕2길 5)으로 가서 호반으로 나서면 자전거길이 시작된다.
* 추천맛집 : 에즈파파(ESFAFA)는 평택호 관광단지에 있는 카페 겸 경양식집이다. 돈가스를 맛나게 잘 해서 주말에는 줄을 서야 한다. 2층 카페는 호수 전망이 탁월하다. 수제생돈가스 1만1000원. 식사를 하면 커피는 할인해준다. 평택시 현덕면 평택호길 133-1. 031-681-6616

평택호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남한강변에 거주하는 여행작가 조용연 님의 감탄 때문이다.
“오늘 밤에도 미군들이 훈련하고 있어요. 주민들도 시끄러운 헬기를 이해해요. 더우나 추우나, 밤이나 낮이나 쉬지를 않아요.”
우리는 남북군사합의(18년 9월 19일) 이후 훈련을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미군은 밤낮을 가리지 않으니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는 것이다. 물론, 미군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주둔하고 있고 주둔비의 상당부분을 우리가 부담하고 있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미군의 원폭 2발로 일제에서 해방된 것은 사실이고, 이후에는 원조와 한미동맹 덕분에 경제개발에 매진해 지금의 강국으로 올라서지 않았는가. 패권국으로서 자국의 이익을 위한 행동일 뿐이라고 평가절하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어떠한 자선행위도 이기심의 발로로 치부할 수 있게 된다. 이기심의 발로라도 이타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면 고맙게 여기는 것이 인간적 도리다. 
이번에 평택호로 가는 것은, 새롭게 들어선 평택미군기지(캠프 험프리, K6)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다. 공사중일 때 멀찍이서 본 적은 있는데 어떻게 완성되었을지, 해외 단일기지로는 세계최대라는데 주변 풍광은 또 어떻게 변했을지 자못 궁금했다. 

왜 평택일까 
미국에 처음 갔을 때 가장 놀란 것은 상상을 훨씬 초월할 정도로 너무나 광대한 땅이었다. 중부의 프레리(prairie)는 가도 가도 지평선이고, 서부에서는 비행기로 1시간을 가는 동안 큰 마을을 못 볼 정도였다. 서울~부산 400km를 최장거리로 생각하고 도시가 다닥다닥 붙은 한국인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광대함이었다. 
평택역을 출발해 안성천 자전거길로 접어들면 그나마 광막한 들판의 기분이 난다. 서울에서 적정 거리에 있는 평택평야를 기지로 선정한 것도 태생적으로 평야에서 나고 자라들판에 익숙한 미국인의 특성이 반영된 때문이 아닐까. 북쪽으로는 평택호가 빙 둘러 천연의 해자처럼 기지를 에워싸고 있어 방어력을 보강해준다. 이는 고구려의 남하를 대비해 항상 강을 끼고 남안에 도읍을 건설한 백제의 사례(위례성, 공주, 부여)와 유사하고, 적당히 남하한 입지는 북한의 장사정포와 방사포 사정거리도 넘어선다. 
물론 여의도 5배에 이르는 14.7㎢(약 445만평)의 농지가 사라지고 이곳에 터 잡고 살던 주민들이 고향을 잃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6·25 때 5만명을 희생하고 지금도 이 땅을 지켜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고육책일 수밖에 없다. 이런 희생은 당연히 미국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다. 
서울 용산에 있던 미군사령부를 비롯해 수도권에 산재해 있던 26개의 기지를 한곳에 옮겨온 캠프 험프리는 마치 광활한 미국 본토처럼 군사기지의 상식을 넘어서는 규모다. 기지 내에 대규모 마트를 능가하는 PX와 병원, 학교, 도서관, 영화관 등이 갖춰져 있으며, 평상시 4만3000명이 지내고 최대 8만5000명까지 수용 가능하다고 한다. 거대한 자족도시인 셈이다.  

미국풍의 호반 풍경  
평택호를 시계방향으로 일주할 계획인데, KTX 경부선을 지나 둑길로 올라서면 주변 경관이 예사롭지 않다. 호수를 바라보는 좋은 위치에 미군을 위한 렌탈하우스가 자못 이국적이다. 아무리 자족도시라지만 영외생활을 하는 장병과 군속도 많아서 미국풍의 주택과 빌라가 호반을 따라 수없이 들어서 있다.  
팽성대교를 지나 작은 숲언덕에 조성된 내리문화공원을 벗어나면 곧 미군기지가 펼쳐진다. 기지는 작은 언덕 하나 없는 완벽한 평지에 자리 잡아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고 한층 거대해 보인다. 밝은 주황색 지붕의 건물은 휴양지 같은 느낌마저 준다. 
산뜻하고 널찍한 자전거길은 기지 울타리 바로 옆으로 나 있다. 왼쪽은 미군기지, 오른쪽은 평택호 상류로 경관도 다채롭고 시원하다. 
이렇게 기지 내부를 공개해도 괜찮은지 걱정이 들 정도로 둑 위의 자전거길에서는 기지 내부가 훤히 보인다. 기지 최북단에는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패트리어트 마사일이 북방을 향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저 최첨단에 초고가의 무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사진을 찍지 말라거나 하는 경고판도 없이 훤히 개방해놓은 것은 오히려 강한 자신감의 발로로 여겨진다.    
기지의 서쪽 끝에는 18홀 규모의 골프장이 새파랗다. 내부에 비행장까지 있으니 뭔들 없을까. 위성사진으로 보니 야구장이 8개, 400m 트랙과 풋볼 구장이 5개나 있다. 군사기지인지 레포츠단지인지 아리송할 정도다. 
평택호와 접한 미군기지 북쪽면을 돌아나가는데만 7km가 넘는다. 기지를 완전히 일주하면 20km는 될 것 같다.    

 

 

저전거길이 있는 평택국제대교 
미군기지를 살짝 벗어나면 세종시와 평택 오성IC를 연결하는 43번 국도 평택대교가 호수를 건넌다. 자동차전용도로여서 자전거에는 동떨어진 풍경일 뿐이다. 여기서 2km 더 내려가면 갓 완공된 평택국제대교가 하늘 높이 강건하다. 19년말 개통된 이 다리는 길이가 1350m나 되고 안중읍과 팽성읍을 잇는 313번 지방도가 지난다. 기특한 것은 좌우 갓길에 안전한 자전거도로를 조성한 것이다. 코스를 단축하고 싶다면 이 다리를 건너 북안에서 평택역으로 다시 돌아갈 경우 약 25km를 줄여 40km 정도의 코스로 꾸밀 수 있다. 
하지만 진짜 호수 분위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다만 길은 농로를 그대로 활용해 노면은 거칠고 이정표도 없어 꾸준히 호안을 따라 간다고 생각하고 길을 잘 찾아야 한다.       
대형차가 많이 다니는 아산만방조제 구간은 위험해서 초보자는 권하지 않는다. 갓길 공간이 다소 있으나 과속하는 대형차가 너무 많다. 방조제 중간에서 좌회전하면 평택호 관광단지로 바로 이어지지만 좌회전 때 진행방향 정지신호가 없어 자전거 입장에서는 난감하다. 그대로 직진해서 평택호 그랜드호텔 뒤편에서 관광단지로 진입해도 된다.   
평택호 관광단지는 평일이긴 해도 텅 비었다. 이번 여정에는 이승철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이 동행했는데, 그는 한 특강에서 이런 얘기로 말문을 열어 화제가 되었다. 
“동해안 자전거길을 따라 속초에서 포항까지 자전거로 간 적이 있습니다. 왼쪽은 동해의 블루오션인데 오른쪽은 레드오션이더군요. 횟집, 카페, 펜션뿐이에요. 한집 지나 모여 있으니 어떻게 장사가 되겠습니까.”
동해를 블루오션으로, 같은 업종이 밀집해 있는 내륙쪽을 (사업적) 레드오션으로 빗댄 은유가 아주 인상적이다. 평택호 관광단지에 오니 역시 그 꼴이다. 바다건 호수건 물을 끼고 있으면 우리나라는 죄다 횟집이다. 마침 돈가스로 유명한 집이 있어서 점심은 그곳으로 잡았다. 이승철 전 부회장은 “자전거 타면서 점심으로 돈가스 먹기는 처음”이라며, “레드오션 속의 블루오션이 바로 이런 곳”이라고 웃었다.        

       

 

길 잃는 스릴, 길 찾는 재미      
평택호 관광단지에서 호반 자전거길이 다시 시작되는 평택국제대교 아래까지는 일종의 오리엔티어링 숨바꼭질이다. 호반의 농로를 따라가다 보면 서해선 철도 공사로 길이 막히고, 마안산에서는 호반길이 아예 끊어진다. 이정표는 아예 없다. 그래봐야 이런 난구간은 겨우 7km 남짓이니 길을 잃고 찾는 것도 스릴과 재미 삼으면 오히려 흥미롭다. 길이 끊어지거나 막히면 호반을 염두에 두고 우회하면 된다. 농로와 마을길은 어디에나      있다. 조금 에둘러 간다고 초조해 하지만 않는다면. 
국제대교 직전의 고등산을 돌아가는 호반에는 데크로드가 가설되어 있어 물 바로 옆을 지난다. 그물을 올리는 고깃배 한 척만이 이 거대한 호수에 뜬 유일한 인공물이다. 
국제대교 서안 산기슭에는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는데 가파른 길을 한참 올라야 해서 다음 기회로 미룬다.  
미군기지를 마주보는 오성면 길음리에 이르면 마치 펜션 같은 렌탈하우스가 즐비하고 호반길에는 산책 나온 미군 가족이 많이 보인다. 조깅하는 금발의 여인, 자전거 타는 다양한 피부색의 청소년 등 이 한갓진 시골에서 만나는 국제풍이 생경하다. 
착하게도 자전거를 탄 이국의 청소년들은 우리 일행을 마주칠 때 먼저 머리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건넨다. 우리도 “하이~”하며 화답을 해주는데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볼 수 없는 모습이라 반갑기도 하고 한편 속이 쓰리기도 하다.  
전망 좋은 어느 호반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이다. 카페 분위기를 한껏 즐기며 환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 친구들…. 외국인은 대개 외부에 있고 한국인은 이렇게 카페 같은 실내에 모여 있는 것이 대비된다.   
“두두두두~” 갑자기 강 저편에서 거대한 치누크 헬기 4대가 낮게 날며 이착륙 연습을 시작한다. 그 모습에 익숙한 듯 시선조차 돌리지 않는 낚시꾼이 한가롭기만 한 오후다. 
 

아산시로 접어들어 구성리 들판을 지나면 공사중인 서해선 철교가 지나간다(화성 송산~홍성 간 서해선 복선전철은 2022년 개통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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