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이 작렬하던 해변의 대변신
화성방조제 건너 매향리 평화마을 구석구석 
화성시 매향리는 54년간 미군의 해상 사격장이 있었던 곳이다. 한때는 폭탄이 터지고 기총소사의 요란한 폭음이 마을을 뒤흔들었지만 사격장이 폐쇄된 지 15년만에 조용하고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로 거듭났다. 화성8경에 들 만큼 낙조로 유명한 궁평항을 출발해 10km의 직선을 이룬 화성방조제를 건너 매향리 평화마을을 돌아오는 특별한 여정이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산천초목이 봄 향기를 내뿜는 3월이다. 산수유, 매화꽃이 피고 벚나무엔 꽃망울이 잔뜩 물을 머금어 금방이라도 꽃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 벚꽃이 전국을 화려하게 수놓을 때면 산천은 곧 연초록으로 물들 것이다. 
이번에 찾은 곳은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마을이다. 매향리 앞바다는 미군이 1951년부터 2005년까지 54년간 쿠니사격장을 운영해 여러 가지 피해를 입었던 마을이다. 사격 표적이 되었던 농섬 일대와 주변을 둘러보는 테마여행을 나선다. 

궁평항에서 화성방조제로  
출발은 화성시 서신면 궁평항이다. 궁평항은 꽤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항구로 경기도 유일의 국가어항이자 대표적인 관광어항이다. 궁평항 주변에는 여름이면 해수욕장으로 활용되는 백사장과 울창한 해송 숲, 건강한 갯벌과 드넓은 간척지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서 수도권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특히 궁평항의 남쪽 방파제에는 길이 193m의 잔교형 바다낚시터가 설치되어 있어 누구나 안전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고 전망대와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수산물 직판장에는 120여 곳의 활어횟집이 성황을 이뤄 주말이면 주차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인파가 찾는다. 
화성호를 가로지르는 화성방조제는 서신면 궁평리와 우정읍 매향리를 잇는 길이 9.8km의 완벽한 직선으로 탁 트인 바다와 호수를 조망하며 달릴 수 있는 방조제다. 썰물이면 드넓은 갯벌이 드러나 또 다른 모습의 풍광을 연출한다. 

철새들의 낙원    
화성호는 화성방조제가 건설됨으로써 생겨난 인공호수로 원래 담수호로 할 예정이었으나 수질오염의 우려로 시화호처럼 해수호가 되었다. 수만 마리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가 되어 청둥오리, 기러기, 쇠기러기 등 다양한 철새를 탐조할 수 있으며,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 조류인 알락꼬리마도요도 만날 수 있다. 
직선으로 뻗은 화성방조제는 좌우로 바다와 갯벌, 호수와 너른 습지를 두고 있는데, 화옹2지구 습지는 철새들의 낙원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 따뜻해 철새를 많이 볼 수 없었지만, 이따금 한 무리의 철새가 날아오르는 광경은 장관이다. 
화성호 습지는 하천과 연못, 늪으로 이뤄진 습한 땅으로 항상 수분을 머금고 있어 생명이 살아가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화성호에는 곤충 132종, 식물 31종, 야생동물 7종, 저서생물 29종, 조류 90종 등 총 289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썰물 때면 매향리에서 궁평리까지 펼쳐지는 드넓은 갯벌도 습지 못지않게 중요한 자연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화성호 주변에는 일주 도로와 함께 자전거도로가 조성되어 있어 광활한 갈대습지와 철새들의 군무를 만끽하며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무한 직선의 질주 
곧게 뻗은 방조제길을 자전거로 거침없이 달린다. 방조제길을 따라 6.8km쯤에 이르자 우측으로 배들이 정박해 있는 자그마한 항이 나타난다. 지도에는 ‘매향2리 어촌계포구’로 표기돼 있는 곳이다. 이 포구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풍경이 사뭇 다르다. 물이 빠진 썰물 때는 갯벌 위에 몇 척의 배만 누워있는 한산한 풍경이지만, 밀물 때가 되면 낚시를 즐기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바닷물이 빠진 포구는 온통 갯벌밭으로 아득하다. 물이 다시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포구는 낚시꾼들로 활기를 띤다. 
화성방조제가 끝나는 지점에서 바닷가를 끼고 가는 철책선이 이어진다. 철책선은 매향리 고온항까지 2.7km 가량 연결된다. 철책선은 과거 쿠니사격장의 보안시설인 듯하다. 철책길을 따라가면 옛 미군부대 건물과 사격통제소가 보인다. 

매향리의 대변신 
매향리는 한때 미군 전투기 사격장으로 매스컴에 많이 오르내려 부정적인 의미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지금은 아담하고 예쁜 어촌 마을이다. ‘매향리(梅香里)’라는 예쁜 이름은 바닷가 주변에 매화나무가 무성해 꽃이 필 무렵 그윽한 향기가 온 마을에 진동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매향리는 행정구역상 명칭이고 옛 이름은 고온리(古溫里)였다. 고온항도 이 고온리에서 따온 이름이다. 예부터 마을 인심이 좋고 기후가 따뜻해 고온포(古溫浦)로 불렸다고 한다.   
고온항 주변은 온통 뻘밭인 데다 조석차가 커 옛 선착장은 바다를 향해 800m 이상 완만한 경사로 뻗어 있다. 선착장 초입에 조개구이집과 횟집, 굴을 전문으로 파는 어판장이 들어서 있어 나들이객과 낚시인이 즐겨 찾는다. 
마을은 참으로 고요하고 평화롭다. ‘평화’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리는 세상이지만, 매향리의 아픈 역사는 6·25가 한창이던 1951년 미 공군 사격장이 생기면서부터다. 미군은 매향리의 당시 이름인 고온리(Ko On Ri) 발음을 제대로 못해 ‘쿠니(Koonni) 사격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매향리는 평범한 반농반어의 마을이었지만 사격장으로 인해 54년간 주민들은 소음과 오폭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2005년 사격장이 폐쇄되었고, 그 부지에는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이 건설 중이다. 
매향리에는 당시 사격장을 관리하던 부대가 사용하던 막사, 클럽, 전망대, 식당이 그대로 남아있고, 미군들은 바다에 떠 있는 농섬 일대를 해상 목표물로 사용했다. 육상에서는 소총과 포탄 훈련을, 공중에서는 폭격기에 의한 폭탄 투하와 기총 훈련을 했다고 한다. 

사격장 표적이던 농섬으로 
고온항 앞바다 바닷길이 열리면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쿠니사격장 타켓이었던 농섬으로 갈 수 있다. 농섬으로 들어가려면 사전에 물때표를 잘 파악해야 한다. 달의 인력으로 생겨나는 조석(潮汐) 현상은 하루   2회씩(약 6시간 간격) 밀물과 썰물이 반복된다. 밀물이 가장 많이 들어온 최고의 상태를 ‘만조’라 하고, 썰물이 완전히 빠져나간 최저 상태를 ‘간조’라고 한다. 농섬으로 가려면 물이 다 빠져나간 간조 시간대를 알아야 한다. 최대 간조 시간대를 중심으로 전후 1~2시간의 여유를 두고 진입해야 한다. 
간조 시 포구 앞 저 멀리 두 개의 작은 섬이 아련하게 보인다. 하나는 작고 하나는 큰 섬인데 윗섬(방섬)과 농섬으로 불린다. 물이 빠지면 방조제와 모래톱이 이어지며 농섬까지는 3km가 넘는다. 모래톱과 갯벌을 모두 돌아 나오면 왕복 9km 가량 된다. 
농섬은 한자로 짙을 농(濃)자를 쓸 만큼 원래는 우거진 숲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격표적으로 사용되면서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처음 크기의 1/4로 줄어든 채 벌거벗은 민둥산이 되어 매향리 앞바다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 정화작업을 통해 농섬 구석구석에 박혀 있던 불발탄과 탄피를 수거해 ‘’매향리역사관‘에 보존하고 있다. 폭격의 몸살에서 벗어난 지 15년이 지난 지금 농섬은 스스로 치유하며 생명의 땅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물이 빠진 농섬 주변의 풍경. 수평선 위의 대형 굴뚝은 당진의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고요에 잠긴 석천항 
매향리 고온항에서 바닷가로 2.5km 가면 석천항이다. 석천항 바로 뒤쪽에는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는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은 매향리와 석천리 일대의 바닷가에 있으며 여의도의 1.3배인 100만평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연 60만대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생산품은 해상 물류를 통해 직수출 할 수 있다. 즉, 생산에서 물류, 수출까지 모든 기능이 한곳에 집약되어 있다. 
적막한 석천항은 고온항과 더불어 규모가 작은 만큼 항(港)보다는 포구(浦口)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석천항 방파제에 서면 남양방조제 하단 평택시 포승읍에 위치한 한국석유(가스)기지와 바다 건너 당진철강산업단지가 바라보인다. 
석천항은 너무도 고요해서 포구 특유의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궁평낙조 황홀경 
매향리 평화마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화성방조제를 달려 궁평항으로 되돌아가는 길. 맑고 쾌청한 겨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호수와 갈대습지 그리고 드넓은 농경지를 누비는 철새들의 군무를 바라보노라면 마치 동화 속 새의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해가 뉘엿뉘엿 수평선 너머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다. 궁평항에 오면 마지막으로 화성8경의 하나인 ‘궁평낙조’는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다. 궁평항의 방파제는 두 팔로 항구를 안는 것처럼 양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오른쪽 방파제에는 정자도 세워져 있어 낙조를 감상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날씨가 좋은 날 저녁놀이 질 때면 바다와 하늘이 온통 붉게 변해 황홀경을 연출한다. 

 

화옹방조제 물때표 : www.badatime.com
매향리마을 : http://maehyangri.invi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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