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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수도권 근교 자전거코스 -여주 여강길경기 최후의 서정풍경

여주 여강길
경기 최후의 서정풍경


여주 남한강 일원의 트레킹 코스인 ‘여강길’을 자전거로 돌아보았다. 라이딩이 어려운 구간은 우회하느라 길 찾기가 쉽지 않지만 수도권 최후의 여백지대 여주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옛 나루터를 스쳐가는 한적한 숲길, 남한강과 밀착한 강변길, 들판을 끼고 뻗은 둑길… 걷든지 라이딩이든지 길에서 휴식과 자유, 그리고 잔잔한 서정의 감흥에 젖어든다

 

Tip
1~4코스 방향으로 길안내가 되어 있어서 영월루에서 출발하는 것이 편하다. 자전거로 숲길 구간 전체를 완주하기는 어려우므로 우회 구간을 사전에 생각해둬야 한다. 부라우나루터와 세물머리 구간 정도는 ‘끌바’를 각오하고라도 가보는 것이 좋다. 중식장소는 부론면이 적당하다. 희락맛집(033-732-8733)의 청국장(9000원), 두부찌개(8000원), 모두부(1만원)를 추천한다. 


여주는 은비늘처럼 잔물결이 반짝이는 여울의 이미지가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여주를 지나는 남한강은 여주보와 강천보가 생겨 물이 풍부한 지금과 달리 예전 갈수기에는 무릎을 걷고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얕은 여울로 잦아들어 마냥 느긋하고 정겹게 흘렀다. 왠지 눈물겨운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에 가장 어울리는 배경으로 여주의 여울목이 시화(詩畫)처럼 각인되어 있다. 여주의 여(驪)는 여주대교 남단의 말바위에서 유래한 검은말이란 뜻이지만 내게는 여울의 ‘여’자로 느껴진다. 
한강 입장에서도 강원도와 충청도 산악지대를 거칠고 힘들게 흘러온 다음 처음으로 들판을 만나 철퍼덕 주저앉으면서 한 숨 고르고 쉬어가는 길목이다. 여주를 지나면 다시 양평과 남양주의 산악지대에서 협곡으로 움츠러들었다가 구리와 하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폭이 1km를 넘나들고 물이 가득한 전형적인 한강 모습을 갖춰 서울로 흘러든다. 
한때 은빛으로 여울지던 이 강물을 따라 여강길이란 걷기 코스가 나 있어서 자전거로 가본다. 라이딩이 어려운 길은 끌고 가거나 우회하면서 여강길의 맛을 볼 것이다. 여주 사람들은 여주 지경의 남한강을 여강이라고도 부른다. 

 

경기와 강원 사이 
경기도의 기(畿)는 중국 춘추전국시대부터 도읍 주변 500리 이내의 땅을 지칭하는 말로 지금은 서울, 인천과 더불어 ‘수도권’으로 통칭된다. 행정구역상 여주도 수도권에 들지만 강원 원주, 충북 충주와 접하고 있는, 수도권이 뜻하는 대도시와는 거리가 먼 내륙의 소도시다. 면적(608㎢)이 서울(605㎢)과 같은데도 인구는 11만이니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한갓진 지방도시와 처지가 다를 바 없다. 그래도 경강선 전철이 뚫리고 3개의 고속도로 노선이 지나가니 교통에서는 수도권의 기본기를 갖췄다.
여강길은 여주시내에서 출발해 남한강 상류로 올라가 섬강이 합류하는 원주 부론면으로 건너간 다음 대안을 따라 시내로 되돌아온다. 4개 코스 총 61.4km인데 일부 구간을 우회해야 하니 라이딩 거리는 60km 남짓 될 것이다. 
본지 조용연 편집위원이 주필로 있는 여주신문사에서 자전거를 좋아하는 열두바쿠(회원이 6명) 회원들과 함께 출발한다. 
옹색한 시내 뒷골목과 철시한 가게가 많은 시장통은 어느 먼 지방의 소읍 같다. 이런 소박함이야말로 수도권 최후의 여백지대 다운 매혹이다. 
“판검사가 새로 오면 지역 유지들이 모여 영월루에서 환영 축하연을 열어줬어요.” 
변사또가 생각나서 조선시대 얘기인 줄 알았더니 여주경찰서장을 지낸 조용연 편집위원은 불과 30년 전 일이라고 쓴웃음을 짓는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상업과 수운이 발달해 놀고먹기 좋은 고장으로 지형까지 비슷해서 ‘소평양’이라고 불렸다니 그런 전통의 연장선상인가 보다.   
영월루를 지나 익숙한 강변길로 나선다. 참 숱하게도 지나다닌 남한강 자전거길이다.
              
숲에 묻혀가는 나루터  
강 건너로 신륵사가 보이기 시작하고 강변절벽에 우뚝한 강월헌(江月軒)과 삼층석탑이 뚜렷하다. 강변 사찰은 극히 드문데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도 신륵사가 번창한 것은 세종의 무덤이 인근으로 옮겨오면서 왕실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강변 사빈에 자리 잡은 금은모래공원은 이름에서부터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의 정취를 더해준다. 일본 식민지 시절 여주에는 금광이 여럿 있었고 사금(砂金)도 많이 난데서 유래한 지명 같은데 지명만으로도 동심 어린 정겨움을 더해준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강천보를 건너가지만 여강길은 그대로 남하해 단현리에서 구릉지 숲길로 들어선다. 강변에서 맛보는 간만의 싱글트랙 라이딩이다. 동네 바로 옆인데 원시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그만큼 인적이 없다는 뜻이겠다. 이날 코스를 걷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강변의 넓적바위 옆에 부라우나루터가 있다. 단현리와 강 건너 가야리를 연결하던 나루터는 이제 작은 표지판 하나만 남기고 흔적도 없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이별과 만남, 절망과 희망의 교차가 있었을까. 지금이야 편안한 마음으로 마주하는 강물이지만 그 옛날에는 삶의 아득한 단절선이었을 것이다. 그리움과 고통과 증오도 저 강물을 넘지 못했을 텐데 지금은 어디에 있더라도 손바닥 기계 때문에 벗어날 수가 없다. 

숲길을 버리고  
라이딩과 ‘끌바’를 병행하면 그럭저럭 갈만 하지만 부론에서 점심약속이 되어 있어 숲을 우회하기로 한다. 345번 지방도를 따라 흔암리선사유적으로 곧장 간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화덕자리와 탄화된 쌀, 조, 수수, 보리, 콩 등이 출토된 것을 보면 여주에서는 비옥한 땅을 일궈 일찍부터 농경이 시작된 모양이다. 여주는 지금도 경기도 내륙에서는 드문 곡창지대로 여주 쌀의 명성이 높다.                
점동면으로 크게 돌아서 청미천을 건넌다. 청미천이 남한강과 만나는 곳이 삼합리인데 대개 강의 합수점에는 합강, 삼합, 삼랑 등의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여기서 삼합은 남한강, 섬강, 청미천 세 강일  수도 있고, 경기· 충북·강원 세 도(道)일 수도 있다. 
삼합리 한티고개를 넘으면 충북 충주시 앙성면이다. 다시 남한강대교를 지나면 강원 원주시 부론면이니 순식간에 삼도를 밟았다.  
부론의 한 식당에서 거나하고 느긋한 점심을 든다. 몸이 불편한데도 응원하러 와준 유인촌 전 장관과 김태진 한국산악자전거협회 회장이 함께 했다. 식당 문 옆에 나무로 깎은 남근상과 여근상을 배치해놓은, 배포 좋은 여주인이 두부찌개를 푸짐하게 끓여낸다.  
부론은 한강이 내륙 교통의 간선국도 역할을 하던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지방의 세곡(稅穀)을 운반하던 창고 겸 포구인 흥원창 조창(漕倉)이 있던 곳이어서 꽤나 흥청거렸을 것이다. 부론(富論)이란 지명도 부자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온갖 지역 사투리가 뒤섞여 말이 많다는 뜻이란다. 주막거리의 통시적 DNA는 사람에게도 슬쩍 전염되나 보다.     

 

강천섬의 오후 
부론을 출발해 원주 방면에서 흘러온 섬강을 건너면 다시 여주땅이다. 영동고속도로와 나란한 섬강교를 건너자말자 왼쪽 아래 소로로 진입하면 신선이 살아 불그스름한 구름이 낀다는 자산(紫山, 249m)과 아찔한 절벽인 예솔암을 지나는 섬강 합수 구간이다. 
남한강 북한강이 합류하는 양평 두물머리에 빗대어 남한강, 섬강, 청미천 세 하천이 모여드니 ‘세물머리’라는 별칭을 붙였다. 여기서 강천섬까지는 끌바를 해서라도 가볼 생각이었으나 시간을 줄이기 위해 우회해서 곧장 강천섬으로 향한다. 언젠가 다시 와서 조용히 걷고 싶은 길이다. 
여의도, 남이섬처럼 한강의 많은 하중도(河中島)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강천섬이다. 강변 모래톱이 떨어져나가 섬이 되었는데 폭 400~500m, 길이 1.8km의 큰 규모다. 언덕 하나 없는 평지는 하얀 흙길이 가르고 전국 어디서도 보기 힘든 너른 잔디밭과 황무지가 섞여 있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가로수가 샛노랗게 물들고 바람결에 이파리가 흩날리는 몽환경의 무대가 된다.   
한동안 자전거길을 따라가다 강천보 직전에서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을 스쳐간다. 으리으리한 건물과 광대한 공간은 종교적 신념과 열정이 아니면 이뤄내기 어렵다. 상당수의 거대 문화유산은 종교적 산물이다. 
잠시 살아보고 싶은 이호리 강변언덕의 별장지대를 지나 금당천을 건너면 신륵사가 멀지 않다. 절까지 나 있는 마지막 숲길을 돌아 일주문 앞에 도착하니 매표소와 관리인이 길을 막는다. 자전거여행가 차백성 씨가 “나는 경로우대로 입장료를 안내도 된다”고 하자 이홍희 전 해병대사령관은 “나는 국가유공자로 입장료가 공짜”라고 맞장구친다. 경내에서 한참 떨어진 여기부터 자전거 출입을 막으니 맥이 빠진다. 차백성 씨는 “예전에는 자전거 타고 들어갔었는데…” 하며 아쉬워한다. 완장을 찬 관리인이 혹여 우리가 들어갈까 매의 눈으로 살핀다.  
일주문 주련의 글귀나 보면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현실의 인간이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요구다.             
“짧은 기간의 마음 수양이라도 천년의 보배요, 100년의 탐욕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로다.” 

 

여강길 개요도

김병훈 발행인  soolme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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