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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현역 최고령 94세 라이더, 김돈기 선생“걷기는 힘들어도 자전거는 매일 45km씩 탑니다”

‘아마도’ 현역 최고령 94세 라이더, 김돈기 선생
“걷기는 힘들어도 자전거는 매일 45km씩 탑니다” 


서울 신림동에 사는 김돈기 선생은 1927년생 우리 나이로 94세다. 매일 집에서 아라뱃길 김포터미널을 왕복하는 45km 라이딩을 즐긴다. 외모는 80 전후로 보이고 기억력, 시력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근 1세기를 건강하게 살아온 비결 중 하나는 자전거다. 젊은 시절에는 쌀 3가마니로 싣고 서울 골목을 누볐고, 85년부터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 건강을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푼다. 3년 전부터는 e바이크로 바꿔 한층 자유롭고 편안한 라이딩을 즐기고 있다 

 

“대단하십니다! 100세까지는 전혀 문제없으시겠습니다.” 
자전거여행가 차백성 편집위원이 이렇게 감탄어린 찬사로 인사하자, 94세 현역 라이더 김돈기 선생은 그다지 반색하는 얼굴이 아니다(호칭을 고민하다 ‘씨’나 ‘옹’은 아무래도 어색해서 ‘선생’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100살이래야 6년밖에 안 남았는데….” 
그러고 보니 고작 6년 후이니 100년 세월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이다. 그제야 차 위원도, 함께 한 예민수 벨로스타 대표와 기자까지 머쓱해진다. 
벨로스타의 전동키트를 사용하는 94세 라이더, 김돈기 님의 소문을 듣고 예민수 대표에게 소개를 부탁했다가 이날 한강변에서 만난 것이다. 올해 고희인 차 위원은 “선친보다 한 살 위인데 아직도 라이딩을 즐기신다니 꼭 만나 뵙고 비결을 듣고 싶다”면서 동참했다. 궁금한 것이 많다면서 차 위원이 대화를 이끌었는데 칭찬으로 한 첫 마디가 오히려 김 선생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다. 하지만 나이 따위는 별로 안중에 없는 듯 심드렁한 표정이다.        
동료들과 함께 힘차게 달려온 그의 모습은 자전거에서 내려 헬멧을 벗지 않는 한 94세라고 절대 알 수가 없다. 그냥 한강변에서 흔히 보는 ‘고학년 라이더’의 한 사람으로 보인다. 

한강변에서 자리를 함께 한 현역 최고령 라이더, 94세 김돈기 선생(왼쪽)과 갓 7순의 차백성 편집위원

 

매일 45km 라이딩 
김돈기 선생에게 라이딩은 매일의 일과다. 다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매일 4시간 정도. 89세인 부인이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해 그가 손수 돌보고 있어 간병인이 오는 매일 오전 4시간 동안만 자유시간이다. 
신림동 집에서 9시쯤 출발해 도림천 자전거길을 따라 안양천으로 나오면 9시반에 신정교에서 동료들과 만나 출발한다. 동호회나 특별한 모임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된 8명이 팀을 이뤄 달리는 것이다. 최연소가 61세, 김 선생이 최고령이고 80대도 2명이나 있다. 이렇게 아라뱃길 초입의 김포터미널을 다녀오면 왕복 45km 정도가 된다. 전기자전거를 타지만 균형을 유지하면서 페달링을 해야 해서 고령으로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다녀와야 한다니 시간 여유가 별로 없다. 취재팀을 만나서도 사진 몇 장을 찍고는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자리를 일어선다. 동료들이 김포터미널을 돌아올 동안 얘기를 나누기로 하고 근처의 매점에 자리를 잡았다. 
“자전거는 언제부터 타셨습니까? 전기자전거로 바꾼 지는 얼마나 되셨구요?”
차 위원이 본격적으로 질문을 시작했다.  
“7살 때부터 발을 꼬아가며 큰 자전거를 탔어요. 조금 커서는 짐자전거에 쌀 3가마니까지 싣고 배달을 다녔지요.”
일행은 다들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80kg짜리 쌀을 3가마나 실었다면 240kg 아닌가. 1~2 가마니는 들어봤어도 3가마니는 금시초문이다. 지금도 신장이 170cm 정도 되고 평생 현장 일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보면 체력을 타고난 듯하다. 그러다 7순을 넘은 85년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게 됐다고 한다. 
“3년 전에 힘이 좀 떨어지고 허리가 불편해서 전기자전거로 바꿨어요.” 
몇 년 전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기 전에는 젊은이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허리가 불편해 200m도 걷기는 힘들지만 자전거는 50km를 타도 끄떡없다고. 그래서 벨로스타 예민수 대표를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전기자전거 덕분에 매일 바람을 쐬고 동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위험하다고 말려도 자전거 없는 나날은 상상할 수 없다. 

복장을 갖추고 헬멧과 고글까지 착용하면 평범한 ‘고학년 라이더’로 보인다

 

음식 가리지 않지만 술·담배 안 해
이빨은 틀니로 바꿨지만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시력은 좋다. 자전거 계기판의 숫자도 잘 보인다고. 본인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지만 취재팀과 일상적은 대화를 나누는데 전혀 불편이 없다. 식습관이 궁금해서 물었더니 대답이 예상과 조금 다르다.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어요. 고기도 매일 먹어요. 다만 술 담배는 안 해요.”
끝내 술 담배를 배우지 않았다니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현대사의 온갖 굴곡을 함께 해온 1세기의 삶으로는 매우 이례적이다. 김 선생의 건강에는 이 점이 크게 작용한 것이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운동은 전혀 하지 않고 35년간 자전거만 탔으니 70대 이후 그의 건강을 지킨 효자는 단연 자전거일 것이다.   
“매일 이렇게 나올 수 있어서 행복해요. 장거리 여행은 못하지만 빠르게 달리는 일행도 거뜬히 따라갈 수 있어요.”   
1927년생이면 해방 때 19살이나 되니 역사속의 식민지 시대를 철이 들어서 겪은 셈이다.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그 시절 김 선생은 무거운 짐자전거에 쌀가마니를 3개씩이나 싣고 서울 거리를 누볐다. 일제 때 자전거를 통해 민족적 영웅으로 떠오른 엄복동 얘기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엄복동 역시 김 선생처럼 자전거로 쌀가마 등을 운반하던 가게 점원 출신이었다.  

6·25 참전 
1927년생이니 일제강점기, 해방 정국과 미군정, 6·25, 4·19, 5·16 같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직접 겪고 지켜본 산 증인이다. 올해 70주년을 맞는 6·25는 국군 유해발굴단이 활동할 정도로 어쩌면 고고학적인 과거사처럼 느껴지는데 김 선생에게는 여전히 생생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입대하고 제주도 훈련소로 28일간 훈련을 받으러 갔는데 예정보다 3일 빨리 나와 바로 전방에 배치됐어요(전쟁 당시 육군 제1훈련소는 제주도에 있었다. 그래서 논산이 제2훈련소다). 훈련이라야 소총 사격과 박격포 쏴본 게 다였어요.”
김 선생은 중부전선 최전방을 맡은 7사단 8연대에 배속되었다. 그에게는 지금도 잊지 못할 뼈아픈 전투의 기억이 남아 있다. 날짜까지 분명히 기억한다. 
“1951년 5월 17일이었어요. 중공군의 대공세에 우리 7사단과 3, 5사단까지 세 개 사단이 가리산에서 중공군에 포위되었어요. 어찌어찌 해서 겨우 포위망을 뚫고 나왔지요. 그때 너무 굶주리고 목이 말라 길가의 개울물을 마셨는데 알고 보니 5~6m 떨어진 곳에 구더기가 끓는 시체가 있는 거예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지요. 털이 숭숭 난 10cm나 되는 구더기를 아직도 기억해요.”
이후에는 지리산 일원의 공비토벌전에 참가했다가 제대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국가유공자이면서 참전용사로 30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목숨을 바쳐 싸운 참전용사의 연금이 겨우 이 정도란 말인가.    

 

구김살 없는 해맑음  
그 사이 김포터미널을 찍고 온 일행이 돌아와 함께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친구들은 이미 다 떠났고 아들과 사위도 70대인 김 선생이지만 가뿐히 일어나 자전거에 오른다. 
잠시 촬영을 위해 고글을 벗어달라고 요청하니 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이다. 피부도, 주름도 도저히 94세라고 보기 어렵다. 
그에게서 뭔가 특별한 건강 비법을 들어보고자 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 그러나 평범하지만 특별한 비법은 있었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술·담배를 하지 않으며, 스트레스를 덜 받는 낙천적 성격은 언뜻 쉬워 보이지만 모두를 갖추고 실천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소년처럼 해맑은 표정에서 진정한 비법을 엿본다. 
김 선생 일행은 안장에 올라 다시 신정교를 향해 출발했다. 마치 동년배의 동료인 듯 행렬 중간에서 페달링을 시작한다. 다리가 불편하다지만 페달링 자세는 유연하다. 
멀어져가는 김 선생을 바라보는 차 위원의 표정이 밝다. 올해 7순을 맞은 차 위원은 체력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기분을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오늘 김 선생을 만나보고 자신도 할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얻었다고.  
“인생에서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할 분입니다. 열심히 자전거를 타면 나도 저 나이까지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네요.”
70세가 ‘젊어 보이기’는 처음이다. 

 


김병훈 발행인  soolme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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