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 천방지축⑤

허세와 실리의 양면성 
조공朝貢과 일대일로一對一路
근대 이전 중국과 주변국들이 맺은 조공관계는 정치 군사적 예속이 아니라 일종의 평화적 무역체제였다. 이는 주변국이 보내는 조공물보다 사대국이 내리는 사여물이 3~4배 많아 오히려 조공을 자주 바치지 말라고 한 데서도 드러난다. 최근의 중국은 ‘일대일로’를 내세우며 신 조공체계를 꿈꾸지만 파탄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반면 미국은 브래튼우즈체제로 자유무역을 앞세워 적자무역으로 협정국의 부를 키워주고 달러가 기축통화로 떠오르면서 팍스 아메리카나를 이뤘다

정화 함대 600주년 기념우표(2005년)에 소개된 함대. 1405년 당시 정화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선박과 선단을 이끌고 대항해에 나섰다

 

요즈음 중국에 대한 우리의 저자세 외교태도를 빗대어 사대주의니 조공외교니 하는 소리가 많다. 필자는 외교 분야에서 일한 적이 없지만 그냥 상식적으로 추론하자면, 외교에 있어서 대립․상쇄(Trade-off)되는 2가지의 아젠다가 있다면, 실리(實利)와 자존(自尊)일 것이다. 즉, 자존을 희생한 저자세로 견지한 만큼 그만한 실리를 얻어야 하는데, 실리도 얻지 못하는 저자세는 굴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외교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도 매한가지다. 챙기는 것도 없으면서 굽신거리기만 한다면 오히려 비참해진다. 이번에는 우리가 수치스럽게 여기는 조공(朝貢)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보려고 한다. 

국경을 맞댄 나라 간의 관계 
먼저 국경(國境)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국경은 배타성에 기초한다. 배타적이지 않으면 국경을 그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자기소유 토지에 대한 배타적 이용 목적으로 울타리나 담을 쌓는 것과 같다. 지금은 우한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비록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지만, 솅겐 협정(Schengen agreement)이 적용되는 유럽 26개국을 빼면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선 국경을 맘 놓고 넘을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국경을 마주 댄 국가 간의 관계는 두 가지 경우다. 그것은 적대(敵對) 아니면 주종(主從) 관계인데, 소국이 자존을 지키려면 대립해야 하고, 자존을 포기하고 실리를 챙기려면 주종관계를 따라야 한다. 따라서 적대관계나 주종관계를 벗어나려면 국경을 마주하지 않아야 한다. 국경을 맞대지 않은 원거리일 경우에는 대립비용, 상품비교우위, 전략거점확보 등의 문제 때문에 ‘호혜적 평등관계’가 설정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 때문에 나온 말이 원교근공(遠交近攻)이다. 
그러므로 소국이 국경을 마주한 대국에 대하여 자존을 지키는 데는 국경을 마주하지 않는 외부 대국과의 원교근공이 필요하다. 그러면 국경을 마주한 대국은 이러한 소국의 원교근공(요즈음 말로하면 ‘빽’)에 따른 대립으로 지위가 위협받지 않도록 소국과 ‘호혜적 주종관계’에 기초한 평화체제를 설정하게 되며, 실제로 존재하는 이런 형태가 공영권, 즉 ‘팍스(Pax)’라고 할 수 있다. 

Peace와 Pax 
팍스 얘기가 나왔으니, 조공관계를 논하기에 앞서 ‘평화’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해보자. 나름의 주관적 기준을 가지고 구분하자면, 평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 단순히 전쟁이 없는 자국중심의 소극적 평화인 ‘피스(Peace)’와 공영권으로 확대된 적극적 평화인 팍스(Pax)다. 피스는 안온하고 부작위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전쟁 대응능력 정도를 추구하나 팍스는 중심대국과 주종관계에 놓인 주변소국들이 형성한 공영권의 번영을 위하여 전쟁 예방수준 체계까지 지향한다. 흔히 알려진 것으로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1~2세기 로마 주도의 평화시대),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 19세기 영국 주도의 평화시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2차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평화시대) 같은 것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팍스와는 이름이 다르지만 유사한 경우가 동양에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조공관계다. 동양의 팍스에 있어서 공영권의 중심대국은 주로 중국이었다. 물론 동북아의 고구려라든지, 북방민족끼리 주종적 동맹에 의한 팍스권을 형성한 예도 주장하고 싶지만, 조공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비군사적 부문까지 팍스권을 엮은 것은 실질적으로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공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일방적으로 소국이 대국에다 갖다 바치는 게 뭐가 평화라는 건지, 갈취행위로 어떻게 평화가 성립하는지, 듣기에 따라서는 기분 나빠서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성립하는데, 이를 따져보고자 한다. 

첫째, 실리(實利) 때문이다.
‘조공(朝貢)이 있으면 사여(賜輿)가 있다’는 것이 조공의 원칙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조공은 나라 살림을 중국에 갖다 바치고 싶어 안달하는 아부근성의 발로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조공무역을 소국의 손해로만 보는 것은 조공무역의 원칙을 모르는 오해다. 
조공은 단기간의 약탈과 달리 장기간 친밀한 사대관계를 만들기 위한 상징이므로 조공의 부담이 클 경우 조공국의 반항의식이 생겨 배신하게 되므로 지나치게 큰 부담을 지울 수 없었다. 가령, 조선 초기 명나라는 3년 1공(貢), 즉 3년에 1번의 조공무역을 주장한 반면, 조선은 거꾸로 1년 3공, 즉 1년에 3번의 조공무역을 주장했다. 세간의 인식대로 조선에서 명나라에 일방적으로 갖다 바친 것이라면, 명나라에서는 3년에 1번만 바치면 된다는데 굳이 조선에서 1년에 3번 바치겠다고 주장할 까닭이 없다. 
이는 조공국이 바치는 조공물의 대응으로 조공단이 귀국할 때 사대국이 내리는 사여(賜與)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상국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하는 비용이기에 사여품은 조공품보다 훨씬 많은(3~4배) 것이 당연한 원칙이었다. 조공국의 입장에서 보면 사여(賜與)가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원조였다는 것이다. 이러니 우리의 생각과 달리 사대국은 ‘제발 조공 좀 그만 바쳐라’는 식으로 조공의 횟수를 줄이길 원했고, 조공국은 ‘제발 조공 좀 자주 받아라’는 식으로 조공의 횟수를 늘리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은혜를 느끼도록 하기 위한 사대국의 사여 부담이 너무 커져서 국가정책이나 군사전략까지도 변경하는 사례까지 생겼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명의 해금(海禁) 정책이다. 
겉으로 보면 15세기 당시 세계최대의 선단을 거느리고 남해원정을 통하여 중화세력권을 세계적으로 확장해 최고의 팍스권을 이루었음에도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그 팍스권이 조공체계로 운영되었던 탓에 이들 중화세력권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사여로 인한 재정적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에 결국 명나라는 정화선단을 폐기하는 식으로 해양진출을 스스로 차단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대국에는 그리 보탬도 되지 않는 조공으로 생긴 허세를 통한 권위로 소국을 통제하면서, 대국에는 상당한 부담이 되는 사여를 가지고 소국의 저항의식을 완화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돈 주고 평화를 사는 꼴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례 중 재미난 것을 하나 들자면, 조폭액션영화 같은데 보면, "영식아, 넌 정말 의리 있는 애구나"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도 뻔하다. 부하가 두목에게 행동으로 충성하면 두목은 부하에게 정기적으로 생활비 겸 품위유지비를 주어야 조직이 유지된다. 하필 두목의 벌이가 시원찮아 부하들이 이탈하면, 처음 한둘은 잡아다 조직의 쓴맛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이탈하는 숫자가 많아지면 쓴맛을 보여주기는커녕 오히려 찾아다니며 떠나지 말라고 사정사정 해야 한다. 이때 돈 떨어진 두목 옆에 그래도 무슨 정이 남아있거나 혹시나 하는 기대가 남아서 떠나지 않는 부하를 두고 "의리 있는 애"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지배자도 상당한 비용을 치른다는 걸 알 수 있다. 
 
둘째, 사대국의 안보(安保) 때문이다. 
여기에는 중심 대국(사대국)에 대한 주변 소국(조공국)의 공격성향 사전완화 목적을 생각할 수 있다. 
조공은 서주(西周) 때 제후가 천자에게 바친 군신의 예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이 고대 중국과 주변국의 외교관계로 확대되었는데, 주변국은 조공을 바치고 중국은 왕 책봉과 사여품(賜與品)을 내리는 식으로 국가 간 군신관계로 엮어서 주변국을 중국의 패권에 집어넣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군신관계가 역전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중심대국의 군사적 위세가 낮아지면, 강자의 입장에서 거드름피우며 주던 사여가 오히려 겁먹고 돈 주고 사는 평화로 변질되기도 했다. 이러한 예는 흉노가 한(漢)을 ‘아우의 나라’로 부르고, 요(遼)왕은 송 황제를 조카로 불렀고, 금(金) 황제는 남송(南宋)을 제후국으로 봉하기도 한데서 나타난다. 
한 고조 유방은 항우를 격파한 다음해 흉노를 공격하다 백등산에 일주일이나 갇혔다 살아나 굴욕적 화친을 맺었다. 한의 황제가 바뀔 때마다 맏공주를 선우(흉노의 왕)의 첩으로 보내야 했다. 거둔 세금의 10% 이상도 흉노의 몫이었다. 그래도 한은 “전쟁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싸다”고 믿었다. 흉노도 대륙을 지배하기엔 군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무자비한 약탈로 겁을 주며 막대한 세폐(歲幣)를 갈취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흉노의 요구는 계속 커졌다. 지천으로 쌓인 비단은 서역에 내다 팔았다. 로마까지 흘러간 루트가 곧 비단길(silk road)이다. 
비단길에다 바닷길까지 열렸던 중세의 송(宋)은 경제적으로 크게 번성했다. 국고가 넘쳐났다. 그럴수록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컸다. 북방 오랑캐였던 요와 서하(西夏), 나중에는 금과 몽골에 엄청난 세폐를 바쳤다. 갈수록 늘어나는 공물과 군비 지출로 국가 재정이 흔들리게 됐다. 남쪽으로 쫓기면서도 악비 등 항전(抗戰)파를 숙청하며 화친을 구걸했다. 결국 원(元)에 대륙을 모두 넘겨줬다. 
그러나 이러한 역전에 의한 예외적 위험요인이 있어도 대국차원에서 볼 때 조공체계는 대체로 주변소국의 적대화를 방지하는데 유용한 수단이었으며, 소국차원에서는 적어도 대국으로부터 침략당할 구실을 사전에 예방하고 외부의 침략에 대한 안보동맹의 효과(임진왜란)도 있었다고 본다.

셋째, 무역에 있어서의 안전문제 때문이다. 
국제간 무역이나 원거리 유통에 있어서 치안문제가 상당히 심각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원래 접경무역 같은 경우 오늘날의 세관에 해당하는 관청에서 이를 통제감독하면서 안전과 질서가 보장되었지만, 원거리 이동무역의 경우 원격지 간의 직거래에 따른 희소성과 독점 때문에 이윤을 크게 남길 수 있다고 해도 가장 큰 문제가 도적떼의 습격이나 갈취로 인한 안전문제였다. 사실 상인들이 자체경비로 호위병을 고용하려 해도 비용도 비용이지만 자칫 행로에서 만나게 되는 관헌들로부터 오해를 받기 쉬우므로 굉장히 곤란한 문제였다.  
그런데 조공사신단의 경우, 공식적인 무관과 정예병으로 구성된 호위무사들이 많아서 안전이 저절로 보장되어 상인들은 조공사절단과 동행하게 되는데, 이것이 조공무역이다. 물론 상인단의 규모가 너무 커서 조공단의 호위무사 수가 부족하면 상인들이 고용한 사설 호위병을 추가하든지, 출발 전에 조공단에 뇌물을 써서 호위무사를 늘려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그런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상인들에게 있어서 조공 자체가 물류안전이 보장된 원거리 무역의 수단이었다. 
  
넷째, 사대국의 문화전파를 통한 조공국의 정체성 흡수를 생각할 수 있다.  
모든 팍스권에서 공통된 현상이지만, 조공권 역시 문화의 공조현상이 일어난다. 문화적 공조현상을 빚으면 정서적 동족의식이 생겨나기 때문에 서로 대립하기가 어렵게 되므로 어찌 보면 팍스의 최종목표인지도 모른다. 중국 중심의 조공권에서 나타나는 한자문화, 유교문화 등과 같은 공조현상을 들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게 좀 심해서인지 만동묘, 영은문 같은 자생적 동조화를 넘어서 주요지명까지도 전부 차명(借名)하는 소중화(小中華)에까지 이르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 유치해 보이는 이런 ‘소중화 현상’이 21세기 들어와서도 재현되고 있는데, 원교근공의 전략까지 파기할 정도로 문화적 공조가 심해져 이젠 시진핑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미세먼지와 관련된 과학적 사실까지도 스스로 왜곡 해석하는 지경이다. 역사적 원한까지도 잊고 스스로 운명공동체 정서로 함몰되려하고 있다.  
이렇게 조공국의 정체성까지 변질시키는 문화적 공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선 사여와 조공의 차액을 투자할 충분한 이유도 있었던 것이다.  

태평양을 담당하는 미 7함대의 위용. 미국의 패권은 특히 엄청난 해군력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21세기 신 조공체계 - 일대일로 
그렇다면, 21세기에 들어와서 과연 중국 중심의 조공관계라는 관례가 없어졌다고 보는가? 아니다. 과거와 정반대로 ‘조공에 따른 사여’가 아닌 ‘사여에 수반한 조공’을 노리는 식으로 전법을 바꾸었는데, 조공 없이 사여를 가지고 먼저 선수를 친다. 조공에 따른 사여 방식에서 사여를 통한 조공 만들기 방식으로 변질되어, 예전에 사여가 조공보다 몇 배나 많았는데 비하여 지금은 사여의 사용수익에 따른 조공이 오히려 몇 배나 된다. 바로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다. 
어찌 보면 일대일로라고 이름 붙여지기 전에 이미 중국의 산업화에 요구되는 석유, 식량, 원자재 등의 확보 차원의 외교통상 관계는 수립되어 있었다. 시진핑 집권시기에 들어서 이를 일대일로라고 거창하게 떠벌이면서 외교통상에서 거점확보로, 생산시설 및 광업권 투자에서 도로, 항만, 철도, 파이프라인 같은 SOC 투자로, 결재수단에 있어서의 위안화 사용 강요 등으로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는 그 본질이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응하는 팍스 차이나(Pax China) 체제 구축으로 그 의도가 명백해지고 있다. 
사실 중국의 세계적인 레저시설 투자나 차이나타운 건설도 대부분 미국의 군사기지와 그 주변의 동태 감시용이었거나 영미권 및 미 우방국의 감시․공작 목적(우리나라의 경우 제주․평택․춘천)임이 드러나고 있다. 투자국을 조공국화하기 위해 문화공작 겸 첩보공작의 교두보인 공자학원을 운영하는데서 그 목적이 한층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최근 드러난 수법을 보면, 일대일로의 거점이 될 만한 약소국에 과도한 차관을 빌려주는 명목으로 항구를 건설하게 하는데, 그 공사를 전부 중국 업체에만 의뢰함으로써 투자분은 투자분대로 회수하고, 차관은 차관대로 해당 약소국으로부터 받아낸다. 약소국의 상환이 어렵게 되자 항만시설을 100년간 조차하는 식으로 실질적으로 중국영토화 시키는 사례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스리랑카의 함반토다 항구와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가 대표적인 예인데, 일대일로로 지목된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의 공통된 현상이다. 

 코로나바이스로 판세 급변  
이를 조공체계와 비교하면, 사여를 주고 도로 챙겨가고는 항만시설을 뺏어간 데다, 중국업체에 일을 맡겨 차관을 전부 회수하고는 중국은행을 통해 차관원리금 상환까지 강제하는 데서 조공을 뜯기 위한 사여로 볼 수 있다. 그 사여마저도 하사(?)함에 있어 증여가 아닌 대차라는 데서 과거 조공체계보다 훨씬 얍삽하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SOC의 운영에 있어 화웨이를 개입시켜 일대일로 참여국가의 국민 사생활 영역에 이르기까지 내부정보를 탈취한다. 해당 국가의 무기시장을 장악해 중국에 대한 안보의존 체계를 통하여 지배력을 강화해 반감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일대일로 국가들의 이러한 반감은 중국의 위세 앞에 지금까지 표출하기가 불가능했으나, 마침 2019년 말부터 창궐하기 시작한 우한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그 판세가 달라졌다. 중화패권 진출을 위한 고속도로였던 일대일로가 우한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고속도로로 바뀐 것이다. 그것도 일대일로 국가에 빈번히 왕래하는 중국인들에 의해서. 게다가 광저우에서는 우한코로나바이러스 감염원으로 낙인찍힌 아프리카인들이 집과 호텔에서 쫓겨나 노숙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일대일로 국가들이 강한 외교적 반발로 중국인을 미워할 수 있는 감정적인 이유가 생긴데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중국에 대한 손해배상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일대일로에 따른 빚의 탕감 내지 청산의 기회로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빚 떼먹기에 최고 좋은 백신이 된 것이다. 

미국 주도의 브래튼우즈 체제 
차라리 중국이 아예 항만을 지어주고 나서 그에 따른 대금의 분할상환으로 채무관계를 상정하든지, 혹은 기부채납방식으로 운영했더라면 이러한 감정적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괜히 항만 지어준다고 해놓고선 받은 것도 없는 빚쟁이로 만들어버리는 수작이 오히려 굴욕감을 안겨주는 우를 범한 것이다. 
이를 보면, 일대일로는 조공관계에 비하면 상대방이 느끼기에는 공갈로 보일 수밖에 없기에 팍스권이 생성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미국 트럼프에 의한 대중무역전쟁과 남중국해분쟁이 한창이었으니, 중국으로서는 코로나바이러스까지 설상가상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사례는 미국이 브래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를 통하여 자유무역질서를 구축해 달러의 기축통화 체제로 패권국이 된 과정과는 확연하게 대비된다. 
브래튼우즈 협정은 자유무역증진으로 비교우위상품 간의 거래를 통한 회원국 상호간의 국부증진 목적으로 채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2차 대전이 종전을 향해 가면서 연합국의 승리가 확실해진 반면, 종전 후 소련을 주축으로 한 공산권의 팽창이 위협으로 등장함에 따라 공산권의 적대적 팽창으로부터 비공산권을 세력화하려는 목적이 더 컸다. 
원래 동맹은 같은 적대세력을 두어야 가능한데, 공산권처럼 뚜렷한 이데올로기적 공유체제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데다 공산권의 위협에 대한 인식이 낮고 적대감이 적은 비공산권 국가들을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동맹에 가까운 반공주의로 묶기 위해 가장 요긴한 수단은 이들 국가들에 이익을 공유해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시혜에 착안하여 주창한 것이 바로 ‘자유무역’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엮은 브래튼우즈 체제이며, 이를 통해 자유진영의 저변이 서구 중심에서 세계로 확대되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방식 
자유무역을 하더라도 당시 미국이 세계경제의 절반을 차지한데다 부족한 물자가 없는지라 아무리 비교우위를 적용하려 해도 타국들이 미국에 팔만한 품목이 없었다. 이에 미국에서 무역적자를 모두 짊어지기로 하고 모든 협정국으로부터의 수입을 개방했다. (※ 미국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에서 25%까지 줄어든 것을 두고 미국의 쇠퇴를 얘기하는데, 이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서구국가들의 경제가 워낙 피폐했기에 미국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져보이는  착시현상이 생긴 것일 뿐, 실제 규모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이렇게 브래튼우즈 체제가 주창하는 자유무역은 초기엔 협정국들의 생산물을 미국이 억지로 무역적자를 부담하면서 수입해줌으로써 성립이 가능했다. 헌데, 비록 무역적자이긴 하나 이를 통하여 협정가입국들의 산업을 증진시키는 효과와 아울러 이때 엄청나게 유출된 달러로 인해 달러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얻게 된다. 물론 후일 중동의 안보에 대한 개입의 대가로 달러결재를 요구함으로써 오일달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달러는 기축통화로서의 지위가 더욱 강화되었다. 
더구나 종전 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도는 해군력을 활용해 자유무역을 위한 항행의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협정국들의 안전을 담보함과 아울러 ‘세계경찰국가’의 지위도 얻게 되는데, 이는 곧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라는 뜻이 된다. 하긴, ‘지배’ 그 자체가 안전영역을 차지하는 것 아닌가. 
이러한 미국의 해군력을 통한 협정국의 안전에 대한 담보 때문에 후일 금 태환이 중지되어도 달러의 가치는 그다지 상실되지 않는데, 태환물이 금에서 해군력으로 바뀐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적대하는 국가는 다른 나라와 달리 안보나 이념 외에 달러기축통화체제에 대한 도전도 포함된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개입한 국지전의 발발이유 중 상당수가 알게 모르게 달러에 대한 도전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신판 조공무역의 완성 
아무리 과거에 식민지였거나 현재 개도국이라고 하더라도 친미국가는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는 반면, 아무리 자원부국이라고 해도 반미국가는 독재와 가난으로 허덕이는 것을 볼 때, 달러와 미 해군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올해 들어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아래로 곤두박질치면서 산유국들이 감산합의를 하려고 난리다. 그러나 셰일석유업체가 파산하든 말든 미국에선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은 인상이다. 어차피 유가가 오르면 또다시 살아날 업종이라는 기대도 있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젠 ‘석유 캐서 파는 놈이 달러 찍어 내는 놈을 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정의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브래튼우즈협정에 기인한 미국의 자유무역체제가 현재 중국의 일대일로 보다도 근대 이전 중국의 조공무역과 닮았다는 생각이 안 드는가. 그 중국의 사여에 해당되는 것이 지금 미국의 달러이고, 정화의 남해원정함대가 지금 미국의 해군이라고 보는 게 억지 같아 보이는가. 오히려 실질적으로 조공체계를 더욱 완벽하게 발전시킨 형태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 비하면, 일대일로는 조공체계의 실질적 내용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위세만 계승하여 허세나 부리는 공갈 같아 보이지 않는가. 기껏 사여처럼 돈을 뿌린 게 대부분 정치인 매수와 이를 통한 편법적 자본침투였으니, 조공체계와 비교할 때 너무나 근시안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가. 
팍스권에 동참하면 이익과 번영을 보장해주는 곳과 팍스권에 엮이면 예속과 수탈의 늪으로 빠져드는 곳, 어느 팍스권이 진정한 조공체계인가.
하긴, 더 가관인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신조어인 ‘중국몽’을 만들어내어 과잉숭배하는 우리의 태도나, ‘운명공동체’까지 운운하며 코 꿰이려는 중국의 술책을 보면, 우리의 편협된 사대주의는 조공체계 때문이 아니고 유교적 지배체제 강화 목적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도 조공이란 게 그저 고리타분한 관습으로만 보이는가? 복(福)보다 덕(德)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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