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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새코스-평택 남양호원효의 해골 물 흘러들었을, 산뜻한 호반길

평택 남양호
원효의 해골 물 흘러들었을, 산뜻한 호반길 

남양방조제로 인해 생겨난 남양호는 물줄기가 반듯하게 정리되어 얼핏 보아도 공업화 현대화 된 인공호수다. 방조제 덕분에 주변에는 광대한 농지와 산업단지가 들어섰고 호반의 낚시꾼들은 평화와 한가를 누린다. 인근에는 원효대사의 해골 물 일화가 어린 수도사가 있어 깊은 성찰의 시간도 만들어준다. 그런 특별한 계기를 호반길에서 실제로 조우하기도 했으니…

 

Tip
수도사나 사하촌의 식당가에 주차하고 호수를 일주하면 편하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남쪽에 있는 석천항도 경관이 좋고 조용해서 기점으로 괜찮지만 화장실 외에는 편의시설이 없다. 수도사 초입의 광명식당(031-681-1433)의 찌개류가 괜찮고 앞마당에 장시간 주차도 가능하다.  


남양호는 남양만으로 흘러드는 발안천 하류에 있는 담수호로, 공식면적은 967ha(약 210만평)이나 되는 대규모다. 호수를 만든 남양방조제(74년 완공)는 아산만방조제(73년 완공)와 함께 서해안 갯벌 간척의 시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가자. 언제부턴가 이 나라의 지도와 지명에서 가장 기본적인 지형 개념이 사라졌다. 반도(半島), 만(灣), 곶(串), 군도(群島), 분지(盆地), 고원(高原), 고개(嶺) 같은 가장 기초적인 지형개념이 지도에서 없어진 것이다. 일상에서 이런 지형을 들먹일 경우가 드물어 점차 잊혀져간 것인데 그만큼 국토는 물론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하지 않고 있다는 뜻도 된다. 지식과 지성의 기본은 세계와 자연을 분류하는 데서 시작되는데 이런 기초를 소홀히 하고 있으니 지적 사상누각은 높아만 간다.  

호수의 끝은 어디인가 
하천의 하구에 방조제를 쌓으면서 생겨난 호수여서 사실 어디까지가 호수이고 강인지 구분하기가 난감하다. 호수의 공식면적을 역산해보니 상류는 화성시 장안면 풍무대교까지다. 하류는 폭이 1km에 달하지만 풍무대교에서는 100m 정도로 점차 체감한다.
방조제가 막고 있는 하구 일원에는 한국가스공사의 거대한 LNG 저장기지가 들어서 있고 바로 옆에는 해군2함대가, 그 옆으로는 평택항과 포승지구 산업단지가 이어진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도 북쪽으로 지척이다. 주변은 삭막한 공단 분위기지만 풍부한 용수를 댈 수 있는 남양호와 간척 덕분에 경제를 견인하는 중요한 산업기지가 모여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호수 주변의 간척농지도 광활하다.            
문제는 호반을 일주하는 35km 동안 큰 마을도, 편의시설도 전무하다는 점이다. 그나마 하류 남쪽의 원정리가 가장 큰 동네이고 식당과 매점도 있어서 이곳을 기점으로 잡는다.   

원효의 해골 물, 바로 그 장소? 
원정리 안쪽에는 아주 특별한 사찰이 있다. 한국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 원효와 의상이 당나라 유학길에 잠을 잔 토굴, 바로 그 현장이라는 수도사다. 수도사로 들어가는 77번 국도 변에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 간판이 커다랗다. 
원효(617~686)와 의상(625~702)의 나이를 감안하면 당나라행은 650~660년 전후였을텐데, 한국 불교사에서 가장 유명한 그 일화의 현장이 1400년의 시간을 넘어 아직 이곳에 살아있다는 말인가? 
젊은 시절의 원효와 의상은 당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불법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길에 나선다. 1차는 육로를 택해 고구려 국경을 넘다가 첩자로 오인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져 신라로 되돌아왔다. 10년 후 두 사람은 해로를 이용하기로 하고 다시 당나라로 출발한다. 서해안포구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해는 지고 비까지 내려 두 사람은 근처 토굴에서 밤을 보낸다. 밤중에 갈증을 느낀 원효는 마침 옆에 있던 바가지의 물을 맛있게 마셨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토굴은 허물어진 무덤 속이고 물은 해골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이었다. 이 순간 원효는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一切唯心造)는 깨달음을 얻어 당나라행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화는 중국의 기록에 전하는데, ‘송고승전(宋高僧傳)’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비바람을 피해 토굴에서 잠을 잘 자고 다음날 일어나보니 무덤 속 해골 옆이었다. 다음날에도 비가 계속되어 할 수 없이 하룻밤을 더 머무는데 이번에는 귀신이 나타나 잠을 방해한다. 원효는 갈파한다. “전날 밤에는 토굴이라고 생각해서 안락하더니 오늘밤은 무덤 속이라 생각하니 뒤탈이 많구나. 헛된 마음 생겨나니 헛된 것 생겨나고 헛된 마음 소멸하니 토굴과 무덤은 둘이 아니다. 삼계는 오직 마음일 뿐이다. 나는 당나라에 가지 않겠다.”   

평택 or 화성?
2006년 단국대 매장문화연구소의 ‘평택 원효대사 오도성지 학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수도암터를 원효의 오도처로 추정했다. 수도암은 지금은 LNG 기지가 들어선 원정리 산기슭에 있다가 1960년대에 현재의 수도사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성시는 당나라와의 무역항이던 당항성이 화성시 서신면 구봉산에 있는 당성으로 추정되는 점을 들어 원효의 오도처는 이 당성 근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성 아래에 있는 신흥사도 그 후보지 중의 하나다. 신라 때 당나라에 파견된 견당사의 루트가 이 방면이어서 학자들의 의견도 수도사와 신흥사로 엇갈린다. 
이 일화가 사실이라고 해도 원효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경험이어서 그의 직접적인 얘기 말고는 정확한 현장을 알 도리가 없다. 원효는 전국을 떠돌며 수많은 사찰을 창건하고 일반 백성들에게도 불교를 전파하며 다녔기 때문에 “바로 여기가 나의 오도처”라고 알리고 암자 정도는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반은 맞는 셈 치고 수도사의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을 돌아본다. 전시관과 전시내용이 훌륭하다. 맨 안쪽에는 어두컴컴한 토굴을 재현해 놓았는데 원효와 의상의 구법행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토굴의 그 밤 대목에서 갑자기 번개가 치면서 바닥이 훤해진다. 바닥에는 해골이 널려 있어 기겁하게 만든다. 깊은 공감과 사색의 도중이었다면 이 와중에 깨달음이 올 수도 있겠다 싶다. 
수도사는 최근에 수축한 절이라 깔끔하고 세련됐지만 고졸한 맛은 없다. ‘한국전통사찰 음식문화연구소’가 있을 정도로 전통 사찰음식으로 유명하고 템플스테이도 진행한다. 
이제 수도사를 내려와 남양호로 향한다. 수도사가 비스듬히 남양호를 보고 있으니 당시 해골 물도 필시 흘러들었을 것이다. 

 

광야의 호반길
남양호 남안에서 시작해 반시계방향으로 호수를 일주한다. 거리는 약 35km. 모두 평탄하고 길이 빤해서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출발해도 부담이 없다. 
원정리에서 농로로 진입해 호반으로 나선다. 이 광활한 농토는 남양방조제(1974년 준공) 이후 갯벌을 간척한 땅이다. 평일의 호반길은 적막강산이다. 간혹 낚시꾼이 갈대밭에 터를 잡고 앉아 있을 뿐이고 길가에 주차된 차량도 낚시꾼들이 타고 온 듯하다. 알고 보니 남양호는 낚시터로 유명해서 거의 성지 같은 곳이다. 우리는 움직이는데 저들은 가만히 앉아서 도대체 뭘 낚고 있을까. 오늘 일행은 자전거여행가 차백성 편집위원과 나 둘뿐이다. 
중동 근무 시절 소일 삼아 낚시를 많이 했다는 차 위원은 “물고기도 생명이어서 생계가 아니라 도락으로 죽이는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씁쓸해 했다. 그런데 강변에 줄지어 앉은 낚시꾼들의 느긋한 태도를 보아 생계도, 도락도 아니고 그저 세월과 낙망을 낚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낚시대를 통해 온갖 시름을 호수로 내려 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름의 눈물을 담아 물은 저리도 깊고 많을까.    
바둑판처럼 잘 정리된 농로를 따라 최대한 강변에 붙어서 달린다. 수면과 길의 높이차가 작아 친근한 감흥을 준다. 간혹 길이 끊어지면 조금만 우회하면 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서해안고속도로 홍원1교 아래를 지나 청북읍 방면에서 흘러오는 홍원리 수로를 돌아 나온다. 저 고속도를 수없이 지나다녔건만 여기서 보는 경관은 아예 생경하다. 차창으로 보는 풍경은 TV 화면과 다를 바 없고 고속의 주마간산으로 교감의 시간이 없으니 기억에 무엇을 남기겠는가. 

호반의 어떤 죽음 
이제 호수는 폭 400m 정도로 줄어들어 건너편이 가깝다. 평택시흥고속도로 남양호교를 지나면 300m로 더 좁아들고 감소폭은 북상할수록 커진다. 이윽고 개울 정도로 작아져 호수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물길이다. 화성시 장안면 풍무대교를 건너 서안으로 접어든다. 번듯한 2차로 아스팔트 도로여서 차량 통행이 다소 있지만 4km 가량 가면 농기계와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별도의 갓길이 나 있다. 
313번 지방도가 지나는 장안대교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호반의 농로로 들어선다. 채 얼마 가지 않아서 119 구급차와 경찰차가 길을 막고 있고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다. 여러 명의 구급대원이 물가에 쓰러진 낚시꾼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다. 구급대원들은 돌아가며 10분 이상 최선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낚시꾼은 끝내 깨어나지 않았다. 
근처의 다른 낚시꾼이 엎드린 채 머리가 물에 빠져 있는 그를 발견해서 꺼냈다고 한다. 아마도 심장마비 같은 것으로 의식을 잃고 앞으로 꼬꾸라지면서 머리가 물에 빠진 것 같다. 심폐소생술로 회복이 되지 않자 구급대원들은 가여운 낚시꾼을 구급차에 태우고 급히 병원으로 향한다. 아직 심장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는 걸 보니 가망이 없는 듯하다. 안타깝고도 황당한 최후다. 그가 타고 온 차 옆에는 매운탕 장비가 보인다. 5월의 호반에서 고독의 풍미를 즐기려던 그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사고 낚시꾼은 60대로 보였는데 차 위원은 “그래도 좋아하는 낚시를 하다가 큰 고통 없이 갔으니 본인에게는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무겁게 말했다. 올해 고희를 맞은 차위원은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면서 “마지막에 잘 죽기가 정말 어렵다. 주위에 폐 끼치지 않고 큰 고통 없이 잘 떠나는 것이 인생 최후의 복”이라고 쓸쓸해했다. 
현장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사고 낚시꾼을 건져낸 또 다른 낚시꾼이다. 사람 좋아 보이는 초로의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망연히 서 있다. 차 위원은 다가가더니 “정말 좋은 일 하셨다. 최선을 다했으니 기운 내시라”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혹시나 좀 더 빨리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하고 자책감에 빠질 수 있는 남자에게 좋은 말로 위로한 것인데 참으로 시의적절했다. 중동에서 일할 때 비슷한 사고를 수습한 적이 있다는 차 위원의 경륜에서 나온 한 마디였다. 인생 선배의 위엄과 인간미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메멘토 모리…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척에서 목격한 황망한 죽음 앞에서 우리는 로마의 격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를 떠올렸다. 장군이 승리하고 개선하면 뒤에서 시종이 이 소리를 외치며 함께 행진했다고 한다. ‘한 번의 승리에 자만하지 말라, 언젠가는 당신도 죽는다’는 의미라는데, 당시 세계 최강의 제국이면서도 삶에 대한 깊고 겸손한 성찰이 경이롭다. 
수로 때문에 302번 도로로 잠시 우회해서 기아자동차 사거리에서 남양방조제로 향한다. 방조제 중간쯤에 서 있는 방조제 준공기념탑은 잡초에 묻히고 풍설에 퇴색해 방치된 모습이다. 자연석에 깊이 새겨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남양호’는 찾는 이도, 관리하는 이도 없이 먼지와 차량 소음에 삭아간다.
방조제 남단에는 얼마나 큰지, 얼마나 많은지 감도 오지 않는 거대한 LNG 탱크와 하늘을 향해 장대한 포문을 연 화력발전소가 있다. 2km 남짓한 방조제 하나를 막아서 곡창지대와 산업기지를 동시에 일궈낸 효율과 집중력이 놀랍다. 전쟁 없이 이룩한 영토 확장의 한 프론티어가 여기다. 
그러나… 찬란한 5월의 하늘 아래에서도, 거대한 산업단지의 위용 앞에서도, 대지와 호수의 광활함 앞에서도 우리는 울적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마셨다는 그 재현 토굴에서 받은 정서적 충격과 호반에서 목도한 실존적 죽음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1400년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시대를 살던, 원효도 가고 호반의 낚시꾼도 가버렸다. 꺼져가는 생명을 끝까지 붙잡기 위해 분투하던 젊은 구급대원들도, 굳은 표정으로 현장을 지켜보던 구경꾼들도, 자전거를 멈추고 갈 길을 잃은 우리도… 언젠가는 갈 것이다. 
차 위원은 귀가 후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을 절감했던 하루….’ 
 

 


김병훈 발행인  soolme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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