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언덕 보리밭 사잇길

신안 매화도 ~ 마산도 
바닷가 언덕 보리밭 사잇길 
섬 천국 신안에서도 압해도와 증도 사이에는 특히 많은 섬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그중 매화도는 작은 섬을 꽉 채운 매화산(238m) 때문에 도드라진다. 멀리서는 특별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선 매화도는 평범하다. 대신 북쪽으로 노두길이 이어져 있는 마산도가 비경을 숨기고 있다. 매화도와 달리 산 하나 없이 부드럽게 일렁이는 구릉지로 이뤄져 있고 보리밭과 귀리밭이 환상경으로 펼쳐진다. 아무도 찾는 이 없이 소수의 주민들만 생활의 터전으로 지내는 마산도는 자전거마저 너무 빨라 조용히, 천천히, 속속들이 걸어보고 싶어진다

 

배편 
▪ 신안 압해도 송공항에서 매화도까지 천사아일랜드호가 다닌다. 송공항을 출발해 당사도, 소악도, 매화도, 소기점도, 대기점도, 병풍도를 순환하는 배편이어서 50분 가량 소요된다. 
6월 5일 기준 06:50, 09:30, 12:50, 15:30 4편이 있다.
요금 4500원. (유)해진해운 061-279-4222, 244-0803
▪ 무안 신월항에서는 마산항 행 더존페리호가 3회 운항한다.
 09:05, 11:30, 16:00.  요금 3000원, 30분 소요. 정우해운 061-247-2331 

Tip
매화도와 마산도를 다 일주해도 20km 남짓이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속속들이 돌아보면 좋다. 섬에는 매점과 식당이 없으므로 식수를 포함해 간식 등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다만 매화도 북단의 사해마을에 있는 매화도민박(010-6261-5661)은 사전에 식사를 예약할 수 있다. 매화도 청돌선착장에 화장실과 식수대가 있다.  

완만한 구릉지에 부드럽게 너울대는 농익은 보리밭, 그 사이로 구불거리며 아득히 돌아나가는 실낱같이 작고 하얀 길…. 인적도 소음도 없는 원초적인 정적 속에 실바람에 춤추는 보리와 밀의 서걱거림만이 들리는 곳. 
지름 1.5km의 이 작은 섬에서 감탄의 방황을 일삼고 있는 것은 작은 산 하나 없고 그렇다고 반듯한 평지도 드문 연속된 구릉지에 보리밭만이 가득해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신안뿐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섬은 산으로 채워져 있어서 섬으로 낚시 가는 사람보다 등산 가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이런 평지 섬은 극히 귀하다. 평탄한 구릉 섬은 제주도 가파도가 대표적인데 마산도는 크기와 분위기 모두 가파도와 흡사하다. 사방이 트여 어디 한 곳 기댈 데 없이 파도와 바람을 지면 전체로 스쳐맞는 가파도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섬 중 하나다.  
마산도는 가파도에 비해서는 기복이 있는 편으로, 구릉지 해안을 따라 보리밭 사잇길은 너울파도처럼 상하로 완만하게 일렁이고 좌우로도 내키는 대로 흔들거린다. 

매화도 뒤에 숨은 마산도 
1004섬 자전거길이 비켜나 있지만 처음 주목한 섬은 매화도였다. 매화꽃을 닮아 매화도라는데 실제로도 섬 크기에 비해 헌칠하게 높은 매화산(238m)이 듬직한 사다리꼴로 엎드려 있는 모습은 멀리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인근을 지나는 배에서는 항상 눈길을 끌어 일종의 천연등대 같은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수없이 배를 타고 지나면서 저 매화도에는 또 어떤 풍경이, 어떤 비경이 있을까 호기심과 궁금증을 낳았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보는 매화도는 소수의 주민들이 일상을 엮어가는 생활의 터전일 뿐이다. 숲으로 뒤덮인 매화산은 매화꽃잎 마냥 동그마니 모아든 주능선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고 조망도 별로 트이지 않는다. 찾는 이가 드물어 등산로도 수풀에 묻혀간다. 지름이 3km가 넘고 면적은 6.7㎢나 되는 꽤 큰 섬인데도 30여 가구만 산다. 주민들은 어업보다는 간척 농지에 벼를 심거나 산록의 밭을 일구며 산다. 한바퀴 11km의 일주도로를 돌아봐도 매화도는 가만있고 주변 섬들이 나를 알아봐달라고 아우성이다. 곳곳에서 허물어져가는 빈 집들이 매화도의 현실을 말해준다. 

 

아, 마산도 
매화도를 돌아서 북쪽으로 나서면 갯벌 위로 기나긴 노두길이 뻗어나며 마산도가 훌쩍 다가선다. 최고지점이 31m일 정도로 낮고 완만한 마산도는 멀리서 보면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고 누런 보리밭만이 원경의 수채화처럼 여린 톤이다. 
노두길이 높직해서 밀물에도 잠기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듯 방금 전 물이 빠져나간 흔적이 별로 없다. 거대한 송전탑이 서 있는 첫 번째 섬은 마산도와의 사이에 있는 황마도다. 여기도 낮은 구릉지여서 온통 보리밭이다. 
황마도를 지나 짧은 노두길을 건너면 마산도다. 지금은 간척으로 동그란 형태지만 원래는 말 모양이어서 마산도(馬山島)로 불렸다고 한다. 무안 신월항에서 오는 배가 닿는 마산항이 한적하고 길에는 아예 인적이 없다. 
좁은 농로를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섬 일주에 나선다. 지금은 하나의 섬이지만 원래는 북쪽의 마산도, 남쪽의 장미도, 서쪽의 동아시섬 세 섬이 분리되어 있던 것을 1980년대에 방조제를 막고 간척을 해서 하나의 섬이 되었다. 자세히 보면 세 섬을 연결한 세개의 방조제를 알아볼 수 있다. 
풍경은 놀라울 뿐이다. 놀랍다기보다 이 땅에서 워낙 드물어 신기하고 또 반갑다고 해야 할까. 조금 과장하자면, 윈도우 화면의 그 유명한 초원 언덕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일행은 환성을 지르며 보리밭 사이로 구비치는 하얀 길을 천천히 만유한다.  
가만히 보니 섬 내에 버려둔 경작지가 거의 없는데 사람은 찾을 길이 없다. 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겨우 한 분 만났다. 보리는 알아보겠는데 검은 빛이 도는 작물과 밀을 잘 몰라 물었더니 검은 건 찰보리이고 밀로 착각한 것은 귀리란다. 이렇게 경치가 좋은데 찾아오는 사람은 없는지 물으니 시큰둥하게 고개를 흔든다. 
“아무도 안 와요. 여기 뭐 볼게 있다고 사람들이 오겄소. 그냥 밭뿐인데.”

 

그래서 더 정겹고 그림 같은 곳 
외지인에게는 보기 드문 기경(奇景)이지만 주민들 입장에서는 생계를 꾸리기 위한 일터일 뿐이다. 그런 간극이 오히려 흥미롭고 정겨우면서도 드문 풍경을 찾는 도시인에게는 매혹이다.  
바닷가로 성큼 다가서는 짧은 방조제를 지나면 서쪽의 동아시섬으로 접어들고 보리밭 가운데 두어 가구가 조용히 잠겨 있다. 인기척은 없지만 사람은 사는 듯하다. 마을 저편에는 한때 아이들이 뛰놀던 분교가 있었지만 지금은 건물과 운동장 모두 수풀에 묻혀 알아보기 어렵다. 분교터 근처가 그나마 가장 높은 지대인데 그래야 해발 31m다. 
서쪽에는 동아시섬과 장미도를 연결하는 300m 정도의 꽤 긴 방조제가 나 있다. 방조제 안쪽의 저습지는 귀리밭으로 일구었지만 일손이 부족한지 제초를 하지 않아 잡초가 뒤섞여 자란다. 마산도 면적이 약 1.5㎢(약 45만평)이니 30가구라면 가구당 경지면적이 1만5000평이나 된다. 이 정도 규모라면 무슨 작물이라도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젊은이들이 살지 않는 것은 젊음을 감당하기에 이 낙도에는 불편과 결핍이 너무 많아서다. 이 아름답고 특별한 경관도 일상의 노동이 끼어들면 얼마 안 가 시들해질 것이 분명하다.  
살짝 언덕진 곳에 교회당이 한가롭다. 섬에 유일한 마산교회를 지나면 마산도 일주는 끝난다. 내륙과 해안에는 사잇길도 많이 있어서 일일이 다 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저 언덕 너머에는 뭐가 있을지, 저 모퉁이를 지나면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궁금하지만 조금은 남겨두기로 한다. 기약이야 없지만 언젠가 분명히 다시 올 것 같아서다. 현실에 질식해서 어디론가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날 때, 나는 문득 이 먼 낙도행 배에 다시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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