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로 충분한 힐링 여행

충북 제천
단 하루로 충분한 힐링 여행
높고 빼어난 산악지대와 광대한 청풍호를 안고 있는 제천은 도착하는 즉시 ‘자연치유의 고장’‘슬로시티’라는 홍보문구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실감한다. 구석기시대 유적인 점말동굴과 삼한시대 수리시설인 의림지를 보더라도 아주 옛날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었다. 천주교 배론성지, 박달재, 청풍호 어디를 가나 차분하고 조용해 거니는 것만으로도 자연치유를 느낀다. 심호흡을 하면 투명한 공기는 폐부를 지나 전신을 정화시켜주는 것만 같다. 거대한 재래시장의 싱싱한 활기는 발랄한 생명력을 고양시켜준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신종코로나 사태는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사태가 조금 수그러졌다 싶으면 또 어딘가에서 새로운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그야말로 매일매일이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다. 
극도로 발달된 커뮤니케이션이 확진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다보니 사람들의 불안감과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어딜 가나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사람 만나는 것도 불안하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써 6개월이나 계속되다보니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폐해져 있다. 이때야 말로 우리에게는 적극적인 힐링이 필요한 시기다. 

피폐해진 몸과 마음의 힐링 방법
인류의 역사는 대략 250만년이라고 한다. 그중 대부분의 기간은 자연속에서 자유롭게 수렵생활을 하며 살았다. 인류가 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한 것은 불과 1만년 밖에 안 된다.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이 생겼고 마을이 커져 국가가 되었다. 사유재산이 생겼고 재산을 탈취하려는 개인 간의 다툼과 국가 간의 전쟁도 이때부터 비롯되었다. 자연스럽게 빈부의 차이와 계급이라는 것도 나타났다. 그러면서 인류는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다. 
모여 살다보니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남과 비교하면서 상대적인 박탈감도 생겨났다. 도시가 확대되면서 동물의 영역과 겹치게 되었고 그러면서 동물로부터 발생한 새로운 전염병으로 인해 끊임없이 고생해 왔다. 문명은 발달하지만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계속 피폐해져 갔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이런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아직 없는 것 같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것은 바로 인류의 고향인 자연을 찾아가는 것이다. 인류의 유전자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자연생활은 우리가 249만년 간 살아온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을 찾아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힐링의 어원은 그리스어 ‘HOLOS’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말은 ‘온전히 되돌린다’는 의미다. 상처 나서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좋은 자연을 찾아가 원래의 온전한 상태로 되돌리는 게 바로 힐링이다.

제천의 유래, 의림지 
우리나라 최고의 힐링 명소인 제천을 찾았다. 맑은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일찍 제천을 향해 떠났다. 오늘따라 날씨도 맑고 먼지 하나 없다. 왠지 오늘은 제대로 힐링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제천시는 얼마 전부터 ‘자연치유의 고장 제천’ ‘슬로시티 제천’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홍보하고 있다. 
제천에서 처음 찾아간 곳은 유명한 의림지다. 의림지는 삼한시대 때 만들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아주 오래된 저수지다. 저수지와 강으로 유명하다보니 둑을 의미하는 제(堤)와 강을 의미하는 천(川)자가 들어가 마을 이름을 제천이라고 했단다.
의림지는 잘 관리되어 있어 깨끗하고 조용했다. 보통 저수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낚시꾼도보이지 않는다. 물가에는 벤치가 잘 비치되어 있다. 산책 나온 주민들이 벤치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다니는 사람도 없고 큰소리도 말하는 사람도 없다. 조용히 하라는 푯말도 없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분위기 자체가 그래야만 하는 것 같다. 이것만으로도 제천은 정말 힐링의 고장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기분 좋게 의림지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잔잔한 물에 상쾌한 바람이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주차장에는 지역 특산물을 파는 작은 매대가 있는데 특이하게 부추와 미나리를 화분에 심어서 팔고 있다. 꽃도 아닌 야채를 말이다. 야채도 이렇게 심어 놓으니 꽤나 예쁘다. 두개 모두 샀다. 나중에 집에 와서 베란다 화단에 놓아두니 색다른 화초 같다. 먹을 수도 있으니 정말 잘 샀다. 

 

배론성지의 작은 깨우침 
의림지를 나와 천주교 성지인 베론성지를 찾았다. ‘배론’은 외국어나 종교적인 말이 아니고 배의 아랫부분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이 동네의 형태가 배의 아랫부분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배론은 처음부터 그 어감이 듣기 좋았다. 
배론성지는 200여 년 전 초기 가톨릭 신자들이 종교박해를 피해 숨어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신앙촌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우며 때로는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신앙을 지켜낸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성요셉 신학교도 여기 있다.경내는 정말 조용하다.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와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만 들린다. 졸졸거리는 시냇물 소리를 들어본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잔잔해진다. 성지에는 처음 와봤다. 오기 전에 상상하던 성지의 비장함이나 엄숙함은 없다. “신자가 아니라도 좋으니 누구라도 부담 없이 들어와서 천천히 둘러보세요. 그러다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한숨 돌리고 가세요.”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것만 같다. 
경내에는 낮은 언덕을 이룬 넓은 잔디밭과 미로가 있다. 미로 안내판에는 이런 글이 씌어있다. “인생 여정에는 생로병사가 있습니다. 인생 여정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참고 견디면서 묵묵히 걸으면 반드시 약속은 이루어집니다.” 읽고 있노라니 비슷한 글이 생각난다. 중세 일본의 명장이자 정치가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했고 이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게 바로 깨우친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는 삶의 진리인 모양이다. 삶이라는 것은 그냥 묵묵히 한 발 한 발 가는 것이지 달려가고 건너뛰는 게 아닌 모양이다. 
글귀를 가슴에 품고 경내를 아주 천천히 둘러보았다. 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상쾌하게 해준다. 순교자의 삶과 신념을 생각하니 과연 삶이라는 게 뭘까, 삶에서의 진정한 가치는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잔잔해지면서 바쁘게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해준다.

박달재의 슬픔  
배론성지에 이웃한 박달재로 향한다. 지금은 박달재터널이 개통되어 있지만 터널이 없던 시기에는 바로 이 고갯길을 하염없이 넘었을 게다. 잠시 자전거로 넘어볼까 생각했다가 긴 오르막에 미니벨로로는 엄두가 나지 않아 차에 올라 박달재 정상으로 향했다. 고갯마루에는 박달재 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님아~”로 시작되는, 그 유명한 애창곡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비가 서있다. 노래비를 보며 익숙한 음률을 따라 조용히 불러보았다. 
박달재에 얽힌 전설도 흥미롭다.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다 박달재 아랫마을에 하룻밤 머물렀는데, 이곳에 사는 어여쁜 처녀 금봉과 서로 첫눈에 반했다. 며칠간 사랑을 나눈 박달은 장원급제를 다짐하며 떠난 뒤 감감무소식. 매일같이 고개에 올라 박달을 기다리다 절망한 금봉은 결국 숨을 거두고, 뒤늦게 달려온 박달은 금봉의 환영을 잡으려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고개를 박달재라 불렀다고 한다. 과거에 떨어진 박달은 금봉을 볼 면목이 없어 다음 과거를 기다리며 한양에서 차일피일 하다가 그만 너무 오래 지체하고 만 것이다. 지금이야 지구상 어디에 있든 휴대폰이 통하지만 그때야 인편이 아니면 연락이 안 되는 시절이었으니… 반대로 생각해 보면 통신기술은 떨어져 지내는 연인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점심때가 되었다. 오기 전에 미리 검색을 해서 맛집을 찾아두었다. 메밀칼국수집인데 내비게이션에 입력해보니 박달재에서 가까운 백운면에 있고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시골식당으로 아담하고 정겨웠다. 안에는 5, 6개의 테이블이 있고 이미 손님으로 꽉 차 있다. 
잠시 기다렸더니 자리가 나길래 메인메뉴를 주문했다. 근데 메뉴 이름이 좀 길다. 정식명칭이 ‘옹심이·들깨·메밀·칼국수’란다. 각기 다른 4가지 음식이 이렇게 한가지로 통합되어 나오는 것이다. 건강에 좋은 재료가 다 들어 있는 그야말로 종합영양제다. 우선 양이 꽤 많다. 한 젓가락을 집어 맛을 보니 아주 담백하다. 처음에는 싱거울 정도여서 소금을 넣어야 하나 했는데 몇 번 씹다보니 아주 독특한 맛이 나고 그리 싱겁지도 않다. 이게 바로 들깨와 메밀의 만남인가 보다. 국수의 양도 많고 국물도 걸쭉하다. 맛나게 한 그릇 다 먹으니 배가 부르고 든든하다. 

놀라운 재래시장   
시내에 들어가 재래시장을 돌아보고 골목길도 가보면서 그 고장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시장에서 고장의 특산물을 사는 것도 즐겁다. 제천은 연평균기온이 8~11도로 사과재배에 최적지다. 게다가 일교차가 아주 커서 과일의 당도가 매우 높다. 시장에 가서 사과를 찾았지만 저장사과는 대부분 온라인에서만 팔고 시장에는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 온 목적 중의 하나가 맛있는 사과를 사는 건데… 안타깝다. 대신에 참외와 토마토를 한 봉지씩 샀다. 집에 와서 먹어보니 이것들도 아주 맛이 좋았다. 
제천시장은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그냥 하나의 시장이 아니라 3개의 다른 시장이 계속 이어져 있다. 직선거리만 해도 1km가 넘을 것 같아 서울 남대문시장에 비견할 만하다. 없는 게 거의 없는 것 같고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도 정말 많다. 진짜 사람 사는 동네 같다. 제천은 확진자가 한명도 없는 코로나 청정지역이란다. 
제천에 간다고 하니 꼭 먹어야할 게 있다고 누가 알려주었다. 제천빨간오뎅이란다. 평평한 어묵을 꼬치에 꽃아 매운 양념을 바른 것인데 한 꼬치에 300원이다. 매운 것을 먹었는데 톡 쏘는 맛이 특이하다. 매운 것과 보통 것을 섞어 몇 개를 먹었다. 어느 ‘먹방’에서 누군가는 100꼬치를 먹었다는데 나도 잘하면 그 정도까지 먹을 수 있겠다 싶다. 그만큼 맛이 좋다. 

 

작약꽃 만발한 길 
이제 제천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청풍호로 향한다. 청풍호는 충주댐으로 생긴 충주호를 제천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충주에서는 충주호, 제천에서는 청풍호, 단양에서는 단양호로 부른단다. 지명은 하나여야 하지만 애초에 물 위에는 경계선이 없고 애향심의 발로이니 아무렴 어떠랴? 
청풍호 가는 도로변에 큼직한 꽃봉오리의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있다. 장미인가 생각했는데 내려서 보니 장미가 아니고 작약이다. 작약은 사실 흔히 볼 수 있는 꽃은 아니다. 서울에서는 수목원에나 가야 있을까? 그런 꽃이 여기서는 거의 가로수급이다. 길가에도 집뜰에도 어딜 가나 작약이다. 
작약꽃은 정말정말 아름답다. 작약과 비슷한 게 모란인데 꽃만 보고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굳이 구분하자면 이파리로 구별한다. 그리고 작약은 풀이지만 모란은 나무다. 신기하지 않은가? 나무와 풀, 완전히 다른 종류인데 생김새가 똑같다. 모란은 4월에 피지만 작약은 5월에 핀다. 두 꽃을 놓고 가만히 보면 모란은 예쁘다는 생각이 들고 작약은 아름답다는 느낌이 든다. 왠지 그렇다. 활짝 핀 작약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그 아름다움에 숨이 막힐 정도다. 
작약은 꽃도 꽃이지만 이름에 약(藥)자가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약효를 가진 약재다. 작약의 영문명이 ‘피오니’인데 그리스신화에서 치유의 신인 ‘파이온(Paeon)’에서 유래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좋은 약재로 재배되고 있는 것이다. 작약은 여러 질환에 효과가 있는데 특히 부인병에 좋아 불임도 치료한다고 한다. 집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키우고 있으면 마음도 아름다워져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고 그러면서 아기를 낳고 싶다는 소원이 이뤄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작약은 보통은 홑작약인데 겹작약도 있다. 품종명을 ‘볼뷰티’라고 하며 한 송이에 2~3만원으로 조금 비싸다. 그러나 장식해 놓으면 분위기가 아주 우아하다. 참고로 작약을 함박꽃이라고도 부르는데 북한의 국화인 함박나무꽃과는 완전히 다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제천시는 치유의 고장을 표방하면서 한방바이오 단지를 조성하고 한약마을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약초인 작약재배를 권장하는 모양이다.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작약을 마음껏 보았으니 이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것 같다. 내년 5월 작약이 필 때 제천에 와서 작약꽃밭에서 사진도 찍고 은은한 작약 향기와 함께 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길 강력 추천한다. 

 

호반길의 감동 
청풍호를 즐기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청풍호를 왕복하는 유람선을 타도 좋고 비봉산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타도 좋다. 이번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어느 것도 이용하지 못했다. 30여 년 전 신입사원 시절, 회사에서 매년 실시하는 전사원 단합대회를 이곳으로 왔었다. 그때 충주호에서 유람선을 탄 기억이 난다. 배안에서 가수 조덕배의 <꿈에>라는 노래가 나왔다. 석양에 물살을 가르며 가는 배안에서 그 노래를 들었을 때의 느낌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번에 다시 유람선을 타고 그 운치를 느껴보려 했는데 아쉽다. 
청풍교를 넘어 청풍문화재단지에 들어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 사태로 임시 폐관했는데 4월말부터 다시 개관했다고 하니 다행이다. 입장료는 3천원이다. 옛날 모습을 재현해 놓은 농가도 있고 충주댐으로 인해 수몰된 지역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수몰기념관도 있다. 전시된 내용을 읽어보니 단양은 읍 전체가 통째로 수몰되었고 지금의 단양은 신단양이라고 해서 완전히 새로 만든 도시다. 충주호는 그만큼 큰 호수다. 우리나라에서 소양호 다음으로 큰 댐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 수몰기념관을 지나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한벽루가 있다. 
한벽루에서 바라보는 청풍호는 일품이다. 한벽루에서 다시 언덕을 오르면 봉우리 위에 망월루가 있다. 여기에 서면 청풍호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으로 둘러싸인 파란 호수를 바라보니 정말 가슴이 탁 트인다. 그냥 넓고 물만 있는 호수의 밋밋함이 아니고 높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호반의 라인이 복잡해 더 입체적이고 아름답다. 멋진 경치를 바라보는데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금상천화다. 
심호흡을 해본다. 오늘 여기서 특이한 경험을 했다. 호흡을 하면 공기는 코나 입으로 들어오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여기서는 공기가 머리부터 가슴, 발끝까지 온몸으로 들어와 통과해 가는 느낌이다. 내 몸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다. 시원한 공기가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지나가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힐링인가 보다. 마음도 여유로워진다. 오늘이 며칠이지? 무슨 요일이지? 다음 주에는 무슨 약속이 있지? 이런 것들이 다 하찮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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