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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베가본드 ⑬-남미에 진입, 첫 번째 나라 콜롬비아안전해진 도시, 평화롭고 여유로운 사람들

아메리카 베가본드 ⑬
드디어 남미에 진입, 첫 번째 나라 콜롬비아
안전해진 도시, 평화롭고 여유로운 사람들

이제 남미 첫 나라 콜롬비아로 들어선다. 한때 ‘마약왕국’이라는 악명을 떨친 곳이라 살짝 긴장했지만 막상 주민들은 밝고 친절했으며 도시의 뒷골목도 안전했다. 첫 도시 메데인에서 며칠을 보내며 도시를 구경하고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어울렸다. 캐나다인 여행자 모니카와 잘 맞아서 함께 미술관 구경을 가고 현지 마라톤대회에 출전한 그녀의 사진도 찍어주었다. 그러다 멕시코에서 만났던 캐나다인 여행자 마야에게서 연락이 왔다. 같은 콜롬비아를 여행하고 있다는 소식에 만나서 함께 다니기로 하고 짐을 챙겨 남쪽으로 향한다   

 

331일 째
남미 여행의 시작, 매력의 도시 메데인

콜롬비아 하면 유명한 게 두 가지 있다. 바로 커피와 마약이다. 콜롬비아는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12% 이상을 차지하는 커피 대국이다. 품질 면에서는 세계 1위를 자부하는데 그 이유는 안데스산맥의 높은 고산지대에서 비옥한 화산재 토양과 적절한 강수량을 바탕으로 생산되는 커피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띤또(Tinto)라는 콜롬비아 전통 블랙커피가 있는데 그 풍미가 정말 깊고 진한 향이 일품이더라.

범죄와의 전쟁
한편 1980년대 전 세계 마약의 80% 이상을 수출하던 국가 역시 콜롬비아다. 그 배경에는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있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코카인을 미국에 밀수하며 큰 부를 쌓았다. 전성기에는 매달 80톤가량의 막대한 양의 코카인을 국외로 밀수하며 30조가 넘는 검은돈을 거머쥔다. 그는 자신을 거스르는 인물은 암살하고 정치인과 판사에게는 뇌물로 매수하는 방식으로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이에 마약의 최고 피해국인 미국은 콜롬비아 정부와 연합하여 1991년 그를 체포한다. 하지만 파블로는 자신의 부패한 돈으로 지은 교도소로 들어가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마약 밀수사업을 이어나간다. 1992년 교도소에서 문제를 일으켜 다른 교도소로 이송되던 중 그는 잠적하지만 1년 뒤 콜롬비아와 미국 정부에 발견되어 현장에서 세 발의 총탄을 맞고 사살된다. 
파블로는 콜롬비아를 마약의 나라로 전 세계에 악명을 드높인 인물이다. 그는 정부에게는 치명적인 존재였지만, 빈곤층에게는 주택을 비롯한 복합시설을 지어주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일부 빈민들은 그를 영웅으로 추앙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범죄를 일삼았던 마약의 도시 메데인은 21세기 초까지 극악의 치안으로 주민들이 궁핍과 불안 속에 살았다.

 

고장 난 카메라
메데인(Medellin)에서 30km 떨어진 호세 마리아 코르도바 공항에서 남미여행은 시작되었다. 해발 2200m에 위치한 공항에서 메데인까지는 내리막의 연속. 시속 60km의 빠른 속도를 자랑하며 산길을 내리달렸다. 반나절 후 콜롬비아 제2의 대도시 메데인에 자전거 킥스탠드를 세웠다. 
메데인에 도착하고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자전거 앞에 폼을 잡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카메라가 켜지지 않는다. 몇 달 전부터 종종 전원이 꺼지더니 중요한 순간에 제 역할을 못 하는 것이다. 군 생활 동안 매달 5만 원씩 저축해서 전역할 때 산 소중한 카메라인데. 안타까운 마음에 호스텔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카메라 수리점을 찾았다. 수리점 사장님은 카메라 메인보드의 회로가 끊어져서 전원이 켜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래된 모델이라 부품을 공수 받으려면 두 달이 걸린단다. 망연자실한 나는 여행 경비를 쪼개서 새로운 카메라를 사기로 했다. 다행히 매장에서 전에 쓰던 카메라와 배터리가 호환되는 모델을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카메라 수리점을 나오자 그제야 곳곳에 숨겨진 메데인의 풍경이 눈에 쏙쏙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다른 눈을 새롭게 얻은 나는 메데인의 속살을 파헤쳐보기로 한다.

매력의 도시 메데인 
풍문으로 들었던 것과 달리, 메데인은 매력적인 도시였다. 21세기 콜롬비아 정부가 국민의 치안과 문화 개혁에 힘을 쓴 덕분에 메데인을 여행하는 동안 위협을 느낀 일은 없다. 카메라를 메고 길거리를 걸으면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고 카메라를 가리키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이 멈춰있으면 팁을 받으려는 청년들이 차량 앞에서 춤을 추거나 불을 뿜으며 묘기를 부렸다. 그 모습은 마치 시간제한 안에 관객을 웃겨야 하는 광대 같았다. 도시는 활력이 넘쳤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메데인 중심가에 있는 호스텔에서 여독을 풀며 많은 여행자를 만났다. 기억에 남는 여행자는 호스텔에서 매니저로 일하던 캐나다 여행자 모니카. 그녀는 초췌한 행색으로 초인종을 누르는 자전거 여행자를 격하게 반겨주었다. 자칭 자전거 매니아 모니카는 주로 산에서 자전거를 즐겨 타는데, 한 번 라이딩을 나가면 100km는 거뜬하단다. 그 말을 반증하듯 그녀의 까무잡잡한 피부는 강인함을, 하회탈처럼 복스럽게 웃는 미소에는 순수함이 느껴졌다. 평범한 인물로 보이지 않았던 게 그녀의 첫인상이다.
호스텔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여행자와 어울렸다. 그 중엔 한국인 여행자도 있었다. 모험심과 배려심이 많은 그와는 마음이 맞아서 함께 저녁을 요리해 먹고 밤새도록 수다를 떨거나 관광지를 돌아보았다. 현지인과 여행자의 교집합 속에서 바라본 메데인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하루는 콜롬비아 화가 보테로의 미술 작품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정보를 모니카가 일러주었다. 공짜 문화생활의 찬스를 놓칠 리 없는 나는 그녀와 함께 안티오키아 미술관을 방문했다. “예술은 일상의 고됨으로부터 영혼을 쉴 수 있게 해준다.” 라는 명언을 남긴 콜롬비아의 화가 보테로. 그의 작품에는 독특한 특징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뚱뚱한 모습이라는 것.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싶어 그림에 볼륨을 불어넣고 해학성을 강조한 보테로는 세계의 명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덕분에 그의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날은 보테로의 생일을 기념해서 미술관 방문객에게 맥주를 나눠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몇 병을 마시든 공짜. 명성만 세계적인 줄 알았는데, 거장은 배포 또한 남달랐다.
미술관을 나와서 모니카와 레스토랑을 찾았다. 그녀는 정성스레 피자와 맥주를 추천해 주었다. 황갈색으로 물든 맥주잔을 입에 대고 한 모금 적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메데인은 정말 매력적인 도시야. 여기서 며칠만 지내려다가 도시가 마음에 들어서 벌써 몇 달째 체류 중이야. 앞으로 2주 정도 더 있다가 포르투갈로 가려고 해. Min 너는 언제까지 메데인에 머물거니?”
“모르겠어. 조만간 콜롬비아 남부로 떠나겠지?”
“아, 그래? 그럼 잘됐다. 나는 이번 주 일요일에 여기서 열리는 마라톤에 참가하기로 했어. 너도 같이 참가할래? 아마 좋은 추억이 될 거야.” 
“방금 언제 떠날지 정했어(웃음). 월요일에 메데인을 떠날래. 네가 마라톤 뛰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줄게.”
모니카는 기뻐했다. 
사실, 여행을 다니며 도움만 받아와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여행 중 만난 누군가가 나로 인해서 한국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것 또한 새로운 여행 방식이리라.
일요일 오전, 마라톤 대회가 열린 메데인은 축제를 방불케 했다. 곳곳에서 들리는 함성과 응원,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참가자들. 오랜 기다림 끝에 인파 속에서 모니카를 발견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함박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에 비친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333일 째
콜롬비아의 우기를 달리다
분지 지형의 대도시 메데인을 떠나자 산길이 시작되었다. 도시가 주는 직선의 정교함보단 자연이 주는 곡선의 화려함을 좋아하는 나는 오랜만에 풀냄새를 맡으며 상쾌하게 자전거 바퀴를 굴렸다. 그러기도 잠시, 꼬불거리는 험한 산세에 자전거를 끌어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산꼭대기에 도착할 즈음, 화물차 한 대가 전복된 사고현장을 목격했다. 많은 짐을 적재한 트럭이 굽은 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해 발생한 사고였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어보였다.  

 

폭우 속 피어나는 외로움
내리막을 달리기 시작하자 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렸다. 이내 빗줄기가 점점 거세졌다. 우기를 맞은 4월의 콜롬비아는 매일 같이 비를 뿌려댄다. 비를 피할 곳을 찾다가 도로변에 민가를 발견했다. 주인에게 손짓으로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도 주인은 묵묵부답. 소심하게 자전거를 처마에 세워두고 그 옆에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비에 젖은 생쥐 꼴인 내가 측은해 보였는지 주인은 나에게 몇 마디 말을 붙였다. 주인의 관심은 축축한 분위기를 따듯하게 감싸주었다. 카메라를 꺼내 보이며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묻자 그제야 토끼 같은 딸들을 불러 사진 모델이 되어주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비는 그치질 않았다. 해 지기 1시간 전, 주인과 눈인사를 나누고 다시 길을 떠났다. 시속 40km를 유지하며 빗속을 달렸다. 험한 산길이라 브레이크를 잡는 일이 잦았다. 1시간이 지나서 다음 마을에 도착한다. 잘 곳을 찾아 헤매다 인적 없는 공사장에 텐트를 쳤다. 짐을 풀고 쉬려고 하니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찢을 듯 우렁찬 천둥소리가 산을 가득 메웠다. 텐트 플라이 위로 빗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바닥에서는 진흙물이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빗물에 전자기기가 침수될 것을 우려해 옷가지 위에 두고 다시 잠을 청했다. 피곤함에 새우잠을 자다가도 천둥소리와 빗소리에 몇 번이고 깨어났다. 외롭고 두려운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폭우가 그쳤다. 텐트 지퍼를 열자 구름이 산봉우리 사이를 유유히 흘러간다. 간밤에는 몰랐던 싱그러운 산세가 선명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축축하게 젖은 침낭을 정리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뻗치기 시작했다. 습기를 머금은 차가운 아침 공기가 머리를 맑게 정화시켜 주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이 아름다웠던 걸까? 아니면 외로웠던 걸까? 청명한 풍경을 바라보다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행복하다’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에 어느새 외로움의 향기가 깊게 배어버렸다. 손등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계속해서 페달을 돌렸다. 이번에는 씨익 웃으면서.

술꾼 로날드
정오가 다 되어서 자전거는 라핀타다(La Pintada)에 도착했다. 마을을 서성이자 현지인들이 휘파람을 불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밝은 느낌이 드는 시골동네. 구멍가게에서 식량을 사서 떠나려는데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헤이 아미고! 이리 와서 맥주 한 잔 마시고 가.” 
구멍가게 앞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아저씨들이다. 사람이 그리웠던 나는 아저씨들의 부름이 반가웠다. 아침도 거른 채 아저씨가 건네는 맥주를 한 잔 들이켰다. 이내 온몸으로 퍼지는 알코올. 아저씨들은 “꼬레아 꼬레아”를 외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에 질세라 나도 “콜롬비아”를 연신 외쳐댔다. 맥주 한 잔에 한국과 콜롬비아의 국경이 무너지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빨간 모자가 인상적이었던 로날드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 술잔에 계속 맥주를 들이부었다. 그리고는 오늘은 자기 집에서 자고 가란다. 머물 곳이 생겼다는 안도감에 맥주가 더 달게 느껴졌다. 어지간히 술에 취했다는 소리다. 로날드는 길을 지나가는 온 동네 사람에게 맥주를 한 잔씩 권했다. 화물차 운전자도, 오토바이 택배기사도, 심지어 근무 중인 경찰한테도 휘파람을 불었다. 모두가 흥겹게 인사를 나누고 맥주 한 잔을 후딱 마시고 사라졌다. 한국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이런 문화가 흥미로웠다. 건강한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주민 한 명 한 명을 이어주는 유대감에 초점을 두었을 때는 말이다. 
문제는 로날드가 엄청난 술꾼이라는 점이다. 구멍가게 앞에서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신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술자리는 2차, 3차를 거쳐 5차까지 이어졌다. 나는 항복을 선언하고 테이블 앞에서 병든 닭처럼 꾸벅 꾸벅 졸았다. 로날드에게 집에 가자고 말했지만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다른 친구를 만나 계속 술을 마셨다. 정신이 혼미해져 먼저 그의 집에서 잠이 들었다. 어찌 보면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힘든 날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337일 째
하얀 도시 포파얀
나흘간 비를 맞으며 도착한 칼리(Cali)에서 좋은 소식을 접했다. 캐네디언 자전거 여행자 마야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콜롬비아를 여행 중이란다. 반가운 마음에 그녀와 칼리에서 170km 떨어진 남쪽 마을 코코누코(Coconuco)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흘 뒤에 코코누코에 먼저 도착해서 그녀에게 연락했다. 몸이 좋지 않았던 마야는 하루 쉬느라 이동이 느리다며 나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여행에 남는 건 오로지 사람뿐인지라, 그녀와 함께 여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코코누코에서 그녀를 기다리기는 힘들었다. 물가도 비싼 편이고 무엇보다 환전해 놓은 현금이 없었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대도시 포파얀(Popayan)에서 마야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일명 ‘하얀 도시’로 불리는 포파얀은 대부분의 건물과 벽이 흰색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도시다. 부슬비를 맞으며 중앙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도시 곳곳에 웅덩이가 고여 있고, 그 사이로 비둘기 모이를 주는 현지인과 관광객이 듬성듬성 보였다. 내가 마주한 포파얀은 하얀 도시라기보단 우중충한 회색빛의 도시였다. 며칠간 비를 맞고 다녔던 피로가 쌓인 것인지, 호스텔에 도착한 날은 근처 은행에서 돈을 환전하고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이튿날부터 비가 그쳐서 가벼운 마음으로 도시를 둘러보았다. 포파얀은 스페인에 의해 지어진 식민도시지만 현재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마을 어디를 돌아다녀도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덕분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광장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기도 하고 비둘기를 쫓는 아이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하루는 누군가가 가지고 나온 비눗방울이 광장에 풍선처럼 둥둥 떠다녔다. 이를 놓칠 리 없는 개구쟁이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띠며 비눗방울을 쫓아다녔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평화롭던지. 한참을 아이들의 웃음꽃 만발한 표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이들의 미소가 하얀 순백이구나.’ 

 


김민형 여행작가  kim_min_hyeong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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