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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다시 만난 그녀, 마야와의 동행 그리고 이별아메리카 베가본드-“아무래도 우리, 따로 여행하는 게 좋겠어”

아메리카 베가본드 ⑭
다시 만난 그녀, 마야와의 동행 그리고 이별
“아무래도 우리, 따로 여행하는 게 좋겠어”

멕시코에서 잠시 함께 보냈던 마야를 콜롬비아에서 재회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부터 1만km가 넘는 거리를 주파하며 자전거 여행의 ‘고수’가 된 그녀와의 동행은 혼자 여행에 익숙한 나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함께 힘든 오르막과 긴 내리막을 지나고, 현지인과 어울려 맛본 특별한 음식, 비에 쫄딱 젖어 서로를 바라보며 미친 듯이 웃었던 날… 참으로 소중한 순간들이지만 다시금 어김 없이 작별의 순간은 찾아왔으니…  

 

 

351일 째
재회, “Long time no see 마야”

“Min! 산 크리스토발에서 스페인어 공부 많이 했어? 일본인 숙소에 지내면서 일본어 공부를 더 많이 한 거 아니야?”
4개월 만에 다시 만난 마야가 나를 보자마자 했던 말이다. 켄드라와 과테말라에서 헤어진 마야는 두 달간 칠레 여행자와 중앙아메리카를 주파하고 콜롬비아부터는 홀로 여행 중이었다. 재회의 기쁨에 우리는 서로를 힘차게 끌어안았다. 다시 만난 그녀는 지난번보다 한층 여유 있는 미소를 띠며 나의 근황을 물었다. 
마야의 자전거 타이어는 굉장히 터프해 보였다. 타이어 트레드가 다 닳아서 프로텍션 벨트가 다 드러나 있던 것. 그도 그럴 것이 캐나다 밴쿠버에서부터 남아메리카까지 1만km가 넘는 거리를 오로지 자전거로 이동했으니 장거리용 타이어도 남아날 리 없었다. 어느덧 자전거 여행의 ‘고수’가 된 그녀와의 동행은 혼자 여행에 익숙한 나에게 산뜻함을 안겨주었다. 콜롬비아 여행의 막바지, 국경 마을 파스토(Pasto)를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파스토로 가는 길은 해발 2천m에 가까운 고산지대다. 길이 굽은 것은 기본이고 반복되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정말 성가셨다. 게다가 우기를 맞은 하늘은 시도 때도 없이 비를 뿌려댔다. 하지만 이런 길도 그녀와 함께라면 즐거웠다. 우리는 서로를 추월할 때 안장에서 일어나 페달링을 하며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웃음을 자아내거나 힘이 나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한번은 내리막을 내려오는데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소나기가 쏟아졌다. 비 피할 곳을 찾아 연신 브레이크를 잡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 산길을 내려왔다. 이윽고 민가를 발견해 숨어들었다. 우리는 흠뻑 젖은 서로의 모습을 보고 미친 듯이 웃었다. 웃음소리를 들은 집주인은 따듯한 커피와 치즈를 내주기도 했다. 
‘웜 샤워’를 자주 이용하는 마야는 10km 근방에 하루 머물게 해줄 호스트와 미리 연락을 했다며 나도 함께 가자고 했다. 웜 샤워는 자전거 여행자끼리 잘 곳을 공짜로 제공해 주는 웹사이트다. 해질녘 도착한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친절한 호스트 미래야를 만났다. 미래야는 손수 만든 판데보노(바삭한 빵 안에 고소한 치즈가 들어간 콜롬비아 전통요리)와 커피를 대접해주었다. 포근한 분위기 속에서 마셨던 따듯한 저녁 한 끼는 행복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이튿날 마야와 다시 길을 떠났다. 오전 중에 산길을 마저 내려온 뒤로 줄곧 평지가 이어졌다. 마야와 나는 자전거 타는 스타일이 조금 달랐는데, 무거운 짐 때문에 오르막에서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나와 달리 그녀는 클릿 슈즈를 사용해서 오르막도 페달링을 멈추는 법이 없었다. 반면 내리막에서 그녀는 안전하게 서행하는 편이다. 때문에 오르막에서는 항상 내가 뒤처지고 내리막과 평지에서는 마야가 뒤처졌다. 각자의 여행 방식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를 존중했다. 

 

귀신 될 뻔한 날
문제는 파스토가 100km 남은 시점부터 잦은 오르막이 계속된 것이다. 마야는 항상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이런 상황이 미안해서 무리하게 자전거를 끌다가 종아리에 쥐가 났다. 이날은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질주하다가 움푹 파인 구덩이를 피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순간 자전거의 짐무게를 견디지 못한 뒷바퀴가 “펑” 하고 터져버렸다. 뒤에서는 트럭이 따라오는 상황. 시속 50km로 굴러가는 펑크 난 자전거를 어렵사리 갓길에 세웠다. 등골이 서늘한 순간이었다. 하마터면 콜롬비아 귀신이 될 뻔했다.
갓길에서 펑크를 때우고 산을 내려오니 마을 입구에서 마야가 두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겼다.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서 오늘도 ‘실내 취침’을 할 수 있다며 웃는 그녀. 동네 구멍가게 주인은 우리에게 저녁을 대접했다. 스페인어에 능통한 마야는 스스럼없이 주인과 교감했다. 입과 접시를 오가는 숟가락 사이로 이야기꽃이 활짝 피었다. 자연스럽게 낯선 이방인과 온화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마야의 모습을 보니 그녀가 진정한 여행자로 보인다.
다음날 아침, 마야는 이를 닦으며 나에게 말했다.
“Min 아무래도 우리는 따로 여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전날 나 때문에 한참을 기다렸을 걸 생각하니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마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마도 복잡한 무언가가 그녀의 마음에 들어선 모양이다. 함께 지내는 동안 그녀는 내내 가족을 그리워했다. 캐나다를 떠난 지 8개월. 언제 여행을 끝내도 이상하지 않을 기분이라고 매번 말했다. 흔히 여행을 떠나고 1년 전후로 ‘여행 슬럼프’가 찾아오는데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마야가 그렇게 보였다.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었다면, 조금 더 배려심이 많았더라면 그녀를 다독여 주었을 텐데….
마야는 파스토까지 홀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허벅지와 종아리에 무리가 온 나는 트럭을 얻어 타고 이동했다. 우리는 파스토에서 다시 만나 며칠간 여독을 푼 뒤 각자의 여행길에 올랐다.

 

 

366일 째
에콰도르 입국, 지구의 중앙 키토로
스페인어로 적도라는 뜻인 에콰도르에 발을 딛기 위해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국경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유일한 동양인이던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에콰도르 입국 절차를 밟았다. 그러던 중 함께 기다리던 베네수엘라 아주머니가 나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했고 이를 계기로 아주머니와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되었다. 

베네수엘라 이야기
한때 남미 최고의 산유국이라 불리던 베네수엘라는 2014년 국제 원유 가격 하락으로 인해 국가 경제가 무너졌다. 이에 마두로 대통령은 마구잡이로 화폐를 찍어냈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 경제는 초 인플레이션이 발생, 물가가 10배 이상 폭등하며 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한다. 거리에는 음식을 찾는 사람들로 들끓었고 굶주린 자들의 강도와 살인이 자행되었다. 결국 300만 명이 넘는 베네수엘라 국민이 일자리를 찾아 이웃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로 탈출하게 된다.
나와 사진을 찍은 아주머니도 이러한 사연으로 에콰도르 국경에서 나를 만났으리라. 아주머니와 함께 있던 가족은 밝은 사람들이었다. 내게 궁금한 게 많은지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대부분 공개하기 힘든 음담패설이었다. 민망한 질문에 부끄러워하며 대답을 하자 깔깔거리며 웃는 아주머니들. 호탕한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에서 그들의 순박함이 느껴졌다. 베네수엘라를 그냥 지나치는 게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에콰도르 입국
새로운 나라에 입국하면 마트나 구멍가게에 들러 그 나라의 물가를 확인한다. 달러를 쓰는 에콰도르는 콜롬비아에 비해서 물가가 비쌌다. 허름한 식당에서 한 끼 식사가 4달러 정도. 국경에서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Quito)까지는 250km 남짓인데 산세가 험한 길을 굳이 자전거로 주파하려고 욕심을 부렸다. 
하루는 비를 피해 폐가에 텐트를 쳤다가 한밤중에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텐트로 다가와서 꾸중을 늘어놓았다. 워낙 빠르게 말하는 통에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나에게 막말을 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적당히 웃으며 할아버지를 돌려보낸 뒤 잠을 청했다. 이튿날 할아버지의 부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아침을 챙겨주셨다. 소박한 음식에 할머니의 미안함이 담겨있는 듯했다. 배고픈 여행자는 그저 감사히 접시를 비웠다. 
길을 떠날 때까지 부슬비가 계속 내렸다. 그러기도 잠시, 비가 그치고 동쪽 하늘에 선명하고 둥근 무지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축축한 노면 위로 젖은 타이어가 빗물을 튀기며 힘차게 굴러간다. 한동안 나는 멍하니 무지개를 응시하며 무지개가 제시해 주는 길을 따라 페달을 돌렸다. 
‘그래 이게 자전거 여행이지!’ 
키토로 향하는 여정은 마지막 30km가 절정이었다. 평지가 아예 없는 급경사의 연속이라 자전거를 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온종일 자전거를 끌고 산을 오르는 것은 실로 고단하다. 며칠간 누적된 피로도 한몫을 했다. 키토까지 10km 남은 상황, 도로 위에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주저앉았다. 발뒤꿈치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지나가는 트럭을 얻어 탈 수도 있었지만 오기가 발동한 내 마음은 그러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하루를 더 길에서 노숙하고 이튿날 정오가 되어서야 키토에 도착했다. 에콰도르에 입국한 지 나흘 만의 일이다. ‘지구의 중앙’이라 일컫는 키토. 고단했던 만큼 도시에 도착했을 때의 성취감은 최고였다.

 

 

369일 째
3일간의 키토 관광
키토는 원주민 언어로 ‘지구의 중앙’이라는 뜻이다. 키토에 도착한 뒤 며칠간 도시를 유랑했다. 한 나라의 수도답게 관광지가 즐비했고 여행자 또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마을 공원에서는 닭꼬치와 소시지를 비롯한 간식거리를 파는 상인이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늘에서 포커를 즐기는 노인들의 모습은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 풍경을 연상케 했다. 
이튿날 인티난 적도박물관(Museo Itinan)으로 향했다. 교통비가 저렴한 에콰도르에서는 1시간가량 메트로 버스를 탑승해도 40센트밖에 하지 않는다. 버스 의자에 앉아있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동방예의지국의 예의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소녀에게 자리를 양보하자 어머니는 미소를 품은 얼굴로 고마움을 표했다.

 

어서와, 적도는 처음이지?
적도 박물관에서는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지구 자전의 증거인 전향력이 적도와 북반구, 남반구에서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는 실험이 가장 인상 깊었다. 지구는 자전하기 때문에 전향력을 갖는다. 자전축은 적도와 수직이고 자전하는 궤도는 적도와 일치한다. 때문에 적도에서는 전향력이 0이 된다. 전향력을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물이 가득 찬 싱크대의 마개를 뽑았을 때 물이 어느 방향으로 회전하며 하수구로 내려가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적도 박물관 중앙을 관통하는 적도선 위에서는 물줄기가 회전 없이 곧장 내려가는 반면 적도선 북쪽에서는 시계 반대 방향을, 적도선 남쪽에서는 시계방향을 그리며 물줄기가 하수구로 내려간다. 
못 위에 달걀을 세우는 기이한 현상도 적도 위에서는 상식이다. 달걀 세우기 실험은 성공한 사람에 한하여 ‘Egg Master’ 도장을 여권에 찍어주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달걀을 세우지 못했다. 중력과는 별개로 참가자가 긴장하면 적도에서도 달걀을 세우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 밖에도 적도에서는 자기장의 영향으로 자석을 공중에 띄울 수 있다. 게다가 오직 적도에서만 몸무게가 1kg 줄어든다고 하니 다이어트에 관심 많은 사람도 적도선 위에서 안심하고 생크림 케이크를 잘라도 될 것이다.
키토에서의 마지막 날은 엘 파네실로 천사의 상을 찾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날개가 돋은 성모 마리아 상이라는 엘 파네실로. 높이가 무려 32m에 육박한다. 치안이 좋지 않은 슬럼가의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서 한때는 굉장히 위험했던 곳이다. 혹여나 카메라를 노리는 소매치기가 있을까, 슬럼가로 향하는 길가의 구멍가게에 들러 주인에게 치안상태를 물으니 주인은 되려 전통음식 프리스티노(튀긴 돼지고기와 옥수수)를 내주었다. 안전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천사의 상을 보기위해 올랐던 달동네 비탈길은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눈인사를 할 수 있는, 이른바 만남의 장소였다. 비탈길에서 공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걸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산꼭대기에 도착하자 키토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먼지가 쾨쾨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만족이다.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천사의 상 엘 파네실로. 동상의 뒤로 가서 거대한 날개를 올려다보았다. 천사의 모습을 한 성인을 대면하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 
‘꼭 날개가 있어야만 천사인가.’
여행을 떠나고 길 위에서 날개 없는 천사들을 수없이 만났다. 아파트 10층 높이의 거대한 천사 앞에서 지금까지 만난 천사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비옥해지는 것을 느꼈다.

 

 

372일 째
비안개를 뚫고 ‘과야킬’로
키토는 도시에 진입할 때 오르막으로 사람 고생시키더니 도시를 빠져나가는 길 또한 험준한 산길의 연속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프레임에 달아놓은 물통 케이지가 두 동강 나서 더위와 산행으로 고달픈 여행자의 정신을 쥐어짜는 듯했다. 자전거 탈 때 물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것이 싫어 최대한 프레임에 많이 붙여 놓았는데. 두 동강 난 물통 케이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아리다. 진즉에 고장 났으면 콜롬비아 파스토에서 타이어를 주문할 때 같이 했을 텐데.  

공사장에서 퇴짜 맞은 날
험난한 오르막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즈음에는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방에 뿌연 안개가 내려앉았다. 50m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자전거를 타면 위험할 것 같아 도로변 주유소에서 빵과 우유를 먹으며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렸다. 그러기를 30분. 안개가 약간 걷힌 것을 확인하고 다시 자전거를 탔지만 금세 다시 안개가 시야를 가로막는다. 위험을 감지하고 주유소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하다 그냥 안개 속을 달리기로 한다. 뇌리에서 ‘위험’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깜빡거림을 느낀다. 촉촉하게 머리카락을 적시는 안개 속에서 연신 브레이크를 움켜쥐며 1시간가량 짜릿한 라이딩을 즐겼다.
오후가 되어 어느 정도 해발고도가 낮아지자 안개가 걷혔다. 하루 종일 비를 맞은 지라 피로감이 심했다. 때마침 도로변에 비를 피할 수 있는 공사장이 보여 핸들을 돌렸다. 공사장에 쭈그리고 앉아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야속하게도 1시간이 지나도 빗줄기는 거세질 뿐이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공사장에서 캠핑하기로 마음먹고 주렁주렁 매단 짐을 풀고 텐트를 쳤다. 그때 어디선가 공사장 관리자가 우산을 쓰고 다가왔다. 
“비가 와서 그러는데 오늘 밤만 여기서 캠핑해도 돼요?”
물에 빠진 생쥐 꼴이던 나는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관리자는 무뚝뚝한 얼굴로 “No”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당장 여기서 나가라며 윽박질렀다. 허락 없이 공사장에 텐트를 친 건 잘 못됐지만 비 오는 날 야단을 맞고 쫓겨나니 참 서운했다. 그래도 밥통에 물 붓기 전에 쫓겨난 걸 다행으로 여기며 다시 빗속을 활보한다.
10km 넘게 산길을 내려가니 도로변에서 화물차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음식점이 보였다. 이번에는 주인에게 먼저 허락을 받고 텐트를 쳤다. 온종일 내린 비로 축축하게 젖은 몸을 텐트에 뉘었을 때는 입에서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내 집 마련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날 되시겠다. 
다음날, 오전부터 드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부채로 써도 손색없는 야자수 이파리가 이렇게 반가울까. 그간 산에서 흘린 땀방울을 바람에 실어 보내며 상쾌함을 보상받는다. 평지 구간은 너무 편하게 느껴졌다. 덕분에 3일 만에 400km를 주파해 에콰도르 남부의 항구도시 과야킬까지 단숨에 다다랐다. 

 

 


김민형 작가  bicycle_lif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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