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까지 편히 올라 지리산과 남해를 만나다

E-MTB로 저 山에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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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B, 모터 달고 다시 산으로

순천 고동산(709m) 일주
정상까지 편히 올라 지리산과 남해를 만나다

순천 고동산은 관광지로 유명한 낙안읍성 뒤편에 솟아 있다. 709m로 그렇게 높지 않고 특별한 명소도 없지만 편백숲 관리를 위한 순환임도가 개설되어 있고 정상의 통신탑까지도 길이 있어 산악 코스로 대단히 매력적이다. 정상 조망은 실로 발군. 가까운 조계산과 모후산은 물론 광주 무등산, 지리산 주능선, 남해안까지 보인다. 정상 일대는 관목지대를 이뤄 고도감이 대단하고, 5월에는 철쭉꽃이 뒤덮는다
글·사진 김병훈(본지 발행인)

 
 
편백숲 사이로 꿈결 같은 길이 구비치며 흐른다. 인적은 없고 마을도 보이지 않는 숲길. 쭉쭉 뻗은 편백은 이국적 정취마저 풍긴다. 솔밭에는 그윽한 동양적 운치가 감돈다면, 편백숲은 서구적 발랄함으로 넘친다. 머나먼 남도의 산자락에서 만난 편백숲은 더욱 호젓하고 멋지다.
편백숲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심호흡으로 들이킬 틈도 없이 두바퀴는 질주한다. 거친 노면도 미끄러운 자갈길도 거리낄 것 없이 돌파하며. 우리는 지금 순천 고동산(709m)의 산록을 전기 MTB로 달리는 중이다. 산을 한 바퀴 돌아 기어이 정상까지 오를 것이다. 

목촌리 수정마을에서 출발
고동산(高動山)은 송광사와 선암사를 안은 명산 조계산(884m)의 남쪽 능선에 솟아 있어 크게는 조계산의 한 봉우리로 볼 수 있다. 정상 아래의 바위너덜 지대에서 임진왜란 직전에 고동이 울렸다고 하는데 이보다는 남쪽 주능선을 사이에 두고 쌍율리~목촌리를 잇는 고등치(高等峙)에서 유래한 이름이 아닐까 싶다. 고등치도 지금은 고동치가 되었다.
고동산은 낙안읍성이 자리한 저지대에서 한단계 올라선 고원지대에 완만하게 솟아 있어 순천시 산림조합이 대규모 편백림을 조성하고 관리하느라 임도가 많다. 통신탑 관리를 위해 정상까지 길이 있어 어렵지 않게 해발 709m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는 것이 큰 매력이다.
출발지는 산 동남쪽의 목촌리 수정마을. 고동치를 사이에 두고 쌍율리 장안마을과 마주한 곳이다. 남쪽의 낙안읍성에서 진입하면 857번 지방도를 따라 오공재를 넘어 첫 번째 갈림길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오공재를 넘으면 왼쪽으로 정상에 철탑이 선 고동산이 성큼 다가선다.
수정마을 입구의 농로삼거리 공터를 기점으로 잡아 라이딩을 시작한다. 오공재를 넘어 고원지대로 들어선 만큼 이미 해발 240m의 높이다. 

 
 
고동치 직전에서 550m 등고선을 따라 순환 임도가 시작된다. 왼쪽으로 철탑이 선 정상이 보이고, 진초록숲은 모두 편백림이다
 

고등치 직전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일주 
수정마을은 20가구 남짓한 전형적인 산골이다. 도시에서 멀어 멋진 외관의 전원주택 하나 보이지 않고 70년대풍의 건물들이 그대로 주저앉아 낡아가는 산간오지다.
마을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급경사 업힐이 시작되지만 적막 속에 윙윙~ 대는 모터와 기어 소리가 나직이 들릴 뿐, 가쁜 호흡도 근육의 팽팽한 긴장도 없이 느긋하게 풍경을 즐기며 고도를 높여간다. 경사도는 12%를 넘는다.
2.9㎞ 정도를 오른 해발 550m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등고선을 따라 일렁이는 순환임도가 시작된다. 고동치 고갯마루 200m 직전이다. 산기슭은 성긴 관목숲으로 전망이 트여 방금 올라온 수정마을 일대와 낙안읍성 뒤편의 금전산(668m)이 잘 보인다.
관목지대를 지나면 쭉쭉 뻗은 편백숲이다. 대기에 가득한 피톤치드를 쐬면서 능선 따라 구불대는 숲길을 쾌속으로 달린다. 길은 해발 550m 등고선을 중심으로 조금씩 출렁일 뿐 업다운이 심하지 않다.
출발 후 10.6㎞ 지점에서 다시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은 흥림마을로 하산하는 길이다. 왼쪽길로 잠시 업힐하면 해발 620m의 장안치 정상이다. 호남정맥이 지나는 마루금으로 능선따라 고동산까지는 4㎞, 조계산 장군봉까지는 2.6㎞ 밖에 되지 않아 조계산이 더 가깝다.
잠시 다운힐 했다가 다시 550m 등고선을 따라 길은 남향한다. 이제 고동산의 서쪽 기슭이다. 조계산 주봉인 장군봉(884m)과 연산봉(851m)이 저편으로 마주보이고 주암호 너머로는 모후산(919m)이 오똑하다. 도중에 4군데 정도 갈림길이 나오는데 등고선 따라 그대로 직진하면 된다. 이윽고 길은 표고 350m까지 급격히 고도를 낮춰 고동치와 이어지는 장안리로 내려선다(18.5㎞ 지점). 

 
길도 예쁘고 조망도 시원해 달리는 맛이 그만이다
‌코스의 초입인 수정마을 입구 표지석. 뒤쪽으로 철탑을 인 고동산이 둔중하다
 
 

정상 일대의 놀라운 조망 
장안리 삼거리에서 왼쪽 업힐로 접어들면 끔찍한 급경사 길이 거의 곧추 서 있다. 경사도는 20% 가깝다. 전기 MTB인데도 괜히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몸은 긴장하지만 결과는 싱거울 뿐이다. 
고동치 정상 직전의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이제 정상을 향한 최후의 진격이다. 초록빛 산록에 드리운 비단결처럼 하얀 시멘트길이 하늘로 올라붙고 있다. 정상 일원은 철쭉 위주의 관목지대여서 조망이 트여 고도감이 과장된다. 정상 직전의 200m 정도는 공제선에 걸린 허공을 향해 하늘사다리를 오르는 듯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마침내 정상 표지석이 나오고 사방으로는 거칠 것 없는 대지가 펼쳐진다(21.4㎞). 산불감시소를 지키던 중년남자는 이런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우리가 마뜩찮은 듯 인사를 건네도 딱딱한 표정이다.
솔직히 산이 높지 않아서 정상 조망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장관이다. 남해안에 가까운 입지와 북쪽을 제외하면 더 높은 산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날씨까지 도와줘 북동쪽으로는 광양 백운산(1228m) 너머 근 60㎞의 거리를 두고 지리산 주능선이 아득하다. 모후산의 첨봉 뒤편으로는 광주 무등산(1187m)의 둔중한 어깨선이 아스라이 하늘금을 그린다. 
서쪽으로는 주암호가, 동쪽으로는 상사호가 비경의 물빛을 산자락 깊숙이 감추고 있고 남으로는 남해도 아련하니 산과 물이 조화롭게 에워싼 형국이다. 정상 일대는 5월초에는 철쭉이 만발해 천상화원을 이룬단다. 꽃이 피기 직전이라 못내 애석했다.
장쾌한 경관에 한동안 산정을 떠날 수가 없었다. 지치지 않고 오른 정상이라 팔팔한 심신으로 장관을 만나니 오랫동안 여유롭게 경관을 감상했다. 마음도 쫓기지 않고 느긋하니 더 많은 것이 더 깊이 보였다. 

 
정상 옆 헬기장에서의 북동쪽 조망. 날씨가 좋아 60km 떨어진 지리산 주능선이 아스라이 보인다
낙안읍성은 무미건조한 세트장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어 푸근한 향수를 더해준다
 
 

손가락만 힘든 천상의 다운힐 
정상에서 수정마을의 출발지까지는 고도차 500m, 길이 4.6㎞의 급전직하 다운힐이다. 고동치에서 잠시 숨을 돌렸을 뿐, 브레이크 레버를 쥔 손가락에만 힘이 들어가고 전신은 피톤치드로 물든 대기를 날 듯이 꿰뚫는다. 수정마을까지 순식간에 내려서니 오공재 너머 낙안읍성까지 내쳐 치닫고 싶어진다. 수정마을에서 일주 26㎞는 끝났지만 857번 지방도를 따라 낙안읍성까지 내려가기로 한다.
오공재는 높이 260m로 수정마을쪽에서는 거의 평지지만 표고 50m 남짓한 낙안읍성까지는 훌쩍 떨어지는 내리막이다. 정상에서부터 치면 고도차 660m에 길이 9㎞의 ‘에픽 다운힐’이다. 여유롭고 편안하게 올랐다가 스릴 있게 내려오는 전기MTB 산행의 묘미는 현실에 찌들었던 자아를 아이 같은 백짓장 상태로 초기화시켜 준다.
순식간에 산을 내려와서인지 적응되지 않은 심신은 여전히 설렘으로 들떠 있고, 배터리도 반 정도나 남은데다 태양은 아직 중천이다. 근처에 더 갈 데 없나 지도를 뒤적이는데 업무차 동행한 일행이 “자전거는 그만 타고 다음 약속이 있는 창원으로 가야한다”고 제지한다. 

 

 
낙안읍성은 무미건조한 세트장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어 푸근한 향수를 더해준다

 

여 정
고동산 초입의 수정마을은 순천시 낙안면 목촌리에 있다. 주차하기 적당한 마을입구 공터 주소는 목촌리 511-3번지. 호남고속도로 승주IC 또는 남해고속도로 벌교IC에서 가깝다. 낙안읍성, 송광사, 선암사를 함께 돌아보기 좋다. 목촌리에서 순환임도를 돌아 정상을 다녀오면 26km, 낙안읍성까지 다운힐하면 31km가 된다. 가까운 숙식 업소는 낙안읍성이나 선암사, 벌교 읍내에 있다. 

 
순천 고동산 (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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