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명경수, 분단 넘어 천리 길

북한강(화천·춘천·가평·남양주·양평)

금강산 명경수, 분단 넘어 천리 길


북한강은 금강산 비로봉에서 발원한다. 그야말로 금강(金剛)의 물이다. 북한 땅 강원도 창도의 금강산댐을 지나 휴전선을 넘고, 파로호, 춘천호, 의암호에 이르러 또 한줄기 북녘에서 출발하는 인북천의 물줄기를 이어받은 소양강과 합류한다. 거대한 물줄기다. 안개에 싸인 호반도시 춘천과 세계의 명소가 된 남이섬이 풍요로운 수변풍경으로 탄생했다. 이 물을 가두어 아끼지 않으면 서울이, 수도권이 목 탄다. 두물머리에서 껴안는 남·북한강의 포옹이야말로 가슴 벅찬 하나됨이다
글 조용연(여행작가)

 

하중도 붕어섬은 화천의 유일한 섬이다. 화룡점정이다

 


 ‌취재지원 : 조성욱
 ‌기술·용품협찬 : 태능한성바이크(02-971-7206)
 ‌자 전 거 협 찬 : 삼천리전기자전거 팬텀 XC

▶  북한강  10시간 소요(쉬엄쉬엄 14시간)
화천댐 ~ 화천대교(12km) ~동구래마을(22km) ~ 사북면사무소(29km) ~신매대교(48km) ~의암댐(61km) ~강촌교(66km) ~남이섬(82km) ~신청평대교(112km) ~서종면사무소(129km) ~북한강철교
(137km)

▶ 북한강(유로연장 482.98km, 유역면적 23,292.83㎢(한강 제1지류)
- 국가하천 : 평화의 댐 상류 휴전선~한강 합류점(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 발원지 : 금강산 비로봉 서사면 / 강원도(북한) 회양군 주동면 신흥리 옥전봉 북쪽 계곡
- 한강의 제2지류 양구서천, 소양강, 가평천, 홍천강, 조종천 등 41개)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연꽃이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진마니아들의 단골 촬영지다(화천 하남)
산소길 100리는 화천의 상징이다. 춘천댐이 만든 거대한 호수가 물의 왕국을 만든다

 

북한강의 발원을 지도에서 찾는 일은 쉽지 않다. 평화의 댐까지만 보여주는 네이버 지도는 화천이 분단의 절벽임을 말해준다. 물길은 그러고도 휴전선을 넘는다. 구글어스를 통해야 물길의 행방을 찾을 수 있다. 북의 임남댐(금강산댐)에서 거슬러 오르면  창도에서 금강산으로 구부러지는 물길과 회양으로 올라가는 물길이 북한 땅 강원도 끄트머리까지 간다. 그러니 유로연장 482km의 반의 반절 밖에 안 되는 물길을 따라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강이다.
게다가 평화의 댐에서 화천댐까지 70리(28km) 물길은 주말에나 운항하는 유람선에다 몸을 맡기지 않는 한 아예 자전거의 범접을 허락하지 않는다.

파로호, 자전거론 길이 없다
이승만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로 이름 붙였다. 중공군 3만 명이 죽어나간 화천전투의 현장이 바로 이 언저리였다니 공산과 반공산의 격돌이 이 깊은 산중에 피로 얼룩진 셈이다.
반 토막도 못되는 서글픈 북한강 여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대한민국근대문화유산이 된 화천댐은 늙수그레한 테가 줄줄 흐른다. 댐 한가운데  포대처럼 구멍 난 수문이 고졸(古拙)하다.
딴산유원지는 물길 섶에 있지만 영악스럽지는 않다. 야영도 무료다. 화천수력발전소를 건네다 보며 달리는 자전거길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목조다리인 꺼먹다리는 수명을 다해 사람의 통행을 막아 놓았지만 이 강의 역사와 비린내를 알고 있을 것이다.

 

구만교 근처의 자전거길은 편안하다 못해 적적하기까지 하다(화천읍)
춘천문학공원. 춘천의 문인들은 북한강가에 여백을 만들어 놓고 환대한다(춘천 서면)
애니메이션박물관은 뽀로로에서 구름빵까지 동심의 세계를 모아놓고 있다(춘천 서면)

 

‘산소길 100리’와 ‘산천어 축제’가 있는 화천
구만교를 지나 물길이 구부러지면 ‘산소길 100리’ 풍광이 펼쳐진다. 다리를 건너 삼랑골부터  자전거길은 물위에 놓은 길이라 산 그림자에 녹색 기운까지 더해져 가슴 속까지 시원해진다. 산소길 100리는 겨울철 ‘산천어축제’가 끝난 뒤 4계절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화천의 북한강을 이용해 만들었다.
올해 14년째인 ‘화천 산천어 축제’가 세계4대 겨울축제에 들고, CNN이 겨울 7대 불가사의에 든다고 평가하게 된 배경에는 치밀한 축제기획, 혜안이 넘치는 지도력, 열정의 자원봉사라는 3박자가 맞아 떨어졌다. 매년 겨울 100만 명이 추위를 즐기기 위해 이 산촌으로 밀려온다. 전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자원봉사에 기꺼이 나선다. 지역경제를 살리면서도 결코 장사 속만이 아니라는 것을 입장권과 함께 주는 화천사랑상품권이나 농특산물 교환권에서 느낀다. 12년을 줄기차게 화천이라는 이름을 위해 산 전 군수의 열정과 리더십을 빼놓을 수가 없다. 9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한 그가 철저하게 바닥의    정서를 이해하고 실천한 공로임을 화천사람들은 다 안다. 자치행정이 이 정도의 수준으로 제 발로 올라서기만 한다면야 누가 미숙하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주민의 60%가 군인이라는 군사도시의 색깔을 벗고, 면회 오는 어버이나 연인들도 함께 쉬다가 갈 수 있는 강변풍경을 만든 것도 성공이다. 기차를 볼 수 없는 화천에 철로를 일부러 부설하여 레일바이크를 만들고, 기관차까지 들여와 객실열차로 숙소를 만든 열정 또한 남다르다. 

희미한 4대강의 그림자, 길은 이어지지 않고
붕어섬을 지나면 산소길 100리 코스는 더욱 한가해 진다. 금계국이 지천을 이루면서 다투어 피어나 간만에 만나는 자전거 길손을 환영한다. 거례수변생태공원을 지나 동구래마을까지 자전거길은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3km는 트레킹코스다. 자전거는 끌고 가는 수밖에 없다. 화천의 ‘23신선과 함께하는 동려이십삼선로’의 3~4번 코스인 ‘금 캐러 가는 물위야생화길’(4번), ‘연꽃과 함께하는 수변 복원길’(3번)이다. 물이 찰랑거리며 허물어져 내리는 트레킹 코스는 두려워서 더 화천답다. 수몰을 피한 금광의 동굴에는 황금박쥐가 산다. 이제 막 정비를 하고 있는 붉은 깃발을 뚫고서 가는 길은 무서우리만치 험하다. 다음에 이 길을 자전거로 가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편안한 길이 되리라.
편한 길이 나오자, 연꽃이 막 피어나고 있는 호수는 더 풍성하다. 현지사 절 앞으로 난 길로 사북면 소재지를 지나 다시 강변으로 붙을 때까지 국도 5번 신세를 져야한다. 춘천시와 화천군 경계쯤 되면 4대강 사업의 힘도 미치지 못하여 자전거는 갈 길을 헤맨다. 신포리에서 말고개를 넘지 않고 원평리 밤나무골 방향으로 접어들어야 북한강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도 잠시 다시 5번 국도를 타고, 춘천댐을 지나 서상교차로까지 와서야 강변길로 접어들 수 있다. 자전거길을 만드는 공정이 분주하다. 춘천시는 춘성교를 반환점으로 하여 타원형의 자전거도로를 계획하고 있는 듯하다. 언젠가는 화천과 춘천이 자연스레 이어지리라 소망하며 의암호에 접어든다.

 

파로호를 만드는 화천댐. 댐 가운데로 난 수문이 오래된 댐의 창문 같다(화천 간동)
애니메이션박물관 안에는 홍길동전 포스터를 그리는 옛 모습이 재현되어있다(춘천 서면)

 

 

의암호의 서쪽, 창작의 향기가
하중도인 위도를 가로지르는 신매대교를 기점으로 동쪽은 춘천 시내다. 소양강이 봉의산 북쪽으로 흘러 내려 합류한다. 중도는 훨씬 더 풍만해져 상중도와 하중도를 한 바퀴 돌도록 자전거길이 잘 갖추어져서 춘천까지 전철로 이동해서 하루를 놀다가도 좋을 풍경을 만들어 준다.
강 서편으로 바로 내려가는 길에 ‘문학공원’을 만난다. 춘천을 대표하는 소설가 전상국 선생의  글이 시 한편이다.

춘천, 얼마나 사무치게 아름다운 이름인가.(중략) / 그네들이 부른 북한강의 노래 / 소양강의 긴 이야기가 마을 마을을 휘돌아 봉의산을 품고 / 용화산,대룡산,삼악산을 넘는다(춘천문학공원조성 취지문 중)

비석마다 문인들의 한 단락 문장이 빛난다. 전영택의 <화수분>, 조병화의 <사랑의 강>, 육당 최남선의 <낙동강에서>까지….
박사마을이 있는 것도 춘천시 서면이다. 요즘 박사가 넘쳐난다지만 서면 23개리에서 1968년 이래 150여명의 박사가 탄생해서 마을주민 1인당 박사 배출 전국 1등이다. 신숭겸 장군의 묘소가 있는 우리나라 8대명당 중 하나라고 하니 눈이 번쩍 뜨일 만하다. 한승수 전 국무총리도 이곳 출신이다. 마을공동체가 박사라는 영예를 중심으로 자랑이 되고, 어린이 글램핑장이 이곳에 차려진 것도 따지고 보면 제 자식 혹여 박사마을 기를 받아 잘 되길 간절히 소망하는 부모들의 뜻도 한 자락 한 게 아닐까.
애니메이션 박물관은 창작의 산실로서도 만화의 집대성으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뽀로로나 구름빵 가족에서부터 그 옛날 홍길동전 만화영화에 이르기까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추억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길섶에 있다. 여길 촘촘히 보려면 반나절도 모자란다.
삼악산(655m) 그늘이 길고도 깊어서 초여름 날씨도 더운 줄을 모르고 의암댐을 건넌다. 강 건너 춘천, 안개의 도시 순례는 온전히 춘천만의 몫으로 남겨두고 지나갈 뿐이다. 

 

기차를 볼 수 없는 화천으로 기찻길을 옮겨다 놓은 화천의 노력은 칭찬받을만하다(화천읍)
공중전화 박스엔 아예 의자가 놓여 있다. 병사는 느긋하게 앉아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붙잡고 있다(화천읍)
화천은 ‘산천어 축제’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세계4대 겨울축제 중 하나다(네이버 자료사진)
동구래마을 근처 ‘연꽃과 함께 하는 수변 복원길’, 험한 코스다. 아무래도 공사가 끝나야 수월하리라(화천 하남)

  

남이섬, 나미나라공화국으로 가는 배 10분이면 동화의 세계로 들어간다(춘천 남산)

 

 

김유정역을 만든 새 경춘선, 소설과 영화 ‘만무방’ 
강촌교에서는 자전거길에서 올라붙어 다리를 건넌다. 나이롱 굴로 지나가는 옛 경춘선은 폐선이 되어 레일바이크 놀이터가 되었다. 강변풍치를 더 망가트릴 수 없어 춘천행 복선 경춘선은 백양리역을 기점으로 내륙으로 터널을 빠져 나간다. 춘천시 신동면 방향이다. 이즈음 핫한 정거장 ‘김유정역’을 떠올리는 것이 쉽다. 1930년대 소설가가 나풀거리는 문체로 나른한 봄과 산촌의 서정과 사랑을 노래한 것은 드문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실레마을이 그 무대다.
그의 대표작 <봄봄>, <동백꽃>, <산골나그네>는 고교교과서 단골 용도다. <만무방>은 색다르고 낯선 이름이다. ‘체면도 염치도 없이 막되 먹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내 기억의 만무방은 1994년 작 동명 영화 <만무방>에 있다. 김유정과는 상관이 없다. 오유권의 소설 <이역의 산장>이 원작이다. 그럼에도 6·25 전쟁과 눈 덮인 산골 오두막에 숨어든 네 사람의 본능과 갈등이 지금도 청백색 눈 언덕과 어둠속에서 일렁거린다.
<만무방>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이 영화를 만든 엄종선 감독이 나의 고종형(큰고모의 장남)이기 때문이다. 고려대를 다니다 서라벌예술대로 건너가 영화판에 뛰어든 형은 강대진, 김수용 감독 아래서 고되고 오랜 조감독 생활을 했다. 이대근, 원미경이 주연한 <변강쇠>가 히트해 그나마 집장만도 했으나 대종상 6개 부문 수상, 마이애미영화제 최우수상 수상작인 <만무방>을 대표작으로 꼽고 싶어 했던 그는 “영화는 상을 받았지만 관객은 외면했다.”고 흥행의 참패를 한탄했었다.
백양리역, 옛 경강역을 지나는 동안 강변자전거길은 그냥 무심하다. 방해받지 않은 생각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워도 무방하다.
 
섬의 변신, 자라섬과 남이섬
경강교를 건너면 가평읍내다. 도청소재지를 중심으로 하면 경기도내 막내 급에 속하는 군이다.    자라섬을 들른다. 자라섬도 20만평이나 되어 다 둘러보려면 반나절이다. 초입만 찍고 간다. 자라모양을 하여 그리 이름 붙였다고 하나, 실은 직선으로는 8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남이섬에 대항하기 위해서 작명한 것이다. 남이섬은 도선장이 가평 쪽에 있지만 춘천시(옛 춘성군)에 세금을 내는 섬이다. 남이섬은 이미 1965년에 개인 땅으로 나무를 심어 경춘관광이 관리해 왔지만 자라섬은 1990년대만 해도 버려져 있던 섬이었다. 중국 사람이 땅을 붙여먹어 ‘중국섬’이라고 불렀고, 군청에서 허가해주어 준설업자들은 모래섬을 쥐 뜯어 먹은 듯이 군데군데 파헤쳤다. 섬도 아니었다. 덤프트럭이 드나들던 곳을 파내 다리를 놓고 섬을 만들어 2004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을 열었다. 올해로 14회째를 맞으면서 누적 144만명을 불러들였으니 대박이다. 2008년엔 가평국제캠핑캬라반대회까지 열 정도로 수도권 최대의 오토캠핑지이다.
조금 아래 남이섬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한류의 폭발로 성지가 되어 버린 섬이다. 반달모양의 손바닥만한 섬(14만평)도 한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탄생했다. 공식홈페이지를 열면 강우현의 양팔 벌린 환호가 인상적이다. 그는 ‘독립선언문’를 선포했다.

동화(同化)되고, 동화(同和)하고, 동화(童話)쓰고, 동화(童畵) 그리며 동화(動畫)처럼 살아가는 동화세계를 남이섬에 만듭시다.

‘나미나라공화국’의 건국 선포다. 그의 상상력과 이유 있는 좌충우돌의 정신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국기, 국가, 패스포트, 나미짜(글짜), 남이통보(화폐), 우표까지 상상이 현실화된 극치다. 사람들은 선착장을 떠나는 순간, 10여분이면 닿을 수 있는 이 울창한 숲속에서 다른 나라 사람이 된다. ‘겨울연가’의 주인공들이 걸었던 메타세쿼이아 길은 한류폭발의 심지역할을 했다.
사람 하나의 힘이 이리 대단하다. 다시 강우현이다. 그를 만나면 늘 붉게 상기되어있는 혈색에 놀란다. 그의 상상력과 뒤집어보기는 실행력까지 더해져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 그의 직업은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출발했다. ‘제51회 프랑스칸영화제공식포스터 공모전’에 당선되자, 주최 측은 그에게 한글 싸인을 영문으로 고치라고 주문한다. 당선 취소의 협박(?)에도 그는 “나는 못한다. 취소하라.”고 싸워 이긴 뱃심이다. 오지랖 넓게 관여하는 곳도 많고, 그의 기발함을 찾는 곳도 많다. 그러나 내가 본 강우현의 정수(精髓)는 팔순에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 장례식에서 받은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조문객들은 그가 일일이 삽화를 그린 <엄마, 엄마>라는 작은 책자를 받았다. 의식도 혼미한 어머니를 간병하며 머리맡에서 쓴, 유년의 어머니와의 추억을 작별의 인사로 묶어 조문객과 공유한 것이다. 이게 보통 사람 머리에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해가 많이 기울었다. 금대리 방향으로 가야 강물을 놓치지 않는다. 복장리에 이르면 호명산 정상에 물을 퍼 올렸다가 낙차를 이용하는 ‘청평양수발전소’로 가는 길이 나온다. 벚꽃이 피는 철이면 이 구불구불한 산길은 최고의 풍광을 선사한다. ‘쁘띠프랑스’가 이 청평호반에 자리 잡은 것도 어쩌면 남이섬과 이어지는 391번 지방도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진작 눈썰미 있게 호반에 별장을 지은 이들은 문 앞에서 바로 보트에 시동을 걸고 호반을 가로질러 호쾌하게 달려갈 수 있다. 

 

물레방아와 옛날 펌프가 있는 길섶, 여름의 소도구가 제대로 자리 잡고 있다(화천읍)
용도폐기된 경강철교 위로 레일바이크가 달린다. 새 철길이 만든 여백이다(춘천 남산)
나미나라공화국 국기를 펄럭이는 유람선(춘천 남산)

 

청평 배터, 그 쇠락한 현주소와 가마우지 떼
청평댐에서 일부러 배터로 내려간다. 배터는 2000년 팔당댐 하류 정비에 따라 이곳으로 옮겨 올 때만 해도 5가구였으나 이제 2가구 배 20척만 남았다. 견지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물살이 빨라지는 곳을 찾아야 했다. 청평댐이 수문을 닫고 발전을 안 하면 견지낚시는 꽝이다. 그나마 댐이 발전을 낮 동안 충분히 해 다행이었는데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났다. 가마우지 떼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2000여 마리나 되는 가마우지들의 날쌘 사냥솜씨에 물고기들이 깊숙이 잠수해 버렸다. 천적이 나타난 걸 용케 아는 거였다. 어획량이 턱도 없이 줄었다. 배터 주인들의 고민도 깊어보였고 날도 저물어 고글을 벗는다.

 

의암댐이 춘천을 더욱 ‘안개의 도시’ 이미지를 만들었다(춘천 서면)

 

 

문주란 꽃 영원히 시들지 말기를
청평대교를 건너 문호리, 양수리 방향으로 접어든다. 카페와 라이브, 모텔, 장어구이, 먹거리와 잠자리의 배열이다. 낭만의 강변드라이브에 빠질 수 없는 삼박자다. 망한 모텔은 헐리어 요양원으로 리모델링 중이다. 강물의 허무와 인생의 종점이 조화를 이루기는 하는 것일까.
‘문주란 뮤즈’가 나타난다. ‘문주란’ 그 이름 때문이다. 그녀도 늙어가서 일까 매주 하던 토요 라이브도 격주에서 다시 월1회로 줄었다. 그래도 ‘문사모’는 입구에 ‘동숙의 노래’ 비를 세웠다.
그녀의 옛 노래도 늙어가는 성대를 어쩌지 못해 연륜으로 서서히 커버할 때 가슴이 먹먹하다. 그래도 열혈 팬들은 그녀의 디너쇼를 기다린다. 우리 시대에 영원히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를,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저음의 이별가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그녀의 신작 ‘양재동 거리’나 ‘나야 나’는 어쩐지 안쓰럽다. ‘백치아다다’, ‘동숙의 노래’, ‘돌지 않는 풍차’, ‘공항의 이별’ 같은 서러운 여인의 이야기가 바로 내 노래다. 그녀가 “나는 슬픈 사람입니다. 인생의 실패작이지요.”라고 말할 때 그녀의 간장을 훑고 나오는 노래는 더 절절하니 무슨 조화인가.
무시 날 그녀의 카페에서 1만원 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이 전혀 아깝지 않은 이유는 문주란 그 이름 석 자 때문이다.
수입리를 지나 문호리로 접어들자 완전한 어둠 속이다. 하루에 서둘러 북한강을 마무리하는 것은 저 강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안다. 자연과 예술이 함께 있는 마을, 면 단위에서 BI(Brand Image)를 만들 수 있는 힘도 예술가들이 몰려 사는 탓이다. 뚝딱 공연 하나, 음악무대를 열고, 전시회를 기획할 수 있는 힘이 서종면에 있다. 정배리, 노문리, 명달리, 서후리 골짜기마다 창작에 몰두하는 사람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까지 가진 풍요로운 강변마을이 부럽다.
멀리 북한강철교를 건너가는 밤 열차의 등불이 강물 위에 흔들린다. 북한강은 이미 앞가슴을 풀어헤쳤다. 두물머리가 지척이다. 

  참고 자료
1. 평화의 댐, 화천 산천어 축제, 두산백과  
2.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김유정, 전상국, 한수산, 권영민 저
3. 박사마을, 대한민국구석구석 
4. 남이섬 홈페이지, 에코피아 가평 자라섬
5.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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