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차 1000m 다운힐, 업힐 25km의 장쾌한 스케일

태백·정선 함백산(1573m)~백운산(1426m)

E-MTB로 저 山에 ③
메리다 원트웬티 벨로스타 센터드라이브
MTB, 모터 달고 다시 산으로

고도차 1000m 다운힐, 업힐 25km의 장쾌한 스케일

자전거나 자동차가 오를 수 있는 국내최고 지점인 함백산(1573m) 정상에서 장대한 산줄기를 따라 거창한 스케일의 다운힐을 시도한다. 구름 위의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가는 하강의 길. 지면의 주름이 가장 극대화된 거대 산맥은 허공을 뚫고 상하좌우로 일렁이며 두 바퀴에 흥분을 더해준다   
글·사진 김병훈(본지 발행인)

 

함백산 정상 부근에서 바라본 서쪽 방면 조망. 백운산~두위봉으로 이어지는 왼쪽의 장중한 능선 위로 운탄고도가 길게 뻗어난다

 

태백과 정선 경계에 솟은 함백산(1573m) 일대는 ‘국내최고’라는 수식어를 단 곳이 많다. 함백산은 자동차나 자전거가 오를 수 있는 국내 최고 지점이고, 그 허리를 가르는 서학로는 해발 1300m를 넘나들어 국내 최고의 도로다. 함백산 턱 밑의 만항재(1330m)는 국내최고의 고개, 건너편 태백산 망경사는 국내최고 지점(1460m)의 절이다.
이제 함백산 만항재에서 출발해 함백산 정상에 섰다가 백운산(1426m)으로 이어지는 웅장한 산줄기를 따라 수직으로 1000m 이상을 내려갈 것이다. 천상에서 지상으로의 다운힐! 대부분 비포장 길이니 서스펜션은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것이고 브레이크를 잡는 손가락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래도 내내 가슴은 설레고 시야는 대자연의 웅장미에 행복할 것이다.

함백산을 못 오른다? 
8월 초 휴가철에 찾은 만항재는 인파와 소음으로 북새통이다. 2006년부터 열리고 있는 ‘만항재 야생화 축제’가 한창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 멀고 높은 고개는 추락한 구름과 어쩌다 길을 잘 못 든 사람들만이 잠시 스쳐가는 오지였는데 이제는 피서의 명소가 되었다. 워낙 고도가 높아 평지보다 5도 이상 기온이 낮다. 

만항재는 공식적으로 1330m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고개 옆 작은 봉우리의 높이이고 도로가 지나는 최고지점은 1300m 정도다. 그렇더라도 국내최고의 고개인 것만은 사실이다.
코스는 대략 이렇다. 만항재에서 출발해 함백산을 오른 다음 다시 만항재를 거쳐 백운산 자락을 따라 영월 상동 방면으로 하산하는 것이다. 상동에서는 도로를 따라 만항재를 올라오면 된다. 일주 약 55km, 누적 고도는 1500m에 달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코스다. 함백산~백운산~두위봉(1470m) 능선은 지리산 주능선이나 덕유산 주릉에 비길만한 규모와 고도를 자랑한다. 

이 일대에 많이 남은 임도는 1960~80년대에 석탄을 캐서 운반하던 운탄로의 흔적이다. 만항재에서 함백역까지 이어지는 40km의 험준한 산길을 중심으로 탄광과 탄광촌을 잇는 길이 많았다. 한때는 이 높은 산줄기에 탄광촌이 곳곳에 있었고 막장에서 목숨을 걸고 석탄을 캐서 살아가던 고단한 삶들이 있었다. 지금은 모든 탄광은 폐쇄되었고 운탄로는 트레킹 코스와 등산로, 산악자전거 코스로 애용된다. 중국 서부의 차마고도를 본따 운치 있게 ‘운탄고도’라고도 한다. 하이원리조트는 석탄산업이 사양화되자 일대를 리조트로 개발하면서 일부 운탄로에 ‘하늘길’이라는 트레킹 코스를 조성하기도 했다. 지금도 길 주변에 숲이 없이 경사면을 다져놓은 곳은 대개 옛날 탄광이 있던 곳을 메운 것이다. 

만항재를 출발해 태백선수촌 방면으로 2km 정도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의 시멘트 포장 임도가 함백산 방면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차단기로 막아놓았다. 국립공원 구역이라 자전거 통행도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데 이는 말이 안된다. 국립공원 구역은 만항재에서 능선을 따라 함백산 정상을 지나기 때문에 길은 포함되지 않는데도 국립공원을 명분으로 자전거 진입을 막고 있다. 이런 표지판을 볼 때마다 짜증이 솟는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국토에 어디를 가나 온갖 출입금지 팻말이다. 대부분의 산은 산불금지를 명목으로 봄가을 몇 개월을 출입할 수 없다. 사고가 나면 머리가 아파지는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편의로 무조건 금지를 앞세운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심각한 시스템 상의 문제가 아닌 한 당사자가 책임져야 하는데 희한하게도 우리나라는 ‘공무원 연좌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함백산 정상에서의 남쪽 조망. 맞은편 큰 산줄기는 태백산이고, 왼쪽 아래로 태백선수촌(1335m)이 보인다

 

하얀 자작나무 가로수가 도열한 운탄고도. 노면은 잘 관리되어 있고 구름은 눈높이와 가깝다

 

광부들의 피땀은 이제 세월의 저편으로 말라붙고 길에는 한가와 여유가 흐른다

 

막장으로 복원되어 있는 1177갱. 광부의 웃는 표정을 보니 일을 마치고 나올 때의 모습이겠다

 

주능선 바로 아래에 있는 아롱이연못. 작고 얕지만 묘한 신비감이 감돈다

 

 

1500m 상공의 대기를 뚫고
함백산 정상에 다시 섰다. 벌써 5~6번은 올랐는데 매번 감격스럽다. 산 아래 태백과 정선 일대가 해발 500~600m의 고지대여서 고도감은 대단치 않지만 관목지대를 이룬 정상부는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이고, 둔중하게 살이 오른 육산의 부푼 등성이는 육감적이기까지 하다. 남쪽으로는 태백산(1563m)이 쌍벽으로 막아서고 있다. 고지대 적응훈련을 위해 설립한 태백선수촌(1335m)이 바로 발아래 보인다. 입소 선수들이 구보로 함백산 정상까지 오르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에게 함백산은 고역과 악몽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이제부터 거침없는 다운힐이다. 다시 만항재를 거쳐 혜선사 방면 운탄로로 진입한다. 부드러운 흙길의 감촉이 좋다. 초입의 능선에는 풍력발전기 공사가 한창이다. 혜선사 입구(1070m)까지 4km 정도는 급경사와 완경사가 반복되는 다운힐이 이어져 풍경을 볼 새도 없이 스릴 만점의 라이딩을 만끽한다.
혜선사를 지나면 길은 대략 1150m 등고선을 따라 부드럽게 오르내린다. 혜선사 입구에서 5.1km 가면 하이원골프장 후문이다. 예전에는 다른 길이 없어 잠시 골프장을 거쳐갔는데 왼쪽으로 우회로를 내놓았다. 왼쪽길로 2km 가면 백운산 아래 전망대가 나온다. 1280m나 되는 높이여서 백운산(1426m) 정상이 바로 뒤편이다. 임도와 등산로를 거쳐 백운산을 오를 수 있고, 하이원 스키장에서 가장 높은 밸리탑(1367m)이나 관광곤돌라가 운행하는 마운틴탑(1345m)으로도 갈 수 있다. 자전거는 하산로가 막히니 운탄고도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도중에 사북지역 탄광의 효시가 된 1177갱의 일부를 복원해 놓은 작은 쉼터가 있어 슬쩍 갱 안으로 들어섰더니 폭염에도 확 냉기가 돌고 밀폐감이 가슴을 억누른다. 금방 끝이 나는 막장(갱도의 막다른 곳)이 이런데 이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중노동을 했을 당시의 광부들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텨냈을까. 그 인내심과 생존의 처절함에 문득 목이 멘다. 그렇게 피땀 흘려 일궈낸 이 땅의 후예들은 풍요 속에서도 길을 잃고 있으니….

사북읍과 영월 방면으로 이어지는 사거리에 이르면 도롱이연못과 아롱이연못이 가깝다. 주능선 지척의 고지대에 연못이라니 대단히 이채롭다. 상부의 도롱이연못은 1970년대 갱도 함몰로 생겨났다는데 남편이 탄광에서 일할 때 화절령 일대에 살던 여인들은 이 연못의 도롱뇽에게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광부를 남편으로 둔 여인들의 처지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불안과 걱정을 이고 살았을 여인들의 삶이란….
조금 아래쪽에 비밀처럼 숨어 있는 아롱이연못은 크기는 작지만 어딘가 신비감이 감돈다. 

 

함백산 정상. 자전거 뒤편의 도로가 만항재 정상부다

 

 

화절령에서 본격 하산
아롱이연못 사거리에서 도롱이연못 방면으로 좌회전 하거나, 그대로 직진해도 길은 화절령으로 이어진다. 직진 길이 가깝고 상태도 좋다.
만항재에서 18km 지점인 화절령(花折嶺)은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해 꽃을 꺾는다는 뜻으로 붙여졌다. 순우리말로 ‘꽃꺾기재’라고도 한다. 해발 1100m이며 사거리를 이룬다. 직진은 두위봉을 거쳐 함백으로 가는 옛 운탄로의 중심도로이고, 좌회전은 영월 방면, 우회전은 사북 방면이다. 

이제 다시 급전직하 다운힐 준비다. 사거리에서 좌회전, 영월 방면으로 급경사 길을 내려간다. 경사가 심한 덕분에 고도는 금방 낮아지고 고랭지밭이 조금씩 나타나더니 첫 번째 민가가 보인다. 화절령에서 4.3km 내려가면 이정표가 서 있는 삼거리다. 상동 본구래 방면으로 다리를 건너 좌회전하면 정말 힘겹게 개간했을 가파른 고랭지밭을 따라 고개를 넘는다. 높이가 880m나 되는 고개인데 이름조차 없다. 앞서 운탄고도에서 신나게 달리느라 PAS 강도를 높여 쓰는 바람에 배터리 여분이 걱정된다. 상동에서 만항재까지 고도차 800m를 더 올라야 하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다. 이 무명고개를 미처 계산에 넣지 못한 탓이다. 

그건 나중에 걱정하고, 어쨌든 고갯마루부터 31번 국도까지는 5.6km의 기나긴 내리막이다. 노면도 좋으니 쾌속으로 질주한다. 국도 합류지점인 봉우재삼거리는 해발 470m로 이번 코스에서 가장 낮은 지점이다. 이제 만항재까지는 고도차 830m, 거리 17km에 달하는 최후의 업힐이 기다린다. 배터리 전압은 35볼트 대로 떨어져서 장담하기 어렵다. 최대한 페달링으로 올라야 한다. 

상동읍내를 지나 구래리 방면의 협곡을 꾸준히 오른다. 인적 없는 완만한 업힐은 달리기에 좋지만 이제 곧 임도로 들어서면 최후의 난관이 시작될 것이다. 산이 높아 해는 넘어가고 벌써 어둑한 느낌인데 인적 없는 오지의 임도를 홀로 달리니 무한 해방감을 맛보면서도 살짝 긴장된다. 구비를 돌아도 돌아도 끝이 없다. 배터리를 아끼려 기어를 가볍게 하고 최대한 페달링으로 오르지만 이미 정상까지는 틀렸다. 드디어 만항재로 오르는 414번 지방도에 합류한다. 이제부터는 길이 좋으니 방전되어도 천천히 끌고 가면 될 것이다. 남은 구간은 고도차 250m에 거리 3.5km. 3km를 남겨두고 기어이 배터리는 꺼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달려준 것만 해도 고마울 뿐이다. 험한 산길을 50km 이상, 누적고도 1500m를 넘겼으니. 

자전거를 끌고 만항재에 도착하자 골짜기에서는 이미 졌던 태양이 아득한 산줄기에 실루엣을 드리우며 화사한 노을을 물들인다. 해를 등지고 검게 변한 산은 한밤의 심연으로 조용히 잦아들고 있다. 
 

만항재 표지석 뒤로 함백산 정상에 마지막 햇살이 걸렸다

 

 

여정
만항재에 주차하고 원점순환 코스로 잡으면 편하다. 총거리는 55km이며 e MTB라면 4시간 정도에 완주할 수 있다. 함백산 정상을 제외하고 만항재를 기점으로 잡아 순환하면 코스는 8km 정도 줄어든다.

코스
만항재(태백선수촌 방면)→함백산(4.3km)→만항재(8.6km)→혜선사(12.9km)→하이원골프장 후문(18.0km)→백운산 전망대(20.6km)→화절령(26.3km)→직동리 이정표 삼거리(30.6km. 좌회전)→고랭지밭 고개마루(32.6km)→31번 국도 합류(37.8km. 좌회전)→상동삼거리(40.2km. 좌회전)→414번 지방도 합류(51.6km. 좌회전)→만항재(55.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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