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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천 · 굴포천(서울 · 김포 · 인천 · 부천)아라뱃길 경인운하, 배가 없다

한국의 강둑길 54  아라천 · 굴포천(서울 · 김포 · 인천 · 부천)

아라뱃길 경인운하, 배가 없다

아라뱃길에 배가 없다. 아라뱃길은 경인운하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루 두 차례 유람선만 떠다닐 뿐 컨테이너선의 위용을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운하의 시발에도 종점에도 제풀에 지쳐 색이 바래 버린 하역크레인이 졸고 있다. 굴포천 유역 부평의 홍수와 서해 바다 간·만조 사이의 역학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경인운하는 허풍스런 토목공사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서울은 항구’라는 가슴 벅찬 스토리를 만들지 못한 속 좁은 행정도 한 몫 한다. 한강에서 서해까지 달려갔다 돌아오는 자전거 행렬마저 사람이 만든 이 자연의 축복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아라뱃길은 정말 억울할 게 틀림없다
글 조용연(여행작가)

 ‌기술·용품 협찬 : 태능한성바이크(02-971-7206)


 

서해로 뻗어나간 경인 아라뱃길, 인공미의 극치는 걸림 없는 길, 오차 없는 직선이다

 

 

▶  아라천, 굴포천 - 5시간 소요(쉬엄쉬엄 8시간)   서울 강서 - 인천 서구 (64km)

 

 

 

▶ 아라천(주운수로 18km, 폭 80m, 수심 6.3m)
- 시점 :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
- 종점 : 인천광역시 서구 오류동
   * 주운수로 18km 중 14km는 홍수 시 굴포천 방수로로 사용


▶ 굴포천(유로연장 20.73km, 유역면적 131.75㎢ , 한강의 제2지류)
- 시점 :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동 285-1
- 종점 : 김포시 고촌동 한강합류점
- 발원지 및 최장발원지 : 부평구 원적산 동사면, 굴포천 본류구간은 8.5km
   (기타 복개 등)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서울을 떠난 자전거 행렬은 아라뱃길의 시점으로 몰려든다. 좀 더 원족을 나서자면 눈 밝은 사람은 한강 철책을 따라 하구 쪽으로 나아가겠지만 대부분이 편한 아라뱃길로 접어든다. 


아라뱃길, 짧지만 긴 강
20km도 채 못 되는 아라뱃길은 사뭇 다른 풍경이다. 한강처럼 아득하게 강 건너편이 보이는, 광대한 하구의 고립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인공의 물길답게 건조하지만 단정하다. 한강처럼 어깨를 부딪쳐야 할 정도로 은륜(銀輪)의 파도에 시달릴 일도 없다. 그저 다리 근육을 제대로 시험할 수 있는 직주로의 전개가 장쾌하다.

강둑으로 몰려나온 사람들은 이 풍경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아라뱃길, 경인운하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다로 흘러가지 않는 강물이 없다지만 바다와 강의 충돌에 정치의 셈법이 더해져 와류를 이루는 대명사가 아라뱃길이다. 치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과 헛돈 쓴 거대한 토목공사라는 대립의 사잇길을 자전거는 시원한 풍경을 경탄하는 힘으로 달린다. 자전거에 속도가 붙을수록 이 무거운 주제는 더 빨리 달아난다. 오래도록 아껴 두었던 국가하천의 ‘쫑말이’ 아라천(아라뱃길)에 푹 빠져 서해로 향한다.

 

소나무로 중앙분리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자전거길. 너무 짧아 아쉽다.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부근이다(인천 서구)

 

 

간첩들이 등대로 삼은 계양산 언저리
서울외곽순환도로가 가로지르는 귤현대교 아래를 지나면서 강은 기역자로 꼬부라진다. 계양산의 위용이 강 건너에 듬직하다. 계양산은 산다운 산이 귀한 인천에서 강화도 산들을 빼고 제일 높다. 무장간첩들이 한강의 조수(潮水)를 이용해 침투할 때, 목측(目測)으로 방향을 어림잡는 바로 그 먼 산이다. 인천사람들이 해맞이 행사를 열고, 반딧불이 축제를 어렵게라도 열 정도로 아끼는 산이니 꼭대기에 들어선 국방부 송신탑을 민간에 임대해 주고 있다고 줄기차게 항의하는 환경단체의 입장 또한 전혀 틀린 말은 아닌듯하다.
강가에 제법 큰 누각이 나타난다. 전통의 정원까지 낮은 기와담장 안에 자리 잡은 모습은 아직 젖비린내가 가시지 않았지만 멋진 설계다. 미려한 금강송에, 현판조차 붙이지 못한 누각이 갓 면도를 마친 청년의 파르스름한 구레나룻터 같다. 사람들 말마따나 “뱃길 있지, 공항철도 다니지, 영종대교 고속도로 지나지, 김포공항 비행기까지…  여기야 말로 교통의 종합전시장 아닌가.” 하는 말이 허풍이 아니다.


계양대교 아래 ‘황어장터’가 첫 번째 휴식공간이다. 짧은 구간에 쉴 만한 간격은 아니지만 여름날 다리 밑 잠깐 정차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황어라는 이름이 새롭다. 모천회귀 어종의 대명사는 연어이지만 황어도 주로 바다에서 살다 알을 낳기 위해 강으로 돌아오는 잉어과 물고기다. 3월에나 잠깐 잡히는 물고기라 회와 매운탕으로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서해를 황해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황어는 서해의 물고기라 하고 싶겠지만 섬진강에서도, 울진의 왕피천에서도 잡히니 아쉬운 설정이다. 비늘 빛깔이 순황색을 띠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황어공원에서 목상교에 이르는 구간에 아라뱃길의 정취를 이국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풍광이 담겨 있다. 운하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현대 토목의 기술적 가치는 바로 이렇게 산허리를 정교하게 절단한 물길에 투영된다. 물길도 자전거길도 해발의 기준점에 맞춰져 있으니 아치형 목상교는 꽃메산 하늘에 걸려 상상을 자극한다. 세계자전거여행가 차백성 씨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이 풍경화에 대한 진가는 단순한 프레임에서 절정을 이룬다. 저 물길 너머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입소문으로, 인터넷으로 세계의 자전거여행자들이 기어이 아라뱃길의 끄트머리 서해갑문에까지 가서 국토종주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이유도 서해에서 남해까지라는 바다의 시원과 종착에 근거한다. 


수도권 쓰레기매립장과 울창한 수목원
시천교를 지나고 나면 이내 수도권 쓰레기매립단지가 나타난다. 굳이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쓰레기를 연상하기 어려운 숲길이다. 난지도를 해발 100m에 가까운 산으로 만들고 난 서울의 쓰레기는 갈 곳을 찾아야했다. 결국은 바다 쪽이다. 그래도 바다가 그 넓은 품만큼이나 관대하다. 쓰레기 처리를 둘러싼 서울과 인천의 갈등은 한때 반입이 중단되는 지경까지 갈만큼 벼랑에 서기도 했다. 인천이 반발할 명분도 있다. 생활 쓰레기의 생산지는 서울이 44%, 경기 39%, 인천이 17%다. 경기도도 할 말은 있다. “원래 검단 땅이 김포 땅 아니더냐. 인천에 준 것인데 무슨 소리냐.” 싸우는 순간에도 쓰레기는 쌓인다. 그래도 쓰레기는 묻어야한다. 배출된 쓰레기는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어떻게 줄이느냐가 문제다. 제1매립장에서 제4매립장까지 최장 55년을 기준으로 만든 쓰레기매립장 중 제1매립장은 임무 완료했다. 제2매립장도 2018년이 완료예정이니 수명이 다해 간다. 다행히 분리수거 등 쓰레기에 대한 국민 인식이 개선되면서 당초 2022년이면 끝날 거라던 제3매립장 예상매립기한도 2044년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제4매립장의 숨통이 트일 것은 물론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쓰레기는 옮겨진다. 하역→펼침→다짐→소독→복토 5단계를 거쳐서 세월을 기다린다. 제1매립장은 이제 공원으로 변모했다. 난지도쓰레기 위의 하늘공원 변신은 성공사례로 여기에 적용되었다. ‘드림파크야생화단지’와 퍼블릭 ‘드림파크 골프장’이 들어섰다. 아마도 제4쓰레기 매립장으로 쓰레기 차량 행렬이 방향을 바꿀 때쯤이면 울창한 숲으로 변한 드림지구는 쓰레기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자전거길은 조금의 높낮이도 느껴지지 않는 평탄의 연속이다. 강폭은 바다를 닮아가기 시작해서일까 펑퍼짐해져 푸근하다. 가는 세월이 아쉬운 매미소리가 드세다. 자세히 들어보니 ‘맴~맴’하고 우는 것이 아니라 ‘세~월 세~월’하며 우는 게 아닌가. 어찌 들어보면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88 서울올림픽 개최지를 선언하면서 서울을 ‘쎄~울’하고 외치던 소리 같기도 하고.


자전거길 한 가운데 서있는 금강송, 중앙분리대를 소나무로 만들어낸 길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너무나 짧게 끝나 아쉽다. 아예 공간이 넉넉한 강둑엔 자전거만을 위한 녹색중앙분리대를 선물할 용의는 없는가. 너무 사치스런 드림(dream), 한가한 백일몽을 꾸고 있는 것일까.

경인운하 인천항, 역시 항구는 비어있다. 대형크레인은 붉은빛 광명단 도색이 바래 져 심해를 닮은 가을 하늘 코발트블루와 대조를 이룬다. 강 건너 컨테이너 대열도 단수가 낮아 보인다. 외국으로 다시 팔려가는 외제중고차만이 야적장에서 기약 없이 늘어져 있을 뿐이다. 한강에서 아라뱃길을 달려오는 동안 배 한 척도 만날 수 없었다.  

 

끊임없이 산소를 불어 넣어주어야 물이 썩지 않는 것은 운하의 숙명이다(김포 고촌)
수향루에 올라서 본 아라뱃길, 멀리 계양산이 보인다. 한 시절 침투 간첩들이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 지형지물이었다고 한다(인천 계양)
아라뱃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꼽는 목상교 부근. 절제된 프레임 속에 직선주로와 곡선 절개단애가 함께 숨쉰다(인천 계양, 차백성 사진, 2017)
모천회귀 어종인 황어 모형이 서 있는 광장. 황어는 황해바다만의 고기가 아니라 황색 비늘을 자랑하는 잉어과 바다고기다(인천 계양)
아라서해갑문, 운하를 기능하게 하는 기본시설이다. 도개교처럼 통행하게 할 수는 없을까하는 희망도 해본다(인천 서구)
한때의 갯벌은 국내 최대의 호수공원이 되고, 사람들의 주거는 높이 솟아올라 서해를 바라본다(인천 서구)

 

 

호수공원과 청라국제도시의 꿈
청운교를 건너 아라뱃길인천터미널로 가서 인증스탬프를 찍고 강 남쪽 길로 다시 원점 복귀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나는 청라신도시로 향한다. 아라뱃길에게서 막내 국가하천이란 타이틀을 빼앗아 간 굴포천으로 가기 위해서다. 운하를 마저 파지 못한 천년의 꿈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2014년에 신설한,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을 지난다. 

골프장을 도심에 품고 있는 한가함은 이곳이 한 때 바다였음을 말해준다. 국내 최대 규모인 청라호수공원은 호반에 어우러진 아파트와 선형을 조화롭게 배치한 인공조경의 완성을 보여준다. 수로에서 카약 강습을 하는 풍경은 다른 신도시 공원에서는 볼 수 없는 운하 3.6km가 선물한 여유다. 청라의 가치는 국제라는 이름을 붙여서라기보다 공항철도와 인천공항으로 이어지는 쾌속교통의 중간 진입을 허락함으로써 더 높아져 간다. 인구 9만 명을 목표로 하는 청라신도시는 거대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청라라는 이름이 주는 상큼한 맛도 한 몫 한다. 

이은상 시인의 노래 ‘동무생각’의 청라언덕은 봄의 교향악과 함께 어우러지지 않던가. 그 언덕은 대구 동산동에 있다. ‘대구 몽마르트 언덕’으로 불리는 근대문화골목의 한 역사가 되었다. 댕댕이 넝쿨, 푸른 담쟁이는 붉은 벽돌로 쌓은 성당을 타고 오르는 청아한 기품의 이미지를 만든다. 이 청라신도시는 청천저수지의 ‘청(靑)’과 나원리의 ‘라(蘿)’가 합해진 이름이다. 충남 보령 성주산과 홍성 오서산으로 둘러싸인 청라면과 같은 작명이다.
 

3.6km에 이르는 인공수로는 작은 운하다. 여름 한철 카누협회에서 무료체험교실까지 운영한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나도 카누를 1시간 동안 타보았다(인천 서구)
청라호수공원은 현대와 전통의 조화라는 일반적인 틀을 어김없이 적용했다(인천 서구)
서해갑문 앞에 이르면 자전거는 돌아가야 한다. 수출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중고외제차를 보자, 다 낡은 외제차조차 부럽던 시절이 그리워졌다(인천 서구)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대형크레인은 도무지 바빠 보이지 않는다. 갑문은 정녕 물길을 잘 못 막은 걸까(인천 서구)
‘세계의 푸른 보석’이라는 수식어가 ‘청라국제도시’라는 단어에 너무나 어울린다. 과장이면 어떠랴, 분양광고여서 아쉽기는 하지만(인천 서구)
굴포천 백마2교다. 표지가 없으면 다리인지 알 수도 없다. 부평시내 상당 구간은 복개되어 도로나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그 아래 지하는 물이 썩어 흐를 수밖에(인천 부평)

 

 

원통이재(圓通峴)를 넘지 못한 굴포 운하
청라호수공원을 지나 원창교에서 심곡천을 건너 인천북항으로 내려오는 길, 오른 쪽은 갯벌을 메운 산업단지답게 넓은 벌판이다. 북항 입구를 지나 인천교 펌프장 사거리 부근에서 보는 바다는 죽은 바다다. 바로 인천제철 뒤편이다. 화수부두의 물도 인천제철과 동국제강이 들어선 매립지 옆에서는 빈사상태다. 동명목재를 비롯한 대형목재공장들이 남지나해를 지나 끌고 들어온 몇 아름 직경의 통나무를 바닷물에 오래도록 짠물 처리하던 풍경도 이제는 사라졌다. 바닷물은 가좌IC 가까이까지 영향을 미쳤다. 가좌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는 대개 오지여서 개발이 늦었다.  가재가 많이 산다는 마을, 가재울, 가재리 이런 자연부락명도 한자로 유식하게 옮기면서 가좌가 되었다. 인천의 가좌도 가장 늦게 전기가 들어온 동네라고 토박이들은 전한다.

이제 굴포천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열우물 사거리에서 부평으로 넘어가는 원통이 고갯길(백운역 부근)이 아라뱃길을 천년의 꿈이라고 말하는 내력과 맞닿아 있다. 부평 갈산동에서 김포 고촌읍 전호리 한강으로 흐르는 굴포천은 지극히 완만한 경사로 장마철이면 부평 삼산 들판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이런 환경이 운하에는 제격이다. 게다가 삼남의 세곡선이 충청도 안흥량을 거쳐 경기만으로 들어와서도 마지막 관문인 염하의 손돌목을 통과하기가 어려웠다. 거센 조류와 암초 가득한 해로에서 수없는 배들이 뒤집혀 조정의 곳간이 비게 될 형편이었다. 고려 때 최 이가 안남(인천 가좌동 일대)에 첫 굴착을 하여 산 너머 굴포천과 연결을 시도했다. 다시 수백년 흘러 조선 중종 때 김안로가 굴포천과 김포 고촌면 평야지대의 운하 연결은 성공했으나 원통현(인천 북구 부평3동 일대)을 넘지는 못했다. 400m 구간의 암석층은 곡괭이와 삽으로 파낼 상대가 아니었다. 경인선 전철 백운역 근처다. 
 

아파트 옆 호수와 퍼블릭 골프장. 우리는 이런 풍경 속에 잠자고 일어나기를 꿈꾸고 있는 것 아닐까(인천 서구)

 

 

조병창(造兵廠)의 희미한 기억, 산업화의 전진기지 부평들판
굴포천변에 부평역사박물관이 있다. 자전거로 가는 굴포천 물줄기가 10km도 채 안되니 그냥 지나치면 밋밋하다. 부평의 근대사는 일본육군인천조병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평은 금속류 군수물자 생산 거점이었다. 일제 강점기 놋주발까지 애국충정(?)의 이름으로 헌납한 쇠붙이 공출의 집결지도 부평이었다. 경성과 연결하는 신작로의 이름이 국방도로였고, 인천과 영등포를 연결하기에 ‘인영도로’라고 불렸다. 이를 박정희 대통령 때 확장해서 만든 ‘경인고속도로’가 우리나라 ‘제1호 고속도로’다. 경부고속도로의 역사와는 또 다른 1호의 의미다. 인천시민들이 경인고속도로를 돌려달라고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일제 조병창의 부평 건설은 간이역에 불과한 부평역을 병참기지 주요 역으로 승격시켰다. 광복 후에는 미 제24군단 예하의 군수기지사령부(ASCOM24)로 군수의 혈통이 이어졌다. 후방 군수기지 주둔 미군은 후생사업에도 힘써서 전쟁 직후 고아원 지원처럼 의미 있는 일로 이 땅에 기여하기도 했다. 산업화의 전진기지로서 부평은 새나라자동차와 신진자동차의 맥을 이으면서 일제 조립일망정 코로나를 등판시켜 오늘날 자동차수출국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 혈통은 대우자동차, GM코리아로 이어져 오늘날에도 부평을 인천이면서도 인천과 다른 자생 도시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굴포천, 지하에 묻힌 구정물의 침출
굴포천으로 흘러드는 물길은 부평구청에서야 햇빛을 본다. 여기저기 손쉽게 복개하여 길을 만들고, 주차장으로 활용한 탓이다. 생활하수는 익명의 어둠에 얹혀 스며들었다. 굴포천은 전형적으로 썩은 하천 냄새가 진동한다. 환경단체까지 서둘러서 국가하천 승격을 환영하는 이유가 바로 지자체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도랑수준의 하천관리 때문일 것이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굴포천 수량 자체가 워낙 적다는 점이다. 배후에 큰 산을 끼고 있지 않으니 물을 품을 골짜기가 있을 리 없다. 우선은 복개천을 뜯어 원래대로 노출시켜야 한다. 평소에 청계천처럼 지하철 용천수든 재처리용수든 간에 물을 리필하지 않으면 부평과 부천은 굴포천의 악취와 동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굴포천 하류에서 운하를 만들어 물과 함께 사는 도시를 만들어 보겠다는 판타지의 도시 부천의 꿈도 사라져버렸다. 상동유수지와 오정물류단지를 연결해 레저는 물론, 경인운하와 물류를 묶는 계획은 ‘운하 악몽’이란 가위에 눌려 버렸다. 어쨌거나 2016년 굴포천은 국가하천의 막내자리를 어렵게 꿰어 차고 앉았다. 강둑을 점령한 가시박과 가마우지 같은 외래종들이 배를 내밀고 점령한 이 땅을 구해내기 바랄뿐이다.

 

라이딩 중 유일하게 본 아라뱃길의 귀한 배 한 척. 그나마 하루 두 번 다닌다는 유람선이다(김포 고촌)

 

 

한 바퀴 돌아보니 달리 보인다. 아라뱃길과 굴포천
굴포천이 아라뱃길과 합류하는 지점에는 등대공원이 있다. 운하가 소란스러워도 사람들은 자전거길로 쏟아져 들어온다. 거기 해방이 있기 때문이다. 노점의 막걸리 한잔이 위법이라는 걸 모를 리 없지만 그래도 팍팍한 한 주일을 달려온 노독을 푼다. 헬멧을 쓴 채 “노가리를 안주삼아 노가리를 깐다.”고 스스로 말한다. 명태가 알을 많이 낳아 그 새끼인 노가리가 거짓말이란 뜻을 지닌 속된 표현이 된 것이라고도 하지만, 노가리는 ‘논 사리(論 事理)’ 즉, ‘사리를 논 한다’는 말이 음운변천 과정에서 어쩌다 천박해져 버린 말이다.

여전히 아라뱃길은 18km 중 14km가 굴포천의 방수로로 사용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연명한다. 세상에는 이상한 일도 많다. 저렇게 많은 자전거가 무리지어 오가는데 자전거산업이 불황이라니. 자전거는 친환경인데 자연을 정비한 강둑을 달려가는 내내 무거운 마음은 새 가슴 탓인가. 비난 없는, 불도저 앞에 드러눕지 않은 국책사업이 있었던가. 서울이 ‘항구’가 되는 가슴 벅찬 판타지가 정지화면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여의도항에서 덕적도행 연락선을 언제든지 타고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굴포의 이름값이 그리 비싼가 보다. 미완의 강 ‘태안굴포운하’도 천년을 잠들어 있는 걸 보면 사람이 파낸 이 강은 천년을 기다린 값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참고 자료
1. 한국의발견, 경기도, 뿌리깊은나무, 1989
2. 경인아라뱃길, 홈페이지
3. 부평애, 부평문화원, 2017 여름호
4. 굴포천, 신진자동차공업, 위키디피아
5. 땅이름 점의 미학, 오홍석, 부연사, 2008
6.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2012


 

푸드트럭 사장님은 “와, 배 지나간다!”고 소리치며 사진을 한 장 찍어 주었다. 얼른 달려가 귀한 배 사진을 나도 찍었다(김포 고촌)
아라뱃길과 굴포천 방수로가 합류하는 등대공원. 강둑에는 그늘막을 치고 놀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김포 고촌)

 

 

 

 

 

 

 

 

 

 

조용연 편집위원  choy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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